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찬찬히/허남주 특임논설위원
잠깐 방심하면 조급해지고 만다. 출근길의 앞차는 좀 쌩쌩 달려줬음 좋겠고, 좋은 일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빨리, 많이 와줬음 좋겠다. 늘 웃고 싶고, 늘 갖고 싶다.
그럴 때 수덕사의 그 여인을 떠올린다. 수덕사를 찾은 것은 10여년 전, 여름휴가 때였다. 단청이 희끗희끗한 오래된 절의 정취가 멋졌고, 한낮에 들어선 대웅전은 서늘해서 더 좋았다. 삐걱대는 마룻바닥에서 조심스럽게 삼배를 올렸다. 순간, 내 앞에서 절을 올리던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귓전에 닿았다. “찬찬히…찬찬히…” 그가 누굴 위해 기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을 위한 기원은 아니리라는 것. 그런데 ‘빨리빨리’ 해달라는 게 아니라 천천히, 찬찬히 해달라는 것이 아닌가. 그 마음의 깊이가 느껴져 그만 방석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꽃무늬 바지였을까, 치마였을까. 절하던 그 펑퍼짐한 뒷모습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여인이었지만 한숨처럼 흘러나오던 ‘찬찬히’는 조급한 내 마음의 고삐를 잡아주는 스승이다. 찬찬히, 찬찬히.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