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칼럼
  • [세종로의 아침] 엔데믹과 다시 시작될 여행/손원천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엔데믹과 다시 시작될 여행/손원천 문화부 선임기자

    며칠 전 해외 항공권 예약률이 900% 가까이 뛰었다는 뉴스가 잠깐 화제가 됐다. 정부가 해외 입국자에 대한 격리의무를 해제한다는 보도 이후에 나온 관광업계의 반응이었다. 예약률이 실제 항공권 구매로 이어지는 건 물론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 수치와 비교할 만한 대조군 자체가 무의미했다는 점, 그러니까 지난해 같은 기간의 해외 항공권 예약이 실질적으로 전무했다는 점에서 보면 그저 흥미를 끌 만한 뉴스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도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사람들이 얼마나 해외여행에 목말라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 해프닝이었다. 특별한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21일부터 해외 입국자에 대한 격리가 해제된다. 백신 접종 완료자로 국한하는 등 몇몇 제한 요건을 두긴 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사실상 닫혔던 해외여행의 문을 여는 것과 다름없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코로나19를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으로 간주하려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미증유의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 관광산업 생태계는 지각변동과 다름없는 격변을 겪었다. 관광업계의 무덤이라 할 만큼 무수히 많은 업체들이 문을 닫는 등 타격을 받았다. 이제 조만간 내국인의 해외여행이
  • [박홍환 칼럼] 5월이 두려운 이유/평화연구소장

    [박홍환 칼럼] 5월이 두려운 이유/평화연구소장

    중국 남북조 시기 때부터 유래한 병법 ‘36계’는 전투 또는 전쟁의 양상을 6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의 상황에 적합한 6가지씩 총 36개의 계략을 담고 있다. 패전계 중 하나인 ‘줄행랑’이 전부인 양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유용한 전략들이 많아 현대전에서까지 원용되곤 했다. 상대 맞춤형 공격전략 가운데 하나로는 ‘타초경사’(打草驚蛇)를 꼽는다. 뱀이 있을 법한 풀숲을 막대기 등으로 이러저리 쑤시고 다녀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인데 적군이 준비가 제대로 돼 있는지, 적군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등을 알아볼 때 쓰는 전략이다. 허를 찌르는 각종 도발로 적을 겁먹게 하거나 적으로 하여금 공포감을 느껴 도망가게 하라는 것이다. 최근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이 딱 그런 양상이다. 북한은 잇따라 미사일을 쏘아올려 국제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달 27일과 지난 5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한 데 이어 지난 16일에도 평양 순안공항 근처에서 이른바 ‘괴물 ICBM’ 화성17형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쏘아 올렸다. 비록 화성17형 추정 발사체가 20㎞ 안팎 고도에서 공중폭발하긴 했지만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올림
  • [전의찬의 탄소중립 특강(6)] 새 정부에서도 탄소중립, 차질 없이 이뤄져야/탄소중립위원회 기후변화위원장

    [전의찬의 탄소중립 특강(6)] 새 정부에서도 탄소중립, 차질 없이 이뤄져야/탄소중립위원회 기후변화위원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정책공약집을 통해 ‘탄소중립 실현’과 ‘에너지 복지 확대’, ‘탄소저감 연구개발(R&D) 및 투자 확대’, ‘기후위기 대응 지원 강화’ 등을 제시한 바 있다. 그동안 정부가 바뀌면 기후정책도 대폭 변경되던 터라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총론이 같아서 다행스럽다. 전 지구적 위기인 기후위기 대응에 보수 진보가 다를 수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앞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로 ‘2018년 배출량 기준 40%’를 국제사회에 약속한 바 있는데, 윤 당선인도 공약집을 통해 이 약속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공론화를 통해 현실성 있는 방안을 수립하겠다고 해 미세조정 가능성은 남아 있다. 정부 방침대로라면 2030년까지 우리나라는 2억 5000만t의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며, 전환 부문에서 60%인 1억 5000만t을 줄여야 한다. 원전 건설을 재개한다고 해도, 재생에너지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은 규모면에서 2020년 기준 16.1%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발전량의 6.9%를 차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영국(39.5%)과 독일(38.9%)
  •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문화정책의 철학을 정립할 때/무용평론가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문화정책의 철학을 정립할 때/무용평론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꾸려졌다. 사실상 정부 집권 5년의 성패는 인수위가 국정과제 틀을 어떻게 짜느냐에 달려 있다 보니 행보 면면을 눈여겨보게 된다. 선거 내내 국가적 담론보다는 비방과 의혹이 난무했고 그 와중에 선심성 공약들이 두서없이 쏟아졌던 터라 이제라도 그중에서 꼭 지킬 약속을 잘 골라내야 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인 만큼 문화예술정책의 청사진은 언제쯤 나올지 노심초사 기다리고만 있다. 윤석열 당선인의 문화예술 관련 선거공약은 ‘모두가 누리는 문화복지’라는 큰 틀 안에 예술인 맞춤형 지원, 예술지원의 자율성, 문화예술계 공정성 등이 들어 있다. 구체적으로는 7가지 약속을 제시했다. 지역중심 문화자치시대를 통한 전 국민의 문화기본권 보장, 전통문화유산 보존, 장애예술인 활동가치 제고 등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친 과제들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 문화누리카드 지원금 인상이라든가 K컬처 스타트업 지원, 예술인 고용보험료 차액 지원, 세계인이 참여하는 창작스토리 공모전 플랫폼, 예술인 자격증 발급 절차를 간소화하겠다는 세부적인 안도 들어 있어 당면과제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모우전구冒雨翦韭/김인호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모우전구冒雨翦韭/김인호

    모우전구冒雨翦韭/김인호 태풍이 큰 탈 없이 지나간 아침 AZ 2차 접종을 하고 누웠는데 구례 지나는 길이라며 점심을 함께하자는 벗의 전화에 우산을 받쳐 들고 나섰다 식사 후에 비 내리는 화엄사 경내 한 바퀴 돌아 구층암에 올라 덕제스님 죽로차 대접을 받고 내려와 벗을 보냈다 모우전구冒雨翦韭 비가 와도 부추를 솎아 친구를 대접한다는 옛말도 있으니 백신 맞은 사람이 비 맞고 싸돌아다닌다는 잔소리쯤은 들어도 괜찮다 3월에 내가 공식적으로 만난 사람이 10명쯤 될 듯하다. 함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고, 시를 이야기한 사람들이다. 그중 3명이 오미크론 확진이다. 셋 중 젊은 28세 친구는 시를 쓴다. 마음에 드는 시집을 만나면 한 권을 필사해서 선물한다. 목이 붓고 온몸이 멍석몰이를 한 듯 아프다고 한다. 한 친구는 새와 꽃을 좋아해서 나라 안팎 곳곳을 쏘다닌다. 몽골 초원에 핀 꽃들과 나무, 새들의 이름을 다 안다. 한 친구는 아름다운 사례를 찾아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와 이야기를 하다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셋 모두 착한 사람이다. 아침에 카페 ‘짙은’에서 시를 쓰고 강을 따라 걸어가는데 목이 살살 아프다
  • [마감 후] “뼈와 살을 가르는” 민주당의 ‘냉무 사과’/이민영 정치부 기자

    [마감 후] “뼈와 살을 가르는” 민주당의 ‘냉무 사과’/이민영 정치부 기자

    “뼈와 살을 가르는 마음으로 반성하고 쇄신하겠다.” 스릴러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무시무시한 표현은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의 첫 일성에서 나왔다. 지난 14일 첫 비대위 회의에서 회초리, 화살 같은 뾰족한 단어가 등장했고 지난 16일 광주에서도 죄인, 성찰, 쇄신, 고통 같은 반성하는 자세를 강조하는 단어가 거듭 나왔다. 대선 패배 후 8일째. 민주당은 분골쇄신은커녕 살갗에 생채기만 나도 아프다고 팔짝 뛰는 어린아이 같다. 반성한다는데 무엇을 반성하는지 찾아보기 어렵다. “잘못했다”는 온갖 미사여구가 동원된, 사실상 알맹이는 없는 ‘냉무’(내용 없음) 반성문은 읽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일단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없다.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서 사실상 계급 투표 현상이 나타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부동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강남이나 한강벨트 등 아파트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은 국민의힘을, 강북 등 낮은 지역은 민주당을 찍었다. 경기도에서는 일부 야권 성향 지역 외에 과천, 성남 분당 등 이른바 ‘준강남’은 국민의힘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유주택자들은 부쩍 오른 보유세에 분노했고, 무주택자들은 ‘벼락 거지’ 처지를
  • [데스크 시각] 새 대통령의 팔길이/홍지민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새 대통령의 팔길이/홍지민 문화부장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라는 게 있다. 정부가 지원은 하되 거리를 두고 그 운영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여러 공공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특히 문화예술 육성과 관련한 주요 원칙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합쳐 말하면 정부가 문화예술 활동은 지원하지만 이를 이유로 ‘감 놔라, 대추 놔라’ 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1940년대 영국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영국이 예술 지원 대상을 선정하고 지원하는 예술위원회(Arts Council)를 설립하면서 확립됐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정치 권력으로부터 예술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초대 위원장이었던 경제학자 존 케인스 등이 예술위원회의 전신인 음악예술진흥위원회(Council for the Encouragement of Music and the Arts) 시절부터 주창했다고 하는데, 모르긴 몰라도 문화예술을 선전 선동에 동원한 독일 나치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았을까 싶다. 국내에서 팔길이 원칙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소신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취임사에서부터 문화 정책, 특히 21세기 성장 동력으로서의 문화산업을 강조한 김 전 대통령은 1999년
  • [단독] “협력 파트너 있는 공동정부 대통령, 독주·오만할 수 없는 구조”[최광숙의 Inside]
    단독

    “협력 파트너 있는 공동정부 대통령, 독주·오만할 수 없는 구조”[최광숙의 Inside]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이끌 위원장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를 임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공동정부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김종필(JP) 전 국무총리 간 연합으로 탄생한 김대중 정부가 첫 번째 공동정부라면, 윤석열 정부는 두 번째 공동정부가 된다. 대선을 불과 엿새 앞두고 단일화가 이뤄졌기에 향후 출범하게 될 공동정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앞서 DJP 공동정부를 경험한 김대중 정부의 김중권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난 14일 만나 공동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김 전 실장은 “단독 집권하면 대통령은 견제받지 않아 ‘제왕적 대통령’의 위험에 빠질 수 있지만 공동정부는 함께 선거를 치르고 향후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할 파트너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고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정부 대통령은 독주할 수도, 오만할 수도 없는 구조”라고 했다. 김 전 실장은 특히 “이번 대선 결과가 박빙 승부였기 때문에 우군끼리 화합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들이 든든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DJP연합과 달리 이번 단일화는 전격 이뤄져 잘 운영할지 걱정하는 이들이
  • [안미현 칼럼] ‘MB 시즌2’가 될 거라는 쓸데없는 걱정/수석논설위원

    [안미현 칼럼] ‘MB 시즌2’가 될 거라는 쓸데없는 걱정/수석논설위원

    한 기업체 임원이 느닷없이 “새 정부가 MB(이명박 전 대통령) 시즌2가 될 거라는 얘기가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을 비롯해 대통령 당선인 주변에 MB계 인사가 많다 보니 나온 말인 듯했다. 최근 ‘자원외교’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인수위에 MB맨이 많이 포진한 것도 호사가들의 양념이 됐을 수 있다. 윤 당선인이 MB 시즌2 운운하는 얘기를 들었으면 특유의 어퍼컷을 날렸을 것이다. 그런데 꼭 그럴 일만은 아니다. 가볍기 그지없는 이런 입방아의 근저에는 ‘정치 초보’ 대통령에 대한 불안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혹여라도 주변에 휘둘리면 어쩌나 하는 기우다. 정권 풍향에 민감한 재계 기류도 감지된다. MB 자원외교 때 혜택을 본 기업도 있지만 홍역을 치른 기업도 있다. 그러니 아직 실체도 없는 가능성에 외풍이 닥칠까 근심하는 것이다. 새 진용을 짜느라 정신없을 윤 당선인이 이런 일각의 시선에도 눈길을 줬으면 한다. 장삼이사들은 먹고사는 게 걱정이다. 기업들은 기업하기 어려워지지 않을지 불안하다. 선거 때 내걸었던 공약을 냉철히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시원시원하게 내질렀던 화법이 건건이 당선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 [특파원 칼럼] 윤석열 당선인에게 일본은 필요한 국가입니까/김진아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윤석열 당선인에게 일본은 필요한 국가입니까/김진아 도쿄특파원

    “한일 관계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다. 일본의 일관된 입장을 바탕으로 건전한 관계를 되찾고 싶다.” 지난 10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당선을 축하하며 이같이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한미일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앞으로 새 정부의 움직임도 보고 싶고 새 정부와 대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의 메시지 그 자체로 보면 그동안 냉랭했던 문재인 정부와 다른 새로운 보수 성향 정부를 맞이해 기대감에 차 있어 보인다. 하지만 축하의 메시지에 녹아 있는 일본의 속내는 변하지 않은 듯하다. 기시다 총리가 윤 당선인의 당선을 축하하며 ‘나라와 나라 사이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라고 언급한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가 강조하는 국가 간 약속이란 1965년 한일 기본 조약과 2015년 위안부 합의를 말한다. 한일 간 최대 현안인 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는 이 두 합의로 해결됐다는 게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외치고 삼권 분립에 따라 사법부의 판결을 행정부가 뭐라 할 수 없다는 한국의 입장은 일본에 통하지 않는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하박국의 경고/우석대 명예교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하박국의 경고/우석대 명예교수

    작년 2월 미국 텍사스주에 이상 한파가 덮쳤다. 텍사스 오스틴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과 1년 내내 따뜻한 기후 덕분에 정보기술(IT) 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도 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한파 때문에 전기와 물 공급이 중단되면서 공장이 멈춰 섰다. 한 달 이상 셧다운 상태에 빠졌고, 손실은 4000억원에 달했다.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 생산까지 타격을 입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산불은 일상이 됐다. 작년 8월 발생한 산불로 서울의 4배가 넘는 면적이 불탔다. 언제 어디에서 불길이 덮쳐 소중한 것들을 앗아갈지 모른다. 사람들은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류의 환경 파괴가 부메랑이 돼 문명을 파괴하고 있다. 지난 200년간 인류는 화석연료의 혜택을 듬뿍 받았다. 공장과 기계를 돌린 덕분에 산업은 발전했고 경제는 성장했다. 그 대가로 지구는 병들고 인간의 욕망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무서운 채권자’가 됐다.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재난들은 선진국과 거대 기업의 탐욕이 초래한 탄소 배출, 환경 파괴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영국 시인 존 던(1572~1631)은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
  • [유정훈의 간 맞추기] 정치의 언어/변호사

    [유정훈의 간 맞추기] 정치의 언어/변호사

    ‘긍정적 언어의 힘’ 같은 평범한 자기계발서에 나올 법한 얘기는 믿지 않는다. 대체로 언어는 그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을 드러내지 그 반대 방향은 아니다. 하지만 언어의 표현 방식이 사람의 인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일본 유전학회가 2017년 유전형질이 발현되는 양상을 나타내는 ‘우성’과 ‘열성’이라는 용어가 나음과 못함을 뜻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우성은 ‘현성’(顯性·눈에 띄는 성질), 열성은 ‘잠성’(潛性·숨어 있는 성질)으로 바꾸기로 한 것은 이 점을 고려한 좋은 결정이다. 정치의 언어도 마찬가지다. 물론 정치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할 때가 많다. 하지만 국민에 대한 믿음이나 국민통합 같은 가치를 말하는 정치인과 입만 열면 반대 정파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유불리만 따지는 사람 중 누가 결정적 순간에 국민을 위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을까. 농부는 밭을 탓하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과 지지하는 정당이 패배했다고 해서 다른 정당에 투표한 유권자를 비난하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나은 정치를 하게 될까. 정치의 언어가 정치인의 사고를 드러내는 차원이든 반대로 정치의 언어가 정치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이든
  • [2030 세대] 인플레이션 시대의 식량가격 문제/김영준 작가

    [2030 세대] 인플레이션 시대의 식량가격 문제/김영준 작가

    도시의 장점은 활발한 상업과 혁신의 탄생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도시의 인구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살며 부가가치가 높은 생산활동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집어 이야기하면 도시의 번영은 도시로 공급되는 식량 가격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는 현재 위태한 상황이다. 유통업자가 폭리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식량 가격이 비싸다는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우리나라의 식량가격에서 유통이 차지하는 비중은 주요 선진국 대비 낮은 편이다. 소비자가에서 생산자마진 50%, 유통마진 50%의 구조인데 주요 선진국들은 유통마진이 60~80%에 이른다. 이는 애초에 우리나라의 식량 생산 비용 자체가 높아 최종 소비자 가격도 높다는 뜻이다.  물론 기본적인 농업환경 자체가 불리한 점은 인정을 해야 한다. 경작지의 면적이 넓지 않고 산악지대가 많은 특성상 경작지가 분산돼 있는 데다 영세소농의 비중이 워낙 높아 식량을 저렴하게 생산하기 위한 효율이 제대로 나오기가 힘든 환경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식량생산효율 개선에 대한 정책적인 시도가 충분했느냐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90년대까지는 식량 가공산업을 양성하면서 농가의 규모화를 이뤄 기초적인 식
  • [안도현의 꽃차례] 소나무의 운명/시인

    [안도현의 꽃차례] 소나무의 운명/시인

    열두어 살 무렵 나무젓가락과 깡통을 하나씩 들고 송충이 잡기에 동원된 적이 있었다. 가파른 산비탈에서 깡통이 가득 채워질 때까지 송충이를 잡았다. 선생님은 무엇보다 소나무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둥산에다 나무를 심는 산림녹화사업은 1970년대 초반부터 범국가적으로 이루어졌다. 빨리 성장하는 아까시나무, 리기다소나무, 일본잎갈나무, 편백 등이 이때부터 꾸준히 식재됐다. 국가가 주도한 이 조림 사업은 나무 대신 석탄과 석유를 주연료로 사용하면서 크게 성공했다.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가던 젊은이들은 상경해서 공장 노동자가 됐고, 이제는 봄날 근교의 산벚나무꽃을 지그시 관망하는 나이가 됐다. 50년이 지나간 것이다. 불땀이 좋아 나무꾼들에게 수난을 당하던 소나무는 울울창창 숲을 이루게 됐다. 숲에서 오래 성장한 소나무는 궁궐이나 사찰을 짓는 목재로 주로 이용됐으나 근래에는 업자들에 의해 도시로 이주했다. 조경업자들은 관공서와 아파트의 조경수로 소나무를 빠뜨리는 법이 없다. 몸값이 불어난 소나무는 21세기에도 그야말로 한국인들의 생활 밀착형 나무가 됐다. 소나무의 품종 중에 금강산에서 경북 울진까지 동해안을 따라 내려오면서 사는 금강송이 있다. 산림청과 문화재
  • [마감 후] 대통령과 소주 한잔/장진복 사회2부 기자

    [마감 후] 대통령과 소주 한잔/장진복 사회2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대 대선 당시 퇴근길에 시민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주로 청와대 관저에서 ‘혼밥’을 한 것으로 알려진 전직 대통령에 대한 피로감 때문이었을까. ‘소주 한잔’ 공약은 5년 전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포장마차에서 소주와 두부김치를 놓고 나누는 대통령과의 진솔한 대화를 국민들은 기대했다. 경호와 보안을 이유로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 공약이 없던 일이 되면서 퇴근길 남대문시장에 들러 소주 한잔 나누는 대통령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문 대통령은 18대 대선에 도전했던 10여년 전에도 소주를 찾은 적이 있다. 서울 신촌의 한 영화관에서 영화 ‘광해’를 보고 한바탕 눈물을 쏟은 문 대통령은 인근 설렁탕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한동안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다가 “소주도 한잔 하죠”라며 술을 시켰다. 훗날 문 대통령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에게 소주 한잔은 대국민 소통의 약속이자 정치적 동지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 국가 지도자의 자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었다. 정치인이 술을 마시면 화제가 된다.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거물급 정치인 간의 만남에는 뭘 먹고 뭘 마
  • [데스크 시각] 여소야대 앞에 선 윤석열 당선인/김상연 부국장 겸 정치부장

    [데스크 시각] 여소야대 앞에 선 윤석열 당선인/김상연 부국장 겸 정치부장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 앞에 선 대통령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노태우 정권 때의 ‘3당 합당’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1990년 1월 22일 노태우의 민정당, 김영삼(YS)의 통민당, 김종필(JP)의 공화당이 하루아침에 합당을 선언했다. 국민들은 경악했다. 전두환·노태우 군부의 탄압에 맞서 목숨걸고 민주화 투쟁을 한 사람이 YS였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합당하는 것보다 열 배는 더 충격적인 일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합당 선언문을 읽을 때 그 앞에 나란히 선 YS와 JP의 당당한 모습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줬다. 당시 민정당이 2년 전 13대 총선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헌정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국회가 됐고, 노태우 정부는 야권이 주도하는 ‘5공 청문회’ 등으로 임기 초반 질질 끌려다녔다. 그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3당 합당이란 인위적 정계개편을 감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대야소로 입법권력까지 손에 넣은 노태우 정권은 결국 성공했을까. 인간은 힘이 세지면 겁이 없어지는 법이다. 노 전 대통령이 기업들로부터 뇌물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 게 3당 합당 이후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결국 그는
  • [손정혜의 어쩌다 법정] 어쩌다 선거소송!/법무법인 혜명 변호사

    [손정혜의 어쩌다 법정] 어쩌다 선거소송!/법무법인 혜명 변호사

    공직선거법 제224조는 ‘선거에 관한 규정에 위반된 사실이 있는 때라도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는 때에 한하여 선거의 전부나 일부의 무효를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선거무효란 ‘선거과정상의 위법행위로 선거의 자유와 공정이 현저하게 저해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로서, 선거에 관한 규정 위반이 없었더라면 선거 결과, 즉 후보자의 당락에 관하여 현실로 있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발생하였을지도 모른다고 인정되는 때를 말한다’고 판시합니다.  최근 선거소송 추이를 보면 2020년 총선 선거소송은 120건으로, 직전 2016년의 13건에 비해 10배가량 늘었고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대 대선이 끝난 이 시점에 주요 선거 소송의 판결들을 살펴보면, 대법원은 전자개표기 방식의 개표를 문제 삼은 선거소송에서 ‘이미 특정한 선거사무 집행 방식이 위법하지 않다는 판단이 있어 법률상 받아들이지 않음이 명백한데도 계속 같은 소송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선관위 업무를 방해하고 사법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가 되므로 소송권한을 남용하는 것으로 허용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선거운동과정에서 개별적인 선거사범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다는 문제
  • [세종로의 아침] 고사리 유혹/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고사리 유혹/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달과 6펜스’, ‘인간의 굴레’로 유명한 영국 소설가 서머싯 몸의 수필 ‘샐러리의 계절’은 야채 샐러리의 독특한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낸 작품이다. 그는 샐러리를 씹을 때 입안에 퍼지는 향기와 아삭거리는 소리까지 글로 세밀하게 표현했다. 샐러리 대신 고사리를 꺾을 때 ‘똑’ 하고 경쾌하게 부러지는 소리와 손맛을 부탁했다면 몸은 과연 어떤 구절과 단어로 묘사했을까. 고사리는 꽃 대신 포자로 자손을 퍼뜨리는 민꽃식물이다. 알록달록 꽃은 없는데도 꽃말은 있다. ‘유혹’이다. 고사리 새순이 땅을 뚫고 돋아나는 매년 3월 말이면 마음은 달뜬다. 봄은 고사리로 시작됐다. 고사리 답사를 나선 게 8년째, 늘 4월의 첫 주 제주행 비행기에 올라탄다. 평화로로 향하는 길목, 줄지어 선 벚나무가 꽃 대궐을 이루지만 어차피 목적은 벚꽃이 아니다. 고사리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제주 고사리일까. 고사리는 제주에만 있는 건 아니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양치류 식물이 고사리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 지인을 찾아간 충남 안면도의 바닷가 주변 한 목초지에서 지인 대신 고사리 군락을 만났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캐나다 교포들 사이에선 로키산맥 언저리의 고사리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밤꽃/나석중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밤꽃/나석중

    밤꽃/나석중 초면에 말 붙여오는 당당한 사랑은 들키고 싶은 속성이 있는 것인지 겹겹으로 무장한 밤톨 같은 노인이 획 돌아보며 묻지도 않았는데 당신 나이 올해 96세라 하시네 나 당신 뒤를 걸어가다가 순간 황당했으나 이내 웃으며 어디 가시냐, 고 웃으며 물었더니 애인 만나러 간다며 밤꽃을 피웠네 애인은 연세가 얼마신지 또 물으니 90이라 하시며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냐는 듯 눈 치켜뜨고 기세도 당당히 웃는 낯빛이 붉었네 일찍 사랑을 포기한 사내는 사내도 아니라고 난 느슨 허리띠 졸라맸네 동천에 아기 민들레꽃 피었군요. 새봄의 민들레꽃 보고 있으면 마음이 두둥실 떠갑니다. 시 속의 어르신들, 참 젊게 사시네요. 96세와 90세. 이승을 이만큼 견뎌내기 조련치 않으련만 밤꽃 환하게 피는 기쁜 하루하루를 사시니 말이에요. 삶의 소중한 의미는 나이에 있지 않다는 것, 일깨워 주시네요. 강변에 핀 아기 민들레의 나이는 몇 살쯤 되었을까요. 봄에 태어나 가을엔 잠시 몸을 숨기지요. 다음 해 봄에 다시 꽃을 피웠다가 바람에 두리둥실 민들레 홀씨 날리겠지요. 그 나이가 만살, 십만살, 도대체 몇 살인지 몰라요. 어르신들 남은 이승의 시간 선선하게 사시다 10
  • [마감 후] 대선 이후의 코로나, 광장에서 시작하자/이현정 사회정책부 기자

    [마감 후] 대선 이후의 코로나, 광장에서 시작하자/이현정 사회정책부 기자

    ‘9646명.’ 코로나19 팬데믹 2년 2개월간 유명을 달리한 시민의 수다. 매일 날아오는 부고에 생경한 죽음은 어느덧 무덤덤한 것이 됐다. ‘국난 극복’을 위해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정당화됐고, 경제와 생명의 무게를 저울질하는 잔인한 시절이 흘렀다. 자영업자, 요양병원의 노인, 장애인, 1인 가구, 저소득층 등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속살을 파헤치며 바이러스가 거침없이 진군하는 동안 거대한 무력감만 느껴야 했다. 대통령 선거를 전후로 정국이 요동치는 와중에도 바이러스는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열려면 바이러스가 아닌 우리를 바꿔야 하고, 다시 소통의 광장에 서야 한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정부의 소통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줄곧 ‘이번이 마지막 위기’라고 강조해 왔지만, 알파에 이어 델타, 오미크론 변이가 등장했고 그때마다 위기가 다시 시작됐다. 오미크론 변이가 이달 중순 정점에 이르고, 봄의 끝자락에 서서히 잦아들더라도 새로운 변이가 찾아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희망 고문’식 소통을 그만둬야 하는 이유다. 정부가 양치기 소년이 되면 신뢰가 깎이고, 시민의 동참을 끌어낼 수 없다. 시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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