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파란색과 녹색/이종락 논설위원

[길섶에서] 파란색과 녹색/이종락 논설위원

이종락 기자
입력 2020-01-12 23:34
수정 2020-01-2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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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파란불이 들어왔다. 빨리 건너자”라고 소리치며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는 한 무리를 목격했다. 나도 덩달아 뛰어서 횡단보도를 건넜지만 이내 궁금증이 들었다. 분명히 교통신호등은 빨간색과 녹색, 노란색이 번갈아 켜지는데 왜 녹색신호를 파란색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지? 어릴 적부터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두 색을 혼동해 부르고 있다. 일본인들도 일상생활에서 파란색과 녹색에 대한 혼선을 자주 일으킨다고 한다. 일본어학자인 사타케 아키히로가 쓴 ‘고대 일본어에 있어서 색깔 이름(명색)의 성격’이라는 책을 보면 고대 일본어에서는 색을 나타내는 말이 빨강, 파랑, 하양, 검정 등 4가지밖에 없었다고 한다. 녹색이라는 말은 원래 색의 이름이 아니라 물이나 싹 등에 관계가 있는 것들과 붙여 쓰는 단어였다. 싹이 난 직후의 젊고 생기 넘치며 물기가 많은 것을 나타냈다. 여인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녹색의 흑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젖먹이를 ‘녹색아기’(みどりご)라고 했다. 우리 말에도 비슷한 얘기가 전해온다. 1527년(중종 22년) 최세진이 지은 ‘훈몽자회’라는 책을 보면 청색과 녹색을 ‘푸를 청’‘푸를 녹’으로 표기해 두 색깔을 구분없이 ‘푸르다’라고 표현했다. 훈몽자회는 3360개 한자에 훈민정음(한글)으로 뜻과 발음을 달아놓은 책이다. 동양권에서는 파란색과 녹색의 구별을 상당히 늦게서야 구분하기 시작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두 색을 혼동하는 것 같다.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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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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