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소장품/정기홍 논설위원
한 번쯤 경험하는 일이지만, 하찮은 것과의 이별이 난감하다. 아내가 서랍에 두었던 소장품을 다 버렸단다. 20년 전 찼던 ‘삐삐’(무선호출기)에서 구형 휴대전화들, 개인사가 깨알같이 적힌 미니수첩까지…. 못내 아쉬워 TV를 보다가 쏘아붙였다. “왜 모든 걸 자기 위주로 판단하는가?” 챙겨놓지 못해 후회도 됐지만, 한낱 고물 덩어리로 깔아뭉갠 처신이 고약했다. 가관인 것이 우체국의 경품 추첨 욕심에 몽땅 갖다 줬다나.
50대 아줌마들이 그렇듯, 평소처럼 토는 달지 않았다. 아차 싶었던지 난감한 분위기다. 시골풍인 나와 도회풍인 아내 간 오래도록 이어진 작지만 골 깊은 간극이 그날 또 돌출한 것이다. 이들 소장품은 타임머신을 빌려야만 한 시절 나의 손때를 되새김할 수 있는 기록물이다. 정리하고, 버리는 게 익숙한 시대다. 그럴수록 우리의 마음속 허(虛)함이 깊게 자리하는 듯하다. 이 시간, 잊었던 소장품이 당신을 찾고 있지는 않을까. 안녕한지 챙겨볼 일이다. 옛것의 숨구멍이 코끝을 간지르는 ‘쉼터’ 하나쯤은 소장해야지 않겠나. 삶의 폭은 자꾸만 야위어 간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