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닭곰탕과 치맥/이용원 특임논설위원

    대학생들에게 술을 주로 어떻게 마시냐고 물으면 대부분 ‘치맥’이라고 답한다. ‘치킨’(튀김닭)에 생맥주를 마신다는 뜻이다. 처음 그런 대답을 들었을 때 문득 2002년 개봉한 영화 ‘집으로’가 생각났다. 외딴 산골에 할머니와 둘이 살게 된 도시 소년이 닭이 먹고 싶다고 하자 할머니는 서둘러 백숙을 끓여낸다. 하지만 소년은 이게 무슨 닭이냐며 내동댕이친다…. 그처럼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닭고기는 ‘튀기는’ 요리인 반면 중장년층에게는 ‘삶은’ 요리, 곧 백숙·삼계탕·닭곰탕부터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만큼 입맛에서도 세대차는 확연하다. 며칠 전 빗소리를 듣다가 닭곰탕이 생각나 한 마리를 삶았다. 아내도, 두 아이도 평상시 거들떠 보지 않았기에 혼자 먹나 싶었다. 그런데 군대 갔다온 아들 녀석이 구수한 냄새가 난다며 달라붙더니 “맛있다.”를 연발하며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게 아닌가. 어허 갸륵한지고, 입맛을 보니 네가 이제 어른이 돼가는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에 공연히 흐뭇해졌다. 이용원 특임논설위원 ywyi@seoul.co.kr
  • [길섶에서] 보리밥 축제/허남주 특임논설위원

    “보리밥 드시러 오세요.” 초대 받은 곳은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의 고택 조견당(照見堂). 햇보리쌀 점심 초대는 소박해서 좋았다. 토요일 점심을 먹으러 가기엔 다소 멀어 망설이다 마음을 냈다. 강원도산 햇보리는 구수했고, 옥수수범벅은 그 맛을 모르는 사람 입맛까지 잡았다. 묵은지를 씻어 냈고 나물과 떡까지 안주인의 푸근한 마음이 전해졌다. 거친 음식이 정신건강까지 지켜낸다는 강연과 함께 앙상블의 클래식 연주가 고택을 채웠다. 1827년 조선 순조 27년에 세워진 99칸의 거창했던 한옥은 전쟁을 거치면서 안채만을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한다. 최근 고택을 되살리고 있는 젊은 주인의 열정이 돋보였다. 영월사람 김삿갓이 팔도 유람을 나서면서 이 집앞을 지나다 남긴 칠언절구 주련까지 집 구경도 좋았다.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반야심경을 따 당호를 지은 이유가 궁금하다. 가난한 음식 보리밥이 별식이 되는 시대, 물질이 행복을 주더냐고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옛 어른의 가르침으로 되새긴다.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 [길섶에서] 재산/최광숙 논설위원

    얼마 전 한 퇴직 관료를 만났다. 아들 근황을 물었더니 벌써 장가를 가서 요즘 손자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로 곤욕을 치른 사연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당시 아들이 의대생과 사귀고 있었는데 자신의 재산이 너무 적은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헤어지게 됐다는 거였다. 그는 자신이 아들의 앞날을 망쳤다며 미안해했다. 다행히 현재 며느리가 그 내용을 못 봤던지 아들과 결혼해 잘살고 있단다. 그렇게 부(富)와는 담을 쌓고 살던 그가 퇴직 후 잘나가는 로펌에 자리를 잡았다. 소위 요즘 문제가 되는 전관예우를 받는 고액 연봉자가 된 것이다. 옛 어른들은 경제적 어려움이 생기면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요즘 그런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없으면 쭉 없이 지내고, 있는 이들은 재산을 더 늘리는 세상이다. 예외는 있는 법. 힘센 부처의 고위 공직자들은 없다가도 하루아침에 잘살게 되는 ‘마법의 힘’을 발휘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패셔니스타/최광숙 논설위원

    최근 지하철에서 만난 한 할머니를 보고 또 본 이유는 나이를 초월한 놀라운 패션 감각 때문이다. 청바지에 체크 셔츠를 입었는데 안에 하얀 면티까지 멋스럽게 받쳐 입었다. 신발은 요즘 유행하는 스니커즈, 등에는 백팩까지 멨다. 반짝이는 영어가 씌어진 모자는 그중 압권이다. 얼마 전 만난 한 공직자도 패션모델 뺨친다. 잔잔한 체크 셔츠에 굵직한 격자 무늬의 마 재킷이 근사하다. 면바지 아래 살짝 보이는 구두도 흔히 만날 수 없는 멋진 브라운 빛이다. 더욱 눈에 띈 것은 웬만해선 남자들이 들지 않는 작은 가죽 손가방. 스마트폰과 지갑 등 소지품을 넣어 다닌다고 한다. ‘패션 종결자’가 따로 없다. 요즘 길거리에서 이런 패셔니스타들을 종종 본다. 보는 눈이 즐겁고 마음도 환해진다. 옷 잘 입는 그들이 자기 관리도 잘하지 싶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멋내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게다가 자신을 소중히 하지 않는다면 옷 입는 데 그리 공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패션도 능력의 중요한 요소라는 얘기가 피부에 와 닿는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경운기/박홍기 논설위원

    경운기 소리에 눈을 뜬다. ‘탈탈탈’ 하는 경운기 소리는 아버지가 하루의 일을 시작하신다는 신호다. 경운기는 아버지의 오랜 벗이다. 승용차이자, 화물차이고, 농기계다. 전천후 다목적용이다. 경운기 없이는 농사 짓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실 정도다. 산밭이나 들판에 나가실 때도 경운기를 앞세우신다. 경운기를 새로 들여놓았다. 아버지의 손길을 탔던 것이 낡아 고장이 잦아서다. 고쳐 쓰기엔 수리비가 ‘배보다 배꼽이 더 커’ 어쩔 수 없으셨단다. 아버지는 새 벗을 대견하게 여기신다. 다른 것은 몰라도 힘겹게 돌려 시동을 걸던 구형과는 달리 자동차처럼 쉽게 시동이 걸리기 때문인 듯싶다. 아이들이 경운기에 태워 달라고 조른다. 승용차에 익숙하지만 도회지에선 맛볼 수 없는 재미 탓일 게다. 아버지는 “장난치면 안 된다.”고 새끼손가락을 걸곤 손자들을 번쩍 들어 경운기에 태운다. 아이들 몸이 ‘탈탈탈’ 흔들리고 그때마다 꺅꺅 지르는 소리가 듣기 좋다. 놀이기구인 양. 그 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우산/주병철 논설위원

    요즘에야 흔하디 흔한 것이 우산이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 말에는 우산은 귀중품에 가까웠다. 결혼식장이나 각종 행사 때 괜찮은 선물로 받는 게 우산이었다. 명품 우산이라도 받는 날이면 두둑한 지갑처럼 마음이 푸근했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이 좋았던 때가 있었다. 그런 우산이 언제부턴가 부담스러운 존재로 바뀌었다. 집에서 우산만 들고 나오면 잃어버렸다. 저녁자리에 갔다가 나올 때, 버스에서 잠자다 내릴 때 그냥 깜빡해 버린다. 고맙게도 주위에서 더러 챙겨준 적도 있지만 대부분 찾지 못한다. 습관처럼 되다 보니 아내의 핀잔이 여간 아니다. “다 잃어 버려 애들이 학교갈 때 쓸 우산도 없다.”고 푸념할 때면 정말 민망하다. 그럴 때마다 다짐하는 게 있다. 묘안을 찾아 내자는 것이다. 문득 대안으로 휴대전화의 애플리케이션이 떠올랐다. 알람시계처럼 정해진 시간대에 휴대전화에서 ‘우산을 챙기세요.’라는 음성메시지를 들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면 어떨까. 내가 보기엔 대박이 날 것 같은데….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SNS 단상/김종면 논설위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요즘 낮말은 트위터가 듣는다. 밤 행동은 페이스북이 옮긴다. 얼마 전 영국의 천재 패션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업계에서 쫓겨난 것도 유대인 혐오 발언이 트위터 등을 통해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상을 살려면 언행을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SNS의 활약은 공직사회라고 예외가 아니다. 각 부처에는 장관의 트위터·페이스북 사용현황에 대해 보고하라는 공문이 내려온다. 직원에게 팔로잉을 주문하는 무언의 압박까지 행해진다니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모두에게 스트레스다. 트위터에 입문한 지 두 달도 안 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엊그제 민항기 경고사격에 대해 트위터로 사과했다. 어째 좀 가볍다. 나만의 생각일까. 우리 주위에는 SNS 활동을 접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나는 트위터 혹은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다. 총을 쏘면서 가늠자도 맞추지 않고 급격발하는 것 같은 트윗질이 싫다. 인간은 ‘소셜’하는 존재가 아니다. ‘생각’하는 존재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길섶에서] 토끼풀 팔찌/최광숙 논설위원

    주말에 한강변을 걸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강아지와 함께 부지런히 걷는 사람, 아이들과 놀러 나온 가족들. 한가로운 풍경이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준다. 한강의 작은 밤섬도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 과거 사람들이 살던 삶의 터전이었다는 사실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풀밭을 보니 토끼풀이 무성하다. 어릴 적에는 풀밭의 작은 풀 잎사귀들도 귀한 장난감으로 변신하곤 했다. 풀피리 만들어 불고, 토끼풀을 엮어 반지를 만들어 손가락을 장식했다. 좀 더 손재주가 있는 아이들은 토끼풀로 왕관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공주님인 양했다. 갑자기 남편이 뭘 만든다. 팔찌를 만들어 손목에 채워 준다. 생일선물이라며. 갑자기 좋다 말았다. 노래 한 대목이 떠오른다. “그대가 만들어준 꽃반지 끼고 다정히 손 잡고~” 예전에는 꽃반지 만들어 주는 남자가 낭만적으로 보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젠 생일선물로 토끼풀 팔찌나 채워 주는 남편, 로맨틱 가이로 보기에는 내가 너무 나이 들었나 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고천장학금/허남주 특임논설위원

    문상을 갔다가 부의금을 내지 못했다. ‘아버님의 뜻에 따라 부의금은 정중하게 사절합니다.’는 글을 보고서야 부끄러운 손을 감췄다. 고인의 말씀을 따른 것일까, 교수인 상주의 뜻일까 잠깐 궁금했다. 최근 고인에 대한 새소식을 들었다. 두 아들이 졸업한 고교에 10억원을 기증하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4년 대학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마침 전달식이 회사 건물에서 있었다. “삼겹살 저녁이나 함께하려 했는데….” 동창회에서 마련한 조촐한 전달식이 행여나 아버지의 뜻을 그르칠까 아들은 염려하고 있었다. 고인은 평남 강동군 고천면 출신으로 서울 유학 중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대학을 중퇴하고 혈혈단신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한다. 곳곳에 꾸준하게 기부해 왔음을 돌아가신 후에야 아들들도 알았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 고향의 지명을 자신의 호로 삼았던 고천 이상목 선생.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장학기금을 만들고, 후배들에게 멘토 노릇을 약속한 아들들의 뜻이 참으로 아름답다.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 [길섶에서] 스펙불감증/김종면 논설위원

    ‘스펙’이란 말이 언제부터 우리 사회의 통용어가 됐을까. 2004년 국립국어원 신어자료집에 수록된 걸 보면 공식 나이가 10년도 안 된 셈이다. 직장을 구할 때나 입시를 치를 때 요구되는 학벌, 학점, 자격증, 뭐 그런 게 스펙 아닌가. 하지만 그것은 이미 입시생이나 구직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너도나도 스펙, 스펙. 우리는 스펙 만능, 아니 스펙 중독 사회에 살고 있다. 거칠 것 없는 피끓는 청춘도, 비로소 일머리를 알고 그것을 즐겨야 할 중년도, 환갑·진갑을 넘긴 어르신도 스펙 타령이다. 마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도 되는 것 같다. 그런 스펙을 나는 왜 모를까. 사람들은 대학원을 가라고들 한다. 그때마다 늘 똑같은 말 “낮에 밭만 갈면 되지 밤에 무슨 책을” 어차피 내 인생은 인디언 마을의 멈춰진 시계인데…. 영국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학생으로 계속 남아 있으라고 했다.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폭삭 늙기 시작한다나. 그가 던지는 배움의 의미는 무엇일까. 혼자서도 힘껏 공부하는 자세를 강조한 말이라면 좋겠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길섶에서] 은발/허남주 특임논설위원

    흰 머리카락은 틀림없이 외할머니의 것이었다. 가끔 음식에서 발견되면 미안해하시던 할머니와 달리 별로 이물감은 없었다. 흰색이라 그랬을까. 하지만 내 머리카락 속에 듬성듬성 섞여 드는 그것은 아무래도 친해지지 않는다. 늘 낯설다. 은발이 멋스러운 사람도 있다. 염색을 그만하기로 한 사람의 은발은 욕심이 다 빠져나간 듯 보이고 오히려 동안이 돋보이기도 한다. 흰 머리카락을 숨기느라 부산 떨지 않는 그 초연함도 좋다. 그래도 또래들의 흰 머리카락은 여전히 안쓰럽다. 그들의 젊은 시절을 알고 있어 시간의 흐름이 야속하기까지 하다. 우연히 부딪친 은발의 지인에게 돌아서면서 묻고 말았다. “염색 좀 하면 안돼?” 아차, 순간 상대의 마음이 염려스러웠지만 이미 말은 날아 갔다. “안돼. 변하면 안 되잖아!” 흰 머리카락의 출현이 변하는 것인지, 염색이 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겠다는 생각만은 동의하고 말았다. 무엇이든 변하지 않는 게 좋긴 좋다.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 [길섶에서] 거리의 예술가들/최광숙 논설위원

    5, 6월이 참 좋다. 신록이 우거지니 세상이 파릇이 싱그러워 보인다. 현실의 삶이 아무리 팍팍해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제 갈 길을 찾아오는 자연이 그래서 좋다. 거리도 활기차다. 시내 곳곳에서 작은 공연이 펼쳐진다. 낮 더위가 가라앉고 어둠이 살짝 내리기 전 청계천에서 만나는 공연은 예기치 않은 해후이기에 더욱 반갑다. 최근 청계천을 산책하다가 섹시한 몸매를 훤히 드러내는 벨리댄스를 추는 여성들을 봤다. 어느새 관객들이 몰려들어 호응이 뜨겁다. 4명의 국악단이 연주하는 퓨전음악 공연에는 나들이 나온 외국인 어린이 6~7명도 신명이 났는지 연주가들 앞을 떠날 줄 모른다. 퇴근길 지하도에서 만난 무명의 악사도 멋지다. 하모니카로 영화 ‘대부’의 주제가를 불었는데 추레한 차림새가 노숙자 행색이다. 어떤 이유에서 거리의 무대에 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무대는 빛났다. 지나치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잠시나마 예술의 향연에 머물도록 해준 그들은 진정한 예술가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이름값/주병철 논설위원

    사람, 기업, 물건 등에 꼭 붙어 있는 게 있다. 이름이다. 누가, 어떤 연유로 짓느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한다. 이름은 우선 부르기 편하고 길지 않아야 좋다. 영어로 읽을 때 누구든 같은 발음이 나면 더 좋다. 일본의 소니(SONY)나 우리나라의 기아차(KIA) 등이 그 한 예다. 미국 잡지 포천(Fortune)은 ‘행운’이란 단어 자체의 이미지로 성공했다. 대공황기인 1930년에 창간된 포천은 당시 한 부에 5센트인 뉴욕타임스에 비해 20배나 많은 1달러를 받았음에도 잘 팔렸다. 지금도 명성이 대단하다. 기아차 K-7은 인간의 뇌가 선호하는 단어와 숫자를 조합한 것인데 판매에 성공했다. 고민의 대가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A씨는 부친이 작명가한테 1년치 연봉을 주고 자신의 이름을 지었는데 “돈 걱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돈 걱정 없이 살고 있다. 자식이 태어날 때 부모가 가장 신경 쓰는 게 이름짓기라고 한다. 그런데 이름값 제대로 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학총장의 자살사건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개그 콘서트/최광숙 논설위원

    어제 회사 인근 한 식당 앞이 난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TV ‘개그 콘서트’(개콘)에 나오는 개그맨 4명이 식당 개업식 행사에 온 것이다. 팬들이 달려들어 사인을 받고 사진 찍느라 시끌벅적했다. 개그맨들은 다름 아닌 발레복을 입고 신체의 중요한 부분을 가리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발레리노’들이었다. 최근 한 모임에서 개콘이 화제에 올랐다. 가장 나이가 지긋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빼곤 고위 공직자든 언론인이든 다들 개콘을 즐겨 본다고 했다. 나이·체면도 잊고 개그맨들을 흉내 내면서 웃음바다가 됐다. 한창 웃고 난 뒤 왜 개콘이 인기가 있는지 분석이 이어졌다. 경쟁체제가 도입되면서 재미없는 코너는 바로 막을 내린다고 했다. 시청자들을 웃기지 못하면 개콘에서 한창 인기몰이를 하는 ‘비너스회’(돌아온 싱글녀들의 모임) 회장 말마따나 바로 ‘제명’이 된다고 했다. 담당 PD와 가까운 개그맨들도 예외는 아니란다. 그 프로가 잘나가는 비결은 다름 아닌 ‘공정한 경쟁’에 있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형!/김종면 논설위원

    20년하고도 또 몇 년, 친구처럼 지내 온 형이 회사를 떠난다니 마음이 짠합니다. 종착역까진 아직 좀 남았는데 몇 정거 앞서 내리시는군요. 형이 잇속 밝은 저잣거리 속물이 아님을 알진대 혹시 무슨 속사정이라도 있어서일까 마음에 걸립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기 마련이지만 씁쓸합니다. 사람들은 형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나는 한 마리 선한 호랑이라 부르겠습니다. 까치와도 소나무와도 정을 나누는 친근한 민화 속 호랑이, 굶주려도 풀을 뜯지 않는 의연한 호랑이, 평소엔 온화하지만 일단 불의의 공격을 받으면 물러섬이 없는 용감한 백호랑이 말입니다. 젊은 시절 형은 그렇게 대차고 다감한 천생 기자였습니다. 형! 어떤 경우에도 기백과 위엄을 잃지 마십시오. 형은 가슴으로 인생을 가르쳐 줬습니다. 약한 자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따뜻한 심성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형이지요. 이제 모든 미련을 내려놓으십시오. 인생 2막, 봄은 다시 찾아옵니다. 멋진 신세계가 펼쳐지길 기원합니다. 내내 강건하십시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길섶에서] 찬찬히/허남주 특임논설위원

    잠깐 방심하면 조급해지고 만다. 출근길의 앞차는 좀 쌩쌩 달려줬음 좋겠고, 좋은 일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빨리, 많이 와줬음 좋겠다. 늘 웃고 싶고, 늘 갖고 싶다. 그럴 때 수덕사의 그 여인을 떠올린다. 수덕사를 찾은 것은 10여년 전, 여름휴가 때였다. 단청이 희끗희끗한 오래된 절의 정취가 멋졌고, 한낮에 들어선 대웅전은 서늘해서 더 좋았다. 삐걱대는 마룻바닥에서 조심스럽게 삼배를 올렸다. 순간, 내 앞에서 절을 올리던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귓전에 닿았다. “찬찬히…찬찬히…” 그가 누굴 위해 기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을 위한 기원은 아니리라는 것. 그런데 ‘빨리빨리’ 해달라는 게 아니라 천천히, 찬찬히 해달라는 것이 아닌가. 그 마음의 깊이가 느껴져 그만 방석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꽃무늬 바지였을까, 치마였을까. 절하던 그 펑퍼짐한 뒷모습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여인이었지만 한숨처럼 흘러나오던 ‘찬찬히’는 조급한 내 마음의 고삐를 잡아주는 스승이다. 찬찬히, 찬찬히.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 [길섶에서] 맥주/최광숙 논설위원

    새뮤얼 애덤스. 보스턴 출신의 미국 정치가다. 1773년 영국 식민지이던 미국 독립혁명의 도화선이 된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의 주역이기도 하다. 몇 해 전 보스턴 여행 길에서 그의 묘지 방문을 계기로 그의 생애를 뒤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와 더욱 가깝고 친밀해진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이름을 본뜬 맥주를 마시면서다. 미국에서 잠시 머물 때 마트에서 보스턴 지방의 명물인 새뮤얼 애덤스 보스턴 라거를 처음 접했다. 너무나 맛있어 집에서 가끔 이 맥주를 홀짝거렸다. 우리 맥주가 맨송맨송 싱겁기 짝이 없다면 짙은 호박색을 띠는 이 맥주는 홉을 많이 넣어서인지 진하고 깊은 맛과 향이 일품이었다. 최근 동네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이 맥주를 파는 맥줏집을 발견하고 2병을 사왔다. 미국에서 접했던 그 맛 그대로다. 맛도 맛이지만 미국 독립선언문에 서명까지 한 독립운동가를 맥주 브랜드로 내세운 미국의 ‘실용 정신’에 거듭 놀란다. 이를 용납하는 미국민들의 성숙함도….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칭찬/허남주 특임논설위원

    “엄마는 감각 있어!” 좌판에서 사다준 양말 색상이 마음에 들었는지 딸의 문자에 하트가 두 개나 찍혔다. 아이의 칭찬에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하지만 막상하려면 칭찬 말은 입가를 뱅뱅 돈다. “살아보니 지혜가 필요하더라. 하루 한번 칭찬하기와 두번 웃겨주기를 지키고 있다. 같이 TV를 보다가도 옆을 흘깃 보면서 ‘저 배우보다 당신이 더 낫다’는 입에 발린 말도 한다. 그러고 웃으면 서로 기분 좋아.” 70대 중반의 이모님도 행복한 결혼생활의 지혜를 터득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단다. 선생님 출신답게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 보따리를 중년의 조카들 앞에 슬그머니 풀어놓으신 것은 최근 빈 둥지 고령부부 기사 때문일까. 베이비붐 세대는 아이들이 독립한 후 부부만 살아가는 기간이 무려 19.4년이라 한다. 그 전 세대 1.4년과 비교하면 참 길기도 하다. 빈 둥지에 오롯이 둘만 남아 서로 미워하고 상처준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칭찬하기, 웃겨주기. 음음, 목청을 가다듬고 칭찬 모드 돌입!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 [길섶에서] 동창/박홍기 논설위원

    참 많이 변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잘 모르겠다. 이름을 대며 손을 잡으면서도 긴가민가하다. 시골 초등학교 동창모임에 갔다가 오랜만에 만난 몇몇 친구들에게 “반갑다. 친구야.” 하고 웃으며 인사하면서도 옛 얼굴과 이름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러니 아줌마로 변한 ‘분’들에겐 오죽했겠는가. 시간 탓이다. 졸업한 지 30년이 훌쩍 넘어 40년 가까이 되니, “그럴 만도 하지.”라며 위안을 삼으면서도 “소원했구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느라 얼굴이 새까맣게 탄 친구, 흰머리가 범벅인 친구, 장사를 크게 벌인 친구, 자식 장가를 걱정하는 친구…. 갖가지 직업에 사연도 많지만 옛이야기를 꺼낼 땐 모두들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편했다. 달리기 경주에 참가하고 노래 경연에 나선 친구들은 한껏 기량을 뽐냈다. 고작 3개반에 158명이 전부였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짧았지만 즐거웠다. 책꽂이에 뒀던 졸업 앨범을 찾아봤다. 누렇게 바래 있었다. 친구들이 많이 변했듯이.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심부름/최광숙 논설위원

    어릴 적 심부름으로 잔뼈가 굵었다고 가끔 허풍을 떤다. 부모님은 물론 오빠들이 많아 자잘한 심부름은 나와 막내 오빠가 도맡아 해야 했다. 과자 사오기와 같은 쉬운 심부름이 점차 은행가기 등으로 영역이 넓어졌다. 심지어 한글도 깨우치기 전에 오빠가 적어주는 만화가 이름을 들고 만화방에 가서 만화도 빌려 와야 했다. 말은 떨어졌지만 아직 머리가 야물지 못해 천지분간을 못하다 보니 심부름 미션이 가끔 버겁기도 했다. 큰오빠는 약을 사다 주면 잘못 사왔다고 혼냈다. 그러면 다시 바꾸러 가야 했다. 어린 나이엔 그게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직업상 따지고 캐묻는 일을 잘하게 된 것은 그때 심부름을 통해 혹독한 훈련을 받은 결과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타인에게 다가가 내 의견을 말하고 설득하는 일을 은연중에 배운 셈이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해주기보다는 자잘한 심부름을 통해 사회성을 길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내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래서 난 심부름 예찬론자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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