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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트렁크를 열어줄 생각하지 않는 택시기사/김현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기획실장

    [열린세상] 트렁크를 열어줄 생각하지 않는 택시기사/김현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기획실장

    택시는 승객이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주는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택시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때는 1912년 서울 낙산의 부자 이봉래와 일본인 곤도, 오리이 세 사람이 승용차 2대로 서울에서 임대업을 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택시회사는 일본인이 설립한 ‘경성택시’이며 우리나라 사람이 설립한 최초의 택시회사는 1921년 조봉승이 세운 ‘종로택시’였다고 한다. 1921년 당시 쌀 한 가마니의 가격이 6~7원이고, 택시를 대절해 서울 시내를 한 시간 도는 운임이 6원이었다고 하니 택시는 마차를 대신한 혁신적인 교통수단이었지만, 일반인이 이용하기에는 제약이 많은 고급 교통수단이었던 셈이다. 이제 택시는 엄청나게 증가했다. 현재 전국에 25만여대의 택시가 있고 서울만 해도 개인 택시와 회사 택시를 포함해 7만 2000여대의 택시가 있다.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택시 기본요금(2㎞)은 2200~2400원 정도다. 여기에 더해 서울시는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은 친환경 택시인 전기자동차를 도입한 다음 향후 점점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더구나 심폐소생 등 응급구조 기술을 익힌 기사로 구성된 ‘응급구조택시단’도 설치,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 [열린세상] 중국·러시아 농업투자기금 설치를 보며/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중국·러시아 농업투자기금 설치를 보며/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5월 9일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는 2차 세계대전 전승 7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 정상 대부분은 행사에 초대받고도 우크라이나 사태를 이유로 불참했다. 그래서 세계 언론은 겉으로 성대해 보인 이 행사를 반쪽 잔치라고 평했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크게 띄우며 나머지 반쪽을 메우려는 듯했다. 글로벌 전략에서 서방 견제라는 공통 이해관계를 가진 두 지도자는 어느 때보다도 긴밀한 관계임을 연출했다. 기념식 전날 크렘린 정상회담에서는 통 큰 주고받기를 했다. 중국은 고속도로 건설자금 차관 제공, 러시아는 대규모 가스 공급 등 총 32건의 주고받기 계약에 두 정상은 서명했다. 그런데 정상회담 직전에 이루어져 크게 드러나지 않은 두 나라의 농업협력 하나가 눈길을 끈다. 시 주석의 모스크바 도착 직전 중국은 특수 목적 기금 하나를 러시아에 선물했다. 중국 헤이룽장성(省) 정부, 러시아직접투자기금(RDIF), 러시아·중국투자기금(RCIF) 3자는 농업 부문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20억 달러 규모의 농업투자기금을 만든 것이다. RDIF는 러시아 국부펀드이고 RCIF는 2012년 RDIF와 중국투자공사가 합작해
  • [열린세상] 지역 명품에 스토리를 입히자/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열린세상] 지역 명품에 스토리를 입히자/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우리나라 제1호 전통 식초 장인인 한상준씨는 한때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 잘나가던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바쁜 개발자 생활에 지쳐 가던 그는 33세의 나이에 우연한 계기로 고향인 경북 예천군으로의 귀향을 결정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것이 바로 전통 식초다. 명맥이 끊긴 것으로 여겨지던 전통 식초 제조법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면서 8년여간 연구를 거듭한 끝에 그는 친환경 곡물을 독에 넣고 숙성 발효시켜 만드는 ‘오곡초’를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품질만 좋으면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단번에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제품을 홍보하는 홈페이지를 따로 만들고 지인을 통한 입소문도 기대해 봤지만 판매량이 예상만큼 늘어나진 않았다. 다행히 유명 백화점과 홈쇼핑, 온라인 쇼핑몰 등 전국적인 대형 유통망을 차례로 확보한 덕분에 지금은 연매출 10억원이 넘는 사업체로 성장했다. 현재 책과 강의로 전통 식초 알리미 역할을 하는 그의 꿈은 전통 식초의 부활을 넘어 세계 시장 공략이다.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식초를 사용한 음식 문화가 자리를 잡았고, 발효식초의 항산화 및 항암 효능은 서구 여러 나라에서도 인정하는 터라 전통 식초의
  • [열린세상] 통영함, 그 이름의 의미를 묻다/강순주 건국대 건축학부 교수

    [열린세상] 통영함, 그 이름의 의미를 묻다/강순주 건국대 건축학부 교수

    해군이 최신예 해상 구조함의 이름을 통영함으로 명명해 진수시킨 건 2012년의 일이었다. 통영함이라는 명칭은 6·25 전쟁 때 한국 해군 및 해병대가 최초로 단독 상륙작전을 펼쳐 북한의 공격을 저지한 통영상륙작전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기리고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붙였다. 통영은 충무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통영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이순신 장군을 떠올린다. 그분의 헌신과 희생으로 나라를 되찾은 기억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통영함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국민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6·25 전쟁일까? 국군의 최신예 구조함일까? 이순신 장군일까? 아니면 국방과 관련된 비리일까? 어쩌다가 천문학적인 혈세를 퍼부으며 국방을 튼튼히 하고 호국 영령과 이순신 장군을 기리려 했던 이름이 ‘부패’를 연상시키는 주체가 되었을까. 해상 구조함으로 전쟁이나 재난에서 국가와 국민을 보호한다는 이미지를 지녀야 할 군의 함정이 방산 비리의 상징이 됐는지 안타깝다. 국방의 의무를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군대를 가고, 이 뜨거운 여름에도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 모두가 국방을 위해서다. 그러나 학업을 중단하고 군대로 가는 젊은이들만 있다고 나라가 지켜지
  • [열린세상] 대한민국, 돌고래의 ‘명민전략’ 구사해야/윤지원 평택대 외교안보전공교수·남북한문제연구소장

    [열린세상] 대한민국, 돌고래의 ‘명민전략’ 구사해야/윤지원 평택대 외교안보전공교수·남북한문제연구소장

    동북아시아에는 새로운 세력경쟁 질서가 도래했다. 고조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세력 각축은 19세기 영국과 러시아(독일), 20세기 미국과 소련 간의 ‘제국경쟁’에 버금가는 21세기 패권경쟁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동북아 재균형 전략에 중국의 시진핑은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주창하며 냉전종식 이후 유일 초강대국의 위상을 구가한 미국에 맞서기 시작했다. 최근 미·중은 구체적인 정책 사안에까지 힘겨루기가 구체화되고 있다. 주한 미군기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예민한 반응이 가시화됐고,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으로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응함으로써 동북아 및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에 접어들었다. 미·중의 각축에 일본의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을 확보해 평화국가에서 ‘보통국가’로 나가기 위한 예비적 조치를 강구했고, 대미 편승전략 적극화로 미·일 안보 지침을 개정해 대중 견제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미·일의 강화된 해양 동맹은 대륙 연합으로 표면화되는 중·러의 경제 및 군사협력의 확대를 자극하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의 역학은 해양 동맹과 대륙 연합의 양극화로 동북아를
  • [열린세상] 한국 외교 위기 아니다/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한국 외교 위기 아니다/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일본의 지식인들과 만나면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한다.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지니 이 다음에 중국과 힘을 합쳐 일본에 적대적인 나라가 되지 않을지 걱정됩니다”라고. 한국과 중국의 지나간 역사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고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멀리 조선시대로 되돌아가 한국이 중국에 조공 바치던 역사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중국은 한국전쟁 때 대규모의 군대를 출병해 남북이 분단되도록 한 나라라는 역사적 판단도 못 하는 것이다. 중국과 국교를 열고 지금은 명동에 중국인이 넘쳐 나지만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중국과의 역사 관계에서 배태된 ‘중국 공포’라는 염색체가 단단히 박혀 있다는 사실은 웬만한 한국 사람들은 다 안다. 단지 중국과의 관계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은 명철하게 알고 있고 이 다음에 혹여 경제적 힘에 휘둘리지 않을까 걱정스런 속내들이 있다. 그래서 안보는 미국과 함께하면서 중국과는 경제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돼야 한다는 것이 대중적 상념일 것이다. 그러면 일본과는 어떤가.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침략 사과에 대해 “너무 자주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인들의 속내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
  • [열린세상] ‘쪽지예산’을 없애야 하는 열 가지 이유/강태혁 한경대 교수·전 한국은행 감사

    [열린세상] ‘쪽지예산’을 없애야 하는 열 가지 이유/강태혁 한경대 교수·전 한국은행 감사

    최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에 내정된 분의 의견이 이렇게 보도됐다. “쪽지예산이라고 해서 100% 나쁜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면서 그 이유는 “정부는 원론적인 흐름을 예산에 담아 오지만 지역에서 불요불급한 일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라고 했단다. 귀를 의심케 한다. 한편에서는 연금부채·공기업부채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싸움이 한창이다. 내년도 예산 편성을 눈앞에 둔 지금 재정운영의 조타수로서 세차게 고삐를 당겨도 모자를 판 아닌가. 이런 마당에 쪽지예산 타령이다. 국민을 우울하게 한다. 쪽지예산이 무엇인가. 국회의원 개인이 자기 지역구 사업 예산 확보를 위해 예결위의 계수조정소위 위원에게 청탁하는 사업 예산을 말한다. 통상적으로 사업명과 예산액만 써 넣은 쪽지로 전달되기 때문에 쪽지예산이라고 한다. 사업의 내용이나 타당성, 우선순위, 집행계획 등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 없이 밀실에서 은밀하게 예산이 결정된다. 그래서 쪽지예산이 없어져야 한다고 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하나, 정부 예산안은 원론적 흐름만을 담아 가는 것이 아니다. 전국 지역 사업의 국고보조금은 45조원, 국가총지출의 12%나 차지한다. 그 종류가 940개나 되고 원칙과 기준
  • [열린세상] 세계문화유산과 일본의 민낯/이옥순 인도연구원장

    [열린세상] 세계문화유산과 일본의 민낯/이옥순 인도연구원장

    근대화 산업 유산 23개를 묶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리려는 일본 정부의 최근 행보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서구에서 비서구로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이동한 첫 성공 사례”라는 주장을 내세웠으나 그 산업화가 주변국, 다른 민족의 희생으로 이뤄진 사실에 대해선 침묵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일본 산업화의 결정체라는 이들 시설 중 7곳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끌려간 5만 7900명의 조선인이 강제 노동으로 혹사를 당했다. 허나 일본은 이런 부정적인 역사를 가린 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역사도 그렇다. 몇 사람을 오랫동안 속이거나 여러 사람을 잠시 속일 순 있어도 여러 사람을 영원히 속이는 역사란 불가능하다. 설령 일본이 이번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의 권고를 무시하고 자국 내 산업 유산의 전체 역사를 감추더라도, 즉 산업혁명의 전면을 보여 주지 않더라도 일본의 부정적인 근대의 행적이 지워지는 건 아니다. 유일한 비서구 출신의 제국이었으나 파행과 희생으로 점철된 일본의 근대적 유산이 유형·무형으로 다른 나라에 많이 남아 있어서다. 메이지유신 이후 철강, 조선, 석탄광
  • [열린세상] 심야에 일어난 입법권의 남용/홍복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심야에 일어난 입법권의 남용/홍복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달 29일 새벽 국회는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법과 국회법을 개정했다. 야당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의 전제조건으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의 개정을 요구했고, 여야는 이를 담보하려고 국회법을 우선 개정한 것이다. 이날 통과된 국회법(98조의2 제3항) 개정내용은 “국회는 정부의 시행령(대통령령·총리령 및 부령) 등이 법률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정부는 이를 처리한 뒤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규정은 국회는 시행령이 법률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정부에 내용을 통보하고 정부는 처리 결과를 보고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정법과 현행법의 차이는 법률에 위반되는 행정입법(시행령)에 대하여 국회의 수정·변경 요구권이 삽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회법 개정에 대하여 정부는 “권력분립의 원칙에 반하며 행정부의 행정입법권과 법원의 사법심사권을 동시에 침해하는 것이므로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야 대표는 “삼권분립의 헌법 정신을 구현하면서 깨져 있는 권력분립의 균형을 복원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여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행정부도 법률에 위반되는
  • [열린세상] 금리 인하 대신 돈의 ‘물줄기’를 바꾸자/강태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 금리 인하 대신 돈의 ‘물줄기’를 바꾸자/강태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반가운 뉴스다. 2분기 경기 회복에 ‘긍정 신호’가 나왔다. 한국은행 입장이다. 제비 한 마리 출현으로 봄이 온 것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 전망치를 3.1%로 조정했다. 올 들어 세 번 낮추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대’로의 추락을 경고한다. 경기 부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손 놓고 있다가는 ‘팔짱 낀’ 정부와 통화 당국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경기 부양 주문은 기준금리 인하로 쏠린다. 누워 있던 실물경기가 기준금리 내린다고 ‘벌떡’ 일어서는 건 아니다. 시기적으로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금리조정 방향은 ‘올리는 쪽’이다. “올해 안에 통화정책 정상화 절차를 시작하는 게 적절하다.” 지난 22일 재닛 옐런 연준의장 발언이다. 한은도 인상 압박을 받게 된다. 이런 시기에 금리를 인하하면 미국이 올릴 때 가파른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내리고 올리고 하다 보면 금융시장 리스크가 확대된다. 최근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배경도 이런 경계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중에 유동성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중소기업은 자금난이다.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다. 사정은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유럽중앙은
  • [열린세상] 패자도 행복한 직접민주제/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패자도 행복한 직접민주제/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튀니스는 황색 경보였다.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여행을 만류했다. 비장한 각오로 비행기에 오른 나의 염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튀니스에서 열린 직접민주주의 세계대회에는 39개국에서 온 200여명이 참여했다. 치안이 걱정되지 않았느냐는 나의 촌스런 질문에 참가자들은 바르도박물관 같은 사고는 파리에서도, 런던에서도 그리고 어디에서도 날 수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망설이면서도 참여하게 된 것은 지금까지 치러 온 세계 직접민주주의 대회, ‘근대 직접민주제 글로벌 포럼’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려는 서구 486(?)세대의 운동을 지켜보고 또 연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의사 결정 체제에 대해 다양한 실험을 거쳐 온 그들은 선출직 엘리트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권력을 일반 시민과 나누기 싫어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선출직 정치 엘리트가 일반 시민보다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이 직접 발의하고 투표로 사안을 결정하면 ‘패자’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모두가 ‘행복한 패자’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말타에서는 최근 봄철 사냥을 금지하는 시민 발의를 투표에 부쳤다. 아슬아슬하게
  • [열린세상] 콜·슈뢰더 전 총리가 연금개혁을 평가한다면/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고려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열린세상] 콜·슈뢰더 전 총리가 연금개혁을 평가한다면/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고려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최근 독일 열풍이 거세다. 한때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이 노동시장과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면서 국가체질을 바꾸는 데 성공해서다. 분단되었다 통일을 달성한 독일이기에 관심이 큰 점도 있는 것 같다. 혜택이 많은 사회보장제도의 원조인 비스마르크형 연금제도를 도입했던 나라라서 관심이 집중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독일 통일비용 절반이 연금을 포함한 사회보장에 들어갔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통일시점이 독일에는 행운이었다. 좋지 않던 재정여건이 통일 무렵 급속하게 호전되면서 통일비용을 충당할 여력이 생겨서다. 변화한 시대환경에 맞지 않던 연금제도를 손보려는 노력도 꾸준했다. 건전한 정부재정과 시대에 뒤떨어진 연금개혁의 중요성을 알았던 사람이 헬무트 콜 전 총리였던 것 같다. 통일 기반 조성과 통일 후 혼란을 최소화할 기반 구축이 그래서 가능했을 것이다. 최근 내한했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지지기반인 사민당으로부터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어젠다 2010’을 앞세워 노동시장과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그가 부과방식(근로세대가 은퇴세대를 부양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던 전통적인 독일 연금제도의 기본 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 [열린세상] 교육개혁 형평과 효율 조화 이뤄야/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열린세상] 교육개혁 형평과 효율 조화 이뤄야/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작금 진행되고 있는 교육개혁에 대하여 한마디 해야겠다. 대학을 평생직장으로 여기고 살아온 사람이지만 그동안 교육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가급적 교육 정책이나 개혁에 대해서는 아는 체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행 중인 대학 구조개혁은 본말이 전도되고 개악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실패를 거듭했음에도 또다시 같은 원칙과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돌이켜보면 교육개혁은 단 한번도 교육의 근본인 올바르고 능력 있는 인재 양성 위주로 추진된 적이 없다. 1970년대 초·중반 중·고등학교 입시 폐지는 과중한 입시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추진했고, 1980년대 초 졸업정원제는 대학 문턱을 낮춰 쉽게 들어가게 하면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서 비롯됐다. 이후 대부분의 개혁은 입시제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 세대’에서 보듯이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지금까지의 교육개혁은 우수한 교육 환경과 적절한 경쟁 속에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 있고 훌륭한 인성을 가진 인재를 양성한다는 근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단속과 금지는 비용
  • [열린세상] ‘아니 백잔’의 인연/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아니 백잔’의 인연/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오랜만에 친구와 서울 근교 산에 올랐다. 녹음이 우거진 산에는 계곡물이 초여름 더위를 식혀 주고 있었다. 하산길에 친구와 계곡 반석에 앉아 땀을 식혔다. 계곡물을 따라 흐르던 나뭇잎 하나가 개여울에 휩쓸려 자취를 감추더니 이내 떠올라 유유히 물을 따라 흘러갔다. 그 모양을 보던 친구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얼마 전 돌아가신 부모님 재산을 자신이 물려받았는데, 그동안 소식을 끊고 지내던 동생이 유언상속이 부당하다면서 소송을 걸었다고,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며 탄식을 했다. 효자로 알려진 친구는 병든 아버님을 정성껏 모셨던 걸로 기억한다. 부모와 자식 간은 하늘이 맺어 준 인연이라 하여 천륜(天倫)이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한 부모에서 난 형제자매 또한 천륜으로 맺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재산 때문에, 그것도 얼마 되지 않는 재산 때문에 형제간에 서로 헐뜯고 비난하고 법적 다툼을 하면서 인연을 끊으려 하다니.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옛말이 돈이 신격화되는 지금 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 듯하다. ‘돈이 피보다 진하다’로 바꾸어야 하나. 근 이십여 년 동안 인연을 맺어 온 지인과 저녁을 같이했다. 즐겁게 술잔을 주고받다가 문득 황순원의 소설 ‘일
  • [열린세상] 환자 안전은 법이 아닌 사람이 지킨다/허대석 서울대 의대 내과학교실 교수

    [열린세상] 환자 안전은 법이 아닌 사람이 지킨다/허대석 서울대 의대 내과학교실 교수

    ‘과잉진료’가 사회적 이슈가 될 정도로 우리나라의 의료시장은 양적으로 팽창해 있다. 인구 대비 병상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2배를 넘고, 첨단의료장비 보유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의료 수준을 한 단계 더 올리기 위해서는 양의 증대가 아닌 질의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환자 안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2012년 응급실 전문의 당직법, 최근 환자안전법이 제정됐고, 현재는 전공의들의 수련 환경 개선을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정부의 대책들이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과별 당직 전문의가 있어야 한다는 응급실 전문의 당직법은 당직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유명무실해졌고, 전공의 근무 시간을 주 80시간 이내로 제한한 보건복지부 시행령이 2014년부터 시행되고 있으나 실제와 다른 근무시간표를 작성하는 일이 추가된 것 외에는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현재 우리나라 병원 안전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늘어난 병상 수만큼 인력을 더 충원하지 않아 입원 환자 대비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료 인력에 있다. 이로 인해 전공의의 근무 시간과 노동 강도가 매년 더 증가하고, 과
  • [열린세상] 현직 기업인의 ‘공익분야’ 겸직 선 그어야/이상일 호원대 초빙교수·언론인

    [열린세상] 현직 기업인의 ‘공익분야’ 겸직 선 그어야/이상일 호원대 초빙교수·언론인

    요즘처럼 기업의 회장님과 사장님의 위신이 추락한 때는 없었던 듯싶다. 임직원들이 기업 안에서 하늘처럼 떠받치는 회장님과 사장님들이 일부이긴 하지만 시정잡배와 같은 말과 행동을 하는 것으로 드러난 데다 경제 범죄행위도 서슴없이 저지르다 적발됐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대기업이나 중견·중소기업이나 다를 바 없다. 이들이 최근 기업과 경영진의 이미지에 스스로 먹칠을 하고 있다. 정치권과 기업을 넘나들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이 남긴 말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재벌과 중견·중소기업의 관계에 대한 지적이다. 중견기업 오너였던 그는 3년 전 국회 정무위에서 “근본적으로 부패는 재벌들이 일으키는 비중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예를 들면 재건축·재개발 시장에서, 정부 턴키 공사에서 비리가 저질러진다. 아주 상습된 부패”라고 질타했다. 어처구니없고 아이러니하다. 재벌의 부패에 분노하면서도 그는 정치권에 돈을 뿌리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기업을 키우고자 했다. 장학재단의 이사장까지 맡았던 성 전 회장은 자신의 행위가 문제가 되자 그 재단이 지원하는 장학생들에게 낯을 들 수 없다며 면구스러워했다. 최근 기부금을 빼돌렸다는 혐의로 그 장학재단이 검찰의 압수수
  • [열린세상] 녹색 일자리/윤영균 국민대 특임교수·전 국립산림과학원장

    [열린세상] 녹색 일자리/윤영균 국민대 특임교수·전 국립산림과학원장

    언제부터인가 일자리 문제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사회적 과제 중 하나가 됐다. 1970∼80년대 고도 성장기를 지나 1990년대 중반까지는 그런대로 일자리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97년 말 외환위기를 당하면서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한 조기 퇴직과 신규투자 부진으로 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그 후 외환위기를 조기에 벗어나기는 했지만 고용은 늘지 않았다. 또한 국내 기업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대규모 고용 기회도 함께 이전된 셈이다. 정부도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관광·금융과 같은 서비스산업으로 전환해 최대한 고용을 늘려 보려 하지만 고용 없는 성장만 유지할 뿐이다. 정부도 하루가 멀다 하고 실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물론 일자리는 민간이 주도해 경제성장을 통해 만들어 내야 한다. 하지만 기업이 좀처럼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과거 정부에서는 실업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대규모 일자리를 만들었다. 산림 분야에서도 1998년 외환위기 때 ‘숲 가꾸기 공공근로 사업’이라는 일자리 사업을 추진했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녹색뉴딜’이라는 이름으로 숲 가꾸기 일자리 사업을 추진
  • [열린세상] 미디어 이용과 정치 극단화/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열린세상] 미디어 이용과 정치 극단화/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지난주 언론 관련 단체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한국 저널리즘의 미래를 논하는 자리였는데 모든 이들이 언론의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했다. 적지 않은 토론자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매체가 보통의 유권자를 더 당파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향력이 큰 주요 신문들의 논조는 보수적이고 집권여당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결정할 수 있어 보수에 편향된 뉴스들이 생산될 가능성이 높아 이러한 주장이 타당할 수도 있다. 한데 정치적으로 편향된 매체 이용이 우리 사회의 정치 극단화를 초래한다는 논리적 추론은 다음의 조건을 충족해야만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먼저 정치적 선호도에 조응하는 매체의 뉴스를 이용하는 행위, 즉 선별적 노출의 작동을 추동시키는 조건에 대한 설명이 명확해야 한다. 뉴스 이용자의 개인적 특성, 구독자 수와 시청률, 매체별·뉴스별 노출 시간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 개인적 특성은 인구사회적 속성(성, 연령, 소득, 학력)과 심리적 정향성(정치적 성향, 정치 관심도, 정보 탐색 동기) 측면에서 정의되는데 후자에 속하는 정보 탐색 동기의 경우 동일한 매체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이용자별 동기는 매우 상이하다. 어떤 이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기 위해
  • [열린세상] 공적개발원조는 의료한류 발전의 지렛대/김용환 서울대 초빙교수·전 문화관광부 차관

    [열린세상] 공적개발원조는 의료한류 발전의 지렛대/김용환 서울대 초빙교수·전 문화관광부 차관

    ‘한류’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한국 드라마, 케이팝이지만 한류의 원조는 태권도와 의료다. 1960년대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도 우리 선배들은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지금의 공적개발원조(ODA)에 해당하는 정부 파견 의사들을 세계 도처에 보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올해 외국인 환자 유치와 해외병원 진출을 통해 창출되는 부가가치는 2조 1000억원, 일자리는 3만 8000명에 달할 전망이다. 먹거리가 없었던 궁핍 시절에도 미래세대의 먹거리를 위해 한류의 씨앗을 뿌리고 가꾼 선배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당장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공무원연금, 국민연금, 무상급식 등을 두고 좌충우돌하는 요즘 정치 세태와는 천양지차(天壤之差)다. 5월 초 서울대 의과대학 주관으로 의료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 카자흐스탄은 실크로드 중앙에 있는 인구 1800만명의 자원부국으로 1937년에 강제 이주된 한민족 후손 12만명이 당당히 생활하는 뜻깊은 곳이다. 2013년에만 3000여명이 한국에 의료관광을 왔다. 지난 5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100%가 넘는 의료 한류의 중심이다. 우리 일행은 협의과정에서 한국 의료에 대한 현지의 신뢰와
  • [열린세상] 한국의 외교전략, 쿠오바디스?/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열린세상] 한국의 외교전략, 쿠오바디스?/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대한민국이 자리잡고 있는 지정학적(地政學的) 및 지경학적(地經學的) 공간을 흔히 ‘동북아’라고 표현한다. ‘동북아’는 보다 상위 지역 구분인 동아시아에 속해 있으면서 동남아와 함께 동아시아라는 전략 공간을 양분하고 있다. 글로벌 안보전문가들은 전 세계에 걸쳐 대략 12~13개 정도의 지역적 완결성을 가지는 외교안보 지역군(地域群)을 설정하고 있는데, 동아시아는 이 중 하나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하위 단위인 동북아와 동남아는 최근 들어 괄목할 만한 안보상황의 구조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중국의 부상’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동북아는 물론 동아시아 역내(域內) 모든 국가들은 각자의 전략적 고민과 선택에 따라 매우 적극적으로 정책을 생산해 내고 있다. 최근의 예만 들더라도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설, 미·일 동맹 강화, 동남아 국가들의 적극적인 개방정책, 심지어 대만 국내 정치의 복잡성 등도 모두 각국의 입장에서 변화에 맞서기 위한 진지한 노력들인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제대로 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관련하여 요즘 말로 ‘가성비’(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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