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님아… ’의 공포/진경호 논설위원
89세 소녀 감성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로맨티스트 조병만 할아버지의 곰살맞은 사랑과 이별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불러낸 관객이 마침내 지난 주말 42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봄이면 들꽃을 따다 할머니 머리에 꽂아 주고, 여름이면 개울에 나가 물장구를 치고, 깊은 가을엔 쓸어 모으던 낙엽을 냅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에 던지며 장난을 치고, 겨울이면 쌓인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고는 서로 제 눈사람이 잘났다며 티격태격하고…. 가슴 떨리는 사랑의 감정을 빚어내는 호르몬 옥시토신은 길어야 2년 남짓 나오는 게 고작이라는데 7년도 아니고 76년을 얼굴 맞대고 살아온 부부로서, 대체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지 싶건만 아무려나 삶은 무엇이고, 사랑은 또 무엇인지를 묻고 찾는 행렬은 당분간 문 꼬리를 놓지 않을 모양이다.
불길한 예감은 절대 비켜 가는 법이 없다던가. 도무지 조병만 할아버지를 흉내낼 재간이 없는 터, 애써 영화를 외면했건만 기어코 오늘 아침 아내의 한마디가 뒤통수에 꽂혔다.
“지금껏 당신은 화장실 앞에서 노래 불러 준 적 있어? 있냐고?”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