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헛기침과 공중예절/김균미 대기자

    30대 남성이 휴대전화로 한창 통화를 하고 있다. 엄청 큰 소리로 통화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목소리를 낮추거나 입을 가리고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원하지 않아도 그 남성의 개인적인 얘기를 듣게 된다. 가족 모임 때 뭘 먹을지를 놓고 이야기가 오간다. 그러더니 옷으로, 자신의 패션 감각으로 얘기가 옮겨 간다. 그 즈음 버스 안 여기저기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터져 나온 헛기침 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목소리 좀 낮춰 주세요’, ‘중요한 이야기 아니면 나중에 버스에서 내려서 하시죠’라고 말하는 듯하다. 승객들이 보낸 무언의 신호를 눈치챈 건지 알 수 없으나 얼마 안 지나 전화를 끊었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통화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경우도 많다. 듣기 민망한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이를 지적하는 이는 많지 않다. 대신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큰 숨소리와 헛기침,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소심한 항의의 몸짓이다. 무언의 신호를 그 사람들이 알아채 주길 바라면서. 문득 ‘공중도덕’, ‘공중예절’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오랜만이다. 요즘은 배려에 자리를 내주고 잘 쓰
  • [길섶에서] 햇볕맞이/전경하 논설위원

    계절이 바뀌는 시기의 연휴나 주말에 햇볕이 좋으면 마음이 바쁘다. 계절이 바뀌면 한 계절 동안 가족들이 덮고 자던 이불들을 빨아서 정리하고 오는 계절에 맞는 이불로 바꿔야 한다. 넣어둘 이불을 바짝 말리기에는 맑은 햇볕이 제격. 이불을 말리다 보면 이불 친구인 베개도 함께 빨래걸이에 오른다. 건조기가 신생활 가전으로 등장한 요즘이라지만 그래도 공짜에 살균 제대로인 햇볕이 제일 마음이 편하다. 내가 편한, 원하는 시간에 오지 않는 햇볕에 일하는 시간을 맞추느라 때론 투덜댄다. 올 추석 연휴에도 까슬한 여름 이불을 건조기에 넣기가 꺼림칙해 햇볕 오기만을 기다렸다. 건조기에 살균 기능도 있던데 건조기에서 막 꺼낸 옷감의 온도를 생각하면 살균 기능 역시 까슬한 여름 이불에는 아니다 싶다. 면 속옷이나 수건, 애착인형 등은 건조기를 쓰는 걸 생각하면 여름 이불은 까탈스럽다. 햇볕 가득 품은 이불은 제철에 다시 만나자는 다짐과 함께 이불장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한낮 햇볕을 가득 담은 베개는 가족들 머리맡에 있다. 뽀송뽀송한 햇볕 냄새에 그날은 잠이 그냥 달다. 사람이 햇볕을 가득 품으면 나쁜 생각이 사라지는 건 없을까. 햇볕이 우울증에 좋다니 나름 효과가 있나 보다
  • [길섶에서] 그때, 그곳/손성진 논설고문

    머릿속 깊숙한 데 파묻혀 있던 기억이 불려 나온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어떤 사람이 종로3가 쉘부르에서 ‘진정 난 몰랐네’란 노래에 빠져들었던 그때가 아련히 떠오른다고 했다. 45년 전 1974년 어느 봄날이라 했다. 내 기억 속의 장소는 대학가의 허름한 술집, 1981년 겨울이었다. LP 판에서는 같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멋모르는 청춘이었고 뭔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심장은 터질 듯했었다. 세월은 무심히도 흘렀다. 무엇을 향해,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도 모르는 사이 가만히 있어도 울렁대던 가슴은 사막처럼 바싹 메말라 버렸다. 앞날을 알 수 없었던 그때는 비록 힘들고 어두웠고 더러는 후회로 남았더라도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잠시 회상에 빠져 본다고 해서 나쁠 건 없다. 도리어 가뭄 끝의 소나기처럼 마른 가슴을 적셔 준다. 누구에게나 젊은 날이 있었다. 청춘의 애틋함은 사라진 게 아니다. 기억 속에선 봄 순처럼 살아 꿈틀댄다. 지금 이 순간도 미래에는 추억으로 회자되리라. 모든 것에 열정을 쏟는다면 먼 훗날 오늘을 돌이켜 보면서 되뇔 수 있을 것이다. 후회 없이 살았노라고.
  • [길섶에서] 몽중몽(夢中夢)/박록삼 논설위원

    초등생 시절 늘 어울리던 친구 A가 문득 집을 찾아왔다. 최근 10년 넘도록 못 봤는데 엊그제 차를 바꿨다는 둥 늘상 만나온 듯하더니 소주나 한잔하자 한다. 추석 명절이라 반가운 동무 만난 듯했다. 근데 뭔가 부자연스럽다. 술집 공간이 자꾸 바뀌고, 대화 주제도 맥락 없이 바뀐다. 자식 얘기하는가 싶더니 우주 탄생의 비밀을 풀어냈다가 또 정치 얘기로 이어졌다. 모처럼 봤는데 사사건건 의견이 부딪치는 게 조금 불편했다. 어느새 아내가 곁에 앉아 술 좀 그만 마시라며 성화다. 무례한 태도에 친구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신경질을 확 냈다. 문득 보니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었고, 친구는 온데간데없다. 꿈이었다. 다행이다 생각하며 일어날까 말까 하며 머뭇거리던 중 아내가 옆에서 “이거 꿈 같지? 꿈 아니야! 그러니까 술 좀 작작 마시라고”하면서 또 지청구를 연신 늘어놓는다. 괴로웠다. 꿈에서야 소나기에 맞서는 호기를 부릴지언정 현실에서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귀찮은 마음속에 “어, 어 알았어”하며 건성으로 대답하는 중 문득 눈이 떠졌다. 아내는 옆에서 세상 모른 채 코 골며 자고 있고. 연휴 끝날 새벽녘 ‘꿈 속의 꿈’이다. 친구에 연락 게을리한 나태함, 주도락(
  • [길섶에서] 집으로/황수정 논설위원

    빗방울이 한두 점 떨어지면 아까는 불러도 대답 없던 어머니는 어디선가 틀림없이 나타나셨다. 저만치서 보내는 손짓은 어서 빨래를 걷고 장독 뚜껑을 닫으라는 수신호였다. 딴 건 몰라도 나는 언제나 그 신호만은 찰떡같이 알아먹었다. 작가 이태준은 ‘무서록’에서 길을 가다 어느 집 부엌의 저녁 짓는 그릇 소리에 문득 내 집, 내 어머니가 그립다고 썼다. 그릇 소리에 꼬리표가 붙었을까마는, 간절한 옛 문장을 내내 기억하게 된다. 나는 장독 뚜껑 여닫는 소리에 고향집이 생각난다. 이즈음 우리 집 장독대의 단지들은 날마다 바람을 쐬었다. 금싸라기 볕에 장맛은 속속들이 단물이 들지 않고는 못 배겼다. 햇된장이 떫어질세라 따독따독 눌러서는 장독 주둥이에다 쨍쨍, 숟가락을 털고 하얀 광목으로 뚜껑을 싸매면 저녁 해가 기다렸다가 꼴깍 넘어갔다. 다정했던 숟가락 소리,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어머니가 떠나고 된장독을 열지 못했다. 장독에 볕과 바람을 들이는 요령을 이 나이 먹도록 나는 알지도 못한다. 묵은 된장독을 열어 오래 밀린 안부를 물어보고 오려 한다. 가을볕이 된장독에 잠기고 잠기다 지칠 때까지, 저녁이 목젖에 차오를 때까지, 떨어지는 대추알이나 실컷 주워 먹으면
  • [길섶에서] 개미가 물었어/문소영 논설실장

    텃밭을 경운하지 않고 필요한 곳만 삽질해서 퇴비를 넣고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는다. 붉은색인 맨땅은 거의 드러나지 않을 만큼 잡초와 민트, 쑥, 민들레, 고들빼기 등이 가득하다. 초봄에는 다 뜯어서 새싹 비빔밥을 해먹을 수 있을 정도로 풍요로운 땅이다. 삽으로 땅을 뒤집으면 지렁이가 반드시 따라 올라온다. 건강한 땅이다. 농약을 치지 않는다. 먹거리도, 달팽이도, 농부도 안전하다. 이 뿌듯한 땅에 문제가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삽질을 하면 개미집이 파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내 텃밭에 세상의 모든 개미들이 집을 지은 듯이, 삽질하는 곳마다 개미집이 파괴된다. 들깨 사이즈 개미들이 우왕좌왕하고 정신없이 움직이고, 때로는 하얀 개미알들이 검은 흙에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 죄의식이 생긴다. 이 심리적인 위축에 육체적인 고통이 추가된다. 크고 작은 개미들이 목장갑과 장화로 기어올라와 팔목이나 발목을 깨물기 때문이다. 큰 개미가 물면 눈물나게 아프고, 작은 개미가 물면 따끔따끔하다. 이렇게 물리고 12시간쯤 지나면 빨간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가려움에 사나흘을 고생한다. 이 과정을 예닐곱 번 거치고 나면 겨울이 온다. 김장배추 모종을 끝내고 개미에 수십 번 물린 팔목이 가려
  • [길섶에서] 호박잎을 씻으며/황수정 논설위원

    동네 마트 한편에 호박잎 묶음들이 소복했다. 칠팔월 땡볕을 건너 용케 보드라운 잎사귀를 거두고 있었구나, 덥석 한 묶음을 들여왔다. 어릴 적 우리 동네는 구월이면 집집 담벼락마다 늙은 호박이 문패처럼 걸렸다. 뉘 집 담장에, 어느 채마밭 고랑에 호박이 엉덩이를 눌러 앉혔는지 서로 말 안해도 다 알았다. 그 가을에 늙은 호박은 익어 갔는지 늙어 갔는지. 잘생긴 호박이 익다 말고 종적을 감추면 어느 집 마루 끝에서 호박 속을 긁느라 달강달강 숟가락 부딪던 소리. 그 소리 담장을 넘어 지글지글 콩기름 타는 냄새가 온 동네를 한 바퀴 돌면, 저녁상마다 노릇한 호박전. 샛노란 구월의 꿈을 둥그런 밥상머리에서 둥글둥글 똑같이 꾸던 날. 가을마다 더 멀어지는 오래된 삶의 잔무늬들. 끝물의 호박잎을 살살 달래며 씻다가 나는 왜 프랑시스 잠의 시가 생각났는지. 인간의 위대한 일이란 덜거덕거리는 베틀 소리와 올빼미와 한밤중 귀뚜라미 소리를 조용히 듣는 것. 넘치는 밥물에 설지도 무르지도 않게 쪄낸 호박잎, 푸른 물이 기적처럼 스민 밥 한 공기, 여름의 발목을 붙들 것처럼 되직한 강된장 한 종지. 오늘 저녁 밥상은 위대한 일로 상다리가 휜다. sjh@seoul.co.kr
  • [길섶에서] 태풍이 지나가고/이순녀 논설위원

    초강력 태풍 ‘링링’의 북상이 예고된 지난 토요일 오전, 집 문을 나서며 몇 번을 뒤돌아봤다. 이미 수차례 확인했음에도 베란다 창문은 제대로 잠겼는지, 방충망은 잘 버텨 줄지 걱정이 컸다. 불가피한 행사로 강원도 원주로 향하는 길. 애써 불안감을 털어 내며 차창 밖으로 본 풍경은, 태풍의 불길한 전조들로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하루 종일 맘 졸이다 한밤중 귀가해 베란다부터 살펴보니 다행히 이상무. 어디서 날아왔는지, 방충망에 매달린 나뭇잎들이 바람의 강도를 짐작하게 했다. 전국적으로 ‘링링’의 상흔이 크고, 깊다. 순간 최대풍속이 초속 54.5m인 역대급 강풍을 동반한 ‘링링’은 스쳐 간 지역마다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3명이 숨지고, 24명이 다쳤다. 농작물 피해 면적은 1만 40000여㏊에 달한다고 한다. 추석을 앞두고 수확의 꿈에 부풀었던 농민의 심정이 얼마나 처참할지 안타깝다. 자연은 인류에게 늘 경이로운 대상이지만, 이럴 땐 딱 인정사정없는 폭군이다. 무자비한 ‘자연의 시간’ 앞에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한낱 미물임을 절감할 뿐. 그러나 태풍이 지나가고, 그 자리엔 어김없이 ‘인간의 시간’이 흐른다. 어떤 고난에도 다시 일어설 힘, 그것이 우리 인간
  • [길섶에서] 변두리2-지질(紙質)/이지운 논설위원

    십수년 전 중국의 한 깡촌에서 만난 1위안짜리 지폐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을만큼 진귀한 것이었다. 첫인상으로는, ‘이것이 돈인가?’ 싶었다. 얼마나 구겼다 펴고, 빨면 이렇게 될까? 어떤 인위적인 ‘와싱’ 작업으로 이것이 가능할까? 그렇게 희바래지고도, 구멍이 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화폐가 특수지를 사용하기에 형태는 유지할 수 있었으리라. 그제서야 깡촌의 지폐들이 대도시에서는 구경하기 힘들만큼 낡고 닳아 있음이 눈에 들어 왔다. ‘평등사회’에서도 지폐는 평등하지 않구나 생각하게 됐다. 이때의 경험을, 서울에서 떠올리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어느 ‘변두리’의 현금인출기에서 만난 1만원짜리들, 봉투에 넣기에 민망했다. 누군가에게 전달하려 했기에 눈에 들었을 것이다. 두어 차례 더 수수료를 지불하고 인출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어디나 상황은 대략 이러한가 보다” 단정지어 버렸다. 화폐는 분명 힘이지만, 그 ‘지질’(紙質)도 힘과 무관치 않은가 생각하게 됐다. ‘힘있는 기관’에 입주한 은행들은 신권 교환에 너그럽다. 명절을 거치고 거쳐 내린 결론이다. 답을 얻지 못한 일도 있다. 구겨진 셔츠 같은 지질의 조간신문이다. 다리미로 다려 읽을까 하는 충동마저
  • [길섶에서] 무선 이어폰 공해/이종락 논설위원

    대부분의 직장인은 출근 버스나 지하철에서 단꿈을 꾼다. 전날 밤 마신 술이 덜 깨거나 직장에서 누적된 피로를 해소할 요량으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자마자 눈을 감는다. 짧게는 10~20분, 길게는 1시간 동안 단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날의 활력을 되찾는 기분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단잠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나타났다. 선이 없는 무선 이어폰이다. 기다란 선은 물론 목걸이형 넥밴드 등 추가 기기가 없는 무선 이어폰은 패션 아이템으로까지 부상했다. 문제는 이런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는 이용자들의 예절이다. 전화가 걸려오면 입을 최대한 막고 통화를 하거나, “지금 차량 안이니 내려서 통화하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는 게 예의일 것이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남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들리는 음량대로 대화를 이어 간다. 차량 내에서뿐만 아니라 길거리를 지나갈 때도 큰 소리로 대화하느라 보행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올 2분기 무선 이어폰의 세계시장 규모는 2700만대로 올 1분기(1750만대)에 비해 54% 성장했고, 연말에는 1억대를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첨단 기기 개발로 세상은 편해졌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의식 수준
  • [길섶에서] ‘서둘러 온’ 추석/김균미 대기자

    추석이 열흘도 남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제법 선선해졌다지만 여전히 한낮에는 기온이 30도에 육박할 정도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올해 추석(13일)은 작년보다 11일 이르고, 재작년보다는 3주나 빠르다. 달력을 들춰 보니 3년 전인 2016년에도 추석이 9월 15일로 이른 편이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사과나 배값은 비싼데 맛이 덜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추석이 ‘서둘러 온’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추석이 코앞인데 영 명절 기분이 나질 않는다. 여름 같은 날씨 탓도 있고, 여름휴가 뒤끝이라 그럴 수도 있다. 무엇보다 들려오는 얘기란 게 온통 우울하니 도통 신이 나지 않는다. 정치권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정쟁이 한창이다. 고용 사정은 별로 나아진 게 없고, 수출은 9개월째 줄었다. 경기가 좋지 않아 상여금을 주는 기업도 작년보다 줄었다고 한다. 쓸 돈도 없는데 연휴만 길면 뭐하냐는 탄식도 들린다. 추석은 가족이다. 예전처럼 지방에서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사촌들이 올라와 추석을 쇠고 가지도, 명절 음식을 많이 준비하지도 않는다. 형제들과 조카들과 오붓하게 차례상에 둘러앉는다. 별 얘기 하지 않아도, 추석을 같이 보낼 가족이 있음에
  • [길섶에서] 이 빠진 날/장세훈 논설위원

    ‘이 빠진 날’에 대한 기억할 만한 경험은 크게 세 번 있다. 어릴 적 첫 이가 빠지는 날. 막연한 두려움으로 울먹였던 것 같다. 어머니는 흔들리는 배냇니를 실에 묶어 능숙하게 뽑아냈다.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빠진 이를 지붕 위로 던져 까치가 물어가길 소원했다. 아픔과 뿌듯함으로 기억한다. 몇 해 전 딸아이의 첫 이가 빠졌다. 실이라는 민간요법은 치과에서 의학적 방식으로 대체됐고, 빠진 이는 지붕 대신 ‘유치 보관함’ 속에 담겼다. 첫 이 빼는 풍경 자체는 달라졌지만, 이번에도 코끝이 찡했다.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이 컸다. 그리고 얼마 전 처음으로 발치를 했다. 잇몸이 녹아 내린 탓에 임플란트를 해야 한단다. 치아 관리에 소홀한 탓인데 누구를 탓하랴 만은 ‘눈물 없는 울음’과 같은 감정이 가득했다. 이를 빼는 아픔보다 그동안 모르거나 잊고 있었던 사실을 새삼 깨닫거나 알게 된 데 따른 슬픔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니 회사 선배가 대뜸 “소형차야, 중형차야?”라고 물었다. 적잖은 비용이 드는 임플란트에 이미 중형차 값을 썼다는 선배로선 소형차 값으로 막는 게 그나마 최선이란다. 현실적이어서 서글프다.
  • [길섶에서] 가정간편식과 추석/전경하 논설위원

    시금치, 부추 등 나물용 채소를 처음부터 집에서 다듬다 보면, 우리 식사는 과거 노비를 부리던 양반집이 모델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재료를 하나씩 다듬어서 씻고, 삶거나 무쳐서 요리하고, 그리고 설거지까지. 먹는 시간은 길어야 20~30분인데 먹고 나서 해야 할 일을 보면 가끔은 허탈하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주인의 생활에 맞춘, 재산으로 간주된 노비가 있었기에 양반 대가족의 일상이 가능했을 것이다. 요즘은 과거보다 요리하기가 훨씬 쉽다. 찌개·찜 등 각종 요리용 소스는 물론 채소도 1회용으로 포장해 판다. 한 회분 재료와 소스를 함께 파는 ‘밀키트’도 있다. 씻어서 끓이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가끔 요리가 버겁다. 그래서 요리된 제품을 배달하는 업체들도 많이 생겼다. 음식배달업체는 표준화된 요리법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언젠가 반찬배달업체 공장을 견학 갔는데 그곳 공장장이 요리사가 바뀌어도 같은 맛을 유지한다고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표준화된 맛. 추석이 다가와 유통업계가 전과 나물 세트에 갈비찜 등을 더한 세트를 판다고 광고한다. 미리 주문하면 할인도 해 준단다. 추석에 표준화된 상차림을 차리면 후손들은 편하고 그래서 화목할 수 있다. 그런 화목
  • [길섶에서] 가을이 오기 전에/손성진 논설고문

    가을이 살랑살랑 까치발로 다가오더니 몇 발자국 전, 우리 눈앞에 서 있다. 저 가을이 오기 전에 우리는 먼저 가는 여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한다. 옥수숫대 휘청거리도록 단단히 영근 열매와 옹골찬 나락 넘실대는 황금빛 들녘으로 땀 흘린 농부의 곳간을 가득 채워줄 고마운 여름이었다. 주렁주렁 비췻빛 눈부신 청포도, 새색시 볼 살색 같은 진홍 사과, 과원(果園)의 결실들도 다 여름이 우리에게 주고 간 선물 아니던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 푸른 바다의 아련한 수평선. 양털구름, 뭉게구름, 그 너머로 밤이면 찬란하게 반짝였던 별빛. 머나먼 남국의 순정을 전해준 여름. 인생의 한 자락에 간직할 추억을 만들어 준 여름이지 않은가. 짙푸른 초록의 향연도 이제 막바지에 이를 것이다. 끈적거리는 불쾌감만 기억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자. 가을이 시원한 까닭은 여름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가는 여름에게 고마웠다고, 곧 그리울 것이라고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건네야 한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안다면 여름에게 머리 숙일 줄 알아야 한다. 가을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물러나는 여름에게 빨리 가라고 재촉하기보다는 그편이 더 아름답다.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생명 공동체, 대학/박록삼 논설위원

    고맙게도 집 주변에 대학교가 하나 있다. 너른 호수가 있고 가운데에는 사람 손 안 타는 제법 큰 섬도 있다. 오가는 여러 텃새, 철새들만 섬 안팎에서 수다스럽게 울어대며 주인 행세를 한다. 고양이 등 외부 침입자도 올 수 없다. 생존의 절박함이 없으니 평화롭기만 하다. 늦여름 더위 속 바람이라도 건듯 불면 상쾌하다. 어스름 저녁이면 연인들이 호숫가에서 밀어를 속삭이기도 하고, 학생들 두엇이 맥주 한두 캔 놓고 가벼운 술자리 갖기도 한다. 틈날 때마다 어슬렁거리며 잠시나마 도심 생활의 삭막함을 잊곤 한다. 동네 어르신들에겐 체력단련장이자 회합 장소다. 호수 주변을 서너 바퀴 도는 데만 꼬박 한 시간 가까이 흐르니 노인도 무리하지 않고 산보하기 딱 좋다. 어느 날 아침 거위 한 마리가 호수 산책로 복판에 앉아 있다. 꽤 거만한 자세다. “꽉꽉” 말 붙여도 쳐다보지 않는다. 멀찍이 떨어져 “구구국”, “꽈락꽈락” 다양한 언어로 ‘길 좀 비켜 달라’는 뜻을 전했건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아침부터 얘기꽃 피우던 어르신 중 한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니 귀찮다는 듯 뒤뚱뒤뚱 자리를 비켜 준다. 언젠가 대학을 ‘생활, 학문, 투쟁의 공동체’라고 했던가. 대학이 다양한 생명
  • [길섶에서] ‘기레기’/문소영 논설실장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가 ‘기레기’다. 언론이 정론직필하지 않고, 진실 추구보다 정파성에 치우치다 보니 비난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기레기와 좋은 언론 감별법이 뭐냐고 하더라. 곰곰이 생각하고 ‘일관성’을 따져보라고 했다. 느닷없이 ‘통일대박’을 정부와 함께 외치다가 정권이 바뀌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반대한다면 기레기 언론이라고 했다. 자신이 지지하던 정부라도 잘못하면 비판하는 게 옳다. 정파성이 워낙 강화하다 보니, 자신이 지지하는 정부를 비판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가짜뉴스’를 외쳐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대통령 무오류설, 내 편은 항상 옳아, 이런 건 없다. 사례를 들자면, 박근혜 정부에서 안대희 총리 후보자를 비판하던 잣대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를 비판하는 언론은 좋은 언론이다. 안 후보자는 어떻게든 옹호하더니 조국 후보자 때는 험악하게 비판한다면 좋은 언론은 아니지 않나. 다만 지지하니까 좀 덜 쓰거나 덜 비판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마땅히 비판받아야 하지만, 팔은 안쪽으로 굽는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언론사에 몸담고 구업을 쌓는 터라 만화 ‘신과 함께’처럼 지옥에서 누군가 내 혀에 밭 갈고 씨 뿌리고 하지 않을까
  • [길섶에서] 콩잎 김치/이동구 논설위원

    뙤약볕이 곡식을 여물게 하는 시기다. 콩은 대개 더위가 시작되는 유월부터 심는다. 밭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작은 자투리땅에 뿌려진 콩알 몇 움큼. 한여름의 뙤약볕을 한껏 쬐어야 잎을 피우고 주렁주렁 콩 주머니를 달아 놓는다. 매미 울음소리가 뜸해지고 고추잠자리들이 날아드는 이맘때가 되면 토실토실한 콩 주머니를 살짝 열어 여물기를 기다린다. 여름 내내 그늘막이 돼 주었던 콩잎은 어느새 노란색 물이 들기 시작한다. 다른 지방에서는 먹지도 않는다는 콩잎이 동쪽 바닷가에서는 맛있는 식재료가 된다. 콩이 여물기 전 녹색의 여린 콩잎은 된장 항아리에서 장아찌로 만들어진다. 노란색으로 물이 든 콩잎은 어머니의 손끝에서 김치로 탈바꿈한다. 소금 물에서 보름 남짓 삭혀진 콩잎은 한 장 한 장씩 양념 옷이 입혀진다. 멸치 액젓과 고춧가루, 마늘 등 갖은 양념이 듬뿍 묻은 맛깔스러운 모습의 콩잎 김치가 된다. 콩잎 김치 한 잎에 밥 한 숟가락. 한 접시면 밥 한 그릇이 눈 깜짝할 새 없어진다. 동해안의 밥도둑은 간장 게장이 아니라 콩잎 김치였다. 서울에서 콩잎 김치를 맛보기는 쉽지 않다. 젓갈 냄새와 마늘 향이 듬뿍 밴 ‘엄마표’ 콩잎 김치를 찾기란 더욱 어렵다. 그리운 맛으로
  • [길섶에서] 8월의 산타마을/이종락 논설위원

    ‘8월의 크리스마스’. 1998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여름처럼 성장해야 할 젊은 주인공(한석규 분)이 크리스마스가 있는 겨울에 죽음을 앞두고 있음을 뜻한다. 역설적인 제목의 이 영화는 밝고 선명도가 뛰어난 조명의 눈부심 뒤에 아릿한 슬픔을 담아 많은 영화인들의 감동을 이끌어냈다. ‘8월의 산타마을’도 영화처럼 역설적이고 신기한 경험을 선사한다. 경북 봉화군 분천역 일대에는 지난 2014년 12월부터 겨울과 여름에 산타마을이 조성된다. 핀란드 로바니에미 산타마을을 벤치마킹했다. 첫 겨울 산타마을에 10만여명이 몰려드는 등 대성공을 거두자 이듬해인 2015년부터 여름 산타마을도 운영했다. 분천역이 산골 오지의 해발 450m에 위치해 한여름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하고 청정지대라는 점을 감안해 착안한 역발상이었다. 최근 분천역과 철암역을 오가는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를 타기 위해 찾은 산타마을. 30도를 넘는 한여름에 설치된 산타우체국, 이글루 소망터널, 산타슬라이드, 산타풍차방 등이 생경하면서도 반가웠다. 지난 18일 끝난 산타마을에는 4만여명이 방문해 3억원 정도의 파급효과를 낳을 것으로 봉화군은 예상한다. 8월의 산타마을은 주민들의 지혜와
  • [길섶에서] 처서/이순녀 논설위원

    사시사철 계절이 가장 빨리 오는 곳은 의류 매장이다. 오랜만에 백화점에 갔더니 마네킹들이 벌써 가을옷으로 단장했다. 진열된 품목도 가을 신상품 위주이고, 얼마 안 남은 여름옷은 주변으로 밀려났다. 아직 8월인데, 한물간 신세 취급받는 여름옷이 어쩐지 처량하다. 하긴 여름옷들도 계절을 앞질러 봄옷을 밀쳐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으니 염량세태를 탓할 일도 아니다. 오늘은 절기상 ‘더위가 그치고 가을이 깃든다’는 처서(處暑)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부터 아침저녁 바람이 다르게 느껴지던 참이다. 햇볕의 농도도 확연히 변했다. 피부를 뚫을 듯 따갑던 햇살이 이젠 제법 부드럽다. 옛 선비들은 이 무렵에 여름 장마에 젖은 책이나 옷을 햇볕과 바람에 말리는 포쇄(曝?)를 했다는데, 나도 이번 주말에 옷장과 책장 정리나 해볼까. 출근길, 아파트 단지 이곳저곳에 매미 군단의 잔해가 나뒹군다. 새벽마다 목청 높여 자신의 존재를 알리던 패기는 오간 데 없이 패잔병처럼 쓰러진 모습에 마음이 착잡하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매미도, 모기도 사라지면 귀뚜라미가 찾아오겠지. 그 한결같은 자연의 법칙에 또다시 겸허해진다.
  • [길섶에서] 변두리, 시골이라는 말/이지운 논설위원

    언제부턴가 ‘시골’이라는 표현에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서울 아니면 시골’이라는 이분법이 문제였다. 서울서 나고 자란 선민의식에서 왔을까? 일찍이 ‘지방’이라는 단어를 익혔더라면 좋았을 것을. ‘서울 이외의 지역’이니 딱 맞는 표현이었는데. 아무튼. 시골이라 하면, 시골 출신들은 대개 그러려니, 무덤덤했더랬다. 표정에 변화가 생긴다면, 영락없이 ‘지방의 도시’ 출신들이었다. 예컨대 부산, 인천, 대전, 대구, 광주 사람들이었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끌끌 혀를 차는 이도 있었지만, 개중에는 ‘반발’하는 이도 있었다. 지역의 명문고를 나왔다면 더 그랬던 것 같다. “서울 변두리도 서울이랄 수 있나!” 한 친구는 내게 이렇게 일갈했다. 내가 ‘변두리’서 자란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대전생으로 그곳 명문고 출신. “우리 때만해도 서울 변두리는 대전 중심만 못했지!” 시골사람 정체성을 강요당했을 때 이런 심정이었을까. 음주 총량이 평소를 웃돌 수밖에 없는 자리가 되곤 했다. 이제라도 두루 혜량(惠諒)하여 주시길. 기실 ‘시골’은 내게 늘 설렘의 대상이었는데, 명절이고 방학 때만 갈 수 있던 곳이었는데…. 이제 찾아갈 시골이 없으니, 공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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