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민달팽이를 보는 한 방식/김선우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민달팽이를 보는 한 방식/김선우

    민달팽이를 보는 한 방식/김선우 가출이 아닌 출가이길 바란다 떠나온 집이 어딘가 있고 언제든 거기로 돌아갈 수 있는 자가 아니라 돌아갈 집 없이 돌아갈 어디도 없이 돌아간다는 말을 생의 사전에서 지워버린 집을 버린 자가 되길 바란다 매일의 온몸만이 집이며 길인, 그런 자유를…… 바란다, 나여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흔들의자/이은봉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흔들의자/이은봉

    흔들의자/이은봉 흔들의자가 있어야겠다 흔들리는 세상 더욱 흔들리기 위하여 걸음 옮길 때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저 마음들 보아라 흔들의자가 있어야겠다 흔들리는 세상 더는 흔들리지 않기 위하여!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매혹을 위하여/문정희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매혹을 위하여/문정희

    매혹을 위하여/문정희 꽃아, 어지럽지? 피는 순간 사라져 가는 매혹 괜찮아, 그것을 보아버린 오묘한 눈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소멸에 이르는 절박한 피, 충동이자 충돌인 야성의 절벽 거기 내가 나를 던지는 덧없는 황홀 꽃아, 뿌리도 씨도 생각하지 마 온몸으로 하늘을 한번 깨보는 거야 타올라 보는 거야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바람과 대와 빛과 그릇/장석남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바람과 대와 빛과 그릇/장석남

    바람과 대와 빛과 그릇/장석남 바람소리 창의 대나무 기울면서 방이 일순 밝았다 어두워지니 그 사이 살아나는 구석의 도자기 흰 한 점 나도 몰래 가만히 일어나 앉아 다시 바람을 기다리니…… 나는 바람 족속이었고 대와 그릇과 일가였고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물감/홍성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물감/홍성란

    물감/홍성란 나무 안에 물감 있다 욕심 없이 한두 가지 물 햇빛 공기 흙 욕심 없이 서너 가지 꽃 피고 열매 열리는 저 착한 나무 안에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참깨꽃들에게/권혁재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참깨꽃들에게/권혁재

    참깨꽃들에게/권혁재 우리 이제 부끄러워하지 말자 더 이상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바닥으로 숙이지 말자 우리는 한낱 좁쌀만한 씨앗에도 서로를 낯 뜨겁게 붙들고 바람처럼 지나가고 비처럼 지나오기도 하였다 저 건너편 어느 밭에서는 우리보다 큰 씨앗을 품었던 엉터리꽃과 잡초들이 되려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물러터진 세상을 흔들어댔다는데, 우리 이제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말자 잘 생긴 뽀얀 얼굴을 땅바닥으로 숙이지도 말자.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꽃과 가시/강원호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꽃과 가시/강원호

    꽃과 가시/강원호 누구나 하나씩 가시를 품고 산다 가장 행복한 때라도 갑자기 눈물나게 하는 가시를 품고 산다 누구나 하나씩 꽃을 안고 산다 가장 슬플 때라도 눈물보다 아름다운 꽃을 안고 산다 누구라도 한 병씩 눈물을 품고 산다 꽃이 가시에 찔리어 흘린 진액을 모아 가슴에 안고 산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눈 감고 간다/윤동주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눈 감고 간다/윤동주

    눈 감고 간다/윤동주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가정/서윤후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가정/서윤후

    가정/서윤후 눈곱 낀 일요일의 사람들 누군가 선물로 해 준 작명 얼어붙은 이름을 자꾸 불러 주자 녹기 시작한 피 동생이 형처럼 엄마가 언니처럼 누나가 아이처럼 아빠가 유령처럼 커튼을 열고 환기를 시키는 동안의 혼숙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꽃샘추위/전해선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꽃샘추위/전해선

    꽃샘추위/전해선 눈엣가시 같은 봄, 앙칼진 손톱이 할퀴고 있다 숨죽이고 있던 생각나무 노란 꽃눈을 꽁꽁 얼려버린 삼월 참새미공원길 금잔디 그 사이사이 파랗게 돋는 어린것들 위로 백년손님처럼 눈발은 흩날리고 대지의 냉기를 떨쳐내는 연두 빛깔 들 불쑥불쑥 제 몸을 연다 냉이, 쑥부쟁이의 끈질긴 생은 시작되고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벌레 먹은 나뭇잎/서정연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벌레 먹은 나뭇잎/서정연

    벌레 먹은 나뭇잎/서정연 나뭇잎이 떨어져 내린다 온몸에 무늬가 새겨져 있다 누군가 머물렀던 온기 삶의 뒤꼍 같은 길 누가 지워지지 않는 길 새겨놓았을까 누군가는 살기 위해서 훑고 지나간 흔적이다 반쯤 물든 잎사귀는 댓바람을 피하려는 서랍처럼 웅크리고 있다 나도 따라 걸음을 멈추고 오도카니 들여다본다 거기,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고양이/조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고양이/조은

    고양이/조은 고양이가 골목에서 마주친 나를 강렬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피하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막다른 골목에서 삶과 대면하는 듯… 계속된 한파에 움츠러든 나는 머플러 속에 얼굴을 묻으며 고양이를 외면하고 걸었다 고양이는 찬바람이 부는 골목에서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렸던지 작심한 듯 나를 뒤쫓아왔다 내가 멈추면 따라 멈추고 걸으면 따라 걸었다 이상한 생각에 뒤돌아봤을 때 축 늘어진 젖무덤이 보였다 삶의 생살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기막힌 암흑! 나는 집으로 달려가 밥솥을 열었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나 혼자 자라겠어요/임길택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나 혼자 자라겠어요/임길택

    나 혼자 자라겠어요/임길택 길러지는 것은 신비하지 않아요. 소나 돼지나 염소나 닭 모두 시시해요. 그러나, 다람쥐는 볼수록 신기해요. 어디서 죽는 줄 모르는 하늘의 새 바라볼수록 신기해요. 길러지는 것은 아무리 덩치가 커도 볼품없어요. 나는 아무도 나를 기르지 못하게 하겠어요. 나는 나 혼자 자라겠어요.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유목민의 눈/김형술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유목민의 눈/김형술

    유목민의 눈/김형술 평원의 사람들은 멀리 본다 거침없이 먼 지평선이 지척이다 구름의 속도 비상하는 매의 숨겨진 발톱 초원에 갓 핀 꽃잎 속 이슬 한 방울이 그들 눈 속에 있지만 그것은 시력이 아니다 발 닿는 곳 모두 길이자 머무는 곳 모두 집으로 가진 무심 무욕 선한 영혼의 힘 아무것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바람을 낳아 방목하는 천진한 힘으로 천 리 밖 비를 헤아리고 만 리 밖 별을 읽는 아득히 푸른 저 유목민의 눈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헝그리 복서/신정민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헝그리 복서/신정민

    헝그리 복서/신정민 난 뿌리 하나가 화분 밖으로 뻗고 있어 개미농원에 들고 가 조금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청했더니 꽃을 보려면 놔두라 한다 비좁아서 살아보겠다 그러는 거라고 뿌리에 신경 쓰면 꽃 피우지 않을 거라고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바람으로 오라/김후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바람으로 오라/김후란

    바람으로 오라/김후란 저 나무 잔가지가 춤을 춘다 바람의 장난이다 오늘은 이 마음도 산란하다 흔들림이 있다는 건 살아 있음의 증거 하면 차라리 태풍으로 오라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님을 소리쳐 알려주는 거친 바람으로 오라 모든 것은 사라진다 사라지기 전에 서로의 손길 느끼고 싶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정(釘)/유자효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정(釘)/유자효

    정(釘)/유자효 햇빛은 말한다 여위어라 여위고 여위어 점으로 남으면 그 점이 더욱 여위어 사라지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으면 단단하리라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지금 이 순간의 행복/한석산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지금 이 순간의 행복/한석산

    지금 이 순간의 행복/한석산 이보시게나 사람 사는 것 별것 없네. 인생 뭐 있나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탐하지도 저버리지도 않는 삶 꽃 볼 수 있고 아기의 옹알거림 들을 수 있다면 사는 것이네. 그것이 우리 삶과 행복의 뿌리라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구절초/박철영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구절초/박철영

    구절초/박철영 아늑하다 그대 안 해맑을 수 있으므로 꽃대 마디마디가 죄다 하늘이다 구절초 꽃 핀 저 들녘이 곧 하늘이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별/손월언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별/손월언

    별/손월언 한밤에 깨어 하늘 아래 서니 지나온 날들도, 살아갈 날들도 모두 다 지워지고 나도 머나먼 별들처럼 아득하다 별은 무엇이 두려워 사철 떨며 밤하늘에 매달려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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