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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중국이 미래라는 착각/최우선 국립외교원 교수

    [열린세상] 중국이 미래라는 착각/최우선 국립외교원 교수

    광해군은 현실주의자였다. 임진왜란 기간 분조(分朝)를 이끌면서 쌓은 외교 경험과 군사지식은 그를 명분론을 넘어선 현실주의자로 만들었다. 그는 기울어져 가는 명과의 전통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강력하게 부상하는 후금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외교정책을 추구했다. 거대한 패권경쟁 속에 광해군의 외교정책이 약자인 조선의 안위를 보장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조선의 정책과 상관없이 후금은 조선을 제압하고 경쟁자인 명과의 대결에 집중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두 국가의 패권경쟁 결과가 불확실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후금과의 충돌을 피해야 하는 상황에서 광해군의 정책은 전략적으로 최선의 선택이었다. 광해군이 반정으로 제거된 후 인조와 집권세력은 더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한 후금을 적대하는 친명정책을 추진했다. 명분론에 따른 이러한 비현실적인 정책은 병자호란의 비극이 발생하는 데 기여했다. 1633년 후금은 전략회의에서 몽골, 명, 조선 중 조선을 마지막 공격 대상으로 결정했다. 이미 명과의 육로 연결이 단절된 가장 약한 조선을 먼저 공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1627년 정묘호란을 경험한 이후에도 조선은 점차 보다 분명하게 친명정책을 추진했다.
  • [열린세상] 日 후쿠시마 방류, 한국 요구 적극 수용해야/김숙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열린세상] 日 후쿠시마 방류, 한국 요구 적극 수용해야/김숙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2011년 3월 11일 토요일 오후 2시가 지날 무렵. 일본 센다이에 있는 도호쿠대에서 근무하던 나는 역사상 가장 강력했다는 지진을 경험했고, 그날 저녁 방송에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장면을 보게 됐다. 그 순간 대지진과 쓰나미가 더 큰 재앙으로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정부나 도쿄전력은 원전의 상황, 방사능 피해, 향후 대응 등에 대해 제대로 언급하지 못했고 심지어 정부와 도쿄전력이 심각한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결국 알 수 없는 방사능 피해 등에 대한 공포와 우려 속에 생활 터전을 떠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방사능에 대한 우려로 후쿠시마현, 미야기현 등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을 기피하는 현상이 생기기도 했다. 일본 정부나 지방 정부 역시 이러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풍평피해(風評被害)는 고스란히 생산자와 소비자의 몫이 됐다. 나는 당시의 상황을 겪으면서 세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일본은 위기 사태에서 초동대응이 미비하다는 것. 둘째, 매뉴얼에 없는 상황에는 대응도 설명도 없다는 것. 셋째,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그 지역만의 상황으로 국한시킨다는 것이다. 한국
  • [열린세상] 50년 만에 바치는 헌화, 간디에게/이종수 연세대 행정대학원장

    [열린세상] 50년 만에 바치는 헌화, 간디에게/이종수 연세대 행정대학원장

    코로나 뒤의 극한호우와 폭염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의 여주가 38.4도를 기록했고, 이탈리아 시라쿠사는 48.8도까지 올랐다. 이마저도 올해가 제일 시원한 해가 될 것이고, 지구는 더 뜨거워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지구가 이미 회복할 수 없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지났고, 2050년에는 인간이 거주하기 힘든 상태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지구의 위기를 보며 나는 간디의 책을 찾았다. 간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비폭력 평화사상으로 인도의 독립을 이끌어 타고르가 ‘마하트마’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경외심이 생겼지만, 그가 산업화에 반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마음을 반쯤 닫았다. 산업화로 인류가 이만큼 번영하게 됐는데 반대라니. 그래서 오늘날 인도가 뒤처진 게 아닐까. 인위적으로 산업 발전을 멈출 수가 있을까.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인류가 생존을 위협받는 지금에 이르러 나는 50년 만에 간디를 읽기 시작했다. 그는 왜 산업화에 반대했을까. 혹시 간디가 옳았던 게 아닐까. 그는 산업화로 불평등과 착취, 인간성과 도덕의 상실, 자연의 붕괴가 나타나 인류는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 [열린세상] ‘방송 장악’의 내로남불/유창선 정치평론가

    [열린세상] ‘방송 장악’의 내로남불/유창선 정치평론가

    과거 이십 수년간 방송을 통해 시사평론을 했기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들이 변신하는 흑역사를 한복판에서 지켜보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광우병 촛불정국이 일단락된 뒤 나는 공영방송의 많은 프로그램에서 줄줄이 하차 통보를 받았다. 나름 균형을 지켜 가며 방송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에 출연을 많이 했다는 ‘원죄’ 때문에 사실상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셈이다. 방송을 생업으로 여겼지만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보수 정부 9년의 시간 동안 눈에 덜 띄는 방송들에서 근근이 명맥만 유지했다. 그러다가 ‘촛불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나도 ‘박근혜 탄핵’에 촛불을 들었던 사람이었기에 이제는 정상적인 방송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 물정 모르는 착각이었다. 그쪽 진영의 눈에 비친 나는 ‘친문’이 아니었다. KBS, MBC, TBS 같은 공영적 방송들은 온통 ‘친문’ 인사들로 가득 채워졌다. 언젠가 TBS의 방송 진행자 명단을 접했을 때 ‘이건 문재인 캠프 방송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친문’이 아닌 사람에 대한 배제는 보수 정부 시절에 겪었던 배제보다도 더 철저했다. 방송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했기에 방송을 무슨
  • [열린세상] 동일노동 동일임금, 긴 입법화 여정에 앞서/이지만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열린세상] 동일노동 동일임금, 긴 입법화 여정에 앞서/이지만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노동개혁 핵심 과제인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기업 간의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개정안 제33조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문화했다. 올해 5월에는 여당 의원이 근로기준법 제6조(균등한 처우)의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권을 달리하면서 여야 모두가 법제화에 나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중노동시장 개혁이 절실하다는 방증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과도하니 같은 일을 하는 근로자는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은 설득력을 가진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실행 가능성과 방법에 대한 우려가 상당하다. 그 우려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헌법에 명문화된 점과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차별적 처우의 대상인 남녀의 성,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에 고용 형태를 추가한 데서 비롯된다. 최근 정규직과 비정규직 같은 고용 형태는 사회적 신분과는 다른 범주라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근로자 개인의 노력과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고용 형태를 귀속 지위에 가까운 성별, 국적, 신앙 그리고 사회적 신분과 동등하게 볼 수 없다는 판결이다. 만약 고용 형태라는
  • [열린세상] AI 시대의 데이터 정책 방향/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열린세상] AI 시대의 데이터 정책 방향/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지난해 말 챗GPT(대화형 인공지능)가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난 상태다. 관련 시장 영역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들은 기술개발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기술변화의 빠른 속도를 반영해 비즈니스 생태계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챗GPT를 이용한 일종의 응용 서비스인 ‘플러그인’ 서비스는 이미 700개 넘게 제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기 중인 서비스를 고려하면 앞으로 그 숫자는 계속해 늘어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이 영역에 대한 규율 체계의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과 문제 제기가 국내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는 곧바로 데이터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유용한 데이터를 확보해 학습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 관건이기 때문이다. 학습 데이터를 구축한 뒤에도 인공지능 모형을 마련해 가는 과정 그리고 그 후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의 거의 모든 단계에서 데이터는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인공지능 모형을 마련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각각의 단계에서 세심하게 주의하지 않으면 결과에 편향이나 오류가 나타나게 되는 것을 포함해
  • [열린세상] ‘한국형 바이오 빅데이터’를 위한 제언/양성일 고려대 특임교수ㆍ전 보건복지부 1차관

    [열린세상] ‘한국형 바이오 빅데이터’를 위한 제언/양성일 고려대 특임교수ㆍ전 보건복지부 1차관

    바이오 빅데이터는 신약 및 의료기기 개발, 맞춤형 의료, 건강관리 서비스 등에 활용되는 국가 전략 자산이다. ‘국가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은 참여자 동의를 기반으로 혈액, 소변, 조직 같은 검체를 확보하고 100만명 규모의 임상 정보, 유전체 등 오믹스 데이터, 공공 데이터, 개인 보유 건강 정보를 통합한 연구개발(R&D) 인프라로 ‘데이터뱅크’를 구축해 연구자들에게 개방하는 사업이다. 미국ㆍ영국 등 주요 선도국은 바이오·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해 인공지능(AI)과 데이터 기술 융합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은 2018년부터 ‘올 오브 어스’(All of us)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해 100만명을 목표로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데 현재 65만명이 모집됐다. 영국은 UK 바이오뱅크를 통해 일반인 50만명,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암·희귀 질환자 10만명을 모집했고 앞으로 500만명까지 확대할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환자 기록의 98%가 전산화돼 있는 핀란드는 2017년부터 올해까지 50만명의 데이터를 생산해 9개의 대형 제약회사들과 공동 참여 방식으로 혁신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열린세상] 글로벌 기후위기가 식량위기인 이유/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장

    [열린세상] 글로벌 기후위기가 식량위기인 이유/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장

    세계적으로 역대급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이제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극한기후에 대한 뉴스가 전혀 낯설지 않다. 얼마 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지역에서는 지름이 10㎝나 되는 야구공만 한 우박이 떨어져 인명 피해가 나고 많은 가축이 폐사했다. 베이징과 허베이 등 중국 북부 지역에서는 기상관측 사상 처음으로 기온이 연속 40도를 넘는 폭염과 가뭄으로 우리나라 전체 농경지 면적의 2배에 해당하는 300만ha의 농경지에 심은 농작물이 피해를 봤다. 파나마에서는 극심한 가뭄으로 수위가 낮아져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글로벌 물류 요충지인 파나마운하의 선박 통행이 제한되면서 미국, 브라질 등 주요 농축산물 수출국의 화물 운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적 곡창 지대인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등 남미에서는 극심한 가뭄으로 올해 곡물 수확량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우리나라도 전국적인 집중호우로 인명 피해와 농작물 침수, 가축 폐사, 농경지 유실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렇듯 전 세계에서 가뭄, 홍수, 태풍, 폭설, 우박, 산불 등 자연재해가 빈번히 발생할 뿐만 아니라 그 강도도 세지고 있다. ‘예전에 경험했던 기후가 아니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기후위
  • [열린세상] 얼마 버냐? 사람의 쓸모를 이야기하는 세상/박준영 변호사

    [열린세상] 얼마 버냐? 사람의 쓸모를 이야기하는 세상/박준영 변호사

    ‘스승의 날’ 특집이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 국영수 일타강사들이 출연했다. MC들은 “일타강사가 되려면 얼마 정도 걸리냐”, “과목별로 매출이 다르냐”, “EBS에서는 강의료를 받냐, 출연료를 받냐”는 등의 질문을 이어 가다가 “일타강사는 얼마 정도 버냐”며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한 일타강사가 “메이저리그 선수들 중 나와 연봉이 비슷한 사람이 많다”고 답하자 MC들은 “그럼 100억 넘겠다”고 감탄했고, “100억이 넘는지만 말해라”라고 채근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악기’를 묻는 질문이 있었다. 지휘자는 작곡가의 의도를 해석하고 연주자에게 전달해 응집력 있는 연주를 만드는 역할을 담당하는 예술가다. 대규모 음악가 그룹을 관리하는 뛰어난 커뮤니케이션과 리더십에 대한 질문이 아쉬웠다. 악기별로 줄 세우려는 질문에는 연주자인 사람도 배제된다. 모든 노동에 대해 ‘얼마짜리’인지를 묻는 사회가 돼 가고 있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과 예술도 별 문제의식 없이 돈으로 평가한다. 이렇게 변해 가는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돈으로 드러낼 수 없는 사람,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은 설 자리를 잃어 간다. 사람 대접 못 받는다
  • [열린세상] 고준위 방폐장, 숙의 주민투표에 부치자/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열린세상] 고준위 방폐장, 숙의 주민투표에 부치자/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새들은 배설물에 매우 예민하다. 어미 새는 새끼의 배설물을 삼키거나 내다 버린다. 배설물은 포식자를 부르는 위험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배설물은 청결과 위생을 위해 관리된다. 그런데 원자력발전의 폐기물 처리는 사뭇 다르다. 새들과 같이 안전에 초점을 둔다.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 건설을 서두르는 것도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우리는 1986년부터 37년 동안 방폐장 건설을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다행히 중저준위 방폐장은 2005년 파격적 지역발전 약속에 힘입어 경주시로 결정됐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장 건설 특별법은 여전히 국회 상임위에 표류해 있다. 여야 간 의견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임시저장시설의 규모, 임시저장시설에 대한 주민 지원, 고준위 방폐장과 중간저장시설의 건설 시점 명시 등 세 가지가 쟁점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한시 바쁜 특별법의 발목을 잡을 만큼 중대한 사안인지 의문이 든다. 어렵사리 특별법을 제정해도 방폐장 건설까지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 관문은 주민 수용성이다. 하루빨리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주민 수용성 확보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우선 기술적 안전과 사회적 안심을 붙잡아야 한다. 주민들이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반대
  • [열린세상] 한국 민주주의, ‘국민 서사’ 충돌의 연무장/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

    [열린세상] 한국 민주주의, ‘국민 서사’ 충돌의 연무장/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

    민주화란 무엇보다도 사회 갈등을 억압하는 체제에서 그것을 개방하는 체제로의 정치적 이행을 뜻한다. 그 과정에서 억눌렸던 시민 대중의 불만이 아래로부터 분출하면 정치 엘리트는 득표를 극대화하기 위한 쟁점을 위로부터 선별한다. 선거를 반복해 시민 대중의 불만 표출과 정치 엘리트의 득표 전략이 맞물려 돌아가면 정당 체제는 결국 그 사회의 중대 정치 균열을 내장하기에 이른다. 정당이 무엇을 둘러싸고 경쟁하는지가 그 나라 민주주의의 속성을 규정하는 연유(緣由)다. 민주주의를 개시한 한국에는 종족, 인종, 언어, 종교 등 전근대사회에서 비롯한 정치 갈등의 수원(水源)이 애초에 부재했다. 계급, 도농, 환경, 인권 등 근대사회가 배태한 정치 갈등의 수준 또한 비교적 온건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정당이 정책 경쟁의 대립축으로 세워야 할 사회 균열의 소재가 꽤나 빈곤했던 셈이다. 한국의 민주화가 사회적 차원에서 내란이나 소요 등 커다란 격동 없이 순탄하게 진전한 까닭이다. 다만 그 대가를 정치적 차원에서 정당의 파괴적 양극화로 치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의 정당 경쟁에서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은 누가 국민국가의 구성원 자격을 갖는지를 둘러싼 ‘국민
  • [열린세상] 서울시 경제 활성화와 ‘캠퍼스타운’/이창원 한성대 총장·한국행정개혁학회 이사장

    [열린세상] 서울시 경제 활성화와 ‘캠퍼스타운’/이창원 한성대 총장·한국행정개혁학회 이사장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화두 중 하나는 인구 감소 문제인데, 서울 역시 예외는 아니다. 2008년 1020만여명 수준의 서울 인구는 2023년 2월 기준 942만여명으로 감소했다. 2022년 전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는 충격적인 수치를 기록한 가운데,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9명으로 전국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대학의 위기 또한 심각하다. 2023년 신입생 충원율이 80% 미만인 대학이 44곳에 달하면서 대학 소멸 문제가 현실화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도 같은 상황이 나타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나마 비수도권 소재 대학은 교육부가 추진 중인 ‘지역혁신 중심 대학 지원체계’(RISE) 사업과 글로컬 대학 사업을 통해 대학이 소재한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적극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 역시 인구 감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학과 함께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7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서울캠퍼스타운’ 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대학 및 기초자치단체와 협력해 서울 소재 54개 대학에서 28개 캠퍼스타운 1963개 창업팀이 활동 중이다. 대학의 젊은 창업 인력이 지역에 정주하고, 골
  • [열린세상] 日 원자력 폐기물 방출, 새 국제규범 마련돼야/이석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日 원자력 폐기물 방출, 새 국제규범 마련돼야/이석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4일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조치와 관련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종 보고서가 제출·공개됐다. 예상했던 대로 일본의 방류 조치가 국제 기준에 부합하며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IAEA는 방류가 어디까지나 일본 정부가 결정한 방침이며, 보고서는 이 방침을 추천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고도 밝혔다. IAEA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오염수 처리 계획에 대한 과학・기술적 검토 내용에 대해 오염수 처리가 계획대로 지켜진다면 배출 기준과 목표치에 적합하며 IAEA 등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는 종합 평가와 함께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원전 오염수 방류에 따라 가장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 가운데 하나인 한국으로서는 매우 소극적인 대응이다. 방류 자체가 30년 이상 지속된다는 점을 감안하고 가장 중요한 해양 생태계 및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가 미흡한 상황에서 우리의 당연한 주권적 권리가 보다 구체적으로 행사돼야 한다. 많은 논쟁이 해소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IAEA 최종 보고서는 국제기구가 가지고 있는 대외적인 공신력으로 인해 방류된
  • [열린세상] 미 연방 대법원과 민주적 정당성/서정건 경희대 교수

    [열린세상] 미 연방 대법원과 민주적 정당성/서정건 경희대 교수

    미국의 연방 대법원에는 9명의 종신 대법관이 있다. 사망이나 사퇴로 공석이 생겨야 대통령이 새 대법관을 지명하고 상원이 승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당시 상원 다수당이었던 공화당은 대법관 인준에 적용되던 필리버스터를 폐지하고 단순 다수결 방식으로 바꾸었다. 60명 이상의 상원 의원 찬성을 얻어야 했던 전통을 무시하고 양극화 경쟁에 과반만 가지고도 대법관 승인을 위한 상원 권력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현재 연방 대법원은 6명의 보수 성향 대법관과 3명의 진보 성향 대법관으로 짜여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4년 임기 동안 무려 3명의 보수 대법관을 새로 충원해 대법원 구도를 완전히 바꿔 놓은 결과다. 트럼프는 평소 예측불허의 언행과 달리 정통 보수 대법관만을 연달아 지명함으로써 공화당 전체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더구나 이번 연방 대법원은 미국 사회에 오랫동안 자리잡았던 다양한 사회적 합의들을 지난 1년 사이에 완전히 뒤엎고 있는 중이다. 우선 지난해 6월 연방 대법원은 전국적으로 낙태를 허용했던 1973년 결정을 뒤엎고 미국 50개 주가 임신중절에 대해 각자 결정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낙태를 예외 없이 불
  • [열린세상] 글로벌 공동 R&D센터 유치 시급하다/송경진 전 세계경제연구원장

    [열린세상] 글로벌 공동 R&D센터 유치 시급하다/송경진 전 세계경제연구원장

    지난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방중 사흘 전 핵심 공급망 다변화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3일 중국 상무부와 관세총국은 중국이 전 세계 공급의 94%와 90%를 각각 차지하는 갈륨과 게르마늄 및 관련 화합물 수출 시 새달 1일부터 당국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 일본, 네덜란드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대한 중국의 대응 조치다. 미중 경쟁이 본격화된 이후 2020년 제정된 중국 ‘수출통제법’의 첫 적용 사례다. 수출 통제 조치가 장기화되면 갈륨과 게르마늄의 글로벌 가격 상승과 첨단기술 상용화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갈륨은 차세대 반도체, 전자기기, 태양광 패널, 전기차 등에 주로 쓰인다. 게르마늄은 광섬유통신, 야간투시경, 인공위성용 태양전지 등에 활용되는 핵심 광물이다. 향후 지정·지경학적 환경 변화에 따라 핵심 광물과 희토류 공급망을 장악한 국가들의 수출 제한 조치, 국유화 등 자원의 무기화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욱이 핵심 광물과 희토류는 4차 산업혁명 가속화와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전환에 절대적이다. 경제성장과 국가경쟁력에 직결되는 문제다. 따라서 특정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 감소 노력
  • [열린세상] 오래 가는 놈이 더 전략적이다/이건호 에이빅파트너스 대표

    [열린세상] 오래 가는 놈이 더 전략적이다/이건호 에이빅파트너스 대표

    오랜만에 펼쳐 본 손자병법에서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적군에게 지지 않도록 할 수는 있지만 적군을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할 수는 없다’는 난해한 문장을 만났다.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적군에게 지지 않도록 할 수는 있지만”이라는 부분은 뛰어난 전략과 전술을 가진 사람은 적군에게 패배를 당하지 않을 정도로 잘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략적 사고, 군사적 지식, 예견력 등을 통해 상황을 분석하고 대응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적군을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할 수는 없다”라는 부분은 뛰어난 전략과 전투력을 가진 사람도 반드시 모든 상황에서 적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은 다양한 요소들로 인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운, 우연, 예상치 못한 사건 등으로 인해 상황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잘 준비하고 노력하더라도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승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 이 말대로라면 패배는 오롯이 ‘내가 잘못해서’ 생기는 것이지만 승리는 항상 ‘내가 잘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럴듯하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최악의 결과를 내지 않도록 할 수는 있지만 경쟁자를 이기고 목표를
  • [열린세상] ‘오염수 괴담’을 대하는 방법/유창선 정치평론가

    [열린세상] ‘오염수 괴담’을 대하는 방법/유창선 정치평론가

    2008년 광우병 집회 때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를 외쳤다. 미친 소가 쓰러지는 장면을 TV에서 봤기에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사람도 미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식당과 마트에서 미국 소고기를 사 먹는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제는 광우병 공포를 말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미국 소고기를 먹을 때면 15년 전 모습이 떠올라 스스로 민망해질 때가 있다. 사실 그때 나는 광우병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전문가라는 학자들과 언론이 주는 공포에 겁이 났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당시 내가 싫어하던 이명박 정부를 코너로 몰아가고 싶은 생각도 컸다. 사람에게서 광우병이 발병할 가능성이 실제로 얼마나 되는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가 공표됐고 일본의 방류는 이제 시간문제가 됐다. 그런데 방류를 앞두고 천일염이 ‘사재기’로 품귀 현상을 빚고 가격도 급등했다고 한다. 삼중수소수는 햇빛을 받으면 증발하기 때문에 소금에 남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이 있지만, ‘핵폐수’라는 정치인들의 말 앞에서 불안해하는 국민들이 많다
  • [열린세상] 복잡한 신상 공개 속도전, 진짜 배경은/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열린세상] 복잡한 신상 공개 속도전, 진짜 배경은/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우리나라도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이 신문에 실리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까지도 그러했다. 피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2005년 ‘인권 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 규칙’이 제정되면서 피의자들에게 얼굴을 가릴 마스크나 모자, 점퍼 같은 것이 제공됐다. 그러다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얼굴과 신상이 신문에 공개되면서 ‘국민의 알권리’ 요구가 커졌고, 2010년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을 통해 신상 공개 제도가 도입됐다. 현재 피의자 신상 공개는 일부 강력범죄에 한해 심의위원회의 판단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최근 1심에서 징역 20년이 선고된 ‘귀가 여성 살인미수 사건’과 얼마 전 살인으로 기소된 ‘정유정 사건’이 도화선이 돼 지금의 협소한 신상 공개 제도를 손보자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은 이에 화답하며 관련 법안을 여러 개 쏟아냈고, 국민권익위에서도 설문조사에 착수했다. 신상 공개 확대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음에도 제도 변화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음은 단순히 장점ㆍ단점을 손익계산하듯이 따질 수 없는 복잡한 쟁점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현재 피의자에 국한돼 있는 신상 공개를 재판 중인 피고인에게까지 확대하자는 것이다. 아직
  • [열린세상] 지식의 혼돈/박준영 변호사

    [열린세상] 지식의 혼돈/박준영 변호사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지식이 사회의 공공재로서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경우 그 사회는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지표가 없는 것과 같다. 상반되는 주장이 대립되는 경우 그 시비를 가릴 준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지식에 대한 불신을 낳고 다시 지식 자체에 대한 회의로 굳어진다. 이것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지식사회의 총체적 혼란이며 지적 공동화다. 신영복 선생이 22년 전 쓴 칼럼의 일부다(2001년 9월 21일 중앙일보 ‘지식의 혼돈’). 오늘날 지식사회의 혼란은 더 커진 모양새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지식이 불신받는 모순 속에 살고 있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9주기를 맞았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에 대한 ‘공인된 설명’을 정립하지 못했다. 참 답답하다. 침몰 원인과 관련해 무리한 증개축, 화물 과적, 화물의 부실 고박, 복원성 불량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이른바 ‘내인설’과 잠수함 등 외부 충격의 영향으로 침몰했다는 ‘외인설’이 대립하고 있다. 2017년 3월부터 1년 4개월간 활동한 세월호 선체 조사위원회는 의결 과정에서 과반 의결인데 위원 2명이 기피 또는 기권했다고 한다. 나머지 6명이 내인설과
  • [열린세상] 특별자치, 이름에 걸맞은 실속 보장해야/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열린세상] 특별자치, 이름에 걸맞은 실속 보장해야/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우리나라 지방정부는 ‘출구 없는 방’에 갇혀 있다고 비유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데미안 파워 감독은 영화 ‘노 엑시트’(No Exit)’에서 더이상 물러날 수 없는 ‘닫힌 방’으로 묘사했다. 지방분권은 더디고 소멸 시계는 빨라져 대다수 지방정부가 절망 상태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그나마 최근 적잖은 지방정부가 ‘특별자치’라는 카드로 출구를 찾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지난 11일 강원도는 제주도와 세종시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특별자치의 지위를 얻었다. 전라북도는 특별법이 이미 제정돼 2024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고, 충청북도와 경기도(경기북부특별자치도) 역시 특별자치도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강원과 전북 등은 특별자치의 간판만 바꿔 달았을 뿐 실속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문 수를 비교하면 제주도는 481개인 데 비해 강원도는 84개이고, 세종과 전북은 각각 28개와 30개에 불과하다. 강원도의 특례는 제주도의 20%에도 미치지 못하고 세종과 전북은 겨우 구색만 갖춘 모양새다. 기왕에 중앙의 권한을 대폭 이양해 지역의 자립 역량을 키울 요량이라면 특별자치의 이름에 어울리는 내용을 채워야 한다. 무엇보다도 강력한 재정특례를 담아야 한다. 제주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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