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경운기/박홍기 논설위원

[길섶에서] 경운기/박홍기 논설위원

입력 2011-06-27 00:00
수정 2011-06-2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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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 소리에 눈을 뜬다. ‘탈탈탈’ 하는 경운기 소리는 아버지가 하루의 일을 시작하신다는 신호다. 경운기는 아버지의 오랜 벗이다. 승용차이자, 화물차이고, 농기계다. 전천후 다목적용이다. 경운기 없이는 농사 짓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실 정도다. 산밭이나 들판에 나가실 때도 경운기를 앞세우신다.

경운기를 새로 들여놓았다. 아버지의 손길을 탔던 것이 낡아 고장이 잦아서다. 고쳐 쓰기엔 수리비가 ‘배보다 배꼽이 더 커’ 어쩔 수 없으셨단다. 아버지는 새 벗을 대견하게 여기신다. 다른 것은 몰라도 힘겹게 돌려 시동을 걸던 구형과는 달리 자동차처럼 쉽게 시동이 걸리기 때문인 듯싶다.

아이들이 경운기에 태워 달라고 조른다. 승용차에 익숙하지만 도회지에선 맛볼 수 없는 재미 탓일 게다. 아버지는 “장난치면 안 된다.”고 새끼손가락을 걸곤 손자들을 번쩍 들어 경운기에 태운다. 아이들 몸이 ‘탈탈탈’ 흔들리고 그때마다 꺅꺅 지르는 소리가 듣기 좋다. 놀이기구인 양. 그 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2011-06-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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