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큰 탈 없이 지나간 아침
AZ 2차 접종을 하고 누웠는데
구례 지나는 길이라며 점심을 함께하자는 벗의 전화에 우산을 받쳐 들고 나섰다
식사 후에 비 내리는 화엄사 경내 한 바퀴 돌아 구층암에 올라
덕제스님 죽로차 대접을 받고 내려와 벗을 보냈다
모우전구冒雨翦韭
비가 와도 부추를 솎아 친구를 대접한다는 옛말도 있으니
백신 맞은 사람이 비 맞고 싸돌아다닌다는 잔소리쯤은 들어도 괜찮다
3월에 내가 공식적으로 만난 사람이 10명쯤 될 듯하다. 함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고, 시를 이야기한 사람들이다. 그중 3명이 오미크론 확진이다. 셋 중 젊은 28세 친구는 시를 쓴다. 마음에 드는 시집을 만나면 한 권을 필사해서 선물한다. 목이 붓고 온몸이 멍석몰이를 한 듯 아프다고 한다. 한 친구는 새와 꽃을 좋아해서 나라 안팎 곳곳을 쏘다닌다. 몽골 초원에 핀 꽃들과 나무, 새들의 이름을 다 안다. 한 친구는 아름다운 사례를 찾아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와 이야기를 하다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셋 모두 착한 사람이다.
아침에 카페 ‘짙은’에서 시를 쓰고 강을 따라 걸어가는데 목이 살살 아프다. 콧물도 좀 나온다. 약국에서 자가검진 키트를 구입했다. 나도 착한 사람의 대열에 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곽재구 시인
2022-03-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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