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 [열린세상] 구두와 가난/박산호 번역가

    [열린세상] 구두와 가난/박산호 번역가

    “이런 싸구려 구두는 본드로 굽을 붙여서 아차 하면 부러져. 그러다가 아킬레스건 나가는 거지. 무게중심이 안 맞아서 조금만 걸어도 발이 아플 거야. 걸으면서도 불안해. 도무지 신발을 믿을 수 없으니까. 우리가 주는 돈으로 괜찮은 구두를 사. 안 그러면 평생 발을 질질 끌면서 사게 돼.” 작가란 일상의 작은 사물을 통해 거대한 세계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서경 작가가 쓴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나온 구두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가난한 집의 장녀 인주는 이 말처럼 싸구려 구두를 신고 직장 동료가 모처럼 한턱 쏜다고 해서 터무니없이 비싼 레스토랑으로 올라가는 길에 그만 구두굽이 똑 부러져 버린다. 그 장면을 보다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내가 한참 모양을 내기 시작했던 20대부터 신발은 항상 좋은 걸 신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볍고 발이 편해야 어디든 마음 놓고 갈 수 있으니 신발만큼은 값을 따져선 안 된다고. 엄마가 없는 살림에도 가격표를 보지 않고 사줬던 건 책과 신발 두 가지였다. 엄마는 말했다.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의 많은 걸 알 수 있다고. 그때는 몰랐다. 젊었을 때 내가
  • [열린세상] 증오의 정치, 승자는 없다/김종면 언론인

    [열린세상] 증오의 정치, 승자는 없다/김종면 언론인

    작가 박경리는 1950년대 6·25 전후(戰後)를 ‘불신시대’로 규정했다. 동명의 단편소설에서 작가는 엉터리 의사의 수술로 아들을 잃은 주인공의 눈을 통해 당대 사회의 타락상을 고발한다. 건달꾼이 의사 행세를 하는 병원, 불심의 깊이를 시줏돈으로 재단하는 절, 도적맞지 않기 위해 신발을 들고 들어가야 하는 교회 등 도덕의 탈을 쓴 것들이 모두 비판대에 오른다. 주인공은 마침내 절에 맡긴 아들의 위패가 허상에 불과한 것임을 깨닫고 그것을 불태운다. 거짓과 위선으로 얼룩진 부조리한 삶의 조건을 불살라 버림으로써 불신의 시대에 항거한 것이다. 60여년 전 불신시대는 문자 그대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러나 그것은 차라리 소박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지금 우리는 불신을 넘어 인간성마저 말살하는 혐오, 아니 증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불안, 공포, 냉소, 분노, 광기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사회에 가득하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를 이용한 증오정치에만 골몰한다. 이념과 지역, 세대, 성별, 계층에 따라 국민을 편 갈라 지지층을 끌어모으려고 한다. 증오의 정치는 승리의 길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19년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
  • [열린세상] 해양분쟁 시대, 법률전에 대비하고 있는가/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열린세상] 해양분쟁 시대, 법률전에 대비하고 있는가/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 최근 몇 년간 미중 관계의 충돌을 예측하는 국제정치의 지배적 담론이다. 신흥강국(중국)이 부상하면 기존 강대국(미국)의 견제 과정에서 전쟁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물론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와 21세기의 국제질서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의 대양 진출은 미국 동맹세력(동아시아)의 균열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작금의 위기를 표현하는 데 적절하다. 강대국 간 국제질서를 둘러싼 힘의 대립은 여전히 조정 중이라는 의미다. 해양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은 유엔해양법협약의 탄생(1982년 채택)으로 예견된 일이다. 주변국과 해양범위 주장이 중첩되는 해역은 경계선을 그어야 하나 쉽지 않다. 협상을 통해 차지할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기 때문이다. 주변국의 관공선 활동과 불법어업, 해양조사가 끊임없이 진행되는 이유다. 중국과 일본의 진출은 거침이 없다. 관공선의 대형화와 무장화, 순찰 범위의 확대 등 이어도와 독도 주변 진입은 상시화됐다. 사통팔달의 지정학적 한반도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향후 5년 이내에 산발적으로 혹은 동시에 벌어질 수 있다. 해양분쟁의 시대다. 해양 문제는 일방의 제소로 쉽게 국제소송으로 전환된다.
  • [열린세상] 어느 하루/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열린세상] 어느 하루/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1. 지역에서 있었던 성평등 교육 소식을 들었다. 강사는 강의 끝에 장애인의 성적 욕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강사는 필요한 경우 어머니가 장애인 아들의 성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사가 ‘어머니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무슨 뜻으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애인’을 남성으로 전제하고, 듣는 사람 또한 여성 장애인은 떠올리지도 못한 것 같다. 바꿔서 생각해 보자. 딸의 성욕 해결을 위해 아버지가 나선다? 어떤 방식으로? 왜 이 사회는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남성의 성욕을 해소시켜 주지 못해서 안달일까? 왜 그들의 성욕은 무조건 해결돼야 하고, 부모나 다른 직업여성이라도 나서서 해결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강의는 이미 한참 전의 일이었다. 2. 소설을 읽었다. 어머니가 두 다리를 잃은 큰아들을 업고 주기적으로 사창가를 가는 대목이 나온다. 둘째 아들이 그 사실을 알고 어머니의 수고를 자신이 대신한다. 그는 형을 여관에 내려놓고 여자를 찾아 나선다. 소설에서 그 대목이 갈등 해결에서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만약 장애인 딸의 성욕 해소를 위해 아버지가 자기 몸의 어느 부
  • [열린세상] 고발 대신 고소하세요/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열린세상] 고발 대신 고소하세요/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추석 연휴 직후인 9월 10일부터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이 없어졌다. 민주당이 지난봄 서둘러 통과시킨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관련 법안이 시행되면서다. 이젠 고발인만 있는 사건의 경우 경찰이 죄가 없다고 보아 수사를 종결하는 불송치 결정을 하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사건을 다시 되살릴 방법도 없다. 피해자가 직접 나설 수 없거나 공익에 해악을 끼치는 범죄는 고발제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져 왔고, 이를 통해 사회가 정화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앞으로는 이 법으로 인해 고발제도가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상황이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한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을 없앤 이 법은 만들어진 과정부터 기이했다. 민주당이 4월 27일 새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립표결 방식으로 단독 의결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이 내용이 없었다. 그런데 몇 시간 뒤인 같은 날 오후 진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의 발의로 본회의에 제출된 수정안에 별안간 포함됐다. 고발인 이의신청권 폐지로 고발제도가 제 기능을 못 하게 되면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컸지만, 민주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그 뒤로 비판의
  • [열린세상] 아동 성범죄자에게 주어져야 할 것, 중형·치료·관찰/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열린세상] 아동 성범죄자에게 주어져야 할 것, 중형·치료·관찰/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아동 성폭행범 김근식은 2000년 강간치상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출소한 지 16일 만에 다시 범행을 저질렀는데, 약 4개월 동안 아홉 살에서 열일곱 살 사이의 미성년자 11명을 성폭행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복역 중에도 두 번이나 동료 재소자를 폭행해 형량이 늘어났다. 전과 19범인 그가 만기 복역 후 오는 10월 출소할 예정이라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경찰은 김씨 주거 예정지 주변의 치안 활동을 강화하고 전자감독을 집행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기존의 전자발찌 효용성 논란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의 원인은 여러 요소들이 관련돼 있다. 단순히 충동적인 행동을 한 경우부터 김근식의 예에서 보듯 반복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까지 그 양상도 아주 다양하다. 따라서 각각의 양상에 따라 적합한 재범 방지 대책이 필요한데, 이 중 반복적으로 성폭력을 행하는 경우는 사실 성격장애나 정신병적인 요소들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정신과적 개입이 필요한 사례가 많다. 특히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반복적 성폭력은 더욱더 그러하다. 실제로 성범죄자,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자는 충동적이거나
  • [열린세상] 대한민국 對美 로비, 판 다시 짜야 한다/송경진 전 세계경제연구원장

    [열린세상] 대한민국 對美 로비, 판 다시 짜야 한다/송경진 전 세계경제연구원장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발효로 국내 전기차 기업에 직접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연일 정부 관료와 업계 인사들이 워싱턴으로 달려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세계무역기구 규정에도 위배되는 IRA로 야기되는 피해를 최소화할 목적이다. 유엔총회 기간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최대 현안으로 올려질 이슈 역시 IRA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의 미국 중심 글로벌 공급망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중간선거를 50여일 앞두고 자국우선주위와 일방주의 색채가 더욱 농후해지는 미국이 즉각적, 전향적인 사후조치를 고려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위해 양자 및 다자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지난주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제1차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장관회의에서는 IPEF의 주요 축인 무역, 공급망, 청정경제, 공정경제를 논의했다. IRA,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를 IPEF에도 상정해 논의해야 한다. 미국중심주의 여파가 한국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므로 더욱 정당성을 갖는다. 대미외교가 실패할 때마다 사후약방문 격으로 잠깐 거론되다 마는 이슈가 대미 로비다. 이번에도 IRA 입법 이전 우리 정부
  • [열린세상] 안개 속에 숨어 있는 천시/이건호 에이빅파트너스 대표

    [열린세상] 안개 속에 숨어 있는 천시/이건호 에이빅파트너스 대표

    경치 좋은 대관령의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리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그러나 날씨가 좋지 않은 경우 그것도 갑작스런 안개가 온 산을 뒤덮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앞에 달리고 있는 차는 물론이고 바로 눈앞의 차선마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온통 급커브만 있는 산길을 따라 운전을 할 때는 정말 모골이 송연해진다. 지금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도 이런 형국에 놓여 있다. 기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터에 갑작스런 변화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전략적 변곡점’이라는 급커브를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다. ‘전략적 변곡점’이란 인텔 회장이었던 앤드루 그루브가 처음 쓴 말로, 기업의 생존과 성장 과정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의미한다. 세계 최초로 카메라 필름을 개발한 코닥이 디지털카메라의 출현이라는 변화 앞에서 주저주저하다 파산한 사건은 ‘전략적 변곡점’의 위험성을 알려 주는 대표적 사례다. 보다 최근에는 일찍부터 PDP TV에 올인했던 파나소닉이 시장의 대세가 LCD로 기울어지는 상황에서도 PDP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TV산업에서 경쟁력을 상실
  • [열린세상] 심심한 사과가 던지는 자극적인 질문/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열린세상] 심심한 사과가 던지는 자극적인 질문/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지난달 끝자락을 ‘심심한 사과’가 뜨겁게 달궜다. 웹툰 작가 사인회를 준비하던 서울의 한 카페가 행사 예약 시스템 오류를 사과하며 트위터에 올린 ‘심심한 사과 말씀’ 말이다. 카페 측의 사과문에 쓰인 ‘심심한 사과’에 대해 ‘심심하다’를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뜻으로 생각해 ‘하나도 안 심심하다’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트윗에 리트윗이 이어지며 트위터 트렌드 실시간 상위권에 오른 덕에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지게 된 것이다. 논란이 생기고 얼마 되지 않아 한 기자가 전화를 했다. 지금 인터넷에서 ‘심심한 사과’ 논란이 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기자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논란의 내용을 꼼꼼히 따져 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며칠 후 라디오 방송에서 관련 내용으로 인터뷰를 하자는 요청이 들어왔다. 라디오든 텔레비전이든 방송 인터뷰는 최소한 하루나 이틀 정도 준비할 시간이 주어진다. 덕분에 ‘심심한 사과’ 논란을 아주 꼼꼼히 따라가 보았다. 관련 기사를 추적해 읽으면서 유사한 담론이 지난 십여 년간 도돌이표가 찍힌 악보처럼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논란의 대상이 된 단어와 진앙지만 다를 뿐이었다. 기사의 틀은 이미 짜여 있었다.
  • [열린세상]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이렇게 풀어야/조재정 법무법인 민 상임고문

    [열린세상]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이렇게 풀어야/조재정 법무법인 민 상임고문

    우리 노동시장의 해묵은 과제 중 하나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다. 이는 노동시장이 임금, 일자리 안정성 등 근로조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는 두 개의 시장으로 나뉘어 있고, 이 시장들 간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과정에서 거의 같은 일을 하면서도 원청과 하청업체 직원들의 임금 차이가 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법과 원칙 속에서 자율적 대화와 협상을 통한 선진적 노사 관계를 추구하고, 노동시장 양극화와 이중구조 문제 역시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최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해법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통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전체 근로자의 81%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으며 근로자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이다. 올 3월 말 현재 300인 이상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82.1%가 원청 소속 근로자이며, 17.9%는 파견·용역, 하도급 등과 같은 사내 하청 소속 근로자로 파악되고 있다. 2020년 말 현재 노조 조직률은 14.2%인데, 300인 이상
  • [열린세상] 마리 앙투아네트와 김건희/유창선 정치평론가

    [열린세상] 마리 앙투아네트와 김건희/유창선 정치평론가

    김건희 여사가 해외 순방 때 착용했던 장신구 논란이 불거졌다. 더불어민주당은 고가의 장신구가 재산 신고에서 누락됐다며 의문을 제기했고, 대통령실은 ‘지인에게 빌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시 민주당은 계약서는 썼는지를 물으며 국정감사에서 파헤치겠다고 예고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김정숙 여사의 의상비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당시 청와대는 지출 내역을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로 봉인한 채 임기를 마쳤다. 그런데 이제 야당이 된 민주당은 대통령 부인의 장신구를 따지며 정치적 이슈로 키운다. 또 하나의 ‘내로남불’로 비쳐진다. 그 대상이 김건희든 김정숙이든 대통령 부인의 장신구와 옷까지도 이 잡듯이 뒤지려는 정치가 무섭게 느껴진다. 민주당이 들고나온 ‘김건희 특검법’도 그렇다. 강경파 의원들이 주도한 ‘김건희 특검법’이 이미 발의됐다. 그 핵심 내용은 ‘주가 조작’과 ‘허위 경력’ 의혹이다. ‘주가 조작’ 의혹을 오랜 기간 수사했던 것은 윤석열 정부가 아닌 문재인 정부 시절의 수사기관들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통제 아래 있던 수사기관들이 야당 대선 후보쪽 의혹을 일부러 덮어 주진 않았을 것이다. 장기간의 수사로도 범죄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눈치 보며
  • [열린세상] 체계적인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필요하다/문일경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열린세상] 체계적인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필요하다/문일경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2015년 파리기후협정과 2019년 유엔 기후정상회의 이후 121개 국가가 ‘2050 탄소중립 목표 기후동맹’에 가입하면서 세계 주요 국가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수립했다. 한국 또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 0을 달성하겠다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전기차가 미래 자동차 산업의 대표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전기차 보급률은 2013년 전기차 도입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 및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기차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올해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충전기 1대당 전기차 보급대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토교통부 통계누리를 통해 분석한 전력거래소 자료를 보면 지난해 9월 기준 한국의 충전기 1대당 전기차 대수는 2.63대로 조사 대상 30개국 중에서 가장 좋은 수치이다. 하지만 이는 개인 충전기를 제외하고 공용 충전기만을 집계한 수치이다. 공동 주택의 주거 비중이 높은 국내 환경상 개인 충전기
  • [열린세상] 반도체 정책, 대학과 학제 간 편향성 경계해야/이성모 동북아협력인프라연구원장

    [열린세상] 반도체 정책, 대학과 학제 간 편향성 경계해야/이성모 동북아협력인프라연구원장

    첨단기술 부문의 산업화 정책은 40~50년 전부터 추진돼 왔다. 첨단산업 분야의 역할 선도와 선점은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그간의 꾸준한 정책 구현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다. 이러한 첨단기술 개발과 가치 창출로 국부를 쟁여 온 중심에는 산학연의 통합적 역할과 노력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런 정책이 시행돼 왔음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를 미래 첨단산업으로 포장해 새로운 것처럼 발표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치적 의도가 아닌지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다. 물론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이러한 사조에 부응할 수밖에 없다. 전 정권에서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을 4차 산업으로 포장해 국가전략으로 앞세우더니 새 정부 들어서는 디지털·반도체 인재 양성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디지털 인재 양성 방안’에는 ‘디지털 학·석·박사 5년 6개월 과정’, ‘K칩스 법안’, ‘반도체 강화법’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민관 공동으로 향후 10년간 3500억원을 조성해 석박사 인재 15만명을 육성한다고 한다. 향후 5년간 340조원의 기업 투자 지원 등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도 내놓았다.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
  • [열린세상] 일본 평화헌법의 개정 가능성/김경민 한양대 명예교수

    [열린세상] 일본 평화헌법의 개정 가능성/김경민 한양대 명예교수

    일본은 세계 역사에 유례없는 ‘평화헌법’을 갖고 있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항복을 받아 낸 미국의 맥아더 원수는 지독한 군국주의로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못 하게 평화헌법을 만들게 했고, 제9조에 아예 군사력을 갖지 못하도록 대못을 박았다. 그런 일본이 자위대란 이름으로 한국보다 질적인 측면에서 앞서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리라고는 맥아더도 예측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아무리 평화헌법까지 제정시키며 일본의 근성을 막아 보려 했지만 일본의 우익 인사들은 그 꿈을 포기한 적이 없다. 민주주의를 하는 국가들 중 일본처럼 자민당이란 1개의 정당이 여타의 다른 군소정당 국회의원 수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경우는 없다. 그래서 정치학 용어에 1점 반 정당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나오게 된 것도 일본 때문이다. 그러면서 60년 이상 자민당이 정권을 독차지하고 있는 민주주의도 역사 이래 처음이다. 그러나 자민당은 패전의 아픔을 딛고 세계 제2의 경제대국 경지까지 이르게 한 공로로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일본 자위대의 존재는 평화헌법 제9조의 문구대로라면 절대적으로 위헌이다. 이 문구를 개정하려면 중·참의원 3분의2 이상
  • [열린세상] 개발과 공존 사이/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열린세상] 개발과 공존 사이/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최근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에피소드는 소덕동이라는 가상의 수도권 마을에서 일어난 소송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신설되는 고속화도로가 마을을 관통함에 따라 발생하는 갈등이 배경이다. 나이가 지긋한 이장님을 중심으로 주민들은 건설 중인 도로 지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지자체와 진행한다. 드라마에서는 마을 가운데 자리잡은 팽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도로 건설 노선이 변경되는 것처럼 묘사됐다. 하지만 해당 사건은 실제 2008년 제2자유로 공사 시 발생했던 소송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으로, 현실에서는 지역주민이 패소해 계획된 노선대로 준공됐다. 올 초에 방영돼 ‘추앙’ 앓이라는 신드롬을 일으켰던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있다. 이는 산포시라는 가상의 수도권 마을에 거주하는 젊은 30대 남매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구성된다.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설정에서 해방을 꿈꾸는데, 그중 하나가 서울로 이사해 고단한 경기도~서울 출퇴근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나이 지긋하고 과거의 틀에 사로잡힌 아버지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것 역시 이에 수반되는 것이었다. 드라마 설정상 산포시는 산본과 군포, 당미역은 군포시에 위치한 당정역과 대야미역의 합성어로 추정된다.
  • [열린세상] 고요의 힘, 정신과 육체 모두에 좋다/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열린세상] 고요의 힘, 정신과 육체 모두에 좋다/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우리는 시끄러운 세상에 살고 있으며 이것은 건강에 해롭다.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소음을 공중보건에 대한 ‘과소평가된 위협’으로 지정했다. 세계 도시 가운데 뭄바이, 뉴욕, 파리, 도쿄,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에 사는 사람들은 밤에 권장되는 최소 기준인 40dB(데시벨)을 넘는 소음에 노출돼 있다. 유럽 환경청의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소음은 유럽에서 오래전부터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문제다. 유럽인 5명 중 1명 이상이 건강에 해로운 것으로 간주되는 수준의 소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요는 현대사회의 ‘새로운 사치’다. 세계 최초로 남극을 단독으로 다녀온 노르웨이의 탐험가 엘링 카게가 ‘시끄러운 시대의 고요’(Silence: In the age of noise, 2017년 Penguin)에서 지적한 말이다. 지난 8일 영국의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는 ‘고요의 힘: 정신과 육체 건강에 모두 이롭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여기서 이른바 ‘부유 탱크’의 이완 효과가 좋다는 얘기를 잠깐 들은 다음 좀더 쉬운 실천법으로 넘어가기로 하자. 부유 탱크란 소리와 빛과 촉감을 느끼지 않도록 설계된 뚜껑 달린 욕조다. 미지근한 소금물 속에
  • [열린세상] 망국을 피하는 방법/김세연 전 국회의원

    [열린세상] 망국을 피하는 방법/김세연 전 국회의원

    “이렇게 나라가 망해 가는 것인가?”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으나 차마 입으로는 뱉지 못하는 탄식이 아닐까. 모든 것이 뒤엉켜 버린 채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야심차게 닻을 올린 윤석열호는 출항 직후부터 표류하고 있다. 괜찮지 않은 것은 알겠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새다. 근심과 우려의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누가 쓴소리하고 말고가 더이상 중요치 않은 상황이다. 정치는 저질화, 언론은 황색화되고 있다. 정치의 원동력이 ‘공동선(共同善)의 지향’이 아니라 ‘상대 진영에 대한 복수심’이 됐다. 정치를 바라보는 창문이어야 할 언론은 말과 감정 싸움의 현장 중계인 정도로 역할을 스스로 격하시킨다.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행정부조차 직역별로 각 진영에 편입되는 경향이 보이고, 그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무위(無爲)를 새로운 미덕으로 삼는다. 지방선거 때의 풍문들은 정치와 행정의 일부가 거대한 매관매직의 체계로 타락하고 있는 것 같은 의구심까지 들게 한다. 적대적 공생관계의 양대 정당에 이젠 혐오감까지 느껴진다고 한다. 국민의힘에서 비주류는 다시 한번 뿌리째 뽑혀 나가는 중이다. 건강한 토론이 일상이어야 할 정당에서 원외 청년들의 항변과 주류 대리인들의 반박
  • [열린세상] 대만해협의 국제법적 지위/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열린세상] 대만해협의 국제법적 지위/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대만해협 갈등이 확전일로다. 중국이 대만을 에워싸는 6개의 군사훈련 구역을 설정했는데, 3곳은 대만 영해(2곳은 내수)까지 침범하고 있다. 그동안 대만해협에서 세력 운용의 기준이었던 중간선은 물론이고 대만 영해마저 무력화되는 모양새다. 대만과 미국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다. 미중 간 본격적 군사행동의 예고적 대립이라는 시각도 있다. 분쟁의 핵심은 대만해협의 국제법적 지위 문제다. 양국의 주장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미국 ‘해군작전법에 관한 지휘관 지침’은 해양을 △국가주권하에 있는 수역(내수, 영해)과 △국제수역(배타적 경제수역, 공해)으로 구분한다. 이 중 대만해협과 같은 국제수역에서는 모든 국가가 공해와 같이 항행과 비행의 자유를 갖는다는 태도다. 중국의 생각은 다르다. 국제법상 국제수역이라는 용어는 없고, 미국의 해석은 대만 문제를 조정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주장처럼 유엔해양법협약에 국제수역이라는 용어는 없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용어도 아니다. 중국은 다른 국가의 통항과 항행을 반대하지는 않으나, 대만해협은 자국의 주권적 권리와 관할권에 있는 수역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해석은 사실상 대만해협을 내해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 [열린세상] 이상기후가 일상이 된다면/김세정 바르샤바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열린세상] 이상기후가 일상이 된다면/김세정 바르샤바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지난주 내내 런던은 매우 더웠다. 8월에는 더운 게 당연하지 않나 하겠지만 전 세계가 그런 것은 아니다. 심지어 남반구는 지금 겨울이다. 같은 북반구라지만 영국의 7, 8월은 대개 서늘하고 청량하다. 며칠 덥다고 해 봐야 바람 부는 그늘로 피하면 더위를 못 느낄 정도인 것이 통상적인데 올해는 매우 뜨거웠다. 지난 7월에는 무려 섭씨 40도를 넘는 날이 있더니만 더운 날씨가 8월에도 이어졌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한동안 더웠으니 이례적인 여름이었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기온이라면 한국 기준으로는 매우 고온도 아니다. 다만 문제는 영국에는 냉방시설이 갖추어진 거주 시설이 그리 없다는 데 있다. 더구나 집이 좁고 단열이 안 돼 있으며 주변에 녹지조차 없었다면 이 더위를 견디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낮 동안에 집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즉 본인 스스로 이동을 쉽게 할 수 없거나 집에 돌봐야 할 사람이 있는 등의 사정이 있다면 뜨겁게 달궈진 집은 마치 열감옥 같았으리라. 내 경우는 사정이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인데도 더위가 끝난다는 시기가 오기를 기다리며 이틀만 더 참자, 하루만 더 참자 하며 덜 더워질 날짜를 꼽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다가 문득 이런
  • [열린세상] 읽기와 쓰기라는 연대/박산호 번역가

    [열린세상] 읽기와 쓰기라는 연대/박산호 번역가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고 거실로 나가면 자고 있던 시바견이 일어나 꼬리를 흔든다. 재회의 기쁨에 배를 북북 긁어 주면 희고 검은 털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진다. 늙은 고양이 밥을 주고 어린 강아지 밥을 준 다음 아침 커피를 끓인다. 문밖에 떨어진 신문을 들고 와 커피를 마시며 헤드라인들만 읽어도 벌써 분노가 치민다. 요즘은 분노가 일상이다. 아침만 먹었는데 어느새 싱크대에 가득 찬 그릇을 설거지하고, 밤새 바닥에 눈처럼 내린 반려동물들의 털을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거기서 나는 수상한 냄새에 ‘오늘은 꼭 청소기를 분해해 필터를 청소해야지’라고 백만 스물두 번째 결심한다. 여름이라 하루에 두 번씩 벗어 대는 옷과 양말, 수건을 세탁기에 돌렸다가 건조대에 널면 어느새 정오가 당도했고, 벌써 반쯤 지쳐 있다. “한국 사람들은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라는 영화 대사처럼 아침에 먹었다고 밥을 그만 먹고 어제 청소했다고 오늘 청소를 안 할 수는 없는 일. 그 사이사이에 생계를 책임지는 번역과 글쓰기라는 엄중한 일을 해야 한다. 이토록 무한 반복되는 노동에 지치고 우울해질 무렵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이혼 후 청소라는 힘들고 고단한 노동으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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