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표정/노주석 논설위원
인간의 표정 3000가지를 촬영한 사진가가 있다. 나는 몇 가지의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거울을 잘 보지 않는 탓에 알 도리가 없다. 감정표현에 무딘 편이다. 웃고, 울고, 화나고, 놀라고, 기뻐하고, 삐치고, 쫄고, 떨떠름해하고, 안타까워하고, 비웃고, 부럽고, 무섭고, 슬픈…. 그리고 무표정. 기껏해야 열 손가락 안일 것이라는 짐작과 달리 의외로 많다.
컴퓨터그래픽으로 가장 구현하기 어려운 것이 복잡미묘한 얼굴 감정표현이란다. 다윈은 “사람과 동물의 표정은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다.”고 설파했다. 표정도 유전된다는 게 최신 연구 성과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루오전’에 다녀왔다. 그림을 보기 전에는 루오의 색에 관심이 있었지만 보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등장인물의 표정에 마음이 끌렸다. 판화 속 인간군상의 표정은 흑과 백 두 가지로도 충분히 표현되고 남았다. 간교, 음험, 사악, 비열한 표정 앞에서 치를 떨었다. 가끔씩 이상한 표정 짓지 말라는 지적을 듣는다. 이 순간 내 표정이 궁금하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