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보행전용거리/박찬구 논설위원

    월요일 출근길. 서울 광화문 인근 회사에 다니는 A씨는 서울역 근처 공공 주차타워 지하 1층에 승용차를 세워두고 남대문 쪽으로 걸었다. 6개월 전만 해도 운전석에 앉아 회사까지 꽉 막힌 도심을 엉금엉금 기어가곤 했다. 광화문 도로원표를 중심으로 반경 2~3㎞ 이내가 24시간 보행전용거리로 지정되고 동서남북 경계지점에 각각 주차타워가 생긴 뒤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응급 차량과 내외빈 전용의 왕복 2차선을 빼곤 도심이 보행자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승용차로 출퇴근할 때는 엄두도 못 낸 즐거움과 여유를 누린다. 아침저녁으로 짧게는 20분, 길게 코스를 잡으면 40분씩 걸어다닌다. 허리 수치는 줄고 업무 효율은 높아졌다. 시청 앞 건널목에서 보행자와 눈싸움이나 언쟁을 벌이는 일도 없어졌다. 파격이지만 즐거운 상상이다. 도심이 사람 중심으로 바뀌면 일상은 훨씬 가벼워질 듯하다. 전통의 멋으로 거리를 꾸민다면 관광에도 도움이 될 테다. 다음달 3일부터 평일 점심 때 정동 덕수궁길이 보행전용거리로 운영된다고 한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까.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길섶에서] 하프타임 예찬/서동철 논설위원

    음악담당기자를 제법 오래 하다 보니 현장을 떠났어도 불러주는 공연이 적지 않다. 신문기자 노릇을 하기 전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궁둥이가 무거운 탓에 라디오로나 들었지 콘서트에는 자주 가지 않았다. 요즘도 그렇지만 이런저런 인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음악회가 있다. 음악을 즐기러 가는 것이 아니라 불러준 사람에게 눈도장을 찍으러 간다고 하는 것이 옳다. 내가 생각해도 갈수록 사이비 음악애호가가 돼 가고 있다. 요사이 증상이 더욱 심해져 음악회에 중간 휴식이 있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반전이 끝나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사이에 은밀한 눈빛이 오간다. 결혼식에서 혼주와 인사하고 어슬렁거리다 주례사를 듣다 말고는 작당해 도망가는 건 양반이다. 최근 예술의전당에서도 휴식 시간에 전화를 켜니 문자가 와 있었다. ‘길 건너 순대집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둘러대곤 서곡(序曲)이 끝나자마자 나간 사람이…. 이 소식이 반가운 걸 보니 나도 슬슬 ‘전반전 전문 음악애호가’를 넘어 ‘서곡 전문 음악애호가’로 바뀌어 가고 있나 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유유상종/문소영 논설위원

    어릴 적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을 싫어했다. 유학자 할아버지 밑에서 취학 전에 소학과 명심보감 등을 뗐던 ‘동네 신동’ 아버지는 걸핏하면 사자성어를 들먹였는데, 그중 하나가 유유상종이었다. ‘법구비유경’의 향 싼 종이와 생선 묶은 새끼줄 이야기는 한 세트였다. 공부 잘하는 학생끼리 사귀어야 서로 발전한다는 교육철학이 깔려 있어 더 불편했다. 본디 성향이 반항적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경직되고 보수적인 아버지가 싫었던 것인지 불분명한 가운데 의도적으로 학교 성적과 상관없이 친구를 사귀었고, 덕분에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요즘 유유상종이란 말에 깊이 동의한다. 의도적으로 무리짓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관심사가 같고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귈 수밖에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내내 달았던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중립을 위해 떼자’는 조언에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며 거부했다. 교황에 감탄했다. ‘중립’과 ‘공정성’을 항상 권력자처럼 아전인수로 남발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노한다. 그 탓에 권력과 짝짜꿍하는 사람들의 유유상종에 범접하기 싫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진화와 퇴화/서동철 논설위원

    어릴 적부터 중국집 군만두를 좋아했다. 그런데 요즘은 제대로 만든 평양냉면보다 제대로 만든 군만두를 만나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 같다. 언젠가 여의도의 중국집에서 군만두를 시켰더니 주인은 이웃 중국집에 만두를 빌려달라고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이 동네 군만두는 모두 한 공장에서 납품받으니 그게 그거”라며 뒷머리를 긁었다. 종종 가던 명동의 중국집에서도 최근에는 만두를 만들지 못했다는 대답을 들을 때가 많다. 내가 사는 경기도 파주에서 얼마 전 군만두가 맛있는 중국집을 발견했다. 간판에 화상(華商)이라고 써놓았으니 화교(華僑)가 운영하는 집이다. 튀긴 음식이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군만두가 맛있는 집은 탕수육도 맛있다. 이 집도 그렇다. 더구나 이 집은 탕수육을 시키면 군만두가 따라나온다. 공장제가 아니라 직접 빚은 군만두를 공짜로 주는 것에 미안한 느낌도 든다. 이 중국집은 파주 문산읍에 있다. 하던 대로 옛 모습을 이어가는 변두리 중국집이다. 그런데 군만두뿐 아니라 다른 음식도 맛있다. 이 집이 진화한 것이 아니라 겉만 번지르르해졌을 뿐 다른 중국집들이 퇴화한 것은 아닐까.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낭랑 소녀/정기홍 논설위원

    휴일 낮시간 한적한 지하철 안, 옆자리에 어린 10대 아가씨가 앉았다. 마냥 부산하다. 큼지막한 쇼핑백 안을 요리조리 뒤지더니 요구르트 하나를 꺼내 마신다. 이어 10여분간 백 안의 물건을 정리하고서는 마지막 꺼낸 건 ‘애장용’ 이어폰이다. 꼼지락거리며 내는 소리가 적잖이 거슬리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는 행동이 되레 앳돼 보여 속으로 웃고 말았다. 부모의 품에서 갓 나온, 덜 읽은 복숭아 같은 아가씨다. 옛날엔 저때를 ‘낭랑 18세’라고들 했지. 호기심 많지만 수줍음도 타는 처녀…. 잠시 딴 생각을 했다. 요즘이야 당돌함의 시대이니 참견하려면 봉변을 각오해야 한다. 기억이 생생한 수년 전 지하철 안에서 목격했던 일이다. 노약자석에 앉은 70대 할아버지의 말에 대든 ‘여고생 사건’이다. 주고받던 말끝에 그 여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야이 개××야, 조용히 안 해!”였다. 승객들의 눈은 그 여학생 쪽을 향했지만 대 센 ‘지하철녀’ 신드롬이 일 때인지라 우세를 당할까봐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학생은 다음 역에서 곧바로 내렸다. 천진한 아가씨에 대한 상념은 독 깨지듯 달아나고, 다시 일상을 되돌린 하루였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모성(母性)/구본영 논설실장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집전차 대전월드컵경기장에 들어서는 장면을 TV로 봤다. 그는 도중에 여덟 번이나 차를 멈췄다. 그러곤 아이들에게 다가가 얼굴을 쓰다듬거나 볼에 입을 맞췄다. 순간 필자는 생뚱맞게도 남성인 그에게서 자애로운 모성(母性)이 느껴졌다. 문득 며칠 전 고향집에서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수년 전 아버지를 먼저 여의고 홀로 되신 어머니는 여든을 넘기면서 기력이 많이 떨어지셨다. 늘 다 큰 자식을 위해서 깻잎, 김치 등 밑반찬을 챙기던 어머니였다. 귀경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려자 어머니가 습관처럼 또 냉장고를 뒤지길래 짐짓 화를 내는 척 만류했다. 하지만, 열차 속에서 가방을 열어보니 몰래 넣은 피로회복제 두 병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교황의 방한 행보가 가톨릭 신도든 아니든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깊은 울림을 던져주고 있다. 요즘 학교나 사회, 혹은 병영에서 잔혹한 폭력을 일삼는 이들도 자애로운 어느 어머니의 아들과 딸일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아낌없이 주는 모성을 잊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절반은 벌써 천국일 듯싶다. 구본영 논설실장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자식喪/정기홍 논설위원

    요즘 자식상(喪) 소식을 가끔 받는다. 지난달에 이어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지인의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서 받았다. 낭패감과 난감함이 겹쳐서 다가선다. 슬픔에 어떠한 말로 위로해야 그 깊이를 헤아릴까 싶다. 어느 살붙이의 죽음이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비감(悲感)에 비할까.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이라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넉 달 전 세월호 사고로 자식들을 잃은 부모의 비통한 심정도 매한가지다. 부모의 도리를 다 못한 죄책감에 통곡은 고사하고 눈물 쏟기도 어렵다. ‘애이불비’(哀而不悲)다. 굴지의 기업 총수가 교통사고를 당한 자식을 보내면서 끝내 장례식을 외면하고, 어느 소설가는 외아들의 죽음이 고통스러워 하나님에게 따졌다 하지 않는가. 부모는 산에다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이유다. 시간이 지나 위로하기로 하고 조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변고를 어찌 당했는지 구구하게 묻지도 않았다. 주상(主喪)으로 빈소를 지키는 그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고통이다. 그런데 자식상을 알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를 차려 보내려는 부모의 마음이다. 문상을 가지 않은 게 되레 마음의 짐을 진 건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배달 문화/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고 외치는 스마트폰 앱 ‘배달의 민족’ 광고는 참 기발하다. 물론 이 ‘배달(配達)’ 광고는 우리나라의 상고(上古) 시대 이름인 ‘배달’(倍達)에서 음을 따온 것이다. 우리만큼 배달 문화가 발달한 나라도 없다. 명절날, 한밤중에도 ‘총알같이’ 도착하니 시간 불문이요, 바닷가 백사장까지도 갖다 주니 장소 불문이요, 족발·피자·보쌈·치킨·햄버거·자장면·냉면 할 것 없으니 종류 불문이다. 철가방을 한 손에 들고 곡예 운전을 하는 위험천만한 배달 소년들이 있어서 가능하기도 할 것이다. 미국에서도 피자 정도는 배달해 주나 별도의 요금과 팁을 줘야 한다. 경기도 광주에 ‘효종갱’(曉鐘羹)이란 유명한 해장국이 있다.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하인들이 남한산성 인근에서 끓인 해장국을 솜으로 싼 항아리에 담아 몇 시간을 걸어 서울 사대문 안의 대갓집으로 날랐다고 전해진다. 배달 문화의 원조라고 할까. 실제 배달 문화는 일제 강점기에 시작된 듯하다. 나르기 간편한 자장면 덕이 크다. 인천 자장면 박물관에는 1920년대에 제작된 나무통 배달 가방이 전시돼 있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담벼락 동심/박찬구 논설위원

    광화문 도심 골목길, 한 초등학교의 외진 담벼락은 앙증맞은 ‘사랑 고백’으로 가득하다. 하트 모양 좌우로 이름 두 글자씩이다. 여름철 담벼락을 덮는 녹색 이끼도 하얗게 꼭꼭 눌러 쓴 동심을 가리진 못한다. 어른 키 두 배 남짓한 담벼락이지만 하트 그림은 초등학교 4, 5학년생의 키 높이에 맞춰져 있다. 아이들의 두근거림과 얼굴 화끈함, 상대 앞에서 어색해지는 말투와 몸짓을 담은 듯하다. 때로 친구를 골려주려는 장난기나 또래의 우정도 느껴진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아련하고 포근한 미소를 짓는다. 어린 시절 추억일 수도 있고 동심의 한 자락을 엿보는 설렘일 수도 있을 테다. 몇 년 동안 정든 골목길이 얼마 전부터 생경해졌다. 누군가 담벼락을 따라 길게 화단을 만들고 비슷한 키의 나무를 줄지어 심었다. 수많은 하트와 이름은 나무 울타리에 갇혀 시야에서 사라졌다. 살갑고 톡톡 튀는 동심의 공간을 규격화된 화단이 차지해 버렸다. 온기도 생동감도 간데없다. 골목길은 표정을 잃었다. 고층 오피스텔과 면세점, 갈길 바쁜 승용차만 골목을 넘보고 있다. 공간을 빼앗긴 동심은 어디로 갔을까.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길섶에서] 108배/문소영 논설위원

    장안에서 가장 비싸다는 수업료를 내고 사립대학을 다녔으나 백수였던 20대 중반. 세상에 패배했다고 낙심해 머리 깎고 절에나 들어갈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시달렸다. 나이는 어리지만 세상물정은 훨씬 잘 파악했던 동생이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폐쇄된 집단이라 세상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조언해 흐지부지됐다. 불교 신자가 아니면서 그 무렵 아침에 일어나면 108배를 꽤 오랫동안 했다. 절하는 자세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려는 노력인 하심(下心), 또는 집착을 일으키는 여러 인연을 놓아버리는 방하(放下)에 닿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교만하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보던 과거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려던 시절이었던 것도 같다. 그 몇 년 뒤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일반인 대상의 5박6일인가 ‘짧은 출가’를 보냈는데, 여름날 산사에서 새벽 3시에 일어나 도량을 돌고 예불로 108배를 할 때 몸에 익숙한 그 절을 하면서 참으로 속이 편했던 것 같다. 요즘 비뚤어진 마음이 아니라 살찐 몸을 교정하기 위해 절을 권한다고 한다. 20대의 싱싱한 무릎도 아닌데 마음이 좀 어지러워 108배를 시작해볼까 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은행 유감/정기홍 논설위원

    은행카드를 사용했더니 거래가 정지돼 있다. 입·출금용으로 평소 사용하지 않았던 카드다. 이유가 궁금해 창구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지난해 7월 이후 1년간 쓰지 않아 정지시킨 것”이라고 했다. 카드의 악용 우려 때문이란 설명이다. “만날 해킹 사고를 내더니 1년 안 썼다고 정지시켜? 고약한 인심”이란 생각에 일어섰다. 5월엔 입금도 됐다. 은행과 거래하면서 이런 일 한두 번을 당해 봤는가.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 봤다. ‘휴면카드 자동정지제도’가 운영 중이었지만 이를 몰랐다. 그런데 보이는 건 금융감독원과 여신금융협회발(發) ‘장롱카드’ 감소라는 홍보성 기사뿐이다. 나의 카드 한 장도 호들갑 실적에 들었을 것이다. 그날 카드를 재사용하기 위해, 사용 한도를 원상 복구를 위해 서류를 두 번이나 썼다. 규정을 보니 휴면카드가 발생하면 한 달 안에 본인에게 통보하도록 돼 있다. 그 흔한 문자메시지 하나 받은 적이 없다. 은행의 잣대가 고을 원님의 마음 내키는 대로다. 제 불이익엔 득달같이, 꼬박꼬박 날아오는 게 은행에서 보내는 문자다. “손님을 깔보는 건가, 해킹 충격 실적용인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어떤 사과(謝過)/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사과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진정성이다. 조건 없는 사과여야 진정성이 느껴진다. 진정한 사과는 자존심을 꺾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품격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사과를 잘하는 사람이 용기있는 사람이다. 게리 채프먼과 제니퍼 토머스는 진정한 사과의 조건으로 여섯 가지를 제시했다. 1. 하지만, 다만 같은 변명을 붙이지 마라. 2. 무엇이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표현하라. 3.“내가 잘못했다”라고 명확히 말하라. 4. 보상 의사를 밝혀라. 5.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 6. 용서를 청하라. 셋이서 차를 몰고 작은 극장에 갔는데 관리인이 주차기가 잠시 고장 나 차를 댈 수 없다는 것이다. 급한 대로 유료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안으로 들어가서 직원을 불러 따졌다. 20대로 보이는 여직원은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몇 번이나 허리를 굽히며 사과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따진 내가 머쓱해졌는데 주차비의 다섯 배나 되는 영화관람권 석 장까지 갖다 줘서 도리어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사과에 인색한 세태다. 잘못이 있는 사람이든 국가든 이런 직원을 닮으면 세상이 밝아지련만.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번역을 배우다/문소영 논설위원

    지난주부터 목요일 저녁 영문소설 번역강의를 듣는다. KT&G의 사회공헌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인 덕분에 수강료도 저렴하다. 10주 프로그램으로 강의실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 상상마당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번역이 난무해 영문판을 수소문해 읽거나, 또는 꼭 읽어야 하는데 번역판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영문판을 읽어야 할 때마다 한글 책 읽듯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들끓어서 시작했다. 소설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 ‘다빈치 코드’ 등을 영문판으로 읽었지만 사실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자신할 수가 없다. 수강한 덕분에 누리는 추가적인 즐거움은 젊은이들이 바글거리는 지하철 홍대역과 상수역 근처의 낯선 저녁 풍경이다. 넥타이를 맨 직장들 천지인 서울 중구 무교동과는 다른 입성과 생동감으로 마음을 들뜨게 한다 할까. 수강생 13명 중 1명만 남학생이고, 나머진 여학생이다. 현역 유명 번역가는 대체로 남자인데, 학생은 왜 여성이 많을까 싶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싶어서 수강하는 동기 중에 좋은 여성 번역가가 나왔으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선업(善業)/구본영 논설실장

    얼마 전 고령화 시대라는 요즘 기준으로는 너무 일찍 세상을 뜬 어느 선배를 조문했다. 썰렁할 것으로 예상했던 상가는 뜻밖에도 문상객들로 붐볐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조문객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정승이 죽으면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는 옛 속담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래서 인과응보를 강조하는 불가(佛家)에서 쓰는 ‘선업신공’이란 말이 생각났다. ‘착한 일은 많이 하면 행운이 따르게 된다’는 뜻이다. 고인과는 저마다 다른 인연을 갖고 있을, 수많은 추모객들을 보며 틀린 화두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만 내세를 믿지 않은 사람들로선 이 각박한 세상을 살다가 죽은 뒤에 극락에 가는 게 무슨 소용이 닿겠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세를 중시하는 유교에서도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이라고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도와주는 이웃이 있다’는 뜻인, 논어의 한 구절이다. 문득 친구들의 십시일반의 도움을 받아 병마를 딛고 사업에서 재기한 한 지인의 최근 사례가 떠올라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구본영 논설실장 kby7@seoul.co.kr
  • [길섶에서] 밀짚 매미집/정기홍 논설위원

    창가의 매미 소리에 아침잠을 깼다. 소리 나는 곳으로 다가갔더니 베란다 방충망에 한 녀석이 딱 붙어 앉았다. “허허, 요놈 봐라. 영락없이 그대로네”. 갓 뜬 눈을 비비며 파브르 곤충기와 같은 관찰이 시작됐다. 튀어나온 꼬리를 실룩샐룩하며 울어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이름을 무어라 불렀지? 왕매미는 아닌데”. 생각이 날 리 없다. 잡힌 그대로 갖고 놀기만 했으니…. 도심의 매미 소리가 유별나다고 하지만 바로 옆에서 들으니 소싯적의 소리 크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밀짚과 보릿대로 만들던 ‘매미집’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보통 ‘여치집’이라 부른다. 그 안에 여치와 메뚜기를 잡아다 넣었지만 매미도 넣곤 했었다. 탑 모양의 밀짚 매미집에 매미를 가두고 방안에 걸어두면 운치는 물론 우는 소리도 아주 정겨웠다. 만드는 게 몹시 재미있다. 하지만 수월치 않다. 밀짚 가닥을 차근차근 엮는데, 밀짚을 구멍에 꽂은 뒤 꺾어 돌리지만 틀이 잘 안 잡힌다. 손놀림이 서툴러 ‘공사’ 내내 애간장을 태운 게 한두 번 아니다. 녀석은 한 시간여 울어대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오랜만에 매미 소리가 정겨운 아침이었다. “맴~맴~맴~”.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
  • [길섶에서] 만화 피서/문소영 논설위원

    그 나이 먹고도 아직 만화를 보느냐는 지청구를 듣는다. 만화가 어때서 그런가 싶다. 이해도 못 하면서 괜히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리좀(rhizome)이론이나 이탈리아의 혁명철학자 그람시의 난수표 같은 ‘옥중수고’를 거론하는 것보다 한국의 젊은 만화가 최규석의 웹툰 ‘송곳’을 보고 무너져 내리는, 노동하는 삶의 절망을 논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최규석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정석으로 살고자 하는 삶이 어떻게 자본의 이윤추구에 의해 훼손되는가를 외국계 유통업체의 정리해고와 직원들의 저항을 통해 보여준다. 중견 만화가 윤태호의 ‘미생’으로도 대기업 계약직 직원의 애환을 실감할 수 있다. 여름휴가 안 가느냐고 하는데, 8월의 산과 바다는 피서객으로 만원이다. 고속도로도 주차장 같아 고생이다. 또 잠깐 걸으려 해도 우산으로 태양을 가리지 않는 한 당장 군고구마가 될 정도로 덥다. 시원한 카페나 동네 도서관에 앉아 세상을 통찰한 만화책들을 읽어 보면 어떨까. 박시백의 20권 만화 ‘조선왕조실록’도 날 새는 줄도 모를 재미를 준다. 13일 개막하는 부천국제만화축제의 도서관도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금이빨 단상/구본영 논설실장

    며칠 전 점심 시간. 청계천 주변의 서울 종로통을 걷다가 공용주차장 담벼락에서 범상치 않은 광고 전단지를 발견했다. ‘금이빨 삽니다’라는 문구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르는 게 시장경제의 기초 원리 아닌가. 사뭇 엽기적으로 비치는 상혼에 놀라기에 앞서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자신의 금니를 빼내서라도 생계를 꾸려야 하는, 이름 모를 어느 가장의 주름진 얼굴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고달프다.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수출용 가발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던 시절도 있었지 않은가. 하지만,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는 우리 사회가 지나친 배금주의로 치닫고 있다면 참 씁쓸한 일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무한질주하다 보면 종착역은 허무 그 자체일 수밖에 없을 게다. 천문학적 재산을 다 쓰지도 못하고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례를 보고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문득 한 지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보내준, 삶의 경구가 새삼 와 닿았다. “돈만을 징검다리 삼아 삶을 건너려는 자는 몇 걸음도 못 가 빠지거나 넘어진다.” 구본영 논설실장 kby7@seoul.c
  • [길섶에서] 여름 전어/정기홍 논설위원

    계절은 한여름인데 전어 소식이 왔다. 삼천포 선창가에 앉아 “꼬시다(고소하다)”는 친구의 너스레에 “전어는 무슨, 지나던 눈먼 몇 마리 잡았겠지” 했더니, 물정 모른다며 타박이다. 초저녁인데도 햇전어 맛에 취한 듯 주선(酒仙) 이태백의 취흥이 부럽잖아 보였다. 회 한 접시에 구이 몇 마리, 덤으로 회무침 한 사발…. 눈에 선하다. 전어축제는 가을이 들 무렵인 9~10월 많이 열린다. 사천(삼천포)의 한여름 전어축제는 역발상이다. 여름휴가 철 일정에 맞춰 해수욕장 이벤트에다 전어 잡기 등의 놀이를 곁들였다. 궁금해 시청에 확인했더니 전어회를 맛보려는 외지인이 많다고 한다. 칠팔월 전어회는 육질과 뼈가 부드러워 뼈째 썬 세꼬시로 먹으면 그 맛이 살 오른 가을 전어에 못지않단다. 난류어종 전어는 늦봄 우리 연안에 와 산란을 마치고, 이때쯤부터 잡힌다. 아직 뜸하지만 곧 횟집 수족관에 팔팔한 전어가 채워지게 된다. 고소함은 추석 전후가 제일이란다. ‘집 나간 며느리가 굽는 냄새에 되돌아온다’는 건 이때의 전어를 말한다. 가마솥더위에 전어 소식을 접하니 여름·가을이 대중없어진 시절이다. 구미가 바짝 당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나이듦’ 단상/오승호 논설위원

    엊그제 난생처음 안과병원을 갔다. 40대 후반까지만 해도 10대 못지않은 시력을 자랑했다. 좌우 시력이 1.2~1.5였으니까. 50대로 접어들면서 눈이 침침해지더니 멀리 있는 것은 흐릿하게 보인다. 지난해 11월 회사 건강검진에서는 좌우 각각 0.9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더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안과에서 검사를 하더니 근시에 노안이 조금 있다고 한다. 안경점에서 안경을 맞출 때 제시할 처방전을 준다. 물어봤다. 돋보기 기능이 있는 안경이냐고. 다행히 돋보기 안경은 아니란다. 왠지 아직은 안경을 쓰기가 내키지 않는다. 시력이 좋아지는 식품은 없을까. 노안이 오기 전에 열심히 찾아봐야겠다. 안과에 이어 백화점 남성복 할인 매장을 찾았다. 콤비 차림을 위한 바지를 골랐다. 그러나 이내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바지통이 너무 좁은 게 이유다. 점원에게 “왜 청년들이 입는 바지만 잔뜩 쌓아놨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단다. 요즘은 그런 바지가 대세란다. 난 여전히 통이 큰 헐렁헐렁한 바지가 편하다. 이 또한 나이 탓 아니겠는가. 차라리 패션 무감각증이었으면 좋겠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길섶에서] ‘명량’(鳴梁)/문소영 논설위원

    이순신을 소재로 한 영화는 과거 제작자들의 무덤이었다고 한다. 해상 전투 장면에서 세트 등의 물량공세와 특수효과 등으로 제작비가 많이 들었는데, 잘 알려진 내용에 우상화 논란이 겹쳐 관객을 끌어들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설명이다. ‘성웅 이순신’은 똑같은 이름으로 박정희 정권 시절이던 1962년과 1971년 두 차례나 만들어졌다. 유현목 감독이 만든 1962년 4월 개봉된 ‘성웅 이순신’은 당시 공보부의 영화금고 첫 지원 사례로 확정돼 3000만환이 투여됐다. 9년 뒤 ‘성웅 이순신’에는 톱스타인 김지미와 김진규가 출연했다. 아버지 박 대통령의 이순신 사랑 덕분인가 싶은데, 우연하게 박근혜 정부에서 이순신 장군 소재 영화가 개봉된다. 영화 ‘명량’(鳴梁)은 13척의 배로 왜적의 배 330척과 맞서 임진왜란의 전세를 뒤집은 이순신의 1597년 명량해전을 다뤘다. 백성을 버리고 줄행랑을 친 무책임한 선조와 달리 이순신은 부패한 관료들의 시기질투와 음해로 백의종군할 수밖에 없었지만 불굴의 용기와 유능한 리더십으로 나라를 지켰다. 리더십 부재의 시대를 질타하며 꼭 흥행에 성공하길 바란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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