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귀성열차/박홍환 논설위원

    어김없이 또 설이 다가오고 있다. 그제,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서울역에서는 귀성열차 표를 구하려는 장사진이 펼쳐질 게다. 빼곡하게 대합실을 메운 인파가 흡사 제 태어난 강으로 몰려드는 연어 떼를 닮았다. 모두 오늘만큼은 고달픈 세상살이를 잊고 귀성열차를 타고 달려가 만나게 될 넉넉한 고향 품을 그려보겠지. 그나저나 시속 300㎞로 ‘슝’ 번개처럼 고향 땅에 떨궈놓는 KTX 시대에도 1990년대에 시인 신경림이 묘사했던 ‘귀성열차’ 풍경은 남아 있을까. 한강을 넘으면 삶은 달걀을 안주 삼아 초면에도 맥주를 주고받으며 얘기 꽃을 피우고, 모두 아래윗집의 아줌마, 아저씨 같아 정겹기만 했던, 그래서 더욱 기대됐던 그 시절의 귀성열차다. 고향역에 다다를 때쯤이면 어깨를 툭 치며 “잘 살고 있지?” 하며 살갑게 등장하던 그리운 ‘얼굴’도 있었다. 십수년 넘게 외면해온 귀성열차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14일에는 입석과 잔여석을 예매한다니 서울역에 나가봐야겠다. 어릴 적 친구를 조우한다면 더 큰 기쁨이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직장 문화/박찬구 논설위원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었다. 삼겹살을 씹으며 업무 지시를 받고, 술잔을 비우며 선배에게 일의 요령을 귀동냥했다. 자정 너머 마지막까지 남으면 ‘그놈 자세 좋다’, ‘쓸 만하다’라는 입소문이 돌았다. 2000년대에도 한동안 그런 회식 문화가 이어졌다. 회식과 야근은 잦았지만 휴가는 짧았다. 휴가를 신청할 때면 왠지 주눅이 들었다. 개인보다 조직, 나보다 회사의 논리가 먼저였다. 공직에 있는 친구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직장문화 바꾸기 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는 일과 가족, 여가 등이 조화를 이루도록 근로문화를 개선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기업은 회식과 야근을 없애거나 줄이고 휴가를 장려한다고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오는 것일까. 그래도 선후배가 함께 어울리며 부대끼던 회식 자리는 그리울 것 같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20대의 61.2%가 회사에 다니는 목적을 ‘돈벌이’라고 답했다. 50대의 43.0%는 ‘자아실현’을 우선으로 꼽았다. 직장 문화가 바뀐다고 해서 사람 냄새나 열정까지 사라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길섶에서] 버스기사의 와이셔츠/서동철 논설위원

    퇴근길 버스에 오르면 운전기사의 옷차림에 먼저 눈이 간다. 두툼한 옷을 입었으면 안심하지만, 와이셔츠 바람이면 걱정이 앞선다. 한겨울에도 와이셔츠만 입은 운전기사가 모는 버스는 내부가 후끈 달아 있기 마련이다. 더운 바람이 최대한 강하게 나오도록 히터를 틀어놓는 경우가 많다. 정류장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던 손님들이니 처음에는 버스 안의 온기가 반갑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우나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린다. 유난히 더위를 타는 체질 때문이겠지만, 다른 손님들도 겉옷을 벗기도 어려울 만큼 좁은 좌석에 끼어 앉아 편치 않은 표정을 짓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적지않은 운전기사는 버스 안이 ‘찜통 모드’에 접어들어도 히터를 끄기보다 운전석 창문을 연다. 와이셔츠 바람에도 답답할 지경이라면 방한복으로 중무장한 손님들은 오죽할까. 더구나 서울과 경기도 신도시를 오가는 광역버스의 승객석 창문은 대부분 열리지 않는 구조다. 버스기사들에게 자신이 아니라 손님을 중심으로 차 안의 쾌적함을 유지해 달라고 하면 무리한 부탁일까.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세탁기/최광숙 논설위원

    어릴 적 세탁기 있는 집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던 시절도 아니었으니 누군가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 빨래를 할 수 있었다. 지금 같은 겨울철 차가운 물에 빨래를 할라치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 시절 어머니들은 찬물에 빨개진 손가락을 호호 불어가며 빨래를 했다. 그러니 그 이후 세탁기의 출연은 가히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중학교 시절 한 친구는 “시집가면 아버지가 세탁기를 꼭 사주기로 했다”고 자랑했던 기억도 있다. 시중에 나왔어도 고가이다 보니 세탁기를 귀한 혼수품으로 장만하던 시절이다. 그런 세탁기가 이젠 군에도 보급돼 사병들의 손을 덜어주고 있다. 최근 전역을 하루 앞둔 병장이 총기를 손질하라는 상관의 지시를 받고 총을 분해해 옷가지에 싸서 세탁기에 돌렸다가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말년 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얘기가 괜한 소리가 아님이 입증된 셈이다. 전역에 들뜬 그의 눈에는 군인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총이 장난감 총으로 보였나.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어슷썰기/문소영 논설위원

    음력 설날에 해먹을 요량이었던 떡국을 신년 초에 느닷없이 준비해야 했다. 구이용 가래떡을 또각또각 썰었다. 흔히 떡국 떡이나 대파, 오이, 생선 등은 어슷썰기를 한다. 어슷썰기는 음식 재료를 비스듬하게 써는 것이다. 어슷하게 썰면 재료가 더 많아 보이는 효과가 있고, 단면이 넓어져 양념이 잘 밴다고도 한다. 문제는 칼질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가래떡을 어슷하게 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석봉 어머니가 깜깜한 밤에 썰었을 것만 같은 어슷썰기 한 떡은 어른스러운 반면, 동그랗게 썬 떡은 어린이용 떡처럼 보였다. 고심하고 있던 차에 안동과 충주 등에선 동그랗게 썰어서 떡국을 끓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어슷썰기는 동그랗게 썰던 떡에 멋부리기를 한 유행이 굳어진 것이고, ‘전통’은 동그란 떡이라는 것. 떡국 떡은 ‘태양’이나 엽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원형이라야 한다는 해석도 곁들였다. 방앗간에서 기원을 모른 채 어슷썰기를 해놓아 떡국이 통일됐다고 하소연도 했다. 어떤 전통이 진짜인지 헷갈리지만, 동그랗게 썰었다고 잘못은 아니라니 안심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세교(世敎)/정기홍 논설위원

    새해 첫날에 남자 조카들에게 “새해 인사 문자도 안 보내나”라며 메시지를 보냈다. 여조카들의 인사 문자를 받은 터여서 교육 겸 잔소리였다. 한 녀석은 여태 기척도 없다. 바쁜 일이 있겠지라며 웃어넘겨 본다. 새해 인사 문자를 여럿 받았다. 더러 남다른 내용이 있었지만 ‘복 받고, 건강하고, 두루 만사형통하라’는 등의 일상적 문투다. 내가 보내는 새해 덕담 문자는 ‘맞춤형’으로 보내기로 했다. 퇴고하듯 들여다봤다. 지인과의 지난해 일들이 새록새록 와 닿았다. 한 지인의 전화가 왔다. 의례적 문자엔 답을 안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들었단다. 그나마 신경을 썼더니 짧은 문구에 품이 든 걸 알았나 보다. 우리 조상은 ‘세교’(世敎)라 하여 주위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고 한다. 세교 집안, 세교 친구가 그런 유이다. 세교가 도타운 집안 간엔 도장도 바꿔 가졌다니, 이웃 간의 교류를 꽤 중시했던 것 같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문자메시지로 한 해를 보내고 맞는 요즘이다. 나만의 새해 인사 문구를 써 보자. ‘온고지신’(溫故知新) 아닌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우리 동네/서동철 논설위원

    퇴근길 아파트 단지 앞에 태권도장 버스가 멈춰 섰다. 학원 승합차의 문에 옷이 끼여 사고를 당하는 어린이가 늘어나자 안전한 승하차를 법률로 의무화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였다. 버스에선 사범인 듯 태권도복 차림의 젊은이가 먼저 내렸고 초등학교 아이가 뒤따랐다. 두 사람은 대련하듯 마주 보면서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몸짓에서는 법규에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진정성이 읽혔다. 태권도의 기술은 물론 예절까지 제대로 가르치는 모습에 뜻밖의 작은 감동이 일었다. 우리 사회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평범한 아파트 단지인 우리 동네를 보면 여전히 정상적인 것이 많다. 눈 내린 아침이면 누군가 계단을 깨끗하게 쓸어놓는다. 현관에서 마주친 아이들은 처음 보는 어른에게도 머리를 숙여 명랑하게 인사한다. 이런 사회를 비정상이라고 한다면 설득력이 있을 리 없다. 비정상이라는 생각은 오히려 마음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올해는 나와 생각이 다르면 비정상이라는 생각부터 바꿨으면 좋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노트북과 종이책/박찬구 논설위원

    책거리 때는 우유와 카스테라가 빠지지 않았다. 선생님의 덕담은 따뜻했다. 시험 철엔 성적 좋은 친구의 공책을 베껴 가며 벼락공부를 하는 애들이 많았다. 답례는 씩 웃으며 어깨 한 번 툭 치는 것으로 족했다. 묘한 동지애가 오갔다. 쉬는 시간엔 연필 따먹기를 하곤 했다. 삐걱대는 책상 위에서 상대의 연필을 겨냥해 자기 연필을 손가락으로 튕겨 댔다. 연필이 바닥에 떨어지면 환성과 탄식이 엇갈렸다. 기억의 더께에 밴 성장기 소품들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스마트교육 실험학교를 2016년부터 운영하기로 했다. 디지털 교과서에 전자칠판, 태블릿 PC 같은 전자기기가 등장한다. 미국 워싱턴DC 주변 플린트힐 초등학교는 맥북에어에 무선 인터넷, 터치스크린식 칠판을 쓴다. 반면 이웃한 워싱턴 월도프 초등학교는 옛날식 칠판에 자작나무 책상을 고집한다. 두 명문 사립학교 출신 고등학생의 대학수학능력시험(SAT) 성적은 평균 600점 이상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외신은 전한다. 스마트한 충족감이 어울림과 나눔의 소통을 궁핍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길섶에서] 겨울잠/문소영 논설위원

    인간에게 왜 겨울잠이 없을까. 겨울에 안전한 동굴을 찾아 동면에 들어갔다가 봄에 개구리처럼 폴짝 뛰어나오면 될 것을. 왜 원시인들은 추위에 위험한 매머드 사냥을 하는 등으로 고단하게 살았을까 안타까웠다. 그런데 최근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들은 원래 겨울잠을 잤다는 주장이 나왔다. 개구리나 곤충, 박쥐와 다람쥐류, 반달가슴곰 등처럼 인간도 겨울잠을 잤는데, 이제는 유전자에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고 한다. 다만, 이 유전적 흔적은 아데노신 같은 물질이 투입되면 방아쇠가 당겨진 것과 같은 효과를 내 겨울잠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대학에서 겨울잠이 없는 쥐를 실험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꼬리뼈처럼 진화의 흔적으로 남아야 할 겨울잠이 최근 찾아온 것 같다. 동면한 반달가슴곰처럼 졸음이 쏟아진다. 혈압이 낮은 탓에 흐리고 눈 오는 날에는 더욱 그렇다. 진화가 덜 됐나? 아주 먼 미래에 생산력과 효율성이 좋아져 서너 달씩 휴가를 떠날 수 있게 된다면 인간도 한두 달씩 겨울잠을 자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망상을 해봤다. 병원에 가 보는 것이 좋을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부부대화/문소영 논설위원

    부부의 대화 시간이 30분도 안 된다는 한탄이 쏟아졌다. 기혼자 992명에게 물어보니 약 40%가 30분 미만이라는 것. 주요한 이유로 늦은 귀가(34.4%)와 TV, 컴퓨터, 스마트폰 이용(29.8%), 자녀양육(19.2%) 등이 제시됐다. 대화 내용도 자녀교육과 건강, 집안의 대소사가 약 70% 가까이 된다. 2000년대 초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퇴근해 돌아오면 부인과 딱 세 마디를 한다는 이야기가 유행했다. “아는(애는?)”, “밥도(밥 주라)”, “자자”가 그것. 비록 30분 미만이지만 남편의 일방적인 세 마디로 끝나는 과거의 부부에 비해서 얼마나 다행이냐는 생각이 문득 든다. 대화 부재는 시간 탓이 아니다. 해외 연수나 교수 안식년을 함께하는 한가한 부부들은 오붓한 대화 대신 부부 싸움이 잦아지기 십상이다. 하숙생 같던 배우자의 장단점을 몰랐다가 남는 시간에 흠결을 보는 탓이다. 그래서 의도적인 대화단절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러니 없는 시간을 쪼개 대화하고 애정표현을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닭살이 돋는 듯하겠지만, 습관의 동물인 우리는 의외로 잘해낼지도 모른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달력과 시계/정기홍 논설위원

    달력에 얽힌 추억이 어디 한둘뿐이랴. 한해의 농사 일정이 빼곡히 적힌 ‘농가월령가’식 달력은 물론 연예인 달력도 심심찮게 보던 때가 있었다. 방벽에다 풀로 붙이는 한 장짜리 달력은 퍽 진기했다. 맥주회사의 비키니 ‘핀업 걸’ 화보 달력은 눈요깃감으로 그만이었다. 1960~80년 대풍 달력엔 정말 얘깃거리가 넘쳐난다. 최근 걸이용과 탁상용 새해 달력 두 개를 챙겼다. 걸이용은 집에 갖다 놓았는데 영 관심이 없다. 한껏 욕심을 내 고른 것이건만 수고한 손이 민망할 정도다. 달력 인심이 야박해졌느니 어쩌니 하며 한마디씩 거들었던 게 불과 수년 전 아니던가. 아마도 스마트폰 때문이리라. 달력 만큼 시대를 풍미했던 게 손목시계다. 예전처럼 흔히 보는 풍경은 아니지만 요즘도 스마트폰을 들고 시계를 찬 이들을 종종 본다. 혹시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걸 봐야만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는 ‘디지로그족’ 아닐까. 달력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듯하다. 지나간 달력 한 장을 찢어낼 때의 손맛은 종이 달력만의 매력이다. 안방에 달력 하나씩 걸어 놓고 ‘손끝의 세월’을 음미해 보자.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티눈의 반란/박찬구 논설위원

    지름 0.3㎜, 높이 0.1㎜. 오른손 집게손가락 첫째 마디 끄트머리에 볼록렌즈처럼 티눈이 달려 있다. 벌써 몇 개월은 된 듯하다. 손바닥 안쪽에서 눈높이에 맞춰 보면 영락없이 청동기시대 남방형 고인돌을 닮았다. 컴퓨터 자판이나 출입문 모서리에 무심코 부딪힐 때마다 좁쌀 만 한 티눈이 온몸의 신경을 건드린다. 한두 달 전에는 지금의 3배까지 키가 자라 아침저녁으로 찌릿찌릿한 고통이 여간 아니었다. 참다못해 일회용 밴드로 손가락 마디를 감아 티눈을 눌렀더니 눅눅한 피가 찔끔 흘러내렸다. 며칠 뒤 티눈은 가라앉아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러곤 습관이 생겼다. 자판을 두드리는 사이사이, 정확한 단어가 무엇인지 머릿속을 맴돌 때, ‘요놈, 요놈’하며 티눈 머리를 오른쪽 왼쪽으로 쓸어도 보고 버섯 줄기 같은 아랫도리를 들춰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언제쯤 다시 키가 자랄까’, 속으로 실없이 묻는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모를 일이다. 티눈도 정(情)인지, 내 몸 안의 은밀한 반란이 그리운 것인지….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길섶에서] 맛집 유감/서동철 논설위원

    나름대로 맛집을 고르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우선 값이 싸면서 맛있어야 진짜 맛있는 집이다. 값이 비싸면서 맛있으면 당연하고, 값은 비싼데 맛이 없으면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비슷한 원칙은 하나 더 있다. 스스로 밥값까지 내고 나서 맛있는 집인지 판단하라는 것이다. 먹을 때는 그런대로 맛있었는데 밥값을 치르고 나서 입맛이 쓰다면 맛있는 집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맛집을 소개하는 글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온갖 미사여구로 음식 맛을 칭찬해 놓았어도 음식 값을 적어놓지 않으면 신뢰도는 매우 떨어진다. 이렇게 맛과 값의 상관관계가 크지만 맛집 순례기로 명성을 쌓은 사람도 음식 값 정보 제공에는 소홀한 편이다. 유명해질수록 취재 대상 식당에서 밥값을 직접 내지 않아 그런 것은 아닐까. 주말 여행 길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남도의 한정식집을 찾았다. 맛있었지만 서너 가지 음식을 별도 주문해야 하는 영업전략이었으니 밥값은 호됐다. 내가 돈을 낸 것도 아닌데 속이 쓰릴 지경이었다. 이런 식당이 맛집 반열에 올라 있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미리’ 크리스마스/문소영 논설위원

    일요 근무차 나온 오후 간식을 찾아 외국계 패스트푸드점에 들렀다. 역시 간식을 찾아온 사람들로 붐비는 가운데 매장에는 캐럴이 간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평화롭고 기분도 살짝 흥겨워지는 것 같았다. 1997년 겨울 외환위기가 한국을 강타한 뒤로 연말 거리에서 캐럴이 사라졌다는 것이 다수설인데, 또 다른 이야기는 늘 듣던 외국의 캐럴을 사용하면 음원 사용권 등 저작권료를 내야 하는 탓이라고도 했다. 경기가 나빠서 캐럴이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캐럴이 사라져서 경기가 나빠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비슷한 시간대에 5000여명의 경찰이 민주노총에 있는 철도노조 지도부를 잡겠다고 체포영장만 가지고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신문사에 불법으로 난입해 큰 충돌이 벌어졌다. 법원은 건물 수색영장을 기각했다. 인류를 구원할 예수가 태어난 성탄절이 내일로 다가왔다. 최소한 내일은 유리창을 깨는 소리와 위압적인 고함과 공포에 찬 비명이 아니라 평화롭고 즐거운 캐럴이 가득하길 바란다. 하루쯤 앞당기면 더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혈통/문소영 논설위원

    순수혈통을 자랑하는 불도그, 셰퍼드, 세인트 버나드 등 애완견의 모습을 약 100년 전 사진과 비교한 글을 최근 읽었다. 순수혈통 애완견들의 모습은 힐끗 봐도 100년 전과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개량’되었다. 불도그의 얼굴은 과도한 주름에 피부병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린 모습이다. 불도그는 스스로 교미를 못하며 6살이면 죽는다. 개의 평균 수명은 12~15년이다. 한때 2.5m 높이의 벽을 뛰어넘고 25㎏ 정도로 날씬하고 민첩했던 셰퍼드는 지금은 운동실조증에 시달리는 40㎏ 가까운 뚱보가 되고 말았다. 만화영화 ‘하이디’에서 양치기 개로 나오는 세인트 버나드는 불필요한 피부를 갖도록 개량돼 양치기 개로 부적절해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인간이 자신들이 선호하는 애완견 종의 특징을 극대화하기 위해 품종 개량에 개입한 탓이다. 최근 ‘혈통’ 문제가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노비 만적이 살던 고려시대도 아니고 너무 전근대적이지 않은가. 혈통 논란은 실패한 애완견 품종개량 만큼이나 하품 나오는 일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SNS 신선놀음/문소영 논설위원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나무꾼이 깊은 산에 들어갔다가 복숭아 꽃이 만개한 무릉도원의 꽃그늘 아래 바둑을 두는 영감님들에게 훈수를 몇 수 두고 돌아왔다. 그랬더니 도끼 자루는 썩었고 돌아간 고향에는 나무꾼을 아는 사람이 없더라는 이야기 말이다. 요즘엔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서 노는 것이 신선놀음과 비슷하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몇 차례 누르고 좋은 글 밑에 댓글을 몇 차례 달았을 뿐인데 시간이 광속으로 지나갔다. 카카오톡이나 밴드에서 수다를 떨다 보면 역시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연말 답안지를 채점해야 할 교사들, 학회 발제문을 준비하는 학자들, 1차 마감을 놓친 번역 또는 집필원고에 대한 독촉 전화에 시달리는 작가들이 시간 낭비의 원인으로 SNS를 지목하며, 마감에 시달리는 고통을 SNS에 또 호소하고 있다. 마치 게임에 중독된 청소년들 같다. 담배 끊은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고 하듯이 SNS를 끊은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속담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21세기 신선놀음 끊기는 참으로 어렵겠구나.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휴지 한 장/정기홍 논설위원

    우리 민담에 ‘자린고비와 달랑곱재기’란 두 구두쇠 얘기가 있다. 자린고비가 추운 겨울날 구멍 난 창호지를 바를 요량으로 근처에 사는 달랑곱재기에게 ‘올 한 해의 일진을 적어 보내게’란 서신을 보냈다. 보내 온 장문의 서신 종이로 문구멍을 막겠다는 계산이었다. 답신이 오지 않자 자린고비는 달랑곱재기를 찾지만 보낸 서신은 이미 그의 방 문구멍을 막는 데 사용된 상태. 자린고비는 되레 사용한 밥알마저 내놓으란 말만 듣고 나온다. 해학적이지만 자린고비가 길길이 뛰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1998년 IMF발 금융위기 때 ‘아나바다운동’이란 게 있었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꾸고 다시 쓰자’의 줄임말이다. 당시 이 운동은 금 모으기와 함께 암울했던 우리의 심금을 짠하게 울렸었다. 며칠 전 방안의 휴지통에서 뽑은 휴지를 찢은 뒤 쓰는 내 모습을 보고 멋쩍게 웃었다. 이는 아내가 오래전부터 써먹는 것. “휴지를 잘라서 쓰다니···.” 그런 것이 내게 전염된 것이다. 추수를 한 벼 논에서 이삭을 주워 본 이들은 안다. 그 이삭이 사는 데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를.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새엄마/서동철 논설위원

    초등학교 시절에는 텔레비전에서 영화를 지금보다 더 많이 봤던 것 같다. 그런데 뮤지컬 영화는 질색이었다. 어린 마음에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할 스토리의 흐름이 그저그런 노래로 끊기는 것이 싫었다. 이런 생각은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의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면서 바뀌었다. 이 영화는 서울 개봉 당시에도 표를 사려는 관람객이 대한극장을 한 바퀴 휘감았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지금도 배우 줄리 앤드루스를 좋아하는 것도 이 영화의 영향이다. 영화 속의 마리아는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연기한 홀아비 폰 트랍 대령이 키우는 일곱남매의 가정교사로 들어갔다가 결국 엄마가 된다. 웃음을 잃었던 가정에 행복을 만들어 준 것이다. 계모(繼母)라는 단어에서는 음침한 느낌이 난다, 최근 울산에서는 계모의 악행으로 숨진 초등학생 딸의 소식이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나쁜 계모보다는 마리아처럼 좋은 새엄마가 훨씬 더 많다. 계모가 동화책에만 나오고 현실에서는 쓸 일이 없는 단어가 되었으면 좋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짝퉁’의 반격/문소영 논설위원

    ‘진저 백’(ginger bag)은 ‘위트 넘치는 프린트기법을 이용한 것으로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그림과 같은 팝아트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 됐다. 나일론 천에 해외 유명브랜드 가방 사진을 프린트한 것인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원본과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똑같다. 해외 유명브랜드의 가방이 수천만원에서 수백만원인데 진저 백은 수십만원대로 대단히 저렴하다. 일명 ‘페이크(fake) 패션’ 으로 유명브랜드 즐기기다. 영화 ‘블루 재스민’에서 몰락한 상류층과 대비되는 이혼녀 진저의 출연은 진저 백과 맥락을 같이한다. 해외 브랜드 가방이나 옷이 넘쳐난다. 그 탓에 희소성이 사라지고 시시해졌다. 에르메스(Hermes)를 호미(Homies)로, 셀린(Celine)을 펠린(Feline)으로, 구찌(Gucci)를 부찌(Bucci)로 바꿔 프린트한 티셔츠 등 페이크 패션이 인기를 모으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같은 페이크 패션이지만, 진저 백이 욕망을 실현한다면 부찌 티셔츠 등은 욕망을 조롱한다. 짝퉁 삼색줄 슬리퍼를 부끄러워한 세대로서 짝퉁에 대한 적극적 사유가 유쾌하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친구의 시집(詩集)/손성진 수석논설위원

    문학지를 통해 조병화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친구가 시집을 냈다. 상을 여러 번 받을 만큼 문재(文才)를 인정받았지만 직장 일을 하느라 등단 20여년 만에야 틈틈이 써 온 시를 처음으로 묶어 펴낸 것이다. 분수와 부끄러움을 모르고 시를 쓰는 데까지 욕심을 냈던 나는 부러워하면서도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 주었다. 아마추어에게는 쉬운 시가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난해한 시를 볼 때면 ‘좀 쉽게 쓸 수 없을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더러 있다. 그런 면에서 친구의 시는 참 이해하기 쉬워서 좋다. 일상 속에서 소재를 찾아 쉬운 어휘로 쓰기 때문이다. “어눌하고 거동이 불편한 사내가/ 손가락에 검정 때를 묻힌다 /하루에 서른 켤레는 닦아야/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다며/ 자신의 고단한 삶을 닦는다(구두를 닦으며)” 끊임없이 사물을 관찰해서 의미를 전달해 주는 시인은 고독한 철학자와도 같다. 부귀와는 아무 상관없는 고생스럽고 외로운 길을 걸어가는 그들이다. 시인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한편의 시를 읽는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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