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어머니의 짐/임태순 논설위원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격이지만 어머니의 은인을 찾아 주세요.” 몇년 전 미국에 사는 친구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1980년대 초 어머니가 운수업을 하는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 이웃에 사는 김희숙이라는 분한테 200만원을 빌렸으나 갚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내용이었다. “죽기 전에 꼭 신세를 갚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흘려들었으나 86세가 된 요즘도 입에 올려 도움을 청한다고 했다. ‘박’자 ‘종’자 ‘희’자를 쓰는 어머니는 30대 초반의 김씨가 서울 역촌동에 함께 살다 서초동(아마 삼익아파트)으로 이사 갔고, ‘준일’(아마 5~6세)이라는 아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봤으나 은인 찾기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은인의 도움에 보답하는 미담기사를 볼 때마다 친구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려울 때 도움의 손길은 영원히 잊지 못하고, 신세를 갚아야지만 마음이 가벼울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다.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패션+IT/이도운 논설위원

    패션 디자이너들의 서바이벌인 ‘프로젝트 런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의 포맷을 우리나라 케이블 채널에서도 수입해 4년째 방송을 이어 오고 있다. 특파원 시절 즐겨 봤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도 관심을 갖고 본다. 두 나라의 패션 트렌드와 디자이너들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 디자이너들은 미국 디자이너들보다 잘생기고 옷도 잘 입는 것 같다. 지난 주말 프런코의 서바이벌 미션은 ‘패션과 정보기술(IT)’의 결합이었다. 9명의 디자이너가 카이스트 산업디자인과 학생들과 짝을 이뤄 IT가 접목된 ‘미래의 옷’을 제작했다. 기대했던 것만큼 멋진 의상들이 런웨이를 수놓았다. 1위를 차지한 디자이너는 레이디 가가의 무대 의상을 만든 경험이 있는 조아라씨. 실내가 어두워지면 옷깃과 벨트 등에서 다양한 빛이 나오는 드레스를 만들었다.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을 뽐낼 수 있는 멋진 미션에 어울리는 멋진 의상이었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길섶에서] 전과(全科) 엄마/최용규 논설위원

    초등학생 입에서 “우리 선생님은 ○○선생님이라 ○○ 과목 밖에 못 가르쳐요.”라는 말이 나온다면 믿어야 할까. 대부분 “에이. 그럴 리가….”라며 고개를 젓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초등학교 고학년 교실에서 벌어지는 진풍경이란다. 교과 연구를 게을리하는 나이 지긋한 교사에게 어려워진 수학문제는 말랑말랑한 존재가 아닐 터. 조곤조곤 풀어주기보다 숙제 내기에 바쁜 것은 이 때문일까. 숙제 안 해가서 지청구 들을 자식 걱정에 우리네 보통 엄마들은 너도나도 ‘전과 엄마’가 된다. 아이는 그저 전과 베끼기에 바쁘고, 근심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는 엄마의 탄식은 커져만 간다. 언제나 그렇듯이 공교육 정상화는 말뿐 ‘나쁜 교사’들의 직무유기가 사교육을 키웠다. 우연히 뿔난 엄마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고학년 과목별 수업, 해야 하지 않나요.” “월급 받았으면 선생님들 방학 때 당연히 학교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선생님들 평가받아야 해요.” 그래서 교육 당국에 묻고 싶은 것은 “어디 하나 틀린 말 있나요.” 답이 있기는 한지….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 [길섶에서] 이용수 할머니/이도운 논설위원

    워싱턴 특파원 시절 미국 의회의 ‘위안부 결의안’ 채택이 중요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일본 정부가 2차대전 당시 강제로 끌려갔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라는 내용이었다. 결의안을 취재하면서 미 의회에서 누가 한국에 또는 일본에 우호적인가도 알게 됐다. 의원 개인의 판단보다는 지역구에 한국계 유권자가 얼마나 많으냐, 혹은 일본계 기업이나 단체로부터 얼마나 많은 후원을 받느냐가 입장을 좌우했다. 그 당시 이용수 할머니도 만나게 됐다. 하원에서 열린 청문회를 앞두고 처음 인사를 했고, 그 후로도 관련된 행사에서 몇 차례 마주쳤다. 처음에는 조금 측은한 마음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막상 이 할머니와 대화를 해 보니 그런 마음은 금세 사라졌다. 이 할머니는 참으로 당차다는 느낌을 줬다. 그녀는 역사의 희생물이었지만, 이미 그런 역사를 극복한 것 같았다. 이 할머니가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출마를 선언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 할머니의 도전을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한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길섶에서] 9988234의 진화/임태순 논설위원

    한동안 ‘9988234’라는 말이 유행했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단순히 ‘장수’라는 삶의 양에서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질에 눈이 돌려졌을 때다. 말 그대로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다 세상을 하직하자는 뜻이다. 오랜 병수발로 자식들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담겨 있다. 지인이 보낸 메일을 열어 보니 9988234를 재해석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흔히들 노후 준비 하면 돈을 떠올리지만 노후자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신건강이라는 것이다. 한국인 사망원인 가운데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등의 질병이 1, 2, 3위이지만 4위는 자살인 만큼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하루하루 비관적으로 살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따라서 ‘99세까지 팔팔하게 20~30대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건강이란 한마디로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계속 늦추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팔팔한 20~30대의 마음은 누구든 마음먹기에 달렸다. 삶의 질은 나이를 불문하고 맑은 정신에서 출발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이웃사촌/곽태헌 논설위원

    반상회에 참석하면 그나마 이웃을 알 수 있지만, 그러지 않으면 아파트 생활을 하는 경우 앞집 사람 얼굴도 제대로 모른다. 어쩌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무래도 어색하다. 사람 잘 사귀는 회사 후배 H는 이 점에서 부러울 정도로 예외다. 그는 이사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같은 아파트 주민 및 동네 주민 3명과 가깝게 지낸다. 고깃집 사장, 쌀집 사장, 전시 및 기획 전문가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자연스럽게 부인들도 가까워졌다고 한다. 지난 주말 네 부부는 승합차를 빌려 지리산까지 갔다 왔다. 화엄사도 둘러보고, 화개장터에도 가는 등 1박 2일간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얼마 전 이들의 저녁 모임에 동석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같은 동(洞) 주민의 자격으로 준회원이 됐다. 이달 말 집 근처 산에 같이 오르기로 했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낫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일 터. 이웃을 보면 먼저 인사를 해야 겠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길섶에서] 무임승차/구본영 논설위원

    지난 주말 KTX를 타고 입원 중인 노모를 찾았다. 승무원이 휴대용 단말기로 승차권을 확인하는 모습이 ‘스마트하게’ 여겨졌다. 과거처럼 모든 승객을 불편하게 하는 전수조사를 하지 않았다. 문득 학창 시절 짓궂은 친구들의 무임승차에 얽힌 무용담이 떠올랐다. 배웅차 플랫폼까지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을 끊어 승차한 뒤 목적지의 역사 담장을 넘는 식이었던 것 같다. 그런 기억 탓인지 조간 신문에서 무원칙한 공천에 반발해 탈당한 인사들이 만드는 어느 신당의 이색 정책이 눈에 확 들어왔다. ‘국회의원 KTX 무임승차 배격’이라는 공약이었다. 당리당략 위주의 정쟁에 신물이 난 까닭일까. 의원 무임승차 특권은 악동(惡童)들의 무임승차 장난보다 더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제인 애덤스도 “부도덕의 근원은 나만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버릇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하기야 나라를 지키는 해군을 해적이라 부르며 ‘안보 무임승차’에만 눈먼 인사들이 금배지를 달려고 하는 판국이니….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프랑스 영화/최광숙 논설위원

    프랑스 영화에 눈뜬 것은 대학 시절이다. 삼청동 집 근처에 프랑스 문화원이 있었다. 지금 그 자리는 폴란드 대사관으로 바뀌었지만. 그땐 일찍 수업이 끝나면 프랑스 문화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르곤 했다. 값싸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으론 최고였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해 커플들 속에 끼여 홀로 앉아 영화를 봐도 즐겁기만 했다. 남들은 느린 전개가 답답하고 지루하다 했지만 프랑스 영화의 매력을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떠들썩한 할리우드 영화와 달리 소곤소곤 조용한 게 좋았다. 대사에 담긴 철학적 의미와 주인공들의 삶에 대한 진지함이, 나름의 지성을 갈구하던 그 시절과 딱 맞았다. 알랭 들롱의 눈부신 젊은 날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최근 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백 무성영화인 ‘아티스트’가 작품상 등 5개 부문을 휩쓸었다. 프랑스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란다. 대사도 없이 한편의 극을 끌어가는 것을 보면 프랑스 영화의 힘이 대단하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즐거운 배움/구본영 논설위원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오는 2040년이면 90세에 육박할 것이라는 한 연구보고서를 읽었다. 운 나쁘게 큰 사고를 당하거나 불치의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했을 때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고단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무작정 오래 사는 게 축복일 수만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노후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장수는 재앙일 수도 있다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그러나 엊그제 조간 신문에서 올해 방송통신대 영문과 신입생이 된 아흔살 할아버지의 사연을 읽고 무릎을 쳤다.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출신의 정한택 옹이 그 주인공이다. 배움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즐기는 그분의 자세에 맘 속으로 “참 대단하다.”고 경탄했다. 그렇다. 법구경에도 “배우는 일에 게으른 사람은 들에서 쟁기를 끄는 늙은 소처럼 지혜가 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유능한 사람은 언제나 배우려는 사람이다.”는 문호 괴테의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라 자꾸 안일해지려는 스스로를 되돌아 보았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어머니의 손/최광숙 논설위원

    미국 아동문학가 마이런 알버그가 쓴 ‘아버지의 손’을 읽다 보면 눈가가 촉촉해진다. 청각장애인을 부모님으로 둔 작가의 유년시절 얘기다. 6살부터 부모님의 귀와 입이 돼야 했던 어린 아이. 아버지는 해변에 가서도 “파도의 소리는 어떠냐?”고 묻는다. 침묵의 세계에 사는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 세상의 소리를 끊임없이 듣고자 했다. 그런 아버지는 두 손으로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 냈고, 사랑을 엮어 냈다. 한 다큐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달팽이의 별’ 주인공들의 삶도 그렇다. 눈과 귀가 다 먼 남편과 척추 장애인 아내는 손등의 손가락 위에 점자를 치는 방식으로 대화를 한다. 부부 싸움을 하면 아내는 남편의 손가락 위에 아프게 점자를 콕콕 쳐낸다고 한다. 그래도 온기가 전해지는 손 덕분에 금방 풀린다고 한다. 풍부한 언어를 표현하는 손. 어머니의 두툼하고 거친 손이 떠오른다. 자식들을 건사하느라 늘 쉴 새 없이 놀려야 했던 어머니의 손은 사랑과 헌신 그 자체였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이상한 횟집2/이도운 논설위원

    얼마 전 ‘이상한 횟집’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쓰자 “그곳이 어디냐?”는 질문이 빗발쳤다. 한번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최근에 쓴 기사 가운데 가장 짧았지만, 가장 많은 ‘피드백’을 받았다. 사람들은 역시 먹는 것에 관심이 크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처음에는 전화를 걸어온 동료나 친구들 그리고 이메일로 문의한 독자들에게 별 생각없이 설명해줬다. 그러나 횟집을 알려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이 계속 늘어나자 조금씩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독자들이 원한다고 꼭 특정업체를 알려줄 필요가 있는 것인지. 쓸데없이 홍보요원이 되어 버린 건 아닌지. 엊그제 전직 공무원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도 그 횟집 기사 얘기가 나왔다. 내가 어느 동네라고 얘기하니 그 전직 공무원도 아는 집이었다. 그는 자기가 가본 경험으로는 이런저런 점이 좋았고, 이런저런 점이 모자랐다고 했다. 역시 좋고 나쁜 것은 상대적인 것이었다. 기사 한 줄, 한 줄을 더욱 신중하게 써야겠다고 새삼스럽게 다짐했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길섶에서] 소통의 편지/주병철 논설위원

    결혼하고 한참 뒤까지 편지를 받아 봤다. 아버지의 편지였다. 어려서부터 집을 떠나 친척집에 얹혀살았던 터라 아버지는 주로 편지로 소식을 전하곤 했다. “열심히 바르게 살아라.”라는 편지가 많았다. 결혼한 뒤에는 가족 보살피기, 헤픈 씀씀이 등 아들의 장단점을 빼곡히 적어 보내셨다. 아들의 속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편지를 받아 보는 나로서는 참 부담스러웠다. 편지를 받으면 답장을 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열 번에 한 번꼴로 답장을 보냈던 것 같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아들과 편지를 통해 소통을 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자꾸 피했으니 소통 부재의 책임은 나한테 있었다. 친구 하나가 군에 있는 아들이 편지를 보내왔다며 내게 보여 준다. 편지는 ‘To 아빠, 별일 없고요’라고 시작된다. 나는 피식 웃었다. 나 같으면 ‘아버님 전상서’라고 쓸 텐데…. 문득 아들한테 편지 한 번 써 보고 싶다. 마음은 벌써 편지를 쓰고 있는데 손에 펜이 잡히질 않는다. 편지 쓰기가 짐스러운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말 향기/최용규 논설위원

    흔히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한다. 충고가 재앙이 된 경우가 흔치 않은데 범인(凡人) 입장에서야 양약고구(良藥苦口)를 갈파한 공자의 경지를 어찌 가늠하겠는가. 오히려 “좋은 말도 가려서 하고 충고도 살펴서 하라.”는 다산 정약용의 실존적 훈수가 마음에 더 와 닿을지 모른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 바싹 마른 충고는 상대에게 비수가 되어 박힐 수 있다. 화자인들 마음이 편할 리 있겠는가. 가슴은 체한 듯 답답하고 머리는 온종일 지끈지끈할 것이다. 그래서 뒷구멍 험담과 막말만 난무할 뿐 충고가 사라지나 보다. 이해인 수녀는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라는 산문집에서 좋은 말, 긍정적인 말, 밝은 말을 더 많이 하고 사는 새해 새봄이 되길 기도한다고 했다. 그 수도자는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격려하고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축복의 말을 해 주어야지라고 다짐한다. 겨울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고 있다. 달력에 표시된 절기에선 봄 내음이 피어오른다. 말에 봄향기를 입혀야지. 단지 설화(舌禍)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 [길섶에서] 새소리/임태순 논설위원

    아침 집을 나서는데 유난히 새소리가 크게 들렸다. 조잘조잘대는 새들의 지저귐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화창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걸으니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왠지 오늘 하루는 기분 좋은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새소리는 흐리고 궂은 날보다는 맑게 갠 날 자주 들었던 것 같다. 언젠가 아침 일찍 문경새재 조령관문에 올라가니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새들의 합창 소리에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간밤 단잠을 잔 뒤 상쾌한 기분으로 서로 아침 인사를 주고받으니 요란스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루한 장마가 끝났음을 알리는 것도 새소리였다. 오랜만에 해가 뜬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새들의 흥겨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성경에도 노아의 대홍수가 끝나자 방주로 찾아온 것은 새들이었다고 하지 않았나. 때마침 기상청은 올해는 개나리가 지난해보다 2~4일 빨리 필 것으로 예보했다. 봄이 빨리 오는 것이니 새들의 울음소리를 더 들을 수 있게 되나 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이상한 횟집/이도운 논설위원

    횟집 한 곳을 소개받았다. 맛 좋고, 비싸지 않다고 했다. 지난 주말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했다. “세 사람요.” 했더니 “알았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해서 “이름이라도 적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했더니, “그냥 오세요.”라고 한다. 생김새는 다른 횟집들과 별다른 점이 없어 보였다. 아내가 주방장이고, 남편이 서빙을 맡았다. 메뉴를 달라고 하니 “그런 것 없다.”고 했다. “우리 집은 정식 한 가지”라는 것이다. 정식이 먹기 싫으면 탕 하나만 시키라고 했다. 이상한 횟집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한 점은 거기까지였다.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싱싱한 회와 야채로 정성껏 만든 음식이라는 것이 금방 느껴졌다. ‘봄동 김치’, 콩과 조가 섞인 잡곡밥.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횟집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일년에도 수천, 수만개의 음식점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음식 장사에 성공하는 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 내면 성공한다. 그처럼 단순한 진리를 몰라서 문을 닫게 되는 것은 아닐 테지.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길섶에서] 긍정 마인드/구본영 논설위원

    역사에 족적을 남기는 사람들에게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결과보다는 목표에 다가서는 과정을 즐기면서 행복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미국 백악관 차관보를 지내고 며칠 전 타계한 강영우 박사가 그런 분인 것 같다. 소년 시절 부모를 차례로 잃은 데다 시각 장애라는 핸디캡을 안고 각고의 노력으로 한인 이민 100년사를 통틀어 미 행정부 최고위직에 오른 그가 아닌가. 더욱이 그는 작년 10월 말기암이 발견된 뒤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긍정적 마인드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축복받은 삶을 살아온 제가 주변을 정리할 시간을 허락받아 감사하다.”며 지인들에게 감사의 작별 편지까지 보냈다니 말이다. 그의 긍정적 사고를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이런저런 장애물 때문에 도전 정신을 잃고 안주하는 생활에 젖어든 게 아닌가 하는 자성론이다. 그렇다. 토머스 칼라일도 “길을 가다가 돌이 나타나면 약자는 걸림돌이라고 하지만, 긍정적인 이는 디딤돌이라고 말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면접/주병철 논설위원

    세상을 살면서 참 쉽지 않은 것 중의 하나가 면접보기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일에 자신만만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뻘쭘해하거나 민망스러워한다. 좋든 싫든 반드시 거쳐야 하는 몇 번의 면접은 있다. 대입 면접, 입사 면접, 결혼 승낙 면접(?) 등이다. 언제부턴가 면접의 비중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필기시험보다 면접이 당락을 가르는 변수가 되는 예가 허다하다. 그래서 젊은 층은 면접을 앞두고 얼굴 부위를 성형하거나 피부를 곱게 만들려고 안달이다. 그러다 보니 면접 때 학창시절 사진을 갖고 오라는 곳도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우리나라에서나 있는 얘기다. 물론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내면이다. 스펙이나 화술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이 중요한 덕목이다. 그래서 면접을 많이 봐야 하는 사람이라면 성형이나 스펙 쌓는 데 돈을 들일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진실된 마음’을 보여줄까를 고민하는 게 낫다. 면접 성공 확률을 더 높여주는 일이 될 테니까.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말의 이중성/주병철 논설위원

    무골호인(無骨好人)이란 말이 있다. 사람이 악의 없고 인품이 훌륭하다는 말로 통한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는 정반대다. 줏대 없이 두루뭉술하고 순해서 남의 비위를 다 맞추는 사람을 일컫는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말도 원래는 좋은 뜻은데, 삐딱하게 보면 세상물정에 어둡고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으로 비친다. 말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세월이나 세대차이에서 비롯되는 것도 있다. ‘(여자가) 참 착하다.’는 말도 나이 든 사람한테는 마음씨 곱고 얼굴도 이쁘다는 뜻이다. 근데 젊은 사람들은 ‘착하기만 하고 얼굴 등 다른 데는 볼품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언론에서 정부 고위직의 프로필을 쓸 때 종종 등장하는 ‘마당발’이란 용어도 처음에는 칭찬의 의미였는데 요즘에는 그 반대다. 얼마 전 어느 정치지도자가 표현해 관심을 끈 ‘줏대’라는 말도 그렇다.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자존심으로 풀이되는데, 고집불통이나 융통성이 없는 고지식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말의 묘한 이중성에 새삼 놀란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자랑스러운 족보/최광숙 논설위원

    돌아가신 아버지는 족보에 일가견이 있으셨다. 족보가 없어 내심 고민하는 이들에게 뿌리를 찾아 족보를 만들어 준 일을 늘 자랑하셨다.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 여전히 ‘양반’을 따지는 보수적인 동네이다 보니 족보가 없으면 근본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져 대접을 못 받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족보가 미국에서 ‘개가’를 올렸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조카가 인류학 강의를 들었는데, 교수가 내준 과제가 조상들의 뿌리 찾기였다고 한다. 조카는 큰오빠가 보내준 족보 몇장을 복사해 제출했더니 교수를 비롯해 학생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아니, 온 집안 가족들의 역사가 이처럼 일목요연하게 나온 책자가 각 가정마다 있다니….” 평소 이사 다닐 때 족보책을 담은 박스를 거추장스럽게만 여겼다. 별 쓸모도 없는 책자를 왜 그리 싸안고 다녀야 하는지, 푸념도 했다. 지나고 보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 조상들의 뿌리가 담긴 기록물이자 훌륭한 문화유산인 족보를 그리 홀대했다는 사실이….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119와 응급실/최용규 논설위원

    남 얘기인 줄만 알았다. 119를 부른다는 것을. 여하튼 일요일 저녁 톡톡히 신세를 졌다. 심야에 병원 응급실을 찾은 경험이 있는 이라면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바로 그곳일 게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달려갔겠냐마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캐묻는 인턴의 집요함(?)에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것이 비단 나만의 일일까. 말이 좋아 문진(問診)이지, “이러다가 사람 잡지.” 하는 생각을 웬만한 사람들은 해봤을 게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국내 최고라는 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은 지인의 아이. 정신 멀쩡하게 들어간 아이는 죽어서야 병원 문을 나왔다. 아이는 배 아파 죽겠다는데 수술할 의사는 좀체 코빼기를 내밀지 않았다. 수술을 마친 뒤 “조금만 더 빨리 수술을 했더라면….”이라고 했다니…. 상계 백병원. 응급실엔 환자들로 북적댄다. 간단한 문진과 피·소변 검사, 흉부 X레이 촬영. 초음파는 의심되는 점이 있어 해봤지만 진료비에 포함이 안 된단다. 생각보다 빠른 의사의 설명과 처방. 낯선 풍경이다. 신뢰로 치환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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