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전문가와 초보자/서동철 논설위원

    묵혀 두었던 시골집 텃밭에 지난봄 이것저것 심었다. 거름 기운 없는 땅에 잡초도 내버려 두었으니 작물의 생장 환경은 최악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상추와 쑥갓은 먹을 만큼 자라 여름 내내 쌈채소는 풍성했다. 고추와 토마토도 부실하기는 해도 웬만큼 열려 주어 따먹는 재미가 그런대로 쏠쏠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성공을 거둔 것 아니냐는 뿌듯함은 내 기분일 뿐이었다. 옆집 아주머니는 종종 “우리 먹을 것 따는 김에 같이 땄다”며 고추며 깻잎을 바가지째 내밀었다. 그 손짓에는 “엉터리로 농사를 지어 제대로 열린 것이 없으니 이거라도 먹어 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바가지 속은 건강하고 탐스러웠다. 팔지 못할 것들만 달려 있는 우리 ‘고추나무’가 한심했을 것이다. 상추와 쑥갓을 캐낸 자리에 배추 모종을 심은 것이 한 달이 조금 넘었다. 배추는 생각보다 빨리 자라고 있다. 그런데 옆집 아저씨는 배추 포기를 바라보면서도 “이젠 더 먹을 게 없네” 하는 것이었다. 전문가의 눈에는 배추도 실패작이었다. 벌레 먹어 구멍이 뚫린 데가 지천이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저 배추가 김장김치가 되어 있을 생각을 하면 흐뭇하기만 하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
  • [길섶에서] 밤 따기/임창용 논설위원

    집 앞에 나지막한 산이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 아카시아 나무들이 섞여 제법 우거져 있다. 요즘 산책을 할 때 눈길을 끄는 것은 드문드문 섞여 있는 밤나무들이다. 돌쟁이 주먹만 한 밤송이들이 벌어질 듯하다. 막대기로 몇 번 치니 툭 떨어진다. 반쯤 여문 알밤을 까서 깨물어 본다. 풋풋한 단내와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내게 이맘때의 밤 따기는 빼먹을 수 없는 놀이였다. 매년 한두 번은 꼭 친구들과 어울려 ‘밤골’로 몰려갔다. 준비물은 긴 장대와 뾰족하게 깎은 막대기가 전부. 막대기는 밤송이를 깔 때 쓴다. 가시에 찔리는 것도 모르고 놀며 따며 먹으며 한나절을 보내다 보면 두어 됫박 분량의 밤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린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양 밤 봉지를 들고 집으로 향하곤 했다. 간혹 아내가 밤을 사다가 쪄서 내놓는다. 어릴 적 생각을 하며 먹어 보지만 왠지 맛이 심심하다. 밤 맛이 원래 이랬던가? 생각해 보니 그 시절 먹던 밤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던 듯싶다. 노동과 놀이의 결과물이었으니 맛도 각별할 수밖에. 내년엔 시골 친구들과 작당해 밤 따기에 나서 봐야겠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길섶에서] 안주/박홍기 논설위원

    얼마 전 대학가 먹자골목을 찾았을 때 일이다. 동료들이 한잔하는 데 뒤늦게 합류했다. 식당과 주점이 즐비한 골목은 젊은이들로 붐볐다. 부딪치지 않게 신경써서 걸어야 할 판이었다. 주점에 들어서자 동료들이 손을 들어 반겨 맞았다. 이미 불그스레했다. 피조개 구이를 시켰다. 술잔을 주고받던 중 안주가 나왔다. 피조개와 치즈를 버무렸는지 먹음직스러웠다. 술을 들이켠 뒤 안주에 젓가락을 댔다.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집히는 조개가 없어서다. 종업원에게 “피조개 구이가 맞냐”고 묻자 곧바로 “네”라는 답이 돌아왔다. 확인을 요구하자 잘게 썰어진 조개를 몇 개 골라냈다. 주인이 오더니 “계산에서 빼드리겠습니다”라고 하더니 안주를 가져갔다. 미안하다는 사과도 없이. 당황한 쪽은 주점이 아니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황 끝이다. “그래서 아저씨.” 주점 사건을 들은 젊은 후배의 반응이다. “그런 사람에겐 그런 식으로 대하지 않지요, 휴대전화 카메라는 어디에 쓰세요.” 먼저 사진을 찍은 뒤 따지다 해결이 안 되면 SNS에 올려 버린단다. 신뢰를 깬 쪽이 주점이니 딱히 할 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쿨하다. 이런 것도 세대 차이일까.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
  • [길섶에서] 산다래의 참맛/강동형 논설위원

    경기도 가평에서 손수 기른 상추 등 각종 채소를 택배로 보내 주시는 고마운 분이 있다. 그분이 서울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하기에 잠시 들렀는데 오랜만에 마주한 그의 작품들이 놀랍다. 소나무 몸통은 꿈틀거리는 듯하고 솔잎에서는 진한 솔향기가 느껴진다. 작품 하나하나에 칠순을 넘긴 노작가의 노고가 깊게 배어 있었다. 유난히도 더웠던 올여름 전시회를 찾아간 데 대한 보답이었을까. 얼마 전 전달해 줄 게 있다며 회사 앞에서 잠시 보자고 했다. 그는 만나자마자 집에 가져가 냉장고에 넣어 두고 맛을 보라며 우체국 택배 상자를 내민다. 자신이 직접 산에서 딴 산다래라며 씻으면 빨리 상한다고 해서 그대로 가져왔으니 이해해 달라며 총총히 사라졌다. 우체국 택배 상자에 다래를 담은 걸 보면 택배로 부치려다 상할까 봐 직접 들고 온 게 분명했다. 어린 시절 익지도 않은 산다래를 따 먹고 낭패를 본 기억은 있지만 제대로 익은 산다래의 맛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산다래의 맛은 참다래와 비슷했다. 그러나 참다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깊고 신선한 맛이 느껴졌다. 노작가의 수고와 정성이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길섶에서] 뜨거운 마음/손성진 논설실장

    한 줄 시를 읽고 감동해 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당신은 마음이 뜨거운 사람일 것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를 읽고 자문해 보라. 삭막한 세상에서 덩달아 냉담한 가슴으로 살고 있지 않은지. 꺼져 가는 마음속 불씨를 살리려 간혹 시를 읽는다. 박인환의 시와 삶에 빠져든 적이 있다. 얼마 전에는 함형수 시인의 ‘해바라기의 비명’이란 시를 접했다. 처음 본 시인데 알고 보니 교과서에 수록된 유명한 시다.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고 박용래 시인의 시집을 한 권 샀다. 이유는 단 하나. ‘울보 시인’이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눈발만 보고도 금세 눈물을 보인 시인이다. 세상을 비관하거나 좌절해서 운 게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여서 운 것이다. 마음이 뜨거워서 운 것이다. 시를 읽으며 그의 뜨거운 마음을 느껴 봐야겠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가을과 책/구본영 논설고문

    ‘여섯 다리만 건너면 지구 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이’라는 건 서구 사회에서 꽤 오래된 통념이다. 인간 관계에서 몇 단계만 거치면 서로 연결돼 있다는 말이다. 이는 이른바 ‘작은 세상 네트워크’ 개념과도 통한다. 사실 물리적 공간보다 시간과 거리를 줄일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은 효율적인 ‘작은 세상’이다. 몇 번의 클릭으로 온갖 정보와 지구 반대편의 사람까지 접할 수 있으니…. 종이 책이 과거보다 덜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며칠 전 친구 몇 명과 만날 때 이를 실감했다. 언론계를 떠나 사업을 하는 친구가 책을 내 축하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출판사를 운영하는 다른 친구가 ‘비보’부터 전했다. 갈수록 베스트셀러, 즉 ‘대박’의 규모도 작아지고, 오래 팔리는 스테디셀러의 주기도 짧아진다는 업계의 우울한 동향이었다. 하긴 필요한 정보를 재빨리 찾아내는 데는 웹서핑이 제격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행간의 숨은 뜻’까지 읽을 수 있는 ‘성찰의 공간’은 아니란 말이 있다. 어느새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활자로 된 텍스트 정보를 담은 책을 통해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를 찬찬히 숙성시키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가을과 책/구본영 논설고문

    ‘여섯 다리만 건너면 지구 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이’라는 건 서구 사회에서 꽤 오래된 통념이다. 인간 관계에서 몇 단계만 거치면 서로 연결돼 있다는 말이다. 이는 이른바 ‘작은 세상 네트워크’ 개념과도 통한다. 사실 물리적 공간보다 시간과 거리를 줄일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은 효율적인 ‘작은 세상’이다. 몇 번의 클릭으로 온갖 정보와 지구 반대편의 사람까지 접할 수 있으니…. 종이 책이 과거보다 덜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며칠 전 친구 몇 명과 만날 때 이를 실감했다. 언론계를 떠나 사업을 하는 친구가 책을 내 축하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출판사를 운영하는 다른 친구가 ‘비보’부터 전했다. 갈수록 베스트셀러, 즉 ‘대박’의 규모도 작아지고, 오래 팔리는 스테디셀러의 주기도 짧아진다는 업계의 우울한 동향이었다. 하긴 필요한 정보를 재빨리 찾아내는 데는 웹서핑이 제격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행간의 숨은 뜻’까지 읽을 수 있는 ‘성찰의 공간’은 아니란 말이 있다. 어느새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활자로 된 텍스트 정보를 담은 책을 통해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를 찬찬히 숙성시키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토란/이경형 주필

    전날 비가 억수같이 왔지만 개천절은 청명했다. 아침에 토란을 캤다. 먼저 낫으로 토란대를 베어 잎을 제거하고 가지런히 통에 담았다. 토란 그루터기를 삽으로 파헤쳤다. 토란의 씨알이 잘고 달린 것들도 적었다. 금년이 워낙 가물어 물기를 좋아하는 토란에게는 힘든 나날이었을 것이다. 토란대는 손질이 많이 가야 제값을 한다. 칼로 일일이 겉껍질을 벗겨 내고 삶은 뒤 말려서 보관한다. 맛있는 육개장에는 반드시 토란대가 들어가야 제맛을 낸다. 토란 뿌리에 혹처럼 달려 있는 토란을 떼어 낼 때마다 ‘똑’ ‘똑’ 하는 소리가 귀가하는 농부보다 앞장서서 걷는 소의 요령 소리처럼 청아하다. ‘알토란 같다’는 말이 있다. 옹골차고 군더더기가 없다는 뜻이다. 토란의 잔뿌리를 없애고 껍질을 벗긴 것이 ‘알토란’이다. 어떤 사람은 미끈미끈하고 아린 맛이 있는 토란을 먹기 싫어하기도 한다. 사실 토란국을 끓일 때도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아린 맛을 없애기 위해 먼저 알토란을 살짝 끓여 물로 부셔 낸 뒤 다시 얇게 저민 소고기와 두부를 넣고 끓이는데 여기에 들깻가루를 넣으면 돌아가신 장모님의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이경형 주필 khlee@seoul.co.kr
  • [길섶에서] 아파트 감나무/오일만 논설위원

    아파트 입구에 제법 튼실한 감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띈다. 올해는 유독 무더운 여름을 겪어선지 감나무에 매달린 열매들이 제법 씨알이 굵어 보인다. 밑동부터 올라오는 붉은 기운이 며칠 새 짙어지면서 가을 운치를 더해 준다. 감이 익어 갈수록 커지는 새들의 울음소리 역시 결실의 계절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알리는 듯하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르신들은 익은 감들을 거둬들이면서 나무 꼭대기 근처는 늘 남겨 두곤 했다. 새들의 먹이가 되는 일명 ‘까치밥’이다. 자연의 결실을 누리면서도 다른 생명들을 배려하는 자연 친화적 인생관이 아니겠는가. 배고프고 힘든 인생살이지만 더 어려운 이웃을 챙기는 마음 씀씀이 역시 까치밥의 의미와 통한다. 모든 세상사 기준이 돈으로 변하면서 우리네 정신세계는 더 초라해지고 있다. 내면의 품격보다 눈에 보이는 재산이 평가의 잣대가 된 지 오래다. 가질수록 더 가지려는 욕망이 앞서지만, 걱정에 찌든 인생은 만족을 모른다. 조금 적게 가지더라도 까치밥을 남기는 그 여유가 그립다. 정신의 여백이 커질수록 더 행복하지 않을까. 나만의 착각인가. 감나무 아래서 느낀 단상이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나의 오솔길/황수정 논설위원

    타고나기를 길눈이 어둡다. 내비게이션을 무시하는 버릇은 오히려 그런 탓이다. 기계한테 기대 버릇했다가는 평생 길치로 살까봐서다. 차를 몰아 한 시간이 걸리는 출근길을 다니는 길만 고집하기를 몇 년째. 미련하다는 핀잔을 듣다 못해 내비게이션을 켜봤다. 그 재미는 며칠을 못 갔다. 나흘째 아침에도 기계는 콩 놔라 팥 놔라. 그러든 말든 나도 모르게 차는 다녔던 길로 접어들었다. 몸에 끼는 정장 대신 고무줄 바지를 입었을 때의 평온. 고집으로 다니는 길에는 지붕 낮은 집들이 아직 버티고 있다. 마당 너머로 텃밭들을 내놓고는 철철이 다른 풋것들을 심고 뽑는다. 녹슨 대문집 할머니는 어제 집앞의 빼빼 마른 배나무를 손봤고. 전봇대 옆집 아주머니는 이슬을 털고 배추를 솎았고. 동네사람들을 나 혼자서만 오래 사귀고 있다. 아스팔트가 덮치지 않은 길켠에는 팔만 뻗으면 잡히는 생명들이 많다. 고개 꺾은 강아지풀, 어느 집에서 옮겨 심었을 과꽃. 세상이 한입으로 외쳐도 누군가에겐 정답 아닌 것이 있다. 아침마다 마음의 비늘을 세워주는 영양제. 나만의 오솔길은 내비게이션에 없다. 아무도 모른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길섶에서] 시인의 선물/박홍환 논설위원

    술친구 시인에게서 신작 시집을 받았다. ‘죽은 사회의 시인들’. 19세기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가 언급하고, 영화로 제작돼 큰 반향을 일으켰던 ‘죽은 시인의 사회’의 패러디다. 온갖 역경을 홀로 헤쳐 가며 오늘을 일군 그를 잘 알기에 한 편, 한 편 소중하게 눈과 머릿속에 담았다. 이철경 시인. 가족의 해체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강원도 산골짜기의 고아원에서 보냈다고 한다. 지금 그는 홀로 두 딸을 키운다. 슬픔, 분노, 가난, 고독…. 상처뿐인 생이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는다. 아니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는 ‘죽은 사회’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시인이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시를 음미하다 보면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솟는 경험을 하게 된다. 촌철살인의 시어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억지로 외면했던 현실을 다시금 펼쳐보여 주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놓쳐선 안 되는 가치들도 일깨워 준다. 백수의 일상, 권고사직, 갑의 눈빛, CATV 기사 꿈, 잊지 말아 주세요, 자살 권하는 사회…. 이 시인의 이번 시집에도 현실을 일깨워 주는 시제(詩題)들이 즐비하다. 억만금의 가치를 선물해 준 이 시인이 고맙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
  • [길섶에서] 자기관리법/최광숙 논설위원

    한 전직 장관이 옛 경제기획원 사무관 시절 모시던 국장과 나눈 대화다. “○○에서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돌려보내.” “국장님 드리려고 산 것은 아니고 그 회사 직원들에게 나눠 준 기념품이랍니다.” “내가 그 회사 직원 아니잖아.” 기념품이래 봐야 휴대용 가스버너인 것을 국장은 정색을 하며 뿌린친 것이다. 그 국장은 당시 해외 출장비 가운데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여비마저 남겨 와 총무과에서 회계 처리에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그런 국장 밑에서 일한 그 사무관이 훗날 장관 후보자로 인사청문회에 섰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올 사람 없다는 청문회에서 투기, 병역의혹, 위장전입, 교통법규 위반도 한 건 나오지 않았다. ‘무결점’이다 보니 “일생을 청백리로 살았다”는 칭찬이 나올 법도 했다. 얼마 전 그가 “그동안 ‘모든 것은 그렇게 시작한다. 작은 기념품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밥 먹고, 술 먹고, 그러다가 돈이 오가며 사달이 난다’는 그 국장의 말을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공직 사회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지만 그 법이 없던 시절에도 ‘청백리’(淸白吏)들의 마음속에는 더 무서운 ‘자기관리법’이 있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
  • [길섶에서] 새벽잠/임창용 논설위원

    알람을 맞춰 놓지 않아도 새벽 6시 전에 눈을 뜬다. 아마 쉰을 넘긴 뒤부터인 것 같다. 더 자려 노력해 보지만 쉽지 않다. 뒤척이다가 출근 준비를 한다. 조금만 일찍 일어나도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던 때가 언제였나 싶다. 새벽잠이 준 대신 초저녁잠은 늘었다. 열시만 넘으면 슬슬 눈이 감긴다. 수년 전 미국 연수 시절에도 그랬다. 소도시에서 딱히 밤에 놀거리가 없던 터라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했다. 나이가 들면 잠이 준다. 노화 현상의 하나로 보는 의사도 있다. 특히 새벽잠이 없어진다. 직장을 은퇴하면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어찌 보면 바쁜 도시의 삶을 졸업하고 자연의 삶으로 돌아가는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 농부들은 새벽에 일어나 일하고 일찍 잠들지 않았던가. 지금도 미국이나 북유럽에선 도심만 벗어나면 사람들이 대체로 일찍 잠을 청한다. 초등학교 시절 새벽에 자주 깼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과 한방을 쓰던 때였다. 두 분은 막내아들이 깰까 봐 목소리를 낮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40년이 흐른 지금, 새벽마다 깨 아내와 이야기하는 상황이 어찌 그리 똑같은지. 슬며시 웃음이 난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
  • [길섶에서] 책 주인께 드리는 글(2)/송한수 기자

    ‘엄마, 생신 축하드려요. 오늘 제가 막 막말을 하고, 신경 끄라고 얘기한 거 진심 아닌 거 아시죠?’ 표지를 젖히자 곧바로 이런 글이 눈에 들어온다. 책엔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라는 제목이 달렸다. 이어 “모의고사 점수 낮아서 죄송해요”라고 속삭인다. 각오를 ‘성적’으로 다진다. 중간고사 땐 등수를 올리겠단다. 날씨가 제법 차가워졌다. 바람도 살짝 불었다. 길가 나무들이 간간이 몸부림을 치며 잎비를 흩뿌리곤 한다. 나도 덩달아 떨며 걷다가 아차 싶었다. 잊고 있던 책을 가방에서 꺼냈다. 손글씨가 퍽 가지런하다. 그 마음씨를 읽을 수 있다. 공무원 ‘재활용 장터’에서 건진 책이다. 아들에게서 선물을 받았던 엄마가 내놓은 게 틀림없다. 자식 사랑을 곱씹으며 읽고 또 읽었으리라. 손때가 짙다. 차오르는 슬픔을, 눈물을 꾹꾹 눌러 삼켰으리라. 어머니는 그렇다. 책에선 몇 군데 땜질하듯 ‘화이트’로 덧칠했다. 그리고 다시 적었다. 어떻게 마음을 전할까. 울 엄마를 어떤 말로 달랠 수 있을까. 가슴 깊숙이 생채기가 덧났을 어머니를. 밤을 새하얗게 지웠을지도 모른다. 후회로 볼펜 끝을 깨물며. 자식은 그렇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길섶에서] 가을/서동철 논설위원

    친구들은 그게 자랑이라도 되느냐고 핀잔을 주겠지만,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이후 지금까지 생활기록부나 건강기록부에 줄곧 ‘비만’이라고 적혀 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30년 동안 같은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건강의 증거라고 강변하며 위안을 삼아 왔다. 그런데 몇 년 전에는 멀쩡하게 잘 입고 다니던 옷들이 요즘 잘 맞지 않는다. 몸무게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동료는 즉각 해답을 내놓았다. ‘개구리 체형’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근육이 줄어들면서 팔과 다리가 가늘어진 대신 몸통 두께만 굵어지는 현상이라고 했다. 건강하다고 우길 유일한 재료가 사라졌다. 나름대로 음식을 가려 먹을 줄 안다는 소리를 들으며 “위장만은 튼튼하다”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소화가 시원치 않아졌고, 치아에 문제가 생긴 것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고장 나면 저것이 따라 망가지는 노후차가 이렇지 않을까 싶다. 친구들에게 털어놓으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단다. 그래서 엊그제 동창회에서는 기분 내고 막 달리는 ‘폭주족’을 볼 수 없었을까?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인디언 서머’ 단상/구본영 논설고문

    ‘인디언 서머.’ 북미 대륙에서 가을이 가기 전에 여름과 같은 기후가 일시적으로 나타날 때 쓰는 말이다. 추석 연휴 이후에도 한낮에는 여전히 더위가 이어지면서 떠올리게 된 용어다. 미국과 캐나다에선 본래 어원과 무관하게 늦은 나이의 행복한 성공에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2000년대 초 개봉됐던 동명의 국산 영화 탓일까. 기자에게는 왠지 비극적 복선이 연상된다. 박신양과 이미연이 출연한 영화에서 청춘이 끝날 무렵 찾아온 사랑이 슬픈 결말로 끝났기 때문이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을 뒤로했다는 안도감이 성급했던 걸까. 아직도 약속 장소를 향해 종종걸음 치다 보면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이 맺힌다. 그래서 ‘인디언 서머’라는 용어의 함의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본격적 추위가 오기 전 보너스처럼 찾아온 이 기간을 겨우살이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았다지 않나. 불가에서 쓰는 ‘회광반조’(回光返照)라는 말도 ‘인디언 서머’에 깃들인 생활의 지혜와 일맥상통하는 듯싶다. 문자 그대로는 해가 지기 직전에 잠깐 하늘이 밝아진다는 뜻이지만, 일시적 성취에 들뜨지 말라는 경종의 의미까지 담고 있기에….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다시 찾은 대학 교정/손성진 논설실장

    대학 캠퍼스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교정이야 넓기만 할 뿐 황량했지만 20대 초반의 청춘을 보낸 대학은 내게는 찬란한 신세계였다. 내리 4년간 다닌 대학 시절은 공부도 하고 미팅도 하고 학회 활동도 하면서 누구나 그렇듯 꿈에 부풀어 살던 시간이었다. 졸업 후 시간은 덧없이 흘렀다. 그사이 교정은 어떻게 변했는지 늘 궁금했다. 그래서 휴일을 맞아 작정하고 다녔던 대학을 찾아가 몇 시간 동안 교정 곳곳을 돌아보았다. 도시락을 펴 놓고 먹던 잔디밭, 집회를 하던 광장, 벤치가 있던 연못, 학구열을 불태우던 중앙도서관…. 그 시절 추억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마치 다시 대학생이 된 듯한 착각에도 빠져 본다. 연휴 기간인데도 학생식당은 붐빈다. 학생들과 밥을 같이 먹었다. 그때는 한 끼에 400원이었다. 지금은 3000원 안팎이다. 학생들에겐 간혹 1000원짜리 식사를 제공하기도 한단다. 무엇보다 밖에서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밝은 표정에 마음이 든든해진다. 우리 기성세대가 할 일은 일자리 많은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저들을 맞는 것이라 생각하며 어둑어둑해진 교정을 뒤로하고 교문을 나섰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자작나무/강동형 논설위원

    강과 나무가 어우러진 한적한 시골 산책길. 아담하게 조성된 공원에는 평화로움이 가득했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 텐트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강가에서 조개를 잡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가한 오후. 어디선가 비가 오는 청량한 소리가 들렸다. 강물을 봐도, 길 위를 둘러봐도 빗방울이 떨어진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뭔가에 홀린 듯 손바닥을 하늘을 향해 펴 봐도 빗방울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분명히 비가 내리는 소리는 들리는 데 비는 오지 않았다. 강가에 홀로 선 자작나무에서 나는 소리였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자작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서로 부딪치며 자작자작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여러 그루였다면 쏴 하는 소나기 소리였겠지만 한 그루에서 나는 소리는 영락없이 빗방울이 듣는 소리였다. 불에 나무가 타면서 유독 자작자작 소리가 많이 난다고 해서 자작나무라 했다지만 바람에 자작나무 잎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어 본 사람이라면 이 주장에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모처럼 호기심이 발동해서일까. 폭염 탓이었을까. 자작나무 소리에 취해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몇 번이고 자작나무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길섶에서] 출근길/박홍기 논설위원

    출근 때 지하철은 붐빈다. 특히 월요일엔 더하다. 긴 좌석에 일곱 명이 앉아 있다. 여성 여섯, 남성 한 명이다. 남성이 한가운데 있다. 한 여성은 화장에 한창이다. 거울을 보며 눈썹을 그리더니 속눈썹도 세운다. 다른 이들은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았거나 카톡을 하는지 스마트폰에서 엄지손가락이 바쁘다. 남성도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하철이 멈추고 출입문이 열렸다. 누군가는 내리고 누군가는 탔다. 또 다른 이들이 좌석 앞에 섰다. 지하철이 다시 출발하고 잠깐 지나서다. 남성이 갑자기 일어나 “앉으세요”라고 했다. 스마트폰에 빠져 몰랐던 거 같다.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볼록했다. 임신부였다. “괜찮습니다.” 사양했다. 남성이 일어나 지하철 손잡이까지 잡자 그제야 “감사합니다”라며 앉았다. 임신부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앉은 이들은 그대로였다. 화장하고, 눈감고, 스마트폰을 보고…. 한참 가는 동안 앉은 이들은 번갈아 바뀌었다. 남성이 내리려 할 때 임신부도 일어섰다. 그리고 “감사했어요.”, “아! 네.” 두 차례의 인사는 스쳐 지나가듯 짧았다. 출근길이 여느 날보다 따뜻했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호박꽃/황수정 논설위원

    집 앞 유치원 울타리에는 손바닥만 한 호박꽃이 여름내 지천이었다. 오가며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말 못하게 쏠쏠했다. 일부러 그 길목으로 길을 잡아 느린 걸음을 한 적도 많다. 한 뼘 흙에만 의지해도 뿌릿발을 내리는 게 씨앗이지만 호박은 다르다. 울도 담도 없는 아파트촌에서 절로 싹이 날 리 없다. 무슨 마음으로 쇠 울타리 밑에 호박씨를 묻었을까 번번이 궁금했다. 낮밤으로 오므렸다 폈다 하는 꽃초롱만 봐도 좋겠다는 계산 아니고서야. 보나 마나 얼치기 농사꾼. 요란한 덩굴손에 꽃송이만 소란케 하더니 역시나 열매 하나 못 건지고, 가을! 고향집 담벼락의 호박들이야 나날이 힘껏 둥글어 갈 때다. 철 잊은 늦꽃이 밤 마당을 노란 등으로 밝힐 것이고. 저것들 다 익으면 어느 자식 몫일지 덩이마다 이름표가 붙었을 것이고. 추석 지난 지 며칠째라고, 육교 아래 쪼그린 할머니는 아침부터 좌판에 둥근 호박을 내놓았다. 새벽이슬을 털고 따왔는지 꼭지에 도는 푸른 물. 아들딸 이름표 다 붙이고 남은 것일까, 연휴 내내 빈집만 지키다 빈 마음에 좌판이라도 폈을까. 이 생각 저 생각에 하릴없이 풋호박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위로