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영정사진/박건승 논설위원

[길섶에서] 영정사진/박건승 논설위원

입력 2013-05-27 00:00
수정 2013-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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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다니는 딸과 요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인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정사진 때문이다. 어림잡아 석 달은 족히 된 것 같다. 두 분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정사진을 형님댁에서 복사해 집에 갖다 놓으면서부터다. 안방 화장대 위에 나란히 얹어 놓은 사진 두 장이 거의 매일 엎치락뒤치락한다. 내가 사진을 엎어놓으면 딸 녀석이 어느샌가 부모님 얼굴을 뵐 수 있도록 되돌려놓곤 한다.

당초 액자로 만들어 벽에 걸어놓을 요량이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출·퇴근 때 인사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 화장대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딸이 묻는다. “아빠 근데, 근데 왜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을 자꾸 뒤집어 엎어놓아요?” 사실은 부모님에 대한 나의 죄스러움 때문이다. 혹시 잘못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자책감에 두 분 모습을 뵐 때마다 마음이 늘 무겁다.

딸의 메시지가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 뵈면서 “술 줄이고 건강 좀 챙기세요”라는 무언의 주문이라는 걸 내 어찌 모르랴…. 이래저래 ‘자성의 계절’이다.

박건승 논설위원 ksp@seoul.co.kr

2013-05-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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