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 부끄러워하지 말자
더 이상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바닥으로 숙이지 말자
우리는 한낱 좁쌀만한 씨앗에도
서로를 낯 뜨겁게 붙들고
바람처럼 지나가고
비처럼 지나오기도 하였다
저 건너편 어느 밭에서는
우리보다 큰 씨앗을 품었던
엉터리꽃과 잡초들이 되려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물러터진 세상을 흔들어댔다는데,
우리 이제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말자
잘 생긴 뽀얀 얼굴을
땅바닥으로 숙이지도 말자.
2016-03-2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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