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정동길 프러포즈/최광숙 논설위원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펼쳐진 정동길을 요즘 아침, 저녁으로 걷는다. 처음에는 운동 삼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은 단순한 운동 이상의 그 무엇을 얻는다. 이런저런 볼거리가 많고 가끔은 색다른 행사도 열려 ‘문화세례’까지 받곤 한다. 지난 10월의 마지막 날, 한 전도사 청년이 여자 친구한테 프러포즈를 하고 있었다. 청년은 ‘○○야 나랑 결혼해줄래?’라는 작은 현수막 옆에 예쁜 풍선으로 하트 장식까지 해놓고 그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여자 친구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정성을 다했다.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여자 친구는 ‘하느님이 소풍 오라고 하는 날까지 너를 지키겠다’는 남자 친구의 말에 감동했는지 눈물마저 흘렸다. 발길을 멈춰 선 행인들은 마치 가족이라도 되는 양 젊은 예비부부의 탄생을 축하해 줬다. 한창 감성이 풍부할 여학생들은 신이 나 ‘뽀뽀해’라며 한바탕 난리를 쳤다. 우연히 마주친 한 장의 삽화 같은 풍경에 지나가던 이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이 이는 것이 느껴졌다. 낙엽이 흩날리는 정동길의 가을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빠져든다는 것/손성진 수석논설위원

    뭔가에 빠진다는 것은 삶에 활력소가 된다. 도박이나 게임 중독 같은 나쁜 것만 아니라면 말이다. 젊은 시절에 누구나 한두 번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사랑에 빠져 보았을 것이다. 바둑에 빠진 지는 수십 년이 된다. 빠져 볼 만한 대상은 많다. 독서, 고전음악 듣기, 등산, 낚시, 그림 그리기 등등. 인생을 윤택하게 할 취미들이다. 근래에 두 가지에 빠졌다. 하나는 드라마틱한 중국현대사의 주인공들에 관한 책읽기다. 섭정 독재자 서태후, 마지막 황제 푸이, 중국 혁명의 선도자 쑨원, 국민당 정부 주석 장제스, 중국 공산당의 아버지 마오쩌둥. 이들의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는 대하소설보다 흥미롭다. 또 하나는 어떤 젊은 남자 가수다. 요즘 노래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TV 가요 프로에 나온 어느 아이돌 가수가 1970년대 노래를 기가 막히게 부르는 모습을 보고는 푹 빠져버렸다. 그 노래를 듣고 또 듣고, 그 친구가 누군지 알아보면서 나 스스로 팬이 되어 왜 10대들이 열광하는지를 알게 됐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직업 DNA/오승호 논설위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A씨는 “교수라는 직업은 누가 뭐라고 간섭하는 사람이 없는 게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 흠이라면 업무를 혼자 처리하는 것 정도라면서 만족해 한다. 한때 대형 로펌에 근무했지만 로비스트 활동을 하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아 박차고 나왔다. 검사 출신의 B교수는 변호사 개업을 했다가 그만뒀다. 부인에게 “겪어보니 변호사는 죽어도 못하겠다”고 넋두리를 했단다. 변호사를 하면 형편이 좀 나아질 거라고 내심 기대했던 부인인들 어찌하리. 대기업에 다니는 한 사회 초년생은 아예 다른 직종의 입사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직장생활이 대학생 때 동경했던 것과는 차이가 너무 크다고 느낀다. 상사의 허드렛일을 돕는 것은 영 내키지 않는다고 한다. 직업의 종류나 근무 환경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두 명이겠는가. ‘진로탐색 활동 등을 위한 중학교 자유학기제를 진작 시행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문득 해본다. 대학입시의 계절이다. 올해도 적성보다는 일단 붙고 보자는 식의 ‘묻지 마’ 지원자는 또 얼마나 많을까.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길섶에서] 종묘와 바둑/정기홍 논설위원

    낮에 지하철을 타 보면 노령층이 의외로 많은 데 놀란다. 다들 목적지가 있겠지만 혹시 무료함을 달래려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최근 서울 종묘 근처를 돌아봤다. 종묘공원은 서울에서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가운데 하나. 지난여름 찾았을 때와 달리 공원 곳곳엔 바둑을 두는 이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이미 이곳 어르신들의 놀이문화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들에게 심심파적의 소일거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온 터였기에 그럴까. 한가로이 바둑을 두는 풍경이 여간 반갑지 않다. 소설가 이외수씨가 트위터에 ‘탑골공원서 장기나 두지 않고 사인회 하는 건 축복’이라는 에세이집 출판 소회의 글을 올려 노인 비하 논란을 낳고 있다. 60대 후반의 그는 바쁘게 사는 축이다. 그가 누굴 비하하려 했겠나 싶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다. 나이가 듦은 죄가 아니다. 어르신이 즐길 만한 놀이가 더 없을까. 우리 사회의 노년층 문화가 너무 빈약한 것 같아 하는 말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사치/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아무리 그래도 사치스럽다.”, “자기가 번 돈을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 얼마 전 한 연예인이 4500만원짜리 시계를 차고 나온 것을 두고 시끌시끌했다. 그런데 후자 쪽이 압도적이었다. 우리의 의식 수준도 높아진 것일까. 이유를 불문하고 호화 사치가 죄악시되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사치하면 떠오르는 인물 중의 하나가 중국 청조 말기에 47년간이나 섭정을 하며 권력을 휘두른 서태후다. 한 끼 음식이 128가지나 되었고 옷은 3000상자를 갖고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었다. 보석, 특히 비취에 대한 애착은 병적일 정도였다. 호화 별장 이화원은 중국이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원인이 되었다. 서태후가 함대를 만들 돈을 빼돌려 별장을 치장하는 데 썼기 때문이다. 권력가들과는 다르게 부자의 사치는 꼭 비난할 바는 아니다. 부자가 지갑을 열어야 경제가 돌아가는 까닭이다. 그저 분수에 맞게 살면 된다. 사치를 하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비싸야 할 것은 우리의 정신이다. 값싼 몸뚱어리에 수백 만원짜리 옷을 걸친들 뭐하겠는가.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예비고사의 기억/정기홍 논설위원

    주위에 대학 입시 때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가 많다. 지나간 세월 때문이지만, 그날의 긴장 때문이 아닐까 싶다. 30여년 전, 지금의 수학능력시험과 비슷한 예비고사가 있었다. 이 관문을 뚫어야 본고사 자격이 주어졌던 1970년대, 80년대 초의 시험제도다. ‘수학정석’과 ‘정통종합영어’를 끼고 달달 외우던 때가 바로 이때였다. 이 시험엔 시·도별 커트라인을 두었고 지역별 점수도 당연히 달랐다. 서울의 전문대가 유수의 지방대학의 합격점보다 높았다니 격세지감이다. 예비고사 마지막 해인 1981년엔 일화가 많았다. 상당수 학과의 입학 정원이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예비고사 성적만으로 합격자를 가렸다. 서울대에선 주요 학과가 미달하고 만점의 절반을 조금 웃돈 점수를 받은 수험생이 합격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풍운의 81학번은 ‘졸업정원제’로 마음고생도 컸다. 결국엔 유야무야됐지만···. 어제 65만 수험생이 ‘12년 농사’의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본고사보다 어렵다는 면접이 기다린다니 어려운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수험생 모두에게 행운이 있기를···.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마차의 추억/문소영 논설위원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함께 탄 백마 6필이 끄는 금박을 물린 호화로운 마차 사진이 오늘 아침 인상적이었다. 평생을 왕족으로 살아온 영국 여왕 앞에서 한국 대통령도 당당한 느낌이다. ‘영애’로 살았던 박 대통령의 ‘공주’ 이미지가 한몫한 것인가. 17세기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의 동화 ‘신데렐라’는 디즈니 만화영화에서 훨씬 재밌게 재현됐다. 통통한 요정대모가 나타나 재투성이 아가씨에게 푸른 드레스와 유리구두를 입히고 신긴 뒤 황금빛 호박 마차에 태워 왕궁의 댄스파티에 보내는 모습은 소년·소녀들의 마음에 강렬하게 환상을 새겨놓았다. 그래서 유리구두가 없더라도 연인들은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나 서울 청계천에서 다소 유치해 보이는 관광용 마차를 타면서 즐거워하는 것이다. 최신형 랩톱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무장하고 비행기로 이동하는 첨단의 삶을 살면서도 마차를 생각하면 동화를 읽듯 설레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 오갈 데가 없으니 퇴근길에 포장마차에나 들러볼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벼룩시장/최광숙 논설위원

    동네 인근에 있는 경의선 옛 철도부지가 벼룩시장으로 변신했다.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은 일요일을 빼고 주 중에도 문을 연다. 알록달록 색칠한 컨테이너로 지어진 미니 가게들이 저마다 개성 있게 꾸며져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화덕에서 직접 구운 손바닥보다 조금 큰 피자와 호박, 가지 등 갖가지 야채구이를 파는 작은 식당에는 늘 사람들이 붐빈다. 스스로 산골처녀라고 하는 한 아가씨는 시골에서 가져온 밤도 팔고, 사과도 판다. 모두 농약을 치지 않아 믿을 만해 나도 몇 번 샀다. 수염을 멋지게 기른 일본 청년들이 직접 만드는 다코야키와 오코노미야키는 아이들한테 특히 인기다. 요즘 퇴근길에는 그 벼룩시장을 통과하는 코스를 택해 집으로 간다. 굳이 뭘 사지 않아도 슬쩍 둘러보는 것만도 재밌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좀 썰렁해 보이더니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꽤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저녁 무렵 바비큐에 생맥주, 커피 한 잔을 하며 가을의 낭만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나 좋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검은 팥/문소영 논설위원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얼마 전 텃밭에서 ‘검은’ 팥을 얻었다. 팥은 원래 붉은색으로 12월에 동지팥죽을 쒀 먹는 풍습은 팥의 붉은색이 귀신을 쫓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은 팥이라니. ‘도시촌놈’을 위해 설명을 보태자면, 검은 팥은 야생팥이나 ‘돌팥’이라 불리는데 예전에도 키웠다고 한다. 가격은 보통 팥의 두 배 정도로 맛이 한결 좋단다. 껍질이 검은색일 뿐 성질은 팥 그대로다. 검은 팥의 탄생에 짐작 가는 데가 있다. 텃밭 한쪽에 콩 두 그루가 자라고 있었는데, 수확해 보니 하나는 검은 콩인 서리태였고 그 옆에 찰싹 붙어 자란 다른 것은 꼬투리가 길쭉한 것이 영락없는 팥이었다. 그 팥이 수분할 때 검은 팥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인공교배도 아니고 자연에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멘델의 유전법칙에 따르면 검은 팥의 2세들은 붉은 팥일 가능성이 절반 이상이다. 내다 팔 것도 아닌 검은 팥에 관심이 깨알같이 쏠리는 이유는 아마도 귀해서겠지….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외상사절’/정기홍 논설위원

    상혼(商魂)의 힘이라고 할까. 최근 눈에 띄는 상호 때문에 무심코 가게에 들어선 적이 있다. 내걸린 ‘외상사절’이란 상호에 이끌려 내부를 살펴보았다. 일반 음식점인가 했는데 술집이다. 그것도 생맥주만을 파는 집. 외상사절이란 문구는 왜 그리도 큰지. 외상만 긋고 내빼는 단골손님을 어쩔 수도 없고 해서 나온 고육지책인지…. 술을 시키는 과정도 색달랐다. “두세 잔 먹으려면 됫병용으로 하세요”(주인), “예. 엣? 무슨 뜻인지”(나). 에누리 없는 큰 소주병이다. 지방에서는 아직도 흔히 보는 풍경이다. 생맥주 됫병 곁에는 지방 소주업체 상호가 옛 글자로 쓰여 있다. 됫병 술맛은 어떤 느낌일까. 갓 쓰고 양복 입은 격. 맛은 생맥주 맛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이색 술집에선 대학가요제 출신 스타 이정희의 노래 ‘그대 생각’도 만날 수 있었다. ‘꽃이 피면 꽃이 피는 길목으로 꽃만큼 화사한 웃음으로 달려와~ 머물렀다 지나가 텅 빈 마음을~.’ 감성을 적셔 주는 잔잔한 발라드. 야속한 상혼을 달래 주기에 충분한, 정녕 슬프고도 아름다운 곡 아닌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사과와 김치/박현갑 논설위원

    어릴 때 ‘사과 마니아’였다. 친구끼리 좋아하는 과일 얘기를 할 때면 서슴없이 사과를 예찬했다. 알이 작고 빛깔이 바랬어도 한 입 베어 물 때 입안에 감도는 아삭아삭한 맛은 지금도 나를 감동시킨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는 사과랑 사이가 멀어졌다. 우선 순위에서 밀린 건 아니지만 포도, 배, 딸기 등 어릴 때 내 손길을 끌지 못하던 녀석들이 눈에 들어온 게다. 안방 주인이 바뀌면서 생긴 현상이다. 아내는 사과보다는 포도를 좋아한다. 자기 죽으면 제사상에 다른 과일은 몰라도 포도 놓는 것을 잊지 말라고 어린 아들에게 농담 삼아 당부할 정도다. 신혼 초 아내가 담근 김치는 별로였다. 어머니 김치가 최고였다. 어머니는 제핏가루를 넣은 김치를 담그셨다. 신혼 초 고향집에 가면 김치 하나만으로도 밥 한 공기 비우기란 일도 아니었다. 지금은 아내 김치도 좋다. 아들은 ‘엄마 손 김치’ 아니면 먹지 않겠다고 애교 섞인 ‘협박’을 하기도 한다. 아들 녀석이 결혼해서도 엄마 김치를 그리워할지 궁금하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길섶에서] 백수들의 은어/안미현 논설위원

    임기가 끝나 쉬고 있는 관료를 모처럼 만났다. 어떻게 지내시냐고 했더니 “하바드생”이란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하릴없이 바쁘다”는 각주가 따라나왔다. 그런데 슬슬 ‘예일대생’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바쁜 일이 없는 데도 예전처럼 일찍 일어난다는 것이다. 자신도 백수 세계에 입문한 뒤 터득한 은어인데 참 절묘하다며 웃었다. 예일대생 다음 단계는 ‘동경대생’이란다. 동네 경치 관람하며 소일하는 상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유학파다. 맨 마지막은 ‘서울대생’이다. 매사에 서운하고 울적한 단계다. 정년퇴직을 하든 임기가 끝났든 백수가 되면 대부분 이 네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지인은 서울대생이 되지 않으려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여행도 자주 다닌다고 했다. 누군가 대학 진학을 우유에 빗댄 오래전 유머까지 끄집어내는 통에 다들 한바탕 실컷 웃었다. 서울우유, 건국우유 어쩌고 하는…. 헤어지고 돌아오는데 마음이 헛헛했다. 정년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 나이가 되어서일까, 은퇴한 지인들에게 무심했다는 반성이 들어서일까. 안미현 논설위원 hyun@seoul.co.kr
  • [길섶에서] ‘무뚝뚝이’ 미스터리/문소영 논설위원

    서울 중구 무교동에 가끔 가는 패스트 푸드 가게 두 곳이 있다. 정크푸드의 위험을 고발한 미국 영화 ‘식코’를 보고선 비만의 불안을 느낀 터였지만 햄버거나 핫도그가 먹고 싶은 날에 찾아간다. 그곳에는 빵조각이 떨어진 테이블을 닦고 정리정돈하느라 몹시 분주한 청년 직원이 한 명씩 있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거나, 나 홀로 와서도 스마트폰에서 눈길을 떼지 않는 손님들은 이들의 존재에 별로 관심이 없다. 정갈한 유니폼을 입은 젊은 직원들은 한시도 쉬는 법이 없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도와주기도 했는데 다만 조금 무뚝뚝한 것이었다. 어느 날 점심 때 그 젊은 직원에게 좀 길게 시선을 두었는데, 특수학교 교사를 부인으로 둔 동행인이 살짝 눈짓하고 속삭였다. “장애인 친구가 고용된 것 같아.” “정말?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서울 도심의 패스트 푸드점에서 장애인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니 신선하게 느껴졌다. ‘무뚝뚝이’의 미스터리도 풀렸다. 건강에야 좋지 않겠지만 열심히 일하는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자주 들락거려야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공룡알’/문소영 논설위원

    주말에 전남 장흥에 다녀왔다. 노란 벼가 가득했던 평야는 수확을 마쳤지만 단풍은 아직 남하하지 않아 나무들은 푸르러 늦여름 분위기를 풍겼다. 텅 빈 논에 흰색의 커다란 공처럼 생긴 낯선 것들이 놓여 있어 눈길을 끌었다. 시골 ‘할매·할배’들이 ‘공룡알’이라고 부르는, 탈곡을 마친 볏짚을 말아놓은 것이었다. 누군가가 소 여물로 줄 볏짚들이 비나 서리에 젖어 손상되지 않도록 탈곡을 마친 직후에 기계를 이용해 둘둘 말아두고 겉은 흰색 비닐로 꽁꽁 싸둔다고 설명해 주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시절엔 추수하면 한동안 볏단을 논바닥부터 척척 쌓아두었다. 자연 상태로 말려서 아궁이 불쏘시개나 소 여물로 쓰기도 했다. 어릴 때 그 짚가리를 보면 우리 집에 풍년이 든 듯이 기분이 좋았다. ‘공룡알’은 볏짚을 자연 상태로 건조하거나 보관할 때 생길 수 있는 손실을 줄일 수 있단다. 3년이 지나도 끄떡없단다. 초기에는 숙성용 효소 처리를 했는데 볏짚에 메주를 발효시킬 만큼 효소가 많아 그럴 필요없단다. 감탄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한우야, 튼튼하게 자라라!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계단의 재발견/정기홍 논설위원

    어느 건물의 층계에 붙여진 ‘건강한 발걸음’이란 문구를 보고 계단의 가치를 새삼 생각한 적이 있다. 계단을 오를 때 소모되는 에너지와 빠지는 체중, 연장되는 수명을 수치로 적시했다. 이를 테면 체중 75㎏인 사람이 한 층을 오를 때마다 ‘3㎉, 8g, 1분20초’의 건강상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2층에서 3층으로 오르면 6㎉가 소모되고 16g이 빠진다. 수명은 2분40초 연장된다. 계단을 오를수록 운동량이 많아지는 만큼 이는 단순 수치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지만…. 건물의 문구처럼 걷기만 한 운동은 없다. 그런데 그 효과는 걷는 품새에 따라 다르다. 반듯하고 빠르며, 보폭이 넓은 것을 건강한 걸음으로 친다고 한다. 엉덩이를 흔들며 요염하게 걷는 ‘먼로 워크’(Monroe Walk)도 전신운동에 아주 좋다니 걸음새 자체도 참 흥미롭다. 오늘도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두고 선택의 길에 선다. “뱃살 나온 이여, 엘리베이터의 한 명 몸무게 기준이 65㎏이란 걸 아는가.”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삐~” 소리가 나거든 먼저 내려 계단으로 향하는 배포를 갖자.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팔랑귀/문소영 논설위원

    야무진 모양의 귀를 가진 미국 유학파이자 교수 출신의 어느 성악가는 자신이 ‘팔랑귀’란다. 팔랑귀는 주관 없이 남의 이야기에 솔깃하기를 잘하고, 잘 속아 넘어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니 귀 자체는 죄가 없다. 어른이 되어서도 팔랑귀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뜻밖에 ‘동료’를 만나니 동병상련의 기쁨은 클 수밖에 없었다. 기자 초년병 시절 야근 후 잠결에 받은 전화마케팅에 넘어가 50만원짜리(수습기자 월급이 60만원) ‘엉터리’ 영어학습 테이프를 사놓고 끙끙 앓기도 했고, 사무실에 뻔질나게 찾아와 사탕을 주던 보험 아주머니를 끝내 내치지 못해 불필요한 보험에 가입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요즘 상품에 대한 전화 마케팅이 일상화돼 그 팔랑귀의 성악가는 재난의 연속이란다. 200만원 상당의 물건을 선물로 준다고 해서 받았더니, 결국 다 결제해야 했다는 것이다. 공짜 욕심에, 또는 세상물정 모르고 어수룩한 탓에 액면대로 사람 말을 믿는 것이 죄라면 죄다. 이제 와서 말뚝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누가 우리 좀 말려주세요.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돋보기/최광숙 논설위원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는 바늘에 실을 꿰실 때마다 딸을 찾곤 하셨다. 힘들이지 않고 가느다란 실을 바늘귀에 한 번에 통과시키면 어머니는 옆에서 바라보다 그런 딸이 부러운 듯 “젊은 게 좋다”라고 한마디 하셨다. 그때는 그 ‘젊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세월이 흘러 이젠 나도 바늘귀 찾기가 힘들어진 나이에 접어들었다. 꽤 오래전부터 가까이 있는 것이 잘 안 보여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노안’이 찾아온 것이다. 결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하지만 돋보기가 마치 ‘나 나이들었네’하는, 물릴 수 없는 증거가 될까봐 돋보기 쓰기를 몇 년째 미뤄 왔다. 신문이나 책을 읽을 때면 쓰고 있는 안경을 벗어 글을 눈앞에 가까이 두고 맨눈으로 읽어가며 버텼다. 안경을 썼다 벗었다, 손도 바쁘고 마음도 바쁜 나날의 계속이었다. 최근 용기를 냈다.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워 돋보기를 맞췄다. 비로소 나이에 순응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도 젊음에 대한 미련이 남아 돋보기 같아 보이지 않는 듯한 안경테를 골랐다. 누가 봐도 돋보기인 줄 모르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패션양말의 유혹/최광숙 논설위원

    어느 나라든 보통 관료들의 옷차림은 점잖기 마련이다. 하다못해 양말도 칙칙한 색깔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지난달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전용기에 오른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좀 달랐다. 보도 사진을 보면 헤이글 장관의 엷은 베이지색 바지 아래 드러난 양말은 석류와도 같은 빨간색이었다. 예전에 검정 교복차림에 다이아몬드 스텝 춤을 장난스럽게 추던 어느 개그맨의 빨간 양말이 떠오른다. 튀는 양말이 물론 헤이글 장관의 전유물은 아니다. 호호 할아버지가 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파란 점박이 분홍양말이나 성조기 무늬 양말 같은 ‘아주 괴상하고 특이한 양말’을 좋아해 부인 바버라 여사가 골치 아파한다고 하지 않나.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어느 전직 고위공직자의 양말도 요란한 무늬가 범상치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이들이 남다른 패션감각의 소유자이기에 이런 양말을 신은 것 같지는 않다. 꽉 짜인 일상에서 잠시나마 ‘일탈’의 여유를 느껴보고자 함이 아닐까. 아무튼 그 파격의 미학에 자유의 기운이 담겨 있어 좋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욕망의 끝/문소영 논설위원

    냉소적인 영화감독 우디 앨런의 신작 ‘블루 재스민’을 봤다. 1947년 초연된 미국의 대표적인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샤넬 의상과 에르메스 버킨백, 루이비통 여행용 가방을 든, 살짝 정신이 나간 금발의 재스민이 주인공이다. 자신의 본명인 자넷이 촌스럽다는 이유로 재스민으로 바꾼 그녀는 ‘우월한 유전자’ 덕분에 신분상승의 꿈을 이룬다. 그러나 뉴욕 상위 1%의 일원인 재스민은 남편의 파산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가난한 이혼녀 동생 진저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제목의 블루(blue)라는 말처럼 우울한 일이다. 하지만 재스민에게선 그리 연민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녀의 삶은 타인을 착취하고 세금을 탈루하고, 법을 위반하면서 쌓은 ‘월스트리트의 신기루’, 자기기만적인 자세를 버리는 순간 이내 붕괴하고 마는 허영의 삶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종종 행복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그 환상에 넘어간다면 기다리는 것은 비극일 듯싶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남자의 눈물/손성진 수석논설위원

    한 TV 드라마에서 남자가 펑펑 울었다. 남자는 일생에 세 번 운다고 했던가. 태어날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 남자는 되도록 눈물을 보여선 안 된다는 뜻이지 싶다. 의학적으로 눈물은 여성호르몬보다는 남성호르몬과 관련이 있어서 남자가 더 자주 눈물을 흘리게 돼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자는 눈물을 참는 것일까. 속으로 우는 것일까. <진정코 내가 바라던 하늘과 그 계절은/ 푸르고 맑은 내 가슴을 눈물로 스치고/ 한때 청춘과 바꾼 반항도/ 이젠 서적처럼 불타 버렸다>(‘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 박인환) 언젠가 술자리에서 메모해 갖고 다니던 이런 시 구절을 읽다 눈자위가 젖어버린 적이 있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지는 이유는 ‘공감’ 때문이란다. 나이 든 사람은 방황, 사랑, 이별, 죽음을 다 경험했기에 참뜻을 아는 것이다. 요새는 눈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눈물을 참지 않으련다. 눈물은 따뜻한 마음의 표현이리라. 눈물이 없는 사람은 마음도 메말랐을 게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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