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스마트 타임캡슐/박홍환 논설위원

    2001년 개봉된 곽재용 감독의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남녀 주인공은 3년 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한 그루 소나무 아래에 타임캡슐을 묻는다. 촬영지인 강원 정선에는 이른바 ‘타임캡슐 공원’이 조성돼 많은 젊은 연인들이 ‘사랑 타임캡슐’을 묻기 위해 찾고 있다. 타임캡슐은 원래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생활문화를 알리려는 목적이 강했다. 1939년 뉴욕 만국박람회 당시 묻어놓은 세계 최초의 타임캡슐에도 당시의 각종 일용품과 곡물, 백과사전, 뉴스영화 등이 담겨 있다. 이 타임캡슐은 서기 6939년에 개봉돼 50세기 이전 인류의 문화를 후손들에게 전해줄 예정이다. 서울시가 서울시청 지하1층 시민청에 이른바 ‘스마트 타임캡슐’을 설치해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앱을 이용해 현장에서 사진이나 메시지를 저장한 뒤 언제든 다시 찾아와 확인할 수도 있다. IT 기술의 발달로 타임캡슐의 편의성이 크게 확대된 셈이다. “그때는 이랬지”하면서 훗날 스마트 타임캡슐에 저장된 사진과 메시지를 확인해 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싶기도 하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사회친구 사귀기/오승호 논설위원

    사회친구 A씨와 B씨는 내심 서로 못마땅해한다. 대화에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금이 가는 근본 원인이다. 소통을 쉽게 얘기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사회친구 여럿이 만난 자리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다 둘은 공방전을 벌이기 일쑤이다. 나머지 친구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대화 속에서도 신경전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모임의 나머지 사람들은 무심코 넘어가는데도 유독 둘은 서로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마치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라도 한 듯이 둘이 언쟁이라도 벌일 땐 “역시 학창시절 친구가 최고야”라고 마음속으로 되뇌곤 한다. 인간관계가 소극적으로 변하는 순간이리라.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는 속담이 있다. 오래 사귄 친구일수록 정이 두텁고 깊어서 좋다는 뜻일 게다. 그렇다고 인생살이 학창시절 친구들하고만 평생 함께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자기의 이익에만 집착하지 말고 상대방에 대해 배려를 하는 사회친구들이 많을 때 공동체의 삶은 더 행복해질 것이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길섶에서] 광장시장 ‘마약김밥’/문소영 논설위원

    서울 종로구 예지동 광장시장은 야시장도 유명하다. 예전에는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들이 원앙금침과 새 한복도 맞추는 곳이었는데, 요즘은 저녁약속을 광장시장에서 한다. 타이완의 야시장 같은 분위기다. 돼지머리 고기와 순대, 솥뚜껑만 한 녹두 빈대떡 등이 싼 가격에 푸짐하게 나온다. 시장통에서 왁자지껄하게 대화하다 보면 사람 냄새를 진하게 맡을 수 있고, 막걸리도 괜히 더 감칠맛이 난다. 최근에 먹어본 색다른 음식이 ‘마약김밥’이다. ‘광장시장 마약김밥’은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고 성화를 부려 맛본 그 김밥은 간단했다. 충무김밥처럼 한입에 먹을 수 있도록 어른 검지만 하게 말아놓은 김밥 속에 가느다란 단무지와 홍당무가 서너 가닥 들어 있다. 일에 바쁜 시장일꾼들이 싼 가격에 정신없이 주워 먹는 맛이라고 해서 ‘마약김밥’이라 부른다고도 했다. 너도나도 재미 삼아 먹어보니 상한가를 치는 인기 탓에 마약김밥의 몸값은 제법 세다. 김밥 속 재료가 잔뜩 들어간 여느 김밥보다 싸지 않다. 서민들 인기에 부응해 변하지 않는 싼 가격과 맛으로 승부해 주면 어떨까 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메모 대화/정기홍 논설위원

    쪽지 글은 요긴하다. 회의 중에 긴급함을 알리고, 옆 사람과는 사적 내용을 주고받을 수 있다. 둘만이 아는 내용이어선지 받는 쪽의 기분이 더 좋아진다고 한다.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가 소통을 대신하지만 ‘받는 정 주는 정’은 쪽지에 못 미친다. 지금은 정치인들이 이용한 쪽지글이 카메라에 잡혀 그 존재를 알려주는 정도다. 집안에서 ‘메모 대화’를 자주 한다. 다툼이 잦았던 젊었을 때 시작해 15년은 된 듯하다. 사랑 타령은 고사하고 말 붙이기가 싫을 때 주로 이용해 왔다. 내용이 격해도 시간이 지나서 보기에 화날 일을 줄이는 게 매력이다. 요즘 내용이 많이 바뀌었다. ‘(컵에) 물 가득’ ‘소량의 술도 뇌세포 파괴’ 등의 일상사다. 젊었을 때 내용은 좀 고약했다. ‘왜 안 했나’ ‘거짓말을 하나’ 등의 타박이 다반사였다. 그때마다 “열심히 써라. 관심 없다”는 듯이 지나치며 대충 마무리했었다. 마침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부부 셋 중 한 쌍은 하루에 30분만 대화한다고 한다. 소통 부재의 ‘가정 재난’을 읊조려야만 하는 요즘이다. 고작 30분에도 못 미치지만 그나마 메모글이 있어 다행인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연봉/박홍환 논설위원

    직장인 누구나 정당한 보수를 원한다.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요구이기도 하다. 누구는 시급으로, 누구는 일당으로, 또 누군가는 월급과 상여금으로, 나머지 누군가는 연봉으로 보수를 받는다. 노동의 대가라는 면에서는 똑같지만 ‘연봉 받는다’ 고 하면 주변으로부터 꽤 괜찮은 직장에 다닌다는 소리를 듣던 시절도 있었다. 억대 연봉은 직장인들의 로망이다. 2012년 소득신고 직장인 1554만명 가운데 연봉 1억원 이상인 사람은 37만여명에 불과했다. ‘상위 4%’의 노블리티 멤버라는 뜻이다. 언제부턴가 친구들끼리 연봉 얘기를 꺼내지 않게 됐다. 알면 부럽고, 비교하면 배 아픈 현실을 애써 외면해 왔다. 중견 건설업체인 부영이 신입사원부터 부장까지 임원을 제외한 전체 직원 연봉을 일괄적으로 1000만원씩 인상하기로 했다고 한다. 재계 22위까지 성장한 그룹 위상에 걸맞게 임직원 급여를 10대 건설사 수준으로 끌어올리라고 이중근 회장이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월급과 연봉에 초연한 척 지내왔지만 부영의 연봉인상 소식이 노동의 대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봉정암/서동철 논설위원

    설악산 봉정암은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로 꼽힌다. 적멸보궁이란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다. 봉정암은 해발 1244m의 첩첩산중에 자리 잡았다. 제법 이력이 붙은 등산객도 인제 백담사에서 쉬지 않고 4~5시간은 올라야 한다. 그럼에도 봉정암에서 허리 굽은 할머니들이 줄지어 기도 드리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봉정암이 어느 절보다 ‘기도발’이 잘 받는다고 할머니들은 입을 모으지만, 영험을 봤다면 아마도 그 8할은 죽을 힘을 다해 산에 오른 정성의 결과일 것이다. 봉정암 오층석탑의 보물 지정이 예고됐다. 부처의 뇌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알려진 고려시대 석탑이다. 봉정암 대웅전도 다른 적멸보궁처럼 별도의 불상을 두지 않고, 진신사리를 모신 탑을 향해 창문을 냈다. 탑이 곧 부처이기 때문이다. 봉정사 탑은 기단을 별도로 만든 다른 탑과는 달리 커다란 바위를 기단으로 삼은 독창성이 돋보인다. 보물 지정으로 더 많은 사람이 찾겠지만, 걱정도 없지 않다. 지난 부처님 오신 날에도 봉정암을 찾은 사람이 무려 4000명에 이른다지 않는가.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진공관 앰프/문소영 논설위원

    7~8년 전 사용하던 앰프는 진공관이었다. ‘매킨토시 275’. 어둑어둑할 때 켜놓으면 백열전구같이 따뜻한 빛을 내며 반짝반짝하는 모양이 예뻤다. 오디오 마니아들은 진공관 앰프로 음악을 들어야 제대로 된 음악을 듣는다고 주장한다. 주변에서 구리 케이블을 은이나 금케이블로 바꾸거나, 고음·저음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다며 스피커를 두어 달에 한 번씩 바꾸는 광경을 봤다. 기계의 교체에 들어가는 엄청난 액수를 보며 ‘진짜 음악이 좋으면 공연장에서 직접 들으면 될 텐데’ 싶었다. 다 잊고 있다가 취미로 진공관 앰프를 제작하는 사람을 알게 됐다. 10W 또는 15W의 소출력 앰프인데 구경하다 보니 탐심이 불쑥 올라온다. 최근 ‘쿠르베’ 브랜드로 스피커를 제작하는 친구도 알게 됐다. 원래 오디오 마니아로 용돈을 모아 아내 몰래 기계교체를 취미로 삼다가 해직기자가 되자 생업으로 돌린 것이다. 그 스피커는 멋진 디자인과 사운드 덕분에 김희애와 유아인이 출연하는 드라마 ‘밀회’에서도 소개됐다. 견물생심이라고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까지 탐심이 들끓고 있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로그인/박찬구 논설위원

    계간지 C닷컴에서 이메일을 받았다. 일정 기간 이상 로그인을 하지 않아 회원 정보를 파기하려 한다는 안내문이었다. ‘5월 11일 24시 이전까지’ 로그인하면 회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정기구독을 끊고 클릭질로 과월호를 뒤적이곤 했는데, 그마저 한참을 잊고 있었다. 무신경하게 스팸 처리하듯 이메일을 지웠다. 그러곤 세월호 참사로 허공을 뒤척였다. 이메일이 다시 왔다. ‘로그인하지 않은 회원님의 개인정보를 파기하려고…자동 탈퇴 처리되며….’ 글자 하나하나, 선명하고 눅눅해졌다. 이제 막 ‘거위의 꿈’을 키우려던 아이들은 차고 검은 물속에서 순간순간 바깥세상과의 로그인을 얼마나 간구했을까.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그 믿음이 허망한 일이 될 수 있다는 단절의 공포에 휩싸이면서, 아이들은 푸르고 따뜻한 소망과 단 한 번이라도 로그인되길 염원했을 테다. 무심결에 계간지 홈페이지를 열었다. 아이들의 로그인에 응답하지 않은 세상, 그 세상에서 로그아웃되지 않으려 자판을 두드리는 나, 옹색하고 부끄럽다. 죄스러움마저 사치스럽다.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길섶에서] 기념일/문소영 논설위원

    1일 노동자의 날,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의 날, 15일 스승의 날 등 5월은 기념일이 많다. 그래서 5월에는 은행 잔고가 빨리 바닥을 드러낸다는 앓는 소리에 익숙해진다. 문득 ‘어른의 날’은 왜 없을까 생각해봤다. 선거권을 가진 사람들을 ‘어른’으로 정하고서 꽃과 선물을 주고, 축하하는 것이다. 상상해보니 내수진작에도 좋을 것 같다. 이런 날도 제정하면 어떨까. 대통령의 날, 국무총리의 날, 장관의 날, 재벌의 날 등등. 사방에서 돌이 날아들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평생 엉뚱한 상상을 해보지 않은 분들’만 돌을 던지시라. 기념일은 365일 중에서 단 하루 특정인의 노고를 고마워하고, 그를 소중하게 여기라는 뜻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손꼽히는 긴 노동시간을 가진 한국의 노동자나, 국가 유공자, 어른의 부속품쯤으로 취급되던 어린이를 보호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기념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현실적 지위가 낮거나 열악한 것을 증명하는 거다. 365일 ‘뻔뻔하게 잘사는’ 어른의 날 제정 건의는 상상 속에서만 해야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신고전화 유감/정기홍 논설위원

    버스터미널 화장실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지저분한 환경은 물론이거니와 후진적 이용문화 때문이다. 들렀다 나오면 지린내가 가시지 않아 한참을 걸어도 꺼림칙함을 떨칠 수 없다. 안전사고를 접할 때마다 안전 불감증과 터미널 화장실이 너무 닮았다는 생각을 해 왔다. 이런 공간이 바뀐 지는 아주 최근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시내버스 안이 많이 바뀌었다. ‘비상밸브 작동 방법’이 큼지막이 붙었고, 사고 발생 때의 숙지사항을 3곳에나 적어놓은 버스도 있다. “커브 길이니 손잡이를 잡으라”고 하지 않던 안내 방송도 한다. ‘안전’만 한 게 없다는 걸 실감하는 일상이다. 위급상황 때 연락망을 익힌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양지차다. 한 끗발의 차이가 행운과 불행을 가른다. 지하철을 타면서 오랫동안 궁금했던 게 있다. 전동차 객실마다 비치해 놓은 ‘SOS 비상전화’의 효용성이다. ‘비상시 커버를 열고 마이크를 잡고 통화하면 기관사와 연결된다’고 써놓았다. 그런데 기관사가 여의치 않을 땐 역사무소 등 외부와 연결이 될까? 차라리 119로 ‘긴급’을 알리는 게 나을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부레병/문소영 논설위원

    금붕어가 노환(老患)이다. 마트 어항에서 집 어항으로 옮겨온 지 3년째인데, 5개월 전부터 배영을 하면서 유유자적 하루해를 보낸다. ‘부레병’을 앓고 있다. 부레는 물고기가 내부 가스양을 조절해서 위아래로 헤엄치기 좋게 하는 기관인데, 부레병에 걸리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뒤집히게 된다. 흔히 오염된 물에 살면 걸린다는데 억울하다. 녹조가 조금이라도 끼면 여지없이 갈아주고 수돗물 대신 생수를 채워주기도 했는데 말이다. 집에서 금붕어를 키운 것은 7~8년 전 ‘찬물에서 금붕어의 활동 성향’이란 초등학교 과학실험을 마친 뒤에도 힘 좋게 펄떡거리는 금붕어를 아이가 싸들고 왔기 때문이었다. 머리에 검은 점을 가진 그 금붕어 이름은 ‘블랙’이었고 그 뒤로 ‘화이트’, ‘골드’, ‘오렌지’, ‘탠저린’ 등으로 부르던 금붕어들을 키웠다. 블랙이 배영을 시작했을 때 인터넷을 찾아보니 비관적으로 설명해 놓았지만, 그 후 3개월을 너끈하게 살았다. 여기저기 비늘이 떨어져 나간 이 ‘무명씨’ 금붕어는 더 잘 버티고 있다. 어항 물관리에 더 심혈을 기울여 더 오래 살도록 돌봐줘야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아빠인가/서동철 논설위원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갑자기 왼쪽 엉덩이가 욱신거렸다. 넘어지거나, 엉덩방아를 세게 찧었을 때 나타나는 통증과 엇비슷했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혹시 어디서 넘어졌었나? 세월호 참사 탓에 텅텅 빈 식당에서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가 반주 몇 잔으로 조용히 마무리지은 어젯밤이다. 넘어질 일도, 넘어진 것을 기억 못할 가능성도 없다. 그래도 음주에 수반된 전과(前科)가 없지 않은지라 괜히 켕겼다. 세월호 이야기가 지쳐갈 때쯤 선배의 농담도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학교에서 교사가 아이들과 사자성어 맞히기를 했다고 한다. ‘술만 마시면 고래고래 떠들고 노래 부르는 것’을 네 글자로 무엇이라고 햐느냐는 것이 문제였다. 마지막 글자가 ‘가’라는 힌트도 주었다. ‘고성방가’(高聲放歌)라고 제대로 답한 아이들이 많아 선생님은 흐뭇했다. 그런데 한 아이의 답이 걸작이었다. ‘아빠인가’였다. 술 마신 뒤 노래 부르는 버릇은 없지만, 시끄러운 선후배 및 친구와 어울리는 날이면 내 목청도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빠인가’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고 아주 장담은 못하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새끼/박홍환 논설위원

    제 새끼를 탈 없이 길러 내고픈 어미, 아비의 심정이야 짐승이고 사람이고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새끼가 사라지면 어미 종달새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둥지를 오르락내리락 목젖이 찢어질 듯 울어대지 않는가. 안산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부모 또한 이렇게 절규한다. “사랑하는 내 새끼, 엄마 아빠는 아직도 너한테 줄 게 많은데, 미안해 사랑하는 내 새끼, 미안해.” 희생 학생 부모들이 그제 세월호 참사 현장을 다시 찾았다. 각자 “내 새끼를 살려내라”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이미 쉴 대로 쉬어 버린 목청으로 절규했다. 천금 같은 새끼들을 품에 묻은 그들에게 국가와 정부, 선사(船社)는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못했다. ‘내 새끼’였다면 선장과 선원들이 그대로 줄행랑쳤을까. 해경과 정부는 ‘내 새끼’였더라도 미적미적하며 구조와 수색에 인색했을까. 혹여라도 우리 역시 희생된 아이들이 ‘내 새끼’가 아니어서 안심했던 건 아닐까. 이제라도 마음을 고쳐먹자. 우리 주변의 아이들은 모두 ‘우리 새끼’라고. 우리 모두 어미, 아비로서 ‘우리 새끼’들을 탈 없이 안전하게 길러내자고.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또 다른 슬픔/정기홍 논설위원

    70대의 아파트 경비원은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TV를 아예 꺼 놓는다고 했다. 그는 어린 맏아들을 바다에서 잃었다. 둘째아들과 딸이 세계 최고의 미국 기업에 다니지만 먼저 간 아들만 하지 않단다. 세월호가 노년의 그를 수십년 전으로 다시 불러세운 것이다.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을 묘사한 유달영의 수필 ‘슬픔에 관하여’가 문득 다가온다. 작가는 그 아픔을 종교로 승화시키려 무던히 애를 쓴다. 이순신도 임진란 중에 막내아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 “통곡하고 통곡했다”고 난중일기에 적고 있다. 자식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고사에서마저 눈이 먼다는 상명지통(喪明之痛)으로 표현할까 싶다. 벗의 죽음을 애달퍼 하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이나 아내와 남편을 잃은 고분지통(鼓盆之痛)과 붕성지통(崩城之痛)에 비할 바가 아닌 듯하다. 깊은 슬픔을 지우기란 수월치는 않다. 하지만 슬픈 기억을 잊는 데는 지난 영웅담 등이 긍정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사업할 때 600억원대 매출을 올린 적도 있어.” 경비아저씨의 성공담이 맏아들을 잃은 기억을 잠시나마 지웠을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소화불량/문소영 논설위원

    2주 전부터 심해졌지만, 4월 내내 먹고 체하고를 반복하고 있다. 평소 건전한 상식으로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경기도에 사는 한 동화작가는 지난 29일 오전 서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서 4차례나 분향하고, 노란 리본에 “잘 가라”는 인사를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는 “습관적으로 끼니가 되면 밥을 먹지만 체기가 있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어서 마음을 수습해야 할 텐데…” 하고 걱정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이 잦아들기는커녕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는 것이 이번 참사의 고통스러운 특징이다. 그 역시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모임에 참여할 수도 없어 최근에 시간 날 때마다 장자의 책 한 권을 세로쓰기로 베껴 쓰면서 마음을 다스렸다고 했다. 그는 “50 초반까지 살면서 온갖 불행을 내 탓이라며 수용해 왔는데 이번만은 슈퍼맨처럼 지구를 거꾸로 돌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할 것인가를 따지다 보니, 슬픈 중에 분노가 힘이 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과욕 내려놓기/구본영 논설실장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공직사회에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만난 한 노선배가 던진 한마디가 그럴싸하게 와 닿았다. 즉, “받은 뒤 잠이 안 오면 뇌물이고, 그렇지 않으면 선물이다”는 말이었다. 10여년 전 공직에서 은퇴한 그가 제시한, 선물과 뇌물을 구분하는 나름의 잣대였다. 그는 작은 선물로 알고 받았더라도 왠지 켕기면 필시 뇌물이라고 보고 꼭 돌려줘야 한다는 신조로 공직생활을 영위했다고 했다. 예컨대 고위급 공무원 시절 치른 자식 혼사 때 받은 축의금 중에서도 지나치게 많다 싶으면 반드시 돌려줬다는 것이다. ‘관(官)피아’란 신조어에서 보듯이 전·현직 관료들이 이익집단처럼 서로 챙기는 병폐가 부각되는 요즘이다. 하긴 늘 옷깃을 여미며 과욕을 경계해야 탈이 나지 않는 것은 어느 직종인들 마찬가지가 아닐까. 문득 언젠가 어느 문필가의 글에서 읽었던 역도선수의 예화가 생각난다. “역기가 너무 무겁다 싶으면 얼른 내려놓아야 몸을 크게 다치지 않고 선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요지의 글을 읽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 새롭다. 구본영 논설실장 kby7@seoul.co.kr
  • [길섶에서] 봄 가뭄/문소영 논설위원

    한반도의 봄 가뭄은 유명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기우제를 검색하면 세종 때 199건으로 가장 많고, 고종 186건, 숙종 177건, 영조 174건, 순조 128건 등 순으로 나온다. 조선의 논은 대개 천수답이었다. 관개시설도 변변찮았고 낮은 지대에서 높은 지대로 물을 끌어오는 수차도 없었으니 하늘만 바라봤다. ‘무식한 농부’는 그렇다 치고, 농본주의를 내세운 국가에서 왕과 신하가 수차제작과 같은 대책도 없이 기우제만 지낸 것이 의아하다. 벼농사가 잘못되면 한 해 내내 가족이 굶주리곤 했으니, 봄 가뭄이 닥치면 농민의 마음은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과 같았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모내기를 하면 이모작으로 수확이 많아지지만, 이 이앙법 대신 마른 논에 볍씨를 뿌리는 직파법을 선호했던 이유는 게으름이 아니라 봄 가뭄 탓이었다. 그래서 한반도의 봄비는 생명의 비이고, 기쁨의 비였다. 농부는 비가 오면 “나락이 떨어진다”며 반겼다. 연 이틀 비가 오고 있다. 파종한 씨앗들이 새싹을 올리지 못하는 지독한 가뭄을 끝내고, 풍요롭고 안심할 수 있는 시절로의 복귀를 예고하는 비였으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눈물/문소영 논설위원

    ‘악어의 눈물’이 있다. 이집트 나일강의 악어는 홍수로 떠내려오는 사람을 잡아먹고 난 뒤 눈물을 흘린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햄릿’이나 ‘오셀로’ 등의 작품에 인용해 유명해졌고, 위선적인 행위를 일컫는 관용어가 됐다. 그러나 악어의 눈물은 눈물샘의 신경과 입의 신경이 같아서 악어가 먹이를 먹으면 저절로 눈물이 나와서 수분을 보충해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지난날 잘못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의 눈물을 자주 본 탓에 국민의 동정을 사려는 ‘악어의 눈물’에 손가락질을 많이 했다. 하지만 요즘엔 위선적이라는 비난 탓인지 참회의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다. ‘세월호 침몰 참사’를 보도하다가 JTBC의 앵커 손석희와 시사평론가 정관용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누군가는 ‘감성 눈물쇼’라고 비난했다. ‘질서 있게’ 죄 없는 300여명이 수장됐는데 어찌 울지 않을 것인가. 지금 울지 않으면 대체 언제 울고 치유할 것인가. 삭막한 ‘얼음공주’보다 눈물 흘리고 슬픔에 공감하는 기자나 TV 진행자에게 더 큰 신뢰를 보내고 싶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조문/박홍환 논설위원

    동년배의 부모상이나 장인·장모상이 빈번해졌다. 엊그제도 가깝게 지내던 사람의 장인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퇴근 후 부리나케 상가를 찾았다. 영정 앞에 헌화하고, 슬픔에 젖어 있는 상주에게 어렵사리 한마디 건넸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매번 그렇지만 조문은 괴롭다. 그 어떤 말로도 고인을 떠나 보낸 가족들을 위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상(好喪)도 말이 좋아 호상이지 세상에는 그 어떤 호상도 없다. 오죽하면 예부터 부모상을 당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여겨 천붕(天崩)이라 했고, 자식을 앞세우면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지는 상명(喪明) 또는 그 어떤 근심보다 참혹한 참척(慘慽)이라고 표현했을까. 경기도 안산시 올림픽체육관에 차려진 여객선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의 합동분향소에 조문 행렬이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조문객들로 분향소는 ‘눈물바다’라고 한다. 세상에 이런 비통한 조문이 또 있을까. 하기야 “미안하다”는 말 외에 그 많은 어린 고인들과 유족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잡초적 자율성/문소영 논설위원

    이른 봄엔 잡초라도 파란 싹을 올리면 기분이 좋다. 특히 시멘트 틈을 뚫고 올라오는 모습은 경이롭다. 장미나 목련 등과 같이 정원에서 대접받고 자라지 못해 ‘이름 모를 잡초야’라고 노래하지만, 도시인들이 눈여겨보지 않고 변변치 않게 바라봐서 그렇지 다들 버젓하게 이름도 있다. 잘 알려진 민들레나 꽃다지, 질경이, 제비꽃 말고도 꽃말이, 쇠비름, 쇠뜨기, 큰개불알풀, 애기똥풀, 개망초, 개미자리 등도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이 3월 초부터 노란, 하얀, 보라, 파란 꽃을 피어 올리면 잡초라고 부르기 민망하고, 예뻐서 마음이 환해진다. 지난해 늦가을, 사는 지역의 공원 관리자들이 추운 겨울에 국화를 보호한다며 화단에 볏짚을 엮어 덮어놓았다. 3월에 그 덮개를 벗겨 냈지만, 4월 말에도 아무런 싹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 식물과 흙, 환경의 관계를 잘못 이해해서 한참 생명이 넘쳐나야 할 화단이 텅 빈 것은 쓸쓸하다. 아무런 보호 없이 잡초는 겨울을 뚫고 자신의 꽃을 피운다. 잡초처럼 자율적·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마음이 시린 이 시기를 잘 견뎌내려고 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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