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낙서/정기홍 논설위원

    어릴 적 낙서 추억이 두엇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친구와 함께 철로의 목침(木枕)에다 ‘선생님 욕’을 분필로 써 놓아 야단을 호되게 맞은 적이 있다. 100m 거리에 분필 자국을 냈으니 철로가 하얗게 보일 정도였다. 철딱서니 없던 때의 일이다. 중국의 중학생이 3000년 된 이집트 부조 문화재에 ‘나 왔다 간다’는 낙서를 썼대서 중국 네티즌들이 당사자 신상털기에 나서는 등 시끄럽단다. 1960~70년대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낙서에는 역사와 문화가 깃들어 있다. 그런 만큼 그 사회의 의식 수준을 가늠케 한다. 피라미드 등에 써 놓았다는 ‘요즘 애들 버릇 없다’는 낙서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지 않는가. 중국인이 화난 것은 몰지각한 문화재 훼손 때문이겠지만 ‘왔다 간다’는 단수 낮은 문구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낙서 속의 문구도 잘 갈무리하면 한 편의 시가 된다. 얼마 전 어느 휴게소의 화장실에 들렀다가 ‘졸음운전 안 하는 법’이란 글을 보고 온갖 낙서로 가득했던 공간이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도 문화사회로 가는 통과의례를 겪는 것이리라.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막걸리/서동철 논설위원

    학창 시절, 친구들과 충남 예산의 수덕사에 가겠다고 길을 나선 적이 있다. 우리는 장항선의 수덕사역(驛)에 내렸다. 이름이 수덕사역이니 수덕사가 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수덕사는 너무나도 멀었다. 걷고 또 걸었지만 수덕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30년이 넘은 이야기이다. 당시에도 갈증을 푸는 데는 TV 광고에 나오는 대로 콜라가 좋았지만, 콜라를 먹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중간에 나타난 막걸리집에 환호했다. 수덕사역에서 수덕사까지 도로포장조차 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길가의 막길리 가게는 커다란 독에 막걸리를 담아 팔고 있었다. 여름철 막걸리는 시큼털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공짜 안주로 내놓은 시원한 열무김치와 어우러진 맛의 조화는 환상적이었다. 막걸리의 포장 단위를 최대 2ℓ로 할 것인가, 10ℓ로 할 것인가를 두고 공정위원회와 국세청 사이에 이견이 있다고 한다. 맥주도 생맥주는 큰 통에 담아 공급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전통문화 보존 차원에서도 막걸리쯤은 그냥 놔둬도 좋지 않을까.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영정사진/박건승 논설위원

    대학에 다니는 딸과 요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인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정사진 때문이다. 어림잡아 석 달은 족히 된 것 같다. 두 분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정사진을 형님댁에서 복사해 집에 갖다 놓으면서부터다. 안방 화장대 위에 나란히 얹어 놓은 사진 두 장이 거의 매일 엎치락뒤치락한다. 내가 사진을 엎어놓으면 딸 녀석이 어느샌가 부모님 얼굴을 뵐 수 있도록 되돌려놓곤 한다. 당초 액자로 만들어 벽에 걸어놓을 요량이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출·퇴근 때 인사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 화장대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딸이 묻는다. “아빠 근데, 근데 왜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을 자꾸 뒤집어 엎어놓아요?” 사실은 부모님에 대한 나의 죄스러움 때문이다. 혹시 잘못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자책감에 두 분 모습을 뵐 때마다 마음이 늘 무겁다. 딸의 메시지가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 뵈면서 “술 줄이고 건강 좀 챙기세요”라는 무언의 주문이라는 걸 내 어찌 모르랴…. 이래저래 ‘자성의 계절’이다. 박건승 논설위원 ksp@seoul.co.kr
  • [길섶에서] 어머니의 전쟁/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시인이면서 박사학위도 갖고 있는 동창이 ‘어머니의 전쟁’이란 책을 냈다.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어머니를 임종 때까지 일곱 달 동안 간병하면서 쓴, 어찌 보면 처절한 기록이다. 책에는 둘째 아들인 그 친구가 팔순이 넘은 병든 어머니를 돌보면서 겪은 절절한 사연이 담겨 있다. 움직이기조차 힘든 몸으로 새벽녘에 병상에서 기다시피 내려와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자는 아들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어머니의 사랑을 친구는 ‘끔찍한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모시지도 않던 차남이 마지막을 책임지는 게 쉬운 일이겠는가. 그런 아들에게 어머니는 “둘째야, 너와 나는 죄를 많이 지어서 마지막에 이렇게 만났나 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친구는 어머니의 최후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어머니를 성자(聖者)라고 했다. ‘백리를 달려 남도로 달려가면/비가 새어들고 바람이 들이치는 옛집에/절뚝거리며 마중 나오는 성자가 산다/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더 못 주어 안타깝다던 그 사람’(고향에는 성자가 산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어떤 이별/진경호 논설위원

    아내가 차를 떠나 보냈다. 초등학교 입학식에 태우고 간 큰아이가 어엿한 대학생이 됐으니 10년 넘게 아내와 함께했던 녀석이다. 그 차로 아내는 회사를 다녔고, 두 아이를 학교로, 학원으로 실어날랐다. 집이 서너 번 바뀌는 동안에도 녀석은 아내 곁을 떠날 줄 몰랐다. 아내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오랜 세월을 달리면서도 큰 사고 한번 내지 않았던 ‘충신’이기도 했다. 몸집이 커진 아이들의 성화와 점점 기름을 더 먹는 것 같다는 아내의 푸념이 부쩍 잦아졌다 싶던 어느날 아내는 돌연 녀석과의 결별을 선언했고, 둘의 이별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인의 손에 끌려 녀석이 집을 떠나던 날, 아내는 훌쩍였다. “이상하지. 꼭 무슨 사람 떠나보내는 것 같아….” 한데 이런 아내의 감상도 잠시, 녀석은 그냥 떠나지 않았다. 지인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그동안 깜빡했던 속도위반, 주차위반 과태료가 무더기로 나왔다. “아니, 이놈은 무슨 딱지를 이렇게도 많이 뗐대?” 아내는 남 얘기하듯 목청을 높였다. 아내의 ‘일방적 퇴출’을 녀석은 그렇게 복수했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수훈례(垂訓禮)/정기홍 논설위원

    엊그제 초저녁, 한 대학가에서 한 무리 아주머니들이 장미꽃을 들고 섰길래 “밤 행사가 있냐”고 물었더니 ‘성년의 날’이란다. “상술의 촉수가 밤인들 놓칠까”라며 걷는데 학생 두명이 “돈이 없어 못 사겠어”라고 푸념하며 지나간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 호주머니에 돈이 없는 것은 일상사인가 보다. 성년식에서 평생 지녀야 할 삶의 가르침을 받는 수훈례(垂訓禮)를 치르는 스무살 젊은이들의 모습은 아름답고 의젓해 보인다. 그런데 이들은 먼 옛날 성년 의식에 육체적 고행이 뒤따랐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조혼이 흔했던 시절, 열다섯 앳된 나이에 성년식을 치른 ‘사태’는 또 어떻게 이해할까. 인터넷에는 성년의 기준을 놓고 시끌시끌하다. 성년 나이의 기준이 20세니 19세니, 생일이 기준이니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하기야 올해부터 민법상 성년 기준이 만 19세로 바뀌었으니 혼란스러울 만도 하겠다. 성년식은 처음 제정된 1973년에는 4월 20일에 치렀다가 1985년부터 지금처럼 5월 셋째 월요일로 정해졌다고 한다. 성년식을 치르는 나이도 19세로 낮추는 것이 젊은이들의 혼란을 줄이는 것 아닐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아이언 맨/문소영 논설위원

    “우리는 모르는 사이 스스로 악마를 키운다.” 영화 ‘아이언 맨3’에서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한 말이다. 영화는 순수한 열정에 들뜬 과학자가 권력욕으로 똘똘 뭉친 사악한 인물로 변신한 계기를 보여준다. 스타크가 1999년 12월 31일 스위스에서 만난 왕팬 킬리언을 새해 첫날 옥상에서 만나기로 하고 바람 맞힌 것은 고의는 아니었을 것이다. 가슴에 원자로를 달기 전이었으니, 여자랑 파티를 즐기는 군산복합체의 오너 아들이자 ‘망나니’ 스타크는 그저 짓궂은 장난을 친 것이다. 킬리언은 처음 20분을 불꽃놀이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밤하늘 아래 지팡이에 불편한 다리를 의지하여 차가운 바람을 견디었지만, 이후 ‘로비로 가는 지름길을 선택할까’ 고민하며 비참한 시간을 보냈다. 그 후 킬리언의 선택은 스타크와 달랐다. 시인 김지하, 조순 전 서울시장의 대변인 출신인 정미홍 전 KBS아나운서가 변했다고 해서 화제다. 그저 부질없지만, 이 영화를 본 후에 문득 생각났다. 우리가 그들의 ‘무엇인가’를 좌절시켰던 것은 아닐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산행(山行)/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사월초파일, 홀로 산행을 하는 중에 높은 곳에 서서 잠시 수도승처럼 마음을 씻는 시간을 가져본다. 저 아래 혼탁하고 시끄러운 속세. 욕정과 질투로 범벅이 된 세상은 쉼없이 우리를 짓누른다. 성철 스님은 세상 모든 고통의 근원은 욕심이고, 따라서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수필가 이양하의 말처럼 우리 인간이란 오욕칠정(五慾七情)에 사로잡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싸우며 마음에 영일(寧日)을 가지지 못하는, 얼마나 비소(卑小)한 존재인가. 우리는 단 한 시도 다섯 가지 욕심(五慾)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때론 감당할 수 없는 식욕과 수면욕, 색욕을 채우는 데 골몰한다. 재물욕, 명예욕은 평생 우리의 어깨에 걸쳐져 있는 무거운 굴레다. 공무 중에 여성을 추행하는 공직자, 땅투기에 혈안이 된 국회의원. 그 추악함을 추악하다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내 안의 욕심 끄덩이를 끄집어낸다. 색이 짙어가는 신록과 향기로운 바람에 그 끄덩이를 정화해 보려 한다. 하산길 발걸음이 조금 가볍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부부 강간/박현갑 논설위원

    요즈음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말이 있다.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아내가 무능력한 남편을 퇴출시킨다는 황혼 이혼.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남편 와이셔츠 한 장 다려 주는 것도 버거워하는 맞벌이 주부랑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고민해야 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대체로 사랑하기에 결혼하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를 다짐하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그 뜨거운 열정도 식는다. 소유했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지고지순한 사랑은커녕 차 한 잔의 여유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질 때가 적지 않다. 남편이 아내 의사를 무시한 채 강제로 성관계를 할 경우 강간죄로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는 등 실질적인 부부 관계로 볼 수 없는 경우에 부부강간죄를 적용한 적은 있었으나,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로서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각방 쓴 지 오래된 부부라면 이번 판결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결혼 생활에 적신호가 켜진 것 아닌가. 아내에게 살가운 문자라도 한 통 날려 보자.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길섶에서] 자업자득/안미현 논설위원

    몇 달 전 ‘잠 못 이루는 대통령께’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라 걱정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는 대통령은 요즘에도 잠자리가 편치 않을 듯싶다. 감기약까지 먹어가며 강행군을 한 방미 성과가 다른 사람도 아닌 ‘수족’ 같은 대변인에 의해 한방에 날아가 버렸다. 보통 때 같으면 귀국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며칠은 미국에서의 활약상이 언론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했을 법하지만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으로서는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순간, ‘자업자득’이란 말이 떠올랐다. 야당 후보를 지지한 보수성향 인사들을 향해 ‘정치적 창녀’ 운운했던 이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으로 발탁한 사람은 대통령이다. 주위의 숱한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대변인으로 연이어 발탁한 사람도 대통령이다. 그렇다고 새삼 대통령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기가 막혀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상황이지만 그 누구를 탓한들 부질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이제라도 귀를 열고 인사를, 시스템을 가다듬으면 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안미현 논설위원 hyun@seoul.co.kr
  • [길섶에서] 마음의 근육/김종면 수석논설위원

    아프리카 초원엔 종종 원인 모를 불이 일어난다. 바싹 마른 초원의 불길은 모든 유·무정물을 삼켜버릴 듯 너울대지만 이내 제 풀에 잦아들고 대지엔 다시 생명이 찾아든다. 조용히 타는 불은 그저 나른한 풍경의 일부일 뿐, 자연의 생태계는 오히려 그로 인해 아연 생기를 되찾는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파괴의 불이 아니라 생명의 불인 셈이다. 요즘 ‘60세 정년법’ 때문에 여기저기서 앙앙불락이다. 베이비 부머라고 다 베이비 부머가 아니라는 얘기. 정년 턱걸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진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애를 태운다. 오늘도 나는 왜 그런 울퉁불퉁한 실상을 칼럼으로 쓰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다.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뿔난 마음의 불을 아프리카 초원의 그것처럼 평화롭게 타오르는 ‘고마운’ 불로 바꿔놓을 순 없을까. 아인슈타인은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건 정신병 초기 증세”라고 했다는데, 이제부터라도 어제와 다르게 사는 법을 연습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흔들리면 지고 마는 인생. 마음의 근육부터 키우자. 그리고 다시 점프 스타트다. 김종면 수석논설위원 jmkim@seoul.co.kr
  • [길섶에서] 고향친구/정기홍 논설위원

    지난 금요일, 경남 마산어시장에서 고향친구와 소주잔을 기울였다. 수년 만의 만남이라 저간의 사정이 궁금하던 차였다. 오랜만의 자리가 그렇듯 사업이야기, 직장이야기가 격의 없이 이어졌다. 뼈째 쓴 도다리회가 식감에 안 맞다고 했더니 봄도다리는 ‘세고시’로 먹어야 제맛이라고 귀띔한다. 바닷가 회는 거친 게 맛인가 보다. 친구는 재기가 넘쳤다. 학교 성적도 수위였지만, 잘생긴 외모에 성격도 시원해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었다. 썰매나 팽이, 연을 만들 때 그의 손을 거치면 ‘미인’으로 탄생하던 기억이 새롭다. 어르신들이 그를 두고 “재주가 많으면 큰 출세를 못한다”고 말할 정도로 총명한 친구였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작은 회사에 취업을 했다. 술기운이 돌 무렵 “만나면 칭찬하고, 헤어질 때 아쉬워하자”던 친구가 메모지에 ‘예유고아생(譽由苦我生) 다산 정약용’이라고 적어 건넨다. ‘칭찬은 자신이 힘써 일해야 생긴다’는 뜻이란다. 양복 주머니에 ‘만리장성 같은 자존심’을 넣고 사는 이 세태에 꼭 맞는 말들이다. “자네 총기는 아직 녹슬지 않았어.”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뒷담화/최광숙 논설위원

    최근 지인의 소식을 들었다. 좋지 않은 일로 회사에서 입장이 어려워졌단다. 소식을 전한 이는 나와 왕래가 거의 없는 이다. 정작 주변의 가까운 이로부터는 그 얘기를 못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마치 자신이 ‘촉새’가 된 것 같다고 무안해했다. 평소 남 뒷담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가까운 이의 성품으로 봐 일부러 그 얘기를 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물었더니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며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했다. 참으로 그의 인품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최근 특정인을 ‘도마’에 올려놓고 뒷담화를 조장하는 앱이 등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뒤에서 쑥덕거리던 뒷담화를 이젠 대놓고 하자는 것이니 세상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모임에 가면 유독 남 얘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 칭찬보다는 주로 흉보는 뒷담화다. 불교에서는 입으로 짓는 업을 구업(口業)이라고 한다. 무심코 남에게 던지는, 좋지 않은 말들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나부터 종종 잊는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고샅길 라일락/정기홍 논설위원

    농익은 이 봄날, 만화방창 꽃잔치로 시끌하더니 초록 잎사귀가 봄꽃의 옆자리를 하나씩 꿰차고 있다. 벚꽃의 흐드러짐을 본 게 엊그제인데 세상의 생물은 시절을 먼저 알고 계절의 바뀜을 재촉하는 것 아닌가. 장사익이 부른 ‘봄날은 간다’의 애절한 가락처럼 이 봄이 훌쩍 떠날까봐 괜히 우울해진다. 아파트단지 담장 너머로 와 닿는 라일락 꽃향기를 즐긴 지가 얼추 보름 정도 됐다. 꽃은 화사했던 며칠 전보다 덜하지만 그 향긋함은 여전히 으뜸인 듯하다. 하얀 벚꽃과 노란 개나리, 붉은 진달래 필 때와 다른, 눈과 코의 호사다. 겨우내 먹던 묵은지를 봄나물 겉절이로 바꾼 맛이라 할까. 우리 속담에 ‘국화는 개나리를 시샘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봄 개나리가 아름답기로서니 어찌 가을 국화의 우아함과 향기의 그윽함에 비할손가. 국화의 지조를 이름이다. 아직도 코끝을 건드리는 라일락 향기를 맡으며 꽃마다 지닌 자태와 가치에 고개를 끄덕여 본다. 고향마을 고샅길을 지키던 라일락은 이제 향기를 잃었을까. 40년 전 추억을 떠올려 본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용감한 부부/함혜리 논설위원

    하늘도, 바다도, 산도 푸른 섬 청산도에 다녀왔다. 서울에서 가기엔 좀 먼 길이지만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슬로 길 걷기 코스가 잘 만들어져 있고 볼거리, 먹거리가 풍부해 꼭 한번 가볼 만한 곳이다. 노란 유채꽃과 청보리, 신록이 어우러진 5월의 섬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영화 ‘서편제’와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를 보고 구들장 논과 돌담길로 유명한 상서마을로 이동하기 위해 순환버스를 기다리던 중 50대 후반의 부부를 만났다. 서울을 출발해 해안선을 따라 걸어서 속초까지 가는 중에 청산도에 들렀다고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남편이 배낭에서 지도와 일정표를 꺼내 보여준다. 지난 30일간의 여정이 붉은색 펜으로 표시돼 있다. 서울~속초 구간을 70일간 주파하는 게 목표란다. 하기야 둘이 함께라면 이 세상에 못 갈 곳이 어디겠나. 좀 더 기다렸다가 버스를 탈지, 그냥 걸을지를 놓고 고민하던 부부는 “이왕 걸은 것, 걷겠다”면서 미련없이 사라졌다. 용감한 부부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어버이날 꽃/박정현 논설위원

    오늘은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날이다. 카네이션이 효도와 경로의 상징물이 된 지 올해로 57년째. 부모님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기 시작한 것은 1956년 제정된 어머니날(1972년 이후 어버이날)부터이니 우리에겐 이미 오래된 ‘관습’이다. 올해는 시골에 계신 어머님에게 카네이션 달아드리는 일을 같은 동네에 사는 조카에게 맡겼다. 아침에 꼭 찾아뵙고 정성스레 달아드리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아내는 아이들에게 장미건 프리지어건 카라건 다 좋으니 한 송이만 사달라는 좀 특별한 부탁을 했다. 다만 카네이션은 좀 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모님들이 받기 싫은 선물로 카네이션이 꼽혔다는 뉴스가 기억이 난다. 100여년 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한 여인이 어머니에 대한 추모의 정을 담아 나눠준 흰 카네이션에서 비롯됐다는 어버이날 카네이션 풍습. 그런데 우리는 왜 부모님 가슴에 조화(造花)를 달아들이는 것일까. 내년엔 살아 숨쉬는 생화(生花)를 달아드려야겠다. 우리 주변에 싱그러운 5월의 꽃이 얼마나 많은가.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길섶에서] 바다이슬/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을 빙 두른 간이장터에서 녀석들을 만났다. 이제 막 꺾꽂이를 끝냈을, 주먹만 한 크기의 녀석들은 수백개의 화분에 담겨 다닥다닥 붙어 앉은 채 서울로 처음 소풍 온 산골 아이들처럼 살랑바람에 마냥 조잘대고 있었다. 그 앙증맞은 푸르름에 마음을 빼앗겨 지갑을 열었고, 세 녀석(화분)을 들고 왔다. 사무실은 그 어떤 방향제도 따르지 못할 자연의 향으로 금세 덮였다. 학명 ‘Rosmarinus’, 라틴어 ‘Ros’(이슬)와 ‘Marinus’(바다)를 합쳐 ‘바다 이슬’이란 멋진 이름을 갖고 있는 녀석들, 로즈메리. 한데 이놈들, 키우는 게 만만치가 않다. 매일 일광욕 시켜주고, 바람도 쐬어주고, 말도 건네야 한단다. 하루만 딴짓 해도 결별, 죽는단다. 볕을 좇아 복도 끝 창가로 옮겨 나르는 일과가 생겼다. “아니, 머리를 맑게 해주고, 살균·소독 작용도 하는데, 그 정도도 못해 줘요?” 글을 쓰는 동안 노트북을 훔쳐보던 녀석들이 한마디 하는 듯하다. 향기 나는 중년에 이르지 못한 처지 아니던가. 녀석들의 향기라도 탐할밖에…. ‘아냐 그럴리가~, 내 어찌 그 정도도 못하겠니?’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봄 운동회/정기홍 논설위원

    지난주 어느 초등학교의 봄 운동회. 하늘엔 만국기가 펄럭이고 꼬마 학생들의 이어달리기가 시작됐다. “땅!” 출발신호와 함께 청·백군의 주자가 내달린다. 운동회의 백미는 단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달리기. 앙증맞은 고사리손 놀림 속에 응원 함성이 5월의 신록만큼이나 싱그럽고 우렁차다. 주자가 3분의2 바퀴를 돌 무렵, 두어 발 차로 뒤따르던 학생이 그만 넘어졌다. 다리는 이미 풀릴 대로 풀린 상태. 순식간에 20m 남짓 벌어진 간격은 좀처럼 줄어들 줄 모른다. 응원의 함성이 잦아드는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지켜보던 선생님이 뒷주자를 보듬고 냅다 달리더니 앞주자 바로 뒤에 내려놓는 것 아닌가. 다시 되살아난 응원의 함성. 아, 저런 교육도 있었구나…. 봄 운동회는 삶은 계란을 나눠 먹던 지난 시절 가을 운동회와는 사뭇 달랐다. 점심은 학교급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등수에 들지 못해 눈물을 훔치는 풍경은 그때와 별 다름이 없다. 이날 운동회는 나에게 ‘생각의 느낌표’를 던져줬다. 내 것만을 챙기기 위해 남을 ‘보듬는’ 따뜻한 심성을 오래도록 잊고 산 것 아닌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
  • [길섶에서] 쑥버무리/최광숙 논설위원

    지난주 서울광장에 농산물 시장이 섰기에 구경을 갔다가 쑥을 발견했다. 오염된 도시 인근에서 자란 쑥보다는 아무래도 공기 좋은 시골에서 자란 쑥이 더 좋을 것 같아 뭘 해먹을지 생각도 않고 덥석 두 봉지나 샀다. 한 봉지로는 한정식 식당에서 맛본 쑥된장국을 끓였다. 나머지로 뭘 할까 고민하다가 쑥버무리를 해먹기로 했다. 쑥버무리는 이른 봄의 어린 쑥을 잘 씻어서 물기가 있는 상태에서 멥쌀가루와 섞어 쪄낸 떡이다. 향긋한 쑥내음 때문에 봄을 알리는 별미로 꼽힌다. 요즘엔 쑥버무리가 입맛 돋우는 특별한 간식이지만 쌀이 귀하던 시절에는 쑥버무리로 배를 채웠다는 어르신들의 경험담도 가끔 듣는 얘기다. 막상 쑥버무리 만들기에 나섰지만 처음에는 쌀가루를 적게 넣은 데다 너무 오래 쪄 쑥 덩어리처럼 됐다. 쑥이 너무 많아 쌉싸름했지만 먹을 만했다. 두번째 시도 끝에 겨우 쌀가루와 쑥의 적절한 조화를 이뤄 맛있는 쑥버무리가 완성됐다. 먹다 보니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그리워진다. 내가 한 쑥버무리는 왜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쑥버무리 맛이 안 날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비즈니스석 처세학/진경호 논설위원

    중진급 정치인 L씨는 오랜 공직 생활을 하면서 종종 곤혹스러운 상황 하나에 부닥쳤다고 한다. 국제선 비행기 비즈니스석에서의 풍경이다. 해외여행이 잦았던 그는 늘상은 아니지만 자주 기장과 승무원들로부터 단체인사를 받곤 했던 모양. “기장 아무갭니다. ○○까지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한데 정작 L씨는 ‘편안히 모시겠다’는 인사를 받는 순간부터 불편해진다고 했다. 비즈니스석의 기류가 곧바로 썰렁해지더라는 것. 나름대로 각계에서 힘깨나 쓸 법한 주위 승객들의 눈초리가 금세 돌변하더라는 것이다. ‘위기’를 넘기기 위해 그가 터득한 요령은 두 배로 인사하기다. 기내 인사를 받자마자 주위 승객들에게 ‘아무개인데 같이 가게 돼서 반갑다’며 허리 숙여 인사해야 그나마 찬 공기가 풀리더라고 했다. 대기업 임원이 승무원에게 ‘행패’를 부린 끝에 회사를 잃고, 인터넷에서 ‘라면상무’라고 놀림당하는 걸 보면 비즈니스석은 지뢰밭이 분명하지 싶다. 두 배 이상 삯을 주고 거기에 앉을 형편이 못 되는 처지로서 걱정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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