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외할머니/최광숙 논설위원

    그리운 외할머니. 우리 형제들을 ‘외손주 방꽁이’라며 예뻐하셨다. 지금도 여름철 낡고 늘어진 러닝셔츠 사이로 흘러내리던 할머니의 젖가슴이 그립다. 어릴 적 할머니가 치마 속 고쟁이에서 꼬깃꼬깃 몇천원을 꺼내 주시면 어찌나 기쁘던지. 외숙모가 말라 비틀어진 곶감을 내오면 다시 두툼한 곶감으로 바꿔 주시던 할머니의 속깊은 사랑을 잊을 수 없다. 최근 대학자인 율곡 이이가 외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그린 글을 봤다. “조정으로 본다면 신은 있으나 마나 한 보잘것없는 존재이나 외조모에게 신은 마치 천금의 보물 같은 몸이오며, 신 역시 한번 외조모가 생각나면 눈앞이 아득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율곡전서) 16세에 어머니 신사임당을 여의고 외할머니 품에서 자란 율곡도 눈물 없이는 할머니를 떠올릴 수 없었나 보다. 나도 외할머니의 ‘보물’이었을 텐데…. 사회에 나오기 전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용돈 한번 못 드린 것이 못내 걸린다. 내 마음속 할머니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단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반성문/최광숙 논설위원

    고 1때 일이다. 정식 수업 이전에 시작되는 자율학습 시간. 다른 애들은 죽어라 공부하는데 나는 항상 꼴찌로 입실했다. 음매 기죽어 하고 교실문을 슬그머니 열라치면 그때 드르륵하는 소리는 왜 그렇게나 크던지…. ‘열공’하는 친구들 앞에서 홀로 처량히 교실 마룻바닥을 닦는 벌도 소용이 없었다. 지각은 계속됐다. “늦잠 자느라 늦었다.”는 변명에 급기야 담임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잠’을 주제로 반성문을 써 오라는 것 아닌가. 당시 미혼이던 담임은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예뻐 별명이 ‘바비인형’이었다. 시(詩)를 쓰는 문인이기도 했다. 내가 써 간 반성문은 ‘곰의 겨울잠’이었던 것 같다. 겨우내 자지만 그것은 단순한 잠이 아니다. 봄에 약동하기 위한 에너지를 비축함이라는 내용이다. 늦잠에 대한 내 ‘항변’인 셈이었다. 그 이후 선생님이 내게 주신 시집. 어느 시인지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중간쯤 “광숙이가 혼자 마루를 닦고”라는 구절에 밑줄이 쳐져 있었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니 문득 선생님의 사랑이 떠오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목욕탕/주병철 논설위원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목욕탕이라는 데를 거의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읍내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서 자란 탓에 버스를 타고 목욕하러 간다는 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주로 집 부엌에서 큼지막한 고무통에 팔팔 끓는 물을 부어놓고 때를 미는 정도였다. 목욕탕에는 명절 때나 갔다. 중학교 입학과 함께 큰 도시로 이사하면서 목욕탕을 자주 들렀던 기억이 난다. 일요일 새벽에 수건 등을 싸들고 아버지와 목욕탕 가는 게 큰 행사였다. 등을 보드득보드득 밀면 시원하다는 아버지의 흐뭇한 표정이 생생하다. 목욕한 뒤 아버지가 사주시는 자장면이 어찌나 맛있던지. 요즘 아들과 함께 목욕탕을 더러 간다. 아버지와 동행하는 아들의 표정이 즐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목욕한 뒤 함께 먹는 자장면에도 그리 고마워하지 않는다. 아들처럼 나도 지금의 ‘사우나’ ‘불가마’가 옛날 목욕탕보다 더 낫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가끔 옛날 목욕탕의 분위기가 그리워진다. 옛것은 항상 좋은 추억으로 남기 때문일까.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어머니 展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30년 전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 자장면 안 사준다고 10리 길을 울면서 걷던 내 뒤를 묵묵히 따라만 오신 어머니….” 40대 아들은 자장면 한 그릇 사줄 수 없었던 어머니와 가난을 함께 추억한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70대라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늙지는 않나 보다. ‘사랑합니다’라는 말보다 더 진한 표현이 ‘죄송합니다’라는 사실, 새삼 알게 됐다. 어머니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야 어느 자식인들 예외가 있으랴. 과천국립과학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한민국 어머니전(展)’ 한 켠의 ‘못 부친 편지’ 코너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풀어낸 노란 리본이 가득하다. 부치지 못해 안타깝고 허허롭다. 편지가 아니라도 좋다. 언제나, 쉽게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전화도 고맙다. 만날 때마다 그냥 꽉 안아드리는 것도 좋겠다. 7살 아이의 편지에서 배운다. “엄마가 안아주면 좋아요. 나도 안아줄게요.” 버킷 리스트에 ‘어머니를 300번 안아드릴 것’을 추가했다. 마음이 급해진다.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 [길섶에서] 어린 예술가들/최광숙 논설위원

    출퇴근길에 지나치는 광화문 지하철역. 최근 역 주변이 예쁜 설치미술품으로 장식됐다. 독도를 주제로 한 아기자기한 작품이다. 손바닥만 한 골판지 위에 그려진 그림들을 모아 놓은 것이 마치 설치미술가 강익중의 작품 같다. 3×3인치의 작은 캔버스나 나무틀 같은 것에 다양한 그림과 기호 등을 그려 넣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강익중 말이다. 유심히 들여다봤다. 독도를 아끼는 동심이 저마다의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고 있다. 독도 주변을 헤엄치는 물고기의 등에는 태극 마크가 선명하다. 만화 주인공 뽀로로도 태극 모자를 쓰고 용감하게 독도를 지킨다. 예쁜 꽃과 식물들도 독도 지킴이로 변신했다. 그림 위에 영어로 ‘독도는 내것’이라는 쓴 글귀도 눈에 띈다. 그림 하나하나에서 어린이들의 독도에 대한 그윽한 마음과 우리 땅을 지키겠다는 굳은 결의가 배어 나온다. 그 어느 홍보물보다 진한 감동을 준다. 어쩌다 어린이들까지 그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상황이 됐는지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공부하려면… /이용원 특임논설위원

    밤 11시가 가까운 전철 안에는 취객이 적잖게 섞여 있기 마련이다. 내 옆으로 두 사람 건너에 앉은 50대 남자가 그랬다. 얼굴은 불콰했으며 꾸벅꾸벅 졸면서 뜻 모를 소리를 중얼대곤 했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그 앞에 서서 책을 읽는 여대생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었다. “공부를 하려면 앉아서 해야지.”라면서. 이목이 일제히 쏠리자 여학생은 당황했다. 괜찮다고 사양하는데도 남자는 굳이 “난 바로 내린다.”면서 여학생을 주저앉히곤 출입문 쪽으로 흐느적흐느적 걸어갔다. 그런데 말과는 달리 그 남자는 여러 역이 지나도록 조용히 문에 기대어 있었다. 여학생 또래 자식을 둔 아버지일까, 아니면 가르치는 걸 본업으로 하는 사람일까. 그도 아니면 저 젊어서 열심히 공부하던 기억이 되살아난 걸까. 학생들은 밤늦도록 공부하고도 귀갓길에 책을 보고, 사회는 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격려한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의 눈앞에 잔뜩 낀 이 안개는 언제쯤 걷히려는가. 이용원 특임논설위원 ywyi@seoul.co.kr
  • [길섶에서] 목련/최광숙 논설위원

    목련이 필 때면 가슴이 콩닥거린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이 활짝 펴진다. 봄의 전령사 목련 앞에 서면 다들 마음이 살짝 달뜨게 마련인가 보다. 가수 양희은도 청아한 목소리로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생각나는 사람~”하고 옛 연인을 노래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난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순백의 여고 시절이 생각난다. 모교엔 목련나무가 있었다. 시험에 찌들었던 갈래머리 땋은 여고생들도 목련이 피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목련 주변에 모여들곤 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얀 목련꽃이 핀 나무 아래서 친구들과 함께 추억의 사진 한장을 남기던 어느 봄날. 누군가 사진기를 가져 왔는데 교정 곳곳을 거닐다가 결국 발길이 머문 곳이 목련 앞이었다. 화들짝 꽃이 필 때 주는 극도의 화려함과 달리 꽃이 지면 너무 초라해 목련이 싫다는 이도 있다. 그래도 좋다. 눈꽃송이 같은 목련이 펼쳐지면 마치 화이트 크리스마스처럼 느껴진다. 온 세상이 환해지고 따뜻해지는 마법의 꽃이 목련이지 싶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황당한 키스/최광숙 논설위원

    그의 기상천외한 키스 세례를 받고 멍했다. 내 평생 그런 입맞춤은 처음. 아니,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런 멋진 키스를 받은 여성은 없으리라. 최근 하는 짓이 귀여운 7살 개구쟁이 조카에게 “뽀뽀 좀 해 줘.”라고 졸라댔다. 처음에는 녀석이 내 부탁을 거절하는 줄 알았다. 갑자기 오른손으로 주먹질을 해댔기 때문이다. 그러더니만 내 뒤통수에 왼손을 얹더니 내 얼굴을 자기 쪽으로 확 잡아 당겼다. 그러고는 입술을 쭉 내밀어 뽀뽀를 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한창 태권도에 쏙 빠져 있는 녀석은 팔을 뻗었다 하면 주먹질이고, 발을 들었다 하면 발차기다. 내게 날린 뽀뽀도 완전 ‘태권도식’이다. 친한 언니한테 조카의 키스 얘기를 해 줬다. “어머, 그런 터프한 키스를 받는 게 우리 여성들의 ‘로망’ 아니니?” 하며 파안대소한다. 며칠 전 여동생이 그 녀석에게 이모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더니만 안 사랑한단다. 박력 있는 키스로 나를 사로잡아 놓더니만 이젠 외면한다. 이래저래 내 애간장을 태우는 귀여운 남자(?)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보리밥/주병철 논설위원

    보릿고개(춘궁기)를 경험한 우리나라 베이비부머(baby boomer·1955~1964년생)에게 보리밥은 학창시절 아련한 추억의 ‘인증샷’쯤 된다. 보리밥은 반지르르한 하얀 쌀밥 때문에 귀한 존재로 대접받지 못했다. 거무튀튀한 색깔에 맛은 별로 없고 먹고 나면 금방 배고팠다. 보리밥 하면 중학교 1학년 때가 떠오른다. 1970년대에는 쌀이 부족해 도시락에 보리를 섞는 ‘혼식 캠페인’이 있었다. 하루는 교감선생님이 점심시간에 교실에 들러 내 도시락을 높이 들고는 ‘혼식은 이렇게 해오는 거야.’라며 칭찬을 해줬다. 쌀밥보다는 보리밥을 더 넣었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창피하던지 얼굴이 발개졌다. 이후 한동안 ‘보리밥 신드롬’을 앓았다. 까맣게 잊었던 보리밥을 다시 맛보고 있다. 건강식을 위해 식탁에 쌀밥과 현미밥이 함께 놓인 지 오래인데, 최근에 쌀밥과 보리밥이 교체됐다. 귀하게 여겼던 쌀밥은 자취를 감추고, 보리밥이 현미밥과 함께 어깨를 겨룬 것이다. 보리밥 파이팅이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관리/허남주 특임논설위원

    아름다운 여성은 여성의 눈길도 사로잡는다. 전형적인 미인이 아니라도 자신만의 개성과 향기를 지닌 여성은 멋지다. “참 아름다우시네요.” 찬탄사가 절로 나온다. 감탄이 지나쳐 보였던 것일까. 떡하니 가로막는 목소리가 있다. “뭘, 관리를 잘 하셨구만.” 그리곤 관리내용을 점검이나 하려는 듯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관리? 하긴 요즘 성형은 수술이 아니라 화장의 일부라 하고, 미(美)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가꾸는 것이라 하지 않는가. 그래도 관리란 용어 선택은 좀 지나치다. 아름다움을 단숨에 격하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 얼핏 말투에서 시샘도 묻어난다. “아름답다는 극찬은 처음인데요.” 답례하는 여성의 목소리에서 기쁨이 읽힌다. 꾸밈없는 기쁨이다. ‘관리의 시대’에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은 게으른 자의 변명이란다. 아름다움에 순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인색할 필요도 없다. 관리했다고 마냥 예쁠 리도 없지만, 아름다움은 그 자신보다 오히려 감탄하는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하는 것을.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 [길섶에서] 막걸리/최광숙 논설위원

    막걸리 하면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일찍이 홀로돼 막걸리로 외로움을 달래셨던 할머니다. 그걸 아는 맏딸인 어머니는 할머니가 오시면 나와 남동생의 손에 주전자를 들려 막걸리 심부름을 보내곤 했다. 어린 동생이 할머니가 주신 막걸리 한사발에 취해 해롱거린 일도 있었다. 대학에 들어간 뒤 그 막걸리를 내가 마시게 됐다. 무지막지한 선배들이 신발에 막걸리를 부어 주었다. 겁에 질린 우리들은 그걸 받아 마시곤 한점 집어 먹은 안주까지 모두 쏟아 내야 했다. 어두컴컴한 뒷골목 전봇대에 기대 올려다본 하늘엔 그날 따라 왜 그리 별들이 반짝이던지…. 어느 날 옷을 입으려다가 깜짝 놀랐다. 간밤에 마신 막걸리가 청색 치마에 흩뿌려져 안개꽃이 핀 듯했다. 남자 동기들의 연애 카운슬링을 도맡아 하던 내가 실연당한 친구를 위로한다며 마신 막걸리의 흔적. 신사임당은 치마폭에 포도넝쿨을 그렸다는데 난 막걸리 꽃이라니. 추억의 막걸리가 와인보다 항암물질이 많단다. 또다시 막걸리를 마셔야 할 이유를 찾았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보이스 피싱/박홍기 논설위원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000-000’ 번호가 찍혀 있다. 굵직한 목소리의 남성이 “○○은행입니다. 어제 ○○백화점에서 구입한 198만원어치 상품의 결제가 오늘 이뤄졌습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상당히 구체적이다. 다시 말해 달라고 하자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같은 말을 반복한다. 순간 당황했다. “백화점에 간 적이 없다.”고 하자 “신용카드를 잃어버린 적이 없으신지요. 아니면 누군가 신용카드를 위조해 쓰고 있나 봅니다. 신고해 드리겠습니다.”라며 한술 더 뜨는 게 아닌가. 하도 사무적으로 말하는 통에 “잠깐만요.”하고 카드를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이어지는 말, “카드 번호를…” ‘보이스 피싱’ 너무나 그럴싸해 낚아채이기 직전까지 갔던 것 같다. “연락처를 달라.”고 하니 태연하게 “12번 김○○을 찾아달라.”고 말한다. 연결될 턱이 없다. 남의 일로만 여겼던 보이스 피싱에 잠시나마 자연스럽게 걸려들었다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낚였다면, 끔찍하다. 헛똑똑이가 따로 있나 싶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헤어드레서/이춘규 논설위원

    서울 이태원 집 근처 이발소를 몇번 이용했다. 이발 솜씨는 그저 그랬지만, 이발사가 인상적이었다. 첫째, 그는 끊임없이 노력한다. 일본 손님들에 대비해 틈만 나면 일본어 공부에 열심이다. 둘째, 젊게 보이려 애쓴다. 탈모증이 있었지만 수천만원을 들여 머리를 이식했다고 한다. 젊어 보인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셋째, 감동영업이다. 오는 손님을 언제든지 맞이하기 위해 새벽에 문을 열어 밤늦게까지 대기한다. 동네 다른 이발소가 일제히 쉬는 날에도 오후에 손님을 맞는다. 넷째, 명함도 멋지다. 직업을 ‘헤어드레서’라고 새겼다. 대기 손님에겐 음료수를 제공한다. 이런 장점 덕분에 개업 초기 대기 손님이 항상 들끓을 정도로 인기였다. 하지만 감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간이 너무 걸린다. 가위질도 서투르다. 요금 차별화도 없다. 이유 없이 쫓기는 도시인의 심리를 헤아리지 못하는지 “남자들이 왜 미용실에 가느냐, 기다리지 못하느냐.”며 남 탓만 한다. 안타깝지만 발길을 끊었다. 단점투성이인 나 자신을 돌아본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넥타이/주병철 논설위원

    외부 인사들을 만나러 다니다 보면 문 앞에서 잠시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넥타이를 매느라 잠시 기다리게 했다며 뒤늦게 양해를 구한다. 손님을 맞을 때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 듯하다. 공식 석상이 아니면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되는 직종인데. 상대방에 대한 세심한 배려인 것 같아 도리어 무안해진다. 남자들에게 넥타이는 좋은 소품임에 틀림없다. 넥타이를 매는 것만으로도 몸가짐이 반듯해진 듯한 착각이 든다. 넥타이 색깔만 바뀌어도 의상 코드가 바뀌었다는 느낌도 준다. 물론 넥타이가 불편할 때도 적잖다. 정장이 몸에 배지 않아서다. 특히 요즘 넥타이를 맬 때면 목 주위가 답답해진다. 살이 불었다는 신호일 게다. 넥타이가 체중계 역할도 하는 셈이다. 지난해보다 1주일 늦게 개화한 벚꽃과 개나리가 길거리를 물들이고 있다. 화사한 꽃향기와 함께 봄향기가 물씬 풍긴다. 넥타이를 맨 지 제법 오래됐다. 봄꽃을 닮은 넥타이를 매고 싶어진다. 봄을 타는 걸까.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한복/최광숙 논설위원

    몇해 전 미국에 잠시 머물 때 카리브해로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규정상 디너 정찬 시 여성들은 드레스를 입어야 했다. 드레스가 없던 내가 입은 것은 하늘하늘한 여름철 캐주얼 원피스. 스카프를 둘러 나름대로 화려함을 보탰다. 그래도 빤짝이 드레스와 몸매가 드러나는 섹시한 드레스 옆을 지나치자면 왠지 주눅이 들었다. 어느날 멀리서 한복 차림으로 위풍당당하게 다니는 할머니를 봤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한국 할머니를 만난 것도 반가운데 거기다 드레스 대신 한복을 입은 할머니를 만나다니…. 할머니의 선택은 참으로 아름답고 돋보였다. 한복의 고운 선(線), 화려한 색(色)의 절묘한 조화, 입체감 있는 디자인. 사실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는 드레스가 한복임을 그 할머니가 증명해 보였다. 해외에서 보니 한복은 파티복으로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드레스였다. 최근 호텔신라에서 벌어진 한복 홀대 사건을 보면서 세계 각국 사람들과 같이 선상 위를 누비던 그 할머니의 고운 한복이 떠오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환상/이춘규 논설위원

    초등학교 고학년 때 학교에서 걸어서 1시간 이상 걸리는 야트막한 산으로 소풍을 갔다. 고향집에서도 보인다. 드넓은 들판이 시작되는 곳에 능선들이 성곽처럼 이어져 있다. 그때 산 정상과 능선에서 보았던 거대한 무덤들은 수수께끼였다. 옛 왕릉일지 모른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오랜 세월 정말 왕릉인지가 궁금했다.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드디어 며칠 전 산에 올라가 봤다. 커다란 무덤들은 그대로 있었다. 새로 세워진 비석이 많았다. 한자·한글로 비문들이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무덤 주인의 생전 신분과 사회 공헌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는 내용이 많았다. 무덤 주인은 그동안의 상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분들도 아니었다. 왕릉도 없었다. 이장·면장·기초의회 의장·지방관리 등이 주인공이었다. 조금 특별한 이웃의 무덤이었다. 40년 이상 간직했던 환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탓에 마음속의 환상을 스스로 깨버렸다. 환상은 깨지 않고 간직하는 것이 좋다는데….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건강관리/주병철 논설위원

    젊을 때는 건강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언제나 건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젊음 자체를 즐긴다. 건강을 서서히 걱정하기 시작하는 때는 적어도 40대 중반 이후로 접어들면서부터다. 건강을 챙긴다며 이런저런 운동도 하고 더러 금연도 시도한다. 그러다 ‘그냥 이대로 살래.’ 하면서 자포자기하고 말기도 한다. 요즘은 젊은 층, 나이든 사람들 모두 건강에 관심이 많다. 회사 인근의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다 보면 젊은 층의 운동 열기는 폭발적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60~70대 부부다. 운동량이 젊은이 못지않다. 좀 더딜 뿐 운동 강도는 세다. 운동은 대충 하고 샤워만 하는 40~50대들은 창피하다. 건강 관리에 육체적인 운동만 있겠는가. 스트레스 해소도 건강 관리에 중요한 요소다. 어느 최고경영자(CEO)의 건강 관리 비결이라며 지인이 알려준다. ‘술은 마셔서 즐거운 사람과 마실 것, 식사 약속은 가능하면 줄일 것, 도보로 1시간 이내 약속 장소는 걸어서 다닐 것’ 한번 실행에 옮겨볼까 싶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체득의 한계/박홍기 논설위원

    며칠 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는 여학생을 만났다. 지난달 11일 도쿄에서 동일본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을 겪었단다. 5년째 살면서도 그날처럼 무섭고 겁나고 두려웠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지진이 다반사로 일어나지만 여느 때와는 달랐다는 것이다. 일본인 친구와 아파트에서 놀다가 라면을 끓이던 중 대지진을 맞았다. 매뉴얼대로 가스를 잠그고 잽싸게 식탁 밑에 몸을 숨겼다. 그런데 친구는 현관으로 달려가더니 문을 열어놓는 게 아닌가. 건물이 흔들려 현관문이 눌리거나 뒤틀어져 열 수 없게 될 경우를 대비해 미리 탈출구를 확보해 두기 위해서란다. 여학생은 고교 때도, 대학에서도 수시로 지진대피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소방서에서 실시하는 훈련 때엔 특수 차량에서 지진의 강도를 직접 체험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큰 지진을 맞닥뜨리니 먼저 당황하게 되더란다. 나름대로 지진 대피에는 익숙해졌다고 여겼는데도. 여학생은 말했다. “ 친구를 보니 몸에 밸 만큼 아직 훈련이 덜 된 것 같아요. 허둥댄 걸 보면.”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삼청동/최광숙 논설위원

    오랜만에 나들이 간 삼청동. 가볍게 걷기 좋아 간 곳인데 주말이라 사람들의 물결이 넘실댄다. 거의 한줄로 서서 걸어야 할 정도다. 삼청동 바로 옆 동네, 조선시대 여덟 판서를 배출했다고 이름 붙여진 팔판동에 살았던 터라 이곳에 오면 옛 생각이 난다. 정독도서관에서 삼청동 길로 접어드는 작은 골목길에 들어서니 내 풋풋한 20대의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커트하러 갔다가 미용사 꾐에 빠져 내 생애 처음으로 뽀글뽀글 파마를 하게 된 미용실 자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당대 여학생들이 즐겨 읽던 잡지 ‘여학생’ 출판사 터는 예쁜 장신구들로 가득차 있다. 반찬거리를 사 먹던 코딱지만 한 슈퍼는 삼청동의 눈부신 개발바람에도 꿋꿋하게 버티더니만 이젠 사라졌다. 도로변 차들의 질주에 먼지가 뽀얗게 쌓인 작은 창문이 있던 작은 집은 화려한 옷들로 여인들을 유혹한다. 잠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듯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내 젊은 날의 추억이 담긴 삼청동, 이젠 더 변하지 말아다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미역국/허남주 특임논설위원

    미역 봉지를 탈탈 털어 미역국을 끓였다. 양지머리를 푹 삶아 맑게 끓인 미역국이 좋지만, 바쁜 아침에 복잡한 레시피는 욕심일 뿐. 지난주, 제사상에 올렸던 냉동실의 산적이 떠올랐다. 재활용 미역국을 온 가족이 맛있게 한 그릇씩 비웠다. “하루에 미역국 200그릇은 먹어야 효과 있다던데….” 아들의 말에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다시마와 미역이 방사성물질에 면역 효과가 있는 요오드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동네 마트에 다시마와 미역 사재기가 기승이라 하고, 동이 났다고도 한다. 하지만 북적대는 건어물 코너를 피해왔다. 유난 떠는 것도 싫고, 두려움 그 자체가 면역력을 떨어뜨린다는 평소의 생각 때문이었다. 우연히 미역국을 끓였다고 말하기는 쑥스럽다. 미역국 한 그릇으로 가족 건강을 안심할 수 없다는 사실쯤은 알지만 식단에서 미역국을 제외하기도 망설여진다. 미역을 고르는 사람들 틈을 파고들지 않은 것이 정말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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