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사설] 이참에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 다시 하라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4월 임시국회 처리가 결국 무산됐다. 여야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그제에도 서로에게 법안 처리 실패의 책임을 떠넘기며 설전을 벌였을 뿐이다. 이런 국회의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국민은 이제 아무도 없다.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넘어 “차라리 잘된 것 아니냐”고 냉소를 보내는 것이 속마음이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랬더니 불과 몇 년 뒤에는 효과가 사라지는 ‘무늬만 개혁안’으로 시늉만 냈다. 그것도 모자라 국민적 합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국민연금까지 대책 없이 건드린 것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되자 책임 전가를 위해 기싸움만 했다. 정치권의 논리가 세상의 논리와 다르다는 것은 공무원연금 개혁의 추진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당초 정부가 제시한 핵심 내용은 공무원이 현직에서 내는 돈을 크게 늘리고, 퇴직한 뒤 받는 돈은 크게 줄이자는 것이었다. 2016년 이후 입문하는 공무원은 사실상 공무원연금 수준이 아닌 국민연금 수준으로 연금제도를 유지하자는 내용도 있었다. 현재의 제도를 유지할 경우 공무원 먹여 살리자고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웃지 못할 상황이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야는
  • [사설] 민생 법안도, 구조 개혁도 못 챙긴 한심한 국회

    4월 국회가 끝내 빈손으로 마감했다. 그제 본회의에서 여야의 공무원연금 합의가 파투났다. 야당이 공무원연금과 별개 문제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 문구를 명기하려고 어거지를 피우면서다. 이 과정에서 계류 중이던 100여개의 민생 및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도 불발됐다. 어처구니없는 사태다. 야당의 국정 발목 잡기와 여당의 무원칙·무기력이 만든 ‘불임(不姙) 국회’가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대체 지금이 어느 때인가. ‘저출산 고령화’라는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글로벌 경쟁은 가열되고 있다. 최근 정부 통계를 보라. 미래 먹거리로 선정한 국가전략기술 10대 분야 120가지 중 우리가 확보한 세계 1등 기술은 하나도 없었다. 수십 년째 선진국 문턱에서 맴돌고 있는 우리로선 각 부문의 구조 개혁으로 성장동력을 재정비하는 게 급선무다. 공공·금융·노동·교육 등 4대 구조 개혁이 그 일환이다. 그런데도 공공 개혁의 첫 단추인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국회의 원칙 없는 협상으로 기형적으로 산출되는가 했더니 이마저 중절됐다. 어디 그뿐인가. 핵심 경제활성화 법안들도 줄줄이 좌초됐다. ‘고용 없는 성장시대’에 일자리 창출의 대안 격인 서비
  • [사설] 국민연금 갑론을박 중단하고 공론화 나서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소득 대비 연금지급액)을 놓고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마련하면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기로 한 합의 내용을 둘러싼 논란이다. 논란의 핵심은 ‘소득대체율을 10% 포인트 더 올리면 연금 보험료를 얼마나 올려야 하느냐’는 문제다. 연금을 더 받으려면 보험료를 더 내는 것은 당연한데 지금보다 두 배가량 올려야 한다는 주장과 단 1% 포인트만 인상하면 되니 큰 부담이 없다는 주장으로 엇갈린다. 재삼 강조하는 것은 정치권이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만들면서 국민연금을 연계시키고 구체적인 숫자까지 명시한 것은 권한의 한계를 벗어났다는 점이다. 두 연금은 다 같이 개혁 대상인 공적 연금이지만 문제의 본질은 다르다. 적자를 낸 지 오래된 공무원연금은 매년 예산에서 수조원을 보전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 공무원연금의 개혁 취지는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를 바꿔 재정 부담을 줄이자는 데 있다. 공무원연금과 달리 적게 내고 적게 받는 국민연금은 고갈에 대비해 두 차례의 개혁을 통해 소득대체율을 40%로까지 낮춰 놓은 상태다. 두 연금이 놓인 상황이 다른 만큼 접근 방식
  • [사설] 8일 검찰에 소환되는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홍준표 경남지사가 내일 오전 10시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다. 피의자 신분이다. 한나라당 대표 최고위원 경선을 앞둔 2011년 6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한테서 1억원을 받은 혐의다. 혐의가 입증되면 홍 지사는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최초로 사법 처리가 된다. 검찰은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성 전 회장의 측근인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네 차례에 걸쳐 조사해 구체적인 정황도 파악했다. 윤 전 부사장은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국회의원 회관 지하 주차장에서 내린 뒤 홍 지사의 에쿠스 승용차에 홍 지사와 함께 타 1억원이 든 쇼핑백을 건넸다. 동석했던 나경범(현 경남도 서울본부장) 당시 수석보좌관이 쇼핑백을 들고 홍 지사의 사무실로 올라갔다”고 진술했다. 윤 전 부사장의 부인도 “남편이 홍 지사 측에 1억원을 전달한 날 국회의원 회관까지 차로 태워다 줬는데 남편이 돈이 든 쇼핑백을 챙겨 가는 것을 봤다. 남편이 돌아왔을 때 쇼핑백은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시간과 장소, 돈을 전달한 대상 등 구체적인 정황이 나오는 등 증거가 충분해 검찰은 홍 지사를 기소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홍 지사는
  • [사설] 징용시설 세계유산 등재에 ‘친서’ 로비 나선 아베

    조선인 강제징용 현장이 포함된 산업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이 전방위 외교 로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등재 자격 논란이 들끓는 와중에 아베 신조 총리가 등재 심사를 맡은 관계국들에 친서까지 보내 지원을 호소하고 나섰다. 다음달 말 최종 심사를 앞두고 시비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총리가 작정하고 ‘등재 굳히기’에 팔소매를 걷어붙인 모양새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민간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메이지(明治)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도록 유네스코에 권고했다. 23곳 중에는 나가사키조선소와 야하타제철소 등 태평양전쟁 중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된 산업시설 7곳이 포함됐다. 일본의 등재 작업은 치밀하게 전개됐다. 문제의 산업시설들을 ‘산업 근대화의 유산’이란 허울을 씌워 등재 신청한 뒤 시비가 이어지자 그 유산 가치를 한·일 강제병합 이전까지로 한정 짓는다는 대응 논리를 들이댔다.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전에 들어선 시설인 만큼 강제 징용과는 별개로 봐야 한다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주장이다. 전례로 봤을 때 ICOMOS의 등재 권고는 ‘다 된 밥’을 의미한다. 다음달 말에 있을 제39회
  • [사설] 경제살리기법 표류가 국회 선진화인가

    국회가 극심한 무기력증을 앓고 있다. 각종 경제살리기 법안들이 다시 6월 국회로 이월될 참이다. 오늘 4월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잡혔지만, 서비스산업발전법·관광진흥법 등은 상임위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는 심리라는데, 시장에 긍정적 신호를 줄 골든타임을 번번이 놓치고 있는 꼴이다. 이는 청년 구직난과 기업의 영업수익 악화 등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모든 안건을 표결 대신 합의 처리하도록 한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하는 ‘갑(甲)질’이 큰 문제라고 본다. 우리 국회가 ‘합의의 덫’에 걸렸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표를 의식해 다수 국민보다는 이해집단의 눈치를 살피는 행태가 상례화되면서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연금 ‘개악’과 같은 기형적 결과를 도출하기는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합리적인 절충은커녕 통과도 부결도 안 시키고 법안들을 무기한 표류시키기 일쑤다. 2012년 7월 상정된 서비스산업발전법이 1000일이 넘도록 낮잠을 자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학교 앞 정화구역에 유해 시설이 없는 관광호텔 건립을 허용하는 내용의 관광진흥법과 의사의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도 먼지만 쌓이고 있다. 경제활성화 법안들이 부지하세월로 국회 통과를 기다리는 동안
  • [사설] 한국에서 인도로 아시아 기지를 옮기려는 GM

    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을 떠나 아시아 생산·수출 거점을 인도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인건비가 크게 오른 데다 강성 노조가 오래전부터 골칫거리로 떠올랐고 인도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서려는 회사의 전략과 맞물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테판 자코비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공장을 닫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면서도 “한국GM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GM이 몇 년 전 한국 공장의 경영개선 작업을 시작했지만 강력한 노조가 난제”라면서 “회사는 한국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건비가 크게 올라 수익성이 떨어지는 한국 대신 인도를 새로운 아시아의 생산·수출 기지로 결정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GM은 글로벌 시장을 지속적으로 재편해 왔다. 호주와 인도네시아 공장은 이미 문을 닫았다. 태국에서는 생산 규모를 줄였다. 한국GM은 저비용 수출기지로, GM 생산량의 5분의1가량을 담당해 왔다. 하지만 최근 5년간 50% 가까이 인건비가 올라 일본과 함께 인건비가 높은 대표적인 국가가 됐다. 지난해 한국GM의 생산량
  • [사설] 최차규 공군총장 ‘면죄부’ 감사 안 된다

    국방부가 공금 유용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된 최차규 공군 참모총장에 대한 감사에 나섰다. 몇 달 전부터 최 총장은 과거 부대 운영비를 횡령하고 가족들과 함께 공관병과 운전병들에게 ‘갑질’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였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과거 최 총장의 공관에서 근무했던 공관병의 폭로와 공군 내부 투서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관련 의혹이 점점 증폭되는 상황이다. 구체적인 의혹을 보면 군 인권센터는 최 총장이 공군 제10전투비행단장 시절 부대 운영비 300만원을 착복하는 등 비리를 저지른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 총장은 취임한 이후 군 예산으로 1300만원 상당의 옥침대 구입을 포함해 집무실 리모델링 공사비에 1억 8000만원 이상을 지출하는 등 과도한 예산 유용 의혹도 받고 있다. 최 총장은 군 인권센터의 주장에 대해 “나의 리더십이 강한 데서 생긴 문제인 것 같다”고 부인했다. 집무실 리모델링에 대해서는 “관련 부서에서 알아서 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방부의 감사 착수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최 총장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수순이 아니냐는 의혹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국방부는 최근까지도 최 총장 공금 유용 의혹에
  • [사설] 2000만 가입자를 卒로 본 ‘국민연금 끼워 넣기’

    여야가 지난 주말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합의하면서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소득대비 연금액)을 50%로 한다’는 내용을 넣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여야가 추천한 실무기구의 합의문에만 구체적인 숫자가 명시돼 있고 여야 대표가 서명한 합의문에는 숫자는 빠져 있다고는 하지만 2000만명이나 되는 가입자를 우롱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반발이 거세지자 여당은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만 국민연금 제도를 변경할 수 있다고 한발 뺐지만 야당은 ‘잉크도 마르기 전에 합의 사항을 무시한다’며 맞서고 있다. 국민연금은 가입자나 적립기금액이 공무원연금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커서 개혁을 하려면 공론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의 40%가 가입한 연금제도를 변경하는 문제를 가입자가 100만명 남짓한 공무원연금 제도를 고치면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쩍 끼워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 발상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개혁 방향에 민감한 가입자가 그 정도로 많다면 당연히 깊은 연구와 토론을 거친 다음에 국민 전체의 동의를 얻은 뒤 시행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국민이나 가입자를 장기판의 졸(卒)쯤으로 보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물론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40%밖
  • [사설] ‘민중의 지팡이’ 참모습 보여준 ‘맨발의 여순경’

    80대 치매 할머니에게 자신의 신발과 양말을 신겨 주고 맨발로 병원까지 호송한 여순경의 선행이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전북 진안경찰서 여성 청소년계에서 일하는 최현주 순경이 주인공이다. 최 순경은 지난달 28일 치매를 앓는 할머니의 실종 신고가 접수되자 곧바로 수색 작전에 투입됐다. 최 순경은 밤샘 수색작업을 벌이다 진안군 용담호 상류 풀숲에서 웅크린 채 쓰러져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실종된 지 19시간 만으로 할머니는 탈진 상태였다. 할머니는 하천을 건너고 산을 넘느라 신발을 잃어버렸고 발은 상처투성이로 차갑게 식어 있었다. 최 순경은 경찰 헬기에 할머니를 태워 함께 전북대병원으로 향했다. 할머니를 찾자마자 멍든 발에 신발과 양말을 신기려고 했지만 할머니는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 순경은 헬기에 오르자마자 다시 자기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 할머니에게 신겼다. 그러고는 자신은 맨발로 할머니의 침상을 끌고 응급실까지 뛰었다. 최 순경의 ‘맨발 선행’은 육·공 합동수색 사례로 남기기 위해 촬영을 하던 경찰 헬기 부기장의 휴대전화에 우연히 영상이 담기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최 순경의 동영상은 주말 내내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뜨겁게 달궜다
  • [사설] 野, 호남 중심 신당보다 쇄신이 먼저다

    새정치민주연합이 4·29 재·보선 전패 이후 연일 시끌벅적하다. 호남 시·군·구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지는 가운데 문재인 대표는 어제 광주행에 나섰다. 지도부 사퇴론을 누그러뜨리려는 행보였다. 그의 이런 곤경은 자업자득일 수 있지만, 이를 기화로 호남 신당을 만들려는 야권 일각의 움직임도 민심을 오독하는 일이라고 본다. 어제 최고위원회의에서 비주류의 주승용 최고위원은 문 대표에게 “물러나지 않겠다면, 친노 패권 청산이라도 약속하라”고 압박했다. 나름 설득력 있는 요구다. 텃밭인 광주 서을을 무소속 천정배 후보에게 내주고 호남 출신 유권자가 압도적인 서울 관악을에서도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안긴 원인을 되짚어 봤을 때다. 지역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들을 외면하고 친노 인사 위주로 공천한 게 패인의 일부라는 뜻이다. 하지만 공천 실패가 호남판 자민련을 만들 빌미가 돼서는 곤란하다. 얼마 전 광주 지역구의 박주선 의원은 “천 의원이 신당을 추진하면 합류 인사가 수십 명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호남 유권자를 주머니속 공깃돌인 양 여긴 새정치연합의 전철을 답습하는 신당의 태동은 정치 퇴행일 뿐이다. 이번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이 한 석도 건지지 못한
  • [사설] 미·일 신밀월 혼자만 걱정 없다는 외교 장관

    지난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로 미국과 일본 간 신밀월시대가 성큼 다가온 인상이다. 한·일 과거사 갈등이 내연 중인 터라 미·일 동맹이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일심동체 수준으로 격상되고 있다면 우리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1일 외교·안보 당정회의에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단다. 하지만 동북아 안보 지형에서 한국이 소외되고 있다는 해석이 “과도하다”는 그의 인식이 외려 안이하다고 본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공동 비전’ 성명을 내놓았다. 군사와 경제에서 미래지향적 협력을 합창했지만 불행한 한·일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을 언급하는 문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일본이 국방비 부담을 덜어주는 등 미국의 가려운 곳을 미리 긁어준 탓일까. 방위지침을 고쳐 일본에 집단 자위권을 인정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 의지를 확인하는 등 양국 간 현안은 일사천리로 정리됐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공식 사과는커녕 동문서답으로 일관한 아베를 미 정부와 의회가 극진히 예우한 것도 달라진 기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방한 때는 일본군이 성노예로 삼았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쇼킹하다”고 성
  • [사설] 이런 개혁을 개혁이라 할 수 있나

    여야가 이른바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합의했다고 한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2일 ‘공무원연금 개혁 및 국민연금 강화를 위한 양당 대표 합의문’에 서명했다는 것이다. 합의 내용을 담은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은 4월 국회가 끝나는 오는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애초 공표한 국회 공무원연금개혁 특별위원회의 활동 시한을 지킨 데다 대표 간 합의라는 모양새를 이끌어 냈으니 만족스러운가. 하지만 민생을 외면하고 정쟁에만 골몰하던 여야가 오랜만에 정치력을 발휘한 듯한 착각만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합의했다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들여다보면 도대체 무슨 개혁을 이루었다는 것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글자 그대로 개혁안인지는 공무원단체 반응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연금 개혁에 강하게 반발하던 공무원 노조들은 합의안이 알려지자 당장 “공무원연금 구조개혁을 저지하고 개혁의 속도도 늦추는 데 성공했다”고 자평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당·정·청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지난해 9월 처음 공개될 당시만 해도 신규 공무원은 국민연금과 다르지 않은 연금 제도의 적용을 받고, 기존 공
  • [사설] 학부모 신분 조사 시도한 막장 대학

    한국외국어대가 힘 있고 돈 많은 학부모들을 따로 관리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재학생과 휴학생 전부를 대상으로 ‘잘나가는’ 학부모 명단을 조사하려 했다니 그 발상 자체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학교 측이 각 단과대에 공문으로 내려보낸 조사 지침은 치밀하고 구체적이었다. 관리 대상 학부모 직업을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법조인, 의사, 대기업, 일반기업 등 6개 부문으로 나눴다. 그것도 모자라 고위 공무원은 2급, 의사는 종합병원 과장, 대기업은 임원 이상이라는 식의 하한 기준선까지 제시했다. 누가 봐도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식 밖의 작업이다. 총학생회는 “학생들을 줄 세우는 것도 모자라 학부모 직업군까지 상대평가 한다”며 “돈 있고 권력 있는 부모는 학교발전기금을 낼 수 있으니 따로 관리하려는 꼼수”라고 학교 당국을 거세게 비판했다. 대학이 ‘주요 학부모’를 분류했다고 알려지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나머지는 부수적 학부모냐”는 성토가 이어진다. 비난이 들끓자 외대는 “학교 소식을 궁금해하는 학부모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네트워킹을 추진해 보려는 취지였으나 의도가 와전된 것”이라고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전체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면
  • [사설] 압력 넣고 돈 챙기는 게 일상이었던 박범훈 전 수석

    검찰이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밤샘조사를 벌인 뒤 어제 아침 귀가시켰다. 이르면 다음주 초 직권남용과 횡령 등의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동안 설(說)로 떠돌던 박 전 수석의 비리가 입증 단계에 접어들고 있음을 짐작게 한다.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이후 그에 얽힌 비리 의혹은 날마다 새로운 것이 터져 나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의 혐의는 말이 좋아 직권남용과 횡령이지 쉽게 말하면 관계기관에 압력을 넣고, 그 압력에 따른 특혜의 대가로 돈을 챙겼다는 것이다. 이런 브로커 노릇에 청와대 수석 신분을 이용했다니 통탄할 노릇이다. 국악계, 특히 민속악계에서 누구도 넘보지 못할 권위를 쌓은 박 전 수석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국악 작곡가의 이미지를 뛰어넘는 정치력과 행정력으로 2005년 중앙대 총장에 이어 2007년 대통령선거 때는 이명박 후보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문화예술정책위원장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 최고 실세의 한 사람으로 꼽힌 그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 일한 것은 2011년 2월부터 2013년 2월까지 1년 남짓이다. 하지만 박 전 수석은 이렇듯 국가·사회적으로 영예로운 직함들을
  • [사설] 성완종 게이트 재·보선 결과에 묻히면 안 된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 속에 치러진 4·29 재·보궐 선거 결과가 극명하게 갈렸다. 새누리당이 4곳 중 3곳을 이기는 압승을 거둔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야권의 심장’으로 불리는 광주 서을에서도 지는 등 완패했다. 여당은 승리의 여세를 몰아 성완종 리스트 문제를 뒤로 물리고 시급한 국정과제를 서둘러 실천에 옮기겠다는 기세이고, 야당은 치명적인 패배 속에 정신줄을 잃다시피한 상태다. 이번 선거 결과로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성완종 게이트’는 벌써 눈에 띄게 뒷전으로 밀리는 모양새다. 당장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초강도의 정치개혁을 통해 부정부패 없는 깨끗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공무원연금 개혁 등 4대 개혁 완수를 다짐하고 나섰다. 그러나 선거 후 일성으로 마치 ‘헌법은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은 지극히 당위론적인 말을 새삼 소리 높여 외쳐야 하는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요컨대 정치개혁이라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절대명제를 내세워 성완종 게이트의 본질을 희석시키거나 유명무실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망각의 정치’가 아니라 ‘기억의 정치’다.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 [사설] 새정치연합 해체수준의 혁신이 필요하다

    국회의원 4·29 재·보궐선거에서 치욕적 패배를 당한 새정치민주연합이 내홍에 휩싸여 있다. 수도권은 물론 안방으로 불리는 광주에서조차 지지자들에게 외면을 당한 것은 제1야당으로서 쓰나미급 충격임에 틀림 없다. 당내 비노(비노무현)세력을 중심으로 호남 의원들이 가세하면서 당내에서는 문재인 대표의 책임론을 넘어 야권 재편의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는 상황으로 번져가고 있다. 새정치연합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선거 규모가 작고 투표율이 높지 않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야권 자체의 분열 때문이라는 전술적 판단 미스라는 시각도 있다. 야당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의 준엄한 심판이 아니라는 항변이자, 변명이다. 그릇된 전술적 판단은 반사이익에 길들여진 당의 체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 대표는 선거 초반 ‘경제정당론’으로 ´우클릭´의 변화를 시도했다가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편승한 ‘정권심판론’으로 선회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해 7·30 재·보선에서 세월호 참사의 반사이익을 기대하다가 역풍을 받은 것처럼 이번에도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데 실패했다. 근본적인 당의 체질 변화 없이 집권 세력의 헛발질을 노리다가 민심의 회초리를 맞
  • [사설] 4·29 재·보선 이후 정국, 민생이 핵심이다

    국회의원 4·29 재·보궐선거가 새정치민주연합의 패배와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승리를 거둔 새누리당은 뜻밖의 결과에 놀라면서 내심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된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고 새정치연합 내부는 벌써부터 패배 책임론에 휩싸여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선거전을 진두지휘한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어제 “누구를 탓할 것 없이 저희의 부족함을 깊이 성찰하고 절체절명의 각오로 다시 시작하겠다”고 다짐했다. 문 대표는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가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에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불법 정치자금과 경선 및 대선자금 관련 부패를 덮으려 하거나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가로막으려 한다면 우리 당은 야당답게 더욱 강력하고 단호하게 맞서 싸우겠다”며 대여 강경투쟁을 예고했다. 야당으로서 권력비리 의혹에 대한 규명은 피할 수 없겠지만 문 대표는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많은 국민들은 성완종 사건의 진상은 반드시 규명해야 하지만 국정 현안이 모두 멈추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사생결단 식으로 치러진 선거 분위기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국정이
  • [사설] 미·일 新밀월, 냉정하게 대응책 서둘러야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위안부 강제동원과 식민지배 등 우리를 포함해 동아시아 각국에 입힌 깊은 상처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끝내 입을 다물었다. 대신 아베 총리는 미 상·하원 합동연설을 통해 1941년 일제의 진주만 공습으로 피해를 당한 미국과 미국민들에게 통렬한 사과의 말을 전했다. 철저히 미국 입맛에 맞춘 지능적인 의회 연설이었던 셈이다. 미국 내 여론과 정치권의 환심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아베 총리 스스로는 성공적이고 실용적인 방미 외교였다고 자평할 것이다. 과거사 사죄를 거부해 동아시아 각국의 분노를 자아내긴 했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아베 총리의 이번 방미 외교를 통해 얻은 게 상대적으로 많아 보인다. 자위대 활동 영역의 팽창과 집단자위권 행사에 대한 미국의 용인을 이끌어 낸 데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전범국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적극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만찬장에서 직접 일본 단시인 하이쿠를 읊으며 아베 총리를 극진하게 환대했을 정도다. 미·일 양국은 ‘부동(不動)의 동맹’이라는 최상급 표현이 함축하는 바와 같이 역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운 신(新)밀월을 구가하고 있다. 양국의 공통분
  • [사설] 25억원짜리 장비로 참기름 짜 선물 돌린 연구원

    25억원짜리 연구 장비를 선물용 참기름 수천 병을 짜는 데 쓴 지방자치단체 산하 연구기관장이 경찰에 적발됐다. 전남도 산하 출연기관인 전남생물산업진흥원 나노바이오 연구원의 이모 전 원장은 지난해까지 4년간 ‘초임계추출기’라는 연구 장비를 이용해 참기름을 짜서 지역 국회의원과 전남도청 간부 등에게 명절때 선물로 보냈다고 한다. 초임계추출기는 물질에서 필요한 요소만 뽑아내는 장치다. 연구 개발이 필요한 중소기업들에 빌려주기 위해 연구원이 2009년 25억원을 들여 도입했다. 이 전 원장의 지시로 25억원짜리 연구장비가 참기름 생산기계로 변질됐으니 이런 코메디도 없다. 참기름을 짜는 작업에는 원장과 팀장,연구원 등 전체 직원 25명 중 절반이 넘는 14명이 관여했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나노바이오 참기름’을 만드는 ‘방앗간연구원’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게다가 참기름 세트 제조 비용 6200만원은 에탄올 등 연구기자재를 사는 데 쓴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고 한다. 이 전 원장은 또 부하 직원한테서 활동비 명목으로 2100만원의 뇌물을 상납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전 원장 밑의 김모 팀장은 과학기자재를 독점 납품하게 해 주는 대가로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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