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 [열린세상]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김세연 전 국회의원

    [열린세상]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김세연 전 국회의원

    요즘 정치 기사를 거의 읽지 않는다. 기사를 읽을수록 온전한 정신상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인데, 같은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상대를 악마화하고 권력 쟁취를 위해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데 이골이 난 정치 기술자들이 기량을 발휘한 결과 이제 정치에서는 흉포화한 게임의 룰을 따르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게 됐다. 식물로 치면 정상적인 작물은 싹이 트지 않거나 싹이 터도 곧 말라 죽고 마는 지경이 되는 셈이다. 책임 소재를 따지고 누구를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진단은 해 보고자 한다. 1987년 대통령 선거 이후 아직까지 이어지는 영호남 ‘지역 갈등’이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완화되고 있는 반면 보수·진보 사이의 ‘이념 갈등’은 여전히 첨예하고, ‘세대 갈등’에 ‘성별 갈등’까지 더해져 삭막하기 그지없다. ‘매스미디어’ 시대가 가고 ‘소셜미디어’ 시대가 오면서 추천 알고리즘의 마법에 의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확증편향은 심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체 전체를 아우르는 정치적 통합을 성공적으로 해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게 됐다. 보수 정당의 일원으로서 ‘내 탓’부터 해 보겠다. 자유한국당 시절 끝
  • [열린세상] 거인의 어깨 위에서/박산호 번역가

    [열린세상] 거인의 어깨 위에서/박산호 번역가

    얼마 전 번역서 한 권을 마감했다. 이번 책은 내용이 유난히 까다롭고 어려워 고전을 면치 못한 채 작가를 찾아가 항의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코로나 덕분에 그 무모한 계획은 상상에 그쳐야 했지만. 번역하다 보면 어렵고 힘든 작품을 종종 만나지만 이번은 정말이지 20년 가까운 번역 인생에서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결국 탈이 났다. 바쁜 와중에 잠시 틈을 내 근처 호수공원을 걷고 온 다음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 데다 다리가 너무 저려서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증상이 시작됐다. 병원에 가 보니 척추분리증이라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과로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지병까지 발병했다. 어쩔 수 없이 편집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며칠 쉬었지만 그런 내내 앉아도 누워도 불편했다. 대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머리, 어깨, 발, 무릎, 발 순서로 찾아오는 통증을 참고 일해야 하나. 영화는커녕 남들 아파트는 몇 배에서 몇십 배가 오르고, 주식과 비트코인으로 돈 벌었다는 사람들은 주위에 넘쳐나는데…. 집도 절도 없이 아픈 식구 병구완하느라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버린 채 소처럼 일만 하는 나는 순식간에 ‘벼락거지’가 된 것 아닌가. 그때 우연히 주 샤
  • [열린세상] 코로나19, 환경, 그리고 녹색전환/안소은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 코로나19, 환경, 그리고 녹색전환/안소은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부가 ‘코로나19 단계적 일상회복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첫 확진자 발생이 2020년 1월 20일이라 하니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셈이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버텨 왔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블루가 우리의 정서 상태를 잘 말해 준다. 일상으로의 회복을 이야기하지만 코로나19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어서 누구도 코로나19 발생 이전 삶의 방식을 ‘일상’으로 떠올리지 않는다. 코로나19와 함께하는 일상은 다시 정의돼야 하며, 그것이 뉴노멀일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코로나19는 인수공통 감염병이다. 기후변화와 자연생태계 파괴가 대다수 전문가가 지적하는 코로나19 발생의 주요 원인이다. 개발을 위한 인간의 무분별한 산림 벌채 등이 야생동물의 서식처를 파괴하고 매개동물과의 접촉 가능성을 높이며, 기온 상승과 홍수와 같은 기상 이변이 감염병 확산과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한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경제활동 위축에 따른 성장 저하라는 일차적·직접적인 영향을 시작으로, 취약계층으로의 파급효과는 가늠하기 어렵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불평등 요소와 대처 능력이 미흡한 취약계층과 결합하면서 빈부 격차로부터 교육의 양과 질에 이르기
  • [열린세상] 해도 해도 너무한 그들만의 리그/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열린세상] 해도 해도 너무한 그들만의 리그/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오랜만에 뉴스를 본다. 온통 대통령 선거 얘기다. 감흥이 없다. 누가 돼도 비슷하다는 지금까지의 경험 때문이다. 부동산 개발로 수천억원의 이익을 챙긴 사람들 이야기가 더해진다. 국가가 헐값에 땅을 매입해 대기업 건설회사에 나눠 주고 8년간 저소득층에 임대한다는 조건만 채워 주면 그 후엔 맘대로 해도 된다는 내용이다. 이미 입주해 있는 사람들에게 임대료를 올려도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없다.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시 거리로 내몰린다. 건설업체들은 수백억원의 이익을 챙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은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주거만 안정되면 사람들은 인간적인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이 땅에는 수도 없는 대장동들이 판을 친다. 가난한 사람들은 선거 때마다 이용되는 미끼다. 선심 쓰는 척 가난을 이용하고 당선되면 버린다. 또 하나의 기사에 눈이 머문다. 탐사보도 전문 ‘셜록’의 기사다. 뇌출혈로 쓰러진 건설 노동자였던 아버지의 응급수술에 동의한 22살 청년 강씨는 한쪽 팔과 다리만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된 아버지의 간병을 떠맡게 된다. 최저임금의 아르바이트로는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다. 삼촌이 도와주지만 계속 손을 벌릴 수도 없
  • [열린세상] 나쁜 일자리로 학대받는 아동 지원할 수 없다/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열린세상] 나쁜 일자리로 학대받는 아동 지원할 수 없다/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어린 시절 가장 억울했던 체벌이 있는가. 어떻게 기억하는가. 누군가에게는 겨울에 내복 바람으로 대문 밖으로 쫓겨났던 일이거나, 연탄집게 자국이 온몸에 남도록 맞았던 일일 수 있다.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고 몸서리쳐지는 그 장면의 자세한 전후 맥락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 그 억울함은 남아 있다. 만약 그 시절의 나에게 누군가 찾아와 “이렇게 학대를 받으며 사느니 시설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물건을 챙길 새도 없이 나를 데리고 난생처음 보는 동네, 난생처음 보는 시설에서 낯선 아이들과 살도록 했다면 현재의 삶은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난해 10월 아동학대 업무가 ‘공공화’되고 올해 3월 말 이른바 ‘즉각분리’ 제도가 시행되면서 학대 피해 아동 지원 체계는 수십년 만에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그런데 피해 아동을 직접 지원하면서 느끼는 현장의 벽은 아래 몇 가지 이유로 더 견고해지는 것만 같다. 첫째, 초기 개입 주체만 많을 뿐 책임지고 아동을 지원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부터 민간기관인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수행하던 아동학대 현장조사 업무를 공무원이 맡는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제’가 운영되고 있다. 이로 인해 아동학대가 발생
  • [열린세상] 임영웅도 좋지만, 인문문화 영웅도 살피자/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열린세상] 임영웅도 좋지만, 인문문화 영웅도 살피자/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요즘 국내의 막장 정치판과는 다르게 한류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려져 있으니 더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들은 한국이 전 세계로부터 세계적인 문화국으로 숭앙받고 있는 줄로 착각마저 하는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외국인도 있겠지만 그것이 전반적인 추세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까 한국인이 노래와 춤을 잘하고 드라마를 잘 만든다고 해서 한국을 문화적인 선진국으로 인정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특히 선진국의 지성인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 인색할 것이라 본다. 어떤 나라가 문화적으로 선진국인지 아닌지를 가릴 때 우리는 그 나라가 노래나 춤, 드라마 그리고 스포츠를 잘하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 나라가 사상(종교)이나 역사·문학 같은 인문학, 그리고 과학이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가지고 판단한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은 특히 인문학이 턱없이 약하다. 이 분야에서는 도무지 세계에 내놓을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인이 그동안 인문학을 백안시했기 때문에 생긴 자연스러운 결과다. 한국인들은 그동안 인문학에 대해 아주 기이한 태도를 보였다. 인문학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대학에서
  • [열린세상] 몸이 마음에게/김하늘 라이스앤컴퍼니 대표

    [열린세상] 몸이 마음에게/김하늘 라이스앤컴퍼니 대표

    낙엽이 가을과 겨울 사이를 스친다. 빨간 벽돌 처마 아래로 투명하게 흩어진 소나기가 흐른다. 식은 커피 위로 웃는 하늘이 드리운다. 구슬비가 귀를 꾀어 몰래 눈을 가렸나. 그가 어느새 나뭇잎에 양념을 뿌리고 갔나. 문질러져 있던 저 먼 낙엽이 덜컥 내 마음 위로 내려앉는다. 말간 세수를 한다. 양말을 치켜 신고 외투를 덮어 입고 길을 나선다. 첫 번째 마을버스를 탄다. 라디오를 켠다. 벌써 열 달을 보내고 두 달이 남았다. 남은 올해 동안 백만장자의 부를 쌓는다 해도 올해 가장 잘한 일은 아침 운동을 시작한 것이리라. 이윽고 혼자만의 새벽을 마련했다. 잠든 강아지도 기척에 깨지 않는 가만한 시간. 움직이는 것은 마른 시곗바늘뿐. 매일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맨얼굴과 벌거벗은 몸으로 만났다.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다. 하지만 닿지 않았다. 어떻게 말을 걸어 볼까.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색한 시간과 망설이는 침묵만 머물렀다. 비싸고 좋아 보이는 선물을 내밀어 보기도, 대신할 이를 찾아 친밀함을 갈구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무력하고 피곤한 관계만 먼지처럼 쌓여 갔다. 차곡차곡 마음은 산화됐다. 붙잡았다. 전신 거울로 방을 만들었다. 다가갔다. 또
  • [열린세상] 공산주의자와 개뿔/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열린세상] 공산주의자와 개뿔/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다가 ‘개뿔’을 자주 발견했다. 주머니에 든 것이 가벼울 때 주인공은 ‘개뿔, 겨우 캔 맥주 하나 살 돈’이라고 실망한다. 전자레인지를 다룬 작품에서 주인공은 노래 제목을 정확히 모른다. ‘가사가 좋긴 개뿔’ 하고 내뱉는다.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이 되라는 말을 어떤 작품의 주인공은 ‘개뿔’로 생각한다. 음반 한 장 내지 못한 아버지를 두고 딸은 ‘가수는 개뿔’이라고 삭인다. 회한을 옹근 말이다. ‘개뿔, 쓸데없이 책은’, ‘우리의 친구는 개뿔’, ‘지랄, 믿기는 개뿔’, ‘사나이 없는 집에 사나이 인생은 개뿔’ 같은 문장들이 당선 작품들에 고스란하다. ‘개뿔’은 그리움을 퍼 올리는 말의 두레박이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격이 짓눌리는 맷돌 말이다. 1997년 한 월간지는 시민사회 단체를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명예훼손 소송이 제기됐다. 2002년 1월 대법원은 근거 없이 누군가를 ‘공산당’이라고 보도한 것은 명예훼손이라고 판결했다. 같은 해 12월 대법원은 어떤 프로듀서를 ‘주사파’로 묘사한 것 역시 명예훼손이라고 판결했다. ‘빨갱이는 선, 경찰은 악으로 연출하는 공영방송’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2003년 9월 대법원은 대학교수 등을
  • [열린세상] 철책 십자가와 평화의 봄/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

    [열린세상] 철책 십자가와 평화의 봄/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

    얼마 전 제주도에 갔다가 시간이 남아 생각 없이 주변 미술관을 찾았다. 케테 콜비츠라는 낯선 이름에 망설이는데, ‘아가, 봄이 왔다’는 전시회 제목이 나를 안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전시장에 들어섰는데, 오랜 시간 반전(反戰)을 소재로 한 전쟁 연작 앞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약속 시간에 늦고 말았다. 지난여름 피카소전에서 본 반전 예술의 걸작으로 꼽히는 ‘한국에서의 학살’보다 더 강렬했다. 콜비츠는 20세기 초 독일의 대표적인 판화가다. 넉넉한 환경에서 성장한 그녀는 의사인 남편과 함께 빈민촌에 머물며 평생 소외된 이들의 삶을 작품에 담으며 살았다. 그녀가 남긴 일기를 보면 처음부터 반전의 확고한 신념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노동자의 삶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주로 내놓았다.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차대전에 자원 입대한 둘째 아들 페터의 전사가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녀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에만 매몰되지 않았다. 모성애를 넘어선 반전 작품들을 통해 전쟁의 야만성과 참혹함을 알리려 노력했다. 전쟁 연작 첫 번째 작품인 ‘희생’은 한 여성이 아이를 들고 제단에 바치는 듯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전쟁에 내보내려고 아이를 낳은 게 아니다
  • [열린세상] 누리호 발사의 의의와 우주 강국의 꿈/이은우 건양대 교수

    [열린세상] 누리호 발사의 의의와 우주 강국의 꿈/이은우 건양대 교수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우주 개발에 나선 것은 30여년 전인 1990년대부터다. 이때부터 국가우주개발 계획이 수립, 시행되기 시작했다. 92년 8월 우리나라 첫 인공위성 우리별 1호가 유럽의 아리안 로켓에 실려 발사됐으며, 93년 6월에는 첫 과학로켓(KSR1) 발사에 성공했다. 그 후 소형 위성 우리별과 과학위성, 중형위성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정지 궤도 통신위성 무궁화, 정지 궤도 해양기상위성 천리안 등 30개가 넘는 인공위성이 발사됐다. 그 결과 현재 우리나라는 인공위성 분야에서 세계 6위 내지 7위의 기술 능력 보유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발사체의 경우 한국형 과학관측 로켓(KSR), 나로호와 누리호 등 한국형 우주발사체(KSLV) 등을 10여번 발사했다. 지난 21일 오후 5시 나로우주센터에서 우리 기술로 만든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 1차 발사가 있었다. 누리호는 75t급 액체엔진 4개를 클러스터링한 1단 추진체와 75t급 액체엔진인 2단 로켓, 그리고 7t급 3단 로켓엔진과 페이로드인 1.5t급 위성 모사체로 구성돼 있다. 누리호는 정상 작동해 고도 700㎞에 도달했으나 3단 로켓의 연소가 46초 일찍 종료되는 바람에 위성 모사체가 목표 속도
  • [열린세상] 우리나라 주거 여건의 거시적 변화/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열린세상] 우리나라 주거 여건의 거시적 변화/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보면 네 가족이 단칸방에서 살아가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때만 해도 집이라고 하면 안이 텅 빈 중공블록으로 벽을 쌓고 단열재도 없이 마감하고 천장은 슬레이트로 대충 둘렀던 게 현실이었다. 이렇게 단열이 되지 않은 집이다 보니 한겨울에는 아무리 연탄보일러로 바닥을 뜨겁게 만들어도 누우면 코가 시려 결국 이불을 정수리까지 덮어야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연탄가스 때문에 사경을 헤맸던 기억이 있는데, 이게 한국전쟁과 같이 먼 옛날도 아니고 비단 30~40년 전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주거 형태 풍경이었다. 당시 우리 집이 지나치게 가난했냐 하면 당시 아버지가 공무원을 하고 계셨으니 대략 평균적인 우리나라 4인 가정의 이야기라 생각한다. 21세기에 들어서며 대다수의 주택 난방은 도시가스로 변했으며, 지역난방 도입으로 연탄가스 이야기는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됐다. 통계적으로 이러한 주거 여건의 변화를 보여 주는 것은 1인당 주거 면적의 변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른 1인당 주거 면적은 2006년 26.2㎡에서 2020년 33.9㎡로 30%가량 증가했다. 1980년대 단칸방에서 네 가족이 살았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시 1인당 주거
  • [열린세상] 반복되는 현장실습생의 죽음/박영기 한국공인노무사회장

    [열린세상] 반복되는 현장실습생의 죽음/박영기 한국공인노무사회장

    이달 6일 오전 10시 40분 전남 여수의 영세 요트업체에서 선체에 붙은 따개비 제거를 위해 잠수 작업을 하던 열일곱 홍정운 학생이 사망했다. 이 소식은 현장실습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던 학생들의 안타까운 기억을 되새기게 한다. 2021년 홍정운, 2017년 이민호, 2014년 김대환과 김동준. 생일이 지나면 열여덟, 지나지 않으면 열일곱 앳된 특성화고 3학년 학생들이 현장실습 기업에서 산재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3년 또는 4년마다 반복되는 우리 아이들의 죽음에 당장은 분노하고 대책 마련에 요란을 떨지만, 또 1~2년이 지나면 잊히고, 잊고 지내면 또 사고가 발생하는 죽음의 악순환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이들의 죽음은 산업 현장에서 법으로 정한 최소한의 안전 조치조차 다하지 못한 기성세대의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동자도 아닌 현장실습생이기에 위험하다고 생각해도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열악한 노동을 하다 생때같은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우리나라 일터에서는 매일 3명 안팎의 노동자가 재해 사고로 죽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산재사고 사망률이 지속되고 있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산업 현장에서 죽어
  • [열린세상] 환경문제 해결의 새로운 대안, 환경친화적 민주주의/박광국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환경문제 해결의 새로운 대안, 환경친화적 민주주의/박광국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최근 기후변화, 미세먼지,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등 환경파괴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다간 아마겟돈을 연상하는 인류의 종말이 더 빠른 속도록 닥쳐올 수도 있다. 올해 1월 초 겨울 채소 주산지인 제주도에 엄습한 폭설과 한파로 무, 양배추 등 80% 이상이 냉해를 입어 농업인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초래했는데, 이러한 현상이 전국적으로 매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하딘이나 네스를 비롯한 저명한 환경론자들은 그동안 민주주의 신장을 위해 크게 기여한 참여 민주주의가 과연 이러한 절박한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궁극적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절차’를 중시하는 데 비해 환경보호는 근본적으로 ‘목적’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절차적 정당성이 합목적성을 담보해 주지는 못한다는 딜레마에 정책 결정자가 봉착할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한 예로 196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울 등 대도시 난개발을 막기 위해 최우선 순위를 두고 추진한 환경친화적인 그린벨트 정책이 1987년 이후 폭발적으로 분출된 지역 주민들의 욕구에 의해 무분별하게 해제되고 있는 것을 경험
  • [열린세상] 팬데믹 시대 스마트홈과 가사노동/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열린세상] 팬데믹 시대 스마트홈과 가사노동/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를 덮친 이후 집은 새로운 공간이 됐다. 비대면이 일상의 규범이 되면서 사적 공간이던 집은 많은 이들에게 업무를 보는 직장이면서 배움을 이어 가는 학교가 됐다. 집 밖 활동이던 운동, 엔터테인먼트와 사회적 교류까지 집에서 즐기면서 집은 복합적 사회 공간이 되고 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쇼핑과 콘텐츠 소비도 늘어났지만, 집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집의 다양한 역할을 기대하게 되면서 오래된 기술적 상상이던 스마트홈이 부상하고 있다. 다양한 가전과 기기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자동으로 작동하는 집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의 오래된 비전이었지만,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의 발전, 그리고 팬데믹의 등장으로 새로 주목받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에이전트가 집사가 돼 거주자의 온갖 요구를 실행해 주던 영화 속 장면이 낯선 일이 아니라고 광고하기도 한다. 스마트홈은 커뮤니케이션, 에너지, 보안, 엔터테인먼트 등을 통합하고 이들이 최적으로 작동하도록 통제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 지금은 조명, 음악, 실내온도를 조절하고 전화를 걸고 방문자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집안 공기질을 측
  • [열린세상] 금산분리와 플산분리/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열린세상] 금산분리와 플산분리/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최근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업체들의 공정경쟁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주요 플랫폼 기업의 총수들이 국정감사에 여러 번 불려 나와 ‘국감셔틀’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공정경쟁 이슈 중에서도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자주 거론된다. 택시, 대리운전, 소상공인 업계에서는 “심판(카카오)이 선수로 나서 골목상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네이버에 검색 알고리즘을 조정해 자사 상품 및 서비스는 상단에, 경쟁사 상품 및 서비스는 하단에 노출하는 행위를 시정하라고 명령한 바도 있다. 이러한 불공정 행위가 가능한 것은 이들 플랫폼 업체가 시장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사업은 ‘양면시장’ 구조로 생산자와 소비자 두 집단을 상대로 양쪽 사이의 거래를 연결한다. 많은 수의 소비자 회원을 확보한 플랫폼 업체는 생산자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나아가 플랫폼 기업이 인접 산업에 진입하는 경우 독점적 플랫폼 위치를 이용해 손쉽게 경쟁력을 확보할 수도 있다. 주요 플랫폼 업체들의 불공정 문제가 부각되자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온라인 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 등 8
  • [열린세상] “죽음의 상인, 죽다”, 노벨상을 낳은 오보/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열린세상] “죽음의 상인, 죽다”, 노벨상을 낳은 오보/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1888년 4월 스웨덴 출신의 기업가 알프레드 노벨은 자신이 이미 사망했다는 기사를 접한다. “죽음의 상인, 죽다.” 파리의 한 신문에 실린 부음의 제목이다. “더 많은 사람을 더 빨리 죽이는 방법을 개발해 부자가 된 알프레드 노벨이 어제 죽었다.” 실제 사망한 것은 그의 형 루트비히였다. 러시아 석유산업의 선구자로 꼽히던 발명가이자 대부호가 57세에 심장마비로 숨진 것이다. 오보는 나중에 정정됐지만 파리에 살고 있던 노벨이 이미 기사를 읽은 후였다. ‘나는 죽은 후에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사실 그에게는 가문의 이름에 빛을 낼 필요가 있었을 터다. 아버지 이마누엘은 기술공학자로서 합판 제조용 회전 선반을 발명했으며, 러시아에서 군수 공장을 운영했다. 크림전쟁 당시 개선된 수중 기뢰를 납품해 번창했다. 노벨 본인은 새로운 유형의 폭약을 만든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생전에 355건의 특허를 냈는데, 니트로글리세린 기폭장치, 폭탄용 뇌관, 유명한 다이너마이트와 이보다 강력한 젤리 형태의 화약 젤리그나이트, 연기가 나지 않는 혼성무연화학(발리스타이트) 등이 포함된다. 당시 그의 나이는 55세였다. 화학자, 공학자, 발명가, 기업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스웨덴 과학한
  • [열린세상] 허리 30인치, 현실적인 마네킹이 왔다/황금주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열린세상] 허리 30인치, 현실적인 마네킹이 왔다/황금주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백화점이건 옷가게이건 옷을 사러 가면 늘씬한 몸도 모자라 주먹만 한 얼굴을 가진 마네킹이 반긴다. 무려 마네킹은 190㎝ 남성과 184㎝ 여성 모형이다. 이랜드의 SPA브랜드 스파오가 국내 최초로 현실 체형 마네킹을 비치했다. 이 마네킹은 남성 172.8㎝, 여성 160.9㎝이며, 허리둘레도 여성 29.9인치(기존 24인치), 남성 30.3인치(기존 28인치)다. 국내 25~34세 남녀의 평균 체형 데이터에 기반했다. ‘보디 포지티브’(자신의 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는 사회운동)는 미국에서 시작해 국내에도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보디 포지티브 캠페인의 일환으로, 사회적으로 부과된 미적 편견에 도전하기 위해 새로운 마네킹 제작 펀딩이 시작됐다. 오픈 5시간 만에 목표 대비 227% 금액이 모여 남녀 마네킹 각 2구씩을 제작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 관한 관심과 지지를 여실히 보여 줬다. 최근 해외 의류 브랜드를 중심으로 보디 포지티브 마케팅이 증가했다. 아메리칸 이글의 란제리 브랜드 에어리(Aerie)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몸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 보디 포지티브를 브랜드 정신으로 삼고 있다. 에어리는 광고에서 사진 보정을 하지 않으며, 다양한 체형의 일반
  • [열린세상] 오징어게임 속 ‘알리’/김세정 바르샤바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열린세상] 오징어게임 속 ‘알리’/김세정 바르샤바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두 유 노(Do you know) 강남 스타일? 두 유 노 김치? 강남 스타일이나 김치를 아느냐는 이 질문들은 한때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을 보면 바로 한다고 하는 대표적인 말들이었다. 강남 스타일과 김치가 그나마 외국에 알려진 한국의 문물이었으니, 다시 말해 한국에 대해서 아느냐는 질문이겠다. 하지만 이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쪽은 한국인들이 아니다. 아이 라이크(I like) 김치. 아이 라이크 비빔밥. 김치나 비빔밥을 좋아한다고 하고, 케이팝의 팬이라고 하고, 기생충을 봤다고 한다. 강남 스타일에 맞춰 춤춰 본 기억이 있다고, 한국 뷰티 제품을 좋아한다고, 한국은 꼭 가 보고 싶은 나라라고 외국인들이 먼저 말한다.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영국을 포함한 수십 개 나라에서 가장 많이 본 드라마로 등극했다고 한다. 심지어 ‘오징어게임’ 속에 등장하는 ‘달고나’를 만들 수 있는 세트가 여러 나라에서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외국인들이 코리아를 잘 알지 못하고, 한국 밖에서 한국 제품 광고판이나 한국산 자동차만 봐도 반갑던 시절의 기억이 있으니 공산품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이렇게 여러 나라에서 인기가 있는 상황을 보게 돼 일단 반갑다.
  • [열린세상] 기호학의 王, 사주/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기호학의 王, 사주/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김건희는 욕망과 권력의 기호가 됐다. “윤석열은 김건희를 만나서 정치하는 사주로 바뀌었다.” 김종인과 윤석열이 만난 자리에 동석했던 역술인의 해석이다. 세상은 김건희씨를 제발 조용히 내버려 둘 수 없나. 반윤석열 진영에서 그녀는 욕망의 기호가 됐고, 친윤석열 진영에서 그녀는 권력의 기호가 됐다. 이 역술인 말의 행간 의미는 대선 주자들 중 윤석열의 사주가 가장 좋고, 그것은 부인 김건희씨 덕분이라는 것이다. 이는 김건희라는 욕망의 기호(반윤석열)를 권력의 기호(친윤석열)로 치환하려는 고도의 계산된 전략이다. 포스트구조주의 기호학이 그토록 어렵게 설파한 명제를 이들은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 기호는 욕망이자 정치다. 우리 시대의 기호학은 빅데이터가 아닌가. 유발 하라리는 인간은 알고리즘에 불과하며 인간 집단의 알고리즘을 빅데이터로 알아낸다면 권력을 쥘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김종인은 빅데이터를 돌리지 않고 왜 사주로 미래 권력을 파악하려 하는가? 김종인은 이 역술인과 수십 년 지기이고, 그는 이미 3년 전에 이 역술인에게 윤석열의 관상을 물었다. 여야 정치인들의 사진과 사주 파일은 이 역술인 나름의 스몰(small) 데이터다. 사회과학자들도 참 불쌍하다.
  • [열린세상] 인플레이션, 내년이 더 걱정인 이유/장재철 KB국민은행 본부장·수석이코노미스트

    [열린세상] 인플레이션, 내년이 더 걱정인 이유/장재철 KB국민은행 본부장·수석이코노미스트

    인플레이션이 예사롭지 않다. 백신 접종 확대와 더불어 경제 활동이 재개되면서 물가 상승이 예상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통상 경제가 침체기에서 회복기로 진행되는 과정에는 생산과 고용의 병목 현상, 즉 원활한 생산 요소의 공급 부족이나 저조한 가동률 등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최근의 인플레이션에는 이러한 요인과 더불어 여러 다른 요인도 작용하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 전망에 따라 통화정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올해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으로 기존의 통화정책 기조를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브라질, 러시아에서는 연초부터 식품 가격과 환율,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최근까지도 각각 10%와 7% 내외의 높은 물가상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이들 국가의 중앙은행은 올해 들어 9월까지 이미 다섯 차례나 정책 금리를 인상했다. 미국도 인플레이션이 13년 만에 5%대로 상승해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은 지난 9월 올해와 내년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통화정책 수단인 양적완화를 올해 안에 축소하고, 정책금리인 연방기금금리의 인상 시점도 2023년에서 2022년으로 앞당길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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