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오십 미터/허연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오십 미터/허연

입력 2017-06-30 17:52
수정 2017-06-3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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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경 ‘갈색 동그라미가 있는 방’, 156×123㎜ , 종이에 혼합재료 제주대 미술학과, 성신여대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가나아트스페이스와 갤러리 담 등에서 개인전.
오미경 ‘갈색 동그라미가 있는 방’, 156×123㎜ , 종이에 혼합재료
제주대 미술학과, 성신여대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가나아트스페이스와 갤러리 담 등에서 개인전.
오십 미터/허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 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 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그리움은 부재하는 것을 향한 마음의 이상화다. 그것은 사랑한 당신이 지금 여기 없기에 생기는 잉여 감정이다. 그리움은 질병이지만 더러는 무르익어 영혼에 그늘과 그윽한 향기를 만든다. ‘너’를 향한 그리움은 뼛속까지 깊다. ‘너’를 마음에 담지 않고 “오십 미터”를 나아가기 힘들다. ‘너’를 마음에서 떨쳐낼 수 없는 것은 그 사랑이 여의치 않은 까닭이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식은 잊는 것이다. 하지만 잊고 싶어도 그립지 않은 날이 없으니, 어찌 할 것인가. 사랑이 괴롭더라도 더 사랑하라. 이 생에서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을 찾기는 힘들다.

장석주 시인
2017-07-0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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