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다방/박지웅
다방에 손님이라곤 노을뿐이다
아가씨들이 빠져나가고 섬은 웃음을 팔지 않는다
바다 일 마친 어부들이 섬의 현관 벗어놓은 어선들
다방 글자가 뜯어진 창으로 물결이 유령처럼 드나들었다
노을이 다방에서 나와 버려진 유리병 속으로 들어간다
몸을 가진 노을은 더 아름답다
이 시를 읽고 퇴락한 섬의 쓸쓸한 풍경을 아름답게 그렸다고 말해선 안 된다. 거기는 ‘다방’이 있고 ‘아가씨들’이 있었다. ‘어선에서 내려 물결처럼 드나드는 어부들’에게 ‘웃음을 팔던 그들’의 삶은, ‘다방 글자가 뜯기기’ 전부터 이미 ‘유령’ 같았을 것이다. 저녁 어스름 어딘가에서 그들은 자신의 ‘몸’을 갖지 못한 채 저물고 있었을 것이다. 다방에서 나온 후에야 비로소 ‘유리병’ 같은 몸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버려진 것일 뿐. 사람들은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어부들이 손님이 되어 누군가의 웃음을 가져갔던 것처럼 어부들 또한 잔혹한 세상에게 생활을 빼앗기고 있었다는 것을. 착취의 굴레를 당연한 듯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버려지고 말았다는 것을. 그렇게 모두가 사라져 간 시간을 이 시는 아프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가? 천만에, 모두가 자신의 몸을 가질 때 아름답다. 우리가 우리 몸의 주인일 때, 차라리 깨져서 뾰족하게 일어설 때, 아름다움은 바다처럼 펼쳐진다.
신용목 시인
2016-10-29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