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심부름/최광숙 논설위원

[길섶에서] 심부름/최광숙 논설위원

입력 2011-06-06 00:00
수정 2011-06-06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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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심부름으로 잔뼈가 굵었다고 가끔 허풍을 떤다. 부모님은 물론 오빠들이 많아 자잘한 심부름은 나와 막내 오빠가 도맡아 해야 했다. 과자 사오기와 같은 쉬운 심부름이 점차 은행가기 등으로 영역이 넓어졌다. 심지어 한글도 깨우치기 전에 오빠가 적어주는 만화가 이름을 들고 만화방에 가서 만화도 빌려 와야 했다.

말은 떨어졌지만 아직 머리가 야물지 못해 천지분간을 못하다 보니 심부름 미션이 가끔 버겁기도 했다. 큰오빠는 약을 사다 주면 잘못 사왔다고 혼냈다. 그러면 다시 바꾸러 가야 했다. 어린 나이엔 그게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직업상 따지고 캐묻는 일을 잘하게 된 것은 그때 심부름을 통해 혹독한 훈련을 받은 결과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타인에게 다가가 내 의견을 말하고 설득하는 일을 은연중에 배운 셈이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해주기보다는 자잘한 심부름을 통해 사회성을 길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내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래서 난 심부름 예찬론자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1-06-0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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