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꿩의 보금자리/이춘규 논설위원

    1970년대 끝자락 겨울. 대학에 다니다 입대하기 위해 잠시 고향에 머물렀다. 동네 악동들과 어울려 가끔 객기를 부렸다. 혹한기 훈련에 대비한다며 저수지 물을 빼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았다. 밤엔 소나무에서 잠자던 꿩을 잡아 야식을 했다. 잠자는 꿩은 불빛을 들이대면 꼼짝 못한다. 그러면 적절한 수단을 써 잡았다. 31년이 흐른 겨울날 초저녁. 도심 한복판 아파트 단지 큰 나뭇가지 위에 꿩 네 마리가 앉아 있다. 통통하다. 닭들이 닭장 속 홰 위에 앉은 모습이다. 잠자는 것 같다. 그곳에서 계속 잠을 잘까. 확인하기 위해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가 봤다. 네 마리가 나뭇가지에서 그대로 자고 있다. 이후 잠자는 꿩의 모습은 혹한을 잊게 했다. 거의 매일 수마리가 나무를 옮겨 가며 잠잔다. 낮엔 인근 미군부대에서 지내다 밤에는 까치·비둘기 등도 많이 자는 단지 내 숲으로 날아든다. 해치려는 사람이 없으니 귀한 꿩들의 안전한 보금자리다. 31년 세월이 악동들의 사냥감 꿩들을 도심 속 소중한 생명체로 탈바꿈시켰나.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첫 봉급/이용원 특임논설위원

    온 가족이 모인 이번 설에 화제는 단연 장조카의 ‘첫 봉급’이었다. 취직해 1월 말 처음 월급을 탄 조카아이는 식구들을 한자리에 모으더니 봉투 하나씩을 내밀었다. 할머니·아버지·어머니 것에는 각각 50만원을, 여동생 것에는 10만원을 담았다. 그러더니 첫 월급 200만원은 식구들이 나눠 썼으면 한다면서, 다음 달부터는 제 용돈 50만원만 남기고 나머지는 저축해서 집을 따로 마련하겠다고 했다. 장조카는 착하되 소심했고, 영리하되 허약했다. 그래서 입대 후 전방에서 근무할 때는 할머니의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본인도 꽤나 힘들어했다. 하지만 제대 후에는 심신이 모두 강건한 젊은이로 변해 공부에도, 아르바이트에도 적극적이 되었다. 이제 취직을 하였으니 앞가림은 하게 됐다. 게다가 가족을 배려하고 제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 씀씀이를 보면 앞으로도 성실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터이다. 아이들이 커가는 걸 확인하면서 내 나이 한살 더 먹는 게 하나도 억울하지 않은, 유쾌한 설날 아침이었다. 이용원 특임논설위원 ywyi@seoul.co.kr
  • [길섶에서] 농담/황진선 특임논설위원

    소설가 박완서씨는 작고 전에 “멀지 않은 곳에 김수환 추기경의 묘소가 있는 게 저승의 큰 ‘빽’이다.…실없는 농담 말고 후대에 남길 행적이 뭐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영국의 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연상하게 한다. 죽음을 앞두고 두려워하거나 슬픔에 잠겨 있는 것보다 농담을 하면 스스로 초연해질 수 있을 듯싶다. 주변 사람도 편안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게 한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떠올리는 행복한 순간은 즐겁게 놀았던 때다. 그러면서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하고 후회한다고 한다. 잠언시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은 자신의 육체와 단단한 생명력을 즐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춤을 추지 못하고 입맞춤을 많이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요즘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우리는 더 농담을 하고 덜 고민하고 덜 초초해해야 한다. 농담과 익살은 열린 마음을 갖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황진선 특임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길섶에서] 명품(名品)/김성호 논설위원

    요즘 세상엔 가짜 살이가 많은 것 같다. 진짜 아닌 환상·허구의 삶 말이다. 안방극장에 흔한 신데렐라식 화려함은 그 가짜 살이의 표본이다. 극중 주인공으로 나를 옮겨 얻는 대리만족. 세대를 안 가리는 ‘명품 병’도 그중 하나다. 분수를 넘는 소비로 치장한 위장·허세의 열병. 얼마 전 딸아이의 환하게 웃던 얼굴이 떠오른다. 캐나다에서 어학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명품 손가방이며 벨트 따위를 주섬주섬 늘어놓던 얼굴. 씀씀이가 헤프지도 않고, 허영심도 없던 아이였는데. 선물이라 해서 받긴 받았지만 기분이 영 찜찜했었다. ‘짝퉁’이란 아내의 말에 조금 위안이 되긴 했지만, 어째…. 하긴 주위에 명품의 광풍이 하나 둘인가. 물건에만 붙이던 ‘명품’의 접두사가 이젠 사람에까지 번지니. ‘명품 각선미’ ‘명품 비서’ ‘명품 체조’…. 오죽하면 ‘신상녀’(새로운 명품 브랜드에 열광하는 여성)라는 말이 생겼을까. 명품에 대한 집착은 허영심과 ‘거짓 나’의 극치라는데. 이 몰아치는 전염병을 어찌 막아야 할지.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출근길/주병철 논설위원

    아침에 집을 나서 회사로 향하는 출근길의 느낌은 묘하게도 그날 하루 기분과 맞물릴 때가 종종 있다. 출근길이 기분 좋으면 하루가 잘 굴러가고, 그렇지 않을 때는 삐거덕거리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기기도 한다. 정류장에 막 이르렀는데 버스가 도착했을 때, 버스 안이 꽉 차 있는데 바로 앞 손님이 내려 운좋게 좌석을 차지했을 때, 버스 운전자가 내가 좋아하는 방송 뉴스를 틀어 놓았을 때는 ‘하루가 즐거울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이 생긴다. 물론 그 반대도 있다. 자동차로 출근할 때가 주로 그렇다. 이런저런 일이 있어 불가피하게 자동차를 몰고 나왔는데 횡단보도를 지날 때마다 빨간 신호등에 걸린다. 그 와중에 파란 불이 켜지자마자 옆차선으로 달리던 차가 끼어들기를 시도한다. 출근하고 나면 기분이 영 개운찮다. 이틀 후면 음력 설이다. 정초부터는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기다리고 참으면서 즐거움을 찾는 출근길을 만들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게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시(詩) 배달/박홍기 논설위원

    언제부터인가 일과가 끝날 즈음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뜹니다. 처음엔 으레 그렇듯 확인 버튼을 눌렀답니다. 뜻밖에 시가 들어 있었습니다. 비록 발췌된 단락이었지만. 하루 동안 오가는 많은 문자 중에 짜증나는 것들도 적잖은 요즘 세상에 말입니다. 짧은 시 구절에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삶의 향수가 되살아 납니다. ‘가던 길 멈춰 서서/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햇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처럼/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가던 길 멈춰 서서),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우화의 강) 한편 한편에서 보내는 이의 정성이 묻어납니다. “누구에게든 서로 한발짝씩 다가서는 나날이 됐으면”, “세상이 밝게 웃기를” 등과 같은 희망사항도 배달합니다. 한파 속에 잠시나마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시를 읽어 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시간 나눔/황진선 특임논설위원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은 봉사가 아니라 환자들과 함께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시간을 나눌 뿐인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환자들이 좋아하니 자신도 행복해진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부모님 생각이 난다. 생판 모르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그렇게 시간을 내는데 나는 어떻게 하고 있나 자괴감이 들었다. 근처에 살고 계시는 부모님은 80대 중후반에 몸도 아프시다. 한데 일주일에 한번은 찾아뵙기나 하는 걸까. 뵙는 시간도 1시간 남짓이다. 조금만 오래 있으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그뿐이 아니다. 친지나 동료의 경조사에도 부조금만 보낸 적이 많았다. 시간이 없다는 건 대부분 핑계였다. 가게 되면 음식만 축낸다고 자위하기도 했다. 내 탓이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만든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생산성을 강조하는 사회는 시간을 나누는 데 인색하다고 한다. 노인들도 덜 공경한다고 한다. 어찌됐든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부터 늘려야 하지 않나 싶다. 한데 그럴 수 있을까? 황진선 특임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길섶에서] 언어목록/주병철 논설위원

    지인이 느닷없이 물었다. 언어목록이 뭔지 아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하니 다른 사람과 소통은 잘하느냐며 핀잔을 준다. 인터넷을 뒤져봤다. 언어목록의 사전적 의미는 가나다순, 또는 사용 문자의 목록을 뜻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지인이 말한 언어목록의 의미는 달랐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마다 각자가 자주 쓰는 독특한 언어 영역이 있단다. 그 영역이 그 사람만의 언어목록이라는 것. 그런데 계층별, 남녀노소별로 구사하는 언어 영역은 천차만별일 터. 기성세대의 언어목록에는 한자나 진부한 단어 등이 두드러지고, 젊은 세대는 ‘인터넷 용어’가 많을 게다. 연령대와 학력, 직업, 성별, 지역, 성격, 기호 등의 정보가 가득 담겨 있는 게 언어목록이란 얘기. 그래서 누구와 소통을 하려면 그 사람에 대한 언어목록을 꼭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지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젊은 층과 대화할 때 노년층의 언어목록을 들이대서는 안 되는 것처럼. 소통에도 꽤 노력이 필요함을 일깨워준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소박한 선물/최광숙 논설위원

    선물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가까운 사이에 오가는 사랑의 선물부터 잘봐 달라는 청탁성 선물까지 그 뜻이 천차만별인 게 선물이다. 그중 가장 빛나는 선물은 진심을 담은 것일 게다. 고마운 마음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내미는 선물이라면 주고받는 이 모두 행복할 수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어느날 어머니 심부름으로 선생님 댁을 찾아가 초인종을 길게 눌렀던 기억이 어슴푸레 남아 있다. 그때 내 손에 들려 있던 것은 생선이었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막 사 오신 싱싱한 생선으로 달리 포장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직접 여쭤본 적은 없으나 다른 기억들과 종합해 보면 어머니는 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시 나는 남자 짝궁이 마음에 들지 않아 어머니께 투덜거렸다. 마음에 걸리셨던 어머니가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을 드린 것 같다. 그후 짝궁이 바뀐 것으로 보아 그 생선은 딸의 짝을 바꿔준 데 대한 감사의 징표였을 것이다. 살아 펄떡이는 생선,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소박한 선물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띠동갑/박홍기 논설위원

    현란한 조명과 격렬한 사운드 아래 펼쳐지는 춤꾼의 동작은 곡예에 가까웠다. 비보이 공연은 새로운 문화체험이었다. 댄스만이 아닌, 스토리가 곁들여진 까닭에 노래는 없지만 뮤지컬이나 다름 없었다. 브레이크 댄스의 강렬함과 발레의 우아함은 부조화 속 조화를 이뤘다. 공연 관람은 12살 난 딸 때문이다.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를 흥얼거리는가 하면, 율동까지 따라하는 게 요즘 10대들의 모습인 듯싶다. 결정적으로 “소녀시대, 2PM도 좋아하지만 트로트도 듣잖아요.”라며 ‘은밀한’ 제안을 했다. 그다지 내키지 않지만 티켓을 산 이유다. 공연장엔 10대들이 많았지만 나이든 이들도 적잖았다. 춤꾼들의 열정에 박수가 수시로 터졌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세띠 차이인 딸과 함께한 공감의 장이었다. “멋졌지.”라는 말에 “그래.”라고 맞장구를 쳤다. “철들라.”라며 세대차를 운운하기보다 나름대로 눈높이를 맞추는 것도 ‘소통’이 아닐까 싶다. 정작 쉽지는 않겠지만.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부의금/이용원 특임논설위원

    며칠 전 대학 동기가 부친상을 당했다는 전언을 듣고 장례식장을 찾았다. 그런데 접수대에는 ‘부의금을 받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20여년 전 아버지 상을 치른 처지여서 신세 갚을 기회를 빼앗긴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상 후 상주에게 항의하듯 말했으나 상주는 개의치 않았다. ‘부의’(賻儀)의 사전적 의미는 ‘상가에 부조로 보내는 돈이나 물품. 또는 그런 일’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상을 당한 이웃에게 제 형편 닿는 대로 미곡이나 피륙, 장작을 보내든지 아니면 궂은 일을 직접 해 주는 걸로 부조(扶助)를 했다. 그런데 현대 도시생활에서야 다른 수단이 없으니 부의금 형태로만 남은 것이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타계한 뒤 가난한 문인들에게서 부의금을 받지 말라 했다는 유언이 알려져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하긴 꼭 ‘돈봉투’만이 조의를 뜻하겠는가. 상가에 길게 남아 선생을 기리는 일도, 장지까지 배웅하는 일도 모두 다 부조인 것을. 이용원 특임논설위원 ywyi@seoul.co.kr
  • [길섶에서] 폐인/최광숙 논설위원

    최근 TV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빠졌던 ‘폐인’(廢人)들을 여럿 봤다. 20회로 막을 내려서 다행이다. 더 길어졌다면 일상의 생활을 저버린 이들이 크고 작은 가정문제를 야기했을 것 같다. 많은 주부들이 아예 살림을 놓아 남편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단다. 어떤 이는 남편 밥도 안 차려주고 라면만 먹였다고 한다. 애들 돌보는 것도 남편 몫이란다. 주인공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 현빈의 해병대 지원 소식에 폐인들의 반응이 격하다. 남편을 대신 보내겠단다. 나 또한 이 드라마 광팬인지라 그 심정 이해 못할 바 아니다. 본방송, 재방송, 녹화된 방송까지 세 번을 본 적도 있으니 나도 폐인 대열 맨 끝줄에는 서 있을 것 같다. 며칠 전 이 드라마에 나온 현빈의 대사를 패러디해 남편한테 써먹었다. 부탁이 있었는데 “당신,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능력 있는 남편이야.”라고 말했다. 무척 기분 좋아하더니 이내 부탁을 들어준다. 남편 감동시키는 법을 ‘까도남’한테 배운 셈이다. 현빈씨, 고마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헬스의 행복/곽태헌 논설위원

    1년여 전 집 근처에 동(洞) 문화센터가 생겼다. 문화센터에서 하는 강좌 중 헬스교실(클럽)의 창립 회원이다. 말이 헬스클럽이지 문화센터에 딸린 곳이라 제대로 된 트레이너도 없다. 집에서 가까워 출근 전에 이용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장기 회원이 됐다. 보통 1주일에 서너번, 40분 안팎씩 간단한 운동을 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운동이라고 할 수도 없다. 첫해 겨울에는 예비 대학생인 큰아들과 새벽 찬 공기를 맞으며 헬스클럽을 다녔다.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오며 가며 사실상 성인이 된 아들과 말을 나누는 게 좋았다. 올 들어서는 예비 고3인 둘째 아들과 캄캄한 새벽에 나와 헬스장을 향한다. 둘째는 하루 이틀 하고 포기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보다 적극적이다. 대학 입시를 앞둔 아들과 많은 말을 할 수는 없어도 같이 헬스장을 간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우리나라 고3의 마음이 어떨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루 10분, 20분이 아까울 텐데 헬스를 자원한 게 기특하다. 건강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을 터.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길섶에서] 대한국인/이춘규 논설위원

    겨울 산행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혹한 속 산행은 의외로 매력이 넘친다. 눈부신 눈길, 칼바람소리, 뜻밖의 고즈넉함. 강추위 때 가족들은 산행을 말렸었다. 지금은 추운 산에서 먹을 따뜻한 간식을 준비해 줄 정도가 됐다. 그래도 아침이면 한번 더 말리고픈 게 가족의 마음인가 보다. 영하 15도 안팎까지 떨어진 주말 아침 중무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여러 겹 옷을 입고 털모자에, 얼굴도 가린다. 등산 외투 모자까지 덮어쓰고 바람구멍을 꼼꼼히 차단한다. 전철역에 가니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1981년 영하 32.6도까지 곤두박질쳐 소주병도 깨져 버렸던 경기도 양평으로 간다. 제법 높은 산꼭대기에 오른다. 눈길 산행이라 조심스럽다. 가끔 칼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든다. 체감온도 영하 30도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혹한이다. 함께 간 동료가 “공포라는 말이 떠올랐다.”고 할 정도다. 그런데 산 정상에 20여명. 다른 봉우리에서는 40여명이 음식을 먹고 있다. 대한국인(大寒國人)들이다. 정말 대단한 한국인들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런치헌터/주병철 논설위원

    기자들에게 점심 약속은 일과만큼 중요하다. 점심을 누구와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 하루 생활 리듬과 패턴이 달라진다. 약속 장소가 멀면 점심 먹기 전까지 일과의 상당부분을 미리 챙겨 놓아야 한다. 그래서 기자들은 약속 장소를 가까운 곳으로 정하기를 원한다. 만나는 사람에 따라서도 차이가 크다. 중요한 인물일수록 인적사항은 물론이고 공통 관심사, 특정 분야의 현안 등에 대해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점심은 참 재미가 없다. 지인이나 직장 선·후배들과 먹는 점심은 편하기라도 하지. 하지만 점심이란 게 하루를 때우기 위한 과정은 아닐 터.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얘기를 주워담아야 점심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틀에 박힌 점심도, ‘우리들끼리’의 점심도 매력적이지는 않다. 남들이 잘 찾지 않는 꽤 괜찮은 곳에서, 뜻밖의 사람들과 유익하면서 편하게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런치헌터(lunch hunter·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점심 장소와 참석자를 세팅해 주는 곳) 어디 없을까.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탄생/박홍기 논설위원

    갓 태어난 아기를 본 지가 12년쯤 됩니다. 딸내미 이래 없으니까요. 그저께 새 세상을 맞은 지 7시간가량 된 조카딸과 첫 대면했습니다. 껌벅이는 눈, 오물거리는 듯한 입, 불그스레한 얼굴, 새근새근 자는 모습, 신비하다 못해 경이로웠습니다. 다만 신생아실에 있는 까닭에 꼼지락거리는 손가락과 숨소리를 느끼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오랫동안 생명의 고귀함, 순수함을 잊고 살아왔던 탓일 것입니다. 출산의 고통을 참아낸 동생도 평온해 보였습니다. 40이 넘은 늦깎이 첫 출산인지라 가족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물론 본인의 마음졸임만했겠습니까마는. 가족들은 “수고했고, 고생했다.”며 인사했습니다. 10개월 동안 한몸으로 정성껏 키워낸 대견함이 묻어납니다. 12살 난 딸이 되게 좋은가 봅니다. “예뻐해 줘야지.”라며 신났습니다. 친척 중에 남동생들은 많지만 여동생이 없기 때문일 겝니다. 생명의 탄생은 표현할 수 없는 축복 자체입니다. 아기가 건강하고, 튼튼하고, 행복하게 자라길 기원합니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부부/최광숙 논설위원

    최근 TV 다큐멘터리에서 한 노부부를 보았다. 할아버지는 93세, 할머니는 86세다. 이들은 70여년째 해로(偕老)하고 있단다. 두분 다 건강해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했다. 자손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다복(多福)하다는 말이 딱 그들을 두고 하는 말 같다. 그 연세가 되면 건조한 일상의 연속일 법도 한데 닭살부부가 따로 없다. 할머니의 순박한 애교에 할아버지는 연신 함박웃음이다. 시골장이 서면 잘 차려입고 데이트를 나선다. 여름철 냇가에서 장난기가 발동한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물장난을 치신다. 물세례를 받은 할머니가 삐치자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달래는 모습은 딱 연애하는 젊은 커플이다. 나이 들어도 알콩달콩 재미나게 사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니 한폭의 그림 동화를 보는 듯했다. 끊임없이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그들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주기까지 했다. 죽을 때까지 시들지 않게 풋풋한 사랑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사라졌다. 대신 숙제를 남겼다. 그럼 내 삶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한국인·일본인/이춘규 논설위원

    아이는 일본 도쿄 시내 공립 중학교를 3년 다닌 뒤 졸업장까지 받았다. 동급생 유일의 외국인 학생이었다. 3년간 부대끼면서 일본인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자부했다. 귀국 후엔 계속 편지로 소식을 교환했다. 곧 고교를 졸업하는 아이가 최근 중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새삼 한국인과 다른 일본인들을 체험했다고 한다. 점심은 각자 먹은 것을 계산했다. 간식값도 각자 먹은 만큼 냈다. 노래방이 백미. 먼저 들어간 5명과 나중에 합류한 2명이 시간에 맞추어 요금을 다르게 나누어 냈다. 스티커사진은 가위바위보를 해 2명은 공짜고, 나머지가 나눠 냈다. 승부를 좋아하고, 각자 계산하는 일본인답다. 이자카야에서는 단 단위까지 나눠 각자 계산했다. 아이는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 친구라 해서 혹시 계산에서 빼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고 한다. 부담이 없어 좋았단다. 기자도 자매회사 사장 주최 만찬에서 각자 계산한 적이 있다. 각자 계산은 냉정·쪼잔한 것 같지만 장점도 많다. 투명사회 건설에 일조한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근성/주병철 논설위원

    1년 반쯤 전의 일이다. 회사 일에다 저녁 약속까지 많아 밤늦게 집에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집 아파트로 들어가려고 하면 인근 쉼터에서 누군가 줄넘기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매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정을 전후한 시간대에 귀가하면 항상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등굣길에 나서는 둘째 딸의 홀쭉해진 얼굴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달밤의 체조’를 한 당사자가 내 딸이라니…. 그날 저녁 애 엄마에게 살짝 물었더니 학교 친구들한테 뚱뚱하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 줄넘기를 시작했는데,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고 했다. 오후 6시 이후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간식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줄넘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때 게으르고 힘든 것을 싫어하는 것으로 각인돼 있던 둘째 딸의 이미지가 줄넘기를 통해 확 바뀌었다. 가족들에게 ‘근성’을 키워주는 멘토로 부각됐다. 결국 세 남매와 애 엄마도 줄넘기에 동참했다. 나만 외톨이다. 올해는 줄넘기 멤버로 가입해 건강한 가족의 일원이 돼 볼까 싶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