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고라니/이춘규 논설위원
경기 파주시 야산자락에 있는 지인의 주말농장에 갔다. 고추, 상추, 고구마, 쑥갓, 오이 등이 자라고 있었다. 일하다 보니 고구마 줄기 상당수가 통째로 잘려나가 안타까웠다. 여러가지 정황을 종합, “고라니가 먹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일주일 뒤 지인이 밭에 가니 장마로 물이 불어난 수로에 고라니 새끼가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 커다란 쥐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고라니새끼였단다. 구해주려 하자 새끼는 비명을 지르고 어미는 새끼를 공격하는 것으로 착각, 근처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녔다고 한다.
새끼의 털을 말려주고, 기념사진도 찍고, “고구마 먹지 말아줘.”라고 다독인 뒤 놓아주자 고라니가족은 평온을 되찾았다. 심성 고운 인간을 만난 운좋은 고라니들. 고라니, 맷돼지 등 야생동물들이 깊은 산에서 서식밀도가 높아지자 자꾸 민가 근처로 내려와 인간과 충돌한다. 인간과 야생동물의 충돌은 갈수록 심해질 것 같다. 공존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외진 주말농장 고라니가족의 그 후가 걱정된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