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무화과 숲/황인찬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무화과 숲/황인찬

    무화과 숲/황인찬 신용목 시인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이 시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난 것 같지가 않다. 창문 너머 숲이 있고, 숲 너머에는 옛날 일이 있다. 기억의 우거진 숲은 유리 너머로 이어진 미지이기도 하다. 보이지만 갈 수 없는 곳. 한 번 들어간 그는 영원히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곳에 닿기 위해선 차라리 눈을 감아야 한다. 어쩌면 그곳을 잊기 위해서 잠이 들어야 한다. 저 꿈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그곳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사랑이 용인되지 않는 곳보다 더 깊은 지옥은 없을 것이다. 저녁에 아침을 먹고 아침에 저녁을 먹는다고 했다면 조금은 덜 아팠을까? 이 시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난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무섭다. 신용목 시인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몬떼비데오 광장에서‘/주하림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몬떼비데오 광장에서‘/주하림

    일요일 아침 물에 빠져 죽고 싶다는 어린 애인의 품속에서 나는 자꾸 눈을 감았다 만국기가 펄럭이는 술집에서 나라 이름 대기 게임을 하면 가난한 나라만 떠오르고 누군가 내 팔뚝을 만지작거릴 때 이상하게 그가 동지처럼 느껴져 자주 바뀌던 애인들의 변심 무엇이어도 상관 없었다 멀리 떼 지어 가는 철새들 눈부시게 흰 아침 두어 번쯤, 어쩌면 서너 번쯤 주하림 시인을 본 적이 있다. 시인들이 더러 그렇기도 하지만, 그는 악몽을 돌보는 사람 같았다. 세상의 악몽들을 재우고 먹이느라 시인이 된 사람. 그래서 제대로 된 악몽이라면 한 번쯤은 그에게 들렀거나 그를 알거나 그에 관해 들었을 것이다. 이상한 소리 같지만, 물에 빠져 죽고 싶은 마음이 쳐 놓은 국경 안에 그들은 살고 있다. 만국기에도 끼지 못한 이상하고 가난한 나라가 이 세상에는 있는 것이다. 애인의 슬픔을 껴안고 살다가 그 슬픔으로부터 추방당하는 나라. 그 슬픔으로부터 멀어진 슬픔 때문에 외로운 모든 이들이 동지로 느껴지는 나라. 그 나라의 이름이 ‘사랑’이라면, 사랑이야말로 ‘악몽들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너무 가혹한 말인가? 그러나 시인은 불편한 자다. 악몽이 그를 지나가고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마인드맵/안미옥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마인드맵/안미옥

    마인드맵/안미옥 개의 눈에는 나도 흑백으로만 보일 것이다 흑백의 구름 알약들 나는 자주 심지를 잘라야 했다 그을음을 줄이는 가위 공원에 앉아 있으면 겨울이 왔고 여름이 왔다 소리 내서 우는 연습을 해봐 무릎이 벗겨질 것처럼 울부짖는 법을 배워 봐 구경꾼들은 구경하다 돌아갔다 울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무엇과도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음에도 지도가 있어서 누군가 그것을 펼쳐 보면, 몇 군데는 옛 마을로 낡아 가고 몇 군데는 신도시로 일어서겠지. 어쩌면 누렇게 번져 간 물자국만 지워진 선들 위에 황망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지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는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을, 그 지도의 길을 세상에서 찾는 일도 자신만의 몫이라는 것을, 이 시는 말하는 것일까? 세상은 제가 가진 색깔로 나를 칠한다. 나는 구름의 알약을 먹고 심지를 자르며 세상이 되어 간다. 그렇게 계절을 바꾸며 흐르는 시간들. 구경꾼들로 가득찬 공원에서 내가 그 무엇과도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방법은, 무릎이 벗겨지도록 우는 것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아니, 울 수밖에 없어서 우리는 구경꾼들 속에서도 각자의 사람인지도 모른다. 신용목 시인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몽골리안 텐트/허수경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몽골리안 텐트/허수경

    몽골리안 텐트/허수경 숨죽여 기다린다 숨죽여, 이제 너에게마저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척을 내지 않을 것이다 버림받은 마음으로 흐느끼던 날들이 지나가고 겹겹한 산에 물 흐른다 그 안에 한 사람, 적막처럼 앉아 붉은 텔레비전을 본다 마음이 썩는 곳은 어디인가. 열정의 불길이 휩쓸고 간 마음에 찾아오는 저 온전한 고요. ‘기다림’의 이유였던 ‘너’에게조차 ‘나’를 들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따라가 본다. 시인은 짧게 말한다. “버림받은 마음으로 흐느끼던 날들이 지났다”고. 그리하여 비로소 ‘겹겹’의 산중에서 썩은 마음이 ‘물’처럼 흘러내린다고. 그래서 이 시는 우연히 발생한 단면적인 서정이 아니라 겹겹으로 곰삭고 다져진 시간과 공간의 서사가 된다. 유랑의 먼 길을 돌아온 마음이 어느 순간 맞닥뜨린 찰나의 절대고독 같은 것. 그러나 정작 이 시가 숨 막히는 이유는 무심한 듯 던져 놓은 마지막 연에 이르러서다. 적막조차 생활로 받아 안는 저 무서운 고독의 이미지. 신용목 시인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외계로부터의 답신/강성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외계로부터의 답신/강성은

    외계로부터의 답신/강성은 어떤 날은 한밤중 세탁기에서도 멜로디가 흘러나오지 냉장고에서도 가방 속에서도 심지어 변기에서도 어떤 날은 내가 읽은 페이지마다 독이 묻어 있고 내 머리털 사이로 예쁜 독버섯이 자라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죽지 않고 어떤 날은 미치도록 사랑에 빠져든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어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병들어가고 어떤 날에는 우주로 쏘아올린 시들이 내 잠 속으로 떨어졌다 어쩌면 이것은 외계로부터의 답신 당신들이 보낸 것에 대한 우리들의 입장입니다 이상한 날이 있다. 한껏 공기를 불어넣은 풍선처럼 마음이 떠오르거나 바닥에 떨어진 빨래처럼 몸이 주저앉는 날. 어떤 날은 햇살이 긴 주걱을 들고 겨울 부뚜막에 앉아 흰 죽처럼 끓고 있는 나를 가만히 휘젓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랑이 찾아오고 또 떠나간 날, 시름시름 앓으면서도 끝내 살고 싶은 날들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십여 년 전 북유럽 시인들이 베가 항성을 향해 시를 쏘아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곳의 독자들이 보낸 답장이 잠든 사이 우리를 다녀가는 꿈이라고. 이 모든 이상한 일들이 사실은 외계의 소식이라고.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요리사의 책상/남진우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요리사의 책상/남진우

    요리사의 책상/남진우 내 타자기로는 빵을 굽거나 생선을 튀길 수 없다 서투른 요리사처럼 손가락 끝으로 톡톡 쳐봐도 백지엔 부서진 글자의 파편만 어지러이 나뒹굴 뿐 그 어떤 조미료도 국물도 없이 나는 황야를 떠돌며 주린 배를 채워야 한다 때로 책상 앞에서 잠시 잠에 빠지면 타자기는 나 대신 빵을 굽고 생선 튀기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보글보글 끓어넘치는 타자기 방 안을 떠다니는 온갖 음식들의 향기 자판이 움직일 때마다 밀가루 반죽이 퍼져나가고 수면 위로 튀어오른 생선이 비늘을 번득인다 늦은 저녁 타자기가 맹렬히 달려가고 있다 텅빈 거리 저편 홀로 불 환히 켠 식당을 향해 배고픈 입 한껏 벌리고 새해 첫날 누가 ‘시 써서 먹고살 만하냐’고 물었습니다. 예부터 없고 귀해 그랬겠지만 같은 값이면 ‘웃고 살 만하냐’ ‘놀고 살 만하냐’ 물으면 더 좋을 텐데, 그래도 딱히 굶은 적은 없으니 살 만하게 살았나 봅니다. 그만큼 먹고사는 일이 중하니, 글 쓰는 사람에겐 타자기가 밥솥이자 불판일 테고, 우리 모두는 결국 제 삶을 위한 요리사일 겁니다. 시에서 보이는 대로 타자기가 저절로 글을 써서 음식을 구해오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꿈을 꾸는 것처럼 정말 내가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내 귓가에/문태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내 귓가에/문태준

    내 귓가에/문태준 귓가에 조릿대 잎새 서걱대는 소리 들린다 이 소리를 언제 들었던가 찬 건넛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자매가 가끔 소곤대고 있다 부엌에는 한알 전구가 켜져 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어머니는 조리로 아침쌀을 일고 있다 겨울바람은 가난한 가족을 맴돌며 핥고 있다 눈밭에 젖어 밤새 언 운동화를 부뚜막에 올려놓고 군불을 때던 어머니가 있었다. 밥이 익을 즈음이면 그도 뽀송하게 다 말라서, 신으면 꼭 고두밥을 한 숟갈 떠 넣은 것 같았다. 세밑 찬바람에 자주 볼이 트고 입술이 갈라졌지만 누이의 얼굴만 보면 이상하게 배가 고파도 서럽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밥이었고 옷이었던 때, 부엌에 켜 놓은 알전구 같았던 때, 조릿대에게도 함께 서걱이는 가족이 있었다. 문태준의 시는 옛일을 그리는 듯하지만 언제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실패와 좌절과 고통이 속절없이 우리 삶을 방문할 때, 말없이 시린 손을 이끌어 군불 도는 아랫목에 누이고 풀 먹인 마음처럼 이불을 덮어 준다. 한숨 푹 자렴. 귓가에 소곤댄다. 혼자 한 해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지만 어디에서든 마음만은 우글거리고 있을 줄 안다. 그들을 하나하나 다 부르느라 그리움이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어떤 성화(聖畫)/이시영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어떤 성화(聖畫)/이시영

    어떤 성화(聖畫)/이시영 아기 예수가 오셨다는 영하 17도의 성탄 전야, 우성아파트 가는 언덕길 초입에서 군고구마장수 부부가 장작불이 이글거리는 화덕의 연통을 양쪽에서 꼭 끌어안은 채 칼바람을 맞고 있었는데, 나무뿌리처럼 강인하게 얽힌 그들의 두 팔을 지상의 그 누구도 다시는 떼어놓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누가 나라 살림을 다 말아먹어도 여전히 나라가 돌아가는 이유는, 영하 17도의 추위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리고 잠그고 부숴도 물속의 진실을 밝혀야 하는 이유는, 영하 17도의 추위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필 이 겨울에 아기 예수가 오신 이유는 그가 칼바람 속을 걷는 작은 촛불이기 때문이다. 촛불을 쥐고 있으면 서로의 손이 느껴진다. 누구도 이 사랑을 멈출 수 없다. 언덕길 너머 우성아파트 한 칸에 불이 켜지고, 가족들이 군고구마를 앞에 놓고 둘러앉았다. 부르지 않아도 먼저 와 있는 것이 있다. 우리는 나무뿌리처럼 얽혀 있다. 누구도 저 미래를 멈출 수 없다. 신용목 시인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심장의 유배 - 마흔이레/김혜순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심장의 유배 - 마흔이레/김혜순

    심장의 유배 - 마흔이레/김혜순 누가 네 몸속에서 물을 길어 올리나 누가 네 몸속에서 섹스를 하고 있나 창밖에서 남자와 여자의 구두가 후두둑후두둑 떨어진다 (넌 알고 있었니? 우리가 흐느끼는 소리로 뭉쳐진 존재라는 걸) 누가 네 속에서 풍금을 치나 누가 네 속의 진흙 속에서 푸들거리나 누가 네 속의 몇 개의 지층 아래서 벌떡벌떡 물을 토하나 (몇 세기의 지붕을 소리 없이 걸어가던 여자가 임신한 배를 껴안고 잠시 쉬는 테라스 눈물로 만든 렌즈들이 유리창을 쓰다듬고 있네) 누군가를 잃고 흐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몸속에서 고통이 물을 긷고 풍금을 치고, 섹스처럼 강렬하게 진흙 바닥을 헤집습니다. 창밖으로 지난 사랑의 행적이 벗겨진 구두처럼 소용없이 떨어질 때, 몇 세기 동안 숨죽이며 우리 머리 위를 걷고 있는 것은 운명이겠지요. 그가 잉태한 슬픔은 아마도 영원히 유전될 것입니다. 인생이 정녕 죽음과 죽음 사이에 잘못 버려진 상자 같은 것이라고 해도, 그 속이 마냥 텅 비어 있기만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가까운 이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그 짧은 전갈이 이승과 저승을 바꿔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신용목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어머니2/함민복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어머니2/함민복

    어머니2/함민복 읍천항에서 눈물로 가슴 맑게 닦은 아침 겨울비에 몸 씻은 보리밭 이랑 푸른 바람에 댓잎처럼 마음 뒤집어 푸른 생명 칠하며 바다에 나갔지요 아침 햇살 눈물처럼 맑고 맑은 것은 서럽다고 파도 노니는 바다는 속으로 푸르른 산 긴 세월 지나 바다에 몸푼 당신이 흘린 눈물 미역으로 자주 흔들리는 나를 보듬고 작아서 우리 삶 같은 애잔한 통통배 소리 물비늘 건반 타고 내가 한줌 뼛가루로 흩어질 때 아, 어머니 우주의 헌법이 있다면 사랑이라고 철새들 푸드득 다시 만날 기약으로 날아올라요 ‘우주의 헌법이 있다면 사랑’이라는 말을 걸어 두고 백 년쯤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법은 어머니 같아야 한다는 믿음을 걸어 두고 천 년쯤 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눈물 속에서 흔들리는 미역처럼 아침 햇살이 맑은 이유에 대해, 맑은 것이 서러운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날들입니다. 그리고 다시 ‘읍천항’을 ‘팽목항’으로 읽으며 ‘바다는 속으로 푸르른 산’ ‘바다는 속으로 푸르른 산’ 읊조리면, 내 안에 통통배처럼 무언가 지나가고 하얀 뼛가루를 뿌리며 새들이 날아오릅니다. 오늘 하루 속에서 삶과 죽음이 만 년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두 기자/김정환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두 기자/김정환

    두 기자/김정환 그들은 닉슨을 탄핵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정의의 사도라고 불렀다. 언론의 권력은 언론을 자신의 입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권력이었으므로 두 기자는 영웅 대접을 받고 닉슨 일가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스스로가 민주주의의 투사가 된 감격을 누렸다. 그것은 당연하고 또 자랑스런 일이다. 미국은 전세계 언론의 민주주의의 메카였다. 하지만 그렇다. 폭로는 배설의 허기진 아구에 그리고 일관성은 목표에 가깝다. 대통령을 쫓아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흥분의 도가니는 식고 그 폭로 정신은 육체를 쾌락으로 강간하고 고문하고 신격화하는 헐리우드 연예정보지 기자와 점심을 같이 한다. 당연하게 시시덕거리며 킬킬대며 아주 기분좋게 미쳐가면서. 요는, 끊임없이 실패하는 사랑만이 볼세비키적이다. 실패가 운명적인, 그러므로 더 나은 운명의 완성을 위한 권력 지향을 포기하지 않는. 영웅적인 두 기자는 거대한 허기 속에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가 화려하게 산발한 비명소리로 남는다. 우리의 적은 타락하고 무능한 정권만이 아닙니다. 나의 무지와 타협과 부주의가 폭력이 되어 모두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알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노래는 아무것도/박소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노래는 아무것도/박소란

    노래는 아무것도/박소란 폐품 리어카 위 바랜 통기타 한 채 실려간다 한시절 누군가의 노래 심장 가장 가까운 곳을 맴돌던 말 아랑곳없이 바퀴는 구른다 길이 덜컹일 때마다 악보에 없는 엇박의 탄식이 새어나온다 노래는 구원이 아니어라 영원이 아니어라 노래는 노래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어라 다만 흉터였으니 어설픈 흉터를 후벼대는 무딘 칼이었으니 칼이 실려간다 버려진 것들의 리어카 위에 나를 실어보낸 당신이 오래오래 아프면 좋겠다 기어이 비집고 나와 찬바람에 속절없이 날아오르는 오리털처럼, 가끔 저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아픔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문득문득 되돌아오는 것이고, 우리는 덜컹거리는 시간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악보 같은 전철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제법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차산역을 지날 때, 나는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래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칼에 찔린 채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처럼, 마음의 흉터에서 피가 번지는 저녁이었다. 모든 몸은 버려진 악기였다. 신용목 시인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액자의 주인/안희연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액자의 주인/안희연

    주인/안희연 그가 나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손목에서 손을 꺼내는 일이 목에서 얼굴을 꺼내는 일이 생각만큼 순조롭지 않았다 그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꾸만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싶어했다 아직 덩어리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는 할 수 없이 주먹을 내밀었다 얼굴 위로 진흙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 시가 쉽게 읽히지 않는 이유는 각 연이 ‘그’의 이야기인지 ‘나’의 이야기인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액자’가 가진 평면성과 ‘덩어리’가 가진 입체성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혹은 그래서, 애초부터 이 시는 세부적인 의미를 묻고 따지는 것을 계산하지 않고 쓰여졌을 것입니다. 시는 ‘고통’이라는 감각을 말로 바꿔 놓는 장르가 아니라 고통 그 자체를 드러내는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시를 통해 구속받는 자의 괴로움과 답답함,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전해졌다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주먹을 내밀었다’는 말에 조금 적극적인 해석을 보태고 싶습니다. 색다른 인사법쯤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꼭 ‘액자’를 깨뜨리는 행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액자는 자신의 육체일 수도 있고, 삶의 조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귀대/도종환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귀대/도종환

    귀대/도종환 시외버스터미널 나무 의자에 군복을 입은 파르스름한 아들과 중년의 어머니가 나란히 앉아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꽂고 함께 음악을 듣고 있다 버스가 오고 귀에 꽂았던 이어폰을 빼고 차에 오르고 나면 혼자 서 있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아들도 어서 들어가라고 말할 사람이 저거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도 오래오래 스산할 것이다 중간에 끊긴 음악처럼 정처 없을 것이다 버스가 강원도 깊숙이 들어가는 동안 그 노래 내내 가슴에 사무칠 것이다 곧 눈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흐릿한 하늘 아래 말없이 노래를 듣고 있는 두사람 문득 들국화를 보지 못한 날이 오래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곰곰 생각하자니, 이 가을 어딘가에 들국화 핀 들판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정말 시외버스터미널 외진 나무 의자에서는 이어폰을 나눠 꽂은 모자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이제 저들의 사무침은 그리움만이 아니고 애틋함만이 아니고 쓸쓸함만이 아닙니다. 저들이 차창 너머로 서로를 보내는 이유에 대해, 나란히 음악을 듣던 귀로 들어야 할 총소리와 고향처럼 늙어 가는 기다림의 시간에 대해, 무엇보다도 왜 스산한 삶은 꼭 저들의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무허가/송경동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무허가/송경동

    무허가/송경동 용산4가 철거민 참사 현장 검거해 들어온 빈집 구석에서 시를 쓴다 생각해보니 작년엔 가리봉동 기륭전자 앞 노상 턴테이너에서 무단으로 살았다 구로역 CC카메라탑을 점검하고 광장에서 불법 텐트 생활을 하기도 했다 국회의사당을 두 번이나 점거해 퇴거 불응으로 끌려나오기도 했다 전엔 대추리 빈집을 털어 살기도 했지 허가받을 수 없는 인생 그런 내 삶처럼 내 시도 영영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 이 세상 전체가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이 세계를 움직이는 시스템과 그 견고한 폭력을 떠올렸던 것 같다. 시를 쓰는 일이, 저렇게 내몰린 이들이 살 수 있는 무허가 방 한 칸을 짓는 일이겠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나라의 시스템과 그 폭력이 ‘무허가’였다니! 고백하자면 나는 최근 ‘문단’의 끔찍한 일들로 참담함과 자괴감에 빠져 있었지만, ‘문학’이 살아가는 일의 알 수 없는 심연을 거느린다는 믿음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와중에 진짜와 가짜, 진실과 거짓, 시와 정치가 송두리째 뒤집혀져 있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모든 시는 하나씩의 정부’라는 말을 역설적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노을다방/박지웅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노을다방/박지웅

    노을다방/박지웅 다방에 손님이라곤 노을뿐이다 아가씨들이 빠져나가고 섬은 웃음을 팔지 않는다 바다 일 마친 어부들이 섬의 현관 벗어놓은 어선들 다방 글자가 뜯어진 창으로 물결이 유령처럼 드나들었다 노을이 다방에서 나와 버려진 유리병 속으로 들어간다 몸을 가진 노을은 더 아름답다 이 시를 읽고 퇴락한 섬의 쓸쓸한 풍경을 아름답게 그렸다고 말해선 안 된다. 거기는 ‘다방’이 있고 ‘아가씨들’이 있었다. ‘어선에서 내려 물결처럼 드나드는 어부들’에게 ‘웃음을 팔던 그들’의 삶은, ‘다방 글자가 뜯기기’ 전부터 이미 ‘유령’ 같았을 것이다. 저녁 어스름 어딘가에서 그들은 자신의 ‘몸’을 갖지 못한 채 저물고 있었을 것이다. 다방에서 나온 후에야 비로소 ‘유리병’ 같은 몸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버려진 것일 뿐. 사람들은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어부들이 손님이 되어 누군가의 웃음을 가져갔던 것처럼 어부들 또한 잔혹한 세상에게 생활을 빼앗기고 있었다는 것을. 착취의 굴레를 당연한 듯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버려지고 말았다는 것을. 그렇게 모두가 사라져 간 시간을 이 시는 아프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가? 천만에,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호랑의 눈/유계영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호랑의 눈/유계영

    나를 벌레라고 부르자 사람들이 자세히 보기 위해 다가왔다 오늘은 긴 여행을 꿈으로 꾼 뒤의 짐 가방 검은 허리를 무너뜨리며 떠다니는 새벽 그림자를 아껴 쓰려고 앙상하게 사는 나무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은 미끄러운 경험 바람에게 그림자가 없다고 믿는다면 떨어지는 잎사귀에게도 속력이 없다 증상 없는 병을 병이라 부르지 않으니 나는 이름도 없는 나날 오늘은 짐 가방처럼 놓여 있다. 긴 여행은 꿈으로 다녀왔다. 허공을 수색하며 유연하게 밤의 허리를 꺾는 새벽이 있고, 자신의 그림자조차 안타까운 나무가 앙상한 생을 살아가고 있다. 아름답고 쓸쓸해서,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아름다움은 고독한 것인지, 이유 없이 애잔하고 아프고 서러운 것인지 계속 물었다. 또 끄덕였다. 그래,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은 얼음판 위에 선 듯 휘청이는 순간이지. 아니, 미끄럼틀을 내려오듯 내 의지 따위와는 무관하게 맡겨진 시간이야. 세상은 바람의 그림자를 불신하고 낙엽의 속력을 재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증상 없는 병을 앓는 우리는 바람의 그림자에 뒤척이고 낙엽의 속력에 웅크린다. 가을은 알고 있을까? 이 보이지 않는 연대를. 이유 없이 외롭고 슬프고 쓸쓸한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보고 싶은 친구에게/신해욱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보고 싶은 친구에게/신해욱

    보고 싶은 친구에게/신해욱 열두 살에 죽은 친구의 글씨체로 편지를 쓴다. 안녕. 친구. 나는 아직도 사람의 모습으로 밥을 먹고 사람의 머리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오늘은 너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구나. 냉동실에 삼 년쯤 얼어붙어 있던 웃음으로 웃는 얼굴을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구나. 너만 좋다면 내 목소리로 녹음을 해도 된단다. 내 손이 어색하게 움직여도 너라면 충분히 너의 이야기를 쓸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답장을 써주기를 바란다. 안녕. 친구. 우르르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난 네가 좋다. 말이 되는 소린가. 죽은 친구에게 답장을 써 달라니! 빙의란 말은 들어 봤다지만, 죽음에게 몸을 빌려준다니! 그러나 그 친구의 필체로 쓴 편지는, 그대로 그 친구가 보낸 답장이지 않을까? 죽은 친구가 그의 손으로 밥을 먹고, 그는 죽은 친구의 생각으로 말한다. 사실 우리는 이런 일들에 대해 무척이나 잘 알고 있다. 그리움은 내 몸속에 나만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얼어붙은 웃음을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를 갈라놓은 세상이 춥기 때문이지만, 너와 함께 나는 나의 전부를 쓰러뜨릴 준비가 돼 있다. 신용목 시인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에세이/김용택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에세이/김용택

    에세이/김용택 한 아이가 동전을 들고 가다가 넘어졌다. 그걸 보고 뒤에 가던 두 아이가 달려간다. 한 아이는 얼른 동전을 주워 아이에게 주고 한 아이는 넘어진 아이를 얼른 일으켜준다. 넘어진 아이가 울면서 돈을 받고 한 아이가 우는 아이의 옷에 묻은 흙을 털어준다. “다친 데 없어?” “응” “돈은 맞니?” “응” 살아갈수록 왜 친구가 점점 사라지는 것일까? 나만 그렇다고 한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겠지만, 모두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살아갈수록 그러하다니 살아가는 곳의 문제일 공산이 가장 크다.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된 것일까? 다행히 세 명은 아이다. 남의 불행을 경쟁 구도 속에서 계산하지 않고 나의 선행을 경제 논리로 환산하지 않는다. 다행히 세 명은 친구다.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다거나 남자가 씩씩하지 못하다며, 불행의 원인을 당사자의 역할 실패로 돌리는 무지막지함이 없다. 여전히 그런 친구일 때, 그들은 어느 때보다 사람이다. 며칠 전 한 대학병원을 지나가며 좋은 친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설령 불가능한 세계를 보여 줄 때조차도 시는 늘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저녁 운동장/송경동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저녁 운동장/송경동

    검정 비닐봉지처럼 아이들이 이리저리 날린다 하루의 마지막 볕을 배급 받으러 나온 노인들도 어슬렁거린다 패딱지를 잃고 울던 아이가 제 엄마에게 질질 끌려간다 신작로에서 정복 차림의 어둠이 저벅저벅 걸어들어온다 침침해진 아이들 눈이 땅 쪽으로 더 기울어진다 그때마다 운동장에 조그만 무덤이 하나씩 새로 돋아난다 껴안아주고 싶지만 내 안엔 더 큰 어둠이 웅크리고 산다 밤하늘에 흰 핀을 꽂고 문상 나온 별들 슬픈 일을 겪은 이의 눈에는 세상 모든 것이 슬퍼 보이기 마련입니다. 시를 쓸 때 시인도 아마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아이들이 ‘이리저리 날리’고 노인들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시인의 눈에 담겼을 것입니다. 활기로 가득했을 법한 ‘운동장’에 ‘정복 차림의 어둠’이 걸어들어오면서 시인은 ‘무덤’이라 부를 만한 적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시의 줄기를 타고 흐르던 안타까움의 감정은 ‘껴안아주고 싶지만/내 안엔 더 큰 어둠이 웅크리고 산다’라는 진술에 이르러 극대화됩니다. 내가 가진 어둠이 커서 상대의 어둠을 밝혀 주지 못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저녁이 밤으로 넘어가면서 시인의 슬픔을 위로하듯 그리고 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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