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이별/문소영 논설위원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정신적 장애가 있다는 연구가 있다. 값비싼 물건을 잘 잃어버리면서도, 일단 소유한 물건을 냉정하게 버리지 못하는 성향이 있다. 해외 호텔에서 가져온 여행용 지도, 오려놓은 신문조각 등 깊이 애정을 쏟지 않은 물건들도 막상 버리려고 하면 왠지 아쉽고 조만간 필요할 것 같아서 쌓아둔다. 주변이 늘 어수선한 이유다. 쌓아둔 자료는 버리면 꼭 일주일 안에 필요하게 되는 징크스 탓에 더 꺼린다. 최근 정리정돈의 고민은 구두다. 신발을 깨끗이 2~3년 신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6개월 만에 헌 신발을 만드는 발에 톱 같은 것이 달린 사람도 있다. 발로 뛰어야 하는 취재기자라서 그렇다고 애써 변명을 하지만 평생 함부로 신발을 신어왔다. 6개월 만에 낡아 버린 구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신발장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더니 이제는 더 쌓을 데가 없다. 사치스러웠던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처럼 해외 브랜드의 값비싼 새 구두도 아닌 발 고린내가 물씬한 낡은 구두가 가득한 신발장이라니…. 여름도 다가오고 고약한 냄새 탓에 미련을 버리고 이별해야 할 텐데, 할 수 있을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세월호 식사권/진경호 논설위원

    늦은 밤 둘째 아이가 집에 돌아와서는 대뜸 명함만 한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응? 뭐니? 두 시간째 TV 속 진도 앞바다에 박아 놨던 눈을 돌려받았다. ‘뷔페식사권-세월호.’ 아이가 넉 달 전 친구 세 명과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며 탔던 배가 세월호였던 것이다. “그래? 네가 탔던 배가 바로 저 세월호였어?” 신산한 밤을 넘기고는 소파 옆 탁자에 놔뒀던 식사권을 다시 집어들었다. 밤엔 미처 보지 못했던 아이 글씨가 여백에 적혀 있었다. ‘명복을 빕니다.’ 지난밤 말끝을 흐리던 아이가 생각났다. “배 내부가 복잡해요. 배가 뒤집혔으면 아마… 몰라.” 그랬다. 아이는 기도를 했던 것이다. 내게 세월호 식사권을 불쑥 내미는 자기 방식으로…. 배 안의 동생 또래들이 기적을 만들기엔 힘이 부칠 거란 생각에 명복을 빌면서도 그래도 한 번 기적을 만들어 보라고, 제발 좀 어른들이 어떻게든 해보라고, 아빠에게 세월호의 흔적을 건네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주술로 기도한 것이다. 먹먹한 날들이다. 진도 앞바다는 어찌 저리도 울렁대기만 하는가.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발산역 할아버지(2)/정기홍 논설위원

    10여일 전에 쓴 ‘발산역 할아버지’ 글의 당사자인 할아버지에게서 작은 변화가 생겼다. 역사의 구석 계단에 홀로 앉은 할아버지 앞에 최근 며칠간 천원권과 동전이 하나둘 놓이고 있다. 이전엔 못 보던 광경이다. 지나는 이들이 글의 당사자가 할아버지임을 알게 됐을까. 퇴근길에 짐을 챙기는 할아버지에게 관심을 보였건만 본체만체 묵묵부답이다. “귀가 어두우신가”해서 말을 더 붙이지는 못했다. 혹여 굳게 닫은 할아버지의 속마음마저 흔들어 놓을까 조심스러웠다. 할아버지의 글에 “마음 아프게 읽었다”는 독자들의 메일이 많았고, 기부 사이트를 소개한 이도 있었다. 지인들로부턴 “글이 너무 감성팔이를 했다”느니 “용돈을 듬뿍 드렸어야지” 등의 타박도 들었다. “세상이 만만하게 보일 아침나절 말고, 저녁쯤에 다시 읽어 보라”는 말로 떠넘겼다. 남을 돕는 데 ‘있는 사람’이 더 인색하다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 앞에 놓인 푼돈이 역사를 오가는 인근 전문대 학생들의 작은 관심이라 짐작한다. 이 ‘작은 관심’이 할아버지의 말문을 열고 아랫목 따듯한 보금자리도 찾아야 하겠다. 동전의 힘을 기대해 본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자동차 15년 타기/서동철 논설위원

    자동차를 사서 15년 동안 달린 거리가 34만Km쯤 된 것 같다. 주행거리를 합산하는 적산거리계는 27만Km에 접어들었을 때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지금은 20만Km를 가리키고 있으니 계산이 나온다. 달릴수록 회춘하는 차라고 농담하지만, 이 상태로 중고시장에 내놓으면 주행거리를 조작한 사기꾼으로 몰려도 할 말이 없다. 친구들이 측은한 눈길로 차를 바라보면 “겉은 낡았어도 속은 멀쩡하다”고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하곤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엔진과열로 냉각수가 끓어 넘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동네 정비공장 아저씨는 “이 차에 더 이상 돈을 들이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완곡했지만 분명한 ‘사망선고’였다. 그래도 이것저것 해보다 엔진오일이 조금 부족한 것을 발견했다. 무슨 관계가 있겠나 싶었지만, 버리는 셈치고 오일을 사다 부었다. 꺼져가는 차의 목숨이 안타까웠다기보다는 두 달 전 갈아 끼운 새 타이어가 그냥 버리기엔 아까웠을 게다. 신통하게도 차는 다시 살아났다. 거창하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누가 들으면 웃겠지만….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간절한 다그침/서동철 논설위원

    퇴직한 선배가 오랜만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왔다. 반가운 마음에 열어 보니 뜻밖에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여객선에서 아직 구조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문이 담겨 있었다. 설명은 없었지만, 절대자의 마음을 움직여 배에 갇힌 사람들이 살아올 수 있도록 작은 염원이라도 모으고 싶다는 소망이 읽혀졌다. 기도문을 받아볼 후배가 예수그리스도보다는 석가모니 부처와 더 친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배가 아닌가. 그럴수록 간절한 바람을 전해 기적을 이끌어 내려는 그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기도문은 관념적인 것 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주님께서 풍랑을 잠재워 주시고, 바다의 수온이 따뜻하게 유지되게 하시어… 모든 구조대원의 눈을 밝히고 지혜 가운데 충만케 하시라”는 대목은 지금 우리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희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다 하신 주께서 신실하게 일하실 줄 믿으며 기도한다”는 마지막 구절은 감동적이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절대자의 의무’를 다하라는 ‘간절한 다그침’이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나무관세음보살/서동철 논설위원

    과거 먼바다를 오가는 뱃사람들은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중국은 물론 제주를 오가는 항해도 목숨을 내놓아야 할만큼 위험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동안 가장 중요한 예배 대상은 관세음보살이었다. 법화경의 ‘관세음보살 보문품’은 ‘만일 큰 물속에 떠내려가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곧 얕은 곳에 닿게 된다’고 가르쳤다. 또 ‘백천만억 중생이 큰 바다에 들어갔을 때, 가령 폭풍이 불어 배가 아귀의 나라에 떠내려가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있다면 모두 재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약사여래본원경’에도 구원의 약속이 보인다. 약사여래에 앞서 서원한 선명칭길상왕여래는 ‘중생이 강과 바다에서 모진 바람을 만나 배가 뒤집히려하고… 공포에 쌓였을지라도, 능히 진실한 마음으로 나의 이름을 부른다면 모두 편안한 곳에 이른다’고 했다.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여객선에 많은 사람이 갇혀 있다. 꼭 불교의 관세음보살이 아니더라도 절대적 권능을 가진 누군가를 불러보고 싶은 날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지독한 감기/손성진 수석논설위원

    감기약도 귀하던 어린 시절에 감기에 걸리면 어른들은 찬바람을 쐬지 말라고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뜨거운 설탕물을 주셨다. 그렇게 해서 땀을 흘리고 나면 감기가 쉬 낫기도 했다. 이처럼 조상들은 열이 나는 ‘고뿔’에 걸리면 열을 더 올려 땀을 내는 발한(發汗) 요법을 썼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찬 음료를 먹고 찬물에 목욕하는 정반대의 요법을 쓴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를 병으로 알아주지도 않는 사람들이 가장 야속하게 느껴진다.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면 낫는 게 감기라고 말하지만 사실 감기는 무서운 병이다. 1918년부터 5년 동안 전 세계에 번진 스페인 독감에 감염된 사람은 6억명에 이르렀고 2차 세계대전 사망자보다 많은 2129만명이 숨졌다고 한다. 몸살을 동반한 지독한 감기에서 2주 만에야 벗어났다. 중병에서 완쾌된 사람이 새로운 삶을 얻었다고 말하는 심정을 알 것 같다. 감기가 큰 병은 아닐지라도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것 같은 해방감은 어떤 기분과도 비교할 수 없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교훈이 새삼 다가온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꽃 축제/박홍환 논설위원

    사방 천지가 꽃이다. 겨우내 회색 살풍경에 신물난 눈은 신나게 오색 꽃을 좇는다. ‘화란춘성(花爛春盛)하고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 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경개(山川景槪) 구경가세’ 옛 선조들의 권함이 없더라도 발길은 절로 온갖 꽃이 흐드러진 봄날 경치를 향한다. 산 정상에 거대한 진달래 군락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어디쯤의 그리 높지 않은 산에 올랐다. ‘진달래 축제’를 앞두고 있어선지 꽃산이 아니라 사람 산이다. 황망했다. 사람 숲 건너편 진달래향에 황홀할 틈도 없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다가오면서 전국 각지의 꽃축제가 그야말로 성황이다. 5월말까지 열리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봄꽃축제만 30여개에 이른다. 소규모 꽃축제까지 열거하면 그 갑절은 될 듯싶다.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을지 끔찍하다. “산천경개 구경가자”는 유산가(遊山歌)는 옛사람들의 풍류일 뿐일까. 그런데 정상에선 볼 수 없었던 진달래가 내려와 다시보니 산 전체를 연분홍색으로 물들여 놓았다. 연간 7조원대를 넘어선 아웃도어 열풍 속 꽃축제 감상법을 이제야 알았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황사 마스크 단상/박찬구 논설위원

    봄은 황사로 온다. 아지랑이나 진달래는 반나절이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 박남준의 맑은 한가(閑暇)와는 멀어도 한참 멀다. 계절을 보내고 또 맞는 설렘의 갈피를 황사가 보란 듯이 헤집는다. 며칠 전 약국에서 황사 마스크를 샀다. 안경 김서림을 막는다기에 혹했다. 사무실 여기저기 흩어진 마스크가 이미 3개나 되는 데도 말이다. 보온 겸용에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마크를 새긴 마스크까지. 그런데 아뿔싸, 지난 주말 ‘황사마스크 주의보’라는 기사가 떴다. 황사 주의보가 아니라 마스크 주의보란다. 3개 중 1개가 불량이라니…. 듣고 보는 것이 이데올로기였던 적이 있다.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거스르면 치도곤을 당하던 때였다. ‘시·대·변·명.’ 막고 싶어도 막지 못하는 황사의 도래에 의지와 신경이 움찔한다. 최소한의 보호 본능마저 불량 마스크의 위세에 주저앉는다. 일상의 체념에 인이 박인, 자디 잔 염량이라니. 여린 마음에 도리 없이 황사에 묻는다. ‘황사야, 내 마스크는 어떠냐, 나는 안전하냐.’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예수의 아내/문소영 논설위원

    기독교인에게 크게 욕 먹을 생각이지만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돼 태어났다는 것은 신화가 아닐까 한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이유는 그런 신격화가 아니라, 하늘의 뜻을 땅에서 이루려는 의지와 노력, 실천력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의 아들 예수’보다 ‘인간의 아들 예수’가 가난한 사람을 더 많이 천국으로 인도할 것만 같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해 상처에 손을 넣어본 도마처럼 믿음이 부족하고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신학계에서 2012년 공개된 이래 진위를 두고 논란이 됐던 콥트어로 작성된 파피루스 파편이 기원 전후에 쓰인 진품으로 확인돼 화제다. 문서에는 예수가 ‘나의 아내’를 언급하고, “그녀는 제자가 될 수 있을 것, 마리아는 그럴 만 하다”는 놀라운 내용이 들어 있다. ‘인간적이고 공정한 예수’다. 신학자들은 ‘나의 아내’란 발언이 예수가 결혼했다는 흔적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상관없다. 다만 예수가 여제자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사제는 남성’라는 기독교의 오래된 남성중심적인 차별이 이참에 사라지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요즘 남자/정기홍 논설위원

    “남편들, 밥만 주면 잘 놀아요.” 중년여성이 방송에서 남편 하루살이를 우스개로 빗댔다. 애완견들과 비교된 듯해 남정네들의 팔자타령이 절로 나오겠다 싶다. 남편이야 굴비 한두 마리에 된장국 한 그릇이면 족하고, 애완견은 때 되면 수입사료를 챙겨야만 하는 때다. 나트륨이 범벅된 바깥음식을 먹고, 거북한 트림을 하며 사무실로 들어서야 하는 남정네들이다. 마나님들이 이런 내심을 어찌 알까마는···. 요즘 ‘남편 10계명’이란 게 나돈다. 남편의 운명이 아내에 달렸다는 ‘인명재처’(人命在妻)에다 처의 명령을 기다린다는 ‘진인사대처명’(盡人事待妻命) 등 고사성어를 딴 내용이다. 남자 출세는 처의 운이 일곱이라는 ‘운삼처칠’(運三妻七)이란 것도 있다. 이 정도면 남편과 아내 간의 저울추는 기울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극한 작업을 끝낸 남편이 아내를 먼저 찾는 스토리 있는 감동의 시대다. 업무 중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출근 준비를 바쁘게 하다가 쓰던 물건을 제자리에 못 놓고 나온 게 딱 걸렸다. 나도 저녁엔 바가지급 잔소리를 각오해야겠다. 밥 주면 놀아주는, 길 잃은 남편들의 안전망도 필요한 때가 아닐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재래 목화씨/문소영 논설위원

    청명(4월 5일 또는 6일)이 끼어 있는 주 앞뒤로 서울과 경기도 인근 주말농장들이 개장 행사를 했다. 한식 또는 식목일과 겹치는 청명에 씨를 뿌리면 좋다고 재래농법을 고수하는 농부들은 말한다. 특히 고추씨를 이때 뿌리면 6월 말 장마를 잘 지날 수 있어 고추가 병에 덜 걸린다고도 했다. 최근 주말농장 개장 행사에서는 막걸리만 나누지 않고, 재래종 씨앗들을 보급하는 단체들이 씨앗을 나눠주기도 한다. 10가지의 씨앗에 3000원으로 아주 싸다. 이 3000원은 가을에 수확한 씨앗을 내주면 돌려받을 수 있다. 처음으로 목화씨 네 알을 얻었다. 한반도에서 목화재배는 문익점이 고려 말(1363년)에 목화씨 열 알을 몰래 들여온 덕분에 일본보다 약 230년 빨랐다. 목화 솜이불로 더 따뜻하게, 목면으로 더 질긴 옷을 입고 살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농서(農書)에 쓰인 대로 깊고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거름으로 퇴비를 잔뜩 넣은 뒤 목화씨를 심었다. 아열대성 작물에 가까운 목화가 과연 싹을 틔울까 걱정이지만, ‘달걀로 병아리 셈’하듯이 벌써 올가을에 만들 폭신한 목화 솜이불을 꿈꿔 본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발산역 할아버지/정기홍 논설위원

    첫날, 지하철 발산역사 통로 계단에 뭔가가 있다. “짐짝을 왜 통로에다 둘까.” 다음 날, 목석 같은 게 꿈틀거린다. “저게 뭐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지나쳤다. 3일째 되던 날,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칠십은 됨직한 할아버지가 아닌가. 이후 며칠간 그 자리에 할아버지는 없었다. 반전이 왔다. 할아버지가 여행용 가방을 운반대에 올려놓고 동여매는 모습이다. 퇴근길 나의 관찰은 시작됐다. 얼굴은 퀭하고, 표정도 오래전에 굳은 듯하다. 겨울옷은 왜소한 몸을 짓누르듯 무거워 보인다. 짐짝으로 짐작한 부끄러움에 자의식마저 엄습한다. 벌써 할아버지를 본 지 보름을 넘겼다. 언제나 구부정한 자세에 미동도 않고 행인의 발길만을 응시하고 있다. 어제는 여행 가방만 자리를 지킨 채 할아버지는 자리를 비웠다. 세상도 몰인정하고, 나도 옹색한 건가. 따끈한 국 한 그릇 드시라고 지폐 두어 장 준비해야겠다. 생각지 못한 사연을 가슴에 안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해진다. 등 굽은 할아버지는 세상에 눈길을 주는데 세상은 무심하다. 할아버지의 앉은 자리가 눈칫밥과 같은 자리는 아닐진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곤충 호텔/박홍환 논설위원

    휴일 늦은 오후 아파트 단지 안을 산책하다가 발밑에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작은 물체 하나를 발견했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유충(幼蟲) 한 마리다. 어떤 놈일까. 변태는 했을까. 어디서 왔지. 여러 궁금증이 몰려왔다. 일찍 꽃망울을 터뜨린 벚나무와 마찬가지로 지난번 포근해진 날씨에 완전히 봄이 온 줄 알고 부근 나무에서 내려온 놈인지도 모르겠다. 서울시가 도심 곳곳에 ‘곤충 호텔’(Insect Hotel)을 설치하기로 했다고 한다. 개집 크기의 곤충 호텔은 내부를 다섯 개 층으로 나눠 곤충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인 폐나무와 벽돌, 건초 등을 채워넣는다. 유럽 선진국에선 이미 대중화된 생태보호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형태의 곤충 호텔을 시민들이 직접 만들어 자기 집 정원과 담장 일부를 내주기도 한다. 농약 살포 등 인간의 ‘거친 손’에서 곤충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을 게다. 문득 벌 등 곤충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본다. 꽃의 수정을 돕는 곤충이 사라지면 식물도 사라질 테고, 그럼 인류는? 그러고 보면 곤충과의 공생,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벌교 홍교/서동철 논설위원

    전남 보성 벌교읍에는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돌다리가 하나 걸려 있다. 보물 제304호 벌교 홍교다. 홍교(虹橋)는 석재를 다듬어 아치 모양으로 쌓은 무지개 모양 다리다. 상당한 수준의 공학적 이해가 뒷받침돼야 지을 수 있다. 홍교는 벌교(筏橋)라는 땅이름의 유래가 됐던 뗏목다리가 홍수로 떠내려가자 숙종 44년(1718) 선암사의 초안선사가 세웠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냇물을 건너게 해주는 월천공덕(越川功德)을 중요한 선업(善業)의 하나로 친다. 벌교에선 60년마다 이 다리에 제사를 지낸다. 돌다리라도 한 갑자(甲子) 정도 쓰면 고쳐야 하지 않았을까. 제사란 재물을 거두어 다리를 수리하고, 주민들이 한데 모여 화합을 다지는 축제였을 것이다. 기자 초년병 시절 홍교의 이런 내력을 처음 듣고 다음 제사가 꼭 보고 싶었다. 그런데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세월이 흘러 어느덧 2018년으로 다가왔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4년마다 돌아오는데도 난리인데 홍교 제사는 한 사람이 두 번 보기가 어렵다. 의미 있는 축제인 만큼 벌교에선 조만간 제사 준비위원회라도 출범시켜야 하지 않을까.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어느 명함/정기홍 논설위원

    총총걸음 앞에 누군가가 다가섰다. 지방선거 출마를 꿈꾸는 이들이다. 두 달은 족히 남은 선거인데, 눈길 주는 행색은 여간 어색하지 않고 상대방 반응은 건성건성이다. 파스텔톤의 연한 봄 출근길에 정치가 완연하다. 벚꽃만이 주책없이 속도전에 나선 게 아니란 듯. 이들 중엔 벚꽃이 곧 땅으로 떨어지듯이 선거 후면 물거품처럼 사라질 운명을 맞을 이도 분명 있을 게다. 때마침 그날 뜻밖의 명함을 받았다. 낯익은 외모의 곱상한 중년이다. “햐~. 이런 경우도 있네.” 최근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의 동대표에 출마해 당선된 이다. ‘1타 2피’ 작전이 아닌가. 속된 말로 ‘짱구’를 총명하게 굴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게,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냐.” ‘정치 명함’들을 받아 들면 나름의 인상과 관상을 짚어본다. 훈련된, 멋쩍은 그 웃음들. 빼곡히 적힌 경력이 무거워 그만 명함을 놓칠 뻔했다. 얼굴도 정치를 닮아야 하는 계절이다. ‘소년소녀돕기 회장’, ‘나눔 봉사대’, ‘생활축구 회장’ 등 철저히 관리된 이력들···. 이 헛웃음의 정치가 허울을 제대로 벗고 살포시 다가서기나 할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강릉 사투리/최광숙 논설위원

    신사임당이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로 넘었다는 대관령 너머 고향 강릉의 사투리는 투박하고 촌스럽다. 어떤 이들은 경상도, 어떤 이들은 북한 말 같다고도 하지만 그들 지역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이를테면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 구절을 강릉 사투리로 하면 ‘남쪼루 창을 맹글라 그래요’로 표현된다. 평생 우리말을 연구한 이익섭 서울대 명예교수는 “강릉 사투리는 태백산맥에 둘러싸인 고립된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외래어의 침입이 적어 언어학 및 향토사학적 가치가 큰 ‘언어의 보물섬’이다”고 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쌍받침이나 고어(古語)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게 강릉 사투리라는 것이다. 요즘 구수한 사투리가 사라져 걱정이다. ‘강릉사투리 보존회’가 해마다 세계무형문화유산인 단오제의 막이 오르면 사투리대회를 여는 것도 그래서다. 최근 이 단체에서 ‘감자전’을 ‘감재적’으로 표기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감재는 감자, 적은 전이라는 강릉사투리다.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감자전과 감재적은 말의 차이만큼이나 맛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먼지들의 도시/박찬구 논설위원

    봄비에서 먼지 냄새가 난다. 미세먼지에 신경이 곤두선 탓일까. 매캐한 입자가 호흡기를 거쳐 혈관으로 퍼지는 듯하다. 향수를 자극하는 항구 도시의 봄바람까지 서울에서 기대하긴 어렵지만, 옅은 꽃향기쯤은 묻혔길 바랐는데 어리석었나 보다. 계절의 정감마저 먼지들에 빼앗긴 꼴이다. 바다를 건너왔건, 도심에서 자생했건, 먼지들은 거리를 점령할 기세로 틈입을 노린다. 슈퍼황사 주의보까지 예상된다. 영락없는 먼지들의 도시다. 며칠 전 한 환경단체가 대기 질을 개선해 도시를 살리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푯말에는 ‘자동차가 쉬면 도시는 산다’라고 적었다. 문명으로 움직이는 도시에서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공감이 가는 구호다. 시인 김수영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부조리한 권력과 현실 앞에 무력한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모래와 먼지에 빗댔고, ‘먼지’에서는 자본주의 문명의 때가 묻은 세상에서도 흔들림 없이 사유하는 행동인을 묘사했다. 새삼 위안과 힘을 얻는다. 피할 도리가 없다고 마냥 초라해질 수는 없다. 먼지의 공습에 대처하는 일상의 자세를 생각한다.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소장품/정기홍 논설위원

    한 번쯤 경험하는 일이지만, 하찮은 것과의 이별이 난감하다. 아내가 서랍에 두었던 소장품을 다 버렸단다. 20년 전 찼던 ‘삐삐’(무선호출기)에서 구형 휴대전화들, 개인사가 깨알같이 적힌 미니수첩까지…. 못내 아쉬워 TV를 보다가 쏘아붙였다. “왜 모든 걸 자기 위주로 판단하는가?” 챙겨놓지 못해 후회도 됐지만, 한낱 고물 덩어리로 깔아뭉갠 처신이 고약했다. 가관인 것이 우체국의 경품 추첨 욕심에 몽땅 갖다 줬다나. 50대 아줌마들이 그렇듯, 평소처럼 토는 달지 않았다. 아차 싶었던지 난감한 분위기다. 시골풍인 나와 도회풍인 아내 간 오래도록 이어진 작지만 골 깊은 간극이 그날 또 돌출한 것이다. 이들 소장품은 타임머신을 빌려야만 한 시절 나의 손때를 되새김할 수 있는 기록물이다. 정리하고, 버리는 게 익숙한 시대다. 그럴수록 우리의 마음속 허(虛)함이 깊게 자리하는 듯하다. 이 시간, 잊었던 소장품이 당신을 찾고 있지는 않을까. 안녕한지 챙겨볼 일이다. 옛것의 숨구멍이 코끝을 간지르는 ‘쉼터’ 하나쯤은 소장해야지 않겠나. 삶의 폭은 자꾸만 야위어 간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승소(僧笑)/서동철 논설위원

    점심을 해결하고 가볍게 산책도 하는 코스를 개발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절 조계사에 다녀오는 것이다. 조계사 골목 안에는 ‘승소’라는 국숫집이 있다. 스님을 웃음 짓게 한다는 승소(僧笑)는 국수의 다른 말이다. 새로 돋은 봄나물로 비빈 국수는 겨울내내 안거로 입맛을 잃었을 스님들을 웃음 짓게 하고도 남을 것이다. 승소의 대표 메뉴는 비빔국수와 잔치국수, 그리고 미역옹심이다. 오늘처럼 화창한 날에는 봄채소를 듬뿍 얹은 비빔국수가 제격이다. 한 그릇 비우다 보면 스님이 아니더라도 절로 웃음이 나오게 되어 있다. 4000원이면 국수에 밥과 국도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다. 조계사 부속시설인 만큼 ‘공양권’을 파는 보살은 불교신자냐고 묻기도 하지만, 하루쯤 불교와 가까워지는 것은 또 어떤가. 승소를 나서 조계사 경내로 들어선다. 부처님오신날은 한참 남았지만, 마당에는 벌써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색색의 연등이 달렸다. 그 너머 불교중앙박물관에선 지금 인각사 특별전이 한창이다. 관람료도 받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흐뭇해 혼자 즐기기에는 미안한 잠깐의 봄소풍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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