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한참 뒤까지 편지를 받아 봤다. 아버지의 편지였다. 어려서부터 집을 떠나 친척집에 얹혀살았던 터라 아버지는 주로 편지로 소식을 전하곤 했다. “열심히 바르게 살아라.”라는 편지가 많았다. 결혼한 뒤에는 가족 보살피기, 헤픈 씀씀이 등 아들의 장단점을 빼곡히 적어 보내셨다. 아들의 속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편지를 받아 보는 나로서는 참 부담스러웠다. 편지를 받으면 답장을 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열 번에 한 번꼴로 답장을 보냈던 것 같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아들과 편지를 통해 소통을 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자꾸 피했으니 소통 부재의 책임은 나한테 있었다.
친구 하나가 군에 있는 아들이 편지를 보내왔다며 내게 보여 준다. 편지는 ‘To 아빠, 별일 없고요’라고 시작된다. 나는 피식 웃었다. 나 같으면 ‘아버님 전상서’라고 쓸 텐데…. 문득 아들한테 편지 한 번 써 보고 싶다. 마음은 벌써 편지를 쓰고 있는데 손에 펜이 잡히질 않는다. 편지 쓰기가 짐스러운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편지를 받아 보는 나로서는 참 부담스러웠다. 편지를 받으면 답장을 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열 번에 한 번꼴로 답장을 보냈던 것 같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아들과 편지를 통해 소통을 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자꾸 피했으니 소통 부재의 책임은 나한테 있었다.
친구 하나가 군에 있는 아들이 편지를 보내왔다며 내게 보여 준다. 편지는 ‘To 아빠, 별일 없고요’라고 시작된다. 나는 피식 웃었다. 나 같으면 ‘아버님 전상서’라고 쓸 텐데…. 문득 아들한테 편지 한 번 써 보고 싶다. 마음은 벌써 편지를 쓰고 있는데 손에 펜이 잡히질 않는다. 편지 쓰기가 짐스러운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2012-03-06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