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 [열린세상] 인류 첫 ‘컴퓨터’ 작동한 시점이 기원전?/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열린세상] 인류 첫 ‘컴퓨터’ 작동한 시점이 기원전?/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인류 최초의 컴퓨터로 꼽히는 금속 유물이 있다. 태양과 달을 포함한 천체의 위치를 계산, 예측하는 기능을 갖췄다. 1901년 그리스의 안티키테라섬 근해의 난파선에서 인양된 ‘안티키테라 장치’다. 최신 컴퓨터 단층 촬영과 고해상도 표면 스캔을 통해 37개의 톱니바퀴(기어)와 사용설명서의 일부가 나타났다. 그동안의 조사 결과를 보자. “손잡이를 하나 돌리면 바늘이 문자판 둘레로 움직이며 태양이 운행하는 황도 12궁도에서 태양과 달의 위치를 나타낸다. 또한 태양력, 달의 위상, 19년 주기의 달ㆍ태양 달력(메톤력)에서 지금이 어느 해 어느 달에 속하는지 등을 표시한다. 일종의 수동식 컴퓨터로서 기원전 220~6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로 복잡한 기계 장치는 14세기에 월링퍼드의 리처드와 조반니 데 돈디의 천문 시계가 나올 때까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이 계산을 시작한 시기를 특정한 그리스 연구팀의 논문이 지난달 28일 ‘아카이브’(arxiv.org)에 발표됐다. 기원전 178년 12월 23일이라는 것이다. 영국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 4월호를 보자. 논의의 출발점은 이 장치 뒷면에 새겨진 나선 형태가 사로스(Saros)라 불리는 223
  • [열린세상] 죽은 왕실의 사회, 살아 있는 시민의 사회/양동신 건설인프라 엔지니어

    [열린세상] 죽은 왕실의 사회, 살아 있는 시민의 사회/양동신 건설인프라 엔지니어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은 멀게만 느껴졌던 조선 왕조의 인간미를 입체감 있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비록 임오화변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이루어 냈던 영정조의 안정적인 치세도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드라마가 종영되고 나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융건릉을 찾아갔다. 융건릉은 정조는 물론 장조(사도세자), 헌경왕후(혜경궁홍씨) 등 다양한 인물들이 합장돼 있는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융건릉의 면적은 84만㎡가량 된다. 2만 가구 정도의 아파트가 들어설 수 있는 크기의 땅이다. 산책길은 3㎞가량 되는데 울창한 수목을 따라 천천히 조선의 기억을 더듬으며 걸으니 한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이어 융건릉 앞으로 나오니 20여년 전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청계천 건설을 위해 필요한 상사모형을 융건릉 인근의 실험실에서 만들었는데, 연구를 하다 보면 밤늦은 시간까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화성시는 아직 많이 발달되지 않은 지역이었고, 종종 차가 끊겨 고생한 기억이 살아났다.  하지만 다시 융건릉이 위치한 화성의 모습을 들여다보니, 그 예전의 발달되지 않은 지역이 아니었다. 서쪽으로는 봉담신도시가 있고
  • [열린세상] 런던 521번 버스의 풍경, 품격/김세정 바르샤바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열린세상] 런던 521번 버스의 풍경, 품격/김세정 바르샤바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팬데믹 이전 런던 시내로 출퇴근하던 시절 타고 다니던 521번 버스는 워털루에서 홀본과 뱅크를 거쳐 런던브리지까지 간다. 사무실이 많은 동네를 거쳐가는지라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버스다. 출발점인 워털루에서부터 꽉 찬 채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살짝 특이한 점은 앞문과 뒷문으로 두 줄을 서는 것이다. 그 출근길에 휠체어를 탄 젊은 흑인 여성을 종종 마주치곤 했다. 휠체어를 탄 이 여성이 버스 운전기사에게 자기가 탑승할 것이라는 걸 알리고 뒷문 쪽으로 가면 버스 운전기사는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도록 경사로를 내려 준다. 뒷문을 닫은 상태에서 운전석에서 경사로 조작 버튼을 누르면 경사로가 천천히 내려온다. 버스 운전기사에 따라 대응 방식이 좀 다르기도 했다. 앞문은 열어 주고 뒷문만 닫은 채 경사로를 내려 주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뒷문 쪽으로 줄을 선 사람들은 휠체어가 올라탈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앞문 쪽의 사람들만 버스에 올라탈 수 있다. 어떤 운전기사는 앞뒤 문을 모두 닫은 채 경사로를 내리고 뒷문을 열어 휠체어가 우선 타고 난 후에야 앞문을 열어 주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앞문 뒷문 줄 모두 타지 못하고 같이 휠체어가 자리잡기를 기다리는 거
  • [열린세상] 교육은 백년대계가 아니라 백년대전이다/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교육은 백년대계가 아니라 백년대전이다/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캘리포니아대학 체제는 전 세계인이 가장 부러워하는 대학 체제다. 3차 산업혁명의 전진 기지로서 캘리포니아 전역에 세계적인 대학 10개를 만들어 탁월성, 민주성, 공공성을 동시에 확보한 완벽에 가까운 대학 체제이기 때문이다. 1868년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이하 버클리)가 처음 세워졌고, UCLA가 1919년 세워졌다. 연구 중심 대학을 캘리포니아 전역에 만든 캘리포니아대학 마스터플랜은 1960년 완성됐다. 그야말로 백년대계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대학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백년대계가 아니라 ‘버클리 독재’에 맞선 백년대전(百年大戰)이었다. 수백 명의 전사들과 복잡다단하고 우여곡절이 많은 역사지만 이 긴 전쟁의 양대 진영은 버클리의 독점을 지키려는 버클리 세력과 이 독점을 깨려는 정치인 세력으로 나눌 수 있다. 캘리포니아의 ‘서울대’이자 유일한 ‘캘리포니아대학’이었던 버클리는 자신의 독점을 지키기 위해 두 번째 캘리포니아대학인 UCLA의 설립을 줄기차게 반대했다. 1849년 골드러시로 미국 전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인구 측면에서 캘리포니아 북부 지역이 정치의 중심이었다. 민주주의는 ‘쪽수’의 정치다. 20세기 초 인구가 늘어난
  • [열린세상] 늙었다고 사과하지 마/박산호 번역가

    [열린세상] 늙었다고 사과하지 마/박산호 번역가

    두어 달 전에 바다가 보고 싶어 강원 강릉에 갔다. 호텔 방에 도착해 막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장롱 위에 있는 뭔가를 꺼내려고 의자를 놓고 올라갔다가 넘어져서 크게 다치셨는데 지금 와줄 수 있냐고. 나는 사정을 설명하고 최대한 빨리 올라가겠다고 했다. 언제나 그렇듯 사고는 느닷없이 들이닥친다. 엄마는 굉장히 바지런하고 활동적이며 독립적인 분이셨다. 평생 두 딸을 키우느라 낮잠 한 번 자본 적 없고, 안 해 본 일이 없다. 나이 들어선 하루 두 시간씩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건강을 관리하고, TV 건강 프로그램에 나오는 의사들이 치매 예방에 좋다고 권하는 음식은 항상 작은 수첩에 적어 놨다가 챙겨서 먹었다. 그런 엄마가 넘어져서 팔목이 부러지고 몇 년 전에 인공 관절 수술을 받은 고관절에 금이 가서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그렇다. 아무리 정정하다 해도 엄마는 결국 골다공증에 걸린 일흔여섯의 노인인 것이다. 팔목 수술은 했지만 고관절은 다시 수술하기 불가능해서 일단 뼈가 붙을 때까지 기다리고 보자는 의사의 말에 엄마는 절망했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금지된 나는 결국 일주일 만에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엄마는 그동안
  • [열린세상] ‘과학적 불확실성’이라는 재난/안소은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 ‘과학적 불확실성’이라는 재난/안소은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992년은 환경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해다. 1987년 ‘우리 공동의 미래’에서 제시된 지속가능발전의 개념이 리우선언문(Rio Declaration)과 의제 21로 구체화됐기 때문이며, 기후변화협약과 생물다양성협약이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글로벌 환경 논의의 근간에는 리우선언문이 있다. 기후변화협약과 생물다양성협약은 국제환경협약을 이끌어 가는 두 개의 축이다. 리우선언문은 28개의 원칙으로 구성돼 있는데 제15원칙인 ‘사전예방의 원칙’은 환경오염의 특성과 맞물리기 때문에 다른 어떤 원칙보다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사전예방의 원칙을 풀어서 쓰면 ‘각 국가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능력에 따라 예방적 조치를 널리 이행해야 하며, 특히 심각한 또는 회복 불가능한 피해의 우려가 있을 경우 과학적 불확실성이 환경 악화를 막기 위한 조치를 지연시키는 구실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원칙의 전반부는 환경보호 조치는 개별 국가가 처한 상황과 역량에 따라 이행하되 사전적인 예방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일반론에 가깝다. 따라서 국가의 환경 상태에 대한 진단, 즉 과학적 증거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도적 역량을 고려해 적절한 정
  • [열린세상] 재능만으로는 안 된다고/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열린세상] 재능만으로는 안 된다고/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페북에 그림을 아무런 설명 없이 올린 적이 있다. 팍팍한 삶에 위안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그림을 선택했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여성화가들에게 집중하게 됐다. 전공자인 나도 처음 보는 화가와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작품은 매우 뛰어났고 작가의 생애도 흥미롭다. 이들은 미술사에 획을 긋는 작품을 만들고도 역사 서술에서 배제됐다. 우리가 이들을 몰랐던 건 이 때문이다. 현상만 보자면 아무 맥락 없이 여성화가들이 불쑥 솟아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분명 이유가 있겠다. 눈에 띄는 건 당시 북구의 여성인권운동과 교육 현황이다. 핀란드 1906년, 노르웨이 1913년, 덴마크 1915년, 스웨덴은 1921년에 여성 참정권이 주어졌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훨씬 빠르다. 그곳에서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은 동반 성장했다. 예술교육에서의 젠더 평등도 이례적으로 빠르게 이루어진다. 다른 유럽 국가의 예술 아카데미에서 여성을 받지 않았을 때인 19세기 중반에 이미 북구에선 여성들을 위한 수업을 만들거나, 미술학교를 세우면서 처음부터 남녀를 동등하게 교육했다. 25세 이상의 여성을 성인으로 인정하는 법률이 19세기 중반에 만들어지면서 여성들이 자신의 미
  • [열린세상] 제7광구, 한일 관계의 쓰나미가 몰려온다/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열린세상] 제7광구, 한일 관계의 쓰나미가 몰려온다/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 가려 한다. 정치와 외교, 안보, 국민감정 등 한일 관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만한 문제다. 정확히는 석유가스자원 공동개발을 위해 1974년 체결한 ‘한일 남부대륙붕 공동개발협정’. 우리에게는 제7광구로 익숙하다. 우리나라가 설정한 제7광구와 5광구, 일본이 설정한 제3광구를 절충한 지역이다.  1970년대 한일 대륙붕 경쟁은 첩보전과도 같다. 1969년 유엔 극동경제위원회(ECAFE)는 동중국해 대륙붕이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유전이라고 발표했다. 대만과 한국, 일본이 앞다퉈 해저광구를 설정했고 총 17개 중 13개 광구가 중첩됐다. 마침 국제사법재판소는 육지의 자연적 연장 원칙이 대륙붕 경계에 고려돼야 한다는 기준(1969년 북해 대륙붕 사례)을 창출했다. 중간선을 주장하는 일본에는 불리했고, 우리에겐 희소식이었다. 그러나 1973년부터 시작된 제3차 유엔해양법회의는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이라는 새로운 거리개념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일본에 호재였다.  정치가 가동됐다. 양국은 총 8만 2557㎢를 공동개발구역으로 설정했다. 석유 파동도 한몫했다. 협정은 기본적으로 50년을 기준으로 한다. 1978년 발효됐으니 2028년 50년을 맞는
  • [열린세상] 날개라도 만들어 입으라는 건가/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열린세상] 날개라도 만들어 입으라는 건가/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하늘을 나는 꿈을 꿀 때가 있다. 한 번도 맨몸으로 하늘을 날아 본 경험이 없는데도 꿈속에서는 어찌나 신이 나는지 360도 공중회전도 자유자재다. 그 꿈을 꾼 날이면 가고 싶은 곳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단순한 장소 이동의 의미가 아닌 그 사람 안의 자율성이 온전히 발현되는 의미라는 것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약 8년 전인 2014년 3월 휠체어나 유아차를 이용하는 교통약자 몇 명이 모여 대한민국과 서울시, 경기도, 교통사업자를 상대로 시외(市外) 이동권 보장을 위한 장애인 차별구제 소송을 제기했다. 몇 년에 걸친 소송을 통해 1심과 2심 재판부는 미약하게나마 교통사업자에게 휠체어 승강설비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지난 2월 17일 이 휠체어 승강설비 제공 의무마저도 없다고 봐 기존 원고 승소 부분을 파기했다. 원고들의 집과 직장의 위치를 고려하면 피고들이 운행하는 모든 노선의 버스에 원고들이 실제 탑승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란다. 설상가상으로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저상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도 장애인 차별이 아니라고 봤다. 교통사업자가 교통약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정당한 편의시설을 규정한 ‘교통약자법 시행령 별표2
  • [열린세상] 보챈다고 쌀이 밥이 되나요/김하늘 라이스앤컴퍼니 대표

    [열린세상] 보챈다고 쌀이 밥이 되나요/김하늘 라이스앤컴퍼니 대표

    모내기철이 다가온다. 뭣 모르고 첫 손모내기를 했던 그해가 떠오른다. 4월 어느 우박이 떨어지던 날 몇 명의 일꾼들이 줄을 맞춰서서 나란히 모를 심었다. 가뜩이나 질퍽한 논바닥에 비가 내려 발이 빠지고 온몸이 다 젖어도 피부와 마음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그때부터였다. 쌀이 한 톨 한 톨 소중해진 게. 밥을 맛있게 잘 지어 보자 마음먹은 게. 밥을 잘 짓는 일만큼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게 없다. 밥맛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다양하다. 일단 쌀은 ‘품종과 산지, 재배 방법, 건조와 저장, 도정, 농약, 수확과 탈곡’ 순으로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쌀 봉지에 새겨진 ‘품질 표시 사항’을 기준으로 품종, 산지, 생산 연도, 도정일, 등급과 단백질 함량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등급은 깨지거나 금이 가지 않은 온전한 쌀 낱알, 즉 ‘완전미’가 많이 포함돼 있을수록 높은 등급으로 표기돼 구입 시 참고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쌀을 관리하는 정미소나 종합미곡처리장(RPC)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단백질 함유량이 높을수록 밥맛이 부드러워 높은 성적으로 평가되지만, ‘성적’이 아닌 품종의 특성, 즉 ‘감상’으로 여기는 것이 좋다.
  • [열린세상]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단 한 가지, 통합의 정치/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열린세상]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단 한 가지, 통합의 정치/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후보 개인의 도덕성이나 많은 흠집의 논란 속에서도 가장 잘한 것은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하고 당선인에게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열어 줄 것을 당부한 것이다. 이 패배 인정으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성공하는 대통령이 될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됐다. 이 후보가 역대 최소 표차인 ‘0.73% 포인트’의 아쉬운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나라는 다시 극단으로 치달으며 자칫 재검표라는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렸을 것이고, 정국은 혼돈 속으로 빨려들어 갔을 것이다. 윤 당선인은 어느 대통령보다 힘든 초반기를 보내야 한다. 여소야대의 국회,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절반의 국민들, 선거 기간 중 심화된 극단적 대립 등 외부 상황부터 험난하다. 권력자 주변으로 모여드는 사이비 전문가들과 정치꾼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여당 내 권력다툼 속에서도 리더십을 유지해야 하는 등 내부 상황 또한 녹록지 않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당선인에게 바라는 유일한 소망은 바로 통합과 협치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선인도 언급했듯이 사람을 잘 써야 한다. 문재인 정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적폐청산을 국정 제1과제로 정하고, 이를 위해 자기 사람들만으로 모든 자리를 채운
  • [열린세상] 윤 당선인의 경제안보 외교 강화가 반갑다/송경진 전 세계경제연구원장

    [열린세상] 윤 당선인의 경제안보 외교 강화가 반갑다/송경진 전 세계경제연구원장

    윤석열 당선인은 3월 10일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경제안보 외교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경제안보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바람직하고 반가운 일이다. 미국·중국 패권 다툼으로 민주주의, 가치, 규범에 기반한 경제안보의 비중이 확대되는 새 국가안보 환경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통상, 과학기술(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우주항공 등), 데이터, 공급망, 에너지 및 기후 등은 경제안보 외교의 전략적 수단이 되고 있다. 국가와 기업의 투자 결정에 안보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와 달리 경제안보가 중요해진 현재는 외교의 성패가 금세 체감된다. 국가안보를 침해당했다는 이유로 무역 제재를 부과하는 사례가 많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 일본의 수출규제 등이 그렇다. 미국은 동맹국 결집을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지지하는 인태경제프레임워크라는 경제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쿼드 백신, 기후변화, 신기술 워킹그룹 외에 쿼드 인프라 파트너십, 사이버공간 협력 등 경제 관련 이니셔티브의 지속적인 추가도 같은 맥락이다. 민간 부문이 크게 성장한 한국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다. 그러나 외교
  • [열린세상] 4세대 전쟁과 스타트업의 성공 방식/이건호 에이빅파트너스 대표

    [열린세상] 4세대 전쟁과 스타트업의 성공 방식/이건호 에이빅파트너스 대표

    흔히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상세한 사업계획’, ‘능력 있는 창업자’, ‘차별적 기술력’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100%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서 사업을 하는 당사자들에게 이러한 성공 조건이란 너무나 교과서적인 얘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전혀 다른 영역에서 스타트업 성공에 유용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1989년 미군은 중동에서 증가하고 있던 새로운 유형의 테러리즘을 ‘4세대 전쟁’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정의했다. ‘4세대 전쟁’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알카에다나 탈레반 같은 적들은 실체가 불분명하고 변화무쌍해 비록 소규모이고 장비가 열악해도 세계 최강 미군에게도 쉽게 제압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4세대 전쟁에서 소규모 적들은 체계적이고 상세한 전략을 만들 수가 없다. 높은 불확실성으로 인해 미래 목표를 미리 확정하고 달성 전략을 수립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보다는 그때그때 상황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상황에 따라 창발하는 기회를 포착하고 그 기회를 쟁취하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성공한 스타트업들에서도 4세대 전쟁의 특징과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
  • [열린세상] ‘관내’는 어디인가/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열린세상] ‘관내’는 어디인가/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지난 4일 사전 투표를 위해 집 근처 동 주민센터를 찾았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투표를 하러 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선거의 열기가 느껴졌다. 2층 출입문으로 들어선 다음 계단을 이용해 3층 투표소로 향했다. 계단엔 오른쪽을 이용해 올라가 달라는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2층을 지나다가 계단에 서 있는 우리를 올려다보면서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에 줄을 서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고 어리둥절해하면서 우측 통행이 원칙이라 오른쪽에 서야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왼쪽에 줄을 서라고 말한 사람은 바쁜지 뚜렷한 답을 하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뭔가 이유가 있어 그렇게 말했겠거니 생각하고 안내에 따라 줄을 왼쪽으로 옮겼다. 줄은 줄어들었고 드디어 투표소 입구가 보이는 복도 앞 계단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투표소 입구에는 안내를 맡은 사람이 관내는 왼쪽, 관외는 오른쪽에 서라고 안내를 하고 있었다. 아까 왜 왼쪽에 서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마스크를 쓴 데다가 발음도 명확하지 않아서 ‘관내’와 ‘관외’라는 말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들리지 않았다.
  • [열린세상] 새 정부 증후군/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

    [열린세상] 새 정부 증후군/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

    새 학기가 시작되고 벌써 열흘이 지났다. 대학교 3학년이 된 큰딸은 코로나 사태와 함께 시작한, 대학 생활 2년을 보낸 탓에 아직도 대학생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고등학생이 된 작은딸은 학교와 친구들 등 바뀐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눈치다. 두 딸 모두 오미크론 유행 속에 시작한 새 학기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푸념이다. 나 역시 이번 학기부터 새롭게 맡게 된 강의과목 때문인지 어깨가 무겁다. 이유 없는 두통에 배까지 아프다 보니 혹시나 코로나에 걸린 것이 아닌지 걱정스러웠던 적이 여러 번이다. 열도 없는데 앞선 걱정에 자가진단키트로 코를 찌르는 것도 매번 고통스럽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적지 않은 변화를 겪게 된다. 3월 지금이 그런 시기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변화에서 오는 두려움과 중압감이 가져다주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방학을 보낸 아이들이 새 학기를 맞아 학교에 갈 때가 되면 몸이 아픈 경우가 종종 있다. 배가 아프다거나 열이 난다고도 하고 두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집에 있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다. 병원에 가면 스트레스성이라고 할 뿐 뾰족한 대책을 찾기 어렵다. 이를 새 학기 증후군(new semester
  • [열린세상] 노사의 법적 분쟁을 줄이자/조재정 법무법인 민 상임고문

    [열린세상] 노사의 법적 분쟁을 줄이자/조재정 법무법인 민 상임고문

    일반적으로 노사의 관계는 회사의 성장과 이익 창출을 위해 상호 협력하면서도 법적 권리 주장과 이익 배분에서는 대립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산업 현장에서는 노사 간에 갈등과 법적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법적 권리를 침해당한 근로자는 지방노동관서에 진정, 고소, 고발 등의 형태로 신고하고 권리를 구제받거나, 부당해고 등에 대해서는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하게 된다. 2020년 한 해 동안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신고 사건은 36만 4000건으로, 매년 이 정도 규모인 30만~40만건이 신고된다.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된 부당해고 등에 대한 심판 사건도 1만 5000건에 이른다. 이런 법적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노사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 여기에는 많은 공무원이 필요하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발생하게 된다. 노사 간에 법적 분쟁이 일어나는 데는 몇 가지 근본 원인이 있다. 하나는 노사가 알아야 할 노동 관련 법령과 내용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2021년 말 현재 노동 관련 법률은 48개이고, 여기에 딸린 시행령은 47개, 시행규칙은 41개에 달한다. 게다가 법령 개정도 수시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많은 법령을 모두 알아서 권리를 주장하거나
  • [열린세상] ‘악마 만들기’ 대선, 그 선악의 저편/유창선 정치평론가

    [열린세상] ‘악마 만들기’ 대선, 그 선악의 저편/유창선 정치평론가

    가족과 함께 사전투표를 했다. 누구의 결함이 그나마 덜한지 생각의 저울 위에 올려놓고 고심하게 만든 선거였지만, 그래도 숙고한 끝에 소중한 주권을 행사했다. 투표장인 주민센터에는 많은 주민이 줄지어 있었다. ‘비호감 선거’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가족과 함께 나온 사람들의 얼굴은 무척 밝아 보였다. 평소에야 어떻든, 주권자로서 한 표를 행사하는 이날만큼은 우쭐해지는 것이 유권자들의 마음임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선거는, 특히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이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다. 그러나 우리 눈에 들어온 20대 대선의 광경에 축제라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어느 대선이라고 예외였을까만, 유난히도 증오와 저주의 언어들이 기승을 부린 선거였다. 두 진영의 팬덤은 정상적인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입에 담기 어려운 말들을 태연하게 쏟아 냈다. 성상납, 쥴리의 동거, 배신자, 협잡, 굿판, 쓰레기, 기생충, 사기꾼, 패륜, 전쟁광. 유감스럽게도 이런 극단적 비방과 낙인찍기의 언어들이 이번 대선판을 요약하는 키워드들이었다. 당선을 다툰다는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의 입에서도 ‘겁대가리’, ‘버르장머리’ 같은 험한 말들이 이어진다. 이성은 결핍되고 정념만이 넘친 자
  • [열린세상] 물류혁신이 국가 경쟁력이다/문일경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열린세상] 물류혁신이 국가 경쟁력이다/문일경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고 있다. 특히 지속해서 산업계의 주목을 받는 문제가 바로 ‘물류대란’이다. 최근 패스트푸드점에서 감자튀김이 부족한 이유도, 스타벅스가 커피 가격을 올린 이유도 물류대란에 기인한다. 이러한 물류대란은 ‘언택트’(비대면)로의 소비 형태 변화,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 증가, 공급망 위험 관리 실패 등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물류혁신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물류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돌아봐야 한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약 9.4%를 물류시장이 차지한다. 미국(8.0%), 중국(14.7%), 일본(9.1%) 등 주요 국가들도 높은 물류비용 때문에 국가 경제에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더욱 다양한 물류 활동이 전개됨에 따라 물류비용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물류혁신을 통한 물류비용 절감은 국가 경쟁력 향상에 필수적인 요소다. 하나의 기업에서부터 국가까지 물류혁신은 경쟁력 향상에 필수 불가결하다. 국제 무역에서 세상을 바꾼 물류혁신을 꼽자면 많은 전문가들이 ‘컨테이너화’를 꼽는다. 1956년 컨테이너가 처음 개발된 후
  • [열린세상] 정치공학적 계산만 난무하는 대한민국/이성모 동북아협력인프라연구원장

    [열린세상] 정치공학적 계산만 난무하는 대한민국/이성모 동북아협력인프라연구원장

    우리나라 사회간접자본(SOC)이 본격적으로 확충되던 1970년대 이후 국가 교통물류체계는 물론 국가 기간산업은 대혁신을 이루었다. 이로 인한 전후방 효과는 세계 초일류의 반도체산업, 자동차산업, 조선산업 부문 등에서 ‘한류열풍’의 주역을 담당해 왔다. 지속적인 SOC 확충이 한국의 선진국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일부 집단이 우리나라 SOC는 과투자라느니, 개발독재의 반사회적, 반시대적, 반환경적 토건사업이라는 등 감성적 구호로 뒤덮어 그 가치를 왜곡해 왔다. 이러한 분위기는 SOC를 통한 국가 발전의 근간을 흐트러뜨리고 국가의 존망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국가균형발전이란 명분으로 지역적 편향성과 정파적 요인이 작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대한 해소책으로 2003년 지역균형발전이 국가 어젠다로 설정됐지만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선거 표심을 의식한 정치공학적 계산의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그간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지방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으로 특정 기업과 기관이 지방으로 이전됐다. 가족이 이산되고, 기업 간의 집적이익 창출의 효과가 감소하며, 국가 경쟁력 창출의 시너
  • [열린세상] 새장에 갇힌 한반도, 바다가 위험하다/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열린세상] 새장에 갇힌 한반도, 바다가 위험하다/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 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가수 조미미가 부른 유행가의 한 구절이다. 먼 나라로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만경창파(萬頃蒼波)의 바다에 막혀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바다가 육지라면 어떨까. 상상할 필요는 없다. 그럴 일은 없으니까. 노랫말과 유사하게, 국제해양법을 연구하는 필자는 가끔 ‘해양영토’(Maritime Territory)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해양영토에 대한 학술적 정의는 없다. 법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원래 영토(territory)는 육지를 말한다. 국가를 구성하는 국제법상의 핵심 요건이다. 해양영토를 법적으로 해석하자면, 바다와 연관이 많은 육지영토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섬과 암석, 간출지 등이다. 영어로는 ‘insular formation’ 정도로 표기될 수 있다. 이 개념에도 여전히 해양은 포함되지 않는다. 바다가 땅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해양영토라는 용어는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해양과 영토를 동일하게 병기함으로써 바다가 육지만큼 중요하다는 강조의 의미일 것이다. 사실 용어의 제도적 사용이 없다고 그 해석을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는 없다. 섬과 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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