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아카시아 향기/이동구 논설위원

    딱 이맘때였다. 꽃향기가 달콤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학창 시절의 그 어느 날. 뒤숭숭한 마음 추스르려 바닷가 도로를 자전거로 내달릴 때 코끝을 자극했던 진한 내음. 향긋하고 달콤한 향기가 어디서 오는지 몰라 한참을 두리번거릴 때쯤 날아든 꿀벌들. 도로변 야산 기슭에 군락을 이룬 아카시아 꽃잎을 탐했다. 뒷동산에 오를 때면 소나무와 함께 흔하게 마주했던 아카시아 나무. 북미주가 원산지이지만 척박한 환경에서도 뿌리를 잘 내리고 빨리 자라는 특성에 한때 식재가 장려됐다. 왕성한 뿌리 내림에 묘지기나 산주들에겐 종종 귀찮은 존재가 되기도 했지만, 달콤하고 진한 향기와 꿀은 누구나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카시아의 매력. 한 잎 한 잎씩 따내며 계단 오르기 게임을 했던 대칭 모양의 푸른 잎사귀. 어릴 적 친구들과 경쟁하듯 따 먹었던 새끼 손톱만 한 하얀 꽃잎. 입에 담으면 어느새 입천장과 코끝을 지나 머리까지 마비시켰던 아찔한 향기. 벌과 나비를 부르며 젊음의 감성을 자극했던 도로변의 아카시아 꽃 내음이 새삼 추억으로 다가온다. 5월의 선물처럼.
  • [길섶에서] 비오는 날 청계천/최용규 논설위원

    가랑비 속 청계천 길을 걷는다. 무섭다는 미세먼지나 황사 좀 뒤집어쓰면 어떠랴. 살갑게 볼을 건드리고 지나가는 봄바람이 오롯이 다가오는데?. 어디 그뿐이랴. 한들한들 춤을 추는 축 처진 능수버들 가는 선(線)사이로 붕어며 잉어며 떼지어 다니는 물고기를 어디서 이렇게 물리도록 눈요기할 수 있을까. 십수년 전만 해도 4종류에 그쳤던 물고기가 지금은 치리, 참마자, 버들매치, 몰개 등 무려 20여종으로 늘었다고 한다. 도쿄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주택가 실개천에서 어렵게 발견한 다슬기 몇 개, 피라미 몇 마리에도 신기한 듯 눈이 동그래졌었는데. 호사는 이어진다. 가랑비 사이로 선들선들 불어오는 봄바람에 잠자던 숨구멍이 깨어나고, 바람에 실려와 콧속을 파고드는 물냄새, 풀냄새 향은 덤이다. 청계5가, 6가를 지나 왼쪽으로 꺾어져 들어가는 성북천. 진녹색 푹신푹신한 보도는 후끈 달아오른 발바닥을 식혀 주는 힐링의 구간이다. 길을 나선 지 두어 시간 지났을까. 병원 의사 아닌 자연이 전해 주는 처방전을 받아 든다. 양쪽 고관절이 시큰시큰하다. 왼 무릎이 아프다. 더 늦기 전에, 그래…. 최용규 논설위원
  • [길섶에서] 고향 걱정/최광숙 논설위원

    평소 소소한 일상의 수다가 넘치던 여고 동창 단체 카톡방이 지난 주말부터 수심으로 가득 찼다. 강원도 강릉과 삼척에서 발생한 산불 걱정 때문이다. 오랜 세월 고향 땅을 묵묵히 지키던 귀한 나무들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하자 다들 안타까움을 전했다. 어릴 적 영동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서울행 버스를 타면 그야말로 고행이 따로 없었다. 구불구불 대관령 고갯길을 넘다 보면 속이 뒤집히는 멀미로 늘 까만 비닐 봉지를 갖고 버스에 올랐던 기억이 난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그 깊은 산세(山勢)가 오히려 원망스러웠던 시절이다. 철들고 나서야 비로소 그 길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됐다. 어머니처럼 늘 그자리에서 변함없이 두 팔 벌려 반기는 아름드리 나무들로부터 도시의 삶에 지친 일상을 위로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속 깊은 숲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메마른 감성은 어느새 촉촉하게 변했다. 이런 기억들을 공유한 고향 사람들이다 보니 이번 산불이 더욱 가슴 아플 수밖에 없다. 그동안 아낌없이 준 나무들을 위해 이제 우리가 할 일을 찾아 나서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최광숙 논설위원
  • [길섶에서] 봄 야생화/손성진 논설실장

    누가 볼까 봐 야생화는 봄 햇살 속에 숨어서 몰래 꽃을 피운다. 푸른 듯 붉고 붉은 듯 푸른 야생화의 색깔은 도무지 속내를 알 수가 없다. 차디찬 빙설(氷雪)을 견뎌 내고 한 떨기 꽃을 피운 것만으로도 아름답다는 오기일까. 요란하지도 않고 아우성치지도 않는다. 출가를 앞둔 수줍은 색시처럼 야생화는 웃음만 살폿하다. 의미를 알아주어서 꽃이 되는 게 아니라 알아주지 않아도 이미 꽃이다. 그런 겸손함과 자존심을 몰라주는 우리는 교만한 장미만을 꽃이라 부른다. 남도의 봄길에서 만난 야생화는 너무 순결해 보여서 도리어 서글펐다. 좀 오래 버텨도 좋으련만 흰 속살을 아쉽게 내보여 주곤 금세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야생화. 언제까지 기다린다고 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그 야생화. 흩뿌리는 빗속에서 봄꽃 잎이 휘날린다. 이름 없는 지천의 들꽃들이 이리저리 휩쓸린다. 곧 폭풍우 치는 계절이 닥칠 것이다. 게으른 무지렁이에겐 너무 짧았던 봄날은 벌써 가고 눈물 머금듯 이슬 품은 야생화도 지고 있다. 쓰러지고 넘어져도 너만큼 고울까, 그래서 슬퍼할 것은 없다. 손성진 논설실장
  • [길섶에서] 5월 ‘서울숲’/박건승 논설위원

    5월 서울 뚝섬 ‘서울숲’의 이른 아침은 또 다른 얼굴이다. 백화만발(百花滿發) 만화방창(萬化方暢)은 가고 신록의 푸른 향기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상큼하다. 싱그럽다. 그지없이 한가롭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고 했던가. 나무에 달린 꽃이라고는 ‘영원한 사랑’이 꽃말이란 이팝나무 정도. 손 꼭 붙잡고 그 밑을 한가로이 거니는 노부부의 뒷모습은 세월이 담긴 묵직함 때문이어서인지 더 아름답다. 새들의 지저귐에 숲이 깨어나니 호수도 깨어난다. 호숫가에 앉아 아침 식사거리를 탐색하는 백로. 어른 팔뚝보다 더 큰 잉어의 요동침에 놀라 사냥은커녕 연신 꽁무니를 내빼는 모습이 절로 미소 짓게 한다. 어느 부지런한 청년이 숲속 오래된 노천 피아노에서 뿜어내는 경쾌한 곡조는 꽃사슴과 들고양이의 초여름 아침 나른함을 깨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반갑다. 간밤 산책 나온 견공들이 잔디밭 여기저기에 남긴 ‘달갑잖은 선물’을 빼고는. 하지만 그들이 무슨 죄이겠는가. 은근슬쩍 목줄 끈 풀어 준 양심 버린 쥔장들이 문제지.
  • [길섶에서] 남쪽 바다/손성진 논설실장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노산 이은상의 ‘가고파’에 나오는 남쪽 바다. 그 남쪽 바다를 곁에 두고 걸어본 게 몇 년 만이런가. 남쪽이란 말이 방향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남빛 쪽빛을 합쳐 놓은 걸까, 남쪽빛 바닷물은 적도의 태평양처럼 맑았다. 저렇게 푸른 만큼 바다의 영혼은 맑고 저렇게 깊은 만큼 바다의 품은 푸근하며 저렇게 넓은 만큼 바다의 마음은 인자하다. 지치고 막막하고 외로울 때면 저 바다로 달려가서 위로를 받는 것도 좋으련만 그만한 여유도 없이 우리는 전쟁하듯 하루를 살고 있다. 더러는 모진 억겁의 풍설(風雪)에 깎여 나간 저 갯바위의 연유를 생각해 보며 살 일이다. 더러는 바다를 불태울 듯 이편 지구의 마지막 시간을 아쉬워하며 가라앉는 저 일몰의 환상에 빠져 보며 살 일이다. 세상의 모든 슬픔과 그리움은 비에 씻기고 강물에 실려 바다로 흘러든다. 바다는 말없이 받아 준다. 온갖 번뇌를 한몸에 떠안고는 바다는 오늘도 철썩철썩 울음을 운다. 손성진 논설실장
  • [길섶에서] 기분 좋은 날/이동구 논설위원

    뜻하지 않은 곳에서 시민들의 훈훈한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앞서 걷던 중년 아저씨가 열린 문을 잡은 채 뒷사람이 안전하게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준다. 계단을 오르던 청년이 끙끙대는 아주머니의 짐 보따리를 함께 올려 준다.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안내하는 중년 신사. 이런 시민들을 보는 날이면 하루가 즐거워진다. 마을버스 기사의 친절한 모습도 떠오른다. 승객을 모두 태우고도 출발을 머뭇거리던 기사가 “위험하니 손잡이를 꼭 잡으세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젊은이가 아기를 안고 버스에 오른 새댁을 발견하고 자리를 양보했다. 기사의 관심이 아기의 안전과 젊은이의 양심(?)을 동시에 지켜 낸 것. 퇴근길 “승객 여러분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전동차 기사의 투박한 목소리는 어떤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잠시나마 피로를 잊게 한다. 선거운동원들이 길거리 곳곳에서 시민들의 고충을 모두 해결해 줄 것처럼 거창한 공약들을 외쳐 댄다. 남을 배려하는 작은 친절로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후보가 있었다면…. 이동구 논설위원
  • [길섶에서] 취직/박홍기 수석논설위원

    정장 차림이었다. 전과 다르게 훤했다. 의젓했다. 어딘가 모르게 기운 없고 의기소침해 보이던 모습은 간데없다. 웃음도, 말도 많아진 듯했다. 근무 환경이 좋다느니 윗분들도 잘 대해 준다느니 주절주절 떠벌렸다. 자기소개서를 백 번 넘게 썼다. 처음엔 마음을 졸이며 결과를 기다렸다. 갈수록 무뎌졌다. ‘이력 몇 줄로 날 어떻게 알아.’ 태연한 척했다. 부모님께 죄송해서다. 최종도 아닌 서류전형만 통과해도 ‘알아봐 주네’라며 위안을 삼았다. 면접,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 “하라는 대로 했잖아요. 공부도 열심히 해서 대학도 가고, 열심히 사느라고 알바도 수없이 했잖아요.” TV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허공에 질러 대기도 했다. 대학은 낮출 수 있지만 취직은 낮출 수도 없다. 채용 조건에 못 맞춰도, 너무 높아도 안 되기 때문이다. 뽑는 인원이 많지 않았다. 대다수가 들러리다. 기회가 왔다. 서류 전형부터 최종 면접까지 단계마다 늘 그랬듯 모든 것을 보여 줬다. “축하합니다.” 드디어 취직이다. 기뻐하면서도 짠했다. “정말 정말 축하한다.” 힘 줘 악수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순간에도 자소서를 쓰고 있다.
  • [길섶에서] 카네이션/황성기 논설위원

    회사를 떠난 후배로부터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과 함께 가벼운 선물을 받은 일이 있다. 배달되어 온 카네이션 꾸러미에 담긴 카드에는 “선배로서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신 저에게는 선생님 같은 존재”라는 글이 씌어 있었다. 기자로서 살아온 인생에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선배 노릇을 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 겸연쩍은 마음이 앞섰지만, 그래도 같이 일하며 동고동락을 한 후배가 성장해 카네이션을 보내온 것에 스스로 ‘바보 같은 선배는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해 줬다. 15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김영란법’ 적용을 놓고 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고 한다. 문의가 많자 국민권익위원회는 “학생 대표 등이 공개적으로 담임교사에게 주는 카네이션은 허용되지만 학생들이 돈을 모아 교사에게 5만원 이하라도 선물을 하는 것은 안 된다”고 밝혔다. 학생을 평가·지도하는 교사에게 선물은 사교·의례 목적을 벗어나므로 예외 사항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가능한 것은 편지 정도다. 김영란법 취지에 100% 공감하지만 스승에게 드리는 카네이션에 너무나 엄격한 잣대를 만든 게 아닌가 싶다. 황성기 논설위원
  • [길섶에서] 냉면 집 풍경/이동구 기자

    서울 도심에 위치한 몇몇 냉면 집은 사시사철 문전성시를 이룬다. 점심 시간 20~30분 전쯤에는 도착해야 대기 시간 없이 냉면 한 그릇을 편하게 맛볼 수 있다. 부드러운 육수에 구수하고 상큼한 면발이 일품으로 소문나 60대 이상의 고객들이 즐겨 찾는다. 음식 평가 중에 가장 모호하고 자의적인 것이 냉면이 아닐까 싶다. 유명한 맛집이라기에 가끔 들렀지만 맛을 제대로 느끼는 데는 어림잡아 10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처음엔 싱겁고 맹물처럼 밋밋한 육수 맛에 실망해 물 냉면 대신 비빔 냉면을 자주 먹었다. 유명세는 절대 믿지 않으며?. 한 음식인문학자는 냉면을 우리의 대표 음식으로 꼽는다. 겨울 음식에서 여름으로, 황해도 지역에서 시작돼 전 국민의 음식이 됐고, 이제는 세계인이 즐겨 찾는 등 한국 현대사가 압축된 음식이 바로 냉면이라는 것. 짜고 매운 양념 대신 담백한 맛이 살아 있는 냉면이야말로 21세기 음식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 몇 해 전과 달리 어느새 외국인과 젊은 손님들로 북적이는 냉면 집 풍경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이동구 기자 yidonggu@seoul.co.kr
  • [길섶에서] 급훈/박건승 논설위원

    ‘스스로 깨면 병아리, 남이 깨면 프라이’. 어느 고3 교실의 급훈(級訓)이란다. 무릎을 탁 치게 한다. 촌철살인이다. 초?중학교 시절 교실 칠판 위에 걸렸던 급훈은 으레 그 자리에 있는, 백지에 검은 정체(正體)를 담은 ‘빛바랜 액자’일 뿐이었다. 해가 바뀌어 새 학생과 선생님이 들어와도 변함이 없었다. 아무리 애써 봐도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최선을 다하자’거나 ‘하면 된다’는 것쯤이 아니었을까. 요즘엔 ‘오늘 흘린 침은 내일 흘릴 눈물’이라거나 ‘창밖의 선생님 지켜본다’, ‘엄마도 계모임에서 말 좀 해보자’와 같은 급훈은 철 지난 축에 든다고 한다. 그 자리를 ‘눈 떠’라거나 ‘미(美)쳐보자’, ‘쟤 깨워라’와 같은 임팩트 넘치는 급훈이 대신하는 모양이다. ‘칠판 보기를 공유 보듯’,‘교과서는 여자친구’?. 학생들과 선생님이 머리를 맞대고 정해서인지 내용이 톡톡 튄다. ‘더이상 미룰 수 없다. 너의 대학 나의 결혼’. 어느 노총각 선생님이 제자들의 대입 성공과 자신의 결혼을 함께 기원하며 만든 급훈이란다. 그 선생님과 학생들의 꿈이 올해에는 꼭 이뤄지길! 전국의 모든 고3들의 소망도 함께. 박건승 논설위원
  • [길섶에서] 비틀스의 추억/오일만 논설위원

    몰락한 제국 영국의 자존심은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냉전시대 소련이 두려워했던 록 그룹 비틀스(The Beatles)였다. 소련의 젊은이들은 비틀스의 음악을 몰래 들으며 ‘자유와 평화, 그리고 사랑’을 갈구했다. 아직까지 16억장의 앨범 판매량은 누구도 깨지 못한 신화로 남아 있다. 비틀스는 아픔부터 배웠다. 비틀스의 리더,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는 청소년기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공유했다. 고통을 잊기 위해 미친 듯이 기타와 음악에 빠져들었다. 음악사에 빛나는 머더(Mother)와 렛잇비(Let it be)가 이렇게 탄생했다. 청운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 10대 후반 독일 함부르크 뒷골목 클럽에서 하루 12시간씩 연주했다. 총성이 울려 대는 암흑 지대, 대기실에서 빵 한 조각으로 주린 배를 채웠고 근처 창고에서 새우잠을 잤다. 클럽이 망하면서 실업자도 됐다. 고향 리버풀로 돌아가 음악을 포기한 채 부두 짐꾼으로 전전하던 시절 그들은 새롭게 태어났다. 비틀스를 키운 것은 8할이 고통과 좌절이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무지개가 뜨지 않는 것처럼…. 오일만 논설위원
  • [길섶에서] 심복과 모사/최용규 논설위원

    국가대표 선발전이 본선보다 더 어려운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여자 양궁 올림픽 대표 선발전이나 여자 프로골프(LPGA)가 그렇다. 아직 본선이 진행 중이라 결과를 장담할 순 없지만 어떤 정당의 당내 경선 풍경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선이 본선보다 어렵고 예산 통과가 당선이라는 말이 기정사실처럼 들렸으니 말이다. 승패는 하늘의 뜻인가 인간의 능력인가. 천하를 휘어잡고 싶은 태공망에게 여상은 심복 한명(復心一人)과 모사 다섯명(謨士五人)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심복은 계략을 세우는 것을 돕고 시운을 판단해 큰 실수를 사전에 방지하며, 모든 작전을 총괄하는 특급 보좌관이다. 모사와는 급이 다르다. 그 당 예선 결과만 놓고 보면 둘 다 심복처럼 보였고 같은 일을 했지만 한쪽은 심복이었고, 다른 한쪽은 모사였던 것 같다. 국회의원 경선에서 떨어지자 감정 추스를 겨를 없이 주군 돕겠다며 짐을 싸 부산으로 내려갔던 심복은 훗날 난다 긴다 하는 수천명의 조력자를 끌어모았고, 옥살이를 같이할 정도로 충성심이 남달랐던 그 모사는 현자를 구하는 데 주저했다. 승패는 거기서 갈렸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 [길섶에서] 봄바람/손성진 논설실장

    바람이 분다. 그것도 온기 품은 봄바람이다. 봄바람은 가을바람처럼 스산하지 않고 피부 속까지 따스하다. 봄바람은 휙휙, 쏴쏴도 아니고 산들산들, 살랑살랑이다. 산에 들에 뽀얀 물감을 풀어놓는 봄바람은 붉지도 않고 누렇지도 않다. 봄바람의 색깔은 분홍 같을까, 연두 같을까. 물길 따라 걸으며 봄바람을 만난다. 지천으로 핀 들꽃, 물오른 이파리를 흔들며 휘늘어진 수양버들.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냇물은 끊임없이 저 강, 저 바다로 흘러간다. 아스라이 추억도 냇물을 따라 흐른다. 봄인데도 봄을 느낄 수 없는 그때. 봄은 참 잔인했다. 수십 번도 더 되는 봄이 지나가는 동안 봄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를 불러냈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봄 앞에 설 수 없었다. 왔는지도 모르게 봄은 지나가고 세월도 그렇게 흘렀다. 낙화는 이별일까. 그렇지 않다. 첫 꽃잎이 떨어져도 여름이 오기까지 차례로 봄꽃들이 잔치를 열 게다. 그보다 연초록 새순이 무럭무럭 자라 공허한 가슴을 먼저 채워 준다. 세상이 온통 푸르르다. 오호, 신록의 계절이다. 다시 찾아온 봄, 그냥 좋다. 손성진 논설실장
  • [길섶에서] 인사/박홍기 수석논설위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가방을 멘 초등학생이 유치원생처럼 허리를 숙여 배꼽 인사를 했다. “안녕” 그리고 “고마워, 인사해서”, 내릴 땐 “학교 조심해 가.” 아파트 이웃들을 잘 모른다. 일부러 찾지 않는 한 별로 마주칠 일이 없으니 제대로 알 턱이 없다. 다만 낯익은 분들을 마주치면 목례를 할 정도다. 대화를 나눈 적도 거의 없다. 회사에 도착해 사무실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문이 닫히는 순간 누군가 달려오는 듯해 얼른 열림 버튼을 눌렀다. 타더니 표정 없이 등을 보이고 섰다. 속으로 한마디 한다. “고맙다고 하면 어디 덧나나.” 일상에서 수시로 겪는 일이다. 낯선 사람은커녕 낯익은 사람도 작은 일에 도움을 받거나, 실례를 할 때 고마움이나 미안함을 표시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대체로 감정 드러내기를 꺼리는 것 같다. 인사한 쪽이 오히려 쑥스럽다. 실없이 보여서다. 상대방의 무표정, 무반응 탓이다. 무뚝뚝한 게 대수는 아닌데?. 다음엔 그러려니 하거나 못 본 체다. 악순환이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실례합니다.” 뭐가 그리 힘든가. 꼬마보다 못한 어른들이 꽤 많다.
  • [길섶에서] 낯선 지인/최광숙 논설위원

    최근 친한 친구가 남편이 환갑을 맞아 펴낸 것이라며 책 한 권을 가져왔다. 가정주부긴 해도 미적 감각이 뛰어난 친구라 직접 표지 등을 디자인한 예쁜 책이다. 처음에는 친구에 대한 우정과 성의로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다 보니 잔잔한 감동이 전해진다. 가난했지만 꿈을 키웠던 그의 학창 시절과 지방에서 개업의로 지내면서 나누는 환자들과의 교감 등이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더 좋은 위치로 병원을 옮길 기회도 나이 든 단골 환자들을 떠나지 못해 놓쳐 버리고 한자리에서 20여년간 병원을 운영한 그다. 하지만 이제는 2층 병원까지 힘들게 걸어 올라오는 노인들을 위해 아래층으로 이사를 할 채비를 하고 있다. 그가 글을 쓰게 된 것은 가슴속 깊은 마음의 상처를 지워 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봄비 오는 날 이른 새벽 세상이 모두 잠들어 있을 때 상념에 잠기는 그의 모습을 보니 굉장히 감수성이 예민한 성격이지 싶다. 그저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친구 남편으로만 봐 왔던 중년의 남자에게서 누구보다 온전하게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 새롭다. 최광숙 논설위원
  • [길섶에서] 보수화/황성기 논설위원

    요 몇 년간 옷을, 하물며 양말조차 제대로 사지 않았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은 봄철에 접어들면서다. 유행 좇기를 즐기지 않았지만 옷가게에 들러 새 옷도 보고 사곤 했다. 몇 해째 입은 봄옷을 꺼내 보니, 10년 가까이 된 어떤 옷은 상의건 하의건 폭이 넓어 촌스런 티가 물씬 풍긴다. 옷수선 가게에 물어보니 줄이는 데 새것만큼의 돈이 들었다. 옷뿐만 아니라 구두나 가방, 손수건, 혁대도 벌써 몇 년째 신던 것, 쓰던 것 그대로다. 나이 들면 쓸모없는 기억들은 뇌에서 저절로 사라져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습득했던 지식, 그리고 세상을 살면서 만들어진 생각은 특히 그렇다.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은 툭하면 업데이트를 요구한다.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쓸모가 줄어든다. 옛 옷을 입으며 유행을 무시하던가, 새 옷을 사 입으며 옛 옷은 과감히 버리던가. 옷처럼 묵은 지식과 생각도 갱신하지 않을 바에는 삭제하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 오래된 가치를 고집하며 세상을 좇지 못하는 옹고집으로 늙지 않아야 할 텐데 괜스레 걱정이다. 낡은 봄옷을 입으며 드는 생각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길섶에서] 공중전화 팬 서비스/서동철 논설위원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골목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공중전화 앞에 줄이 늘어서 있었다. 어르신 서너 분이었으니 ‘늘어서 있다’는 표현은 조금 과장일 것이다. 어쨌든 휴대전화가 퍼진 이후에는 보지 못한 풍경이었다. 휴대전화 보급률이 100%를 넘는 시대라고 한다. 주위에는 두세 개의 휴대전화를 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시대에도 어르신의 상당수는 이른바 통신복지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 탑골공원으로 이어지는 골목이었다. 탑골공원 앞 큰길 가에는 노출형 공중전화가 있고, 뒤편 허리우드극장 앞에도 전화 부스가 있다. 하지만 전화 거는 어르신은 볼 수 없었다. 노점상 아주머니는 “나도 차 소리가 시끄러워 통화를 할 수가 없는데 노인들이야 오죽하겠느냐”고 했다. 통신회사의 입장에서 공중전화는 벌써 애물단지다. 그럴수록 탑골공원 어르신들이야말로 가장 충성도 높은 고객이다. 어르신들에게 무료 전화를 비롯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작은 공간을 공원 주변에 만들어 보답을 하는 것은 어려운가. 박수받는 소액 투자가 될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봄날의 청계천/이동구 논설위원

    한층 따사로워진 봄기운이 무척이나 반갑다. 청명 한식을 훌쩍 넘기고도 한기를 떨치지 못하던 봄기운이 며칠 새 가로수 잎들을 제법 푸르게 꾸몄다. 하늘을 뒤덮던 미세먼지마저 자취를 감춘 도심은 활기가 넘친다. 한결 화사한 빛깔로 옷을 갈아입은 시민들은 커피 잔을 든 채 삼삼오오 청계천으로 모여들어 상춘객이 된다. 개천가에 걸터앉은 상춘객 앞으로 잉어 떼가 지나간다. 시끌벅적한 수다에 장단이라도 맞추는 듯 몸놀림이 잽싸다. 물결을 따라간 눈길은 돌 틈새 수줍게 피어 있는 노란 수선화에 넋을 잃는다. 진짜 봄이 왔구나! 개천을 타고 올라온 감미로운 바람에 옷자락이 꽃잎처럼 흩날린다. 인근의 빌딩 한쪽에서 수줍게 피었다 꽃잎을 떨어내고 있는 목련이 눈부시다. 한껏 데워진 봄볕에 나른해진 상춘객들은 밀려오는 하품을 떨쳐내려는 듯 더 큰 소리로 재잘거린다. 개천에 뚝뚝 떨어진 대화는 물길을 따라 저만큼 흘러간다. 처음부터 잡아 둘 마음이 없었으니 별 아쉬움은 없다. 감미로운 봄볕, 바람과 함께한 이 시간이 그저 소중할 뿐이다. 봄날은 또 그렇게 가고 있다. 이동구 논설위원
  • [길섶에서] 안개 띠/이경형 주필

    비가 온 다음 날, 동트기 전이다. 오두산 중턱에서 시작된 안개 띠는 비탈진 아파트 단지의 허리를 가로질러 장릉 숲으로 이어졌다. 갈현리 들판의 끄트머리를 따라 수평으로 형성된 짙은 안개 띠는 논밭과 산 능선을 상·하로 양분했다. 마치 들판 가장자리에 빙 둘러 흰 장막을 쳐 놓은 것 같다. 안개 띠 아래의 공릉천 습지와 논은 새벽 산책길에 만나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안개 띠 위로 보이는 높은 곳의 풍경은 아주 낯설었다. 높은 지역의 아파트는 구름 위에 있는 알프스 산간의 마을 같았고, 키 큰 나무들의 실루엣은 산수화 화폭의 여백 위에 떠 있는 산들을 연상시켰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차이는 뭘까. 안개 띠가 없었다면 풍경을 바라보는 시각적인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본질은 변함이 없는데, 주변 환경과 여건에 따라 같은 대상을 두고도 달리 생각하게 된다. 연극 무대에 선 배우는 똑같아도 분장과 조명과 효과음에 따라 천사가 되기도, 악마가 되기도 한다. 요즘 대선 무대에서는 얼굴의 가면을 수없이 바꾸는 중국 전통극의 변검(變脸)이 유행하고 있다. 이경형 주필 kh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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