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비 온 뒤 아침 햇살/유승도
비 온 뒤 아침 햇살/유승도
나뭇잎 씻어줄래
투명하도록 푸르게 씻어줄래
푸른빛 타오르게 불태울래
벌들의 몸에도 붙어 반짝이며 날아갈래
죽은 나무에도 척 붙어 쓰다듬을래
바위에도 내려앉을래
거름 더미에도 내려앉을래
눈부시게 만들래
노란 꽃처럼 한 송이 노란 꽃처럼
세상을 그렇게 만들래
비 갠 뒤 대기는 파랗게 빛난다. 햇살은 풀잎 끝에 매달린 둥근 빗방울들을 진주 알갱이처럼 꿴다. 빛의 명료함 속에서 민들레는 노랗고, 버드나무 새잎은 연두색이다. 버드나무 늘어진 가지를 흔들며 오는 바람도 연둣빛에 물든다. 비 갠 뒤 아침은 햇살이 수놓는 파랑, 노랑, 연두색들로 색채의 향연(饗宴)을 펼친다. 햇살은 할 일이 많다. 여기 동사(動詞)들이 그 증거다. 씻어줄래, 불태울래, 날아갈래, 쓰다듬을래, 내려앉을래, 만들래. 이 햇살이 부린 마법으로 비에 씻긴 세상은 한결 영롱하게 반짝이는 것이다.
장석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