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성인권·민주화 운동가 이희호 여사를 떠나보내며
한국 여성운동의 초석을 다지고,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에 헌신해 온 이희호 여사가 그제 밤 97세를 일기로 소천했다. 고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전에 선구적인 여성인권운동가였고, 투철한 신념의 민주 투사였으며, 포용의 가치를 실천한 평화운동가였다. 극한 대립을 벌이고 있는 여야가 모처럼 한목소리로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깊은 애도를 표할 정도로 그가 대한민국 현대사에 남긴 발자취는 넓고도 뚜렷하다.
미국에서 유학한 고인은 1950년대 여성문제연구원 창립을 주도하고, 대한YWCA연합회 총무로 활동하면서 남녀차별 철폐 등 여성인권 신장에 힘을 쏟았다. 1962년 정치인 DJ와 결혼하면서 민주화 투쟁에도 적극 나섰다. 정치인 아내로 내조에 그치지 않고, 가장 든든한 정치적 동지이자 후원자를 자처했다. 1971년 대선 때 “제 남편이 대통령이 돼서 만약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 타도하겠다”고 했던 연설은 유명하다. DJ가 1997년 4수를 결심하도록 이끈 이도 고인이었다. DJ의 당선으로 여성인권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이뤄졌다. 여성부 창설의 모태가 된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출범했고, 가정폭력방지법과 남녀차별금지법이 시행됐다. 여성의 공직 진출도 확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