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칼럼
  • [특파원 칼럼] 우크라이나전, 바이든의 실패?/이경주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우크라이나전, 바이든의 실패?/이경주 워싱턴 특파원

    2월 24일(현지시간) 새벽 5시 50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설마’했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했다. “외국 간섭 시 즉각적이고 역사상 본 적 없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엄포도 놓았다. 러시아와의 군축 협상 등을 통해 전쟁을 억지하려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대한 ‘책임론’이 비등했다. 바이든은 줄곧 러시아 경제 제재의 목적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억제”라고 말했다. 제재 부과를 두려워한 러시아가 스스로 침공을 멈추기를 바랐다. 또 바이든은 러시아의 침공 당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의 용감하고 자랑스러운 국민을 위해 기도한다”고 발언해 푸틴에 비해 유약한 리더로 비춰졌다. “미군 투입은 없을 것”이라며 선을 그어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비판도 받았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결정적 위기에서 외면당할까’ 하는 우려가 동맹국에서도 나오던 상황이었다. 미러 간 강대강 대치가 우크라이나전 위기를 키웠다는 측면에서 바이든 책임론도 커졌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바이든의 외교가 재평가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 워싱턴DC 허드슨연구소에서 만난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제재 경고가 러시아의 침공을 멈추게 하지 못했으니 바이든
  • [최광숙 칼럼] 대통령 당선인이 첫번째 할 일/대기자

    [최광숙 칼럼] 대통령 당선인이 첫번째 할 일/대기자

    이번 대선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선거다. 초박빙인 1, 2위 후보 지지율에 야당 후보 간 단일화 무산 책임 공방까지 가장 험한 선거전이 벌어지고 있다. 원로들은 “진영 대결과 적대가 역대 최악 수준”이라고 걱정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보수가 괴멸되고,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로 진보가 밑바닥을 드러낸 이후 한국 정치판은 폐허 상태나 다름없다. 정치권과 국민은 보수와 진보로 쫙 갈라져 거의 ‘정신적 내전’을 치르고 있다. 차기 대통령이 해결할 시대적 과제가 열 손가락으로도 셀 수 없는데, 선거판을 보면 어퍼컷과 하이킥으로 희화화되고, 저급한 네거티브와 포퓰리즘 구호만 난무하고 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진지한 고민은 눈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다. 9일 대통령이 선출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중 누가 승자가 돼도 국민 통합 등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 하지만 선거 후가 더 걱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들의 국정 운영 역량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미국 대통령학 전문가인 찰스 존스는 “취임 전 정부 구성을 치밀하게 잘한 당선인은 성공한 대통령이 됐고, 그렇지 못한 당선인들은 실패한 대통령이 됐다”고 했다. 조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누비아의 이집트 정복 교훈/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누비아의 이집트 정복 교훈/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

    누비아라는 지역은 이집트 문명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이집트와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공간이었다. 선사시대 동안 누비아는 이집트 지역과 문화적으로 경쟁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집트에서 고대국가가 탄생한 이후로는 계속 착취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 사회에서는 필수품으로 쓰였다고도 할 수 있는 다양한 이국적 물품들이 아프리카 내륙으로부터 이집트로 들어올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역이 누비아였던 까닭도 있고, 이 지역에서는 무엇보다 이집트 문명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금이 다량으로 생산되기 때문이었다. 파라오들은 고왕국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누비아에 대한 군사적 원정을 시작했다. 더 나아가 이집트인들이 거주하는 요새를 이곳에 짓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곳이 부헨 유적이다. 고왕국이 붕괴된 이후 누비아 지역에 대한 이집트의 영향력은 감소했지만, 다시 이집트가 통일돼 중왕국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 영향력은 회복됐다. 중왕국의 파라오들은 더 본격적으로 누비아를 착취하기 위해 제2급류 남쪽으로 요새들을 짓기도 했다. 이 요새들은 연쇄적으로 이어지며 누비아를 착취하는 물리적 기반이 됐다. 센우스레트 3세는 이 요새들 가운데서도 최남단에 위치한 셈나에 비석을 세워 이곳이
  • [마감 후] 왕의 살해/강병철 사회부 기자

    [마감 후] 왕의 살해/강병철 사회부 기자

    옛 아프리카 수단의 코르도판 지역을 다스렸던 왕은 ‘나파타의 납’이라 불렸다. 납은 그 땅의 모든 금과 구리를 소유했고 주변국에 지배력을 행사하며 무기와 노예를 조공으로 받았다. 납은 가장 부유하고 강한 권력자였다. 그러나 통치 기간이 짧았다. 나파타의 사제들은 밤마다 천문을 관측했다. 왕을 죽여야 하는 날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날이 오면 나라 안의 모든 불이 꺼지고 어둠 속에서 왕은 살해됐다. 그리고 사제들은 다시 불을 지피고 새 왕을 옹립했다. 물론 그의 운명도 전임자와 다르지 않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신의 가면’에 실린 ‘카시 파괴의 전설’이다. 권력의 정점인 왕을 살해하는 풍습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발견된다. 종교학, 인류학 분야 고전인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는 권력 교체에 수반되는 왕의 살해 예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이탈리아 네미 지역 ‘숲의 왕’은 전임자를 죽이고서 왕이 된다. 남인도의 왕은 5년간 절대권력을 휘두르다 임기가 끝나면 참수를 당했다. 여기서 왕은 공동체의 풍요를 상징한다. 그 상징적인 힘이 소진될 즈음 왕은 왕성한 에너지를 지닌 후임자로 교체된다. 이로써 풍요의 기운이 부활한다고 보는 것이다. 전임 왕의 살해는
  • [2030 세대] 편지/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2030 세대] 편지/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새학기 준비하며 학교 일이 좀 밀려 있어 답이 늦어졌습니다. 어려운 질문을 주셨습니다. 철학개론 수업은 연대별로 철학자들을 소개하는 식으로 진행했었습니다. 사실 부끄럽고 불만족스럽습니다. 생도들은 제 강의가 딱딱하지 않아서 좋아합니다. 토론도 자주 시키고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책, 영화 얘기도 해 줍니다. 인문학과 철학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 주려 노력하지만, ‘철학하는 법’은 못 가르친 것 같습니다. 철학의 종류도 여러가지겠지만, 저에게 ‘철학’은?‘깊다’는 것은? 어떤 태도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서양철학사의 흐름을 아는 것도 중요하고 논리의 기술을 익히는 것도 유익할 것이지만, 철학자답게 고민하고, 사고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몬 베유나 비트겐슈타인은 어떻게 가르쳤을까 시간 여행을 해서 직접 보고 싶습니다. 다음 학기 철학개론은 조금 다르게 운영해 볼 생각입니다. 주제별로, 그리고 과학과 철학이 만나는 연결점과 연관지어 강의할까 합니다. ‘지금이 참 철학하기 좋은 시대’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비과학적인’ 얘기같이 들릴 수 있는 철학이, 생도들에게 더 쉽게 가닿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수철학에서 수학의 기반을 확립
  • [세종로의 아침] 코로나 이후 공동체의 과제/박찬구 사회정책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코로나 이후 공동체의 과제/박찬구 사회정책부 선임기자

    며칠 전 ‘송파 세 모녀’ 8주기 추모제를 알리는 이메일에 눈길이 갔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 단독주택 지하 1층에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한동안 잊고 있었던 무심함에 가슴 한편이 아린다. 사회 안전망과 공존의 가치를 지켜 나가는 일은 어떤 상황에서든 오롯이 품고 가야 할 공동체의 의무이자 최소한의 도리가 아니던가. 잊힌 기억처럼, 가슴 한켠에 멍울이 내려앉는다. 낯익은 일상을 가차 없이 허물며 내습하는 코로나19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도 사회적 약자의 빈틈은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평생을 가족과 사회에 헌신하고 요양원과 노인시설에 입소한 어르신들, 쪽방촌과 고시텔의 저소득층 주민들, 타국에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 노동자들…. 방역 사각지대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우리의 이웃들이다. 신도시 골목길 상가에는 ‘매장운영이 어려워 부득이하게 운영을 중단하게 됐다’는 빛바랜 쪽지와 함께 임대 문의 안내문이 곳곳에 나붙어 있다.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사회적 재난은 특히 노숙인과 쪽방주민처럼 평소 소외되고 취약한 이웃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로 와닿을 수밖에 없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 조사
  •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대학을 옮기자/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대학을 옮기자/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대선 정국에서 가장 홀대받는 분야는 교육정책, 특히 고등교육정책이다. 그만큼 정치, 외교, 사회 분야의 굵직한 이슈가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교육 문제는 수많은 이슈가 얽혀 있어 쉽게 풀기 힘든 문제라는 게 주된 이유로 보인다. 김종영 교수의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이 문제를 푸는 방도를 제시한다. 저자는 ‘왜 한국만 교육지옥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 원인을 더 나은 상징자본(학벌 간판)을 얻기 위해 몰리는 병목현상이라고 설명한다. 학벌대학을 향한 고속도로에서 한 방향으로만 모두가 달리기 때문이다. 학벌대학 학위를 둘러싼 극심한 경쟁이 병목을 일으킨다. 병목을 방지하기 위해서 고속도로를 넓혀야 한다. 서울대(수준) 10개를 전국에 만들어서 병목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설명과 고뇌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력감을 느낀다. 달걀로 바위를 두드리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설령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그것이 문제라는 게 분명하다면 계속해서 부딪치고 해법을 고민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 점에서 이 책을 읽으며 눈길을 끈 것은 지역(경제)과 대학의 관계를 설명한 대목이다. “도시의 성공 열쇠는 기업 유치가 아니라 인재를
  •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차별은 있다/소설가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차별은 있다/소설가

    우리나라에서만 100만부가 넘게 팔린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놀란 것은 60년대에 태어난 여성인 나의 경험이나 80년대에 태어난 여성의 경험에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약 20년의 세월 동안 경제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가 상당히 이루어졌음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소설 속 여성들은 큰 맥락에서는 여전히 비슷한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물론 소설의 내용을 모두 사실로 간주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완전한 허구로 볼 수도 없다. 소설의 기능은 징후를 읽어 내는 것이기도 하니까. 한 가지 희망적인 부분이 있었다. 경험한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으나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대응은 달랐다. 60년대생들 대부분은 남성 중심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있어서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울분을 느껴도 ‘여자로 태어난 죄’로 체념하곤 했다. 성희롱을 ‘지나친 농담’ 정도로 넘기거나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80년대생은 차별에 대해 사회적으로, 그리고 여성이라는 보편적 정체성을 가진 집단의 차원에서 대응하기 시작했다. 2016년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사건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이나 2018년에 정점을 이룬 미투 운동은 마치 없는 일인 양 숨겨져 있
  • [데스크 시각] 당신이 원하는 리더는 어떤 사람입니까/주현진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당신이 원하는 리더는 어떤 사람입니까/주현진 국제부장

    “상대가 사사로운 욕심으로 일을 도모할 때는 공명정대하다고 격려해 거침없이 할 수 있도록 해라. 상대가 하려는 일을 두고 스스로 속으로 천박하다고 느껴 망설이면서도 안달이 났을 때는 그 의도를 적극 칭찬하며, 만약 하지 않는다면 유감이라고 말해라. 상대가 불명예스러운 일을 했을 때는 같은 선례를 들어 해로울 것이 없다고 합리화해주고,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도 같은 사례를 들어 문제가 없다고 안심시켜야 한다.” 동양 ‘제왕학’(帝王學)의 창시자인 한비자(韓非子)는 신하가 어떻게 하면 왕의 뜻을 잘 헤아려 환심을 살 수 있는가를 두고 ‘한비자’의 세난(說難) 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순자(荀子)의 제자인 한비자는 인간을 추동하는 힘은 오로지 사적인 이익인 만큼 왕을 상대로 설득할 때는 왕의 이익을 중심으로 해야 화(禍)를 면하고 성공할 수 있으며, 왕은 이 같은 이치를 알고 신하의 말과 행동을 경계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통치의 핵심은 사람을 알고 씀에 있다고 강조한 한비자가 한자리 차지하겠다고 접근해 오는 유세객이나 신하가 아닌 왕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인 셈이다. 한비자는 전국시대 약소국인 한(韓)나라 출신으로 왕이 제왕학으로 무장해야
  • [마감 후] 대선 코앞에 둔 여야 후보들의 ‘돈풀기’ 경쟁/황비웅 정치부 차장

    [마감 후] 대선 코앞에 둔 여야 후보들의 ‘돈풀기’ 경쟁/황비웅 정치부 차장

    “디플레이션(경기침체)이 발생하면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살려 내겠다.” 2008년 12월 16일은 미국이 제로(0)금리 시대를 연 역사적인 날이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이 자신이 했던 이 말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 날이기도 하다. 중앙은행의 대규모 발권력을 동원해 국채를 사들여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는 미국 역사상 전례 없는 비상 조치였다. 금리를 내리는 전통적인 경기부양 방식을 제로금리로 인해 더이상 쓸 수 없게 되면서 극적 처방을 내린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그는 지금까지도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헬리콥터 벤’의 양적완화를 다시 불러낸 것은 코로나19 사태였다. 2020년 3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양적완화에 돌입했다. 매달 1200억 달러(약 141조원) 규모의 채권을 매입해 돈을 뿌려 대면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미 연준은 인플레를 막기 위해 채권 매입 규모를 점차적으로 줄이는 테이퍼링에 이어 양적 긴축과 동시에 금리를 인상하는 시나리오를 목전에 두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서 우리나라도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사닥다리/황인숙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사닥다리/황인숙

    사닥다리/황인숙 봄이 되면 방바닥에 누워 있는 사닥다리를 세우겠네 은빛 사닥다리 은빛 사닥다리를 타고 지붕 위에 오르겠네 사닥다리, 뼈로만 이루어진 사닥다리 한 디딤마다 내 발은 후둑후둑 떨겠네 내 손은 악착같이 사다리를 쥐겠네 사닥다리, 발이 손을 따르는 사닥다리 구름이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대추나무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종달새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돌멩이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땅바닥이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내 사랑이 아슬아슬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봄이 되면 땅바닥은 누워 있는 사닥다리를 세우네 봄이 오면 땅이 세우는 사닥다리 참 신비하군요. 땅이 세운 이 사닥다리를 처음 발견한 이가 시인이라는 것 또한 신비해요. 좋은 인간, 좋은 세상을 위해 학교 공부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지만 시 공부만큼은 좀 필요하다는 생각 드는군요. 시란 다름 아닌 마음 수련의 장이니까요. 사막 같은 인간의 마음도 시를 만나면 오아시스도, 은하수도 될 수 있지 않겠는지요. 35년쯤 전 대학로 샘터 앞 지날 때 “곽재구 시인 아니세요?” 물어 온 이가 있었습니다. 이 사다리를 발견한
  • [정형준의 희망 의학] 진지함이 결여된 의사과학자 양성 방안/녹색병원 재활의학과장

    [정형준의 희망 의학] 진지함이 결여된 의사과학자 양성 방안/녹색병원 재활의학과장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의료인 확충 방안은 없이 의사과학자 양성 주장만 이어진다. 특히 집권여당은 지난 7일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1000명가량의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의사과학자’는 의사들이 대부분 환자진료를 하는 임상의사인 관계로 연구만 하는 의사들이 스스로를 규정하고자 만든 용어다. 특히 의료전문주의가 확대되는 미국에서 연구만 하는 의사들이 일정 규모가 되자 ‘의사과학자’ 단체를 만들어 여타 전문의학회처럼 규정된 측면이 크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의사’가 아니라 연구에 전념하는 ‘과학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령 미국국립보건원(NIH)은 연구개발 예산으로 연간 350억 달러를 지출하는 공적연구체계를 바탕으로 모더나 백신 같은 연구 성과도 내고 있다. 연구 성과라는 건 ‘의사과학자’보다는 오히려 정부가 막대한 공적자금을 기초연구에 투여하고 지속 가능한 연구환경을 만든 데 기인한다. 한국은 의과대학 기초교실부터 열악하기 짝이 없다. 병상을 늘리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민간병원들과 진료수익을 기반으로 개인병원에서 성장한 대형민간병원들의 태생적 한계다. 이를 극복하려면 수익성이 없어 민간병원이 외면하는
  • [데스크 시각] 무책임하지도, 비겁하지도 마라/최여경 사회정책부장

    [데스크 시각] 무책임하지도, 비겁하지도 마라/최여경 사회정책부장

    “무책임한 데다 비겁한 겁니다, 그건.” 얼마 전 만난 공직자의 말이다. 친여권 인사인 그는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1년 이상 공직 사회를 들여다본 경험을 이렇게 압축했다. 정부 부처 간 조율이 필요한 정책은 청와대 판단만 기다리고, 일 좀 하려면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이유로 번번이 막아선다는 것이다. 요즘 모임에선 얘깃거리가 경제, 사회, 국제 분야를 넘나든다. 집값 문제로 시작해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주제가 넘어가고, 코로나19 얘기를 하다 보면 주변 확진자 소식에 백신 접종 이야기까지 버무려진다. 주제는 다양해도 항상 결론은 책임을 회피하고 민감한 결정은 미루며 수세적 입장을 고수하는 관료주의로 가닿는다. 지난달 23일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가 난 지 12일 만에 고용노동부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소방청 등이 모여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구성했다. 그간 이용섭 광주시장은 “긴밀한 협력 관계에 어려움이 있다”며 현장 본부 구성을 요청했고, 피해자 가족들은 “우리는 애가 타 죽겠는데 시공사는 비협조적이고 답답하다”면서 정부 관여를 하소연했다. 뒤늦게 중수본이 꾸려진 것에 중동 3개국을 순방한 문재인 대통령이 귀국하길 기다린 것이냐는 말이
  • [김균미 칼럼] 우크라이나의 눈물/편집인

    [김균미 칼럼] 우크라이나의 눈물/편집인

    ‘16일’ ‘20일’ ‘24일 전후’. 미국이 공개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가능성이 큰 날들이다. 16일과 20일은 지나갔다. 24일은 미 국무장관과 러시아 외무장관이 러시아가 군사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나 외교적 해결을 위한 담판과 정상회담을 준비하기로 합의한 날이다. 하지만 미러 정상회담은커녕 외무장관 회담조차 열릴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 백악관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제안한 미러 정상회담을 “원칙적으로” 수락했다는 성명을 내놓은 지 반나절 만에 러시아가 허를 찔렀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몇 시간 또는 며칠 내에” 시작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21일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친러시아 분리주의 공화국들의 독립 승인 직후 파병 지시는 전격적이었다. 러시아가 지난해 11월부터 우크라이나 접경에 15만여 병력을 배치하면서 △수도 키예프 공격 등 전면전과 △장기적 국지전 △친러 분리주의 공화국들을 통한 대리전 등 세 가지 침공 시나리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됐다. 통신망과 인터넷망을 마비시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파리의 아메리카인/미술평론가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파리의 아메리카인/미술평론가

    로댕은 존 싱어 사전트를 ‘우리 시대의 반 다이크’라 했고, 미국의 부유층은 사전트에게 초상화를 그려 받으려고 안달했다.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 경제발전에 속도가 붙어 19세기 말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는 벼락부자들이 생겨났다. 경제학자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을 쓰게 만든 도금시대의 부자들. 이들이 사전트의 명성과 그림값을 올려놓았다. 부유한 미국인들 사이에는 장기적이든 일시적이든 파리에서 살아 보는 게 유행이었다.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는 하버드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화가가 되고 싶었다. 중국 무역으로 돈을 모은 보스턴 사업가의 딸인 그의 아내도 유럽을 좋아했다. 부부는 파리 고급 주택가에 우아한 아파트를 얻어 이주했다. 네 살부터 열네 살까지의 네 소녀가 정사각형 캔버스에 실물 크기로 배치돼 있다. 현관 홀에 깔린 양탄자에 막내가 인형을 무릎에 놓고 앉아 있다. 왼쪽에 뒷짐을 지고 있는 소녀는 셋째. 대형 일본 도자기 화병 옆에는 첫째와 둘째가 서 있다. 기둥 같은 화병 뒤로 어둑한 실내 공간이 이어진다. 1882년 그림이 처음 공개됐을 때 비평가들은 초상화답지 않은 특이한 구도에 난색을 드러냈다. 소녀들은 놀다가 불
  • [특파원 칼럼] 언제쯤 편하게 ‘차별금지법’을 논의할 수 있을까/김진아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언제쯤 편하게 ‘차별금지법’을 논의할 수 있을까/김진아 도쿄특파원

    일본에서 성소수자 부부를 공적으로 증명하는 ‘파트너십 제도’와 관련해 올해 초 기준 전체 146곳 가운데 30%가량인 48곳에서 제휴를 맺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10월 후쿠오카시와 구마모토시가 일본 지자체 간 파트너십 제도에 대해 최초로 제휴를 맺은 데 이어 시간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파트너십 제도란 일본에서 동성 간 결혼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지만 그에 준하는 것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예컨대 수술 시 보호자 동의를 받을 때 배우자로서 가능하도록 해 일상생활에서 성소수자 부부가 차별받지 않도록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성소수자 부부가 거주지를 옮겼을 때 자신들이 혼인 관계에 있다는 것을 옮겨 간 지자체에 다시 알리면서 원치 않는 ‘커밍아웃’을 해야 했다. 하지만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한 지자체 간 제휴가 늘어났다는 건 성소수자 부부가 커밍아웃하지 않더라도 새롭게 이주한 곳에서 부부로서 인정받고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도쿄도는 한발 더 나갔다. 도쿄도가 올가을부터 시작할 파트너십 제도는 성소수자 부부 중 모두 도쿄도에 살지 않더라도 적어도 한 명이 도쿄도에 살거나 혹은 근무하거나 대학에 다닌다면 도쿄도
  • [임창용의 부동산 에세이] 고금리에 꿈틀대는 임대차 시장… 무주택자 ‘월세시대’ 대비해야/논설위원

    [임창용의 부동산 에세이] 고금리에 꿈틀대는 임대차 시장… 무주택자 ‘월세시대’ 대비해야/논설위원

    새해 들어 집값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잦아졌다. 한국부동산원 발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2배 가까운 폭등세를 보이던 서울 아파트값 변동률이 지난달 0.00%로 내려앉았다. 수도권도 0.06%로 거의 정체 수준이다. 하지만 20일 발표된 ‘2022 KB 부동산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가 10명 중 6~7명은 여전히 올해도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상승폭은 3% 이내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에서 지난해 하반기 이후 ‘거래절벽’을 마주하고 있는 공인중개사들은 절반 이상이 집값 하락을 예상했다. 지난해 10명 중 9명이 상승을 점쳤던 것과 대조적이다. 전문가들과 공인중개사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집값이 오르더라도 소폭에 그치고, 하락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집값 폭등에 ‘벼락거지’ 전락을 체감해 온 무주택자들로선 한숨 돌리고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엿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셋값 보합… 월세는 0.41% 올라 하지만 부동산시장이 그렇게 쉽게 무주택자들이 원하는 분위기로 흘러갈 것 같지는 않다. 가장 큰 ‘복병’은 월세시대 도래 조짐이다. 지난해 서울에서 월세 낀 아파트 임대차 거래량은 총 7만 1000여건으로 2년 만에 4
  • [2030 세대] 갈비뼈 부러진 걸 몰랐다는 것/한승혜 주부

    [2030 세대] 갈비뼈 부러진 걸 몰랐다는 것/한승혜 주부

    “8번 늑골이 부러져서 아픈 겁니다.” “부…, 부러졌다고요?” “벌써 한참 됐는데요? 여기 보이시죠? 몇 달 전에 이미 부러졌어요.”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그의 말대로 갈비뼈 한 대에 선명한 표시가 나 있었다. 매끈한 다른 뼈들과 다르게 중간이 볼록 튀어나와 있는 모습.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라고 했다.  전부터 등이 아팠지만 격렬한 운동에 으레 따라오기 마련인 근육통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몇 주 전에는 평소보다 아프길래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다. 그저 근육통 약이나 처방받고 끝날 줄 알았는데 뼈가 부러졌단다. 금이 간 것도 아니고 골절. 그간 갈비뼈가 부러진 것도 모른 채 몇 달 동안 운동도 하고, 글도 쓰고, 아이들도 돌본 것이다. 이미 붙었는데도 아픈 까닭은 아직 완전히 붙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소식을 전하자 주변에선 다들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금만 가도 아픈 걸 어떻게 참았대?”, “참을성이 대단하신가 봐요”, “너무 둔감한 것 아냐? 조심해!” 위로와 걱정, 근심 어린 타박을 들었다. 나 같아도 주변의 누군가 다쳤다면 비슷한 말을 할 것이기에 당연한 반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솔직히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딱히 못 견딜 만큼 아프지
  • [박철현의 이방사회] ‘해고 프로그램’의 피해자들/일본 테츠야공무점 대표

    [박철현의 이방사회] ‘해고 프로그램’의 피해자들/일본 테츠야공무점 대표

    아무리 조그마한 기업이라도 사장은 항상 숫자와 싸운다. 숫자가 좋을 땐 고민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매출이 줄어들 때다. 일단 매출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뭘 어떻게 해도 매출이 늘어날 전망이 보이지 않으면 사장이 할 일은 뻔하다. 고정비를 줄인다. 전기를 아껴 쓰고 이면지 사용을 생활화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자잘한 노력보다 한 방에 숫자가 나아지는 방법이 있다. 바로 해고다. 노동자도 물론 저항한다. 규모가 좀 있는 회사라면 노조를 통해 싸울 것이고, 소규모 기업 소속이라면 행정기관에 해고 무효 소송을 한다. 대기업은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거금을 안겨 주니 그나마 낫지만, 중소기업 이하의 기업체는 경영자가 매일 숫자와 싸울 때, 노동자는 끊임없이 해고의 공포와 싸운다. 이때 중요한 건 ‘고용 안정성’에 대한 정부의 태도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해고 프로그램’ 발언은 그의 반노동 성향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주 120시간 노동, 최저시급 관련 설화로 물의를 빚어 오다 이번 ‘해고 프로그램’ 발언으로 반노동 성향에 정점을 찍었다. 문제는 여론조사 결과에 나오는, 윤 후보를 지지하는 20대 남성들이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2
  • [마감 후] 가짜 깃발과 진짜 깃발/이재연 국제부 차장

    [마감 후] 가짜 깃발과 진짜 깃발/이재연 국제부 차장

    우크라니아 사태를 다룬 국제 뉴스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가짜 깃발’ 작전이란 용어가 새삼 이목을 끌고 있다. 해전에서 함정이 상대를 속이기 위해 가짜 깃발을 사용한 데서 유래한 이 작전은 현대사의 주요 갈림길마다 어김없이 등장했다. 1931년 9월 18일 밤 10시 20분 중국 선양에서 북쪽으로 7.5㎞ 떨어진 유조호(湖) 부근의 남만 철도 선로가 폭파됐다. 일제 관동군사령부 조례에 따르면 남만 철도가 끊기면 즉시 출동이 가능했다. 관동군은 중화민국 군벌인 장쉐량의 동북군 소행이라며 이들의 근거지를 습격했다. 바로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의 시초가 된 만주사변의 시작이었다. 선로 폭파는 물론 관동군의 자작극이었다. 일본 제국은 가짜 깃발에 속아 만주 침공을 열화같이 지지한 국내 여론까지 등에 업고 군국주의 발톱을 본격 드러내기 시작한다. 자유민주주의 수호국을 자처하는 미국조차 냉전 시대 가짜 깃발 작전을 시도했다. 1997년 기밀 해제된 1962년 ‘노스우즈 작전 1급’ 비밀 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앙숙이던 쿠바에 대한 군사 개입을 정당화할 구실로 가짜 깃발을 들려고 했다. 테러리스트로 위장한 미군이 여객기를 탈취, 미국령인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 자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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