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조카 사랑/최광숙 논설위원

    큰외삼촌은 올해 팔순이시다. 지난해 두 차례나 병원 신세를 졌다는데 무심한 이 조카는 최근에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을 회복해 운전을 직접 할 정도가 됐다. 외삼촌을 뵈면 지금도 지갑을 여신다. 장성한 조카가 밥 한 끼 대접하려고 모시면 미리 밥값을 계산해 놓으신다. 조카의 머리에 하얀 눈꽃이 핀 지가 오랜데 외삼촌의 눈에는 아직도 챙겨야 할 어린애로 보이나 보다. 최근 휴가를 맞아 방학 중인 초등학생 조카들과 같이 지냈다. 하루는 4학년 조카 녀석이 만화영화 주인공 이름이 쓰인 영어를 보더니만 어떻게 읽느냐고 묻는다. 수학은 잘한다는데 영어는 ‘까막눈’인 녀석이 이제야 영어에 관심을 보이는가 싶어 얼른 영어 교재를 한 권 사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열정적인 칭찬과 그 녀석의 학습 의욕이 합쳐지니 진도가 팍팍 나갔다. 남들보다 한참 늦긴 했지만 녀석이 이제라도 영어 공부에 흥미를 느껴 ‘속성과외’에 열심히 따라오니 기특하기만 했다. 외삼촌을 비롯한 집안 어른들에게 받은 사랑을 이제는 조카들에게 돌려줄 나이가 됐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데 한 치의 틀림이 없는 말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진짜 애국자/서동철 수석논설위원

    얼마 전 울산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올 때의 이야기이다. 자리에 앉고 나니 아기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아빠는 통로를 오가며 아기를 달래고 있었다. 아기는 아빠가 움직일 때만 조용했다. 잠든 듯해서 자리에 앉으면 아기는 이내 울어대는 것이었다. 이들은 부산에서 탔을 것이다. 가만히 보니 아기는 하나가 아니었다. 연년생인 듯 조금 큰 아기는 엄마가 안고 있었다. 동생이 칭얼댈 때마다 아빠가 달래주는 게 부러웠는지 큰 아기도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엄마도 그때마다 아기를 안고 출입구 쪽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면 끊임없이 동요를 불러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에는 이런 장면을 보면 슬금슬금 짜증이 났다. 그런데 요즘에는 아기를 달래려 안간힘을 쓰는 부모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내는 나를 발견한다. 나이를 먹어 관대해진 탓도 있을 게다. 무엇보다 저출산으로 나라의 미래가 걱정스러운 시대에 고생고생하며 아이 둘을 키우는 부모는 진짜 애국자가 아닌가 싶다. 젊은 애국자들은 기차가 서울역에 도착하자 세 시간 남짓의 ‘사투’를 위로하듯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나도 혼자 웃었다.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
  • [길섶에서] 태극기의 의미/이동구 논설위원

    청계천 배오개다리에 내걸릴 초대형 시민태극기에 관심이 쏠린다. 서울시민 100여명이 광복 70년을 기념해 이틀 동안 손바느질로 완성한 가로 21m, 세로 14m의 태극기다. 찜통이 돼 버린 8월의 서울광장에서 수백 조각의 흰 천을 한 땀 한 땀 이어 붙인 정성이 예사롭지 않다. 민족대표 33인이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던 그날, 전국의 거리에서 202만개의 태극기를 흔들었던 민초들의 절박함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김구 선생은 1941년 벨기에 출신의 오그 신부에게 건넨 태극기에다 미국의 동포들에게 전하는 친필 묵서를 아로새겼다.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조국의 광복을 완성하자!’라는 글귀가 새겨진 태극기를 본 동포들의 각오는 어떠했을까.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식민통치가 막을 내린 날 조선총독부 청사의 일장기는 내려졌으나 태극기 대신 올라간 미국의 성조기를 보고 있어야 했던 국민들의 심경은 또 어떠했을까. 정부서울청사와 세종문화회관 등 서울의 주요 건물에 내걸린 대형 태극기들이 새삼 광복 70년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동구 논설위원 yidonggu@seoul.co.kr
  • [길섶에서] 두고 온 민들레/황수정 논설위원

    바닷가 양지바른 둔덕에 민들레가 지천이다. 나부죽이 엎드려 너풀너풀 해풍을 탄다. 얼마나 오래 사람 손을 타지 않았던지 이파리가 여간 실팍하지 않다. 바닷가 땅에 농약 한 점 스쳤을 리 없고. 호젓한 휴가지에서 하마터면 소리칠 뻔했다. “심봤다!” 몸에 좋다는 야생 민들레는 귀하신 몸이다. 우리 시골집 마당에서도 대접이 극진하다. 바람결에 묻어온 씨가 어느 해 되퉁스레 눌러앉았다. 갈라진 양회바닥 틈에 까치발로 들어선 모양이 신통했던 데다 제 발로 떼 지어 찾아오니 기특했다. 어느새 무공해 6년근. 외지 사람들이 귀신처럼 두어 번 훑고 가면 시골 들산은 거짓말같이 다 털린다. 사방에 널렸던 잡초들이 간데없다. 쇠비름, 씀바귀, 할미꽃 등속. 보약이라니 씨 마르는 산야초들이다. 염치를 뭉개고도 끄떡없는 것은 사람 욕심. 재벌 형제의 싸움이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차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것과, 아무리 눈 크게 떠도 볼 수 없어진 것들. 욕심 찬 마음은 연못의 물도 끓이고, 텅 비운 마음은 무더위 속에도 서늘하단다. 채근담에 돈 안 드는 피서법이 있었다. 그래 놓고 나는 아직 딴마음이다. 아까워라, 두고 온 민들레. 황수정 논설위원 sjh@
  • [길섶에서] 들어만 줘도/최광숙 논설위원

    친하게 지내는 인사가 송사에 휘말린 적이 있다. 가까운 이와의 불화로 그는 오랫동안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은 “재판에서 져도 좋다”고 했다. 자신의 사정을 후련하게 다 털어놓을 수 있도록 시간을 내주고, 또 성의 있게 들어준 판사가 고맙다고 했다. 판사가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 주었기에 그 이상 바랄 게 없다는 것이다. 이후 갖가지 민원의 진정한 해결은 ‘들어주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믿게 됐다. 민원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년간 공무원들에게 행패와 폭언을 일삼는 이른바 ‘악성’ 민원인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들이 오랜 기간 공무원들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의 민원이 처리되지 않은 데 대한 원망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리는 무성의한 공무원들의 태도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속상하고 억울한 일을 겪게 된다. 그럴 때 가까운 이들에게 심리적 지지를 받는다면 어느 순간 마음이 풀어지게 마련이다. 최고의 대화법은 말 잘하는 것이 아니라 경청이라고 하는데, 좋은 친구도 잘 경청해 주는 이가 아닐까 싶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나잇값/이동구 논설위원

    “이 나이에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네.” 언제부턴가 자주 입 밖으로 내놓는 말이다. 주변에서도 자주 듣는다. 50대가 되면서 느끼는 상실감 때문이라 여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무엇 하나 가진 것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잇값을 못 했다는 자조 섞인 고백이다. 예전에는 여성을 두고 20대는 금값이고 30대에 접어들면 은값으로 떨어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결혼 연령도 크게 높아졌거니와 도무지 나이를 잠작하기가 어렵다. 한 살이라도 적게 보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기 때문일 것이다. 50대지만 40대처럼, 40대지만 30대처럼 보이는 ‘몸짱’도 주변에 크게 늘어났다. 갈수록 나이는 더욱 족쇄가 돼 가고 있다. 그동안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50대 중·후반이 정년퇴직이었다. 하지만 실제 정년퇴직은 행운일 뿐 한창 일할 40대, 50대 초에도 조직에서 밀려나기 일쑤였다. 이를 늦춰 보겠다며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니 이번에는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까 눈치를 봐야 한다. 월급마저 깎자고 한다. 이래저래 나잇값 하기는 더 어렵게 돼 간다. 이동구 논설위원 yidonggu@seoul.co.
  • [길섶에서] 입맛/김성수 논설위원

    나이 들면서 입맛도 바뀐다는 말을 실감한다. 어려서는 입에도 못 대던 음식을 이젠 잘도 찾아 먹는다. 못 먹던 생김치는 술을 배우면서부터 익혔다. 생김치와 굴, 삶은 돼지고기를 함께 싸서 먹는 보쌈 안주의 기막힌 맛을 알고부터다. 결혼 전 부모님과 살 때는 나물은 생일이나 명절 등 특별한 날에만 먹는 반찬으로 알았다. 당연히 즐겨 먹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 후 처가에서 공수해 오는 반찬에 콩나물, 시금치, 고사리 무침이 빠지지 않았다. 요즘은 나물 반찬을 찾아서 먹는다. 먹을 탐이 많지만 과일은 예외였다. 배 한 쪽이나 사과 한 쪽이면 금세 배가 불렀다. 한데 과일을 워낙 좋아하는 아내와 딸아이를 따라하다 보니 이젠 식후 과일 한 접시는 가볍게 비운다. 전에는 잘 먹었는데 끊은 음식도 많다. 낙지볶음, 닭발, 매운 떡볶이는 이제 입에도 못 댄다. 예전에 이 매운 걸 어떻게 먹었을까 싶을 정도다. 입맛에 따라 먹는 음식도 ‘제로섬’ 게임에 가깝다. 새로 늘어나는 게 있으면 또 그만큼 줄어드는 것도 생긴다. 절묘한 균형을 맞춘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다. 김성수 논설위원 sskim@seoul.co.kr
  • [길섶에서] 선비의 피서법/손성진 논설실장

    폭염이 인내심을 시험하는 요즘이다. 선조들은 더위를 어떻게 견뎌 냈을까.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여름용품은 합죽선이나 죽부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시나 삼베로 지은 적삼 안에 입어 땀이 차지 않게 하는 등거리라는 물건은 참 기발하다. 등나무로 엮은 조끼로 옷이 몸에 달라붙지 않게 해 준다. 여름철의 우물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서 등목을 한 번 하고 나면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불볕더위도 당산나무의 넓은 그늘에서는 기세가 꺾였다. 그래도 더우면 계곡물에 발을 담그거나 멱을 감으면 더위는 저만치 달아난다. “송단호시(松壇弧矢·소나무둑에서 활쏘기), 괴음추천(槐陰?韆·홰나무 그늘에서 그네타기), 허각투호(虛閣投壺·빈 정자에서 투호놀이하기), 청점혁기(淸?奕棋·깨끗한 대자리에서 바둑 두기), 서지상하(西池賞荷·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 동림청선(東林聽蟬·동쪽 숲에서 매미소리 듣기), 우일사운(雨日射韻·비 오는 날 시 짓기), 월야탁족(月夜濯足·달밤에 물가에서 발 씻기)” 다산 정약용의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시다. 몸가짐을 아무렇게나 할 수 없던 옛 선비들의 피서법을 그렸다. 피서도 풍류의 하나였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마음 말리기/황수정 논설위원

    장마에 젖어 있던 7월이 갔다. 물먹어 늘어졌던 사물들도 햇볕과 함께 제자리를 찾았다. 여름이 버거운 까닭은 따로 있다. 염천의 화기(火氣) 때문만이 아니라, 오도 가도 않고 어정쩡한 장마의 시간 탓이기도 하다. 사람 일이든 자연 이치든 같다. 중심 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것에 기운을 단속하기란 어렵다. 짱짱한 햇발이 아쉬웠다. 전기를 돌려 억지로 습기를 쥐어짜는 제습기로는 비할 게 못 된다. 궂은 하늘이 잠깐 빛을 내어 주는 빨래 말미. 고마워서 어쩔 줄 몰랐다. 햇빛이 장마철처럼 깍듯이 대접받는 때가 또 없다. 빛을 쬐는 수고만 해도 우울을 털어내는 세로토닌이 분비된다는데야. 햇살이 비추는 사물을 관찰하는 일이 삶의 절대적 명령, 낮잠 자느라 그 시간을 놓치는 일은 죄악이라고 말한 서양 화가도 있다. 도처에 쏟아지는 햇빛, 그것만으로도 득의의 삶이었다니 부럽다. 이제부터는 낮밤 없이 볶아칠 8월의 폭염이 기다린다. 일상 아닌 어느 곳에서 지친 마음 돌봐야 수지맞는 시간. “낮아지는 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린다”는 시인을 따라 해보기로 한다. 젖은 마음 잘 씻어, 볕 제일 잘 드는 자리에 널어 말리기로 한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
  • [길섶에서] 종이통장의 추억/신융아 기자

    종이통장은 1897년 고종 34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은행인 한성은행이 설립되면서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뱅킹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지만 종이통장을 없애자는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2007년 신한은행은 부자 고객을 위한 ‘고급’ 세로형 통장을 내놓기도 했다. 종이통장이 없어진다는 소식에 서랍 깊숙이 숨겨 둔 통장을 열어 봤다. 이미 스마트폰뱅킹과 체크카드를 주로 사용하는지라 통장이 없어진다고 해도 크게 불편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종이통장은 분명 필요보다는 관행이었다. 그럼에도 통장이 없어진다고 하니 섭섭하다. 초등학교 때 용돈을 모아 처음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을 가졌을 때의 그 성취감을 앞으로 자라나는 친구들은 맛볼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통장은 미미하게나마 금융에 대한 이해와 저축의 보람을 느끼게 해 줬다. 이는 은행 예금을 착실히 하는 우리나라와 일본만 유독 종이통장을 쓰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008년에는 전자여권이 도입되면서 나라마다 특색 있는 스탬프와 비자 스티커를 모으는 재미가 사라져 버렸다. 편리함과 효용성이 자꾸만 일상의 소소한 재미와 추억을 밀어내는 듯해서 못내 아쉽다. 신융아
  • [길섶에서] 잠 깨우는 스승/최광숙 논설위원

    중학교 때 영어 시간에 깜빡 졸았던 일이 새삼 생각이 났다. 최근 인사혁신처장이 신임 사무관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 시간 내내 엎드려 잔 교육생을 찾아내라는 지시가 논란이 일면서다. 당시 선생님은 졸고 있는 나를 지목해 영어책을 소리 내어 읽게 했다. 그때 선생님들은 잠자는 아이들을 향해 분필을 던져 혼을 내곤 했는데 거기에 비하면 이 선생님의 잠 깨우는 방법은 참으로 ‘교육적’이었지 싶다. 천하장사도 들어올릴 수 없는 게 눈꺼풀이라는 말이 있다. 오죽하면 참여정부 시절 유인태 정무수석이 회의 중 노무현 대통령이 말을 하고 있는데도 그 앞에서 졸아 정치권 최고의 ‘잠보’로 꼽혔겠는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유 의원이 사형선고를 받을 때 재판을 지켜보던 유 의원의 모친도 고개를 떨구고 졸았다는 얘기가 있는 걸로 봐 잠 많은 것도 집안 내력이지 싶다. 지금 사찰에서는 하안거(夏安居)가 한창이다. 3개월 동안 한 곳에 머물며 수행을 하는 것이다. 참선 중 조는 스님이 있으면 가차 없이 죽비가 날아간다. 졸고 있던 스님도 기꺼이 한쪽 어깨를 내밀며 죽비 세례를 받는다. 졸 때는 죽비 든 스승들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
  • [길섶에서] 휴가철 단상/구본영 논설고문

    시나브로 다가온 휴가철이 벌써 피크에 이른 건가. 지난 주말 모처럼 나들이에 나섰다가 북새통 같은 교통 체증을 겪었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솔직히 형편이 돼 해외 나들이를 하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메르스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를 고려해 요즘 국내 휴가를 권장하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그러나 한 지인이 보낸 이메일 글귀를 읽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진정한 휴가의 의미는 장소의 이동이 아닌, 마음의 이동”일 수도 있다는 지론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특히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초원에서 말을 달리다가 한 번씩 멈추어 뒤를 돌아보는 이유를 설명한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너무 빨리 달려 혹여 자신의 영혼이 자신을 못 쫓아오지는 않나 하는 걱정 때문”이라니 말이다.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이따금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함의일 게다. 휴가를 뜻하는 프랑스어 바캉스의 어원도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라고 한다. 본뜻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란다. 하긴 자신의 일이나 목표를 잠시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면서 채우는’ 일이라면 휴가지가 어디인들 무슨 상관이겠나 싶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인왕산/손성진 논설실장

    인왕산 하면 떠오르는 것은 호랑이와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일 것이다. 인왕산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기록을 남긴 사서(史書)는 한둘이 아니다. 조선 태종실록에는 호랑이가 경복궁 근정전 뜰에 들어왔다고 기록돼 있다. 인왕은 높이가 338m밖에 안 되지만 산세가 제법 웅장하고 계곡이 깊어 호랑이가 서식할 만한 산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풍수지리상 낙산을 좌청룡으로, 인왕산을 우백호로 삼았으니 인왕은 호랑이와 여러모로 연관이 깊다. 궂은 날씨를 무릅쓰고 인왕산에 오른다. 한여름의 장대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거추장스러운 비옷을 벗어 버린다. 빗줄기가 땀에 젖은 온몸을 시원하게 씻어 준다. 초야에 묻혀 사는 자연인이 된 것 같은 순간이다.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는 ‘비갤 제(霽)’ 자를 썼으니, 비갠 후의 인왕산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구름이 걷히기 시작한다. 가려졌던 도심 빌딩숲이 모습을 드러낸다. 뒤를 돌아본다. 구름이 산허리에 걸린 ‘인왕제색도’가 실물 그대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어디선가 호랑이도 뛰쳐나올 것 같았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게와 까마귀/이경형 주필

    비가 오는 날, 한강 하구와 맞닿은 곡릉천 습지 둑길을 걷는다. 썰물 때인지, 잿빛 강물이 빠른 속도로 하구로 내닫는다. 길가에 핀 망초의 작은 흰 꽃들은 시들고 있다. 달맞이꽃은 저마다 노란 댕기를 머리에 이고 뽐낸다. 손등만 한 게 한 마리가 길을 천천히 가로지른다. 인기척을 느낀 듯, 잽싸게 풀섶으로 사라진다. 게가 어슬렁거리며 옆으로만 기어간다고 누가 함부로 ‘느림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은 연암집에서 “검은 까마귀도 햇빛에 자세히 보면, 자줏빛으로 번쩍이다가 영롱한 비취색을 띠기도 한다”고 말했다. “누가 까마귀를 검다고만 할 수 있겠나. ‘검다’고 말한 사람은 제 눈으로, 아니면 마음속으로 까마귀는 검다고 미리 정해버린 사람들”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제 눈의 안경으로 남을 멋대로 재단하곤 한다.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서는 더 심하다. 일방적으로 남에게 자신의 프레임을 씌운다. 자기가 속해 있는 마을, 회사, 단체, 공동체 속에서도 패거리들은 그들의 프레임으로 상대방을 함부로 매도하곤 한다. 이경형 주필 khlee@seoul.co.kr
  • [길섶에서] 마시멜로 실험 1·2·3/문소영 논설위원

    자제력이 뛰어난 아이가 성공한다는 ‘마시멜로 실험’이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 미셸은 1966년 네 살인 꼬마 653명에게 눈앞에 마시멜로를 놓아 주고서 먹지 않으면 두 배의 보상을 하기로 약속한 실험을 했다. 15년 뒤 그 꼬마들을 추적했다.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두 배의 보상을 추구한 꼬마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는 실험 결과를 1981년 내놓았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마시멜로 실험’은 두 개가 더 있다. 미셸은 1989년 눈앞의 마시멜로에 뚜껑을 덮어 주거나, 또는 꼬마에게 재미난 생각을 하라고 제안한 뒤 실험했다. 꼬마들은 첫 번째 실험보다 더 높은 자제력을 보였다. 특히 재미난 생각을 하라는 조언을 받은 꼬마들은 평균 13분 동안 먹는 것을 자제했다. 욕망을 자제하라 하지 말고, 욕망에 방어벽을 치는 효과적 방법을 알려 주면 좋다는 뜻이다. 사회와 연결된 마시멜로 실험은 2012년 록펠러 대학에서 이뤄졌다. 신뢰 환경과 비신뢰 환경으로 나눴다. 신뢰를 경험한 꼬마들은 놀라운 자제력을 보였다. 믿음이 있는 사회에서는 인간의 자제력이 더 강해진다는 말이다. 신뢰는 그래서 중요하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
  • [길섶에서] 재미있는 버킷 리스트/주병철 논설위원

    10년 전 미국에 잠깐 있을 때의 일이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옆 차선에서 립스틱을 짙게 바른 백발의 할머니가 지붕을 접은 빨간 색상의 컨버터블을 몰고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음악 소리는 옆을 지나는 차에서도 들릴 정도로 요란했다. 깜짝 놀랐다. 옆 좌석에 앉은 지인이 웃으면서 “저분은 젊었을 때 그렇게 타 보고 싶었던 차를 사서 기분을 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일종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얼마 전 대학 총장을 마치고 ‘백수’가 된 분을 만났다. 근황을 묻자 오전에는 자동차정비학원에 다니고 오후에는 플루트를 배우러 다닌다고 했다. 평생 꼭 한번 배우고 싶은 것을 하니 신바람이 난다며 좋아했다. 자동차정비사 자격증도 딸 것이라고 공언했다. 회사의 CEO 출신인 또 다른 지인은 요즘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더러 마을버스도 타고 걷기도 하면서 세상을 다시 본다고 했다. 여건이 되면 하고 싶었고, 앞으로도 취미 삼아 그렇게 살아 볼 것이라고 했다. 나의 마음속에는 어떤 버킷 리스트가 꿈틀거리는지 자문해 본다. 주병
  • [길섶에서] 간절한 마음/황수정 논설위원

    운보 김기창의 그림 ‘군작’(群雀) 앞에 한참 붙들려 섰다. 화폭 밖으로 와르르 밀려나오는 참새떼의 날갯짓 소리. 참새 수백 마리가 작고 단단한 몸통을 비벼 빳빳한 역동의 음향을 쏟아 낸다. 무방비로 낚이는 청각. 무슨 조화가 부려졌을까 답을 찾아본다. 어려서 청력을 잃어 평생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화가다. 듣고 싶은 마음, 얼마나 간절했을까. 간절함이 깊어 붓끝에 소리를 낚는 촉수를 달았을 것이다. 화폭 너머로 소리가 비어져 나오는 운보의 그림이 그러고 보니 많다. 삶의 무게를 들어 올려 주는 가장 강력한 지렛대는 언제나 간절함이다. 차가운 조각상을 마음을 다해 사랑했더니 어느 날 숨쉬는 여인으로 변했다는 피그말리온 이야기. 까마득한 신화에서부터 웅변된 족보 깊은 삶의 진실. 3포, 5포, 7포 세대로 진화하며 자조하는 청춘들이 아깝다. 시작도 해 보기 전에 마음을 비운다는 달관 세대는 더 아깝다. 발버둥쳐도 별 수 없으니 빈둥빈둥 당당히 노는 방법을 찾겠다는 니트족은 서글프다. 간절히 뜨거워 볼 수 없었던 마음들이다. 마음 비우기(放下心)의 법어는 법문집에만 가둬 놓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길섶에서] 불평등의 기원/문소영 논설위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지 못하고 목침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만간 읽어야지’에서 ‘언젠간 읽어야지’로 모드 전환해 놓았다. ‘자본이 돈을 버는 세상’이라는 지당한 격언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읽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진 탓이다. 다만, 옆에 놓고 굴리면 조금은 빠른 시점에 읽게 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다. 지난 5월에 김병익 평론가가 쓴 어떤 서평을 읽다가 켄트 플래너리와 조이스 마커스 공저의 ‘불평등의 창조’라는 책을 샀다. ‘인류는 왜 평등 사회에서 왕국, 노예제, 제국으로 나아갔는가’가 주제인데 1000쪽을 넘긴 이 책 역시 읽지 않는다면 목침용으로 전환될 것이다. 이 책은 책상머리에 두고 그 위로 한숨을 쌓는다. ‘언제 읽을까!’라며.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불평등의 기원을 먼저 알아봐야겠다는 지극히 ‘먹물’ 같은 생각이 두꺼운 책에 막혀 괴롭던 차에 자크 루소가 1753년에 쓴 ‘인간 불평등의 기원론’을 최근 읽었다. 마르크스 ‘자본론’보다 약 100년 앞서 불평등을 질타한 이 책은 160쪽에 불과하다. ‘자유 이외에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란 표현의 저작권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루소였다. 좋은 책은
  • [길섶에서] 비구니 절 진관사/최광숙 논설위원

    절에 다니는 신도 입장에서는 스님이 비구니(比丘尼·여승)인가 비구(比丘·남승)인가를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기에 다니는 사찰도 인연 따라 가게 된다. 그런데 가끔 모르는 사찰을 방문하게 되면 비구니 사찰은 비구 사찰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비구니 사찰은 우선 아담하면서도 깔끔하다. 정원도 아기자기하게 예쁘게 꾸며 놓아서인지 여성스러움이 묻어난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품과 같이 포근하다. 하지만 비구니 사찰은 규모가 작다 보니 시줏돈도 적게 들어와 살림살이가 곤궁하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일부러 ‘가난한’ 비구니 절만을 찾아다니는 이들도 있다. 최근 방한한 미국의 부통령 부인인 질 바이든 박사가 첫 행선지로 비구니 절인 진관사를 찾았다. 불교 신자도 아닌 그녀가 비구니 스님들의 삶과 수행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은 여성의 권익 신장과도 관련이 있단다. 양성평등 시대이지만 여전히 불교 교단에서는 비구니와 비구의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다. 비구니 스님의 위상과 역할 확대가 필요한 시점에 바이든 박사의 진관사 방문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배우의 죽음/손성진 논설실장

    학창 시절에 까까머리로 교복을 입고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닥터 지바고’의 감동은 거의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마음속에 잔잔하게 남아 있다. 줄리 크리스티(라라역)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던 오마 샤리프(지바고역)의 우수에 젖은 애틋한 눈빛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오마 샤리프의 짙고 긴 속눈썹과 커다란 눈망울의 매력은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을 빨아들일 만큼 강렬했다. 얼마 전 그런 오마 샤리프의 부음 기사를 접했을 때 밀려오는 아쉬움은 나만 느낀 감정은 아닐 것이다. 더는 살아 있는 그를 볼 수 없다는 묘한 허탈감이다. 2008년 오마 샤리프와 같은 83세의 나이에 폴 뉴먼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의 푸른 눈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특히 많은 팬들이 슬퍼했다. 영화 속의 배역이 남기는 아련한 환상 때문에 배우의 죽음에 대한 슬픔은 더 커진다. 그래서 좋아하는 배우는 평생 늙지 않고 죽지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가 보다. 그러나 어쩌랴, 인명은 유한한 것을. 배우는 가도 영화는 남아 있기에 다행스럽다. 오늘 밤 영화 파일을 구해 ‘닥터 지바고’를 다시 한번 봐야겠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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