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애먼 빚/황수정 논설위원

    씨알 고른 밭작물이나 태깔 좋은 푸성귀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야무지게 먹을 자신도 없으면서 번번이 사재기를 한다. 흙내 풍기며 오종종하게 들어앉은 게 보기 좋아 햇감자를 상자째 들였었다. 혼자 시들더니 기어이 시퍼런 싹눈들을 내놓는다. 싹눈 기세가 맹렬한 두어 알쯤은 유리컵에 관상용으로라도 옮겨 봐야겠다. 농사지은 것으로 헤픈 장난 할 일 없게 해야지, 해마다 마음먹고는 언제 그랬느냐며 까마귀 고기. 이번에는 풋콩이다. 손톱 밑이 푸르죽죽해지도록 완두콩 한 자루를 다 깠던 게 두어 달 전이다. 지난주에는 말도 안 되는 헐값이 딱해서 앞뒤 없이 또 데려오고 말았다. 꼬투리 좀 물렀기로서니 강낭콩 한 자루에 삼천원, 호랑이콩은 오천원. 아침저녁이며 땡볕에 사람 손이 백번은 갔을 텐데, 대체 어떻게 후려쳐 밭떼기로 뺏어 왔으면,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들. 구시렁대며 깐 콩이 두 됫박은 넘는다. 빚도 빚 나름이다. 석 달 열흘을 콩으로 밥해 먹어도 못다 먹게 생겼으니 먹을 빚. 낯도 모르는 콩밭 주인한테는 이 콩 다 먹도록 마음 빚. 세상에 이런 애먼 빚이 없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길섶에서] 자연 속의 삶/손성진 논설실장

    TV 방송을 잘 보는 편이 아닌데 가끔 눈길을 끄는 프로그램이 자연 속에서 혼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물이다. 해발 500m가 넘는 깊은 산속이나 외딴섬에서 나 홀로 자급자족하며 사는 사람들.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건강을 잃은 사람도 있고 사업에 실패한 이도 있고…. 그들의 삶을 보면서 어떻게 단 한 사람의 이웃도 없는 적막강산에서 혼자 살 수 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인간은 소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십중팔구 자연을 벗이나 배우자 삼아 산다고 대답했다. 오래전 퇴직한 한 동문 선배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자연 속에 묻혀 산다. 하와이 오지에 들어가서 직접 집을 짓고 땅을 일구어 꽃과 나무를 심어 기르고 있다. 다른 전직 고위 공무원은 퇴직 후 강원도 원주로 가서 초야에 묻혀 밭작물을 가꾸며 산다. 그들은 요즘 세상을 어지럽히는 수십, 수백억의 돈에도 관심이 없다. 텃밭에 땀 흘려 기른 채소 한 잎도 소중한 그들에게는 그런 욕심이 생기지도 않는 것 같다. 젊어서 권력과 금전을 탐했을지라도 자연을 가까이하며 비로소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선택과 취향/함혜리 기자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어느 학과로 진학할 것인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어떤 사람과 한평생을 보낼 것인가…. 그뿐인가.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는 것부터 극장 앞에서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쇼핑을 하면서는 이걸 고를까, 저걸 고를까 하며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커피 한 잔을 마시려 해도 골라야 할 게 너무 많다. 중요한 것부터 사소한 것까지 선택들이 모여서 삶이 이뤄지는 것이니 ‘아무거나’를 고를 수도 없다. 갈수록 선택할 일은 많아지고 그것 역시 현대인에게는 일종의 스트레스가 된다. 이사를 앞두고 내부 인테리어를 새로 하면서 그야말로 ‘선택 폭탄’을 맞았다.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면 되려니 했는데 직접 골라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문짝 디자인, 벽지와 타일 색깔, 변기와 세면대, 수도꼭지, 조명기구, 부엌싱크대 디자인까지 일일이 체크하고 골라야 한다. 수많은 선택지를 앞에 두고 고민하다 보면 멀미가 날 지경이다.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의 아파트에서 지금껏 살다 보니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 확인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더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선택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
  • [길섶에서] 포기/박홍기 논설위원

    출근하자마자 늘 그렇듯 메일을 열었다. 필요 없는 메일들을 지워 가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가 온다’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내용은 이렇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기도 했고, 천식 탓에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소년이 있었다. 가족들은 열 살을 넘기기 힘들 거로 생각했다. 열한 번째 생일이 찾아왔다. 온 가족의 축하 속에 소년은 기도하고 케이크의 촛불을 힘껏 불었다. 그러나 단 한 개만 꺼졌다. 소년은 실망해 울었다. 소년을 도와 촛불을 끈 아버지가 물었다. “무슨 소원 빌었니?” 울먹이며 대답했다. “내년 생일엔 혼자 촛불을 모두 끌 수 있게 해 달라고요.” 아버지는 꼭 안아 주며 말했다. “네가 가진 불편함은 단순한 장애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야. 선물의 의미를 잘 찾아낸다면 넌 오히려 장애 때문에 더욱 훌륭한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단다.” 소년은 말씀을 가슴에 항상 담아 놓고 날마다 걷기 운동을 하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소년은 훗날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했다. 바로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이야기지만 잊고 있었다. 수많은 고민과 질문에 대한 답은 ‘포기하지 않는 것’ 아닐까 싶다. 박홍기 논
  • [길섶에서] 늦은 변명/황수정 논설위원

    덥다, 덥다 아우성에도 어제오늘 새벽 기운은 어째 다르다. 절기만큼 신통한 위력이 없다고 믿으니 내 감각이 촉빠르게 아귀를 맞춘 건지 모르지만. 입술에 달라붙은 밥알도 귀찮던 삼복이 물러간 자리. 짜글짜글 끓어 봤자 정수리의 염천(炎天)이 한결 만만해진 것은 어쩔 수 없다. 벼랑 끝에 몰리면 사람 밑천 다 털린다. 무더위 기세 꺾일 일이 시간문제다 싶으니 제정신이 돌아온다. 폭염에 뺨 맞고 온 여름내 매미한테 화풀이. 뒤집어씌운 덤터기 말도 못 한다. 낮밤 없는 가마솥더위에 죽기로 덤비던 매미 떼창. 쇠톱 건너가는 목청에 뒷골 따갑다고 저놈, 말매미 참매미 죄다 쓸어안은 벚나무들 도매금으로 원망하며 저놈, 방충망에 달라붙어 새벽 풋잠 깨웠다고 저놈. 저 울음소리 청량하다는 옛글들은 무슨 수로 나왔나, 대체 그 붓끝 어찌 홀렸기에 저놈의 매미. 그랬던 매미 소리, 땡볕 성글어지기 무섭게 썰물처럼 쑥 빠진다. 타박하던 마음은 그새 변덕이다. 울며 불던 그 소리 벌써 아쉬워서. 매미 탓, 염천 탓. 여름 강을 나만 얼레벌레 빈손으로 건넜나. 마음만 저 혼자서 또 바쁘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길섶에서] 이위종이란 인물/오일만 논설위원

    휴가 기간 모처럼 찾은 마을 도서관.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에도 전기료 걱정(?) 없이 시원한 자료실을 어슬렁거리다가 문뜩 헤이그 밀사 사건이 눈에 들어왔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전후로 국권 회복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고종과 그의 밀사 3인의 활약을 훑어보다가 꽃미남을 무색하게 하는 이위종이란 인물에 눈길이 멈췄다. 이상설과 이준 열사의 행적은 그나마 알려졌지만 당시 20살에 불과했던 이위종은 역사 교과서에 이름 석 자만 남긴 인물이다. 하지만 그 이상이다. 인생 자체가 드라마였다. 구한말 영어와 프랑스어, 러시아어 3개어에 능통한 외교관이었고 후엔 프랑스 군사학교와 러시아 사관학교까지 졸업한 군인의 삶을 살았다. 러시아 10월 혁명에 뛰어든 풍운아로 조선 국경지대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33살 나이로 전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그의 항일 행적에 대한 연구는 미완의 상태다. 분단 상황에서 친일파가 득세한 까닭에 주류 역사학자들의 외면을 받은 탓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역사 저편에 묻혀 있는 항일 투사들의 삶을 복원하는 것, 이것이 역사 바로 세우기의 첫걸음이 아닐까.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말복과 월복/임창용 논설위원

    책상 위 달력을 보니 말복(末伏)이다. 입추(立秋)가 지난 지 한참인 듯한데 말복이라니. 그러고 보니 중복날 삼계탕을 먹은 지도 스무날이 지났다. 일년 중 가장 덥다는 삼복이 열흘 간격으로 있는 줄로만 알았던 터라 궁금증이 도진다. 세시풍속사전을 검색하면서 무지를 스스로 확인했다. 가을 문턱의 막바지 더위를 뜻하는 말복은 입추 뒤 첫 번째 경일(庚日)이다. 경일은 날짜를 한자로 표기할 때의 10간(干) 중 일곱 번째에 있다. 하지(夏至) 뒤 셋째, 넷째 경일인 초·중복과 달리 말복은 입추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이번처럼 달을 건너뛰는 경우가 흔하다. 이를 월복(越伏)이라고 한다. 말복은 입추가 10간 중 어느 날이냐에 따라 가장 빠를 때는 입추와 같은 날, 가장 늦을 때는 입추 9일 뒤에 온다. 이번 말복은 후자의 경우다. 올여름 폭염은 유별났다. 대부분의 지역이 더위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 7월은 기상 관측 이래 지구가 가장 뜨거웠던 달로 기록됐다. 유난히 늦어진 말복이 가을의 문턱을 막아섰기 때문일까. 그래도 말복은 왔고, 난 땀 흘리며 닭칼국수를 먹는다. 잔서(殘暑)를 처분한다는 처서(處暑)가 눈앞에 있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
  • [길섶에서] 민병산/손성진 논설실장

    한번 뵌 적이 있는 신경림 시인의 책을 읽다 우연히 잊어버렸던 ‘민병산’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1980년대에 매달 ‘월간바둑’을 구독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 자주 등장한 인물이 민병산(1928~1988)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민병산이라는 이름을 꺼낸 이유는 두 가지 배울 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으로 통하는 민병산은 방대한 독서량으로 ‘거리의 철학자’, ‘한국의 디오게네스’ 등으로 불렸다. 그가 남긴 ‘철학의 즐거움’이란 저작과 전기물, 수많은 글의 원천은 독서였다. 바둑을 좋아한, 서울 인사동과 관철동의 터줏대감으로 신동문, 신경림, 천상병 등과 교유하며 책을 놓지 않았던 그는 주변인들에게 익살과 지식을 선물로 줬다. 민병산은 또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를 실천한 자유인이었다. 아버지가 1000평의 저택에 살던 부호였지만 귀공자의 삶을 포기하고 평생 직업도 갖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회갑 잔치를 열어 주겠다던 지인들의 뜻을 한사코 거부하던 그는 회갑 하루 전날 월세 단칸방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의 글을 구해 읽어 보고 욕심을 버린 삶도 되새겨 봐야겠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치매 소동/박홍기 논설위원

    시골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 치매 증세 있으시단다.” 목소리에서 기운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셨다. 80이 넘으셨지만 자식들보다 근력도 세신 데다 말 그대로 건강하신 아버지셨다. 다만 작은 소리를 듣는데 약간 지장이 있을 뿐 치매기라고는…. 아버지는 별 말씀이 없으셨다. 서울로 모셔 와 대학 병원을 찾았다. 치매 검사를 처음부터 다시 받았다. 기억력 테스트까지 세세하게 진행됐다. 한 시간쯤 지나 의사가 진단 결과를 설명했다. “연세에 따라 치매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는데 현재로선 정상입니다.” 긴장하신 까닭에 그다지 밝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표정이 그제서야 펴졌다. 안도하셨다. 의사는 이어 “연세도 있으시니 정밀검사를 한번 받아 보시는 것도…”, 말을 다 끝맺지 않았다. “네, 그러겠습니다.” 아버지가 “괜찮다”며 만류하셨다. 진료 수속을 밟았다. 검사비가 만만찮았다. 의사의 ‘정중하게 계산된’ 권유를 거부할 수 있는 자식이 있을까. 정밀검사 역시 모두 정상이었다. “치매 대가 비싸게 치렀다. 그렇지.” 그리고 아버지가 웃으셨다. 개운했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노화 방지 화장품/구본영 논설고문

    며칠 전 영화표를 예매해 놓고 빈 시간에 화장품 가게에 들렀다. 유명 중저가 브랜드 매장이었다. 종업원 아가씨가 권하는 로션을 사려다가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조금 놀랐다. 안티 에이징(노화 방지) 화장품이라 그렇다는 친절한 설명도 들었다. 평소 실제 나이보다는 덜 들어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다 빈말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능성 화장품을 구입해야 할 만큼 이마에 새겨진 주름이 깊어진 현실에 살짝 우울해졌다. 그러나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보면서 다소 위안을 얻었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이상을 포기하는 건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명언을 접하면서다. 영화에서 맥아더로 분한 할리우드 스타 리엄 니슨이 악천후 등으로 상륙작전이 어려움에 부닥치면서 참모들 모두가 불안해했을 때 읊조린 명대사였다. 하긴 누군들 흐르는 세월을 붙잡을 수 있겠는가. 기능성 화장품이 잠시 피부의 주름을 감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문득 청춘 시절 애송하던 새뮤얼 울만의 시구가 떠오른다. 즉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80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는.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착각은 자유/황수정 논설위원

    열흘 넘게 비운 집 안은 내 집 같지 않다. 눈길 가는 곳마다 불청객들이다. 베란다 회벽 모서리 구석구석에 실타래 같은 거미줄이 진을 쳤다. 제 맘대로 집을 짓고는 한가하게 출타한 거미 녀석, 투망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고 늘어지게 낮잠 자는 고약한 놈. 열탕의 빈집에는 어쩌자고 터를 잡았는지. 발 달린 것이나 앉은뱅이 잡풀이나 빈집의 주인 행세는 마찬가지다. 벤자민 화분이 흙마당인 줄 알았던 모양. 민들레 한 포기가 손가락 서너 마디만큼 자라 낭창낭창 허리를 비틀고 섰다. 그 배짱을 헤아려 주면 사나흘 안에 꽃봉오리까지 내처 벙글겠다는 기세다. 몇 번을 꼭꼭 단속했는데 창문 어느 틈새로 풀씨는 비집어 들었을까. 사람 온기 없으면 집 안이 거칠어진다는 말은 말짱 착각일지 모른다. 집 안 숨은 동반자들에게는 내 들숨 날숨이 모골송연 냉기였겠다는 생각. 거북이 잠든 어항 옆을 발꿈치 들고 지나야겠다는 생각. 꽃을 지나 홀씨 되도록 민들레를 잠자코 두고 보겠다는 생각. 바람 소슬해질 어느 아침, 홀씨 깃털 떠나기 좋게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기로 하고. 쩨쩨하게 닫아건 내 창문을 열게 하는 힘, 사람 아닌 민들레.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길섶에서] 방역차의 추억/오일만 논설위원

    피서지에서 생긴 일이다. 태안반도 영목항에서 배를 타고 원산도로 들어갔다. 뜨거운 태양 아래 환송(?) 나온 갈매기들과 희롱하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저녁 무렵 낙조가 제법 장엄해지고 지평선 너머로 분홍빛 구름이 장관을 이룬다. 방파제 쪽에서 원투 낚시를 던지며 이제나저제나 입질을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해수욕장 근처 펜션 근처부터 하얀 연기가 쏟아지면서 메케한 냄새가 퍼져 나갔다. 어릴 때 방귀차로 부르며 쫓아다녔던 연막 소독차가 나타난 것이다. 순간적으로 40년 전의 초등학교 시절로 시곗바늘이 돌아갔다. 이 방귀차가 동네에 출몰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환호를 지르며 무작정 꽁무니를 쫓아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 우리들의 놀이기구 역할을 했던 방역차를 보면서 옛 추억에 젖는 기회가 됐다. 그런데 주위의 반응이 이상했다. 젊은이들의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연막 소독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보도가 떠올랐다. 한 젊은 엄마는 아이의 코를 감싸고 급히 실내로 피하기도 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구나…. 방역 연기 속에 휩싸인 채 시대 변화를 절감했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스테이케이션’/구본영 논설고문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떠나라.’ 오래전에 나온, 휴가 여행을 감성적으로 권하던 광고 문구다. 하지만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 또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생활의 법칙이다. 지난 주말 모처럼 차를 몰고 나들이에 나섰다가 이를 실감했다. 고속도로 하행선은 휴가를 떠나는 차량들로 이미 미어지고 있었고, ‘거북이 행렬’이 이어지자 안 그래도 삼복더위에 지친 가족들이 슬슬 짜증을 내면서다. 한나절 도로 위에서 생고생을 하다 돌아와 잡지를 뒤적이다 무릎을 쳤다. ‘머물다’(스테이)와 ‘휴가’(베이케이션)를 합성한 ‘스테이케이션’이란 단어를 발견하고서다. 멀리 나가지 않고 집이나 근방에서 독서나 영화감상 등으로 휴가를 즐기는 것을 뜻한다. 국내외 멋진 관광지에서의 바캉스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다소 위안이 되는 신조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밀린 일에 치여 짬을 내기 쉽지 않아서 그러든 말이다. 하긴 철학자 파스칼도 “인간의 모든 불행은 고요한 방에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고 했다. 그의 저서 ‘팡세’에서였다. 역시 위안 삼을 만한 경구가 아닐 수 없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달맞이꽃/이경형 주필

    여름 새벽 안개가 개펄을 더욱 윤기 나게 한다. 한강 하구 공릉천 초입의 수문 다리를 건넜다. 제방 오른쪽 비탈엔 달맞이꽃이 여기저기 무리 지어 피어 있다. 초록 바탕색의 캔버스에 수많은 노란 점들이 은하수처럼 흩뿌려져 있는 것 같다. 달맞이꽃은 밤의 꽃이다. 해가 지면 피어나기 시작해 다음날 해가 뜨면 꽃잎을 오므리고 시든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노란 꽃잎들은 아침 이슬을 머금은 채,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몇 년째 산책하는 길이라 달맞이꽃들의 사계절을 잘 알고 있다. 이른 봄엔 잎들이 땅바닥에 방석처럼 납작 엎드려 있고, 5월엔 키가 무릎까지 훌쩍 큰다. 늦가을이 되면 마른 줄기가 나무처럼 딱딱해지면서 아름다운 곡선을 이룬다. 한여름 밤 달맞이꽃들이 만개한 들길을 혼자 걸었던 기억이 있다. 달은 하늘 높이 떠 구름 사이사이를 헤집고 빨리 가고 있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데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듯이 무작정 걸었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적막감이 밀물처럼 덮쳤다. 달맞이꽃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지. 야래향(夜來香)이라고도 불리는 달맞이꽃의 꽃말이 기다림인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경형 주필 khlee@seoul.co.kr
  • [길섶에서] 폭염 단상/손성진 논설실장

    24절기도 환경의 변화에 맞게 바꿔야 할 모양이다. 폭염의 한복판에 있는데 가을로 접어든다는 입추(立秋)가 지나갔으니 말이다. 이러다간 ‘모기도 입이 삐뚤어지고 풀도 울며 돌아간다’는 다음 절기 처서(處署)까지도 더위가 기세를 떨칠지 모르겠다. 절기에 거의 틀리지 않게 날씨가 변해 갔으므로 그리 오래전도 아닌 예전에는 땡볕 더위도 즐겼었다. 땀 흘리고 나면 금세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복더위조차 감내했던 게다. 대청마루에 눕거나 느티나무 아래에서 장기판을 마주하고 있으면 더위 걱정은 할 것 없던 시골이나 변두리 풍경이었다. 이젠 더위도 언제 끝날지 모르니 마음이 답답해서 더 더운 듯하다. 사실 열이란 몸 밖에서도 받지만 몸 안에서도 나온다. 마음을 잘 다스리면 더위도 쉬 견딜 수 있을 듯하다. 덥다 덥다 하면 더 더울 것 아니겠는가. 이열치열(以熱治熱)이란 말은 과학적 근거가 있지만 그보다 마음가짐을 말한 것일 게다. 덥다고 시원한 곳만 찾지 말고 “이런 더위쯤이야”라며 뜨거운 음식을 먹으며 맞서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다 보면 더위도 곧 지나갈 터이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8월의 라일락/강동형 논설위원

    서울광장과 청계천광장 중간쯤에 최근 조성된 ‘서울마당’에 라일락이 하얀 꽃망울을 터트렸다. 한두 그루가 아니라 10여 그루가 폭염을 이겨내고 은은한 꽃향기를 자랑한다. 공사 전에도 이곳은 봄이 오면 라일락 향기가 가득했다. 서울마당을 단장하면서 10여 그루를 추가로 심었다. 꽃을 피운 건 새로 심은 라일락이다. 철모르고 피어난 라일락 꽃을 보면서 한마디씩 거든다. ‘결핍 상태의 화초에 자양분이 공급됐을 때 나타나는 현상’ ‘기상 이변에 따른 생육 주기의 교란’ ‘번식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 등 다양한 해석을 내놓지만 원인은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결핍 상태의 화초에 자양분이 공급됐을 때 나타나는 현상’에 손을 들어 주고 싶다. 우리 집 옥상에 자라는 인동초가 봄에 이어 최근 꽃을 피웠다. 예년에 비해 물을 자주 준 것 외에는 달리 한 게 없다. 영양 결핍으로 개회 시기를 늦추다 정성 어린 자양분을 받아 피어났을 것이라 추론한다. 정성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한다고 하지 않나. 못나고 부족해도 정성을 다하면 언젠가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먹음직한 열매를 맺는 게 자연의 섭리 아니겠는가.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길섶에서] 비상구/박홍기 논설위원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 나오는 화면이 있다. 보지 않을 수 없다. 광고도, 예고편도 아닌 안전 대피 요령이다. 귀여운 캐릭터가 현재의 위치는 물론 비상구 위치, 비상구까지 가는 방법 등을 자세히 알려준다. 끝나면 곧바로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비상구 안내는 금세 잊혀진다. 미국에서 잠시 머물 때다. 아파트 계약이 끝나자 관리인이 비상구, 이웃과의 비상용 칸막이, 소화기 위치와 사용법 등을 직접 보여주며 설명했다. 다행스럽게도 쓸 일이 전혀 없었다. 한때 외부 주요 회의에서는 비상구 안내가 있었다. ‘회의장에 두 개의 문이 있고, 문의 왼쪽으로 돌면 비상구로 이어져 있습니다.’ 설명하는 쪽도 쑥스러워했다. 단 한번도 수순에 넣었던 적이 없던 탓일 게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의 일이다. 그러나 얼마 못 갔다. 언제랄 것도 없이 슬그머니 없어졌다. 안전해져서일까. 비상구, 평상시에는 안중에도 없다. 비상 상황이 닥쳐야만 한 번쯤 생각할 법하다. 하루 종일 머무는 회사, 삶의 공간인 아파트의 비상구를 알아 두려고 신경 써 본 적이 있었는가. 글쎄다. 유비(有備)면 무환(無患)이라는데.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이른 출근길/임창용 논설위원

    지난봄부터 출근 시간을 한 시간 정도 당겼다. 시작은 딸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 후 올해 처음으로 잡은 직장에 데려다주기 위해서다. 성남의 집에서 여섯 시 반쯤 출발해 딸을 중간에 내려 주고 회사 주차장에 도착하면 일곱 시 반이다. 그때부터 한시간 정도 회사 옆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한다. 예전에도 회원 등록은 해 놓았지만 시간 내기가 어려워 돈만 낭비했었다. 그러나 아침부터 약속이 있을 리 없으니 웬만해선 운동을 빼먹지 않는다. 출근은 업무 시간에 맞춰서 해야 하는 걸로 생각했다. 일찍 나오면 왠지 손해 볼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한데 막상 해 보니 이점이 적지 않다. 우선 시간 이득. 길이 시원하게 뚫리니 집에서 한시간 뒤에 나오는 것보다 20분 정도 덜 걸린다. 건강도 좋아졌다. 운동을 거르지 않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가장 큰 이득은 딸과 오붓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30분씩이나. 딸이 말수가 많지 않아선지 출근길의 몇 마디 대화가 참 귀하다. 예전엔 새벽에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동정하곤 했다. ‘고되게 산다’면서 말이다. 직접 동참하고 보니 자발적 ‘얼리버드’가 제법 많다. 섣부른 예단의 어리석음을 새삼 깨닫는다. 임창용 논설위원
  • [길섶에서] 우정/손성진 논설실장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의지할 데가 없다는 기사를 보고 든 감정은 서글픔이었다. 내가 과연 그런 상황일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친구나 지인은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깝다고 할 친구가 꽤 많지만 진정으로 나의 어려움까지 받아 줄 친구라고 한정하면 손가락을 꼽기가 어려울 것 같다. 40년 넘게 우정을 이어 오고 있는 지방의 죽마고우는 첫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그다음은? 확신이 없다. 사회인으로서 교류하는 지인들은 그저 스쳐 가는 인연이라는 생각을 하면 씁쓸할 뿐이다. 그들은 그저 나의 지위 때문에 만날 뿐인 것이다. 몇 년 전 어느 직책에 있다가 자리를 옮기던 당일 전화를 몇 통 받았다. “오늘 저희와의 약속은 취소하겠습니다.” 나를 만나려던 게 아니라 나의 직책을 만나려 했던 것이다. 자리를 내놓으면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기는 정치인들도 같은 일을 겪을까. 사람과의 만남, 관계에서는 진심이 그만큼 중요하다. 전화번호부에 1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있지만 진심이 통하는 사람은 그중 몇이나 될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무궁화/박홍기 논설위원

    “할머니, 저기 꽃.” “무궁화.” 꼬마의 눈에 초록이 짙은 한여름에 핀 꽃들이 신기했던가 보다. 아파트 뒤쪽 나무들 사이에 무궁화가 활짝 피어 있었다. 할머니가 “우리나라 꽃”이라고 다시 말했다. 네댓 살 된 듯한 손자는 무슨 의미인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무궁화 가까이 가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발길을 옮겼다. 비교적 오래된 아파트인 까닭에 나무와 꽃이 제법 많다. 봄에는 큼지막한 벚나무들이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울타리에 늘어진 개나리도 봄의 전령 역할을 톡톡히 할 정도다. 곳곳에 많지는 않지만 목련, 철쭉도 한몫한다. 가을에는 역시 국화와 코스모스다. 꼬마에게 별다른 꽃이 없는 한여름에 무궁화는 대단한 발견이었을 것 같다. 무궁화는 주변에 흔하지는 않다. 여름에서 늦가을까지 피고 지고 새로 피기를 계속하지만 쉽게 볼 수 없다. 잎은 세 갈래로 갈라져 어긋나 있다. 다섯 장의 꽃잎은 서로 반쯤 겹쳐져 작은 주먹만 한 꽃을 피운다. 분홍 꽃잎, 흰 꽃잎 안쪽 가운데 생기는 붉은색 무늬에 따라 홍단심(紅丹心), 백(白)단심이라 부른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무궁화. 꼬마처럼 다가가 유심히 봤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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