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수험표/정기홍 논설위원

    수험표의 단상이라면 ‘결전을 앞둔 다짐’이 아닐까. 긴장감이 와락 엄습하고 마음 구석을 마구 짓눌러댄다. 누구는 시험을 앞둔 심정을 ‘바늘이 풍선을 겨누는 긴장감’이라고 표현했다. “수험표를 받으니 비로소 실감이 난다”는 수험생 말이 허튼 게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락에 그다지 관심이 없거나 강심장이 아니면 허세를 떠는 건지 모른다. 과거시험을 앞둔 옛 선비들도 ‘전투를 앞두고 창을 가는 심정’이라고 일갈했다. 고진감래의 합격증과 딴판인 게 수험표의 정서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때 가슴에 붙였던 수험표가 상한가를 치고 있다. 수험표 할인 이벤트 때문이다. 상술이겠거니 했는데 영화관·놀이공원은 기본이고 병원 등 전방위로 쓰인다. 혜택 기간이 새 학기 이전까지 긴 곳도 꽤 있다. 시험을 잘 치렀든 그르쳤든 무겁던 수험표가 환해져 보기에는 좋다. 그런데 이를 돈으로 사고 사진을 바꿔 붙여 활용하기도 한다. 편법이고 불법이다. 영특한 건지 영악한 건지…. 흔한 수험표마저 못 받는 이가 많은 요즘, 그 가치는 새삼스럽다. 로또 번호처럼 좋은 번호가 찍힌 수험표는 있을까. 수험표의 재발견이 엉뚱한 생각을 만든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마음의 그랭이질/손성진 수석논설위원

    한 대학교수의 강의를 듣는데 ‘그랭이질’이란 말이 나왔다. 자연석 위에 놓이는 돌이나 나무 기둥의 아랫부분을 자연석의 모양에 맞추어 깎는 수법이라 했다. 예를 들어 집을 지으려는 곳에 울퉁불퉁한 돌이 있다면 그 돌을 들어내지 않고 표면의 굴곡에 맞추어 기둥의 바닥을 파내고 주춧돌로 쓰는 것이다. 기둥만이 아니라 그랭이질로 쌓은 석축은 꽉 맞물려 흔들림 없이 견고하다. 돌을 다듬는 게 쉽지, 돌 생김새에 맞게 나무나 돌을 깎는 일이란 보통의 기술이 아니다. 그랭이질은 자유분방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우리만의 독특한 건축 방식에서 나왔다. 나무 기둥도 휜 그대로 쓰고 옹이를 개의치 않는 것도 그랭이질과 같다. 오래된 사찰이나 정자를 유심히 보면 그랭이질을 한 기둥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초석과 기둥을 반듯하게 다듬는 일본에서는 그랭이질이란 게 없다. 그랭이질은 사람의 품성에 빗댈 수 있다. 울룩불룩한 다른 사람의 성격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어울려 지낼 수 있다면 마음의 그랭이질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친구 사이나 부부 관계에서도 그랭이질은 필요하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오리지널의 힘/서동철 논설위원

    지금이 가을인지 겨울인지 모르겠다. 입동이 지난 지 두 주일이 지났고, 내일은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다. 절기로는 겨울에 접어들었지만 마음속 계절은 아직 가을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네 형님이 가을이 시작될 무렵 보내 준 ‘가을편지’를 듣고 감회에 젖은 적이 있다. 이 형님은 노래를 부른 최양숙을 ‘세계 최고의 가수’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 전 김민기가 부른 ‘가을편지’를 들었다. 이 노래를 작곡한 사람이다. 하지만 노래는 최고의 가수는커녕 가수라고 불러도 될지 모를 지경으로 어눌하다. 감정의 기복도 없다. 그런데도 가슴을 휘젓는다. 요즘 같은 날씨에 점심은 보골보골 끓는 김치찌개에 라면을 넣어 먹는 것이 제격이다. 회사 뒷골목에 새로 생긴 김치찌개집을 공짜 계란말이에 혹해 몇 차례 찾았다. 여러 가지 메뉴 가운데 돼지고기, 주꾸미, 소시지, 참치가 잔뜩 들어간 ‘종합’ 김치찌개를 시키곤 했다. 그런데 아무리 푸짐해도 먹고 나면 뭔가 흡족하지 않았다. 어제는 옛날에 다니던 김치찌개 집에 다시 갔다. 그저 돼지고기 몇 조각과 두부 두 토막이 들어갔을 뿐이지만 맛있었다. 이런 게 오리지널의 힘인가 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
  • [길섶에서] 리얼 없는 리얼리티/문소영 논설위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나 이렇게 잘산다’는 ‘자랑질’을 할 때는 선물과 음식, 여행 사진들과 함께 페이스북을 사용해야 한다. ‘오늘도 힘들다’고 푸념하고 징징대고 싶은 20대는 트위터에 140자를 날려줘야 한다. 50대와 60대는 카카오톡에서 단체로 수다를 떨면서 하루의 일용할 이념을 소비하곤 한다. 상황과 연령에 따라 사용할 SNS가 달라진다. 그러나 자랑을 하든, 엄살을 부리든 SNS의 포스팅은 현실을 고스란히 재현하지 않았다는 상호 인식이 필요하다. 일단 이야기 소재를 선택하고, 재미라는 조미료를 쳐 과장하고, 불필요한 내용을 배제하고서 윤이 반짝반짝하게 닦는 등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즉 SNS에 무심한 듯 내던져 놓은 포스팅은 실제로 엄청난 노력이 사전에 투하된 것이다. ‘셀카’를 여러 장 찍고서 가장 잘나온 사진을 골라 포스팅하는 것과 같은 심리다. 사정이 이러니 SNS는 리얼하지만 리얼리티가 없기도 하다. 디지털이 만들어낸 세상인 SNS에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과장된 자아들이 범람하고, 그것의 해석도 과장하기 십상이다. 제대로 해석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사랑의 체험 수기/문소영 논설위원

    딸에게 “사춘기는 ‘나는 제대로 살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것이지만, 갱년기는 ‘나는 죽어 가고 있다’고 신음하는 것이다” 하고 이상한 설명을 했더니 10대의 반항이 한때 주춤했다. 이제 고인이 된 김자옥씨가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 “산다는 건 하루하루 죽어 가는 것이니 아끼지 말고 즐기며 살아야 해”라고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산다는 의미는 모든 세대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유보하며 강행군을 견디는 것인데, 지천명을 앞두니 김자옥씨 말대로 삶을 저당 잡지 말고 더 즐겁게 살았어야 했던 것 아닐까 하는 후회가 생긴다. 누군가는 ‘공주’나 ‘꽃누나’로 기억할 김자옥씨를 1970~80년 MBC 라디오 드라마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의 20대 성우로 기억한다. 사랑의 체험 수기를 모집한 뒤 당선작들을 각색해 그가 달콤한 목소리로 재현했는데, 요즘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리얼리티 TV의 라디오 버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녀칠세부동석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던 터라 이 프로그램에서 금단의 열매를 맛보는 재미가 있었다. 사람은 가고, 그의 달콤한 목소리는 귀에 쟁쟁하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동상(銅像) 유감/서동철 논설위원

    아침 신문에 서울 종로 사직단에 있는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동상이 갈 곳을 잃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사직단은 조선왕조의 제사 시설이지만, 제 모습을 잃은 지 오래다. 다행히 사직단 복원을 위한 발굴 작업이 내년 3~4월 시작된다고 한다. 집물고(什物庫) 같은 옛 건물터를 차지하고 있는 두 기의 동상은 옮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율곡과 그 어머니인 사임당과 인연이 깊은 장소는 동상을 받아들일 형편이 아니라는 데 있다. 사임당의 친정으로 율곡이 태어난 강원 강릉 오죽헌과 율곡 일가의 무덤이 있는 경기도 파주 자운서원에는 이미 세워졌거나 세워질 예정이다. 정 갈 곳이 없다면 파주의 또 다른 율곡 유적인 화석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집중적으로 세워진 역사 인물의 동상은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하지만 갖가지 비판에도 하나쯤은 더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종대로에 세계 중심 문화국가로 일으켜 세운 세종대왕과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이순신 장군이 계시다면 세계로 영토의 지평을 넓힌 인물의 동상도 세우는 것이 진취적인 나라의 자세다. 주인공은 당연히 광대토대왕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황혼 부부/정기홍 논설위원

    새벽 어르신 방송을 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 향토색 짙은 남도 말투로 엮어 내는 인생 이야기가 여간 흥미롭지 않다. 모진 세월을 다 이겨 내고 욕심마저 내다 버린 속내엔 아쉬움도 크지만 정겨움이 버무려져 물씬 묻어난다. 주로 남편이 젊었을 때 주색놀이와 노름으로 가정을 팽개친 이야기들이다. 할아버지의 영웅담과 할머니의 속정 버린 얘기를 여과 없이 풀어낸다. 인생살이의 요약본이다. 중년 부부의 이혼 상담글을 읽었다. 남편이 수년간 딴살림을 하다가 다시 집에 들어온 사례다. 아내의 ‘황혼 이혼’ 요구는 일종의 복수다. 바람둥이가 대체로 그렇듯이 남편은 지금도 제 잘난 듯 뻔뻔스럽게 군단다. 자식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딸들은 “이젠 아버지가 어머니를 놔 줘야 한다”고 하고, 아들은 “여생을 혼자 사는 건 고통”이라며 반대했다. 다시, 방송에서의 할머니가 운을 뗐다. “세상 제 것같이 살던 저 성질에 애간장 얼매나 태웠을까이…. 겉으론 저래 쏘아대도 속정은 깊어.” 저만치서 할아버지가 한마디를 한다. “저 양반, 젊어서 인물 하난 안 빠졌제.” 늘 엇박자로 걸었어도 손은 놓지 않는 게 부부인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오래된 징크스/구본영 논설고문

    엊그제 이른 아침. 아들이 수능시험을 치르는 서울의 한 고교를 찾았다. 담벼락 옆에선 먼저 온 학부모 여럿이 몸을 떨고 있었다. 입시 날이면 꼭 한파가 찾아온다더니 징크스가 딱 들어맞았다는 느낌이었다. 오래전 기자 초년병으로서 프로야구를 취재할 때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당시에도 팀 성적에 따라 감독 자리는 ‘파리 목숨’이었다. 친했던 K감독은 장례차와 마주치는 날이면 승리한다는 징크스를 굳게 믿는 눈치였다. 팀이 연패하는 날이면 장례식장에 들렀다 경기장으로 나올 정도였으니…. 징크스처럼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실감나게 하는 단어도 없을 터. 하지만 일상사에서 소소한 길흉은 늘 엇갈리게 마련이다. 장기적 통계를 내보면 K감독의 승률도 영구차를 만난 날이든, 아니든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가 나중에 명장 반열에 오른 것은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 때문이었을 듯싶다. 그렇다면 징크스에 연연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낙관적 자세를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그랬던가. “최고의 날은 미래에 있다”고.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심장마비/문소영 논설위원

    백수 탈출을 위해 고혈을 짜던 20대의 어느 여름날 아침 친구 A에게서 전화가 왔다. 피아노 전공으로 몇 주 뒤 미국 유학을 떠난다며 기대에 차 있던 친구 C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며 발인 날짜와 시간을 알려왔다. A는 “C가 어젯밤 피곤하다며 맥주 한 잔 마시고 자야겠다고 했…”라며 말을 끝내지 못하고 수화기 너머에서 울었다. 비현실적이라는 의미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놓일 때서야 비로소 경험하는 감각이다.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인식이 되지 않았던 탓에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던 것 같다. 멍하게 대꾸가 없는 내게 A는 시간에 늦지 말고 발인 장소에 오라고 했다. 그 발인에 가지 않았다. 햇빛이 강렬한 날이면 친구 C와 ‘심장마비’를 떠올렸다. 후배 기자가 이탈리아 출장길에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경악할 소식을 저녁에 듣자마자 누군가를 위로해야 했는데 그냥 잠을 잤다. 평소보다 4시간이나 이른 시각이었다. 그가 페이스북에 찍어 올린 베네치아의 풍광 사진들에 ‘좋아요’를 아침에 눌렀는데, 12시간 만에 기가 막힌 소식이 아닌가. 직면한 현실은 재능 있는 인물을 상실했고 다시는 그와 그의 글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상심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
  • [길섶에서] 관록/정기홍 논설위원

    타작을 하려고 볏단을 쌓을 때 겪었던 일이다. 어른은 일에 앞서 방식을 일러 주었다. “한갓 농사일에 뭔 기술이 필요하랴”라며 아예 무시했다. 쌓은 볏단은 이내 중간에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그것 봐라”라는 무언의 눈치에 되게 무안했던 경험이다. 땔감용 솔가리를 새끼로 동여맨 나뭇짐을 지려는 순간, 짐이 허물어져 헛일이 된 적도 많다. 평소 하찮게 보았던 것들에 농사꾼만의 노하우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얼마 전엔 시골분과 함께 도토리를 주웠는데 바구니에 담긴 건 그분의 절반이 안 됐다. 그제 끝난 삼성과 넥센 간의 한국시리즈는 관록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석패한 넥센은 야구에 어수룩한 나의 눈에도 잘 짜여진 팀으로 보였다. 타선도 만만찮고 수비도 야무졌다. 감독의 지시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작은 수비 실수는 승기를 상대팀에 자주 넘겨주었다. 창단 이후 처음 치르는 결승 경기라 긴장해서 그렇다고 한다. 큰일이 닥치면 누구나 몹시 긴장하게 된다. 오늘은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수능 초짜 수험생들이여, 졸지 말고 실수하지 않기다. 시험 공화국에서 익혀 온 관록들이 있지 않은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음식 선물/문소영 논설위원

    현금이 최고라는 사람도 있지만, 어린이에게 돈을 선물로 잘 주지 않는다. 설날 세뱃돈을 빼고는 배춧잎이라고 부르는 만원짜리가 오가는 것을 영 못마땅해한다. 아마도 어린 시절 돈 선물을 받으면 엄마가 “은행에 넣어 줄게”라며 가져가서 그런 심리가 생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주로 책을 사 주는 것을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책을 골라 놓으면 결제하는 식이다. 책 선물을 받아서 휙 집어던지기도 하니까 만화책이라도 좋다고 하면 사 준다. 책 선물을 받기도 아주 좋아한다. 책에는 저자의 영혼이 들어 있는데, 그것을 꺼내서 읽는 것이 독서라고 생각한다. 책 선물이 최고인 줄 알았다가 더 좋은 선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음식 선물이다. 빵이나 과자, 포도잼을 직접 만들어 선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음식 선물은 맛보다 정성에 몹시 감동하는데, 최근 총각무 김치 선물을 받았다. 친척이 보내 줬다. 냉장고에서는 풀무원 김치와 종갓집 김치가 서로 맛이 더 좋다고 아옹다옹하지만, 선물로 받은 총각무 김치만 할까 싶다. 정성을 생각하면 눈물도 찔끔이다. 새콤하게 맛 들기를 기다리는데, 입안에 침이 다 고인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무생물의 감정/손성진 수석논설위원

    무생물이야 감정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무생물에 대한 사람의 감정은 있는 게 분명하다. 오랫동안 쓰던 낡은 물건을 애지중지 아끼며 쓸모가 없어졌는데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런 감정 탓일 게다. 평생 곁에 두고 써 온 물건에는 지난날의 기억이나 가정의 역사가 담겨 있다. 부모가 쓰던 물건을 물려받아 소중히 간직하면서 사랑과 정을 되새기는 사람들도 많다. 오래 탄 자동차를 처분할 때면 왠지 짠한 느낌이 든다. 5년 전 10년이 넘게 몰던 자동차를 폐차시킬 때도 그냥 보내기 싫어 사진을 찍어 두기도 했다. 얼마 전 또 자동차를 바꾸면서 같은 감정을 느꼈다. 핸들이나 시트에는 내 손때가 묻고 체취가 배어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동차에는 가족의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번 차는 자식을 씻기듯 손수 세차도 하고 흠이 나지 않게 잘 관리를 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컸다. 무생물에도 정을 느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나 살아 있는 동물에게는 더욱 많은 정을 베풀 준비가 돼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좀 오래됐다고 쉽게 버리고 새것 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필시 감정도 바싹 말랐으리라.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청진동 해장국/서동철 논설위원

    초등학교 시절 휴일이면 아버지를 따라 낚시하러 다녔다. 새벽에 집을 나서면 언제나 청진동 해장국집에 갔다. 지금은 정독도서관이 된 경기고등학교 아래 화동에 살던 1960년대 후반이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선지는 좀체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해장국은 어린아이에게도 맛있었다. 입맛이 돌아오기 전이라며 ‘맛보기’로 시키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청진동 해장국집의 새벽 손님은 일찌감치 일 나가는 부지런한 생활인들이 많다. 하지만 그 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남녀의 무리가 있어 어린 마음에도 궁금증이 일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고고장에서 밤을 새운 형님, 누나들이었다는 사실은 시간이 흐른 뒤 알았다. 지난밤 술잔을 함께 기울인 동료 사이에 ‘점심에 해장해야지?’하는 문자가 오갔다. 누군가 떠올린 청진동 해장국으로 우리는 곧 의견을 모았다. 손님은 어르신부터 젊은이까지 다양했다. 상사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서는 ‘기피 메뉴’인 줄 알았더니 20대 여성끼리 먹는 모습도 보였다. 돌아보니 그 옛날에도 다양한 세대가 공존했던 청진동 해장국집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꿈/오일만 논설위원

    나이: 30. 경력: 트럭 운전사. 학력: 대학교 중퇴. 이런 경력으로 세상살이가 힘들었다. 고등학교 때는 공상소설에 열중한 왕따, 찌질이였고 대학 때는 전공 학과를 옮기다가 중퇴를 했다.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다. 그렇다고 이력서에 놀라운 상상력을 갖고 있는 영화광이라 적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영화감독이 될 것이라고 말해도 사람들은 피식 웃기만 한다. 그래도 꿈을 버리지 않고 온갖 궂은 일을 하면서 틈틈이 시나리오를 썼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나리오를 갖고 제작사를 노크했지만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시나리오를 단돈 1달러에 넘기면서 단 하나의 요구 조건을 건다. 자신이 영화감독을 맡겠다고. 이렇게 탄생한 영화가 바로 1984년 세상을 경악시킨 ‘터미네이터’다. 이후 한이 맺힌 듯 에이리언, 어비스, 타이타닉, 아바타 등 금세기 최고의 히트작들을 토해 낸다. 제임스 캐머런. 그는 오스카상을 거머쥔 채 세상을 향해 외친다. “나는 세상의 왕이다.”(I’m the king of the world) ‘찌질이 캐머런’을 성공시킨 것은 이력서란을 채울 수 없는 꿈이었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가을 단상/구본영 논설고문

    꽤 오래전에 언론계를 떠난 선배 한 분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의 가을 풍경을 그린 글이 실려 있었다. 내용 중 와 닿는 대목이 있었다. 네덜란드 설치예술가가 만든 ‘러버 덕’이란 고무 오리를 보러 온 시민들의 북새통에 놀라 진짜 백조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선배의 글엔 인조 혹은 모조품에 자연이나 진품이 외려 밀려나는 세태에 대한 애석함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하긴 도회 생활에서 바쁜 일상에 쫓겨 놓치기 일쑤인 소중한 것들이 어디 한두 가지랴. 캐나다 대도시 토론토에서 차도를 줄이고 보행로를 넓히고 있다는 뉴스가 눈길을 끈다. 일명 ‘도로 다이어트’로 차량 이동을 줄이려는 취지다. 그 이면엔 시민들이 ‘느림의 미학’을 체감할 때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철학이 깔려 있을 게다. 선배의 글과 조간신문 기사를 읽은 뒤 출근길. 아파트 단지에서 빨갛게 물든 단풍이 새삼스럽게 눈에 확 들어왔다. 생각이 바뀌니 보이는 것도 달라지는 듯싶었다. 시간이 없어 가을 정취를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도 다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노년의 서빙/정기홍 논설위원

    “일을 하세요.” 80대 선친이 숙환으로 고생할 때 드렸던 말이다. 고통을 덜어 드리고 싶었다. 하루도 거름 없이 논밭에 나가셨다. 두려움과 우울증이 한결 간 듯했고, 병은 더 악화되지 않았다. 나도 신경이 덜 쓰였다. 잔 생각 버림의 효과다. “어디 계세요?” TV를 보니 도회지의 딸이 어머니에게 밭일을 하지 말라며 지청구 전화를 수시로 한다. 어머니는 들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자식에게 부모님의 고통과 고생이 밟히는 건 비슷하다. 나이 지긋한 분이 서빙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젊은이와 달리 어색기가 있지만 미소는 시종 환하다. 삶의 켜, 연륜이 묻어난 서빙이랄까. 여간해선 다툼을 만들지 않는다. 원숙미다. 누구는 60~70대마저 벌어야 하는 ‘고달픈 노년’이라지만 그러면 어떤가. 건강이 돈과 명예에 앞서는 게 이때다. 70대의 좌중에서 “왕년에 내가 대기업 임원을…”이라 했다간 왕따 되기 십상이란다. 주위를 보면 ‘꼼지락 일’을 하는 어른이 건강하다. 논밭에서 잡초 뽑는 분들이 오래 사는 듯하다. 머리를 굴려야 하는 골프와 다르다. 일은 존재감이다. ‘워킹 실버세대’에 박수를 친다. 건강하게 그리고 오래 사시라. 정기홍 논설위원 hong@s
  • [길섶에서] 꼴찌/문소영 논설위원

    대구에서 9살 초등학교 학생이 꼴찌라서 내내 점심 급식을 꼴찌로 먹었다는 뉴스를 보고 참담했다. 퍼렇게 멍든 아이의 마음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1989년에 나와 그다음 해 속편까지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1995년에는 KBS1 TV에서 ‘꼴찌에게 박수를’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해 주목받기도 했는데, 세상이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해도 너무 퇴행하는 것 아닌가 싶다. 고교 평준화 시대였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중간·기말고사 이후 성적표가 나오면 복도에 일주일씩 전교 30등까지 이름을 붙여 놓았다. 이름이 있거나 없거나 늘 불편했다.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10대 학생에게 과연 성적 공개가 긍정적인 효과를 냈을까 회의했다. 한 학년이 약 800명이던 중학교 때 전교 석차를 공개하지 않아도 누가 공부를 잘하는지 훤히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미술·음악·요리에 심취하고 싶어도 저리 몰아붙이면 성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다원화된 세상에 성적으로만 줄 세우기를 한다면 비상식적이다. 학교 성적만이 실력이던 시절은 이제 떠나보내야 하지 않겠나.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배달 커피/정기홍 논설위원

    흑백 시대의 다방 추억은 많다. 마담과 배달하는 종업원(레지), 멀대와 같은 수족관, 자욱한 담배 연기 등은 매우 한국적인 분위기였다. DJ가 신청곡을 틀어 주는 음악다방과 중년들이 서너 시간을 죽쳤던 ‘노땅 다방’으로도 대별된다. 시국을 논했던 아지트 역할도 했다. 국적 불명의 계란을 동동 띄운 모닝커피의 맛은 또 어땠는가. “김 마담 것도 한 잔 타”라며 속없는 인심도 쓰던 정감 있는 곳이었다. 커피 전문점인 스타벅스가 내년 초부터 커피와 샌드위치를 배달하는 서비스를 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최고경영자(CEO)는 “매일 책상으로 배달되는 주문을 한다고 생각해 보라”고 운을 뗐다. 구체적인 서빙 방식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모바일 결제를 통한 예약시스템을 갖추겠단다. 고객이 정기적으로 찾게 하려는 뜻이 담겼다. 스타벅스는 테이크아웃이 일상화한 서구의 커피 문화에 한국의 ‘사랑방 다방’을 접목해 대박을 터뜨렸다. 세계의 문명이 동양에서 서양으로 넘어간 때를 청나라가 영국과의 아편전쟁(19세기 중반)에서 패한 시기로 본다. 이때부터 서세동점(西勢東漸)은 시작됐다. 이젠 동세서점(東勢西漸)의 시대가 아닌가 싶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심리적 자궁/진경호 논설위원

    사무실에 나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게 일이다 보니 하루의 일상은 늘 패턴을 이룬다. 기상-운동-출근-업무-퇴근-약속-귀가로 이어지는 쳇바퀴 속에서 하루를 돌린다. 이 얼개 속 작은 일상에도 패턴이 존재한다. 가령 아침에 사무실로 나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늘 커피 내리기다. 커피를 내린 다음 컴퓨터를 부팅하고 인터넷으로 아침 기사를 일독한 뒤 화장실엘 간다. 페이스북 ‘눈팅’은 꼭 변기에 앉아 해야 제 맛이다. 이 정교한(?) 순서가 어쩌다 뒤섞이거나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까닭 모를 불편함 내지 심지어 불안감까지 엄습한다. 습관의 핵심은 관성이라던가. 그리고 이 관성은 ‘변화를 거부하는 힘’이라고 하던가. 어느 날 아침 돌연 이 패턴을 깨고 싶어졌다.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선 뒤로 생긴 콤플렉스, ‘정체에 대한 과잉 거부감’이 ‘거사’를 꼬드겼다. 커피를 내리지 않았고, 스마트폰을 놔두고 화장실엘 갔다. 패턴 파괴의 대가는 컸다. 종일 붕 떠 있는 기분, 허전한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 관성에 담긴 ‘최대정지마찰력’의 힘은 나이와 비례하는 모양이다. 패턴, 심리적 자궁이 분명하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잡초의 힘/오일만 논설위원

    “밀밭에서 벼가 나거나 보리밭에서 밀이 나오면 잡초 취급을 받지요. 보리밭에 난 밀처럼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지 못해 뽑혀 버려지는 삶 또한 얼마나 많겠습니까.” 우리나라 최고의 야생 들풀 연구자인 강병화 명예교수(고려대)의 말이다.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으며 모든 들풀은 제각기 자연의 조화 속에서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강조한다. 성적이라는 획일된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우리의 교육 시스템. 공부는 좀 못해도 끼와 개성을 지닌 학생들을 분위기 흐리는 잡초로 백안시한다. 광고천재 이제석씨를 보자. 세계 최고 광고제에서 대상을 휩쓸었지만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못해 선생들 사이에서 ‘평균 성적을 갉아먹는’ 잉여인간으로 불렸다. 지방대 미대를 나와 취업도 못해 간판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다가 능력으로 평가하는 미국에서 재능을 꽃피웠다. 그는 말한다. 잡초 같은 밑바닥 삶이 자신에게 다양한 자양분을 제공했다고. 학력과 학벌을 앞세운 ‘온실 속의 화초’들이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창의성으로 승부했다. 주변에 보리밭 속의 산삼을 행여 잡초라고 구박하지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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