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바느질/정기홍 논설위원

    하찮은 것에 ‘살이’의 맛을 더하는 경우가 많다. 사는 재미다. 두어달 전 아내가 “기울 수 있냐”며 해진 욕실 슬리퍼를 앞에 내놓았다. 오래된 터라 가장자리가 떨어져 신기가 조금 거북한 상태였다. “얼마 안 줘도 사는데 새것으로 바꾸지···.” 누구나 정이 든 ‘몸붙이’를 버리기란 쉽지 않은 법. 자린고비의 정서도 뒤따랐을 게다. 저녁 무렵 수선 작업이 시작됐다. 재질은 딱딱하지만 바늘은 어렵지 않게 들어간다. 어릴 때 이불 호청을 바느질하던 어머니 곁에서 바늘 가는 길을 눈여겨보았기 때문일까. 작업을 시작한 지 30여분. 촘촘히 꿰맨 실밥은 제 모습을 근사하게 찾아 주었다. 바늘을 슬리퍼에 꽂느라 손가락 끝 세포는 통증으로 아우성이었지만···. 요즘 욕실에 들어설 때마다 ‘수술 자국’이 선연한 그놈 모습에 웃음 짓는다. 어느 가정이나 소소한 자존심에 부부 간 다툼은 늘 일어난다. 영원불멸의 가정사다. 수선된 슬리퍼는 하루에도 열두 번 참을 ‘인’(忍) 자를 새기게 한다. 어느 값비싼 슬리퍼가 이런 무상(無上)의 즐거움을 줄까 싶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인도 화장실/최광숙 논설위원

    인도에서 화장실 문제로 아주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1990년대 초 인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시골 길을 달리던 관광버스는 때가 되면 아무 곳에서나 섰다. 그러면 모세의 바다가 갈라지듯 남자는 오른쪽으로, 여자는 왼쪽으로 나뉘어져 각자 알아서 용변을 봐야 했다. 처음에는 지인들끼리 점퍼 등으로 가려주며 일을 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엉덩이를 내놓고, 심지어는 서로 마주 보면서 용변을 보는 ‘경지’까지 올랐다. 처음이 어렵지,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곧 적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이다. 인도인들은 그런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서인지 지금도 인도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화장실이 없다는 뉴스를 최근 접했다. 정부가 화장실 설치운동까지 한단다. 그중 하나가 ‘화장실 없으면 신부도 없다’라는 캠페인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인도 남성들의 자존심을 자극한 것이다. 화장실이 없다는 게 가난이 죄임을 뜻하는지, 특유의 문화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분명한 건 우리나라 신랑들은 화장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열애/문소영 논설위원

    66세의 연기자 백윤식이 30살 연하인 공중파 TV 소속의 여기자와 열애를 한다는 뉴스에 중년 남자들이 부러워 죽는다. 검색에서 ‘백윤식’을 치면 관련 검색어로 이미 여기자의 이름이 딸려 나온다. 서로의 얼굴과 몸매를 벌써 품평하고, “과연 누가 누구를 사로잡은 것이냐”며 입씨름을 한다. 젊음이냐, 연륜이냐의 대결이다. 백윤식을 그저 느끼하게 잘생긴 배우에서 특별하게 매력적인 연기자로 인식한 시점은 TV 드라마 ‘서울의 달’(1994년)과 영화 ‘싸움의 기술’(2006년)이 아니었나 싶다. 그에겐 낮고 정중한 목소리를 뒤엎는 코믹한 반전의 연기가 있었다. 영화에서 전설적인 싸움의 고수 백윤식은 학원폭력의 희생자인 ‘고딩’ 제자를 파이터로 변신시킨다. “힘이 좀 달린다 싶으면 주변의 사물을 잘 이용해. 모래라든지 돌이라든지. 그게 기본이야.” 반칙이 아니냐는 반발에 “싸움에 반칙이 어딨어? 싸움엔 룰이 없는 거야”라고 가르친다. 돌아보면 연애도 싸움처럼 주변의 모든 자원을 활용하는 거다. 시도해 봐야 결과도 알 수 있다. 모태 솔로들! 분발하자.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상가집 웃음소리/박현갑 논설위원

    며칠 전 모친상을 당한 친구 상가에 갔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세상 사는 얘기가 나왔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보도도 하나다. “애 얼굴을 보니 아버지가 맞는 것 같더라” “본인이 아니라고 했잖아. 그런데 이런 게 뉴스거리가 돼?”라는 등 술잔과 함께 가벼운 웃음이 섞인 대화 도중, 한 친구가 “채동욱이 누군데?”라고 물었다. 일제히 그 친구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 친구 입에서는 “먹고살기 바빠. 신문, 방송 챙겨 볼 겨를이 없어. 오늘도 어렵게 왔어”라는 말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서민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월급은 오를 기미가 안 보이는데 자녀 교육비 등 생활씀씀이는 갈수록 불어만 가니 사회인으로서의 여유가 그만큼 사라진 게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이념갈등, 공공기관장 인사 지연 등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는 뉴스가 남의 나라 얘기인 셈이다. 열정은 사라지고 무관심만 쌓이는 게 중년인가. 가슴 아픈 사연 없는 사람 없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어깨 한번 툭 쳐주고 함께 웃으며 위로해 보자. 세상이 좀 더 무지갯빛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길섶에서] 가을맞이 대청소 단상/문소영 논설위원

    추석을 앞두고 가을맞이 대청소를 준비하고 있다. 앞베란다와 뒷베란다의 묵은 먼지를 닦아내고 커튼과 여름용 침대보, 이불 등 대형 빨래도 세탁해야 한다. 고민은 청소를 잘 못한다는 것. ‘쓸고 닦고 빠는 일을 왜 못해’라고 지적한다면, 그 정도 일은 잘할 수 있다고 답할 수 있다. 정확하게는 본격적인 청소에 돌입하기 전에 하는 정리정돈을 못한다는 거다. 안 한다기보다는 불능(不能)에 가깝다. 정리정돈을 다짐해 놓고 30분도 못돼 지저분한 방안에서 코를 박고 책을 읽는 스스로를 발견하기 일쑤다. 일종의 문자중독증과 호기심이 발동한 탓인데 어릴 때부터의 고질이었다. 초등학교 때 차례 음식을 넣어둘 다락을 청소하라는 엄마의 지시를 받고 올라가 사위(四圍)가 깜깜해질 때까지 언니·오빠가 사용했던 낡은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읽다가 내려와 엄마의 복장을 터지게 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엄마의 복장 터지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혼자 쓰는 방 하나를 쓰레기통에 가깝게 사용하는 청소년기 딸의 태평한 태도에서 깨닫고 있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쉼표 인생’/정기홍 논설위원

    어느 시인이 그랬다. 시는 연가(戀歌) 아니면 애가(哀歌)라고···. 요즘 시집을 옆에 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십수년간 안 하던 ‘짓거리’인데, 지하철에서도 가끔 펼친다. 어느 구절 앞에선 진도를 못 낸 상념들이 난장(場)을 펼치며 속마음을 휘젓는다. 이팔청춘도 아닌데 대체 뭔 일인가 싶다. 며칠 전 ‘쉼표’의 뜻을 못 헤아린 채 시집을 덮고 말았다. 언어 조각이 이토록 읽는 이의 감정을 팔색조처럼 펼쳐낼까…. 소싯적 ‘쉼표의 꾐’에 빠진 적이 더러 있었다. 소설은 시말(始末)이 뻔하다며 그 끝을 보지 못하던 차에 ‘시(詩)쟁이’가 글길에 찍어준 쉼표에 혹했던 것. 그로부터 가끔 접한 쉼표는 삶의 길잡이로, 드잡이로 자리했다. 그제 펼친 시집에서 엄한 꾸중을 들었다. ‘무엇에나 이기면 좋고 지면 화나지/지고만 살아 와서/마음은 늘 화나 있고 몸은 늘 병든 걸… 뭐가 달라져야 말이지/내상으로 골병든 부상병인 걸’(유안진의 마이너리티 중). 악다구니가 많았냐고 죽비를 내리친다. 그러고 보니, 자존심의 ‘따옴표’만 찍으면서 살아온 듯하다. ‘쉼표 인생’도 그 얽음이 무진장할진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게딱지/안미현 논설위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다가 통 안에서 게딱지를 발견했다. 갓 지은 밥을 게딱지에 비벼 후딱 해치웠을 누군가가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가만, 게딱지가 재활용이 되는 음식물이던가? 생판 모르는 누군가의 밥상 행복에 배시시 새어나오던 웃음이 뚝 멈췄다. 며칠 전 발견했던 달걀껍질까지 중첩되면서 얼굴이 더 구겨졌다. 구청에서 받은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실시’ 안내문이 떠올랐다. 달걀껍질에 동그라미까지 쳐가며 각별한 주의를 요구하고 있었다. 신문방송에서 얼마나 떠들어댔는데 설마 아직도 달걀껍질이 음식물 분리수거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과잉친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달걀에 이어 게딱지까지 목도하고 보니 그게 아니다 싶다. 다시 한번 환기하자면 생선이나 갈비 뼈, 복숭아 씨, 딱딱한 껍데기 등은 일반 쓰레기다. 한마디로 동물 사료로 쓰일 수 있으면 음식물 쓰레기, 없으면 일반 쓰레기다. 그래도 헷갈린다면 좀 더 간단한 구분법이 있다. 사람이 먹지 못하는 것은 동물도 못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안미현 논설위원 hyun@seoul.co.kr
  • [길섶에서] 광고지 차별/서동철 논설위원

    점심을 먹으러 회사 밖 무교동 거리에 나서면 광고지를 나눠주는 사람이 한 두 명은 보이게 마련이다. 대부분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간절한 눈빛으로 건네곤 해서 되도록이면 받아 들겠다고 마음먹는다. 엊그제는 새로 생긴 햄버거집에서 아르바이트 학생을 시켜 광고지를 돌리고 있었다. 공짜 감자튀김 쿠폰쯤은 붙어 있겠지 하며 다가섰지만, 나에게는 내밀지 않았다. 햄버거는 도무지 먹지 않을 세대로 보인 것이다. 하긴 햄버거집에 가면 나 같은 50대 남자 손님은 많지 않다. 사 먹을 만한 계층만 집중적으로 공략하겠다는 전략일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미장원 개업 인사라면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햄버거는 벌써부터 젊은 사람들만 먹는 음식이 아니지 않은가. 생각해 보면, 언제부턴가 나에게는 주지 않는 광고지가 있다. 영어나 중국어, 컴퓨터 학원 것이다. 미래를 위해 투자할 리 없는 ‘한물 간 인간’으로 비쳐진다는 뜻이다. 반면 안마나 사우나 광고는 멀리서도 달려와 쥐여준다. 하하, 나도 잘 모르는 내 마음을 어찌 그리들 꿰뚫어 보고 있는지….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백구두 신사/최광숙 논설위원

    아무리 멋쟁이라도 하얀색 구두는 보는 이가 부담스럽다. 대중의 눈을 사로잡을 책무를 진 연예인이라면 모를까 길거리의 평범한 이가 백구두를 신었다면 뭔가 불편한 시선이 꽂히기 마련이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정말 오랜만에 백구두 할아버지를 봤다. 한참을 내려다보고 올려다보길 몇 차례. 하늘거리는 얇은 여름철 양복은 말할 것도 없고 안에 입은 셔츠와 넥타이 등 온통 하얀색으로 꾸몄다. 하얀 중절모 밖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 역시 은빛이다. 그래도 하얀 색깔 맞춤 패션의 완성은 역시 백구두였다. 예전에는 백구두 신사를 보면 부인 속이나 썩이는 한량(閑良)이 아닐까 의구심도 들었다. 저렇게 차려입고 어딜 가서 무슨 일을 할까 온갖 상상도 하곤 했다. 하지만 한살 두살 나이 먹어가니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 웃음도 나오고 기분이 좋다.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멋내며 즐기는 그레이 신사가 마냥 싫지는 않아진 것이다. 사는 게 시들시들해지면서 외모를 치장하는 것도 만사 귀찮아지는 요즘, 곱게 몸단장한 할아버지를 보니 번쩍 자극이 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세탁 띠지/안미현 논설위원

    출근길 횡단보도 앞. 남자의 엉덩이에 시선이 갔다. 검정 바지에 선명하게 붙어 있는 초록 종이. 세탁물 띠지였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젊은 남자의 뒤춤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세탁 증빙 표지(標識)라니…. 왜 하필 눈에 잘 띄지 않는 바지 뒤쪽 고리에 붙여 놓았을까. 세탁소 주인의 음모가 느껴졌다. 근거 없는 음모를 캐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저 불청객을 어찌할 것인가. 떼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외간남자였다.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낯선 여자에게 받기에는 너무 민망한 ‘지적질’ 아닌가. 그렇게 남자의 엉덩이를 째려보며 갈등하는 사이, 신호가 바뀌었다. 건너면서 생각한다. 친절한 직장동료가 분명 말해줄 거야.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맞닥뜨리는 경험이니 그리 무참해하지 말라는, 오지랖 넓은 위로까지 속으로 보낸다. 세탁소 주인들에게 촉구한다. 바쁘고 칠칠하지 못한 현대인들을 위해 가급적 띠지는 옷 안쪽에 달아줄 것을. 부득이 바깥으로 가야 한다면 옷주인의 시각 레이더에 최대한 잘 포착되는 위치에 살포시 달아줄 것을. 안미현 논설위원 hyun@seoul.co.kr
  • [길섶에서] 번개점심/박건승 논설위원

    오래전에 잡아뒀던 점심 약속이 상대방의 사정으로 취소되는 일이 간혹 생긴다. 그럴 때 문득 생각나는 것이 ‘번개점심’이다. 주로 출근길 지하철 속에서 카톡이나 문자로 ‘번개점심 신청이오’하는 식이다. 식사를 같이 할 지인을 찾는 것이 주된 목적이지만, 카톡이나 문자로 날아드는 상대편의 반응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성공 확률은 통상 10명에 1명꼴. 어떤 때는 한꺼번에 서너명으로부터 오케이 사인이 와서 곤혹스러울 때도 있다. 그 뒤로는 꾀를 내어 선착순 요법을 쓰고 있다. 언제부턴가 내 휴대전화 메모장에는 번개점심 후보군 명단이 만들어졌다. 신문사 인근에 근무하는 지인들로 20명 정도 되는 것 같다. 번개점심에 응해 오는 사람 중에는 자신들의 직장 동료들과 약속을 깨고 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그 정성이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뭐니뭐니 해도 ‘번개’의 묘미는 점심 장소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 살아가는 또 다른 맛이다. 박건승 논설위원 ksp@seoul.co.kr
  • [길섶에서] 빚보증/정기홍 논설위원

    동네에서 하나뿐인 가게는 농한기가 되면 노름판이 되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코 그 판에 끼어든 적이 없다. 구경만 하는 건 심심할 터인데, 소 닭보듯 하시던 모습을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1980년대 말 내가 직장을 가졌을 무렵, 올림픽 개최 등으로 경기는 호황의 길을 걸었다. 직장인이면 으레 네댓 개의 신용카드를 지갑 속에 꽂고 다녔다. 은행돈 수천만원 빌리는 것은 예사. 직장인의 덕목 1호가 보증이던 시절이었다. 다시 10년 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가 닥쳤다. 수년전 몇몇 지인에게 보증을 선 나로선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갱무도리(無道理). 속이 쓰렸지만 갚고 또 갚았다. 결국 돈도 지인도 다 잃고 말았다. 한 유명 방송인이 빚보증 때문에 개인회생 절차를 신청했단다. 돈 거래와 빚보증엔 샅바싸움이 있기 마련. 정(情) 많은 이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오죽하면 성경에도 ‘보증인은 그물에 걸린 새 신세’란 경구가 있을까. 요즘 문득 ‘노름판의 아버지’를 잊고 보증을 선 일이 야속할 때가 있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그게 인간이니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벌초/박현갑 논설위원

    벌초객 2명이 벌에 쏘여 사망했단다. 안타까운 일이다. 벌초는 보통 추석을 앞둔 이 무렵에 한다. 절기상 풀의 성장이 멈춰 풀 베기가 가장 쉬워서다. 하지만 도시인으로서는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 대충 하기도 쉽지 않다. 어른 키를 웃도는 잡목이나 덤불 더미 때문에 산소 위치 파악도 쉽지 않다. 갑작스러운 뱀의 출현이나 벌과의 싸움도 이겨내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낫질은 물론 예초기를 잘못 다뤄 팔, 다리를 다칠 수 도 있다. 이래저래 곤욕이 아닐 수 없다. 주변에는 벌초를 끝낸 이도 있고 ‘벌금’을 내고 벌초 노역을 면제받은 이도 있다. 지난해 벌초 대행비용으로 15만원을 사촌 형님에게 보냈다. 올해엔 참석할 예정이다. 조상을 생각하고 후손의 도리를 되새겨 보는 소중한 기회로 생각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화장률은 2011년 기준 71%에 이른다.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다. 지금 10대가 어른이 될 무렵이면 벌초 풍습이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 조상과의 소통이라는 우리 정신문화의 맥이 끊기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길섶에서] 주1회 한식먹기/박현갑 논설위원

    얼마 전 선배로부터 까페베네가 미국의 스타벅스를 제치고 중국 지점 개설에 성공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세계 무대를 놓고 경쟁하는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만만했는지 모를 일이나 내수 시장이 좁은 만큼 수출은 권장할 일이다. 특히 소비형 산업일수록 더 그렇다. 어제 CJ그룹은 만두를 제2의 초코파이로, 한식 레스토랑을 제2의 맥도날드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소비자들이 매주 한 차례 이상 CJ의 한식 제품을 즐기게 될 것이라는 구체적 지표까지 제시했다. 우리 음악과 영화로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입맛까지 우리 취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국토가 좁은들 대수랴.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식습관은 갈수록 서구화되고 있다. 주식인 쌀과 김치의 소비는 줄고 빵 등 대체식품 소비는 늘어만 간다. 내 아이들도 밥보다 햄버거, 치킨, 피자를 선호한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학교에서는 점심 때 햄버거도 나온다고 한다. 이러다 ‘쌀 데이’ 이벤트나 주 1회 한식 먹기 캠페인을 펼치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길섶에서] 형제지간/정기홍 논설위원

    주말 저녁에 동서, 처남과 함께한 자리에서 “친형과 단둘이 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는 처남의 말에 사뭇 놀랐다. 어렵기도 하거니와 형님의 권위의식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나이 오십임에도 단둘의 술자리를 청하기가 어렵단다. “아무려면 그 정도일까” 싶었지만, 나도 형제간에 술을 놓고 마주한 적은 명절 말고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어릴 때 허물없던 형제 관계는 대체로 결혼한 뒤엔 복잡미묘해지는 듯하다. 집안 대소사 때나 명절 때엔 그리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질 못한다. 집안 일 등을 두고 서로 어깃장을 놓다가 자리를 뜨기 일쑤다. 주위의 경험담도 비슷하다. 형제보다는 조금 먼 사촌과 동서 등과 있었던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 자리가 더 즐겁고 편하다는 말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의좋은 형제’ 우화를 떠올려 본다. 어렵게 살던 형제가 매일 밤 추수한 볏단을 형님은 아우의 논에, 아우는 형님의 논에 옮기다가 마주쳤다는 이야기다. 혹여 형제간 이해타산에 젖어 금과옥조 같은 우애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추석명절이 다가온다. 살가운 가족 술자리를 만들어 보자.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택시족/문소영 논설위원

    대학 때부터 ‘택시족’이었다. 2종 보통에서 1종 보통으로 업그레이드된 24년 무사고 운전면허증과 승용차도 소유했지만 자주 택시를 탄다. 그 좋다는 미국 연수길에 우울증을 앓았는데 시시비비를 시시콜콜 따지지 못한 언어 장벽도 원인이었지만, 택시를 쉽게 탈 수 없는 환경 탓이 컸다. 서울에서야 큰길로 나가 택시를 잡아 타면 어디든지 갈 수 있지만,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과 같은 소도시에서는 콜택시를 부르고 목적지까지 비싼 요금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택시 이용이 잦은 것은 문 앞까지 대령하는 택시의 편리함 때문인데, 본질적으로는 눈앞의 목적지도 못 찾는 ‘길치’인 탓이다. 서울시가 택시 기본요금을 현행 2400원에서 3000원 안팎으로 인상할 예정이라고 한다. 4년 만의 인상이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택시 기본요금은 이미 올랐다고 했다. 택시족이지만 이번 요금 인상으로 당분간 택시 타기를 자제해야 할 것 같다. 경기 위축으로 손님이 줄었다는 택시기사의 발언에 탈 때마다 괜히 좌불안석이었는데 말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48시간의 법칙/문소영 논설위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이어트 열풍이다. 매력적인 몸에 대한 관심이 더 이상 어린 여자에 국한된 게 아닌 탓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몸을 상업화한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결핍이 일상화됐던 시절에 선호됐던 당나라 양귀비와 같은 통통한 몸매나 부자의 불룩한 배는 이제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몸매는 S라인, 턱선은 V라인이어야 하고 배에는 식스팩을 장착해야 한다. 그래서 살빼기에 다양한 식이요법이 제안된다. 사과·바나나 등 한 과일만 먹는 식이요법이나 밥이나 국수를 배제한 채 고기만 먹는 ‘황제 다이어트’ 등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최근에 ‘간헐적 단식’이 인기다. 아무 때나 식사를 거르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 상당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래도 먹는 즐거움을 못 버리는 사람들에게 운동을 마친 뒤 30분 안에 음식을 먹으면 살이 찌지 않는다는 ‘매직 타임’이나, 전날 음식을 많이 먹었다 싶으면 그다음 날 아침·점심은 굶어 48시간 동안 열량을 조절하면 살이 안 찐다는 ‘48시간의 법칙’ 등은 위로가 된다. 그 주장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맥주 후진국/서동철 논설위원

    맥주가 OB와 크라운 둘뿐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OB가 크라운보다 훨씬 잘나가는 분위기였지만 친구의 독일인 매형은 한국에 올 때마다 꼭 크라운 맥주만 찾았다고 한다. 크라운 맥주가 쌉쌀한 호프 맛이 조금 더 짙어 맛있다며…. 친구의 누이는 간호사로 독일에 갔다가 의사로 일하던 남편을 만났다. 그런대로 맥주의 본고장 출신 입맛에도 맞는 맥주가 있었던 시절이다. 요즘 맥주 맛은 한마디로 재미가 없다. 동료들이 싱거운 맥주 맛을 탓할 때마다 “한국 맥주는 처음부터 소주와 섞어 마시는 용도로 만들어서 그런 거야” 하고 농담을 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중국엔 칭다오, 일본엔 아사히가 있고 북한조차도 대동강이 명성을 떨치고 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대동강 맥주가 한국 맥주보다 맛있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국의 북한 전문 여행사가 대동강 맥주를 비롯해 북한의 맥주 공장을 둘러보고 시음하는 관광 상품도 내놓았다. 맥주가 맛없는 것이 곧 삶의 질이 낮은 것이라면 억지일까. ‘맥주 후진국’에서 하루빨리 벗어났으면 좋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에어컨/최광숙 논설위원

    추위에 약해 자연 바람을 싫어한다. 작은 선풍기 바람도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 에어컨 바람은 말할 것도 없다. 에어컨을 쐬면 금세 체온이 떨어져 감기 걸리기 일쑤다. 그러니 여름철 어딜 가도 냉방장치가 잘된 곳은 부담스럽다. 에어컨 바람이 가장 약한 곳이 내겐 명당자리다. 집에서 에어컨 없이 지낸 지가 꽤 됐다. 요즘 같은 폭염, 열대야에 가끔 에어컨 생각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어떤 피의자는 하도 더워 경찰서로 에어컨을 배달시켰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지만 사실 우리가 언제부터 에어컨 없으면 못 살았나 싶다. 선풍기도 귀해 손부채 하나로 여름을 났던 시절을 우린 기억한다. 남들은 어찌 그렇게 여름 무더위를 나냐고 묻지만 사실 에어컨 없이 사는 생활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창밖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이 얼굴을 살짝 간지럽히면 그게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게다가 요즘 같은 전력대란에 에어컨을 켜지 않는 것도 작게나마 애국하는 것 아닐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인터넷 중독 문화/박현갑 논설위원

    “파리 지하철에서는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더라. 와이파이망이 우리나라만큼 좋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사색을 즐기기 때문인지 스마트폰을 보느라 정신없는 우리와 대조적이더라.” 최근 프랑스 출장을 다녀온 후배가 한 말이다. 주변의 스마트폰 이용 풍경을 떠올려본다. 출퇴근 지하철에서는 물론 회식자리나 화장실에서도 스마트폰은 우리를 유혹한다. 자기 전 작별인사도, 기상 나팔 역할도 스마트폰이 한다. 잘 쓰면 보배지만 경우에 따라선 흉기가 될 수 있다. 자녀의 스마트폰 중독에 화가 난 나머지 스마트폰을 망치로 부순 사람도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인터넷 이용률이 세계 211개국 가운데 21위로 파악됐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전체 인구에서 인터넷 사용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파악한 결과다. 포클랜드제도가 96.92%로 5년째 1위고 우리는 84.10%로 21위였다. 속도는 최강이지만 이용률은 의외로 높지 않은 셈이다. 이용률을 떠나 인터넷 중독을 사용자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앱을 만들면 어떨까?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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