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드론/박홍환 논설위원

    비행기에 대한 첫 추억은 단연코 종이비행기다. 특히 맨 뒷장까지 모두 사용해 버린 공책의 약간 도톰한 앞장과 뒷장을 그럴싸하게 접어 날리면 마치 조종사라도 된 듯 여간 뿌듯한 게 아니었다. 그때마다 “떴다 떴다 비행기”를 우렁차게 불러보곤 했다. 그 뒤에도 ‘프라모델’ 비행기는 물론 고무줄을 동력 삼거나 무동력으로 하늘을 나는 소형 글라이더를 조립해 띄우는 등 비행기와의 추억을 이어갔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새의 날갯짓을 관찰해 날개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비행기 ‘오르니톱터’를 구상하고, 20세기 초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인류 최초의 비행에 성공한 이후 비행기의 기능과 목적은 진화를 거듭해 왔다. 언제부턴가 무인비행기 ‘드론’이 뜨더니 급기야 드론끼리 전투를 벌이는 시대가 됐다. 한발 더 나아가 페이스북은 지구 성층권에 드론 1만여대를 띄워 아프리카 벽지나 히말라야 산간 등 전 세계의 ‘인터넷 사각지대’를 없애는 원대한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비행기의 진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손 관상/최광숙 논설위원

    한 전직 관료가 ‘손’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자신은 아랫사람들의 손을 본다고. 손을 보면 일을 잘할지, 앞으로 출세할지 등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속으로 황당한 얘기라고 여기면서도 나도 모르게 무슨 근거로 저런 얘기를 하나 싶어 그가 신임하는 주변 사람들의 손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러자 그들 사이에 어렴풋이 공통점이 보였다. 몸집의 크기나, 키의 크기와 관계없이 비교적 손이 크고, 손에서 에너지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 이후 사람들의 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말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손 모양도 제각각이다. 관상에서 흔히 손을 본다 하면 손금을 많이 보지만, 손의 모양 등을 보는 수상(手相)에 대한 것이 관상학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마의상법’에 나와 있다고 한다. 얼굴 관상도 모자라 수상까지 본 그 관료는 훗날 법정에 서는 등 좋지 않은 일을 겪으면서 고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가 아낀다던, 크고 힘이 넘쳐났던 손을 가졌던 후배도 잘나가지 못하고 일찍 공직에서 나왔다고 한다. 과연 그들은 자신의 미래를 손에서 읽기는 읽었을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노안의 비애/문소영 논설위원

    근시·난시를 교정한 안경을 쓰고 있다. 최근 먼 거리의 사물이 더 안 보이게 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일상화돼 눈만 뜨면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사용한 탓인 모양이다. 안과에서는 연령을 고려해 녹내장 검사도 받으라고 했다. 안구 촬영 결과 시력 약화의 한 원인인 녹내장이 의심됐으나, 6년 전에 촬영한 사진과 비교해 보니 변화가 없어 선천적 안구기형으로 판단한 뒤 녹내장은 아니라고 했다. 의사는 ‘책을 많이 읽느냐’고 물은 뒤, 학생처럼 칠판 글씨를 볼 것도 아니니 근시교정 도수를 확 줄여서 생활의 편리를 도모하라고 권했다. 조언대로 안경을 맞췄더니 3~4m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아 눈뜬 봉사나 다름없어졌다. 멀리서 보고도 반갑게 달려가 인사해야 할 지인들의 얼굴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쌩하니 지나치게 된다. 평소 까칠하다는 평가인데 이제 목도 뻣뻣하다며 더 많은 손가락질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말년에 독거노인 신세나 고독사를 면하려면 친구나 후배와 가깝게 지내는 것이 최고라는데, 노안 교정으로 다 떨어져 나갈까 걱정스럽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도그TV/박홍환 논설위원

    어릴 적 집 마당은 나와 ‘그’의 놀이터였다. 놀다 지치면 나는 방으로, 그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학교에 갔다 돌아올 때쯤 되면 용케 알고 대문 안쪽에서 기다리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어머니 몰래 방안에 ‘그’를 들여 언 몸을 녹여주다 혼쭐나기도 했지만 어머니 역시 나고들 때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랑스러워했다. 믹싱 스피츠견(犬) ‘루비’는 이름 그대로 우리 가족에겐 보석 같은 존재였다. 문득 40여년 전 학교에 가 있는 시간, 루비가 뭘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궁금해진다. 아마 동네를 자유롭게 쏘다녔을 것이다. 이제 반려견들에게 그런 ‘자유’는 허용되지 않는다. 혼자 나다니기는커녕 목줄을 하지 않고서는 바깥세상 구경도 못할 판이다. 한나절 집안에 혼자 남은 반려견들을 위한 ‘도그TV’가 국내에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화면의 명암, 소리, 주파수 등을 개에게만 맞춘 유료방송이란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현실이다. 오늘도 우리 시추견 ‘돌이’는 집에서 그런 소식이 나오는 라디오를 듣고 있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할아버지의 졸업 선물/최광숙 논설위원

    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다. 얼마 전 그 교장 선생님이 재직 중인 학교의 졸업식을 이틀 앞두고 한 할아버지가 학교를 찾아오셨다고 한다. 그 학교는 28년 전 할아버지의 딸이 공부를 마친 곳이다. 그런데 이번에 또다시 손주가 그 학교를 졸업하게 됐다. 가슴 뭉클해진 할아버지의 고민이 시작됐다. 자식과 또 그 자식의 자식을 잘 가르쳐 준 학교에 대한 고마움을 뭘로 보답할까. 결국 화가인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상의 끝에 유화 한 점을 그려 학교에 기증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마침내 작업이 끝난 후 예쁜 꽃들이 그려진 그림을 손수 들고 교장실을 찾은 백발의 할아버지가 말했다. “매일 이 꽃들을 보시고 좋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쳐 주세요.” 누가 요즘 졸업식이 삭막하다고 했나. 이 할아버지의 ‘통 큰’ 손주를 향한 사랑은 이제 그 초등학교에 영원히 머물 것이다. 꽃들을 보고 마음이 환해진 교장 선생님이 선생님들께 사랑을 베풀고, 그 선생님들의 사랑은 아이들에게 온기로 전해지지 않겠는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SNS 노출/정기홍 논설위원

    온라인상에 짧은 글을 올렸다가 다소 격한 댓글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20대의 글로 짐작된 터라 “조심해 써라”며 끝냈지만 반박 글을 쓰다가 지우기를 여러 번 했다.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닐 ‘뒤탈’이 우려됐다. 시간이 지난 지금 언짢았지만 괜한 호들갑을 떨었다는 생각도 든다. SNS 등 온라인에선 지금도 역기능과 순기능이 교차하며 페이지를 엮어 가고 있지 않은가. 며칠 전에 30대 남성이 한때 동거했던 여성의 병실 사진을 SNS에서 찾은 뒤 살해한 일이 있었다. 숨진 여성의 친구가 찍어 SNS에 올린 것을 그 남성이 ‘친구찾기 앱’을 통해 알아냈다고 한다. 숨진 여성은 그동안 범인의 접근을 수없이 차단했지만, 친구가 올린 사진 한 장이 화근이 돼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온라인상에 나의 것은 물론 남의 일상을 올리는 일이 많아졌다. 친구 등 지인이 대수롭지 않게 올린 ‘나의 신상’이 부지불식간 범죄의 단초로 악용될 수 있는 세상이다. 숨진 여성의 친구도 입원 사실을 다른 친구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을까. 촘촘한 온라인 세상, 챙겨야 할 것도 많다. ‘자나 깨나 SNS 조심’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기생충 검사/문소영 논설위원

    늦가을에 가족 모두 구충제를 먹는다. 농약이 일상화된 탓에 기생충도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신선한 채소를 즐겨 먹는 가정에서는 연례행사로 복용하기도 한다. 구충제를 먹지만 설마하니 몸속에 기생충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생각이 완전히 전복됐다. 최근 13세 소년의 몸에서 나온 3.5m 촌충의 사진과 함께 언론보도가 있었다. 충격적이다. 담당의사는 소년의 변 검사로 ‘광절열두조충 기생충 알’을 발견해 구충제를 먹였다고 했다. 이 촌충은 연어, 숭어, 송어 생선회 등 익히지 않은 생선을 먹어 감염되는데, 반드시 변 검사를 해야만 촌충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단다. 매년 구충제를 먹어도 촌충과 같은 기생충은 박멸이 안 된다니 별도의 조치가 필요하다. 40·50대 중년의 학창시절 악몽 중 하나는 채변봉투 제출이었다. 봄철이면 전학생을 대상으로 기생충 검사를 한 것이다. 꾀를 내 개똥을 냈다가 엄청난 양의 구충제를 먹었던 친구도 있었다. 세상에 첨단기술이 난무해도 아날로그적인 검사와 대처가 필요한 지점이 있는 모양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봄단장/정기홍 논설위원

    집안에 도배를 하기로 했다. 벽지의 색깔이 군데군데 바랬는데, 세간살이에 묻혀 잘 띄지 않아 잊고 지냈다. 벽지가 무심함을 어지간히 탓했을 법도 하다. 서재의 책장도 바꾼다. 이쯤 되니 벽에 걸린 그림이며, 오래된 것 모두가 눈에 밟힌다. 다가선 봄이 많은 걸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도배를 결정하니 고려할 게 많다. 업체에 맡길지 직접 할지도 고민거리다. 이맘때 도배를 도왔던 기억이 와 닿는다. 벽지와 문종이(창호지)를 사고 풀을 끓이고, 빗자루로 처마에 낀 거미줄을 떼고···. 가족이 겨울철 묵은 때를 벗긴다며 온종일 야단스러웠다. 당시엔 창호지를 다시 바를 땐 칙칙해진 벽지도 함께 바꾸었다. 겨우내 눈으로 덮여 있던 냇가의 찌꺼기를 치우는 봄맞이 마을 대청소도 비슷한 시기에 했다. 미세먼지가 자욱한 바깥세상이지만 벌써 대기는 춘풍화기(春風和氣), 봄의 기운을 머금었다. 음의 기운이 양의 기운으로 바뀌는 이 시절, 대청소는 아닐지라도 심기일전할 봄맞이 소일거리를 만들어 봄직하다. 도배 일이 다가온다. 옛 솜씨를 발휘해 볼까 고민 중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역방향 열차석/박찬구 논설위원

    최근 KTX 역방향 좌석을 탔다. ‘코레일톡’으로 순방향을 뒤졌지만 남아 있지 않았다. 일전에 역방향을 탔다가 현기증을 느꼈던지라 잠시 주저했다. 시간을 따져보니 도리가 없었다. 특실은 사양하고 서울로 가는 일반석 역방향에 몸을 맡겼다. 역방향이 왜 탐탁지 않은가. 속시원히 자답(自答)하지 못했다. 바꿔 물었다. 순방향이 편한 이유는 무엇이냐고. 앞만 보고 달리는 데 익숙해진 탓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회와 무리의 흐름을 놓칠세라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시신경과 뇌세포가 앞길만 응시하는 데 길들여진 건 아닐까. 역방향의 생소함이 순치의 관성을 어지럽혔을지 모를 일이다. 미욱한 노릇이다. “나, 다시 돌아갈래.” 설경구는 영화 ‘박하사탕’에서 뒤로 가는 흑백 열차에 의식을 실었다. 지나온 길을 짚어보면 갈림길이며 사잇길이며 되돌리고 싶은 지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간과 세상의 이치가 이를 허용할 리 없다. 다만, 역방향의 시선으로 과거에 비춰가며 현재를 살아야겠다는 남루한 의지를 떠올릴 뿐이다.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길섶에서] 편지 단상/정기홍 논설위원

    군인 아들이 산골 부모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방송에서 보다가 편지 추억을 회상했다. 아들은 편지지에 군 동료와 함께 찍은 사진을 붙이고 안부 글을 담았다. 사진에서 모든 걸 보여주려는 듯 내용은 의외로 간단했다. 신세대의 안부 수단은 역시 글이 아닌 듯하다. 끙끙대며 썼던 첫 연애편지 소동이 머리를 스쳤다. 편지가 동명이인에게 배달돼 얼굴이 화끈거렸던 일이다. 누군들 공들였던 편지 추억 한둘이 없을까 싶다. 편지 단상은 편지봉투로 이어졌다.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뜸하다 보니, 변두리 저편으로 나앉아버린 게 편지봉투다. 경조사용이 아니면 쓰임새조차 찾기 힘들어졌다. 제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편지에 얽힌 추억은 잊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경주 리조트 붕괴사고로 숨진 학생의 아버지가 “원망은 거두자”며 탄원서와 같은 편지를 썼다고 한다. 아버지는 “딸아이를 대신해 쓴 연서로 봐달라”고 했다. 숙연해진다. 남북한 이산가족 만남의 행사가 진행 중이다. 통곡을 하고 헤어지는 모습을 보며 편지를 생각한다. 이산가족이 편지라도 주고받을 통로는 못 만들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마야부인/서동철 논설위원

    불교를 신라의 국교(國敎)로 끌어올린 진흥왕은 인도신화에 나오는 이상적인 제왕 전륜성왕을 자처했다. 태자의 이름은 동륜이었는데, 이 역시 전륜성왕을 이른다. 동륜은 보좌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 아들 백정이 왕위에 올랐으니, 곧 진평왕이다. 백정은 인도 카필라국의 왕이었던 석가모니의 아버지 이름이다. 그러니 진평왕비 김씨를 석가 어머니의 이름을 따 마야부인이라고 부른 것은 자연스럽다. 진평왕은 딸 셋을 두었는데, 덕만, 천명, 선화 공주다. 잘 알려진 대로 덕만은 선덕여왕이 됐고, 선화는 백제 무왕과 익산 미륵사 설화를 낳았다. 부여 왕흥사터에서 석가를 출산하는 마야부인을 연상케 하는 작은 청동상이 나와 화제다. 왕흥사는 무왕이 대가람으로 발전시킨 절이다. 2009년 출토된 미륵사탑 사리기는 무왕과 선화의 로맨스를 확인시켜 주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설화를 완전히 부인하는 증거도 아니었다. 여전히 설화 내용을 믿는다면 성왕에게 진평왕비 마야부인은 장모가 된다. 상상력을 발휘하면, 왕흥사의 마야부인상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잠/문소영 논설위원

    요즘 젊은이들은 대개 올빼미족이다. 키가 크고 피부도 좋아진다는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의 수면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그들은 자정 무렵에 오히려 눈이 반짝반짝해진다. 밤늦게 학원에서 귀가한 학생들이 숙제를 마무리하고 컴퓨터 게임을 하며 한숨을 돌리던 습관이 굳어진 탓이다. 고등학생의 수면시간이 2년 새 1시간이나 줄어 지난해 하루 평균 5시간 27분에 불과했다고 한다. 고교 평준화 이전에 학교를 다닌 50대 이상 세대들은 “우리 때도 ‘4당5락’(4시간 자면 대학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라 잠을 많이 못 잤다”며 5시간 정도면 충분하다고 할지 모른다. 하루는 24시간으로 한정돼 있으니 더 많이 공부하려면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충분한 수면은 양질의 기억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시험기간에 날밤을 지새우며 벼락치기로 공부를 해도 성적이 나쁜 것은 애써 외운 정보가 잠을 자지 않으면 제대로 저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사교육에 내몰리는 안쓰러운 청소년들에게 감히 6시간의 수면을 권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4만7000원/문소영 논설위원

    가수 이효리가 4만 7000원을 자필 편지와 함께 아름다운 재단에 보낸 것이 화제다. 아름다운 재단은 회사에 47억원을 손해배상해야 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쌍용차 노조를 돕고자 ‘10만명이 1인당 4만 7000원을 모으자’는 ‘노란봉투’ 운동을 하고 있다. 연말 주부 배모씨가 한 시사 주간지에 이런 취지를 제안하는 편지와 자녀 학원비를 아껴 마련한 4만 7000원을 전달하면서 시작된 모금활동이다. 이효리의 효과는 컸다. 동참자가 급증해 19일 ‘노란봉투’ 모금액은 2억원을 돌파했다. 이효리는 편지에서 “너무나 작은 돈이라 부끄럽지만, 한 아이 엄마의 4만 7000원이 제게 불씨가 됐듯 제 4만 7000원이 누군가의 어깨를 두드리길 바랍니다.(중략) 모두가 모른 척하는 외로움에 삶을 포기하는 분들이 더 이상 없길 바랍니다. 힘내십시오”라며 끝맺었다. 살림이 어려워도 적십자 회비나 수해의연금을 내던 따뜻한 마음이 계속돼 사회비판적인 영화도 만들고, 노조의 손해배상금도 대신 갚으려는 세상이 됐다. 노란봉투의 자동이체 계좌를 확인해 얼른 동참해 볼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단팥빵과 갱엿/정기홍 논설위원

    중학생 때 기억을 꼽으라면 단연 풀빵을 사먹던 일이다. 학교 근처 시장통의 허름한 가게에서 할머니 홀로 팔았는데, 단팥죽을 얹은 풀빵 맛은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책가방을 옆에 낀 채 ‘풀 방구리 쥐 드나들 듯’ 가게에 들러 사먹곤 했다. 지금도 고향에 들를 때면 할머니가 앉았던 자리를 눈여겨보며 지나치곤 한다. 갱엿은 수업을 파하고 통학열차를 기다리는 동안의 맞춤한 군것질거리였다. 고구마 등을 곤 건데, 딱딱하게 굳어서인지 ‘강엿’이라고 불렀다. 주먹만 하게 떼어주던 가게주인 아주머니가 당시엔 그렇게도 부러울 수 없었다. 지금은 만나기 힘든 맛들이다. 요즘 때아닌 단팥빵 열풍이 불고 있다. 한두 달 새 주요 지하철 역사에 단팥빵 가게가 하나둘씩 생기더니 지금은 빵을 사려는 긴 줄이 생기고, 구수한 빵 냄새는 역사를 가득 메운다. 색다른 지하철 정취다. 기존 빵과 달리 천연효모 반죽을 써 인기라고 한다. 군중심리 때문이라고도 한다. 누구는 복고바람이라 했다. 그 맛이 어떤지 궁금하다. 옛 풀빵 단팥 맛을 깨뜨리지는 않을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전쟁용어 유감/박찬구 논설위원

    ‘직격탄’, ‘교두보’, ‘뇌관’, ‘아군’, ‘격전지’…. 최근 중앙일간지 정치면에 등장한 용어들이다. 전쟁영화에나 제격이다. 또 선거철인가 싶다. ‘실탄’(선거자금), ‘공중전’(중앙당의 지원) 같은 단어도 조만간 쓰일 듯하다. ‘솔까말’, ‘지못미’, ‘개드립’처럼 인터넷의 자의적인 변형과 파괴로 몸살을 앓는 한글의 시름이 갈수록 깊다. 지난 대선 직후 한국언론학회가 펴낸 대선보도 평가보고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선거보도의 하나로 ‘전략적 용어를 주로 사용하는 보도’를 꼽았다. ‘벼랑 끝 최후통첩’, ‘승부수’ 등 선거를 전투와 게임으로 묘사하는 전략적 용어는 정치 냉소와 선거 불참을 부추긴다고 했다. 글은 현실을 반영한다. 때론 현실을 재구성한다. 시대 변화를 담은 ‘변용한글’은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허허벌판인 우리 정치와 선거를 규정하기에 자극과 극단의 전투용어가 어울린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를 혐오와 불신으로 틀 짓기할 생각이 아니라면 과장과 극화(劇化)의 유혹에서 이젠 벗어날 때도 됐다.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길섶에서] 동명이인/문소영 논설위원

    밴쿠버와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500m 여자에서 금메달을 딴 ‘빙속 여제’ 이상화란 이름으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일제강점기의 시인 이상화를 떠올릴 수 있을까. ‘레오나르도’라고 하면 영화배우 ‘디카프리오’를 연상하는 사람도 있고 16세기 르네상스시대 화가 다빈치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사람의 감수성은 저마다 다르다. 누구를 먼저 떠올리느냐에 따라 연령대도 알 수 있다. 김수현이란 이름에서 ‘대발이 아빠’를 창조해낸 여성 작가 김수현을 연상하면 40대 이상, TV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김수현을 떠올리면 필경 20~30대다. 동명이인이라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과 ‘북천’(北天)의 시인 유홍준도 빼놓을 수 없다. 인물정보 서비스 등에서는 유명인사가 먼저 뜨고 나머지는 동명이인으로 일괄 처리된다. 동명이인 탓에 종종 억울한 구설수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길 잃은’ 이메일이나 전화로 인한 해프닝도 벌어진다. 예기찮은 동명이인과의 얽힘 또한 세상사는 재미가 아닌가.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유행성 결막염/박찬구 논설위원

    사나흘 전부터 양쪽 눈이 빨갛다. 오른쪽 눈의 실핏줄이 서더니, 다음 날엔 왼쪽 눈으로 퍼졌다. 옅은 오미자차 색깔이던 양쪽 눈은 하루가 지나자 레드 와인 색으로 변했다. 안과에서는 유행성 결막염이라고 진단했다. 환자가 줄을 잇는단다. 뻑뻑하고 간지럽고, 눈이 불편하니 몸도 생활도 궤도를 벗어난다. 하루 서너 차례 고개를 90도 가까이 뒤로 꺾어 부릅뜬 눈 안으로 점안액을 정조준하는 일부터 까다롭고 적응이 되지 않는다. 새고 흘리기 일쑤다. 실핏줄에 물들어 붉어진 안약이 뺨으로 흐르는 착각에도 빠진다. 유행을 퍼뜨리고 싶지 않아 ‘불가촉’(不可觸)을 자처하니 영락없이 뒤주에 갇힌 꼴이다. 눈이 빨갛다고 세상이 붉게 보이랴마는, 정신이 온통 눈에 팔려 있는데도 하늘은 어제처럼 파랗고 흰 꽃은 여전히 하야니 홀로 동떨어진 느낌이다. 잡념이 이에 미치니 눈병 하나로 웬 호들갑이냐며 마음에서 핀잔이 오간다. 옛 선비는 고황에 병이 깊어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는데 말이다. 부끄러움에 얼굴까지 붉어진다.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길섶에서] 네일 아트/문소영 논설위원

    이상화 선수가 동계올림픽 500m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경기를 2연패해 ‘빙속 여제’ ‘여전사’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경기를 보다가 파워의 원천인 오리 궁둥이와 20대 여성의 허리 굵기만 한 탄탄한 허벅지에 감탄하는 도중 이 선수의 아름다운 손톱에 눈길이 끌렸다. 차분하게 1차 시기를 기다리는 이 선수를 향해 카메라가 돌아갈 때 붉고 기다란 손톱 위에 크리스털이 박힌 듯 반짝거리는 현란한 네일 아트를 잠깐 볼 수 있었다. 러시아 소치로 떠나기 전에 공개된 화보에서 패션모델 같은 화려한 아름다움을 뽐냈던 이 선수다운 손톱이구나 싶었다. 취미가 네일 아트라고 했다. 남자 선수들과 똑같이 170㎏의 바벨을 들며 체력 훈련을 하고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쫄쫄이 운동복을 입어야 하는 환경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할 공간이 작은 손톱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그 시간에 운동을 더 해야지”라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상화의 혁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유에서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과잉 몰입/최광숙 논설위원

    최근 어딘가에 갔다가 한 시간여 동안 속절없이 기다린 적이 있다. 처음에는 10, 20분이면 될 일이 길어지니 다시 돌아갈까 고민도 했지만 끝까지 남아 그 일을 마쳤다. 일을 마무리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생각해 보니 허비한 시간이 너무 아깝다. 다음 날 그 일을 해도 되고, 사실 그곳이 아니어도 다른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단지 그동안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조금 더 하다가 결국 끝까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은 주변에서 종종 일어난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다른 결정을 하는 것이 훨씬 나은데도 그동안 투입한 시간과 정성이 아까워 잘못된 길을 밀고 가는 경우 말이다. 도박꾼이 ‘본전’ 생각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큰돈을 잃는 것도 마찬가지리라. 심리학자들은 이런 것을 ‘과잉 몰입’이라고 한다. 어떤 의사 결정이나 행동에서 과잉 투자를 했을 때 손실이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가끔 자신을 냉철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쓸데없는 일에 ‘과잉 몰입’하는 것은 아닌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어느 부부/정기홍 논설위원

    무릇 지고는 못 사는 게 부부 사이라고 한다. 자잘한 다툴거리가 하루가 멀다 하고 생긴다 하여, 예부터 참을 인(忍)자는 부부지간에 금언(言)으로 여긴다. 허물없어 말을 주고받고, ‘직구성 어투’가 많기 때문일 성싶다. 며칠 전 30대 부부가 음식점에서 심하게 다투는 것을 보면서 부부간의 관계를 새삼 떠올렸다. 귀동냥을 하니 남편이 기백만원의 돈을 허투루 쓴 모양이다. 남편을 향한 아내의 냉소적 언성은 장장 20여분이나 이어졌다. “저렇게 심하게 몰아붙여도 될까” 싶을 정도였다. 남편의 자존은 온데간데없고, 손님들은 애써 못 본 척한다. ‘부부싸움은 개도 안 말린다’고 하지 않는가. 끓어오르는 화를 못 참는 듯 아내가 벌떡 일어났다. 이내 계산을 끝낸 아내는 남편을 나오라고 부른다. 또 한번 언성이 높아질 줄 알았는데 화풀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술잔만 기울이는 남편이 일어나길 20여분을 선 채 기다린다. 아내의 반전이 진하게 와 닿는다. 막혔던 속이 후련해졌기 때문일까. 남편은 아내의 ‘무언의 기다림’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옹다옹 다투면서도 정 붙이며 사는 게 부부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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