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태백 여행/육철수 논설위원

    지난 주말에 찾은 강원도 태백. 탄광촌인 줄 알았던 이 도시는 뜻밖에 많은 걸 선물로 주었다. 민박촌의 밤하늘엔 별이 총총 박혀 있었다. 어릴 적, 고향의 여름 밤하늘에선 언제나 별이 쏟아졌다. 세월을 40년 전으로 돌려놓고 별을 세고 또 세어 보았다. 찬 밤기운이 계절을 잊게 했다. 1573m 함백산 꼭대기. 굽이굽이 산줄기가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끝없이 펼쳐진 산해(山海)는 시름을 모두 거둬 갔다. 멀리 골짜기마다 숨어 있는 마을들은 정겨웠다. 여기까지는 덤으로 받은 선물이다. 진짜는 따로 있었다.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와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연못이다. 태백이 강들의 모태(母胎)란 걸 처음 알았다. 검룡소로 가는 오솔길은 예뻤다. 산길을 예찬할 만한 형용사를 찾다 찾다 끝내 포기했다. 서울살이에 지쳐 우리 땅의 내면에 너무 무심했나 보다. 초행의 태백은 어느새 어머니의 품이 되어 다가와 있었다. 이곳으로 초청해준 강원도 친구 부부에게 “고맙다!”는 말을 열 번도 더 했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길섶에서] 자전거 단상/구본영 수석논설위원

    요즘 아침 출근 길 자전거 타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철역까지 걸어서 10여분 걸리던 길을 이제는 5분 이내에 주파한다. 내리막길을 달리다 보면 스쳐 닿는 시원한 바람이 너무 좋다. 하지만 퇴근 길 전철역 출구에 세워 뒀던 자전거를 다시 탈 때가 문제다. 출근 때와 달리 줄곧 오르막길인 탓이다. 염천이라 페달을 밟다 보면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저녁 모임에서 막걸리라도 몇 사발 마신 날이면 땀이 비 오듯 쏟아져 괜한 짓을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릴 적 할머니가 자주 쓰시던 ‘불한당(不汗黨)’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할머니가 “불한당 같은 짓을 해선 안 된다.”며 우리를 타이를 때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불한당은 사전에는 “떼 지어 다니며 재물을 마구 빼앗는 사람들”이라고 적혀 있으나, 한문 그대로라면 ‘땀을 흘리지 않는 집단’이란 뜻이다. 그렇다. 마냥 편히 안주하는 것보다는 무슨 일이든 땀 흘려 열중하는 모습이 더 아름답고 보람 있지 않겠는가.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봉숭아 물들이기/최광숙 논설위원

    어릴 적 여름철 연례행사는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기였다. 어머니가 이웃집 화단에서 챙겨온 빠알간 봉숭아 꽃을 보드랗게 찧어 손톱에 물들여 주셨다. 매니큐어가 귀한 시절이니 이보다 더 화려한 치장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 일에 어머니와 딸들은 많은 공을 들였다. 작업이 끝난 뒤 손톱을 바라보는 일은 참으로 즐거웠다. 어떤 애들은 열손가락에 열 발가락까지 물들였지만 어떤 애들은 4번째와 새끼손가락과 엄지발가락에만 액센트를 주기도 했다. 봉숭아 손의 백미는 봉숭아 물빛이 점차 빠지면서 나중에 손가락 끝에 빠알간 초승달의 모습으로 바뀌는 데 있다. 손가락 끝에 매달려 있는 봉숭아 물빛이 참으로 고왔다. 과거와 달리 봉숭아 물들이가 쉬워졌다. 봉숭아 꽃도 필요 없고 긴 설렘도 필요 없다. 천원을 들여 봉숭아빛 염료를 사서 30분이면 된다. 어릴 적 추억을 되살려 주말에 조카와 함께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였다. 흐뭇한 마음으로 손을 바라봤지만 예전과 같지 않다. 어머니의 정성이 없어서일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벌집/이춘규 논설위원

    산 중턱에서 아름다운 벌집을 봤다. 등산로 바로 옆이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구조가 경이롭다. 짙은 계란색으로 공모양이다. 지름이 15㎝ 정도다. 아랫부분 여러 구멍으로 말벌들이 드나든다. 독침을 가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건드리지 못할 터. 벌떼의 인간습격이 잦은 철이다. 어릴 적 벌은 무서웠다. 특히 땅벌집을 잘못 건드리면 온 동네 사람이 벌떼의 공격을 받았다. 떨쳐내기 위해 저수지 물속으로 서둘러 뛰어들어도 물속까지 질기게 따라왔던 땅벌. 된장을 발라 응급처치했다. 사람들은 벌집에 불을 질러 복수했다. 분명 벌은 인간에게 소중한 존재다. 지구상 식물 가운데 3분의1이 벌에 의해 수분돼 종족을 번식한다. 불행히도 벌이 사라져간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 전 세계 공통이다. 특히 꿀벌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유전자변형 식품, 전자파, 정체불명 바이러스 등 원인을 놓고 분석과 대책에 대한 논의가 학계에서 뜨겁다. 벌의 위기는 사람의 위기라는데….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감동/함혜리 논설위원

    일본에서 소포가 왔다. 겉봉의 일본인 이름은 낯설기만 하다. 성급히 소포를 뜯었다. 꽃무늬 프린트가 된 널따란 천이 한장 들어 있다. 설명서를 보니 보자기, 책보, 가방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보내준 성의는 가상한데 아무래도 좀 싱겁다. 포장지를 버리려다가 속을 들여다봤다. 편지 봉투가 들어 있다. 하마터면 버릴 뻔한 편지. 만년필로 꼼꼼히 적어 내려간 사연이 장장 석장이나 된다. 짧은 일본어 실력을 총동원해 대충 읽어 보니 그제서야 소포를 보낸 주인공이 떠올랐다. 한국에 취재 차 왔던 NHK의 여성 PD였다. 인사를 나누고 얘기를 하다가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가 쓰여 있는 부채를 선물했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은 것’이라는 말을 항상 마음에 담고 일하면 잘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곁들였다. 너무 깊은 감동을 받았고, 평생 그 말을 기억하겠단다. 부채를 액자에 넣어 걸어두고, 한국말 공부도 시작할 계획이란다. 나는 그날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감동을 받았다니 정말 감동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매미/이춘규 논설위원

    아침에 일어나면 매미소리가 크다. 해마다 여름이면 아파트단지에서 매미들이 어김없이 울어댄다. 그런데 올여름 매미소리는 예년보다 조금 늦어져 궁금했다. 봄 저온현상으로 알에서 유충, 다시 네 번이나 상태를 바꾼 뒤 성체가 되어 가는 변태(變態)가 늦어졌기 때문이란다. 곤충채집 추억의 매미가 지금 도시에서 애물단지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 잠을 설치게 할 정도란다. 그런데 매미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매미는 4~17년 동안 땅 속에서 유충으로 산다. 힘든 나날 뒤 5% 이하만 성체가 된다. 이후 10~20일을 살다 가니 어찌 보면 참 귀한 손님이다. 우리의 매미는 순하다. 소리를 키운 건 소음이다. 수컷의 울음이 도시소음보다 커야 암컷들을 꼬드길 수 있어 시끄럽단다. 광섬유케이블을 뚫고 번식하려 해 인터넷회선을 마비시키는 일본 곰매미와 대비된다. 인고의 세월 끝에 짧지만 치열하게 살다 가는 매미. 찰나 같은 매미들의 일생을 생각하면, 우리네 인생은 한결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서두르지 말자.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호출버튼/곽태헌 논설위원

    웬만한 식당이나 호프집에 가면 점원 호출버튼이 있다. 한국사회의 특징인 빨리빨리 문화의 산물이다. 성격 급한 손님은 빨리 주문해서 좋고 점원은 어느 곳에서, 어떤 손님이 찾는지 바로바로 알 수 있어 좋다. 점원 호출버튼은 고객과 점원 모두에게 편리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KAIST MBA과정에 있는 외국인 학생들이 ‘외국에서 성공할 만한 한국 아이템’의 대표 격으로 점원 호출버튼을 꼽았을 정도다. 한 외국인 학생은 서유럽의 명소 근처 레스토랑에서 점원 호출버튼이 특히 유용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얼마 전 집 근처 식당에서 호출버튼을 보고 놀랐다. 호출버튼은 호출(call), 맥주, 소주로 세분돼 있었다. 호출버튼에 따라 점원이 오면 소주나 맥주를 시키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필요한 술의 종류를 누르면 점원이 바로 가져오는 시스템이다. 호출버튼의 진화인 셈이다. 이같이 고객에 더 다가서려는 아이디어 경쟁, 남보다 앞서가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경제발전을 이룬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아닐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길섶에서]나비/함혜리 논설위원

    휴먼다큐멘터리 ‘인간극장’을 즐겨 본다. 남양주에서 멋진 남편, 인형 같은 두 딸과 함께 동화처럼 살고 있는 핀란드 여성의 이야기를 보다가 재미난 표현을 들었다. 핀란드에서는 기대감에 부풀어 마음이 마구 설렐 때 ‘몸속에서 나비가 날아다닌다.´고 한단다. 몸이 날아갈 듯해서일까. 장자(莊子)의 나비가 생각났다. 장자는 꿈에서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녔다. 하지만 자신이 나비로 변한 것인 줄 알지 못했다. 갑자기 꿈에서 깨어 보니 자신은 장자였다.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변해서 장자가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난해한 이야기다. 장자의 나비는 자유를 상징한다. 인간은 항상 자유를 갈망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실현 불가능하다. 꿈 속에서나 누릴 수 있다. 이것뿐일까? 아니,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장자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으면 삶이 한바탕 꿈이란 것을 알게 된다고 했다.그렇다면 마음만 먹으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얘기인데…. 나를 속박하고 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란 말인가?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제비새끼/이춘규 논설위원

    양평 들녘 제비마을 제비들이 대부분 번식을 마쳤다. 두 쌍은 새끼를 늦게 낳아 기르고 있다. 단층 슬래브집 처마 밑 구석 제비집에서 크고 있는 새끼 네 마리가 무척 귀엽다. 검은 눈동자들은 초롱초롱하다. 비행 연습을 시작할 때다. 곧 거친 세상에 나가 혼자 살아 남아야 한다. 부근은 제비들이 몰려들 환경이다. 팔당호 인근이라 수질보호를 위해 친환경 우렁이 농법을 써 우렁이가 많다. 오리농법도 활용한다. 잡초 제거에도 제초제를 쓰지 않는다. 땡볕 아래 촌로가 논두렁 풀을 베고 있다. 제비들이 먹을 곤충이 넘친다. 강에는 철새들의 비행이 힘차다. 팔당호 수질 보호를 위한 친환경농법의 그늘도 적지 않다.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이 억제된다. 환경에는 좋지만 조금은 불편하단다. 도시사람들이 길가 논에서 우렁이를 잡아간다. 길옆 밭에서 고추 등 농작물을 슬쩍 훔쳐가는 얌체족도 많다. 논·밭 여기저기에 훔쳐가지 말라고 호소하는 푯말이 서 있다. 제비들에겐 좋은 서식환경이 현지 농민들을 힘겹게 한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사은품 소동/최광숙 논설위원

    장 보러 간 마트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모 은행에서 자사카드를 일정 금액 이상 사용한 고객에게 사은품을 나눠준 것이 발단이 됐다. 장을 다 본 뒤 사은품 대기 줄에 섰다. 앞 사람들이 한 사람씩 착착 물건을 받아 가면서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누군들 공짜를 마다하랴. 그런데 갑자기 앞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 뒷줄은 점차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났다. 출근길에 차가 꽉 막힌 듯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르고 30분 넘게 기다리던 대다수 사람들의 불만이 점차 커졌다. 결국 한 주부가 지나가던 마트 직원을 세워놓고 호통을 치기에 이르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연인즉 사은품이 다 떨어져서 직원이 창고로 사은품을 가지러 갔다는 것이다. 나중에 담당 직원이 돌아오면서 문제는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사은품을 받고 나니 더 짜증이 났다. 받아든 주방용 세제가 정품이 아니었던지 어딘가에서 줄줄 세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고도 욕먹을 사은품은 차라리 안 주는 것이 낫지 싶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강아지 사랑/최광숙 논설위원

    아파트 현관 게시판에 강아지를 찾는다는 사연이 며칠째 붙어 있다. 작은 종이 한 장에 큰 눈의 하얀 털을 가진 강아지 사진이 3장이나 붙었다. 한눈에 봐도 주인의 사랑을 꽤 받았지 싶다. 강아지를 찾는 즉시 벽보를 뗄 테니 찾기 전에는 절대로 벽보에 손대지 말라는 부탁도 적혀 있다. 찾아주면 50만원의 사례금도 주겠단다. 어려서부터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남들은 개한테 물린 ‘아픈 기억’이 있는 줄 안다. 그건 아니고 태생적으로 동물들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강아지에 눈길이 갔던 것은 가족도 버리는 시대에 강아지를 찾는다는 사연이 너무나 절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벽보를 읽다가 마지막 글귀가 마음에 걸린다. 강아지 특성을 묘사하면서 ‘중성화수술’이라고 써놓았던 것이다. 불임수술을 강아지한테 했다는 건데 개를 키워보지 않은 나로서는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사람 편의의 그런 수술이 강아지 사랑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공중 화장실/노주석 논설위원

    주말 동네 뒷산 공원 산책 길에 화장실을 찾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굿’이었다. 다소 꺼림칙한 기분으로 들어간 공중 화장실을 상쾌한 발걸음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 문을 여는 순간 조명이 켜졌고,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납세자 대접을 제대로 받은 기분이다. 공중 화장실에 대해 좋지 않은 추억이 있다. 10년 전 중국에 처음 갔을 때 일이다. 베이징시내 극장에 갔는데 칸막이만 있을 뿐 앞문이 달려 있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사는 동북3성 쪽 사정은 더 열악했다. 수세식 화장실을 찾기가 어려웠다. 호텔이 아니면 볼일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군대시절 야외훈련을 나가면 임시 화장실을 설치했다. 땅을 파고, 널빤지를 두 개 놓고, 천막을 둘러치면 끝이었다. 공중 화장실에 휴지가 기본으로 비치되면서 화장실에서 겪던 촌극과 일화가 사라졌다. 화장실이나 야외에서 휴지가 없을 때, ‘응급 처치법’ 정도는 알아둬야 하던 시절도 있었다. 공중 화장실의 기분 좋은 진화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만화/최광숙 논설위원

    한글을 만화로 깨우쳤다. 오빠들은 나와 두 살 차이 막내오빠에게 늘 만화방 심부름을 시켰다. 임창, 강철수 등 유명 만화가들의 만화를 빌려오라는 ‘분부’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건만 나는 가게 안의 수많은 책 가운데 그들의 만화를 골라낼 수 있었다. 만화 덕분에 한글을 자연스레 익힌 것이다. 지금도 임창의 만화 주인공 ‘땡이’, ‘맹구’가 생각난다. 매캐한 연탄가스 냄새가 나던 만화방을 5학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다녔다. 세월은 흘러 10원에 10권 빌리던 것이 6권으로 줄었지만 만화는 늘 내 친구였다. 만화방 연탄 난로 위 냄비에서 끓던 ‘오뎅’의 유혹도 컸다. 당시 만화책은 우리집의 금기였다. 아버지 퇴근길이면 만화책은 부랴부랴 장롱 밑, 이불 속으로 감춰졌다. 초등학교 1학년 조카가 만화책을 본다. ‘그리스·로마 신화 ’, ‘도라에몽’, ‘마법 천자문’ 등을 사줬다. 빌려 보던 만화책이 이제는 구입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여자아이 혼자 만화방에 보내기도 어려운 시대다. 자연 돈도 많이 든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들고양이/이춘규 논설위원

    한적한 농촌마을 고향 집에는 도둑고양이들이 여러 마리 살고 있다. 수년 전까지 이 고양이들은 어머니를 귀찮게만 하는 존재들이었다. 방심하면 귀한 음식을 수시로 먹어치워 버렸다. 비 오는 날이면 마루 여기저기에 흙을 묻혀 더럽혀 놓았다. 사람을 보면 멀리 도망쳐 버렸다. 이 고양이들이 요즘 연로하신 어머니의 소중한 친구들이 됐다. 집에 가보면 어머니 옆에서 뒹굴며 논다. 하지만 명색이 도둑고양이다. 들고양이, 길고양이, 야생고양이 아닌가. 쥐를 잡아먹어 치운다. 어머니가 손으로 쓰다듬어 주려 하면 도망가 버린단다. 여전히 음식도 훔쳐 먹는다. 그래도 어머니는 고양이 때문에 외로움을 덜고, 정도 들었다며 밥을 주신다. 음식 훔쳐 먹고, 번식기에 앙칼지게 울어대고, 밤엔 사람들을 놀라게 해 미움받는 들고양이들. 외로운 농촌노인에게는 자식보다 귀한 존재가 된다. 자식들은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인사갈 뿐이다. 모시고 살지 못하는 자식들은 죄스럽고 불안하지만 들고양이들이 조금은 걱정을 덜어준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나잇값/구본영 수석논설위원

    얼마 전, 말을 잘 안 듣는 사춘기 아들 녀석을 심하게 혼내고 난 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줬을까 염려됐다. 물론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상처를 받게 마련인 게 인간사이긴 하다. 작고한 작가 정채봉도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라고 토로하지 않았던가. “상처 없는 새들이란 이 세상에 나자마자 죽은 새들이다.”라면서. 하지만 못내 찜찜했던 마음을 작가 황석영의 신문 인터뷰를 보고 털어냈다. 그는 고교 자퇴 후 방랑생활, 베트남전 참전, 불법 방북 후 옥고 등 누구 못지않게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 그런 그의 고백 중 가장 가슴에 와 닿은 부분은 젊었을 때에 비해 달라진 게 무엇인가란 물음에 “좀 느긋해졌다. 그전엔 급하고 그랬는데 너그러워졌다.”고 답한 대목이었다. 그런 변화를 그는 ‘나잇값’이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아들이 나잇값을 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부모의 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성숙할 때까지 말이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아버지의 손목시계/최광숙 논설위원

    외삼촌으로부터 전해들은 아버지 얘기다. 정미소만 해도 부잣집 소릴 듣던 무렵, 시골에서 아버지 집안은 정미소에 양조장과 인쇄사업까지 했다. 형편이 여유로웠던 아버지는 장가갈 즈음 뽐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외갓집에 처음 나타나던 날 외갓집 식구들은 물론 동네 사람들까지 눈이 휘둥그레졌단다. 아버지가 인사차 처음 찾은 외갓집에 당시로는 고가 귀중품이던 손목시계를 하나도 아닌 두 개씩이나 차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외갓집이 있던 시골 동네에는 시계라곤 마을 전체를 통틀어 괘종시계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자연 아버지의 양팔에 매달린 두 개의 손목시계는 그야말로 천지개벽할 노릇이었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는 드물게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독학으로 깽깽이라고 불렸던 바이올린도 좀 다루셨다. 참으로 멋쟁이 신사였다. 그런 아버지의 ‘젊은날의 초상’을 돌아가시기 직전에야 전해듣고선 마음 한구석이 짠해졌다. 아버지에게도 화려했던 황금시절이 있었다곤 생각 못해봤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측은지심/함혜리 논설위원

    휴가철을 맞아 유기견이 늘고 있다는 내용의 텔레비전 르포를 봤다. 유기견 보호소에는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애완견들이 그득했다. 애타게 주인을 찾으며 낑낑거리다가 취재진이 다가가자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강아지도 있고, 겁에 질린 눈초리로 구석으로 피하는 강아지도 있었다. 강아지를 휴게소에 버리고 가거나, 펜션에 두고 떠나버리는 게 다반사라고 한다. 차를 잠시 세우고 길에 내버리고 가는 사람들도 목격된다고 한다. 가족처럼 아꼈을 강아지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의 심장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동물도, 식물도 영혼을 가진 생명체이거늘…. 하기야 어린 자식도 굶겨 죽이는 사람이 있는 세상이니 그깟 개 한 마리 내다버리는 것이 뭐 어떠냐고 할지 모른다. 맹자 공손추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분명 사람이길 포기한게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아주머니/최광숙 논설위원

    최근 한 대학병원에 다녀왔다. 같은 의사한테 10여년째 진료를 받고 있다. 그는 진지하고 점잖은 스타일이다. 설명도 잘해준다. 하지만 그는 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한다. 나 또한 그런 의사의 태도에 아는 체하기 어렵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이도 아닌데 의사와 나는 초면에서 제자리걸음이다.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안다. 밀려오는 환자들에게 아는 체하기에는 그들이 얼마나 피곤하고 바쁜지도 안다. 그래서 날 알아봐주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마음이 불편한 것은 그는 나를 비롯한 여성 환자들을 ‘아주머니’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의 책상 위에는 환자의 이름이 적힌 차트가 분명 있다. 그래도 그는 예의를 차려 아줌마 대신 아주머니라고 높여 부르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남자 환자들한테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은 못 본 것 같다. 미국에서 병원에 간적이 있다. 담당 의사는 치료에 앞서 손을 내밀며 인사부터 했다. 발음하기 어려운 내 이름도 그대로 불러줬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허수아비/이춘규 논설위원

    고향집 텃밭에 앙증맞게 생긴 허수아비가 눈길을 끌었다. 키는 아주 작지만 붉은 한복이 곱게 입혀졌다.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띈다. 제법 자란 콩들 사이에 귀엽게 서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서 있는 것 같다. 사방에는 번쩍이는 금줄들도 여기저기 걸려 있다. 새들을 쫓아내기 위해서다. 예전에는 집 옆 텃밭에 허수아비가 서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대담해진 비둘기나 까치, 꿩 등이 콩, 팥을 먹어치워 버리기 때문에 설치했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예전엔 번쩍이는 줄만 쳐도 새들이 얼씬 안 했는데 요즘엔 효과가 없어 어렵게 허수아비까지 세웠다고 하신다. 농민들이 새 퇴치에 애를 먹고 있다. 새들이 영악해져 웬만한 허수아비는 비웃듯이 농작물을 먹어치운다고 한다. 폭죽도 터뜨려 보고, 음향기기를 틀어 놓아도 효과가 낮아지고 있다. 그래서 진화한 첨단 허수아비로 대응하고 있다. 경기도 포천의 한 밭에는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마네킹이 진짜 사람처럼 새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나는 새 머리 위에 인간이 있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우산의 추억/김성호 논설위원

    생활이 궁핍해서였을까. 어릴 적 우산에 얽힌 기억은 지금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럽다. 비 오는 날이면 친구들 손에 손에 들렸던 우산들. 살이 부러지고 천이 찢긴 것들이 태반이었다. 그나마 성한 것들도 바람이 불라치면 뒤집히기 일쑤였고. 어렵던 시절 엉성한 우산에도 좋아라 히히덕거리던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금 같은 장마철이면 아주 흔하던 모습 또 하나. 굳이 일기예보에 매이지 않던 시절, 비가 쏟아질라치면 으레 학교 앞이며 정류장, 동네 어귀엔 안타까운 기다림의 행렬이 이어지곤 했다. 행여 우산 없이 비라도 맞을까. 기다림 끝에 맞은 식구들에게 우산을 건네는 얼굴마다엔 훈훈한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곤 했는데. 장마가 이상하다. 느닷없이 쏟아지는 비를 피해 정류장 상가 앞에 선 지 벌써 5분여. 야속한 비가 그칠 줄 모른다. 옆에 나란히 선 키 작은 아이. 허름한 우산 두 개를 들었는데. 순간 환하게 웃더니 버스에서 내리는 40대 중년 남자에게 달려가 우산을 건넨다. 괜히 웃음이 나는 이유는….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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