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별마당도서관/김균미 수석논설위원

    궁금했습니다. 서울 강남의 쇼핑몰 한복판에 들어선 도난방지 시스템도 없는 열린도서관의 책들은 온전한지. 오는 30일 개장 한 달을 맞는 코엑스몰 ‘별마당도서관’ 얘기입니다. 지난주 별마당도서관에 갔었는데 듣던 대로 세련되고 2층 높이의 대형 책꽂이와 여유 있는 공간이 인상적입니다. 평일 퇴근 시간 무렵인데 200석의 좌석은 빈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서가의 책·잡지를 가져다 읽는 사람, 친구 기다리며 공부하는 젊은이들, 휴대전화로 검색하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책 갖고 가는 사람들 많지 않나요.” 돌아온 답에 뻘쭘해졌습니다. “이용자 양심에 맡겨야죠. 책도 기부받고 있고요.” 책 분실률이 예상보다 높지는 않답니다. 기부받은 책도 2주 전 1만 7000권에서 27일 현재 3만 권이 넘었고요. 아빠들, 가족 따라 쇼핑 나설 맛도 날 것 같습니다. 아내와 아이들 눈치 보며 아직 멀었냐고 채근하지 않고 기다릴 공간이 생겼으니 말입니다. 덕분에 쇼핑몰 경기가 되살아났다는 말까지 있는데, 제2의 별마당도서관 열 다른 기업 어디 없나요.
  • [길섶에서] 청와대 앞길/진경호 논설위원

    20여년 전 백악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대통령 집무실이 아니었다. 담장 밖 잔디밭 여기저기에 놓여 있던 벤치와 그 벤치에 두 다리 쭉 뻗고 누워 있는 홈리스, 노숙자들이었다. 낯선 것도 잠시, 가만히 멈춰 세운 눈길 속에서 그들은 정지용 시인의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백악관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미국”이라고 몸으로 말했다. 어제 청와대 앞길이 열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낮에만 통행이 가능했던 종로구 효자삼거리~팔판삼거리 앞길을 밤에도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매일 저녁 차창을 빼꼼히 내리고는 “부암동 가요”라고 신고(?)해야 길을 내주던 검문소의 호가호위도 사라졌다. 지금도 청와대 앞이 1인 시위대의 집결지인 상황이고 보면 “여기가 바로 대한민국”이란 말이 나올 날도 머지않은 듯싶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 담 저쪽에 내가 있는 까닭이고 /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길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의 ‘길’ 마지막 구절처럼 청와대 주인도 ‘내가 있는 까닭’을 다시 열린 길에서 거듭 새겼으면 한다.
  • [길섶에서] 오래된 것/손성진 논설주간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이 도시에서는 과거를 기억해 낼 근거가 없다. 부수고 갈아엎고 덧칠을 하기 때문이다. 30여년 전 다녔던 대학가에 갔다가 4년 동안 살았던 하숙집 두어 곳을 찾아본 적이 있다. 동네 전체가 재개발되어 하숙집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보고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오래된 것들은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쉽게 파괴된다. 그래서 어떤 곳에 갔다가 가끔 오래된 것들을 만나면 눈길을 뗄 수 없다. 지은 지 100년은 돼 보이는 목조가옥 같은 것은 사진을 찍어 두기도 한다. 길을 걷다 ‘정초(定礎) 1963년’과 같은 글귀를 발견해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43년이 된 서울지하철 1호선의 내부도 많이 변했지만 벽면의 누런 타일이 원래대로 남아 있는 것은 다행스럽다. 천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럽의 도시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저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언제라도 살던 곳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유명인사들이 살았던 집과 다녔던 카페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헌것은 무조건 바꾸고 보존에는 무감각한 우리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 [길섶에서] 솔푸드/서동철 논설위원

    지방 출장이 잦아지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밥을 먹을 때도 많아졌다. 비빔밥은 워낙 잘 먹기도 하지만, 솜씨가 없어도 크게 실패하지 않는 음식인지라 어디를 가서도 그럴듯한 메뉴가 눈에 띄지 않으면 이걸 고르곤 한다. 엊그제도 그랬다. 휴게소 음식치곤 깔끔해 보였고 맛도 좋았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계란 프라이’가 없었다. 어린 시절 달걀을 먹지 못할 형편은 아니었지만, 한 끼에 ‘공식적으로’ 두 알을 먹어 본 기억도 거의 없다. 물론 몰래 먹은 적은 여러 차례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1960년대 후반기다. ‘프라이 빠진 비빔밥’에서 천정부지로 오른 달걀값을 실감했지만, 인심이 여전히 좋은 곳도 있었다. 얼마 전 들른 회사 근처 순두부집은 식탁마다 바구니에 달걀을 넘치도록 쌓아 놓았다. 그런데 아뿔싸, 감동만 하다 순두부에 달걀 넣는 것을 잊어버렸다. 날달걀로 입가심을 할 수도 없고?. 이 집에 다시 갔을 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동료는 “그때 못 먹은 건 내가 먹어 줄게” 하면서 자기 순두부에 날름 달걀 한 알을 더 깨뜨려 넣는 것이었다. 그도 나처럼 달걀이 어린 시절의 ‘솔푸드’겠지….
  • [길섶에서] 잡초/손성진 논설주간

    뿌리 내릴 곳도 없어 보이는 시멘트 틈새에 자리를 잡고 꿋꿋이 살고 있는 잡초. 누가 물 한 방울 뿌려 주지 않아도 거뜬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이름 모를 풀. 척박한 도심 보도블록까지 어떻게 풀씨를 날려 삶터를 잡았는지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화분에 자라는 예쁜 꽃에만 눈길을 주지 사람들은 잡초에는 관심이 없다. 눈길은커녕 밟고 또 밟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잡초는 의연하고 굳세며 끈질기다. ‘춥다 덥다 울지 않는다/배고프다 목마르다 조르지 않는다/못생겼다 가난하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난초를 꿈꾸지 않는다/벌 나비를 바라지 않는다/태어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사는 것을 버거워하지 않는다/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아무도 탓하지 않고/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주어진 것만으로 억척으로 산다/버려진 곳 태어난 곳에서 모질게 버틴다/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살기 위해 먹는 수단은 언제나 신성하다’(김종태, ‘잡초는’) 누구에게나 힘든 일은 있다. 삶이 고달프다고 생각되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잡초를 들여다보자.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는 생명력을 느껴 보라.
  • [길섶에서] 권태(倦怠)/이동구 논설위원

    점심 식사 때 모처럼 활짝 웃었다. 조만간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한 참석자는 화젯거리가 희망적이고, 유머가 넘쳤다. 동석한 다섯 명 모두가 그의 입담에 웃음꽃으로 화답했다. 밥 한 그릇 함께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웃음의 여운은 며칠간 이어질 것 같다. 일상 속에서 웃음을 잃어버린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음주나 운동, 사람들과의 만남 등 무슨 일을 해도 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가끔 만나는 친구들 또한 비슷한 증세를 호소한다. 어떤 이는 우울증을 의심해야 할 정도라며 맞장구친다. 인생의 권태기인가? 권태에도 종류가 있다. 정말 심심하고 따분한 일상이 반복되는 무료함의 권태와 정신없이 바쁘지만 기쁨의 감정보다는 공허함이 앞서는 권태가 그것이다. 지인들과 함께 요즘 겪고 있는 권태는 후자에 가깝다. 모두 분주함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왠지 허전하고 재미없다는 느낌을 호소하는 것이다. ‘게으르다’는 사전적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신이 인간 세상을 창조한 이유는 권태로웠기 때문이다”는 어느 철학자의 주장이 맞다면 권태는 창조를 위한 재충전이 아닐지 자위해 본다. yidonggu@seoul.co.kr
  • [길섶에서] 인체의 신비/최광숙 논설위원

    왜 다섯 발가락 가운데 유독 엄지발가락이 클까? 이는 인류의 직립 보행과 관련돼 있다. 이동할 때 한쪽 다리에 가해진 체중은 보통 마지막에 엄지발가락에 실린 뒤 다른 쪽 다리로 옮겨진다. 체중을 온전히 견디려면 엄지발가락이 크고 튼튼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신체 모든 부분이 이런 진화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어느 신체 기관도 허술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여성의 골반이 남성보다 크고 발달한 것도 출산과 관련된 것처럼 모든 신체 기관이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최근 걷다가 넘어지는 작은 사고를 당했다. 본능적으로 아스팔트 길 옆 작은 풀숲으로 몸을 틀어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얼굴에는 코와 인중에만 상처가 났다. 입안을 보니 이빨 틈으로 까만 흙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여차하면 이가 부러질 뻔한 ‘참사’를 면한 것이다. 넘어질 때 얼굴 중 가장 높은 코부터 땅에 닿다 보니 이마나 다른 부위에 충격이 덜 가해졌고, 불쑥 튀어나온 인중과 윗입술이 치아를 보호한 것 아닌가 싶다. 우리 몸이 참으로 오묘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 하루다.
  • [길섶에서] 첫 월급/황성기 논설위원

    20~30대가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에게 사드리는 선물 리스트가 포털에 떠 있다. 1위 지갑, 2위 내복, 3위 돈다발꽃에 이어 족욕기, 금 카네이션, 커플 등산복의 순이다. 고생하며 키워 준 부모에게 감사하는 풍습은 변하지 않았구나 싶다. 빨간 내복이 주류를 이루던 선물 종류도 다양해졌다. 5만원짜리 여러 장과 꽃을 섞어 보내는 돈다발꽃이 눈에 들어온다. 1981년 독자 투고의 한 구절. “큰아들이 첫 월급을 탔다면서 구두 한 켤레를 사 왔다. 마음 한 구석 뿌듯한 행복감에 콧등이 찡해진다”는 어느 어머니의 글이다. 빈축을 살 자랑질 하나. 어느 날 아들이 내 신발을 내려보더니 “첫 월급 타면 신발 하나 사 주겠다”고 한다. 곧 취업 전선에 나와야 할 아들이 다 컸다는 생각에 대견했다. 평소 내 일에 관심 없다고 여겼는데, 4년 가까이 된 신발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딱딱한 구두는 요통 때문에 신지 못하고 구두 대용의 신발을 색깔만 달리해 두 켤레를 번갈아 신고 있다. 그런 사연의 신발인지 모르고 ‘절약’, ‘구두쇠’란 착각을 한 듯하다. 그래, 고맙다. 하지만 아비는 신발보단 돈다발꽃이 더 좋단다. 황성기 논설위원
  • [길섶에서] 도덕과 선행/손성진 논설실장

    이룰 것 다 이루고 한 나라의 재상으로 천거받은 사람들의 도덕성이 저 지경일 줄은 누가 알았겠나. 털어 먼지 나오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했지만 어느 장관 후보자의 상상하지도 못할 도덕적 흠결은 이해되지 않는다. 살아오면서 도덕과 법을 얼마나 잘 지켜 왔는지 자문해 보고 반성하는 것도 앞으로의 삶에 보탬이 될 일이다. 나도 음주운전도 해 봤고 다운계약서도 써 봤다. 재테크인지 부동산 투기인지 애매한 투자도 해 봤다. 그러니 남 욕할 처지가 못 된다. 과거보다 미래,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도덕적, 법적 규율을 어기는 일을 더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보는 것, 그것이 타인을 비난하기에 앞서 내가 할 일이다. 더 적극적으로는 하루에 한 가지라도 좋은 일을 하는 것으로 과거의 잘못을 갚는 것도 가치가 있을 듯하다.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 하나라도 주워 보고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는 선행은 초등학생에게만 가르칠 게 아니다. 어른들부터 도덕을 지키고 선행을 베풀어야 세상이 달라진다.
  • [길섶에서] 좋은 개, 나쁜 개/서동철 논설위원

    소파에 누워 TV 리모콘을 돌리다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프로그램이 나오면 눈길이 간다. 한마디로 집에서 키우는 개가 귀여움 덩어리로 사랑을 받을지, 사고뭉치로 눈총만 받을지는 주인 하기에 달렸다는 게 메시지다. 어린 시절 우리집 진돗개 목단이는 아침마다 등굣길에 따라 나섰다. 학교 앞은 물론 어느 날은 3층이었던가 교실까지 들어온 적도 있었다. 당황스러운 것 이상으로 기특한 녀석이었다. 목단이가 가출한 뒤 데려온 진돗개 진호는 아버지가 친구에게 주어버렸다. 응암동에서 동교동으로 한밤에 자동차에 실어 보낸 진호는 그런데 사흘 뒤 집 앞에서 꼬리를 쳤다. 어떻게 왔는지 지금도 불가사의하다. 또 다른 진돗개 진용이를 편애하고 진호를 냉대했던 아버지는 후회하지 않았을까. 엇그제 서울에서 대문을 뛰쳐나온 맹견 두 마리가 행인을 습격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공격성을 극대화하도록 만든 종자이니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 사람에게 달려드는 난동을 부렸어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종자다. 한 마리는 벌써 총에 맞아 죽었다. 이런 게 ‘주인을 잘못 만난 죄’가 아닐까.
  • [길섶에서] 윤오월/박건승 논설위원

    일주일 뒤인 23일은 음력 5월 마지막 날이다. 그런데 24일부터 다음달 22일까지 다시 음력 5월이 이어진다. 윤오월이 든 까닭이다. 예로부터 윤달은 ‘공달’ ‘그저달’ ‘여벌달’이라고 했다. 약간은 불경스러운 일을 해도 귀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장(移葬)과 이사를 많이 하고, 나이 꽉 찬 어른들은 삼베 수의와 관을 만들어 보관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윤달이 든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 집 역시 그럴 뻔했다. 지난주 모처럼 장모님을 찾아뵀더니 그날이 처남 생일이란다. 집사람이 실수로 한 달여 뒤인 윤오월 달력에 생일 표시를 해 놓았으니 선물 준비를 안 했을 수밖에. 아무튼 윤달 덕분에 선물 살 돈이 굳은 셈이다. 윤오월 여름은 길기도 해서 무지 덥다고 했다. 올해도 7월 말까지 ‘마른 장마’ 속에 불볕더위를 보이는 날이 많겠다는 예보다. 한여름에 음력 오월이 연이어진다는 생각에서일까. 지루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이라고 했건만, 윤오월이 잘난 체하고 끼어들어 삼복더위 속 매미울음이 넘쳐나는 때가 될 것이다. 박건승 논설위원
  • [길섶에서] 심심(心心)/황수정 논설위원

    내 방의 괴상한 풍경화. 저 귀퉁이에 가습기, 이 귀퉁이에는 제습기. 꽁꽁 싸맨 한겨울의 강파른 공기를 눅여 주던 것, 저만치 장마가 닥쳐오는 이즈음 요긴해지는 것이다. 태생적 사명이 엄연히 다른 사물들이 한 공간에서 머리 맞댈 까닭이야 애초에 없다. 글로 치자면 형용모순, 말로 치자면 이율배반. 작은 방안의 모순과 배반은 순전히 내 게으름 탓이다. 어차피 찬바람 날 텐데, 돌아서면 또 장마철일 텐데. 제때제때 치우지는 않고서 철철이 핑계 꾸러미다. 그렇게 붙박이 가구가 되고만 물건들은 본의 아니게 용도 변경돼 있다. 제습기는 아예 책 선반으로 둔갑한 지 몇 달째. 이런저런 욕심에 내 손으로 끌어들인 사물들이 오늘은 문득 각다귀마냥 성가시고 번잡스럽다. 옛 현인들은 겨우 좌탁 하나 놓은 방에서 마음을 굶겨 바다만 한 마음을 얻었다지. 그 요령의 발치에도 못 따라가면서 나는 자꾸 내 공간을 좀먹는 시속의 이기(利器)들만 탓하고 앉았다. 욕심이 걷혀 여백인 방 안에서는 마음도 비워질는지. 심심해진 방에 심심함이 넘치게 고여, 머리가 잠기도록 한 번 심심해 봤으면 좋겠네.
  • [길섶에서] 모내기/최용규 논설위원

    바짝 말라 볼품없는 논도 일 년에 두어 번은 보는 이의 혼을 쏙 빼앗는다. 모내기 끝난 오뉴월 푸르름이 먼저일까. 철원 가는 도로 옆 바둑판 논도, 강화 섬 서쪽 드넓은 평야도 녹색의 향연으로 물결치는 지금. 모판을 빠져나온 모는 어느새 어른 무릎 높이까지 자라 살랑대는 미풍에 몸을 맡겼다. 서너 달 뒤면 황금 물결이 일 것이다. 지독한 가뭄 탓에 더욱 눈부신 청록의 싱그러움은 제 잘나 그런 게 아니다. 다 친구 잘 만난 덕이리라. 친구이자 주인인 농심(農心)이 메마른 논바닥에 흠뻑 물을 댔고, 괜찮은 다른 친구 수로(水路)가 물길 아닌 핏줄이 되었다. 시간이 꽤 흘렀다. 스무 살, 금산 추부 성당리 촌구석에는 요긴한 수로도, 지금은 흔하디흔한 이양기 한 대 없었다. 어스름한 시각, 모판에 둘러앉아 모 밑동을 살짝 당겼고, 날이 새기 무섭게 묶은 모를 물 받아 놓은 논 여기저기에 던졌다. 거머리가 뜯는지도 모르고 동네 아줌마들의 ‘인간 이앙기’라는 말에 홀려 허리 부러지는 줄 알았다. 청개구리가 몸에 좋다며 혓바닥으로 핥아 목구멍에 집어넣고 걱정하던 이십 세 청년도 있었다. 정이 깊던 시절이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 [길섶에서] 도전/오일만 논설위원

    언젠가 임권택 영화감독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TV에서 1960년대에 제작된 내 영화가 나왔는데 끝날 무렵에야 내 작품인 것을 알았다. 부끄러웠다. 감독 데뷔 초기 10년간 50여편의 작품을 보면 지금도 괴롭고 잊고 싶다.” 18살에 가출해 군화 장사로 연명하던 그는 순전히 ‘먹고살기 위해’ 영화판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주린 배를 움켜쥔 그에게 작품성은 사치였고 충무로 제작자들이 원하는 돈벌이 영화에 골몰했다. 국제 영화제를 휩쓸며 한국 자존심을 세운 80대 노감독의 ‘고해 성사’가 충격으로 다가온 이유다. 이런 ‘임권택’을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만든 것은 열정과 도전이었다. 60년대 너도나도 미국 영화 베끼기에 나설 때 그는 한국적 정서를 생각했다. 돈 되는 할리우드 아류작을 포기하고,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곰삭은 설렁탕’ 같은 작품을 꿈꿨다. 초기 실패를 거듭했지만 오랜 세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영상 기법들을 실험했다. ‘잡초’, ‘서편제’, ‘취화선’ 등 세상을 놀라게 한 걸작들이 이렇게 탄생했다.
  • [길섶에서] 궁금증/손성진 논설실장

    어렸을 때 산은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산 자체가 아니라 저 산 너머에 도대체 어떤 세상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집과 학교만 오가던 어린아이가 품을 수 있는 궁금증이었는데, 다시 말하면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래서 어쩌다 아버지를 따라 산에 오르면 산과 그 뒤의 산, 첩첩이 이어지는 산 너머의 세상을 마음속으로 상상하곤 했다. 다 자라고 나서 그때 궁금했던 산 너머의 세상이 단지 수십㎞밖의 다른 동네에 불과한 것을 지도를 보고 알게 되고는 웃음을 지었었다. 그래도 그 작은 호기심이, 보잘것없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내게는 어쩌면 성장의 동인(動因)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궁금하면 못 배기고 알아내야 직성이 풀린다. 멀리 떨어진 두 대륙에 사는 민물 어종이 어떻게 비슷한지에 대한 궁금증도 그 하나인데 해답을 아직 얻지 못했다. 생물학자나 진화학자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려줄지 모르지만 혼자 책이나 자료를 찾아보며 답을 구해 가는 것도 작지 않은 재미다. 그런데 우주의 끝은 도대체 어디이며 거기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을까. 손성진 논설실장
  • [길섶에서] ‘VIP’의 뒤통수/송한수 체육부장

    ‘몹쓸 기억력’이 열한 해 앞을 더듬는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격주간지 편집장을 맡던 무렵이다. 68쪽에 정부 정책과 맞닿은 글을 실었다. 2006년 6월, 꼭 요맘때였다. 편집을 끝냈다. 물론 토론을 거친 터였다. 현충일 화보(畵報)가 물의를 빚었다. 대통령 사진을 둘러싸고서다. 현충일 행사에서 연설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정부 공무원들이 손사래를 쳤다. ‘VIP’ 뒤통수를 게재하는 게 불충(不忠)이란다. 공직자에게는 불문율이란 설명도 덧댔다. 난 거세게 대들었다. 그 까닭은 뚜렷하다. 가장 좋은 컷이었다. 청중석 국민들의 모습을 잘 담았으니 말이다. 그러자면 연사(演士)의 등을 보일 수밖에 없지 않나. 뒤통수가 뻐근했다. 목청을 더 키웠다. VIP를 제대로 모시는 태도가 아니라고. 깊은 뜻을 몰라 그러느냐고. 권위주의 청산을 외치지 않았느냐고. 왜 이를 거스르려 하느냐고. 그것이 바로 불충이라고. 그렇지만 도통 먹히지 않았다. 까맣게 탄 속을 달래야 했다. 줄담배를 또 태웠다. 끝내 애꿎은 몸만 축냈다. 그러니까 차마 지울 수 없는 기억이다. 송한수 체육부장 onekor@seoul.co.kr
  • [길섶에서] 접경지역/이경형 주필

    북서풍이 불거나 안개가 많이 낀 날은 소리가 더 잘 들린다. “미제 놈들의 핵전쟁 놀음….” 임진강 건너 황해도 개풍군 임한면 마을 쪽에서 틀어 대는 대남방송은 이제 귀에 많이 익었다. 이른 아침 산책길을 나설 때면 으레 북쪽에서는 북 아나운서의 도발적인 억양이 귓전을 때린다. 남쪽 갈현리 마을 동네 스피커에서는 ‘행사 알림’ 방송에 이어 국민보건체조 구령이 이어진다. 파주 오두산 앞 임진강 하구에서 강을 따라 동북쪽으로 약 4㎞ 지점까지는 비무장지대(DMZ)가 없다. 임진강 폭이 남북을 갈라놓는 경계선이다. 탄현면 만우리 앞의 강폭은 썰물 때는 400m도 채 안 된다. 해발 125m의 보현산 산정에서 내려다보면 임진강 북안의 북한 마을은 바로 코앞의 이웃 마을이다. 접경지역에서 살다 보면 남북 간의 긴장도 평범한 일상사일 뿐이다. 우리 군의 대북방송은 스피커 방향이 북쪽으로 향해 있는 탓인지 이곳에선 들어 본 적이 없다. 남북이 상호 심리전으로 방송을 하고는 있지만 과연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남북이 머지않아 교류의 물꼬를 트고 비방 방송도 중단하지 않을까.
  • [길섶에서] 단비/이동구 논설위원

    이틀째 비가 내린다. 목마른 대지를 차근차근 적신다. 감질난다는 느낌이지만 오랜 가뭄 중이라 더없이 반갑다. 꼭 필요한 때에 맞춰 내려 주는 그야말로 ‘단비’다. 비용 들이는 일도 아닌데, 이왕이면 시원하게 좍좍 좀 내렸으면 좋았으련만. 약간은 아쉬운 마음에 허공에다 눈을 흘긴다. 이맘때의 비는 예부터 풍요의 상징으로 여겼다. 논밭의 곡식을 비롯해 꽃과 나무들이 한창 자라야 할 때이니 당연하다. 빗줄기가 활기차게 땅을 적시고 농부의 땀방울까지 말끔히 씻어 준다면 금상첨화다. 가을의 풍요로움을 약속할 수 있는 단비가 아닌가. 다른 자연현상과 마찬가지로 비도 인간의 심성에 자주 비유된다. 김남조 시인은 ‘비는 뿌린 후에 스스로 거두지 않음이니/ 나도 빗물 같은 정을 주고 달라진 않으리라?’며 빗물을 인간의 정(情)에 비유했다. 정치니 사회생활이니 하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온갖 배신과 시기, 질투 속에서 살아간다. 시인의 마음이나 곡식에 내리는 단비처럼 그저 뿌려 주기만 한다면 정이 넘치는 삶이 되지 않을까. 단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글쎄…. 이동구 논설위원
  • [길섶에서] 욕심과 욕망/손성진 논설실장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다.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법구경에서는 “하늘에서 황금비를 내린다 해도 욕망을 다 채울 수 없다”고 했다. 지나친 욕심은 늘 화를 부른다. 욕심은 자기 현실에 만족함으로써 버릴 수 있다. 현명한 사람은 욕심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탈무드에서도 “올바른 자는 자기의 욕심을 조정하지만 올바르지 않은 자는 욕심에 조정당한다”고 했다. 물론 욕망이 없는 인생이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욕망이 과하면 그 욕망을 결코 이룰 수 없다. 톨스토이는 “욕망이 작으면 작을수록 인생은 행복하다”고 했다. 작은 것도 소중하게 여기고 고맙게 생각하자. 가짐보다는 버림을 더 잘 알아야 한다. 우파니샤드에서는 “버림으로써 얻는다. 그대여 탐내지 말라”고 했다. 욕심은 타인과 자신의 피해를 부른다. 성경에는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그것이 자라면 죽음에 이르리라”고 적혀 있다. 어느 ‘자연인’이 50억을 준다고 해도 도시에 나가 살지 않겠다고 했다. 500억, 5000억원의 가치가 있는 자연이 좋다고 했다. 욕심이 치밀어 오르면 이런 가르침들을 되새겨 보라.
  • [길섶에서] 송인(送人)/오일만 논설위원

    누구나 살다 보면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시구가 있을 법하다. 세상살이 힘들 때나 어려울 때 간혹 기억 저편에 잠자고 있던 구절을 끄집어내 마음을 달랬던 기억들이 새로울 것이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정지상의 송인(送人)이란 시가 그렇다. 비 온 뒤 대동강변의 싱그러운 풍경 속에서 정인(情人)을 보내는 시인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직도 회자되는 마지막 구절, 별루년년첨록파(別淚年年添綠波·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더하여지네) 구절은 당대 내로라하는 시인 묵객들도 감동시킨 최고의 경지로 꼽힌다. 격조 높은 시인의 인생관에 탐복했던 일이 새롭다.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이별은 아프다. 올 들어 부모 세대의 부고 소식이 부쩍 늘었다. 지난해와 또 다른 느낌이다. 어릴 적 따뜻하게 대해 주셨던 그 어르신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생로병사, 어쩔 수 없는 인생 여정 속에서 천수를 다하셨다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제 지인의 부친상에 가면서 송인이란 시가 얼핏 떠올랐다. 오랜만에 마주친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한 세대가 다시 지나감을 예감한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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