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노년의 서빙/정기홍 논설위원

[길섶에서] 노년의 서빙/정기홍 논설위원

입력 2014-11-06 00:00
수정 2014-11-0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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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세요.” 80대 선친이 숙환으로 고생할 때 드렸던 말이다. 고통을 덜어 드리고 싶었다. 하루도 거름 없이 논밭에 나가셨다. 두려움과 우울증이 한결 간 듯했고, 병은 더 악화되지 않았다. 나도 신경이 덜 쓰였다. 잔 생각 버림의 효과다. “어디 계세요?” TV를 보니 도회지의 딸이 어머니에게 밭일을 하지 말라며 지청구 전화를 수시로 한다. 어머니는 들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자식에게 부모님의 고통과 고생이 밟히는 건 비슷하다.

나이 지긋한 분이 서빙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젊은이와 달리 어색기가 있지만 미소는 시종 환하다. 삶의 켜, 연륜이 묻어난 서빙이랄까. 여간해선 다툼을 만들지 않는다. 원숙미다. 누구는 60~70대마저 벌어야 하는 ‘고달픈 노년’이라지만 그러면 어떤가. 건강이 돈과 명예에 앞서는 게 이때다. 70대의 좌중에서 “왕년에 내가 대기업 임원을…”이라 했다간 왕따 되기 십상이란다. 주위를 보면 ‘꼼지락 일’을 하는 어른이 건강하다. 논밭에서 잡초 뽑는 분들이 오래 사는 듯하다. 머리를 굴려야 하는 골프와 다르다. 일은 존재감이다. ‘워킹 실버세대’에 박수를 친다. 건강하게 그리고 오래 사시라.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2014-11-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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