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지난 발자국/정현종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지난 발자국/정현종

    지난 발자국/정현종 지난 하루를 되짚어 내 발자국을 따라가노라면 사고(思考)의 힘줄이 길을 열고 느낌은 깊어져 강을 이룬다 ― 깊어지지 않으면 시간이 아니고, 마음이 아니니. 되돌아보는 일의 귀중함이여 마음은 싹튼다 조용한 시간이여. 저물 무렵 파주로 들어오는 자유로 저 너머 서해로 지는 태양을 바라볼 때 ‘아, 오늘 하루도 끝나는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물져 들어온다. 오늘 하루 나는 어디에 족적(足跡)을 남겼던가. 그 발자취 따라가면 그것이 결국 나 자신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인생은 자신의 방식으로 자기를 찾아가는 길이다. 그 길이 근심과 가난의 길일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품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 발자국 따라가면 “사고(思考)의 힘줄이 길을” 연다고 하지 않는가. 산다는 것은 길을 밟고 나아가며 길을 여는 것. 그 길로 나아가지 않았다면 인생도 그 무엇도 없었으리라. 노후가 되면 제 발자취가 나아간 길들을 하나씩 꺼내 반추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장석주 시인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오십 미터/허연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오십 미터/허연

    오십 미터/허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 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 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그리움은 부재하는 것을 향한 마음의 이상화다. 그것은 사랑한 당신이 지금 여기 없기에 생기는 잉여 감정이다. 그리움은 질병이지만 더러는 무르익어 영혼에 그늘과 그윽한 향기를 만든다. ‘너’를 향한 그리움은 뼛속까지 깊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그 말을 들었다/천양희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그 말을 들었다/천양희

    그 말을 들었다/천양희 나룻배를 타고 가다 뒤집히는 꿈을 꾸었다 갑상선에 이상이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기능이 결핍된 상태라 한다 결핍에 더듬이를 댄 것이다 나는 그 말이 가난하지만 가련하지는 않다는 말로 들렸다 몇 해 전 무릎에 갑자기 나타난 퇴행성보다는 덜 적막했다 퇴행성이 어느 별자리인가 갑상선이 뉘 집 나룻배인가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노화가 시작되면 신체 기능이 퇴화하면서 여기저기 탈난다. 무릎에 퇴행성 관절염이 생기고, 갑상선 기능은 나빠진다. 오래 써서 그 내구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시인은 아픔을 안으로 삭이면서 고통을 익살의 소재로 삼는다. “퇴행성이 어느 별자리인가/갑상선이 뉘 집 나룻배인가.” 이 말장난은 낙천주의의 소산이다. 고통에 익사하는 자는 비명만을 남기지만, 고통을 관조하는 자는 삶의 진실과 만난다. 시인은 고통에 빠져 허우적이지 않고 그것을 갖고 논다. 그것은 고통 따위에 결코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영장류의 의연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장석주 시인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창문의 완성/이병률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창문의 완성/이병률

    창문의 완성/이병률 다음 계절은 한 계절을 배신한다 딸기꽃은 탁한 밤공기를 앞지른다 어제는 그제로부터 진행한다 덮거나 덮힌다 성냥은 불을 포장한다 실수는 이해를 정정한다 상처는 상처를 지배한다 생각은 미래를 가만히 듣는다 나중에 오는 것은 적잖이 새로운 것 네가 먼저 온다 시간은 나중은 나중에 온다 슬프게 뭉친 것은 나중까지 오는 것이다 희부연 가로등 밑으로도 휑한 나뭇가지로도 온다 한번 온 것은 돌아가는 일을 생각하지 않으며 어떤 시험도 결심도 않는다 시간은 나중 오는 것이다 네가 먼저 오는 것이다 창문은 세계를 보여 주는 액자다. 우리는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본다. 창문은 집의 눈이다. 우리는 창문을 통해 한 계절이 오고, 다음 계절이 오는 것을 본다. 시인은 계절이 바뀌는 것을 배신이라고 말한다. 또한 시인은 “네가 먼저 오고 시간은 나중에 온다”고 말한다. 어쨌든 오는 것은 모두 시간과 함께 온다. 우리는 창가에 앉아 생각을 한다. 이때 생각은 “미래를 가만히 듣는” 것. 창문이 없다면 내게 오는 것들, 즉 너도, 내일도, 미래도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창문의 완성은 곧 집의 완성이다. 장석주 시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뻐꾸기 소리는 산신각처럼 앉아서/문태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뻐꾸기 소리는 산신각처럼 앉아서/문태준

    뻐꾸기 소리는 산신각처럼 앉아서/문태준 뻐꾸기의 발음대로 읽고 적는 초여름 이처럼 초여름 가까이에 뻐꾸기는 떠서 밭둑에도 풀이 계속 자라는 무덤길에도 깊은 계곡에도 뻐꾸기의 솥 같은 발음 뻐꾸기의 돌확 같은 발음 한낮의 소리 없는 눈웃음 위에도 오동나무 넓고 푸른 잎사귀에도 산동백에도 높은 산마루에도 바위에도 뻐꾸기 소리는 산신각처럼 앉아서 바다를 단번에 만들 수는 없다. 우선 작은 냇물 100개를 만들자. 세상 사람 모두를 선량하게 바꿀 방법은 없다. 우선 교도소 벽이라도 분홍색으로 칠해 보자. 탈세를 하고 부정한 뒷돈 받아 챙기며 쩨쩨하게 살던 자가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신선(神仙)이 될 수는 없다. 악인들을 교도소에 보내는 대신 산중에 모아 두고 아무 일 시키지 말고 초여름 산에서 우는 뻐꾸기 소리나 한가롭게 경청하게 하자. 한 석 달 밤이나 낮이나 뻐꾸기 소리나 귀 기울이게 하자. 혹시 그의 마음이 미적 황홀경에 들어 작은 물결이 일고, 그가 손꼽만큼씩 착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장석주 시인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유월/유홍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유월/유홍준

    유월/유홍준 차가운 냉정 못에 붕어 잡으러 갈까 자귀나무 그늘에 낚싯대 드리우고 앉아 멍한 생각 하러 갈까 손톱 밑이나 파러 갈까 바늘 끝에 끼우는 지렁이 고소한 냄새나 맡으러 갈까 여러 마리는 말고 두어 마리 붕어를 잡아 매끄러운 비늘이나 만지러 갈까 그러다가 문득 서럽고 싱거워져서 차가운 냉정 못에 코펠 들고 슬슬 못가를 돌며 민물새우나 잡을까 해거름 내리는 못둑에 서서 멍하니 그저 멍하니 저 먼 곳이나 한참 바라보다가 올까 분리배출도 다 하고, 여름 물것들 대비해 창마다 방충망도 다 쳤으니, 이제 공작새처럼 한숨 돌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도 한 잔 마시자. 은행 융자 받은 거 이자 내고, 공과금도 밀리지 않고 다 냈으니, 이제 라이언 킹처럼 조금 빈둥거리자. 오, 유월이구나! 모란 작약 꽃 다 졌으니, 이제 굶주린 음악가처럼 살지는 말자. 주말에는 안성 미리내에 가서 묵밥 한 그릇 먹은 뒤 고삼저수지 가에 앉아서 “멍 하니/그저 멍 하니” 한나절 먼 곳이나 바라보다 돌아오자. 장석주 시인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소규모 인생 계획/이장욱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소규모 인생 계획/이장욱

    소규모 인생 계획/이장욱 식빵 가루를 비둘기처럼 찍어먹고 소규모로 살아갔다. 크리스마스에도 우리는 간신히 팔짱을 끼고 봄에는 조금씩 선량해지고 낙엽이 지면 생명보험을 해지했다. 내일이 사라지자 어제가 황홀해졌다. 친구들은 하나둘 의리가 없어지고 밤에 전화하지 않았다. 먼 곳에서 포성이 울렸지만 남극에는 펭귄이 북극에는 북극곰이 그리고 지금 거리를 질주하는 싸이렌의 저편에서도 아기들은 부드럽게 태어났다. 우리는 위대한 자들을 혐오하느라 외롭지도 않았네. 우리는 하루종일 펭귄의 식량을 축내고 북극곰의 꿈을 생산했다. 우리의 인생이 간소해지자 이스트를 가득 넣은 빵처럼 도시가 부풀어올랐다. 뭐 대단한 꿈이나 갈망이 있었던 건 아니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소득이 갑자기 늘지는 않을 테다. 우리는 1년 내내 해 뜨기 전에 일어나야 하고, 여전히 눈 뜨면 지하철을 타고 일터로 나가야 한다. 주말마다 포커를 하던 의리 없는 친구들은 다 흩어졌다. 어제는 생명보험을 해지하고 오늘은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등록을 했다. 내 생명 관리는 온전히 내 몫이다. 비록 펭귄의 식량이나 축내더라도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살구나무 여인숙/장석남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살구나무 여인숙/장석남

    살구나무 여인숙/장석남 -제주에서 달포 남짓 살 때 마당에는 살구나무가 한 주 서 있었다 일층은 주인이 살고 그 옆에는 바다 소리가 살았다 아주 작은 방들이 여럿 하나씩 내놓은 창엔 살구나무에 놀러 온 하늘이 살았다 형광등에서는 쉬라쉬라 소리가 났다 가슴 복잡한 낙서들이 파르르 떨었다 가끔 옆방에서는 대통령으로 덮은 짜장면 그릇이 나와 있었다 감색 목도리를 한 새가 하나 자주 왔으나 어느 날 주인집 고양이가 총총히 물고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살구나무엔 새의 자리가 하나 비었으나 그냥 맑았다 나는 나왔으나 그 집은 그냥 맑았다 마당에 살구나무 한 주 서 있는 바닷가 여인숙이 있다면 거기 가서 몇 년쯤 살고 싶다. 세상 같은 거 다 잊고, 말 같은 거 다 잊고, 책 같은 거 다 잊고! 외로움을 탕약(湯藥) 달여 먹듯이 삼키고 바닷가나 어슬렁거리며 살고 싶다. 쓰고 싶은 게 있어도 쓰지 않고 가슴에만 묻어 두겠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꾹 눌러 참고 있겠다. 은나라 말기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같이 은둔자로 숨어 사는 즐거움을 누리겠다. 간혹 짜장면이나 한 그릇씩 사 먹고 빈 그릇은 신문에 덮어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경기 북부/서효인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경기 북부/서효인

    경기 북부/서효인 고향 친구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북한이 보이는 줄로 안다. 아파트에서 보이는 건 또 다른 아파트뿐이다. 아파트 앞에 아파트 앞에 아파트에서 아파트를 생각하며 잔다. 아파트 뒤에 아파트 뒤에 아파트에서 아파트를 생각하며 잠 못 이룬다. 내가 아는 노인은 종일 텔레비전을 보며 북한 생각을 한다. 내가 하는 생각은 텔레비전뿐이다. 드라마 다음에는 예능 다음에는 뉴스 생각을 한다. 드라마 전에 예능 전에 뉴스에서 나는 아무 생각도 없다. 북한을 비스듬히 등지고 아파트는 줄을 섰다. 나는 빨갱이도 아니요, 청년도 아니다. 나는 입주민이다. 고향 친구도 입주민이요, 아는 노인도 입주민이다. 골프연습장의 조도와 소음은 매일 우리를 도발한다. 총 쏘는 소리 들리지만 누구도 귀를 막진 않았다. 골프장 민원은 해결되지 않았다. 도시는 슬픔에 빠졌다. 개그프로그램을 본다. 도시는 웃지 않는다. 도시는 눈부시고, 내일은 월요일이다. 자연과 고향과 본성을 잃고 떠돌다가 밀려온 곳이 경기 북부다. 외환위기를 뚫고, 경제 불황을 건너고, 청년 실업의 대란을 견뎌 냈다. 저 고단한 항해 끝에 닻을 내린 곳이 대단지 아파트다. 우리는 아파트 입주민으로 호명된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질의응답/안미옥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질의응답/안미옥

    질의응답/안미옥 정면에서 찍은 거울 안에 아무도 없다 죽은 사람의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 버티다가 울었던 완벽한 여름 어떤 기억력은 슬픈 것에만 작동한다 슬픔 같은 건 다 망가져버렸으면 좋겠다 어째서 침묵은 검고, 낮고 깊은 목소리일까 심해의 끝까지 가닿은 문 같다 아직 두드리는 사람이 있다 생각하면 생각이 났다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남는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의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 슬픔을 견디는 사람의 기억력은 왜 유독 슬픈 것에만 작동하는 것일까. 죽음이나 슬픔 같은 건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죽음도 슬픔도 사라지지 않는다. 장켈레비치라는 철학자는 “생의 힘과 강도는 바로 죽음이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지. 죽음이 없다면 생이 이토록 매혹적이지도 빛나지도 않았을 테다. 침몰하는 여객선 안에서 “아직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살려 달라고, 살려 달라고! 장석주 시인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비 온 뒤 아침 햇살/유승도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비 온 뒤 아침 햇살/유승도

    비 온 뒤 아침 햇살/유승도 나뭇잎 씻어줄래 투명하도록 푸르게 씻어줄래 푸른빛 타오르게 불태울래 벌들의 몸에도 붙어 반짝이며 날아갈래 죽은 나무에도 척 붙어 쓰다듬을래 바위에도 내려앉을래 거름 더미에도 내려앉을래 눈부시게 만들래 노란 꽃처럼 한 송이 노란 꽃처럼 세상을 그렇게 만들래 비 갠 뒤 대기는 파랗게 빛난다. 햇살은 풀잎 끝에 매달린 둥근 빗방울들을 진주 알갱이처럼 꿴다. 빛의 명료함 속에서 민들레는 노랗고, 버드나무 새잎은 연두색이다. 버드나무 늘어진 가지를 흔들며 오는 바람도 연둣빛에 물든다. 비 갠 뒤 아침은 햇살이 수놓는 파랑, 노랑, 연두색들로 색채의 향연(饗宴)을 펼친다. 햇살은 할 일이 많다. 여기 동사(動詞)들이 그 증거다. 씻어줄래, 불태울래, 날아갈래, 쓰다듬을래, 내려앉을래, 만들래. 이 햇살이 부린 마법으로 비에 씻긴 세상은 한결 영롱하게 반짝이는 것이다. 장석주 시인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흔들리는 꽃결/이진아 · 전대미문(前代未聞)/김경미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흔들리는 꽃결/이진아 · 전대미문(前代未聞)/김경미

    전대미문(前代未聞)/김경미 그녀가 떠났다 그가 떠났다 독사진 속으로 구급차가 들어간다 눈동자가 벽에 부딪힌다 방석이 목을 틀어막는다 안개가 촛불에 제 옷자락을 갖다댄다 우편배달부가 가방을 찢어버린다 가로수가 일제히 자동차 위로 쓰러진다 숨을 멈춰도 끊어지지 않는다 누가 누구와 헤어지는 건 언제나 전대미문의 일정이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이란 이제껏 들어 본 적 없는 소식이란 말이다. 젊은이들의 말로 해석하면 ‘엽기적’이란 말이다. 무엇이? 사랑하다가 헤어지는 일이 그렇다는 것이다. 눈동자가 벽에 부딪히고, 방석이 목을 틀어막고, 안개가 촛불에 제 옷자락을 태우고, 우편배달부가 가방을 찢는 일들! 그 듣도 보도 못한 놀랄 만한 사건들이 남녀가 헤어지면서 생기는 일이란다. 사랑이 결딴나서 벌어지는 비극이란다. 장석주 시인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더듬다/허은실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더듬다/허은실

    더듬다/허은실 사타구니께가 간지럽다 죽은 형제 옆에서 풀피리처럼 울던 아기 고양이 잠결에 밑을 파고든다 그토록 곁을 주지 않더니 콧망울 바싹 붙이고 허벅지 안쪽을 깨문다 나는 아픈 것을 참아본다 익숙한 것이 아닌 줄을 알았는지 두리번거리다 어둠 쪽을 바라본다 잠이 들어서도 입술을 달싹인다 자면서 입맛을 다시는 것들의 꿈은 쓴가 더듬는 것들의 갈증 때문에 벽을 흐르는 물소리 그림자 밖에서 꼬르륵 거리고 우리는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다가 지문이 다 닳는다 어미와 형제를 잃고 애닯게 우는 어린 고양이를 집에 들였다. 낯선 기척에 깨보니 어린 것이 사타구니께에 콧망울을 붙이고 잔다. 이 어린 고양이가 허벅지를 깨문 것은 필시 잠결에 제 어미 품인 줄 착각한 탓이다. 오갈 데 없는 타자를 품고 잠든 이 찰나야말로 생명의 진풍경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다가” 한평생을 보내는 존재가 아닌가. 장석주 시인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뱀/고영민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뱀/고영민

    뱀/고영민 보이는 것이 짧으면 보이지 않는 것은 길다 뱀은 배로 기며 나아가는데, 움직임이 매끄럽고 깜짝 놀랄 만큼 재바르다. 영산홍 필 무렵 풀 무성한 시골 마당에 봄의 전령처럼 뱀이 나타났다. 나는 이 구불구불한 영혼을 반겼다. 반가움과 서글픔이 반반 섞인 연민으로 이 손님을 대한 것은 저나 나나 다 외로운 생명인 까닭이다. 뱀은 기독교 설화에서 인류에게 원죄를 지우고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원인을 만든 볼썽사나운 악의 존재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뱀을 싫어하고 기피한다. 시인은 원죄로 낙인찍힌 채 따돌림을 당해온 뱀을 달리 본다. 남들이 다 보는 ‘길다’는 특징 말고 또 다른 측면을 보는 것이다. 시인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측면을 분별하며 그것의 기묘한 비대칭성을 도드라지게 한다. 보이는 것이 짧으면 보이지 않는 것은 길다. 그게 어디 뱀뿐이겠는가! 조금 드러났다고 그 뒤에 숨은 더 큰 죄악의 몸통이 다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장석주 시인 ■장석주 시인은 1975년 월간문학에 시 ‘심야’로 등단했습니다. 시 쓰는 일과 평론을 겸하고 있으며 최근 ‘사랑에 대하여’ ‘가만히 혼자 있고 싶은 오후’ 등을 펴냈습니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압해도/서효인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압해도/서효인

    압해도/서효인 아침에 이모부가 누운 채 돌아가셨다는 소식 있었다. 섬에는 다리가 놓였고 바다를 누르던 앞발도 서럽게 단단하던 갯벌도 천천히 몸을 돌리던 철선도 사라진다. 영구차가 다리를 건넌다. 섬사람이 없는 섬에서 연기가 올라온다. 바다가 다리 밑에서 조용한 원을 그리고 있었다. 이모부는 배 농장을 하던 땅과 놀던 땅 모두를 농협 조합장 선거에 갈아 넣었다. 이모부는 즙처럼 누워 쓸쓸히 편했고 압해는 바다를 꽉 누르고 있다는 뜻이다. 이모는 꽉 눌린 생물이 되어 압, 압, 울음을 찾는다. 웃는 것일지도. 그녀의 표정이 바다를 압도하고 있다. “압해는 바다를 꽉 누르고 있다는 뜻이다”라는 구절 때문에 저녁을 전부 뿌연 하늘을 바다 삼아 바라보는 데 써 버린 날이 있다. 저 새삼스런 문장이 무심하게 시 속에 들어왔을 때, 섬 속을 맴돌던 길과 그 위를 빙빙 돌던 삶이 마치 바닷물이 그리는 조용한 원처럼 머물다가 어느 날 놓인 다리를 따라 연기처럼 죽음처럼 흘러나가는 풍경이 보이는 것이다. 사람을, 삶을, 슬픔과 쓸쓸함을 저 섬으로부터 꽉 눌러 짜냈던 것은 무엇일까? 시간일 수도 있고 운명일 수도 있으며 시쳇말로 문명과 자본과 발전의 이기일 수도 있겠지만,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화분/유희경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화분/유희경

    나에겐 화분이 몇 개 있다 그 화분들 각각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어쩌면 따박따박, 잊지 않고 잎 위에 내려앉는 햇빛이 그들의 본명일지도 모르지 누구든 자신의 이름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흠뻑 젖을 정도로 부어주는 물도 그들의 이름일 테지 흠뻑 젖고 아래로 쏟아낸 물을 다시 부어주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나의 발을 보았다 거실의 부분, 환하다 누구든 자신의 이름을 먹고 자란다고 하니 시인은 내심 나를 ‘어이, 콩나물국’ 하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날마다 먹고 보고 쬐고 만나는 것들이 다르니 내 본명도 매일매일 순간순간 바뀌겠지. 오늘은 어디 가서 환한 산수유를 보고 노란 이름 하나 얻으면 좋겠다. 그러면 오래전 구례 산동에 버리고 온 시간이 따박따박 내 발등 위로 떨어지겠지. 산수유였다가 바람이었다가 어느 순간 그리움인 이름들. 흠뻑 젖고 아래로 쏟아낸 물을 다시 붓듯이, 내가 뜨겁게 안았다가 잊고 만 이름들이 내 이름으로 돌아오는 순간들. 그래서 이 시는 아주 소박한 상상에서 시작한 듯하지만 우리 존재의 전부를 거느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와 산수유와 그리움이 하나의 이름을 얻을 때, 그 순간의 진실들로부터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 때문이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어느 해거름/진이정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어느 해거름/진이정

    어느 해거름/진이정 멍한, 저녁 무렵 문득 나는 여섯 살의 저녁이다 어눌한 해거름이다 정작, 여섯 살 적에도 이토록 여섯 살이진 않았다 아직 여섯 살이 되지 않아서, 나는 큰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밥을 안치고 청소기를 돌리고 책상에 앉아 달력을 보았다. 아직 나는 마흔 살. 대출금 상환일과 가족의 생일이 동그랗게 묶여 있는 시간을 짚어 보다 창문을 열었다. 잉어 떼처럼 우글거리는 오후의 볕 너머로 조금씩 서른 살이 지나가고 스무 살이 지나가는 것을 오래 지켜보았다. 열두 살 적보다 더 열두 살 같은 마흔네 살의 열두 살이 지나가는 것을…. 정말 우리는 되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같은 물속에 더 무거운 추를 들고 뛰어들 듯이. 매일매일 더 무거운 인생이 뛰어드는 몸을 이끌고 하나의 순간을 다르게 살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까닭 없이 멍한, 쓸쓸하고 서럽고 적막하고 슬픈, 모든 이유가 그래서일 거라고…그래서 우리는 여섯 살 적보다 더 여섯 살 같은 시간을 날마다 살아 내는 거라고…오늘도 마흔네 살의 저녁은 도착하는지도 모른다. 신용목 시인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감나무 새순들/정진규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감나무 새순들/정진규

    눈 뜨는 감나무 새순들이 위험하다 알고 보면 그 밀고 나오는 힘이 억만 톤쯤 된다는 것인데 아기를 낳는 여자, 그 죽음 직전, 직전의 직전까지 닿아 있는 힘과 같다는 것인데 햇살 속에 반짝이는 저 몸짓들이 왜 저리 연하디연할까 다를 게 없다 가장 힘센 것은 가장 여린 것을 겨우 만들어낸다 억만 톤의 힘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처음부터라야 완벽하다 위험하다 억만 톤의 힘은 모두 ‘처음’에서 비롯되는 것. 우리의 삶이 완벽한 이유도 순간순간이 모두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처음 본 날 나는 더없이 위험해졌습니다. 영혼에서부터 솟구친 억만 톤의 힘이 내 마음의 싹을 밀어 올렸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향해 자라나는 초록들 속에서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연하디연한 것들이 내 삶을 조종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감나무 새순을 보며 서둘러 나는 연시 두 개를 꺼내 들고 당신의 방문을 두드릴 날을 생각합니다. 그날에는, 진정 군불 도는 어느 아랫목을 오래 지키며 그 따스함과 주고받는 눈빛과 문틈 사이로 새나가는 말소리 전부가 기꺼이 세상의 처음을 살아낸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요. 그리고 나지막이 고백할 것입니다. 순하디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삼월/이영광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삼월/이영광

    삼월/이영광 요리사는 참돔의 숨엔 눈길도 주지 않고 살점만 베어낸다 핏기 없는 칼을 닦는다 두 눈을 끔벅거리는 죽은 몸을 담아온다 겨우내 하느님은 차마 칼을 못 쥐더니 횟집 앞 늙은 느티의 검은 살을 쓸고 있더니 한점도 다치지 않고 추운 목숨만 꺼내가셨다 때로는 몸과 목숨이 나뉘어져 있는 거라서 우리는 살아 있어도 죽은 것 같고 죽었어도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나 봅니다. 두 개의 장면이 배치된 이 시는 간단하지만 간단치만은 않은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목숨만 남긴 것과 목숨만 가져간 것 사이에는 죽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자연과 그것을 운영하는 자비와 무자비가 뒤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하필 시인은 ‘삼월’이라고 했을까요?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고 정확히 알아야 할 이유도 없지만 우리가 맞이하는 삼월이 저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 살아 있고 어느 쪽이 죽었는지 모를 사람들이 광장을 반으로 나눈 모습을 보았습니다. 삼월의 새순이 어느 쪽을 가려서 피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는 것처럼 새순은 언제나 내일을 향한다는 것 정도는 말입니다. 저 시가 끝내 세계의 모순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행복한 날/박성식 · 지금 여기가 맨 앞/이문재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행복한 날/박성식 · 지금 여기가 맨 앞/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이문재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나는 한때 나무를 보며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나무는 아주 열심히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는데, 누군가 ‘얼음!’ 하고 외쳐서 그만 제자리에 서 버린 것은 아닐까? 침묵이 흐르고 먼지가 쌓이고 발이 땅속 깊이 뿌리처럼 묻히고, 머리카락을 바람에 잎사귀처럼 맡겨 버린 것은 아닐까?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마침내 그것을 제 습성으로 가져 버린 것은 아닐까? 이 시를 읽고 새삼 깨닫게 된 것은, 나무가 늘 달리고 있었다거나 매순간이 치열한 싸움의 시작과 끝이라거나 우리가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 있다는 식의 새삼스런 각성이 아니다. 어려서 아름답고 몰라서 빛나는 순간을 빼앗아 버리는 현실의 잔혹함 같은 것이다. 매일매일 역사의 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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