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공적개발원조는 의료한류 발전의 지렛대/김용환 서울대 초빙교수·전 문화관광부 차관

[열린세상] 공적개발원조는 의료한류 발전의 지렛대/김용환 서울대 초빙교수·전 문화관광부 차관

입력 2015-05-20 00:18
수정 2015-05-20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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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한국 드라마, 케이팝이지만 한류의 원조는 태권도와 의료다. 1960년대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도 우리 선배들은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지금의 공적개발원조(ODA)에 해당하는 정부 파견 의사들을 세계 도처에 보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올해 외국인 환자 유치와 해외병원 진출을 통해 창출되는 부가가치는 2조 1000억원, 일자리는 3만 8000명에 달할 전망이다. 먹거리가 없었던 궁핍 시절에도 미래세대의 먹거리를 위해 한류의 씨앗을 뿌리고 가꾼 선배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당장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공무원연금, 국민연금, 무상급식 등을 두고 좌충우돌하는 요즘 정치 세태와는 천양지차(天壤之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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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문화관광연구원 석좌위원
김용환 문화관광연구원 석좌위원
5월 초 서울대 의과대학 주관으로 의료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 카자흐스탄은 실크로드 중앙에 있는 인구 1800만명의 자원부국으로 1937년에 강제 이주된 한민족 후손 12만명이 당당히 생활하는 뜻깊은 곳이다. 2013년에만 3000여명이 한국에 의료관광을 왔다. 지난 5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100%가 넘는 의료 한류의 중심이다. 우리 일행은 협의과정에서 한국 의료에 대한 현지의 신뢰와 후의를 실감했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의료 한류가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 2%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1970~80년대 중동 건설 붐 당시 현지에 진출한 많은 건설사들이 출혈경쟁으로 실리(實利)를 잃었던 경험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든다.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한 과당경쟁으로 높은 중개수수료와 덤핑 환자 유치가 우려된다. 의료 사고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외교부, 법무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 업무가 분산돼 컨트롤타워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집행·진흥 기관들마저도 소규모로 분산돼 있다 보니 현장에서의 정책 협조 및 추진에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의료 한류도 진화가 필요하다. 의료 시스템 수출을 통한 수익창출은 환자 유치보다 5배 이상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환자 유치 단계를 넘어 병원건설, 병원운영, 의료기술, 의료장비, 의료 정보기술(IT), 의약품, 의료인력 양성 등을 패키지화하는 현지 진출을 적극 지원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해외 진출은 기대 성과를 쉽게 도출하기 어려운 사업이다. 현지 의료체계, 의료시장, 의료제도, 의료인력, 문화 등 모든 것이 현지 특성에 맞는 개별화가 필요하다. 장기적 안목을 갖고 꾸준히 신뢰를 쌓아야만 한다. 한국의 의료 수준이 높다고 자신해도 세계적인 브랜드 네임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순수 민간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추진이 쉽지 않다.

베트남, 미얀마, 중앙아시아,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우리의 ODA와 의료 한류를 전략적으로 연계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올해 ODA는 2조 3682억원으로 지난 5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800개가 넘는 프로젝트에 재원이 분산돼 있고 의료부문의 비중이 낮아 의료 한류 추진에는 한계가 있다. 중국, 일본의 ODA 물량 공세를 감안하면 의료부문에 대한 ODA 비중 확대와 함께 우리나라의 비교우위 부분에 대한 집중 투자가 절실하다.

우리의 강점인 인적자원을 매개로 한 패키지화가 중요하다. 의료기관 건립 시에는 일정 기간 반드시 운영하고 현지 의료·관리 인력을 양성해 의료시설의 활용도를 높임과 동시에 한국과의 연결 고리를 유지시켜야 한다. 대단위 프로젝트는 유무상 원조를 연계해 국산 구매에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집단 진출해 있는 지역은 현지 근로자 및 가족들을 위한 의료시설을 건립하고 운영비는 현지 기업, 현지 정부, 한국 정부가 분담하는 윈·윈 모델을 강구해 봄직하다.

세계 각국은 고령화, 의료기술 발달, 소득 증가로 급증이 예상되는 글로벌 의료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쟁 중이다. 우리나라는 높은 의료기술, 저렴한 의료수가, 세계 최고의 IT 등 의료·바이오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동안 화학공학, 기계공학, 전자공학 등이 한국 경제를 먹여 살렸다면 앞으로는 의료 한류로 대표되는 의학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먹거리의 기반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2015-05-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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