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단풍 구경/정기홍 논설위원

    아파트 단지의 단풍이 제대로 물올랐다. 일엽지추(一葉知秋), 뭇 붉은 잎이 새삼스러운 때니 별스러운 건 아니지만 집에서 내려다보는 맛은 남다르다. 잎을 하나씩 쪼개 보는 것보단 파스텔 그림 감상하듯 먼발치서 즐기는 것이 제격이 아닌가 한다. “한국의 가을만 한 게 없다”는 말에 단풍도 한몫 단단히 하는 요즘이다. 사계절을 가진 우리가 즐길 복(福)이다. 아파트 단풍을 구경하다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 이른 봄의 정취를 쥐락펴락하는 벚꽃나무의 잎 색깔이 밋밋해 보는 재미가 덜하다. 옛 풍류객은 “단풍 든 잎사귀가 봄꽃보다 더 붉다”고 했다던가. 무릇 생물엔 자태를 뽐내는 때가 있는 것같다. 가치도 각기 다르다. 흐드러진 봄꽃은 꺾어서 갖고 싶지만, 가을 색을 곱게 차려입은 단풍은 주워서 넣고픈 것 아닐까. 단풍은 가경(佳景) 중의 으뜸이다. 한겨울 눈꽃도, 봄꽃도 단풍 옷의 색깔엔 못 미친다. 영리함도 지녔다. 바람이 곧 급해짐을 알고 얼른 몸을 땅으로 내린다. ‘구시월 세단풍(細丹楓)’ 구절엔 금방 시들어진다는 뜻도 있다지 않은가. 일생에 수십 번밖에 못 보는 게 단풍이다. 이 가을, 부지런해져야겠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
  • [길섶에서] 권력자의 사과/문소영 논설위원

    정치부 기자들끼리 낄낄거리며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권력의 먹이사슬에 관한 얘기다. 장관은 국회의원만 없으면 할 만하다고 한다. 임시국회의 대정부 질의니, 9월 정기국회니, 10월 국정감사니 하는 시기에 ‘1인 헌법기관’을 자처하는 차관급 국회의원은 장관들을 불러다 놓고 호통을 치고 면박을 주고 “똑바로 일 처리하라”며 경고까지 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기자들만 없으면 할 만하다고 한다. 입법활동이 부실하다는 기사를 쓰거나, 본회의장에서 몰래 나체사진을 보거나, 부적절한 관계의 여(남)성에게 문자를 보내는 등의 낯뜨거운 상황을 포착해 보도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자들의 ‘천적’은 소속 언론사 부장이다. 의전으로 보면 총리급인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뒤늦게 국정감사에 나와 공인이 처음이라서 몰랐다고 사과하며 국회의원에게 90도로 절하는 사진을 봤다. 공직의 의미를 모르는 인물이 총재가 됐는데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는다면서 인사실패를 사과하는 김기춘 청와대비서실장의 국회 답변도 읽었다. 국감의 이 고비만 넘기면 편안한 분들다운 처신이다. 이런 보도에 답답하고 쓴웃음만 나온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내비게이션/박찬구 논설위원

    운전 경력 20년이 다 되어 간다. 낯설고 먼 길에는 지도책이 필수였다. 서울 근교 드라이브길이든, 수백㎞ 떨어진 국립공원이든 거리낌이 없었다. 두툼하고 손때 묻은 지도책 서너 권은 늘 든든한 길 친구였다. 초행길에 방향을 놓치면 차를 세워 두고 동네 지리에 익숙할 법한 행인이나 음식점 주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전망 좋은 길에서는 예정에 없이 방향을 틀기도 했다. 길에서 길을 묻고 낯선 곳에서 나를 찾는 쏠쏠한 여정이었다. 내비게이션을 처음 만난 건 4년 전 경기지역 출장길에서였다. 후배가 모는 승용차를 타고 가는 내내 날 선 기계음이 귀에 거슬렸다. 샛길도 곁눈질도 허용되지 않았다. 한 치의 여유도 없는 생경하고 마뜩잖은 경험이었다. 지금은, 내비게이션 없이는 삼사십 분 거리도 머뭇거리기 일쑤다. 최신 도로 정보가 네댓 차례 업그레이드되는 동안 지도책은 하나 둘 사라졌다. 수백㎞는 고사하고 수십㎞ 거리도 그때그때 빠른 길을 알리는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는 처지가 됐다. 내 머릿속의 지도가 사라져가고 있다. 내비게이션의 관성에 길들어 일상의 역마살까지 잦아드려나.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아내로부터의 탈출/진경호 논설위원

    청와대 뒷산 자락에 나지막이 수줍게 숨어 있는 종로구 부암동으로 삶터를 옮긴 뒤로 아내는 반려견 ‘방울이’를 데리고 백사실 계곡으로 산보를 다니는 게 하루의 일과가 됐다. 생후 2개월 때 인연으로 13년째 식구로 지내온 녀석은 깜찍한 외모에다 온순한 성격, 명민한 머리로 늘 이웃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리고 그런 방울이에 대한 아내의 사랑은 늘 주위의 사랑과 정확히 비례했다. 산보를 나가 “어머 강아지 귀엽다”는 소리를 많이 들은 날엔 방울이 밥상이 달라졌다. “절에 가서 기도하는데 문 밖에서 꼼짝도 않고 기도하는 걸 지켜보는 거 있지? 사람 같아.”, “사람으로 치면 환갑도 넘은 나이인데 어쩜 그렇게 나보다 더 잘 뛰어다닐 수 있어? 나이를 거꾸로 먹나 봐.” 아내의 방울이 자랑이 부쩍 늘었다. 퇴근해 집에 들어가면 족히 10~20분은 아내의 방울이 자랑 들어주는 게 일과가 됐다. 관심사가 방울이로 옮겨간 아내를 보며 바가지 긁히는 것보다야 백배 낫다 싶다가 아차 했다. 은퇴 후 필요한 것으로 ‘남편’을 꼽은 여성이 열에 둘도 안 된다지 않던가. 아내로부터의 탈출? 착각이다. 방출되고 있는 중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
  • [길섶에서] 배려/정기홍 논설위원

    한 기관장의 배려심에 탄복한 적이 있다. 약속 장소로 가는 중간에 도착 시간을 알렸더니 골목길 먼 곳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엔 함께 온 손아래 동석자도 있었건만 서로 얼굴을 모를까봐 직접 나왔단다. 며칠 전 대선배와의 통화에서도 비슷하게 경험했다. 직접 상관으로 모셨고, 퇴직한 지 꽤 오래되셨다. 통화 내내 말을 높여 몸 둘 곳을 찾지 못한 건 당연했다. 배려는 이처럼 자신의 낮춤이다. 내가 아닌 남, 상대방 중심의 생각에서 나온다. 당연히 감동이 따른다. 산다는 건 배움의 길이다. 공자의 ‘학이시습’(學而時習)으로 비유된다. 단순한 지식뿐 아니라 지혜를 동반하고, 이는 삶의 켜로 차곡차곡 쌓인다. 그래서 공자는 배우고 익혀 가면 즐거움이 뒤따른다고 했다. ‘열호’(悅乎), 즉 기쁨이다. 잘 먹고 배설 잘하는 것에 못지않다. 공자는 벗의 중요함도 논했다.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온다는 뜻이다. 배려는 서로 간에 신뢰를 주고 도타운 기운을 듬뿍 준다. 옛 군자의 덕목만은 아니다. 배려는커녕 잔망스러운 이해타산이 크게 자리한 요즘이 아닌가 한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걷는 기쁨/구본영 논설고문

    신문을 읽다가 색다른 통계에 눈길이 갔다. 서울 시민은 하루 평균 39분을 걷는 데 비해 도쿄나 베를린 시민은 각각 50분과 52분씩 걷는단다. 그래서 일주일에 사흘은 차를 모는 스스로를 돌아봤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공기만 더럽히고 있다는 자책(?)과 함께. 물론 우리네 수도 서울은 보행자 친화적인 도시는 아니다. 자동차 위주로 도시계획이 짜여져 편안하게 걷기란 쉽진 않다. 육교와 지하보도를 힘겹게 오르내리느라 짜증이 날 때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걷는 기쁨을 포기할 이유는 없을 성싶다. 작가 루쉰이 그랬던가. “본래 땅에는 길이 없었지만,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되는 것”이라고. 자동차 대신 보행을 선택하는 시민이 많아질수록 장차 보행로도 넓어지게 마련일 게다. 인생이 그렇듯 좋은 시절은 늘 짧아서 아쉽다. 일년 중 가장 청량하지만 순식간에 지나가버릴 이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이 걸어야겠다. 낙엽 질 무렵이면 누구나 반쯤 철학자가 된다고 했다. 소슬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상념에 젖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일 듯싶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미토콘드리아 이브’/문소영 논설위원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질에 존재하는 물질로 세포 호흡에 관여한다. 세포 호흡이란 에너지를 만든다는 의미다. 몸속에 음식물이 들어오면 에너지로 바꿔서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미토콘드리아이다. 여성의 난자에 미토콘드리아는 약 10만개가, 정자에는 100개가 들어 있다. 난자와 정자가 수정하면 정자의 미토콘드리아는 꼬리와 함께 탈락하는 만큼, 미토콘드리아는 난자만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즉 딸들을 통해서만 내려가는 모계유전 물질이다. 이런 특징에 착안해 학자들은 현대 인류의 모계 조상을 밝혀내는 일을 했다. 인류 유전학자 브라이언 사이키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와 동료의 업적이다. 그는 2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유럽·아시아의 공동조상일지도 모를 모계 유전자에 ‘미토콘드리아 이브’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로부터 파생해 ‘아메리칸 이브’니 ‘코리안 이브’라는 단어가 나온다. 아버지의 성을 따르도록 법제화한 부계 사회에 살고 있지만, ‘인류의 특징을 결정하는 주요한 유전적 물질은 혹시 모계로만 흐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남녀차별적인 발상을 해본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두통/문소영 논설위원

    아주 어려서부터 두 개의 질환이 따라다녔다. 두통과 장염. 그 결과 30대 중반까지 마른 체형이었다. 천년만년 마른 체형으로 살 줄 알았더니, 40세를 넘기면서 적당히 뚱뚱해졌다. 살이 찐 덕분에 장염이 개선된 것인지, 장염이 개선된 덕분에 살이 찐 것인지 선후는 애매하지만, 지긋지긋한 장염에서 3~4년 전에 탈출했다. 매실청과 정로환과, 각종 한약을 투척한 덕분 같기도 하다. 입원하라던 의사의 조언을 거부하고 미련 맞게 출근해 폭탄주를 마시고 들어온 밤, 근처에 살던 의료인 언니가 집으로 찾아와 링거를 꼽아주고 혀를 차던 일은 더는 없다. 그 지긋지긋한 장염도 잡았는데 두통은 해결이 잘 안 된다. 감기몸살형 두통부터 스트레스성 두통, 원인불명의 두통까지, 나이를 먹으면서 더 심해진다고나 할까. 멀미도 심해져 장거리 자동차 여행은 엄두를 못 낸다. 누군가에게 이 고통을 호소했더니, 두통은 여성 7명 중 1명꼴로 시달리는 여성형 질환이란다. 영미 소설 속의 여주인공들이 눈 부신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커튼을 치는 것도 편두통으로 괴로워서 그랬을까. 누가 내 머리를 통째로 가져갔으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위험 사회/구본영 논설위원

    석학 울리히 베크는 근대화 과정에서 위험과 재난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는 ‘위험사회’에 진입하게 된다는 이론을 제기했다. 1986년 저서 ‘위험사회’란 저서를 통해서다. 며칠 전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사고로 숨진 조카뻘 인척의 상가를 찾았을 때 그 의미를 절절히 실감했다. 하긴 굳이 울리히 베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린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고위험사회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제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난 지 만 20년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아직 우리 발밑은 여전히 불안하다. 인구 1000만의 거대도시 서울에는 싱크홀(도로가 갑자기 꺼진 곳), 포트홀(도로가 파인 곳) 등 예전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사고요인이 널려 있다지 않은가. 누구든 불확실성의 시대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다. 무엇보다 국가 차원에서 안전 인프라를 촘촘히 구축해 나가야 할 게다. 이에 앞서 개개인도 좀 불편하더라도 안전의식을 내면화하는 것 이외에 무슨 자구책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인간은 여리지만 생각하는 갈대”라는 파스칼의 말이 생각나는 가을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군고구마/문소영 논설위원

    군고구마의 계절이다. 찌거나 삶는 것보다 불에 직접 구우면 탄내가 나 더 맛있다. ‘바비큐 맛 고구마’ 같다고나 할까. 같은 크기의 군고구마의 열량이 찐 고구마보다 적다. 과학이 아니라 이유는 단순하다. 굽다 보면 고구마 속살이 타는 탓에 먹을 수 없는 부분이 찐 고구마보다 더 많다. 대학 때 살던 아파트 입구에는 11월이면 젊은 군고구마 장수들이 진을 치고 달콤한 냄새를 풍겨서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 같은 처지에 놓이곤 했다. 군고구마 한 봉지가 크게 비싸지 않았는데도, 자취하던 학생이자 단골이라는 핑계로 반 봉지만 사거나 덤을 요구했던 것 같다. 그때는 포슬포슬한 밤고구마보다 질척한 물고구마가 좋았다. 요즘은 단맛이 강화된 노란 호박고구마, 자색 고구마가 추가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밤고구마는 목메지 말라고 동치미 국물과, 물고구마는 잘 익은 김장김치랑 먹으면 좋고, 호박고구마 등은 라떼로 만들어 먹으면 맛있다고 한다. 자색 고구마는 낯선 색깔에 겁먹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어제 저녁식사를 건너뛰고 그릴에 고구마를 구워 서너 개 먹었더니 ‘방구대장 뿡뿡이’가 된 것 같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가을 전령/오승호 논설위원

    단풍이나 코스모스가 아니어도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하는 게 있다. 체육대회다. 행사를 준비하는 쪽에선 미안할 정도로 참여를 독촉하는 문자를 수차례 보내온다. 참석을 하든 안 하든 금액 차이만 있지, 회비도 내란다. 18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남부지방의 한 편백휴양림에서 군대동기 체육대회를 한다. 전국 각지에서 동기들이 버스를 대절해 모여든다고 하니 지극정성이다. 행사장이 있는 지역의 동기들이 맛깔 난 음식을 바리바리 준비해 놓는다면서 손짓하지만 그림의 떡이니 어쩌랴. 아직 그럴 만한 여건은 안 되니 참석자들이 부러울 뿐이다. 중학교동문 체육대회도 기다리고 있다. 동기회장은 후원자들에겐 고급 티셔츠를 사은품으로 준다면서 회원들에게 협조를 부탁한다. 도시생활을 오래하다 고향에 내려가려 해도 같이 놀아줄 친구들이 없다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애경사(哀慶事)든 체육행사든 멀리 있는 동창에게까지 일일이 일정을 알려주는 것만도 고마울 뿐이다. 뿌린 만큼 거둔다고 했던가. 형편을 좀 이해해 달라고 양해를 구해야겠다. 두 행사 모두 가을의 풍성함 속에 잘 치러지기를 빌어 본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길섶에서] 멸치 라면/정기홍 논설위원

    수십년이 지났건만 ‘왈순마라면’의 기억은 선하다. 맛이 어땠는지 잊었는데 독특했던 이름 때문에 오래 남은 게 아닌가 한다. 꼬불꼬불한 면발이 신기했고, 따끈한 국물에 후루룩 넘기는 건더기의 식감은 참 별났다. 어머니는 더러 끓여 주었지만 정작 느끼하다며 드시지는 않았다. ‘인스턴트 맛’이랄까, 당시의 국물 맛이 그랬던 것 같다. 건강에 해롭다 하며 풍상을 겪었지만, 라면만큼 용한 생명력을 지닌 음식을 찾기란 쉽지 않다. 다시 ‘국민 간식’ 라면이 도마 위에 올랐다. 나트륨과 포화지방이 너무 많아 건강을 해칠 정도라는 조사 결과로 논란이 이어진다. 나도 집 밥이 질릴 때 주일에 한 번씩 끓여 먹으니 꺼림칙하다. 라면의 진화가 왜 이렇게 늦는가 하는 지청구가 절로 나온다. 업체야 다른 음식과 차별화한 맛을 내야 하겠지만 건강을 담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얼마 전에 첫맛을 본 ‘멸치 라면’에서 답을 찾아야겠다. 라면을 끓이다가 옆에 있던 멸치 몇 마리를 집어넣었는데 맛이 특별했다. 수프와 멸치를 반씩 넣어 나트륨 걱정에도 비켜 있다. 라면에 해물 등 온갖 것을 넣어 먹는 판에 뭐가 특별하냐고 하겠지만 사태를 보니 그게 아니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
  • [길섶에서] 노란 오리/문소영 논설위원

    20대 내내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 살았다. 사라졌지만 롯데월드 언저리 습지의 넓은 갈대밭은 석양에 장관이었다. 친구가 놀러 오면 쌍둥이 호수인 석촌호수로 가 산책했다. 롯데월드가 신축되는 풍경과 석촌호수 주변의 자연훼손을 찍은 사진으로 대학 보도사진론에서 A+학점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말부터 석촌호수의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거나 그 주변에 대형 싱크홀이 발생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연이어 나와 걱정을 많이 했다. 가족이 아직도 잠실 언저리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석촌호수에 뜬 대형 노란 오리 사진을 봤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작은 노란 오리처럼 생겼지만, 아파트 8~9층 높이로 최대 무게가 1t이다. 생긴 것만 귀엽고 무지막지한 크기의 대형 고무풍선이라서 이름이 ‘러버덕’(Rubber Duck)이다. 네덜란드 출신인 플로렌타인 호프만이 2007년에 선보인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프랑스 생라자르를 시작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일본 오사카, 호주 시드니, 브라질 상파울루 등 세계 16개 도시를 돌며 행복의 메시지를 전달해 왔단다. 다음달 14일까지 설치한다니 싱크홀 걱정을 묻어두고 그쪽으로 산책을 가볼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
  • [길섶에서] 노란 오리/문소영 논설위원

    20대 내내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 살았다. 사라졌지만 롯데월드 언저리 습지의 넓은 갈대밭은 석양에 장관이었다. 친구가 놀러 오면 쌍둥이 호수인 석촌호수로 가 산책했다. 롯데월드가 신축되는 풍경과 석촌호수 주변의 자연훼손을 찍은 사진으로 대학 보도사진론에서 A+학점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말부터 석촌호수의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거나 그 주변에 대형 싱크홀이 발생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연이어 나와 걱정을 많이 했다. 가족이 아직도 잠실 언저리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석촌호수에 뜬 대형 노란 오리 사진을 봤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작은 노란 오리처럼 생겼지만, 아파트 8~9층 높이로 최대 무게가 1t이다. 생긴 것만 귀엽고 무지막지한 크기의 대형 고무풍선이라서 이름이 ‘러버덕’(Rubber Duck)이다. 네덜란드 출신인 플로렌타인 호프만이 2007년에 선보인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프랑스 생라자르를 시작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일본 오사카, 호주 시드니, 브라질 상파울루 등 세계 16개 도시를 돌며 행복의 메시지를 전달해 왔단다. 다음달 14일까지 설치한다니 싱크홀 걱정을 묻어두고 그쪽으로 산책을 가볼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노란 오리/문소영 논설위원

    20대 내내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 살았다. 사라졌지만 롯데월드 언저리 습지의 넓은 갈대밭은 석양에 장관이었다. 친구가 놀러 오면 쌍둥이 호수인 석촌호수로 가 산책했다. 롯데월드가 신축되는 풍경과 석촌호수 주변의 자연훼손을 찍은 사진으로 대학 보도사진론에서 A+학점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말부터 석촌호수의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거나 그 주변에 대형 싱크홀이 발생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연이어 나와 걱정을 많이 했다. 가족이 아직도 잠실 언저리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석촌호수에 뜬 대형 노란 오리 사진을 봤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작은 노란 오리처럼 생겼지만, 아파트 8~9층 높이로 최대 무게가 1t이다. 생긴 것만 귀엽고 무지막지한 크기의 대형 고무풍선이라서 이름이 ‘러버덕’(Rubber Duck)이다. 네덜란드 출신인 플로렌타인 호프만이 2007년에 선보인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프랑스 생라자르를 시작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일본 오사카, 호주 시드니, 브라질 상파울루 등 세계 16개 도시를 돌며 행복의 메시지를 전달해 왔단다. 다음달 14일까지 설치한다니 싱크홀 걱정을 묻어두고 그쪽으로 산책을 가볼까. (이번에 전시된 러버덕은 새롭게 제작된 것으로,
  • [길섶에서] 산수연(傘壽宴)/오승호 논설위원

    당나라 시인 두보는 곡강시(曲江詩)에서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물었다고 했다(人生七十古來稀).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1960년대에는 남자 51세, 여자 54세였다. 1970년대에도 남자 58.6세, 여자 65.5세에 불과했으니 장수를 축하하는 잔치 가운데 환갑(還甲) 잔치의 비중이 가장 컸다. 국가통계 포털을 보면 1970년부터 2010년까지 평균 수명은 10년마다 4.6세가량씩 늘어났다. 2011년에는 남자 77.6세, 여자 84.4세다. 일흔 살이 되는 해에 베푸는 생일잔치인 고희연(古希宴)도 옛말이 된 장수시대다. 환갑잔치는 그만두고, 팔순잔치(산수연)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어른들의 소망이 이뤄졌다고 할까. 지난주 어머니의 팔순을 맞아 가족들이 조촐한 식사를 대접한 뒤 모처럼 노래방을 찾았다. 어머니는 노래 서너 곡을 연달아 불러 가족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형이 지정한 노래가 나오자 “내가 부르려 했던 곡”이라고 해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백세시대라 했던가. 산수연의 희소가치가 사라지고 88세의 미수연(米壽宴), 90세의 졸수연(卒壽宴), 99세의 백수연(白壽宴)이 일반화될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
  • [길섶에서] 시골 돈가스 집/서동철 논설위원

    일요일 늦게 소풍 삼아 충남 예산에 다녀왔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가을이 생각보다 깊었는지 일찍 해가 떨어져 할 수 있는 일은 밥먹는 것밖에 없었다. 뭐 그보다 중요한 일도 없지만…. 읍내 돈가스 집은 열 가지가 넘는 반찬을 내준다고 해서 전부터 가보고 싶었다. 퇴락한 읍내 구석진 골목에 자리 잡은 이 집은 내비게이션이 없었다면 찾아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제법 넓은 식당에 서빙하는 사람은 환갑 안팎의 아주머니 한 분뿐이었다. 게다가 단체손님까지 있었으니, 경험칙상 마음 상하지 않고 밥 한 그릇 얻어먹기는 무망(無望)한 노릇이었다. 혼자였다면 벌떡 일어나 다른 식당을 찾아나섰겠지만 동행한 사람들이 있어 간신히 참았다. 그런데 지켜보고 있자니 선입견이 무너져 내렸다. 서빙하는 아주머니는 ‘슈퍼맨’이었다. 누가 충청도 사람을 느리다고 했는지 모르지만 놀랄 만큼 정확하고 빨랐다. 음식도 기대 이상으로 맛깔스러웠다. 그동안 성급하게 판단해 상대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시골 돈가스 집이 준 뜻밖의 교훈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출근길 매너/정기홍 논설위원

    20대 청년이 출근 지하철 옆 좌석에 앉았다. 다리를 벌리고 앉은 이른바 ‘쩍벌남’이다. 이어 그 청년의 행동들이 시작됐다. 스마트폰을 들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차라리 계속 들고서 볼 것이지….” 행위가 끝났나 싶었는데 이번엔 손가락이다. 옆으로 길게 뻗은 손가락은 나에게 뭐라고 하는 듯이 펴고 오므리기를 하며 쉼이 없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상황이 이쯤에 이르니 불쾌해진다. 조용한 출근시간에 전화통화를 해대는 것과는 또 다른 불편이다. 청년의 행동을 보다가 지하철을 내렸건만 ‘30분 잔영’은 줄곧 발걸음을 뒤따랐다. “자기중심적 행동일까,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지는 심리의 표출일까.” 여러 가지의 생각은 초등학교에서 배웠던 ‘바른생활’이란 철 지난 교과서까지 불러냈다. 어찌 보면 “한두 번 겪는 일이냐”며 타박받을 일이다. 하지만 아침 출근길은 ‘시끌시끌해야 제맛’인 퇴근길의 차안 분위기와 다르다. 남을 배려하지 못하더라도 피해는 주지 않아야 한다. 공중 의식을 곰곰이 생각한 아침나절이었다. 그 청년이 인지하지 못한, 의미 없는 혼자의 넋두리가 되었겠지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손 편지/구본영 논설위원

    며칠 전 어느 기업이 고객들에게 보내는 손 편지로 감성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는 경제 기사가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요즘처럼 속도지상주의 시대에 아직도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보낸다니…. 이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대세인 줄로만 알았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대학 도서관들도 공간이 모자라 연간 수천 권씩 찾지 않는, 오래된 책을 폐기 처분하는 세상이 아닌가. 속도와 효율을 최고의 가치인 양 여기는 세태에 육필의 감성이 여전히 통한다는 게 용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긴 ‘월가의 족집게’로 알려진 투자전략가 바이런 윈 블랙스턴 어드바이저리 파트너 부회장의 인생 20훈(訓) 리스트를 보라. “큰 신세 진 이에게 손 편지를 써라”가 그 중의 하나가 아닌가. 문득 얼마 전 한 인생 선배로부터 받은 책 선물이 생각난다. 책을 보내준 고마움 못잖게, 속표지 다음의 여백에 정성을 담아 쓴 듯한 그의 친필 인사와 서명에 살짝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아무래도 이제라도 그에게 감사의 손 편지라도 보내야 도리일 듯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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