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ARS/노주석 논설위원

    컴퓨터를 켤 때마다 바이러스 치료 사이트가 뜨기에 별 생각 없이 가입했다. 컴퓨터 안전을 위해 투자하는 셈 쳤다. 처음 며칠 보람도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 월말 자동연장에다, 비용도 처음 제시된 액수보다 갑절이나 많이 들었다. 월말에 날아온 결제문자를 보고 시간을 내 전화를 했다. ARS(자동응답장치)였다.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이행했건만 결과는 “지금 상담원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 뒤 다시 전화해 주세요.”라는 멘트가 흘러나올 뿐이었다. 사흘 연속 반복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전화할 때마다 10여분씩 진을 뺐다. 참다 못해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 문자를 남겼다. 감감무소식이다.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런 경험이 부지기수다. 대기업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공공기관이나 병원의 ARS를 무사히 ‘통과’해 상담원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ARS 전화 걸기가 두렵다. 짜증이 난다. 누구를 위한 ARS인가.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삶의 기술/황진선 특임논설위원

    슈퍼마켓에 자주 가는 편인데 계산대에만 서면 심기가 불편해진다. 줄이 길 때는 더 그렇다. 시간을 빼앗긴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앞사람이 계산대에서 식료품을 놓고 왜 할인이 안 되느냐고 실랑이를 했다. 금세 화가 났다. 아니, 할인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미리 알아봐야 하잖아? 엊그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결혼 청첩장을 받아든 아내가 예식장 위치를 물었다. 그래서 지도를 짚어가며 3분 남짓 설명했을까. 내 목소리엔 어느새 짜증이 배어 있었다. 낌새를 모를 리 없는 아내는 옆방으로 건너가고 말았다. 요즘 관심이 없는 일에는 부쩍 따분해하고 화까지 낸다. 그런 심리의 저변에는 시간을 빼앗겨선 안 된다는 이기심, 그러면 쓸모없는 사람으로 떨어질 것이란 두려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다. 나만 그런가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남을 위해 시간을 남겨두는 게 좋은 삶의 기술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황진선 특임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길섶에서] 하느님의 계시/육철수 논설위원

    고향 가는 길에 모처럼 형님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아이들 얘기로 옮겨갔다. 공부는 뒷전이고 컴퓨터에 빠진 우리 막내 녀석 걱정을 했더니, 형님은 “마음을 바꿔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화로 위로했다. 서로 나이가 들어 결혼한 부부 교수가 있었다. 아들을 낳았는데 지능이 낮았던 모양이다. 부부 모두 명문대를 나와 직업도 번듯한 터라, 이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집안에 도무지 웃을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교회를 다녀온 남편이 만면에 화색을 띠었다. 아내가 연유를 물었더니 남편은 “아들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가 있었다.”고 했다. 하느님이 “이 아이를 가장 잘 키울 사람은 세상에 당신 부부 밖에 없더라. 그래서 그대 부부에게 보냈으니 잘 키워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부부가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줬더니 놀랄 만큼 좋아졌다는 것이다. 글쎄, 와 닿기는 하는데…. 우리 막내에 대해선 하느님의 계시도 없고 내 욕심 탓인지 마음을 바꾸기가 영 쉽지 않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길섶에서]헤어 조각가/최광숙 논설위원

    최근 머리카락을 잘랐다. 머리를 한 올 한 올 자르며 다듬는 데 무려 1시간20여분. 그 미용사의 화법이나 스타일은 새로운 버전의 ‘앙드레 김’을 보는 듯 독특했다. 영어도 유창했다. 그는 강남에 있는 자신의 미용실을 헤어 스튜디오라고 지칭했고, 자신을 행복이 넘치고 운이 트이는 헤어를 ‘조각’하는 예술가로 여겼다. 예약 손님만 받고 CEO 등이 고객이란다. 종업원도 없이 홀로, 파마도 하지 않고 오로지 커트 하나로 승부를 걸고 있었다. 커트 전에 ‘작품구상’을 한다며 나의 머리 정면·측면·뒷면사진을 찍어 핸드폰으로 보내달라는 부탁도 했다. 그의 이런 특별함에 대해 치러야 할 대가는 속이 쓰릴 정도로 컸다. 파마는 하지 않고 커트만 했을 뿐인데 비용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내 평생 그런 거금을 머리에 쓴 적이 없어 더욱 그랬다. 미리 가격을 물어보지 않은 걸 후회했지만, 누굴 탓하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배운 것으로 허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과거, 현재, 미래/구본영 수석논설위원

    가을에 찾아오는 때아닌 여름을 뉴요커들은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라고 부른다고 한다. 요즘 날씨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입추와 처서를 훌쩍 넘겼건만 여전히 후텁지근하다. 유난히 무더웠던 한여름을 보낸 뒤끝이라 그런 것인가. 어서 시간이 흘러 가을이 왔으면 하는 조바심만 앞선다. 그러다가 옛 친구가 블로그에 올린 영감어린 시를 읽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특히 “시간이 시작된 후/오늘은 언제나 사람의 친구였습니다/그러나 인간은 무지한데다 슬픔을 이기지 못해/어제와 내일만 바라봅니다 …”라는 대목에서였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나 불확실한 미래에 얽매이지 말고 고달프더라도 오늘 최선을 다하라는 권면이 아닌가! 오늘 하루를 성실하고 즐겁게 살라는 메시지에 블로그를 찾은 많은 친구들이 동의했다. 그중 “어제는 ‘history(역사)’, 내일은 ‘mystery(불가사의)’, 그러나 현재는 ‘present(선물)’”라는 서양 속담을 인용한 댓글이 무엇보다 마음에 와 닿았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119/노주석 논설위원

    난생 처음 119에 전화를 걸었다. 지리산에서 보낸 여름휴가 중 일어난 일이다. 친구가 폭우로 불어난 급류에 휩쓸리면서 계곡에 격리됐기 때문이다. “빨리 와 주세요. 사람이 계곡에 갇혔어요.” 다급한 구조전화에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지금 당장 돌아가실 정도는 아니죠?” “무슨 말씀이세요. 물이 점점 불어나서 언제 떠내려 갈지 몰라요.”라고 다그쳤다. 안타까운 답이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그런데 구급차가 없어요. 방금 발생한 교통사고 현장에 출동했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소방대원의 속도 타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119 구급차가 1대밖에 없단다. 처리를 끝내고 오려면 최소 30분은 기다려야 했다. 119에 신고하면 바로 구해 줄 것으로 믿었다. 구급차가 없는 상황은 상상도 못했다. 우리는 엄혹한 현실을 깨달았다. 주변을 뒤져 구조장비를 찾아냈다. 친구는 우리 손으로 구했다. 조난당한 지 30분이 지난 뒤였다. 뒤늦게 출동한 소방대원을 원망하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태풍 단상/함혜리 논설위원

    태풍 곤파스가 중부지방을 강타했던 날의 출근 길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바람에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패잔병처럼 차도와 인도에 나뒹굴고 있었다. 나무가 뿌리째 뽑혀 차도에 뒹굴고, 가로등과 전선주도 맥없이 꺾여 인도를 가로막고 있었다. 뉴스에 보니 전국적으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무가 뽑히고 입간판이 흉기가 되어 날아다닐 정도의 위력이었으니 오죽했을까. 멋지고, 잘난 줄만 알았던 대형 구조물들이 자연재해 앞에서 어이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니 놀랍기도 하면서 기분이 착잡했다. 자연은 커다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이렇게 가끔 재해를 통해 인간에게 경고를 준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온도 상승이 곤파스의 위력을 더욱 키웠다고 한다. 인간의 탐욕과 야심이 지나치면 위험한 상황을 초래한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자연의 이치를 삶의 법칙으로 삼으면 몸을 보호할 수 있고 생명을 보전할 수 있다는 장자의 가르침이 새삼 가슴에 다가오는 아침이었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빗물 세례/육철수 논설위원

    지난 주말, 저녁 무렵에 하늘이 터진 듯 비가 주룩주룩 쏟아졌다. 동료들과 막걸리나 한잔 하려고 나섰다가 ‘회군’했다. 우산이 있었지만 그대로 갔다가는 양복이며 구두며 다 젖을 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사무실 건물 안에 있는 식당에서 가볍게 한잔하는 것으로 끝냈다. 퇴근을 하려는데 빗줄기는 여전히 세찼다. 사무실에서 신문을 읽고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시간을 끌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빗줄기가 약해졌다. 소강상태를 틈타 재빠르게 전철역까지 이동했다. 길거리는 온통 빗물로 넘쳤다. 전철역 구내로 막 접어드는 순간, 지나가는 차량이 고인 물을 확 튀겼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어깨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었다. 우산이 시야를 가려 ‘사주경계’를 못한 게 결정타였다. 당황하는 사이에 물세례를 퍼부은 까만 승용차는 벌써 저만치 갔다. 장대비를 피하려고 퇴근도 미루고 인내심 있게 기다렸는데, 참으로 낭패였다. 운전자 여러분! 이럴 땐 불쌍한 보행자들 생각해서 조심 좀 합시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길섶에서] 금강초롱/이춘규 논설위원

    늦장마 속 햇볕 따가운 8월 하순 주말. 강원·경기 경계지역 산행의 발걸음은 무겁다. 땀이 비오듯 한다. 전반부 오르막 길은 더 힘겹다. 숨이 턱턱 막혀 쉬면서 오른다. 네 시간 정도 올랐을 때 뜻밖의 행운. 6월 초쯤 피는 새하얀 함박꽃(산목련)이 거짓말처럼 반긴다. 힘이 솟는다. 함박꽃의 기쁨은 잠시. 1000m 안팎 봉우리를 오르내리자 몸은 파김치가 돼 간다. 그늘 속 산바람은 어느새 선선하지만 기력이 다해 간다.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 무렵 한반도 야생화의 진객 금강초롱이 새 힘을 준다. 해발 1168m 산꼭대기 부근 다섯 군데에서 본 보라색 금강초롱들. 겨우 몇 송이씩이다. 금강초롱들이 군락을 이루지 않고 있어 더 소중해 보인다. 높은 산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생명체들은 등산의 힘겨움을 덜어준다. 하지만 땀 흘려 높이 오른다고 금강초롱 같은 진객을 만나고, 좋은 전망을 만끽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맑은 공기에 만족해야 할 때도 적지 않다. 조금 땀 흘렸다 해서 큰 결실을 기대하진 말라고 산이 일갈한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양재 해변’/최광숙 논설위원

    집에서 가까운 양재천변에 있는 야외 수영장. 어린 조카들과 무더위를 잊고자 이곳을 찾았다. 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이 물놀이에 신이 났다. 튜브를 타고, 미끄럼틀을 타며 즐거이 노는 조카들과 함께 놀다 보니 나 또한 동심으로 돌아간 듯 즐거웠다. 집에서 준비해 간 과일과 간식도 먹으니 나들이 나온 느낌이 팍팍 들었다. 가끔 양재천 주변을 산책하다 이 수영장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곤 했다. 여름 한철을 쓰려고 이 넓은 곳에 수영장을 만든 것이 영 못마땅했다. 특히 휑하니 찬바람이 부는 겨울철에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놀아 보니 마음이 달라졌다. 한철이라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면 그만한 가치는 있겠다 싶다. 유아용 풀장 옆에는 선탠을 즐길 수 있는 의자도 마련돼 있어 어른들에게도 좋았다. 비키니 차림의 멋쟁이 아가씨와 데이트를 즐기는 멋진 근육질의 남성도 눈에 들어온다. 한참 물장구치다 보니 와이키키 해변이 부럽지 않았다. 여기가 ‘양재 해변’이니 생각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기쁨 선택/황진선 논설위원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곧바로 일어날 것인지, 조금 게으름을 피울 것인지 잠시 고민한다. 집을 나서서는 빨리 걸을 것인지, 여유있게 걸을 것인지 결정한다. 저녁에는 집으로 직행할 것인지, 동료와 저녁을 같이 할 것인지를 놓고 망설이기도 한다. 요즘 어느 책에서 본 ‘매 순간 기쁨을 선택하라’는 말이 화두처럼 맴돈다. 기쁨은 감정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화났을 때 욕을 쏟아내고 싶은 것은 감정이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후회스러울 때가 많다. 감정을 다스려 대처하는 게 낫다. 시작은 좋았는데 뒤끝이 안 좋을 때도 있다. 과음한 다음날 후회하는 게 예가 될 수도 있겠다. 우리는 감정에 치우쳐 슬픔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기쁨을 선택하는 것은 이성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기쁨의 작동 체계는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누구라도 기쁨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을 자유롭고 인간적으로 성숙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감정과 유혹에 빠져 허우적대기 일쑤지만.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길섶에서] 열혈 엄마/육철수 논설위원

    K후배는 6년 전 기자를 그만두고 보험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근황을 들었더니 올 여름에 색다른 체험을 하고 있단다. 큰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인데, 아이에게 수험지도를 하고 수험생들의 고충을 경험해 보려고 입시학원에 등록했다고 한다. 학원에서 ‘사회문화’를 수강하는데, 고3 학생과 재수·삼수생들 틈에 끼어 공부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닌 모양이다. 일요일에 3시간 수업하고 돌아오면 온몸이 쑤셔 녹초가 된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이 고3일 때는 공부가 힘든 줄 몰랐는데 장난이 아니란다. 하지만 아들과의 소통에 물꼬를 튼 게 큰 소득이라고 자랑했다. 예전 같으면 “공부가 뭐 그리 힘드냐. 다들 하는 건데.”라고 다그치곤 했는데, 요즘엔 “많이 힘들지?”라고 등을 토닥여 준다고 했다. 열혈 엄마가 따로 없다. 어떻게 수험생 체험까지 생각했을까. 나는 재수하는 둘째딸을 밤늦게 학원에서 데려오는 일도 귀찮아 죽겠다. 우리 딸이 이 사실을 알면? 아빠노릇 이렇게 얼렁뚱땅 하니까 존경받긴 글렀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길섶에서] 스마트폰 입문기/함혜리 논설위원

    최근 휴대전화를 최신형 스마트 폰으로 바꿨다. 4년 전에 장만한 폴더형 휴대전화를 사용하다가 갑자기 몇 단계를 건너뛰면서 편리함보다는 불편함이 더 컸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게다. ‘봉숭아학당’이 따로 없었다. 문화적 충격 때문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동영상과 음악을 담아 보고 듣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하고,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활용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 즐거움에 빠졌다. 놀라운 적응력에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까지 하던 중 복병을 만났다. 며칠 전 일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영어로 책을 읽어주는 ‘오디오북’ 애플리케이션을 가동시켰다. 서비스되는 책 목록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 있었다. 플레이를 누르고 첫 장을 듣기 시작했는데 그 다음은 기억이 없다. 새벽에 잠이 깼다. 화들짝 놀라서 보니 오디오북 프로그램은 계속 실행 중이었고, 한 달치 데이터를 다 소진했다는 통신사의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어찌나 민망하던지.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부모와 학부모/박대출 논설위원

    고1짜리 작은딸이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여름 방학 때부터다. 꽤 오랜 실랑이 끝에 이뤄졌다. 딸 아이는 수학을 싫어했다. 미대를 가겠다고 했다. 아내와 난 반대했다. 고3짜리 언니도 동조했다. 미대가 많지 않고, 그래서 입학이 더 어렵다고 생각했었다. 딸 아이가 미술을 좋아하는 건 안중에 없었다. 서로의 괴리는 컸다. 딸 아이의 공부는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고민 끝에 타협을 봤다. 일단 미술학원을 다녀보기로 했다. 한 타임에 4시간짜리다. 딸 아이는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재미있어 한다. 하루에 두 타임씩 하면 안 되냐고 조른다. 그래서인지 꽤 빠른 진전을 보인다. 가끔 그림을 휴대전화로 전송해준다. 더 이상 시험할 계제가 아니다. 딸 아이와 의기투합했다. 미대를 목표로 정했다.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남는다. 처음부터 받아들여야 했다. 자식이 원하는 걸 뒷받침해 주는 게 부모다. 하지만 대학 입학만을 생각했다. 학부모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뒤늦게나마 부모도, 학부모도 됐으니 다행이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길섶에서] 노고단 기행/함혜리 논설위원

    지리산 천은사에서 2박3일간 템플스테이를 했다. 예불에 참석하고 식사 및 취침시간을 지키는 것 말고는 자유로운 휴식형이었다. 절 앞에서 성삼재 가는 버스를 타면 오전 시간을 이용해 노고단을 다녀올 수 있다기에 둘째 날 시간을 냈다. 버스를 타고 성삼재에 도착하니 저 아래로 뭉게구름이 솜이불처럼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잘 정돈된 탐방로를 따라 노고단에 올랐다. 쉬엄쉬엄 가다 보니 한 시간 만에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했다. 눈앞에 고지가 보였다. 하지만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계산해 보니 좀 빠듯하다. 햇볕은 뜨겁고 올라가 봐야 별것 있겠나 싶었다. 15년 만에 오른 노고단인지라 그냥 내려가는 게 좀 서운했지만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노고단에 다녀왔다고 했더니 스님께서는 “야생화 군락이랑, 내려다 보는 경치가 너무 좋지요?” 하신다. 아차 싶었다. 바로 코앞에서 우리는 꼭 봐야 할 걸 놓쳤던 거다. 그렇다고 크게 아쉽지도 않았다. 천은사에 다시 올 좋은 핑곗거리를 찾았으니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자리 양보받기/이용원 특임논설위원

    일요일 아침 전철 맨 앞칸은 한산했다. 드문드문 몇 사람이 서 있을 뿐 대개는 좌석에 앉아 책을 읽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전철 문이 열리고 양 손에 짐을 든,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들어섰다. 그는 실내를 쭉 둘러보더니 한 학생에게 곧바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학생 자리 좀 양보해 주겠어?” 주위에는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이내 누그러졌다. 자리에 앉은 그가 신분증을 꺼내 학생에게 보이며 “사실 내가 장애인이야. 나이도 65세가 넘었고.”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몇 정거장 더 가면 내릴 테니 그때까지만 참아달란 말도 덧붙였다. 학생은 웃으면서 괜찮다고 대답했다.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건 미덕이다. 그렇다고 ‘내 자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젊은 사람을 윽박지르는 일은 곤란하다. 자리를 양보하는 게 당사자에게는 어쨌건 ‘희생을 감수하는’ 일이고, 그에게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으므로. 주고 받는 양쪽이 함께 예의를 지킬 때라야 양보는 빛을 발하는 법이다. 이용원 특임논설위원 ywyi@seoul.co.kr
  • [길섶에서] 긍정의 힘/구본영 수석논설위원

    입추도 말복도 지났건만 여전히 후텁지근하다. 자칫 몸과 마음이 축 처지기 쉬운 절기다. 그런 터에 고희를 훌쩍 넘긴 선배가 격려 이메일을 보내왔다. 이메일 내용 중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 중에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란 대목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과거의 실패에 연연하거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젖지 말고 당장 오늘 하루를 활기차게 보내라는 권면인 까닭이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나라’ 순위에 한국이 15위에 올랐단다. 이만하면 먹고 살 만한 나라가 됐다는 징표가 아닌가. 그런데도 평균적인 우리 국민이 그다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방한 중인 미국의 행복심리 전문가 에드 디너 교수의 인터뷰를 보고 궁금증이 조금 해소됐다. 그는 한국인의 낮은 행복감은 지나친 물질주의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작은 일상에서 긍정적인 것을 인식하는 태도”를 행복의 결정적 요인의 하나로 꼽았다. 노선배의 긍정적 생활철학과도 통하는 얘기였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박새/이춘규 논설위원

    38선 이북 깊고 높은 산 풀숲에 자리잡은 박새꽃을 멀리서 보니 박색이다. 영락없는 잡초의 형색이다. 수십 번을 그냥 지나치다 최근에야 꽃임을 알았다. 7~8월, 꽃을 자세히 봐야 조각작품같이 정교함을 안다. 황백색 꽃은 앙증맞다. 사람들은 초라한 박새에 눈길도 안 준다. 무시하지 말라. 박새의 생명력은 옹골차다. 초봄 눈내리는 깊은 산 습한 곳. 박새는 기운찬 생명력으로 꽁꽁 언 땅을 뚫고 솟아난다. 발목 이상까지 덮인 눈을 밀쳐내고 나오는 힘이 신비롭다. 이 땅을 살지게 하는 강인한 생명력! 넓고 싱싱한 잎은 삽시간에 온 산을 덮어버린다. 여러해살이 풀 박새는 강한 독성을 가졌다. 뿌리는 벌레·균을 죽이는 독성이 있다. 살충제나 구토제로 쓰인다. 함부로 먹으면 위험하다. 1.5m 줄기에서 소박한 꽃을 피워 사람 시선을 피한다. 한여름 자신을 한껏 낮춰, 봄에 보란듯이 솟구친다. 늑막염풀로 불리는 박새. 독성과 수수함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강건한 박새의 생존술이 경이롭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아리랑 변주곡/함혜리 논설위원

    주말을 이용해 경북 영주에서 열린 제1회 국제기타페스티벌에 다녀왔다. 클래식 기타의 세계적 거장들이 공연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는 좋은 행사였는데 예산 부족에 홍보가 안 된 탓에 찾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다행히도 외국에서 온 연주자와 작곡가, 교수들은 근사한 한옥(영주 선비문화수련원)에 머물며 음악을 함께 나누는 것에 무척 흡족해했다. 마지막날 밤. 숙소 안마당에서 즉석 콘서트가 열렸다. 한옥 툇마루에 둘러앉아 자유롭게 연주도 하고, 담소를 나누는 자리였다. 한 젊은이가 연주를 시작하자 왁자지껄하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모두들 귀를 쫑긋 세우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선율에 귀를 기울였다. 연주자는 이번 페스티벌에 초청교수로 참가한 재일교포 김용태씨였다. 연주가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모두들 무슨 곡이냐고 묻느라 난리다.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리랑 변주곡입니다.” 한여름밤 한옥 마당에서 클래식 기타로 연주한 아리랑 변주곡.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중국 며느리/최광숙 논설위원

    큰오빠의 걱정이 시작됐다. 조카가 공부할 때는 학비 걱정하더니만 막상 대학 졸업 후 직장에 다니자 결혼이 문제다. 오빠는 조카에게 “한국 남자라야 된다.”며 ‘압력’을 넣는다. 하지만 고교 때부터 쭉 호주에서 살고 있는 조카에게는 남자란 한국 남자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한국 젊은이를 찾기가 녹록지 않다고 한다. 미국에서 사는 친구를 만났다. 벌써 대학 입학한 아들의 혼사 문제가 대화에 오른다. “아들 주변에 중국인이 많아 중국인 며느리를 보게 될까.” 걱정이란다. 화교를 비롯, 중국 본토에서 온 유학생이 많은데 중국 여자애들이 굉장히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얼굴색도 우리와 비슷해 친구 아들은 중국 여자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자식 혼사를 앞둔, 외국 사는 한국인 부모들의 고민이 비슷한 것 같다. 이 땅이나 외국이나 천생 연분을 만난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거기다가 외국에서는 ‘한국인’만을 고집하니 일이 더 어려워질 수 있겠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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