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규격화된 삶/손성진 논설실장

    규격화된 건물과 도로들로 가득 찬 도심이 질릴 때가 있다. 반듯반듯한 선과 선이 만나서 형성된 도시의 형상은 매끈하기는 하지만 한 치의 빈틈도 주지 않아 숨이 턱턱 막힌다. 우리 대부분이 살고 있는 아파트촌을 보면 그나마 형태는 다른 도심의 건물보다 더 규칙적이고 규격화돼 있다. 도시의 인간들은 일하고, 자고, 먹고, 쉬는 것도 규격화된 곳에서 규칙적으로 한다. 삶 자체가 규격화된 삶이다. 그들에게 영혼이란 ‘토끼의 간’처럼 어디다 떼어 놓고 있는 존재 같다. “서울은 카길 사의 소고기 패티를 얹은 흰 밀가루빵이며 … 그것이 지옥인 이유는 영혼이 없기 때문이다. … 풍경은 의미 없이 걸려 있고, 더이상 하늘은 색의 변화로 시간을 가리키지 못한다.”-김사과, ‘매장’ 삐뚤삐뚤한 골목으로 이어진 집들, 왁자지껄한 장터, 소통하는 이웃이 있는 옛 시절이 그리운 것은 그런 까닭이다. 그런 곳을 찾기란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영혼이 없는 우리는 그런 곳에 사는 것은 고사하고 가는 것조차 꺼리며 점점 더 규격화돼 가고 있을 뿐이다. 자신도 모르는 새.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삼인행(三人行)/서동철 논설위원

    점심시간이 가까워 같은 방의 약속 없는 사람을 수소문하니 두 사람이 있었다. 얼마 전 먹은 돈가스가 괜찮았다는 기억이 있어 얘기를 꺼냈더니 둘 다 묵묵부답이다. 누가 대한민국 중년 남자 아니랄까봐…. 하기는 학창 시절 경양식집 돈가스를 맛보고는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었나” 하고 감동에 감동을 거듭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30년이 훨씬 넘은 지금은 “그런 건 애들이나 먹는 음식”이란다. 결국 세 사람은 돈가스집 아래층의 김치찌개집으로 갔다. 잘 익은 김칫국물이 시원한 집이다. 뜨거운 국물에 땀을 흠뻑 흘리니 묵은 피로가 풀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두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수다는 ‘정년 이후’로 옮아갔다. 퇴직하고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후배가 “차라도 한잔하자”고 해야 직장 생활을 잘한 것이란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회사 주변에 나타나지도 못하는 선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어이쿠, ‘그런 줄 알았으면 나도 잘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한두 살 더 먹었다고 끝까지 돈가스를 우기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말의 이빨/황성기 논설위원

    ‘선물로 받은 말의 이빨은 보는 게 아니다.’ 유럽에 분포된 속담이다. 말을 사고파는 상인들이 말의 체력 상태나 나이를 판별하는 척도가 입인데, 특히 이빨이 마모된 정도로 나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말이란 세계 어디서건 값비싼 동물이다. 그런 말을 누구한테 공짜로 받았다면, 입안을 들여다보고 이빨로 말을 품평하는 것은 실례라는 뜻이다. 일상생활에 적용하면 선물을 준 사람의 성의에 감사하고 선물에 기뻐할 일이지, 어디서 샀으며 어느 정도의 가격이고, 품질은 좋은지 알려 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의미이겠다. 산책 중에 일어난 대수롭지 않은 일로 누군가 사례한답시고 케이크를 보냈다. 제법 큰 케이크여서 대부분을 다른 사람과 나눠 먹고 두세 조각 정도를 남겨서 먹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맛이 별로였다. “맛없네”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유명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케이크니, 상중하로 치면 중쯤의 맛은 있을 거로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사례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던 터였는데, 사놨다는 간곡함에 못 이겨 받은 케이크였다. 말의 이빨을 들여다보듯 케이크를 품평한 내 입이 방정맞고 쑥스럽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길섶에서] 스필버그 교육법/오일만 논설위원

    세계적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어린 시절 왜소한 데다 겁도 많고 그렇다고 똑똑하지도 않은, 평범한 아이였다. 유대인이라고 놀림과 괴롭힘을 당하면서 외톨이로 지내는 시간도 많았지만 호기심은 남달랐다. 어머니 레아 아들러는 영화에 관심이 많은 아들을 위해 8㎜ 무비 카메라를 선물했다. 아들이 촬영을 이유로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도 묵묵히 지켜봤다. 열세 살의 아들을 데리고 사막으로 달려가 밤하늘에 펼쳐지는 거대한 유성쇼를 보게 했다. 5년 후 스필버그의 첫 영화 ‘불꽃’이 탄생했다. 그녀는 아들이 원하면 들어줬고 그것이 독창성을 살리는 길이라 믿었다. ‘남들처럼 잘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남들과 다르게 하도록 노력했다’는 회고를 남겼다. 모두가 하나의 목표로 향해 돌진하는 일등주의 시대. 개성과 능력이 다른 까닭에 1명의 승자 대신 99명의 불행을 만들어 낸다. 4세 때 96%가 자존감 있는 자아를 지녔지만 18세 때 고작 5%로 줄어드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자존감 있는 영혼을 만드는 것, 이것이 교육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다름과 틀림/박홍기 수석논설위원

    길을 물었다. 같은 곳인데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알려 준다. 술을 좋아하는 이는 “저쪽 호프집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포장마차가 있고, 거기서 곧장 가면.” 목사는 “교회를 지나서 100m쯤 걸으면 2층 교회가 보여요. 교회를 끼고 오른쪽으로 가면 됩니다.”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 줬다. 수학자는 덧셈,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 목사나 신부는 십자가, 교통경찰은 사거리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크다. 누구나 자기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들의 반응은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를 뿐이다. 서로 비판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종종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르다고 외면하거나 따지며 ‘틀림’만 강조할 게 아니라 먼저 상대에 대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다르다고 틀렸다고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때론 생각지도 못한 지혜를 상대로부터 배울 수 있다. 더불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길이 따로 없다. 며칠 전 받은 메일 속의 글이다. 남들이 나와 같지 않다는 점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나에게 묻는 것 같다. 박홍기 수석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무소유(無所有)/이동구 논설위원

    삶에서 가장 큰 보람과 행복을 안겨 주는 것은 ‘자식’이 아닐까. 밝은 미소와 눈빛만으로도 모든 시름을 잊게 하는 묘약이 된다. 한 선배는 자녀들에게 절대 부담을 갖게 하지 말라고 충고해 준다. 자녀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이미 부모에게 무한한 기쁨과 보람을 안겨 줬으니 더이상의 것을 기대해선 안 된다는 의미. 요즘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난다니 안타깝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다. 한 연구소의 조사 결과 10명 중 4명은 결혼하더라도 자녀는 갖지 않겠다고 답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결혼과 보육, 교육 등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으니 모두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느껴져 마음이 너무 아프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자녀는 평범한 사람이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이라고 한다. 불필요한 욕심은 버려야 하지만 자녀를 갖는 행복만은 꼭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 이동구 논설위원 yidonggu@seoul.co.kr
  • [길섶에서] 시골/박홍기 수석논설위원

    봄의 색깔이 드러난다. 논둑이 파릇파릇하다. 누런 풀 사이로 새싹이 고개를 들고 있어서다. 쪼그려 앉은 아낙들의 손놀림이 가볍다. 바구니엔 냉이, 쑥이 수북하다. “시내에 사는 분들이란다.” 어머니가 한 말씀하신다. 봄나물 값도 웬만하니 시내에서 쉬엄쉬엄 시골까지 와서 봄을 캐는 것이다. 논둑은 쓸모가 많았다. 봄철엔 나물이, 여름 초입엔 콩이, 가을엔 수수가 있었다. 봄나물은 자연이 거저 준 선물이다. 어른들은 봄이 오면 틈나는 대로 논둑에 나가 나물을 채취해 시장에 내다 팔곤 했다. 모가 뿌리를 내릴 즈음 논둑에 콩을 심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땅을 파고, 콩 서너 개를 넣은 뒤 재를 덮었다. 전부 다 옛날 얘기다. 시골은 늙었다. 젊은이도, 애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나물을 캐러 들판에 나갈 어른들도 없다. 논둑에 콩을 심을 여력도 없다. 심어봤자 고라니 먹이다. 땔감을 대주던 산이 잡목으로 덮인 지 한참 됐다. 논농사, 밭농사는 기계들의 차지다.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정(情)이다.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만나는 이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곳, 시골이 포근한 이유다. 박홍기 수석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반장 선거/최광숙 논설위원

    “저는 저를 추천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조카가 얼마 전 새 학기를 맞아 실시한 반장 선거의 ‘출마변’이다. 아무도 자신을 반장 후보로 추천하지 않자 결국 녀석이 손을 번쩍 들어 ‘셀프 추천’에 나선 것이다. 그 녀석의 황당한 출마에 선생님을 비롯해 반 아이들의 웃음이 까르르 터져 나왔다고 한다. 개표 결과 전체 24표 가운데 6표를 받은 아이가 반장, 5표를 받은 아이가 부반장이 됐다. 조카는 2표를 받아 고배를 마셨다. 조카의 출마 배경이 재밌다. 동생은 반장 선거를 통해 조카가 리더십을 키우는 등 좋은 경험을 쌓을 것 같아 반장 선거에 나가면 장난감 레고를 사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목표가 생기면 돌진하는 조카 녀석은 2학기 반장 선거에 또 출마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제 동생의 제안은 반장에 당선돼야 선물을 사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동생이 신경 쓰는 것은 반장 자체보다는 도전 정신과 함께 좋은 품성을 길러 주기 위해서다. 엄마의 이런 의도와는 관계없이 레고에 눈이 어두운 녀석은 이제 반장이 되기 위해 친구들과 더 가깝게 지내고, 반 청소도 열심히 할 것 같다. 동빈아, 파이팅!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철든 후/이동구 논설위원

    지인들과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저명인사들의 강연 내용을 종종 추천받는다. 삶의 지혜와 시국 강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인생철학을 이야기하는 한 노교수의 강연은 울림을 준다. 망백(望百)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강연 등으로 바쁘고 즐거운 삶을 살고 있는 분이다. 그분이 주장하는 인간의 가장 행복한 시기는 60~75세. 이유는 60세가 되어야 철이 든다는 것. 20대는 50대의 자기 모습을, 50대는 80대의 자기 모습을 그려 보라는 권고도 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한 지방 법원장은 개인의 디지털화를 강조하는 강연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요즘처럼 빨리 변화하는 시대에 SNS 등에 소극적이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노년은 원숭이 신세와 같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어린아이로 되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원숭이 같은 노년이 되지 않으려면 준비하는 삶이 필요할 것이다. 노년이 행복해야 잘 산 인생이라고 하는데…. 이동구 논설위원 yidonggu@seoul.co.kr
  • [길섶에서] 목련/박홍기 수석논설위원

    꽃샘추위가 봄을 시샘했다. 그래도 봄은 왔다. 아파트 담장 옆 나무에 꼬마전구 같은 봉오리가 다닥다닥 달렸다. 조그맣고 솜털에 싸인 꽃망울이다. 살포시 고개를 내밀었다. 목련이다. 버들강아지처럼 여리디여리다. 겨울을 헤치고 나온 자기 존재를, 제철임을 알리려고 꼼지락거리는 듯하다. 계절에 무심한 지 오래다. 덥다 싶으면 여름, 선선하면 가을, 추워지면 겨울, 햇볕이 그리우면 봄이었다. 쳇바퀴 도는 서울 살이, 출근길엔 바빠서 잰걸음 하느라, 퇴근길엔 어두워서 못 봤다. 비집고 나온 꽃망울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제법 피어야 비로소 알아봤다. 꽃망울이 하루하루가 다르다. 영글듯 부풀어 올랐다. 깊이 간직해 놓은 새하얀 꽃을 틔우기 위한 채비다. 머지않아 향긋한 봄 내음을 안고 하늘을 향해 자태를 드러낼 것 같다. 목련은 깨끗하다. 고고할 정도다. 볼 때마다 맘이 편하다. 누군가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생각나는 사람…’을 노래했지만, 당장 떠오르는 이가 없으면 어떤가. 목련 꽃망울이 눈에 들어온 것 자체만으로도 좋다. 박홍기 수석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낭만 가객/박건승 논설위원

    낭만은 로망이다. 거기에는 순수와 열정, 동경이 있다. 노스탤지어도 있다. 가수 최백호가 ‘낭만 가객’으로 불리는 것은 그의 노래 제목 ‘낭만에 대하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에게는 읊조리는 듯한 창법과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툭 내뱉는 쓸쓸한 혼잣말(그의 표현으로는 ‘청승’)이 있다. 지난 주말 그의 데뷔 40돌 ‘불혹(不惑) 콘서트’를 찾았다. 예순여덟. 단아한 얼굴에 삶을 관조하는 넋두리는 중년의 낭만샘을 자극한다. 그런데 이제 이별과 외로움은 내려놓겠단다. 가객 인생 40년. 앞으론 더 ‘젊은’ 노래를 해 보겠다는 것이다. 시대를 아우르고 싶어 에코브릿지·린 등 자식뻘인 뮤지션들과 공동 작업에 열중이라고 했다. ‘손잡고 함께 거닐던 풍경 속 노래를 부르듯 내 이름 불러 주던 그대여/ 해 저물어 물든 석양에 등지고 춤을 추듯이 내게 손짓하던 그대/ 그 아름답던 얼굴에 다시 한번 입맞추고….’(풍경) 최근 선보인 서정 가요다. 일흔이 목전인데도 변신을 멈추지 않는 낭만. 노()가객의 인생 법칙이리라. 박건승 논설위원 ksp@seoul.co.kr
  • [길섶에서] 혼술혼밥/황성기 논설위원

    혼자서 술 마시고, 혼자서 밥을 먹는 혼술혼밥이 유행이라고 하는데, 일찍이 그 묘미를 터득했다. 아내가 며칠씩 집을 비우면, 그야말로 혼술혼밥의 향연이 벌어진다. 평소 멀리하는 척했던 정크푸드의 잔치를 여는 것이다. 짜파게티에 구운 스팸햄·만두, 빼놓을 수 없는 게 소주 1병이다. 테이블에 ‘요리’를 펼쳐 놓고 TV를 봐 가며 혼술혼밥을 즐기는 게 아내의 부재가 가져다주는 짧은 행복(함께 있는 게 정말 행복하다) 중 하나다. 취기를 안고 소파에 누워 새벽까지 혼잠도 즐긴다. 포털 사이트에 화제가 됐던 1인 식당에 가 봤다. 경기도 부천에 있는 이 나홀로 고깃집은 도서관처럼 1인용 테이블을 죽 늘어놨다. 만 34세의 식당 사장님은 “혼술혼밥에 아이디어를 얻어 식당을 차렸다”고 한다. 1년으로 예상했던 손익분기점을 개업 한달 만에 맞췄다고 자랑스러운 얼굴이다. 20대가 주 고객일 것 같은데 의외로 40대 남성이 많고, 혼자서 2인분에 소주 1병은 보통이라고 한다. 혼술혼밥을 모른다면 한 번쯤 그 세계에 도전해 봄은 어떨지.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길섶에서] 마음과 정신/손성진 논설실장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 마음의 뜻풀이다. 육체의 반대말에 마음과 정신이 있다. 그런데 마음과 정신은 같은 듯하나 다르다. 마음은 따뜻하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다.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즉 감정과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마음은 심장에서 나온다고 한다. 영어로 마음을 마인드(mind)라고 하지만 하트(heart·심장)라고도 하는 그런 이유일까. 반면에 정신은 머리에서 나온다. 사물과 현상을 판단하는 지적인 능력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정신을 똑바르다, 똑바르지 않다고 하지 뜨겁다, 차갑다고 하지 않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정신이 똑바르면서 마음까지 따뜻하다면 세상은 얼마나 밝고 살기 좋을까. 정신이 똑바르지만 마음이 차가운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한술 더 떠 정신이 똑바르지 않으면서 마음까지 차가운 사람을 보노라면 절망감만 느낀다. 그런 사람은 도덕과 법을 어길 소지가 다분하다. 적어도 정신이 똑바르지 않더라도 마음만은 따뜻함을 잃지 않으면서 살고 싶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불초(不肖)/최용규 논설위원

    타고 거칠어지면 어떠랴. 세종대로에 내리쬐는 봄볕이 마냥 싫지 않다. 양지가 내켜 몸이 절로 따라 갔으나…. 종종거리는 걸음 속에 뒤섞인 거리의 인파들. 꽉 다문 입술, 냉정한 눈빛, 게다가 납덩이 같은 표정들. 청명이 멀리 있지 않고 춘분이 코앞인데 거리의 봄은 여전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어찌 시운을 탓하랴. 군(君)이 현명하지 못하면 민(民)이 위태로워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을. 사랑이 뭔가. 이롭게 해 주고 해롭게 하지 않는 것이다. 기쁘게 해 주고 화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누구를? 민을 제쳐 놓고 족속(族屬)을 사랑했기에 패가망신을 자초한 것이다. 재앙은 결코 천시에 달려 있지 않다. 좁고 험한 길에 막 들어섰다. 사기가 필요한 때다. 괴로움과 수고로움을 같이할, 진흙탕을 같이 걸을 이가 있어야겠다. 불초한 이를 뒤안길로 보냈으니 도리를 알고 나라의 기운을 뻗게 할 이 누구인가. 밝은 눈과 밝은 귀를 가져 일개 족속이 아닌 민의 눈, 민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 [길섶에서] 자유인/최광숙 논설위원

    한 지인이 은퇴 소식을 알렸다. 공직에서 물러나고 나서도 다른 곳에 재취업하면서 3년을 더 일하다가 곧 진짜 집으로 가게 됐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퇴직 이후에 대한 준비를 많이 했는지 아쉬움보다는 일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홀가분함이 더 큰 듯했다. 하지만 얼마 전 그에게 갑자기 ‘돌발변수’가 생기면서 다소 맥빠진 눈치다. 일을 하는 부인이 갑자기 명예퇴직을 앞당겨 하겠다고 나섰단다. 앞으로 두 분이 같이 여행을 하게 됐으니 잘됐다고 하자 언뜻 속마음을 내비친다. 자신이 퇴직한 뒤 부인은 더 일하길 바랐다는 것이다. 연금과 관련이 있나 싶어 물었더니 그건 아니란다. 그의 퇴직 후 계획은 나 홀로 여행이었다. “혼자 1년만이라도 자유롭게 전국을 누비고 싶었어요.” 눈치를 챈 부인이 직장을 그만두는 결단을 하는 바람에 이제 꼼짝없이 부인과 함께 여행을 가게 됐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살지는 못하더라도 1년 정도는 부인 없는 ‘자유인’으로 살고 싶은 그를 보며 나를 돌아본다. 혹 남편도?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섬초처럼/황수정 논설위원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멀리 신안 비금도에서 겨울 한철 한뎃바람에 자란 시금치, 섬초. 발그레하게 굵은 뿌리를 보면 입맛보다 먼저 마음이 동한다. 눈서리 맞고도 그만큼 야무지게 광합성을 잘한 푸성귀가 또 없다. 살아 낸 관성대로 푼푼한 생김새. 씨 뿌려진 날부터 해풍에 엎드렸으니 팡파짐한 앉은뱅이다. 귓불처럼 도톰한 잎, 바닷가 성긴 햇볕을 어떻게 움켜 삼켰으면 속속들이 단물인가 싶은 뿌리. 키만 커서 싱거운 비닐하우스 시금치 따위는 댈 게 못 된다. 지붕 없고 집 없는 것이 가장 달게 겨울을 이겼다. 매운 날에는 부서지게 얼었다가, 푹한 날에는 쓰러지게 녹아도 내렸다가. 섬초를 다듬고 있으면 한 번 가본 적 없는 비금도가 궁금해서 안달이 난다. 비금도는 햇볕도 달겠지. 섬초가 끝물. 비닐하우스 봄동이 쏟아진다. 봄동은 이름조차 봄인데, 햇볕은 겨울 섬초에 더 깊이 깃들어 있다. 덤비고 버티는 삶은 섬초 뿌리 같아질까. 그렇게 달큰해질 수 있다면, 어디 한 번 섬초처럼.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길섶에서] ‘논문 청첩장’/박건승 논설위원

    30년 지기 교수가 대학원 캠퍼스 커플 제자의 청첩장을 보고선 한참을 웃었단다. 형식과 내용이 학위 논문과 무척 흡사했다. ‘논문 제목: 늦은 결혼이 우리 두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지속 가능한 행복 요인을 중심으로’ 그는 혼자 보기 아까워 SNS에 올렸다. 자신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은 지 5년이 넘은 제자라니 혼기를 놓친 게 분명하다. 속지의 ‘국문 초록’ 왈.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고 정의한다. 어차피 놓친 혼기, 차라리 혼자 사는 게 편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통념에 상반되는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즉 혼기를 훌쩍 넘긴 사람에게 누군가 같이 있다는 것,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건 개인의 행복과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 문제는 새 가설이 검증되지 않아 많은 남녀가 쓸쓸히 늙고 있으며 … 이에 늦은 결혼과 개인 인생 구제의 상관관계를 실증적으로 연구하고자….’ 그 기발함이 유쾌하다. 논문 결론이 부디 ‘지속 가능한 행복’으로 도출됐으면 한다. 내년엔 신혼의 질적 연구 결과(2세)도 내놓으시길. 박건승 논설위원 ksp@seoul.co.kr
  • [길섶에서] 아버지의 뒷모습/황성기 논설위원

    친구가 오랜만에 보자며 친구들을 모아 달라 한다. 날짜를 맞춰서 알려 주자 모임을 제안한 친구는 “자식이 직장을 잡아서 한턱 낼까 한다”고 수줍은 듯 얘기한다. 취업 빙하기에 외동딸인 친구 자식의 취업이 제 일인 듯 기쁘다. 회사 동료가 과거 고락을 함께했던 선후배를 불러 저녁 하자고 청했다. 옛 동료를 모아 식사하고, 좌중에 취기가 돌 때쯤 “딸이 신문사에 들어갔다”고 자리를 마련한 까닭을 설명했다. 후배 자식의 취업도 기쁘려니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다니 대견스럽다. 아이가 1998년 2월 유치원 졸업 무렵 만든 ‘우리 가족 신문’을 발견했다. ‘김대중과 이회창 명예총재 회동’이란 구절이 있다. 외환 위기를 맞아 김 당선자가 이 총재에게 초당적 협력을 당부한 뉴스를 베꼈을 것이다. 가족신문에 엉뚱한 정치 뉴스이건만 삐뚤빼뚤 쓴 ‘황○○ 기자’에 콧날이 시큰했다. 지금은 다른 길을 걷는 그 아이가 대학생 때 잡지 동아리에 들어간 적이 있다. 싫든 좋든 아비의 뒷모습을 보고 컸나 싶어 은근히 흐뭇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길섶에서] 한복/박홍기 수석논설위원

    경복궁 근처엔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많다. 친구들끼리, 연인들끼리 한복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도포에 갓을 쓴 총각, 한복에 댕기머리를 한 아가씨는 평범한 편이다. 기생처럼, 임금처럼 색다른 차림의 젊은이들도 눈에 띈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괜찮은 발상이다. 생활 속에서 접하는 개량 한복과는 다른 분위기다. 고궁과 아름다운 한복의 조화가 보기 좋다. 추석이나 설 때나 볼 수 있었던 한복이 관광 상품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유행일 수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한복에 대한 사랑 같아 좋다. 한복의 부활이다. 경복궁을 둘러보던 미국인 부부가 “한국의 예스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한복으로 단장한 젊은이들에게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고 말을 건넸다. 그리고 카메라를 보여 환하게 웃었다. 생각해 보니 한복을 언제 입어봤나 싶다. 결혼한 뒤 명절에 두세 번, 꽤 됐다. 장롱 속의 한복이 언제쯤 다시 빛을 볼 수 있을까. 장담하기 어렵다. 박홍기 수석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길/손성진 논설실장

    세상에는 수만 갈래의 길이 있다. 길은 곧 목적지와 연결된다. 목적지를 찾아 길을 떠나는 것이다. 그 길은 때로는 아스팔트처럼 평탄하기도 하고 비포장도로처럼 거칠기도 하다. 목적지가 분명해도 길을 잘못 들어 제대로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도착하는 곳은 완전히 다른 곳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의 길도 마찬가지다.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는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길을 가는 방법은 참 다르다. 평탄한 길만 잘 골라 요리조리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직하게 거친 길을 가는 사람도 있다. 어떤 길을 걸어가는 것은 인생을 사는 하나의 방식이다. 영어의 ‘웨이’(way·길)가 수단, 방식으로도 쓰이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구부러진 길, 이준관) 순탄한 길만이 길은 아니다. 구부러져도 마음이 바르면 바른길이다. 외롭고 힘들어도 흔들림 없이 가라.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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