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통금/이동구 수석논설위원

    한밤중 조그만 도시 전체에 요란스럽게 울려 퍼지던 사이렌 소리. 이어서 조용하던 밤거리에서 황급히 뜀박질하는 발걸음과 호루라기 소리도 을씨년스럽게 들려온다. 통금(통행금지)을 알리고, 단속을 피해 보려는 이웃과 친지들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이런 풍경은 대도시에서 대학 다닐 때까지 이어졌다. 통금은 오래전 없어졌지만 빨리 귀가하는 습관이 생겼다. 술 약속이 있어도 버스나 지하철이 끊어지기 전에 귀가한다. 간혹 저녁 자리가 길어지면 혼자 슬그머니 빠져나온다. 처음엔 원성도 많았지만 먼 곳에서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생존법 정도로 다들 이해해 준다. 직장인으로 대도시에 살면서 자발적 통금이 일상화했다고나 할까. 아니면 잔소리를 걱정이라 고집하는 아내를 무서워하기 때문인지, 귀가 시간은 비교적 빠른 편이다. 아들의 귀가 시간이 자꾸만 늦어져 걱정이다. 별별 안 좋은 장면들이 떠올라 괜스레 안절부절이다. “그 나이 때는 내버려 두는 게 상책”이라는 선배의 조언에 참고는 있다. 하지만 기억 속의 통금을 아들에게 강요해 볼까 고심도 한다. 자녀의 늦은 귀가는 모든 부모의 일상적인 걱정거리라는 것을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 아들의 자발적 통금은 언제쯤 가능할까? y
  • [길섶에서] 공신폰/장세훈 논설위원

    얼마 전 딸아이에게 이른바 ‘공신폰’을 사줬다. 맞벌이 부부라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딸아이와 시시때때로 소통할 수단이 필요했고,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또래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모습도 계속 외면하기 쉽지 않아서다. 공신폰은 ‘공부의 신 핸드폰’의 줄임말이다. 딸아이에게 사준 공신폰은 모양으로 보면 폴더폰, 기능으로 보면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수준의 2G폰이다. SNS나 게임, 앱을 내려받는 등의 기능은 차단돼 있다. 공신폰 하나 사줬다고 성적이 쑥쑥 올라갈 리 만무하다. 하지만 공부 대신 스마트폰을 갖고 노는 데 많은 시간을 쓰는 아이들을 보는 부모 입장에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우리 부부 역시도 공신폰을 사줄지, 스마트폰을 사줄지, 사준다면 언제쯤이 적당할지 등 물건을 구입하기에 앞서 이렇게 오랜 시간 숙고를 거듭하기는 처음인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스마트폰 중독 문제를 고민해야 할 대상은 딸아이가 아닌 내가 아닐까. 집에서도 휴식을 핑계로 내세워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지기 일쑤다. 스마트폰만 보지 말고 자신과 놀아 달라는 딸아이의 원성 가득한 질책도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다. 공신폰이 필요한 건 아이는 물론 어른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 [길섶에서] 아름다운 도전/김균미 대기자

    오십 줄에만 들어서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 100세 시대에 인생 2모작, 인생 3모작이라는 말을 하지만 막상 시작하려고 하면 걱정이 한가득이다. 젊을 때 하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접어 둬야 했던 일을 늘그막에 하나둘 꺼내 펼치는 이들이 주변에 늘고 있다. 글을 쓰는 이도 있고, 그림을 그리는 이도 있다. 대학원에 입학해 딸 아들뻘 되는 ‘동료’들과 공부를 하는 이, 봉사를 하는 이, 스포츠댄스를 배우는 이도 있다. 며칠 전 친구가 전해 온 근황에 깜짝 놀랐다. 시니어 모델.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도전하는 친구의 열정에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대학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다 그만두고 쉬다가 40대 중반에 통역대학원에 합격해 친구들을 놀라게 했던 친구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니어 모델로 다시 한번 변신을 시도했다. 모델 ‘데뷔’ 소식에 단체 대화방이 불이 났다. 축하와 응원의 글이 쏟아졌다. 파격적인 도전에 놀라움과 부러움, 호기심이 뒤섞여 있다.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약속 잡기가 여의치 않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친구의 아름다운 도전을 응원한다. 더 많은 친구들의 도전에 박수를. kmkim@seoul.co.k
  • [길섶에서] 단백질 먹기/문소영 논설실장

    전생에 초식동물이었나, 하고 생각했다. 붉은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고기만 먹으면 소화불량으로 고생해 기피해 왔다. 의학 정보를 취합해 보면, 기름기를 잘 소화하지도 단백질을 잘 소화하지도 못하니, 췌장 기능이 크게 좋지 않은 채로 나이를 먹어 온 것이다. 그래도 채식주의자라고 하기에는 고기를 너무 자주 먹으니 잡식이다. ‘혼밥’은 달가워하지 않는 음식들을 기피할 수 있으니 환영하는 편인데, 한국의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남들과 함께 밥 먹는 것이 그 기본이다 보니 내 몸을 오래 괴롭히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은 그 달갑지 않은 붉은 고기를 기회를 만들어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체내 단백질이 쉽게 소실된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가볍게 운동을 시작했는데 역시 고기를 먹어야 근육량을 유지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 보기 좋다는 ‘애플 엉덩이’는 꿈도 꾸지 않지만, 종아리와 허벅지의 근육이 탄탄해야 무릎이 뚱뚱한 상체를 버티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으로 운동한다. 멀리 사는 동생은 전화로 “하루에 한 번 담뱃갑 크기만큼은 단백질을 먹어야 해”라며 잔소리를 해댔다. 오늘은 점심에 닭가슴살을 먹었다. 담뱃갑 크기만큼인 거 같다. 오
  • [길섶에서] 철없는 꽃/손성진 논설고문

    눈발다운 눈발 한 번 없이 겨울은 그냥 이렇게 지나가는가 보다. 모름지기 인간은 인간다워야 하고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는데 말이다. 삭정이처럼 말라빠진 겨울을 넋 놓고 무심히 지내다 보니 오늘이 벌써 입춘이란다. 남녘에서 화신(花信)이 당도한 것은 가장 추울 때라는 대한(大寒) 무렵이었고 서울의 아파트 화단에서는 개나리꽃이 철도 모르고 피었다. 겨울꽃이 조숙한 아이처럼 마냥 반갑지 않은 이유는 펑펑 내리는 눈과 맞바꿨기 때문이다. 정확히 40년 전 이맘때 퍼붓는 함박눈을 온몸으로 맞으며 서울 거리를 실성한 사람처럼 쏘다녔었다. 눈송이가 아니라 희망, 순결, 낭만 같은 눈의 언어들이 내 몸에 쏟아지고 있었다. 눈이 떠난 빈자리의 공허함을 겨울꽃이 대신 메울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인간은 눈앞의 것에만 혹하여 때 이른 개화에 즐거워하겠지만, 자연의 섭리로 따지면 분명히 이상현상이다. 실제로 이른 개화가 생태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아직 꽃샘추위가 남아 있는데 철없는 꽃들이 얼어 죽을지도 알 수 없다. 세상만사가 순리와 이치를 따라 흘러가야 함을 겨울꽃은 보여 주는 것일까.
  • [길섶에서] 바쁜 악마/박록삼 논설위원

    유대인 경전 탈무드에서 ‘악마가 바쁠 때는 술을 대신 보낸다’고 했던가. 지난 연말 술 선물을 받았다. 물론 선물을 준 이가 ‘악마’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소박하지만 직접 정성 들여 만든 술이었다. 기쁘게 감사히 받았다. 핑계 삼아 친구들과 어울려 맛있게 마셨고, 부족한 부분은 늘상 해왔듯 초록병을 몇 병 더 비틀었음은 물론이다. 술 약속이라는 것이 묘하다. 일부러 만들지 않으면 없을 때는 한참 뜸하다가 몰릴 때는 정신없이 몰린다. 이 또한 여기저기 다니느라 바쁜 악마의 농간인지 모를 일이다. 사실 악마까지 거론할 것도 없다. 고려시대 사회 풍자 해학 소설의 한 획을 그은 ‘국순전’은 술을 국순(麴醇·누룩)으로 의인화해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왕 주변에 들끓는 간신들의 존재를 풍자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여기에 술이 갖는 긍정적 기능을 보여 주면서도 그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님 또한 드러낸다. 연일 이어지는 술자리에 몸은 버겁다는 신호를 연신 보낸다. 애써 모른 체하거나 콩나물국이나 북엇국 등을 전전하며 임시방편으로 때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 2020년 정월이 아닌, 진짜 경자년(庚子年) 정월도 들어섰으니 새해에 대한 또 다른 다짐이 필요하다. 악마를 무료
  • [길섶에서] 30년 만의 만남/문소영 논설실장

    대학 시절과는 선을 긋고 살고 있다. 4년을 함께 활동하던 선배와 동료가 나의 사상을 문제 삼아 나 모르게 뒤에서 배제했다는 사실을 졸업할 무렵 전해 들은 탓이다. 대면해 화를 내지 못한 탓인지 뒤끝은 유통기간도 없이 작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29년을 넘기는 중 지난겨울 소셜미디어를 통해 상하이에 사는 한 친구가 반갑게 인사를 해 왔다. 처음엔 누군지 못 알아보았는데, 탈반에서 활동하던 우리 대학 ‘상쇠’였다. 그와 나는 소속이 달랐는데, 내가 발행을 책임지고 있던 16쪽 격주간지에 대해 그는 “무슨 내용은 좋았는데 오탈자가 좀 있었다”는 말을 웃음기 없는 얼굴로 운동장을 지나가는 길에 건네던 친구였다. 그땐 다들 그랬지만 도도하고 쌀쌀맞았다. 설을 맞아 상하이에서 귀국한 그와 만나니 30년 세월을 뛰어넘어 20살 언저리로 돌아간 듯했다. 얼굴과 손에는 주름이 가득한데, 마음은 청춘이 돼 버린 것이다. 무려 30년이 된 상처들도 어제 막 입은 상처인 양 날뛰려고 했다. 그는 잘 웃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500㎖ 연태고량주를 3분의2정도 마신 뒤, 나머지는 재회해 마저 마시기로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잠복기 2주를 고려할 때 귀국한 지 1주일밖에 안
  • [길섶에서] 사라지는 겨울풍경/박홍환 논설위원

    딱지나 구슬 외에 변변한 놀이 재료가 없던 시절, 찬 바람이 쌩쌩 불던 겨울은 그래도 눈(雪)이 있어 즐거웠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 꼬마들은 어김없이 골목이나 공터에 모여 편을 갈라 눈싸움을 하곤 했다. 왜 그렇게 아이들이 많았는지 ‘동네 꼬마들’ 천지였다. 집집마다 연년생 형제자매 또는 한 해 걸러 태어난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다. 성원이 안 돼 눈싸움을 못 하는 날은 없었다. 눈싸움의 승패 관건은 얼마나 빨리 단단하게 눈을 뭉치느냐에 달렸다. 뒤쪽에 있는 아이들이 연신 눈을 뭉쳐 ‘전방’의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앞쪽 아이들이 정확하고 힘 있게 눈뭉치를 던지면서 전진해 상대편 진영을 허물어뜨리면 승부는 끝이 났다. 눈뭉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물에 적셔 얼리거나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를 안에 넣고 뭉치는 편법을 쓰기도 했다. 매우 추운 날 흩날리는 싸리눈보다 비교적 포근한 날 쏟아져내리는 함박눈이 스펀지처럼 물기를 잔뜩 머금어 잘 뭉쳐진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이번 겨울은 눈 보기가 하늘의 별 보기만큼이나 어렵다. 일부러 강원도 오지를 찾지 않고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눈이 안 보인다. 그런데 눈이 온다고 동네 눈싸움이 재현될까. 이상기후에 인구변화까지, 눈싸움
  • [길섶에서] 명절 고부 갈등/이종락 논설위원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일본 등에서는 고부갈등에 대한 속담과 격언 등이 예전부터 전해왔다. ‘죽 먹은 설거지는 딸 시키고 비빔그릇 설거지는 며느리 시킨다’를 비롯해 ‘며느리가 미우면 발 뒤축이 달걀 같다고 나무란다’라는 속담까지 있다. 발 뒤축이 달걀 같다고 하는 것은 며느리에 대해 흠잡을 것이 없는 데 공연히 트집을 잡아서 억지로 잘못을 지어내는 것을 뜻한다. 고부간의 갈등은 설날과 추석 등 명절 이후에 첨예하게 나타난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전국 법원 협의이혼 월별 신청 건수도 설·추석이 있었던 그다음 달에 이혼 신청이 늘어난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설 연휴 다음달의 협의이혼 신청 건수는 2017년 2월 1만 362건, 2018년 3월 1만 1116건, 지난해 3월 1만 753건으로 전달보다 808~2235건 증가했다. 우리 집안도 고부갈등이 없지 않았겠지만 2년 전 어머니의 ‘폭탄선언’으로 이런 갈등이 최근에는 없어 보인다. 어머니는 38년간 제사를 모셔온 큰 형수를 비롯해 며느리들의 노고를 인정해 제사상과 차례상 차림을 절에 맡겼다. 차례상 차리기에 해방된 네 명의 며느리들은 작년 설 연휴부
  • [길섶에서] 명절문화/오일만 논설위원

    설 연휴가 끝나면서 새삼 명절 문화의 변화를 절감한다. ‘혼설족’(혼자 설을 보내는 사람)이 이제 낯설지 않고 휴식을 위해 ‘설캉스’(설과 바캉스의 합성어)를 즐기는 문화도 이젠 보편화된 느낌이다. 이런 변화에 따라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역시 상혼이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다’는 카피 문구가 실감이 난다. 설 연휴 홀로 항공권을 예약해 여행을 떠나는 비중도 절반을 넘어섰다. 집 앞 편의점만 가도 혼설족들을 위한 간편식 떡국들이 즐비하다. 각양각색의 나물 반찬과 고기전을 구비한 명절 도시락도 많다. 심지어 20~30대를 겨냥한 ‘스팸 덮밥’도 눈에 띈다. 가족과 조상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날이 설이지만 그 의미는 이미 퇴색한 지 오래다. 조상 덕 본 사람은 해외여행 가고, 조상 덕 못 본 사람만 남아 차례를 지낸다는 우스갯소리도 이제 구문이다. 우리의 명절 문화 자체가 과거 농경문화를 반영하는 풍속이라 하지만 그래도 가족이 행복의 첫발이라는 진리엔 변함이 없다. 각박한 경쟁 사회, 가족의 의미는 해체되고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가족·친지 두런두런 모여 덕담과 세뱃돈 나누던 모습도 점차 추억으로 사라질까
  • [길섶에서] 우한 폐렴과 춘제(春節)/이지운 논설위원

    “상황이 이런데 왜 굳이 고향에 가려는 거죠?” 2008년 설을 앞두고 기명 칼럼을 이렇게 시작했다. ‘100년 만의 폭설’을 맞은 당시 춘제(春節·설), 중국 전역에서 도로와 철로가 폐쇄되고 있는데도 버스터미널과 기차역 광장으로 인파가 쏟아져 나오는 현실을, 미국 CNN뉴스의 앵커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중국중앙TV(CCTV)는 사투의 현장들을 전했다. 외지고 좁은 도로 위 오도 가도 못한 채 줄지어 늘어선 버스들. 그 안에서 추위·감기, 굶주림에 고통받는 승객들. 흩어졌다, 모였다 하는 기차 역사 앞 광장을 새까맣게 뒤덮은 수십만 군중. “열차 개통 기다린 지 1주일째” “버스에서 내려 봇짐 지고 수백리 산 길을 걸어간” 사연들. 언론들은 “길에 오르는 순간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제발 남아라, 남아라, 남아라” 호소했다. 그래도 농민공들은 고향 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해 춘제, 눈물 짓게 하는 숱한 농민공들의 사연을 TV를 통해 보고 또 보았다. ‘우한 폐렴’의 발생지가 봉쇄됐다. 후베이성 성도(省都) 우한은 중국 철도의 허브다. 주변 9개 성과 연결된 화중(華中)의 노루목이다. 가족 상봉까지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될까. 더는 십수년 전 그
  • [길섶에서] 액땜/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언제부턴가 일상사에 꼼꼼해지고 자꾸만 되짚어 보는 버릇이 생겼다. 낯선 곳을 찾아갈 때도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번 물어보게 되고 인터넷을 뒤져 가며 또 확인해 본다. 자신감이 약해지고 있다는 징후인지 몰라도 매사에 조심스러워진다는 느낌이 든다. 최근 한 달 새 좋지 않은 일들을 여럿 겪었다. 조심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도 있지만 조심하면 얼마든지 피할 수도 있는 일들도 많다. 주변에 상(喪)이 생기고, 비슷한 시기에 약간의 부주의로 손가락을 다쳐 꿰매는 시술을 받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독감에 걸려 2주 가까이 시달리기도 했다. ‘모질고 사나운 운수’를 ‘액’(厄)이라고 한다. 좋지 않은 일들을 겪을 때면 “액이 끼었다”며 푸념을 한다. 반면 앞으로 당할 큰 액운을 대신해 미리 다른 가벼운 고난을 겪었다고 생각하면 훨씬 마음이 가벼워진다. 최근의 좋지 않은 일들을 “액땜했다”는 말로 위안 삼아 본다. 그새 해가 바뀌었다. “건강하고 행복한 새해를 기원한다”는 인사를 건넬 때마다 마음 한 구석엔 “올해는 미리 액땜을 충분히 했으니 이제 좋은 일만 많이 생기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년 운세를 따져 볼 필요도 없이 일단 ‘액땜’은
  • [길섶에서] 무심(無心)/장세훈 논설위원

    우리 가족의 대표 사진사는 나다. 가족 여행이나 집안 대소사 때 자꾸 포즈를 취해 달라고 하다가 원성을 듣기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필름 카메라를 쓰던 시절에는 앨범 정리까지 염두에 뒀지만 지금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가족들과 SNS로 공유하면 그만이다. 연초에 친척 결혼식이 있었다. 올해 팔순인 아버지부터 결혼 후 만날 기회가 부쩍 줄어든 여동생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가족사진을 찍을 절호의 기회였고, 그렇게 했다. 여동생은 SNS 프로필 사진을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바꾸고 ‘아빠하고 나하고’라는 이름도 붙였다. 부러웠는지 휴대전화에 담긴 사진을 넘겨 보다 아버지와 내가, 부모님과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한참 전에 찍은 사진들을 뒤져도 마찬가지다. 같은 공간엔 있었으나 같은 사진엔 없다. 참으로 무심했다. 휴대전화의 카메라 기능이 좋아지면서 사진이 흔하디흔한 세상이 됐지만 정작 소중한 사진 한 장을 남기는 데는 소홀했다. 소중한 사람의 사진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의 사진이 아쉽다. 무심한 게 어디 사진뿐이겠나. 머리에서 시작된 생각이 가슴으로 넘어가니 콕콕 찌른다. 곧 설 연휴다. 평소의 무심함을 덜어내는 명절
  • [길섶에서] 황혼 육아/김균미 대기자

    아직 친구 중에 ‘할머니’는 없다. 하지만 딸이나 아들, 며느리가 아이를 봐 달라고 부탁하면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한 적은 있다. 봐줘야지 다른 수가 있겠느냐는 친구들과 가능하면 봐주지 않겠다는 친구들 수가 비슷하다. 젊을 때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 손에 아이를 맡겨 키운 적이 있는 친구들은 상대적으로 황혼 육아에 긍정적이다. 개중에는 양육 방식과 교육에 대한 생각이 달라 심하게 마음고생을 해 반대하는 친구도 있지만.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자녀에게 돌려주고 싶기도 하고 딸이나 며느리가 육아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못 하는 게 안쓰러울 것 같단다. 주변에 아들딸을 직접 키워 보지 못한 젊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중에 ‘별거’하는 부부도 더러 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개인양육 지원 제공자의 83.6%가 할머니, 할아버지다. 10명 중 7명은 가능하다면 손주 육아를 그만두고 싶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흔쾌히 봐주겠다고 나섰어도 힘든데, 어쩔 수 없이 떠맡은 황혼 육아는 조부모뿐 아니라 모두에게 부담이다. 어른들이 노후를 즐기면서 손주도 돌볼 수 있는 이 적당한 거리
  • [길섶에서] 출근버스의 어린이/전경하 논설위원

    가끔 출근버스에서 어린이 목소리가 들린다. 출근하는 부모를 따라 부모 직장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경우가 많다. 며칠 전에도 아이 목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할머니와 4살 정도 된 손자가 보였다. 할머니는 자신의 무릎에 앉아 불편해하는 손자를 어르는 데 진땀을 뺐다. 두 사람 대화가 간간이 들렸는데, 아이 엄마가 사정이 있어 먼저 출근하고 할머니가 아이를 어린이집으로 데려다주는 것 같았다. 그러다 할머니가 “단것, 안 돼요. 아직 한 번도 안 먹어 봤어요”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아이가 투정을 부리고 할머니가 힘들어하자 옆에 서 있던 승객이 갖고 있던 사탕이나 초콜릿 등을 내밀었던 모양이다. 선의였겠지만 내민 손도, 다급한 거절도 서로 민망했겠다. 나도 무언가 내밀 수 있는 상황이면 그랬을 텐데. 가끔 외부에서 투정 부리는 아이들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갈수록 줄어드는 아이가 귀여워서인지, 아이의 낯선 모습이 신경 쓰여서 그러는지 시선들이 쏠린다. 때론 과자나 사탕 등이 등장한다.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반가울 때도 있지만 당혹스러울 때도 있을 거다. 예민하게 고르는 아이의 먹거리니까. 따뜻하게 지켜보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줄 수 있는 배려. 그
  • [길섶에서] 트렌드/손성진 논설고문

    유교적 전통인 제사에 대한 고정관념도 많이 바뀌는 것 같다. 1년에 제사를 여러 번 지내는 사람으로서 주변에 물어보면 여러 제사를 합쳐서 지내거나 절에 맡기는 가정도 적지 않다. 아예 지내지 않는다는 집도 있다. 지내는 시간도 늦은 밤에서 초저녁으로 바뀌고 있다. 격식을 따지셨던 부모님이 살아계셨더라면 ‘경을 칠 일’이라고 나무라실지 모르지만, 나도 간소화의 흐름에 스스로 얹히기로 했다. 할머니 제사를 할아버지 제사에 합치기로 한 것이다. 사실상 지내지 않겠다는 것과 같아서 손자의 도리를 저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고 집안 어른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는 않았다. 수일 전 42번째이자 마지막 할머니 제사를 지냈다. 사신(辭神·제사 절차의 하나로 신을 보내는 일)을 하면서 제주(祭主)인 내가 “할머니, 내년부터는 할아버지 제사 때 오세요”라고 고(告)했다. 그러자 30대인 사촌 여동생이 뒤이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할머니, 요즘 이렇게 하는 게 ‘트렌드’예요.” 너무 우스워 속으로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하늘에 계신 할머니도 섭섭해하시기보다는 손녀의 깜찍한 한마디에 덩달아 웃으시면서 모든 것을 용서하실 것 같았다. s
  • [길섶에서] 이육사/박록삼 논설위원

    새 교과서를 받으면 가장 먼저 국어 교과서를 펼쳐 봤다. 소설, 시, 시조, 수필 등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길지 않은 시나 시조는 미리 외워 두면 수업 시간에 으쓱거리기도 좋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지 싶다. 국어 교과서에 나온 이육사(1904~1944)의 시 ‘청포도’, ‘광야’는 가슴이 시원해짐을 넘어 서늘해지는 느낌까지 줬다. 그리고 3학년 때인가 ‘절정’도 실렸다. 시구마다 밑줄 그어 가며 주제, 숨은 뜻, 은유법, 역설법 운운하는 수업은 서늘했던 시어와 정신을 떠올리면 차라리 지루했다. 그렇게 민족 저항시인이라 외우고 시험쳤지만 실제 그의 삶과 정신을 배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시인이기 이전에 치열한 항일 무장 독립운동가로서 구체적 행적을 고교 졸업 30년 만에, 그것도 지난 주말 TV를 통해서야 처음 알았으니 참 게을렀고 참 무지했다. 이육사는 1927년 조선은행 폭파 사건에 관여해 첫 옥고를 치른 뒤 17년 동안 17번 형무소를 들락거렸다. 낮밤 없이 감시하는 일제 순사의 눈길과 갖은 고문 속에서도 결정적 증거를 잡히지 않은 채 독립운동을 계속했으니 굳건한 의지를 가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광복 한 해 전인 1944년 1월 16일, 7
  • [길섶에서] 83세의 제인 폰다/문소영 논설실장

    지난 주말에 넷플릭스에서 ‘그레이스 & 프랭키’ 시리즈를 봤다. 오늘 시즌 6이 공개된다. 이 미드에서 제인 폰다는 나이를 서너 살 어리게 속이고 80세에 창업하는 여성으로 나온다. 무엇보다 1937년생인 제인 폰다가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여성을 연기하고 있어서 놀라웠다. 할리우드에는 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90)만이 아니라 제인 폰다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맡은 그레이스는 엄청나게 부자인 남자친구나 변호사인 전남편, 잘나가는 자식에게 눈곱만큼도 경제적·육체적으로 기대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제인 폰다는 1970년대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을 맹렬히 비난해 ‘하노이 제인’으로도 불리는 급진주의자로 지난해 연말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후변화대책을 비판하는 금요시위에 참석해 하루 동안 구치소에 구금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인 폰다는 ‘그레이스 & 프랭키’에서는 중산층 보수주의자를 연기한다. 제인 폰다의 ‘그레이스’를 보고 있자니 여자 노인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회에서 노년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직장인의 오래된 꿈이 은퇴하면 국내외 휴양지를 전전하며 안락하게 사는 것이겠으나, 이 역시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깨
  • [길섶에서] ‘조너선’에 대하여

    미국 작가 리처드 바크의 소설 ‘조너선 리빙스턴 시걸’은 지난 50년간 4400여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우리나라에서는 1973년 ‘갈매기의 꿈’으로 번역, 출간됐다. 무지개의 근원을 찾겠다며 멋모르고 친구들과 산등성이를 넘었던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처음 읽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는 동명 영화 음악감독을 맡았던 닐 다이아몬드의 LP판으로 메인 테마곡 ‘Be(존재)’를 들었다. 감성 충만했던 사춘기 소년의 허영심을 채워 주고도 남았다. 바다를 찾을 때마다 갈매기를 유심히 관찰하곤 하는데 비 오는 날의 갈매기들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깃털이 젖을까 백사장에 뱀이 똬리 틀듯 움츠리고 앉은 채 눈만 껌뻑이는 모습이 그렇다. 예전 인천 강화 석모도를 배 타고 들어갈 때는 갈매기들에게 과자 던져 주는 재미가 쏠쏠했다. 날름 낚아채 먹는 기술은 솜씨 좋은 소매치기를 능가했다. 다리가 놓여 이제 섬 아닌 섬이 된 석모도, 그 많던 ‘과자 받아먹던 갈매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혹시 일부는 ‘조너선’처럼 무리를 떠나 멀고 긴 도전의 여행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무기력하게 세월을 탕진하고 있는 지금, ‘조너선’의 용기가 더욱 그리워진다. 얼마 전 다시 찾은 석모도, 갈매기들
  • [길섶에서] 파란색과 녹색/이종락 논설위원

    며칠 전 “파란불이 들어왔다. 빨리 건너자”라고 소리치며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는 한 무리를 목격했다. 나도 덩달아 뛰어서 횡단보도를 건넜지만 이내 궁금증이 들었다. 분명히 교통신호등은 빨간색과 녹색, 노란색이 번갈아 켜지는데 왜 녹색신호를 파란색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지? 어릴 적부터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두 색을 혼동해 부르고 있다. 일본인들도 일상생활에서 파란색과 녹색에 대한 혼선을 자주 일으킨다고 한다. 일본어학자인 사타케 아키히로가 쓴 ‘고대 일본어에 있어서 색깔 이름(명색)의 성격’이라는 책을 보면 고대 일본어에서는 색을 나타내는 말이 빨강, 파랑, 하양, 검정 등 4가지밖에 없었다고 한다. 녹색이라는 말은 원래 색의 이름이 아니라 물이나 싹 등에 관계가 있는 것들과 붙여 쓰는 단어였다. 싹이 난 직후의 젊고 생기 넘치며 물기가 많은 것을 나타냈다. 여인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녹색의 흑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젖먹이를 ‘녹색아기’(みどりご)라고 했다. 우리 말에도 비슷한 얘기가 전해온다. 1527년(중종 22년) 최세진이 지은 ‘훈몽자회’라는 책을 보면 청색과 녹색을 ‘푸를 청’‘푸를 녹’으로 표기해 두 색깔을 구분없이 ‘푸르다’라고 표현했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